노동사회과학연구소

[정세]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와 그 극복

 

채만수 | 소장

 

* 이 글은, <사월혁명회>가 발행하는 ≪사월혁명회보≫ 제135호(2021. 12.)에 실린 글입니다.

 

 

I

 

그냥 ‘반미ㆍ자주 노선의 성장’이 아니라, 그것이 ‘제국 혹은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쇠퇴’라는 문제와 엮여서 특집으로 기획되는 것을 보면서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추측하지 않을 수 없다. ‘아하, 지난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의 철수가 미제의 신식민지 체제의 극복ㆍ분쇄를 위해 노력ㆍ투쟁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섬광 같은 예지(豫知) 내지 커다란 자극을 준 모양이구나!’ 하는 추측.

물론 ‘제국 혹은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쇠퇴’라는 문제의식 혹은 그에 대한 논의는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조금 새삼스러울 뿐이다.

1980년 광주 학살ㆍ광주 항쟁으로 반미ㆍ자주의 문제가 대중적ㆍ투쟁적으로 제기되기 전까지는, 특히 박정희가 집권하고 있던 시기는, 검찰ㆍ경찰ㆍ중정ㆍ보안사 등 파쑈 공안 기관들이 미제의 위엄에 혹시라도 ‘기스[傷]’를 낼 염려가 있다고 간주하는 어떤 언설도 ‘반미’로 규정되어 반공법ㆍ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던 시절이었다. 바로 그 때문에 이 대한미국에서는 물론 별로 논의되지 못했지만, 알 만한 이들은 다 아는 바와 같이, 한때는 이 주제, 즉 ‘제국 혹은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쇠퇴’라는 문제가, 적어도 좌익적 학자들과 논객들 사이에서는, 정작 미국을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상당히 활발하고 진지하게 논의되었다. 그런데, 그러던 논의가 급격히 시들해지기 시작한 것은, 고르바쵸프의 집권 이후 쏘련 체제의 명운에 세계의 주요 이목이 쏠리면서부터였고, 나아가 쏘련과 동유럽에서 20세기 사회주의 세계 체제가 해체되고 이른바 ‘1극 체제’가 성립하면서는 그 논의가 아예 실종되다시피 돼 버렸다. ‘제국 혹은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쇠퇴’라는 문제의 제기가 “조금 새삼스럽다”고 말한 이유이다.

 

 

II

 

애초에 미 제국주의 혹은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쇠퇴라는 문제의식을 자극했던 것은 브레튼우즈 체제, 즉 본래의 IMF(국제통화기금) 체제의 붕괴였다.

주지하는 바이지만, 제1차ㆍ제2차 대전이라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미 제국주의를 군사적으로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자본주의 세계의 절대적 강자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이 두 차례의 전쟁이 미국의 산업 생산 능력을 급속히 증대시켰기 때문이었다. 그에 반해서 과거 미제와 경쟁했던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은 특히 제2차 대전으로 엄청나게 파괴되었을 뿐 아니라, 노동자ㆍ인민의 사회주의 혁명 열기의 고조라는 정치적 위기에까지, 그리고 식민지 도처에서의 해방 투쟁이라는 위기에까지 몰리고 있었다.

서유럽 국가들에서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정치적 위기가 크게 고조된 것은, 근본적으로는 물론 자본주의적 생산 체제 자체가 배양한 노동자계급과 그 계급 의식의 성장ㆍ성숙에 의한 것이지만, 당시 정세에서는 특히 두 차례의 대전이 모두 제국주의에 의해서 저질러진 것, 즉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의 폭발이었다는 것, 그에 비해서 사회주의 쏘련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대공황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에도 승승장구 발전을 계속했으며, 무엇보다도 사회주의 쏘련이야말로, 물론 전쟁에 의한 엄청난 파괴라는 타격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히틀러의 나치를 물리치고 제2차 세계 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실질적 주역이었다는 사실 등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형성된 새로운 제국주의 세계 체제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위시한 일련의 반쏘ㆍ반노동자계급 군사 동맹을 포함한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 즉 미제 패권하의 제국주의 세계 체제였고, 브레튼우즈 체제라고도 불리는, 이른바 오늘날 널리 세계은행(World Bank)으로 불리는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을 포함한 IMF 체제는 그 중요한 경제적 기제(機制)요 상징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IMF 체제가 일찍이 1958년부터 발생한 ‘골드러시(gold-rush)’로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아예 붕괴되어 버렸으니,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쇠퇴’라는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월남전에서의 미제의 패퇴라는 사태까지 벌어졌으니 더욱 그러하지 않을 수 없었다.

 

 

III

 

‘아니? IMF 체제의 붕괴라니? IMF는 아직도 멀쩡히, 그리고 특히 외환 위기에 몰리곤 하는 아시아나 라틴 아메리카 등의 신식민지 국가들에게는 위력적으로 존재하고 있는데…?’ 하며, 의아해할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다.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IMF, 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제가 ‘금-달러 교환 정지’를 선언한 1971년 8월 15일 이후의, 혹은 늦어도 변동 환율제를 공인한 1973년 3월 이후의 IMF는, 명칭은 같지만, 본래의 IMF와는 사실상 본질적으로 다른 IMF이다.

1944년 7월에 미국의 브레튼우즈(Bretton Woods)에서 연합국 통화금융회의에서 합의되었기 때문에 브레튼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라고 불리는 본래의 IMF 체제의 근간, 기본적 특징은 ‘미국의 달러 = 금’이었다. 실제로 그 협정 제4조 1항은 “가맹 각국의 통화의 평가(平價)는 공통의 척도인 금, 또는 1944년 7월 1일 현재의 무게와 순도를 갖는 미국의 달러로 표시한다”고 규정하고 있었으며, 각국은 그러한 평가를 IMF에 등록하고 그 가치를 평가의 상하 1% 이내에 유지하는 의무를 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 “1944년 7월 1일 현재의 무게와 순도를 갖는 미국의 달러”란, 1934년 1월의 미국의 ‘금 준비법(The Gold Reserve Act of 1934)’이 규정한 ‘금 1온스 = 35달러’의 가치, 즉 ‘1달러 = 35분의 1온스의 금’의 가치를 가진 달러를 의미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새로운 기구가 절실히 필요했다는 것 자체가, 1930년대의 대공황과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국제 통화ㆍ금융 질서가 어지러워질 대로 어지러워졌고,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그러한 기구가 없이는 그 재건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국제 무역 질서의 재건도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한 나라의 법정통화에 불과한 달러에 ‘달러 = 세계화폐 금’이라는 특권을 부여하는 데에는 물론 갈등이 없을 수 없었다. 특히 당시 회의에서는 케인즈에 의해서 대표되던, 옛 패권국 영국과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미국이 절대적 패권국이었고, 즉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였고, 특히 세계화폐 금은 미국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주지하는 바이지만, 심지어 맑스 경제학자임을 자처하는 자들의 일부까지도 ‘이제 더 이상 금이 화폐가 아니며, 현대 중앙은행권은 그 자체가 가치를 가지고 있다’라는 헛소리, 즉 금폐화론(金幣貨論)을 뇌까리곤 하지만, 아직 당시는 적어도 국제통화ㆍ세계화폐와 관련해서는 그 누구도 그러한 헛소리를 뇌까릴 수 없는 시대였다. 예컨대, 금폐화론을 선도하던, 현대 부르주아 경제(비과)학의 저 거두 케인즈조차도 금 태환이 보장되지 않는 이른바 ‘관리통화’가 국제통화ㆍ세계화폐일 수 있다고는 감히 주장하지 못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시대에 그러한 금을 당시 미국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제2차 대전 종전 당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추정 총금보유고 300억 달러의 7할을 훨씬 넘는 금이 포트 녹스(Fort Knox)에, 곧 그 중앙은행 창고에 쌓여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 압도적인 금 보유에 기초하여 미국이, ‘1달러 = 35분의 1온스의 금’의 비율로, 외국의 정부와 그 통화 당국에 대해서 달러와 금의 교환을 보장한다고 함으로써 그러한 IMF 체제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서유럽 국가들은, (그리고 일본도) 파괴된 생산력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노동자ㆍ인민의 혁명적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주로 미국으로부터 공업 생산 수단과 식량을 대량으로 수입ㆍ조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전후 자본주의 세계 시장에는 심각한 ‘달러 부족’이라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이렇게 부족한 달러는, 한편으로는 판로를 확보하여 과잉생산을 해소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유럽이나 기타 지역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을 용납할 수 없었던 미제의 직접ㆍ간접의 원조로 근근이 메워졌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의 불균등 발전이라는 법칙의 관철은, 제2차 대전 종전 이후 세계 시장에서의 이른바 ‘달러 부족’이라는 사태를 이미 1950년대 말 이후에는 ‘달러 과잉’이라는 사태로 역전시켜 버렸다. 미국은 ‘달러 방어’에, 즉 런던과 쮜리히 등의 국제 자유금시장에서의 ‘금 가격’을 그 공정‘가격’인 ‘금 1온스 = $35.-’의 수준에 유지하기 위한 시장 개입, 즉 금의 방출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고, 몇몇 나라는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도 금으로의 달러의 교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이 언제, 전문 용어로 말하자면, 만세 부를지 모르니까! 그리하여 1949년에 244억 달러로 정점에 달했던 미국의 금보유고가 1971년에는 102억 달러로 급감했고, 미제는 드디어 1971년 8월 15일에 “금-달러 교환 정지”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미제는, “‘1달러 = 35분의 1온스의 금’의 비율로, 외국의 정부와 그 통화 당국에 대해서 달러와 금의 교환”해 주겠다며 달러라는 어음을 엄청나게 발행해 놓고는 부도를 낸 것, 역시 전문 용어로 말하자면, ‘배 쨀 테면 배 째라’ 하고 만세를 부른 것이고, 그리하여 본래의 IMF 체제가 붕괴한 것이다. 이 ‘금-달러 교환 정지’라는 선언이 얼마나 엄청난 사태였던가를 고(故) 정운영 교수는 어느 신문 칼럼에서, ‘그러한 선언을 엄청난 핵무기로 무장한 세계 최고의 군사 강국 미국이 벌였으니 망정이지, 다른 나라가 벌였더라면 당장 함포 사격이 벌어지는 등의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라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여기에서 참고로 말하자면, 오늘날 ‘이제는 더 이상 금은 화폐가 아니며, 각국의 불환 중앙은행권 자체가 가치를 가진 화폐다’라는 헛소리를 뇌까리는 경제(비과)학자님들께서,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자신들의 주장을 확증하는 역사적 사실로 드는 것이 사실은 바로 저 미제에 의한, 1971년 8월 15일의 ‘금-달러 교환 정지’인데, 여기에서 물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금이 화폐가 아니라면, 미제는 무엇 때문에 그러한 ‘금-달러 교환 정지’라는 엄청난 사태를 벌였겠는가를!

 

 

IV

 

아무튼 본래의 IMF 체제의 이 붕괴는 제국주의 세계 체제의 중대한 변화였고, 그 때문에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쇠퇴’라는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앞서 말한 것처럼, 월남전에서의 미제의 패배는, 그러한 문제의식ㆍ논의를 더욱 부채질했다.

그리고 그러한 논의에서의 대체적인 ‘합의’는, 제2차 대전 직후에는 미제가 제국주의 세계 체제에서 ‘절대적인 우위’에 있었다면, 1970년대 이후에는 이제 ‘상대적인 우위’밖에 점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논의, 그러한 ‘합의’가, 미 제국주의가 급속히 쇠퇴할 것이라거나,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가 급속히 해체될 것이라는 등의 의미를 담고 있거나 시사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말 그대로 경제적으로 이른바 ‘절대적 우위’를 점하던 미제가 이제 경제적으로 ‘상대적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할 뿐이었고, 월남전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미제의 특히 군사적인 절대적 우위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다. 즉,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보면서 일부가 내리고 있는 예단과는 판이했다.

쏘련의 해체와 함께 20세기 사회주의 세계 체제가 해체되기 전까지는 논의가 대략 그러하였다. 그리고 쏘련의 해체로 이른바 ‘1극 체제’가 성립하자, 역시 앞서 말한 것처럼, 그러한 논의 자체도 사실상 사라졌다.

 

 

V

 

과거에 있었던, 말하자면,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쇠퇴’의 논의를 이렇게 장황하게 얘기하는 이유는, 지난 8월의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에서 ‘미 제국의 쇠퇴’ 혹은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쇠퇴’에 관한 어떤 예지를 느꼈다면, 분명 미운 소리겠지만, 그것은 성급하고 그다지 근거가 없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일부에서는 미군의 철수와 탈레반의 집권을 가리켜 ‘아프간의 해방’이라며 만세를 부르다시피 환호하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그것은 결코 ‘해방’이 아니다. 그러한 판단과 환호는 자신의, 물론 반제(反帝)라는 선의의, 그러나 몰계급적인 국가주의적ㆍ국민(Nation)주의적 소망을 현실로 착각한 것일 뿐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아니, 아프간 인민은 결코 해방된 게 아니다. 아프간 인민은 여전히 해방을 위한 혁명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아니, 탈레반은 분명 자신들이 미제로부터 아프간을 해방했다고 선전할 것이고, 그 인민들 중에도 그러한 몰계급적ㆍ국가주의적ㆍ국민주의적 선전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결코 적지만은 않을 터이므로 아프간 인민은 사실은 과거보다도 더 어려운 혁명의 과제를 지고 있는 것이야말로 현실이다.

탈레반 집권 후 벌어지고 있는 극히 어이없는 여성 억압이 전 세계적으로 지탄받고 있지만, 탈레반의 반동성은 그에 그치지 않는다. 사실상 사회생활 전반(全般)에 걸쳐 있다. 게다가 지난 8월 미군의 철수와 관련, 가히 극적인 장면들이 연출되었지만, 그렇다고 탈레반이 미군을 패퇴시킨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군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른 전략 수정에 의해서, 즉, 주지하는 것처럼, 주로 중국이 더 이상 패권 국가로 대두하는 것,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굴기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 아시아에서의 전력 배치를 수정해야 할 필요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철수했을 뿐이다.

1970년대에는 미군이 월남에서 실제로 패퇴하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그것 자체만으로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쇠퇴, 특히 군사적 패권의 쇠퇴 따위를 예측하지 않았는데,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저러한 철수를 보면서 그것을 예측한다? 좀 과하지 않은가?

더구나 탈레반이 어떤 세력인가에 대한 성찰도 없이!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1978년 4월 혁명의 발전을 저지하기 위해서, 즉 사회주의를 지향하던 인민민주당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서 일어선 봉건적ㆍ신정주의적 반동 세력이며, 같은 목적으로 미 제국주의가 육성한 세력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제의 음양의 지원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이 막강하게 무장한 탈레반은 절대로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은 오늘날에도 그렇다. 탈레반은, 아프간 인민이 해방을 위한 혁명에 나서면, 그런데 그 혁명을 자력으로 진압할 수 없으면, 하시라도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에 무력 지원을 요청하고 나설 세력이다. 미제 등은 물론 하시라도 다시 지원하고 나설 것이고.

그런데도 지난 8월 미군의 철수와 탈레반의 집권이 아프간의 해방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제국 혹은 팍스 아메리카 체제의 쇠퇴를 예지한다?

 

 

VI

 

그건 그렇고, 방금 앞에서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것은, 탈레반에 패퇴당해서가 아니라, 중국이 더 이상 패권 국가로 대두하는 것, 즉 더 이상 굴기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 수정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일반적인 관측에 따라서 그렇게 말했는데, 미국의 의도는 정말 그것뿐일까? 아니, 그것이 미국이 전략을 변경한 핵심 의도일까? 다시 말하면, 미제는 과연, 예컨대, 지난 9월의 ‘오커스(AUKUS) 동맹’이라든가, 한ㆍ미ㆍ일 동맹의 강화 등등등을 통해서 중국의 ‘굴기’를 견제 혹은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바로 그러한 목적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일까?

필시 그들 자신도 그러한 전략 수정을 통해서 중국의 대두ㆍ굴기를 억제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전적으로 아무런 억제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는 물론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정책ㆍ전략으로 중국의 대두를 의미 있게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믿을 만큼 그들이 어리석거나 순진할 리가 결코 없다.

그런데도, 미제와 그 동맹국들은 중국의 반발ㆍ‘분노’를 무릅쓰고, 오커스 결성의 경우에는 심지어 오랜 ‘동맹국’ 프랑스의 반발ㆍ분노까지를 무릅쓰고, 그러한 정책ㆍ전략을 강행하며 특히 중국과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노리고 그러는 것일까?

다름 아니라 바로 중국과의 국가 간의 긴장, 국민 간의 그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럼으로써, 한편으로는 오늘날 군산복합체로 불리는 군수 독점자본을 위한 판로를 조성하고, 더 중요하게는 노동자ㆍ인민을 애국주의ㆍ국가주의ㆍ국민주의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것이고, 그리하여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간의 착취ㆍ억압 관계를 은폐하며 독점자본(의 국가)에 대한 노동자ㆍ인민의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야말로, 즉 독점자본은 노동자ㆍ인민을 애국주의ㆍ국가주의ㆍ국민주의적으로 동원하고,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간의 착취ㆍ억압 관계를 은폐하며, 독점자본(의 국가)에 대한 노동자ㆍ인민의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라는 점이야말로 반미ㆍ자주화의 투쟁 역량과 그 성과를 강화하고자 할 때, 그리고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극복을 꾀할 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점이다. 더구나 현대 제국주의 세계 체제로서의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는 동시에 신식민지 지배 체제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제국주의 체제는 결코 제국주의 국가들의 노동자ㆍ인민이 식민지를 착취ㆍ억압하는 체제가 아니다. 그것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자본, 특히 독점자본이 식민지의 노동자ㆍ인민을 착취ㆍ억압하는 체제이다. “근대의 국가 권력은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들을 관장하는 위원회에 불과하다”면, 제국주의의 국가 권력은 바로 독점자본가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들을 관장하는 위원회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제국주의 국가의 노동자ㆍ인민은 독점자본에 의해서 동원되고 있을 뿐이다. 독점자본의 이데올로기 지배ㆍ조작으로 반제ㆍ반자본 계급 의식이 사실상 부재하거나 심각하게 부족한 탓에, 애국주의ㆍ국가주의ㆍ국민주의 선전ㆍ선동에 의해서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는 언제나 식민지 현지의 토착 지배계급과의 동맹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예컨대, 우리 역사에서 ‘친일파’ 없이도 일제의 조선 식민지 지배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그리고 그 ‘친일파’란, 일반적으로 얘기되는 것과 같은, ‘개별적 인사들의 단순한 합’이 결코 아니다. 그들은 분명 당시 조선 토착 지배계급의 정치적 대표자들이요 대변자들이었다. 이 대한미국에서 그들이 여전히 부와 권력을 누려 온 것도 바로 그들이 그렇게 이 사회 토착 지배계급의 정치적 대표자들ㆍ대변자들이기 때문인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 즉 신식민지 지배 체제에서는, 신식민지가 ‘독립 국가’라는 외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제국주의 독점자본가계급과 신식민지 현지 토착 지배계급 간의 동맹이 교활하고 교묘하게 은폐된 형태, 그리하여 그만큼 더 강고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독립 국가’라는 외형 속에 그 동맹이 은폐되어 있기 때문에, 선진 노동자들조차도, 한편에서는 반미ㆍ자주를 주장하고 또 그러한 대의를 위해 투쟁하면서도, 몰계급적인 국가주의ㆍ국민주의ㆍ애국주의에 빠져 있기 일쑤이고, 그리하여 반미ㆍ자주를 위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목전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못 보고 착각하기 일쑤이며, 그만큼 저들의 동맹은 강고한 것이다. 예를 들면, 반미ㆍ자주의 선봉에 서 있는 한 언론이 최근에 “‘친미 Vs 친중’ 어느 쪽이 국익일까?” 운운하고 묻고 나선 것도 그러한 선의의 몰계급적인 국가주의ㆍ국민주의ㆍ애국주의의 발로일 터이다. 그러나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그리하여, 반미ㆍ자주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신식민지 인민의 입장에서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점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몰계급적인 국가주의ㆍ국민주의ㆍ애국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지의 토착 지배계급이야말로 저들 제국주의 독점자본가계급과 동맹한, 그들의 대리 통치계급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바로 그들과 우선적으로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실제로 신식민지 국가에서 노동자ㆍ인민의 반미ㆍ자주화 투쟁을, 그들의 혁명적 진출을 당장 그리고 직접적으로 가로막고 있고, 가로막고 나서는 것은 바로 그들 토착 지배계급이요 그들의 국가 권력이 아닌가?!

“민족은 하나!”는 무계급 사회에서만 그렇다. 다시 강조하지만, “민족은 하나!”, 그것은 오직 무계급 사회에서만 그렇다.

주요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노동자ㆍ인민의 혁명으로 계급이 폐지되고, 그리하여 제국주의 체제, 신식민지 체제가 해체되어 계급적 착취와 억압이 사라지고, 그와 더불어 민족적 억압이 사라지면, “민족은 하나!”라는 문제를 제기할 이유도 사라질 것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계급환원론이다!”, “계급환원주의다!” 하고, 필봉을 휘둘러 왜장치고 나설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지만, 제국주의 체제, 따라서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 따라서 신식민지 체제는 무엇보다도 계급적 억압ㆍ착취 체제이다. 따라서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 신식민지 피지배의 처지를 극복하고 반미-자주화를 실현하려면, 무엇보다도 계급 투쟁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적 차원에서의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극복 혹은 해체와 관련해서 보면, 이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노동자계급 대중이 현재와 같이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으로 독점자본에 종속되어 있는 한에서는, 즉 국가주의ㆍ국민주의ㆍ애국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한에서는, 그리하여 미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이익을 지키는 전사(戰士)의 역할을 하고 있는 한에서는, 세계적 차원에서의, 즉 종국적인,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극복ㆍ해체는 물론 불가능할 것이며, 식민지ㆍ신식민지 노동자ㆍ인민의 해방도 지난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노동자계급 속에도 독점자본의 이데올로기 지배, 정치적 지배를 극복ㆍ분쇄하려는 노력ㆍ투쟁이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다. 다만 독점자본의 그 지배가 너무나도 위력적ㆍ압도적이어서 그 노력ㆍ투쟁이 대중적으로 활성화되고 있지 못할 뿐이다.

그러한 조건 속에서 식민지ㆍ신식민지 노동자ㆍ인민의, ‘반제’ 국가주의ㆍ국민주의ㆍ애국주의가 아니라, 제국주의 독점자본과 동맹한 토착 지배계급과의 치열한 계급 투쟁은 미국 노동자들의 계급 투쟁을 활성화하는 주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의 계급 투쟁의 활성화는 다시 분명 식민지ㆍ신식민지 노동자ㆍ인민의 해방의 주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반미-자주화,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극복, 그것은 오로지 계급 투쟁의 강화ㆍ보편화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노사과연

 

채만수 소장

2개의 댓글

  • 자유게시판에 본 문서와의 비교를 위해 김남기 님께서 노정신에 기고하신 문서의 주소를 등재했습니다. 본 문서처럼 경계를 요하는 점은 분명하게 표명했지만 동시에 결론은 다르게 제시했고 저들의 철수의 최소 후회 이상의 계기를 형성해야 하는 점은 문서의 기조를 따르더라도 임무로 남습니다.

  • 또 한 가지 더 추가하면 이제는 1년 반 이상을 지나 1년 7개월 보름 여를 경과한 서아도 공사/시애틀 코뮨/뮌도 존재했는데 이것도 일단의 평가를 부탁 드립니다. 물론 당연히 이것으로 미국의 노동자 계급 대중 일반이 국가/국민/애국주의를 벗어났다고는 사고하지는 않지만 일단의 맹아로도 볼 수 는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