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번역]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하)

 

이오씨프 쓰딸린(Иосиф Сталин)

번역: 신재길(교육위원장)

 

[차례]

1) 맑스주의 변증법적 방법

2) 맑스주의 철학적 유물론

3) 역사적 유물론 ㆍㆍㆍ <이번 호에 게재된 부분>

 

 

3) 역사적 유물론

 

이제 다음 문제를 해명하는 일이 남았다. 역사적 유물론의 입장에서 볼 때 사회의 겉모습, 사상, 관점, 정치 제도 등등을 궁극적으로 규정하는 “사회생활의 물질적 조건”은 무엇인가?

 

즉, “사회생활의 물질적 조건”은 무엇이고, 그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인가?

 

의심할 바 없이 “사회생활의 물질적 조건”에는 먼저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즉 지리적 환경이 포함된다. 지리적 환경은 사회의 물질적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항상적 조건으로 사회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면 지리적 환경이 사회 발전에 작용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지리적 환경이 사회의 겉모습, 사회 체제의 성격, 사회 체제의 이행을 결정하는 주된 힘이 되는가?

 

역사적 유물론은 이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한다.

 

지리적 환경은 확실히 사회 발전의 항상적이고 없어서는 안 될 조건이다. 그리고 당연히 사회 발전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 발전을 촉진시키거나 지체시킨다. 그러나 그 영향은 결정적인 것이 못 된다. 왜냐하면 사회의 변화 발전이 지리적 환경의 변화 발전보다 비할 바 없이 빠르기 때문이다. 3천 년 동안 유럽에서는 세 개의 다른 사회 제도, 즉 원시 공동체, 노예제, 봉건제가 연속하여 교체되었다. 동유럽과 쏘련에서는 심지어 네 개의 사회 제도가 교체되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유럽의 지리적 환경은 전혀 변하지 않았거나 지리학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없었다. 이는 당연하다. 지리적으로 중요한 변화는 수백만 년이 걸린다. 반면에 인간 사회의 중요한 제도 변화는 몇백 년이나 몇천 년이면 충분하다.

 

따라서 지리적 환경은 사회 발전의 주된 원인, 즉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없다. 수만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는 것이 수백 년 만에 근본적으로 변하는 발전의 주요 요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인구 증가나 어느 정도의 인구 밀도 또한 의심의 여지없이 “사회생활의 물질적 조건”에 포함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회생활의 물질적 조건에서 본질적 요소이고, 인구수가 최소한도 이상 넘지 않으면 사회생활의 물질적 조건은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구 증가가 사회 체제의 성격을 결정하는 주된 힘이 되는가?

 

역사적 유물론은 이 질문에도 부정적으로 답한다.

 

물론 인구 증가가 사회 발전에 영향을 미쳐, 사회 발전을 촉진하거나 지체시킨다. 그러나 인구 증가가 사회 발전의 주된 힘이 될 수는 없다. 즉 인구 증가가 사회 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결정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구 증가 자체는 특정 사회 체제가 왜 다른 사회 체제가 아니라 바로 이런저런 사회 체제에 자리를 내주는지에 대한 어떤 열쇠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구 증가는 왜 원시 공동체가 노예제로, 노예제가 봉건제로, 봉건제가 자본주의로 바로 연결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인구 증가가 사회 발전의 결정적인 힘이라면, 높아지는 인구 밀도에 상응하여 더 높은 유형의 사회 제도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는 볼 수 없다. 인구 밀도는 중국이 미국의 4배이지만 사회 발전 단계는 미국이 중국보다 높다. 중국에서는 여전히 반봉건 체제가 우세하지만 미국은 오래전에 자본주의 발전의 최고 단계에 도달했다. 벨기에의 인구 밀도는 미국의 19배, 쏘련의 26배에 달한다. 그러나 미국은 사회 발전 단계에서 벨기에보다 높고 쏘련은 역사적 시대에서 전체적으로 한 단계가 앞서 있다. 벨기에는 자본주의 체제가 지배적이지만 쏘련은 이미 자본주의를 청산하고 사회주의 체제를 수립한 것이다.

 

이로부터 인구 증가는 사회의 발전, 사회 체제의 성격, 사회의 겉모습을 결정하는 힘이 아니며 될 수도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ㄱ) 그러면 복잡한 사회생활의 물질적 조건에서 사회의 겉모습, 사회 체제의 성격, 한 체제에서 다른 체제로의 사회 발전을 결정하는 주된 힘은 무엇인가?

 

역사적 유물론에서 말하는 이 힘은 인간 생존에 필요한 생활 수단을 조달하는 방식, 즉 사회생활과 발전에서 필수 불가결한 음식, 의복, 주택, 연료, 생산 도구 등 물질적 가치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사람이 생활하려면 음식, 의복, 신발, 주택, 연료 등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 사람들은 이러한 물질적 가치를 생산해야만 한다. 물질적 가치를 생산하려면 생산 도구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사람들은 생산 도구를 생산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만 한다.

 

물질적 가치 생산에 이용되는 생산 도구와 생산 도구를 가지고 일정한 생산 경험숙련된 노동으로 물질적 가치를 생산하는 사람 ― 이 두 요소가 결합하여 사회의 생산력을 이룬다.

 

생산력은 생산의 한 측면, 생산 양식의 한 측면, 즉 물질적 가치 생산에 이용되는 대상과 힘인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표현할 뿐이다. 생산의 또 다른 측면, 즉 생산 양식의 또 다른 측면은 생산 과정에서의 인간관계, 즉 사람들의 생산관계이다. 사람들은 자연에 대항하고 자연을 이용하여 물질적 가치를 생산하는 데 있어서 서로 고립되고 분리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집단으로 함께 사회에서 생산한다. 그러므로 생산은 언제나 그리고 어떤 조건에서도 사회적 생산이다. 물질적 가치를 생산하면서 사람들은 서로 이런저런 상호 관계를 맺고, 생산관계를 형성한다. 이 관계는 착취에서 해방된 사람들의 협력과 상호 부조의 관계일 수도 있고, 지배와 복종의 관계일 수도 있다. 그리고 생산의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이행하는 관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생산관계의 성격이 어떻든 간에, 언제나 또 어떤 체제에서나 생산관계는 생산력과 함께 생산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이다.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생산에서 인간은 자연뿐만 아니라 서로에게도 작용한다. 인간은 일정한 방식으로 협력하고 서로 간 교환을 통해서만 생산한다. 생산을 하기 위해 인간은 일정한 연결과 관계를 맺으며 또 이러한 사회적 연결과 관계를 통해서만 자연에 작용을 가하고 생산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생산, 생산 양식은 사회의 생산력과 인간의 생산관계를 포괄하며 물질적 가치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 둘의 통일을 구현하게 된다.

 

(ㄴ) 생산의 첫 번째 특징은 생산은 결코 한 지점에 오래 머물지 않고 항상 변화 발전의 흐름 속에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생산 양식의 변화는 불가피하게 사회 체제, 사회사상, 정치 견해, 정치 제도의 전체적 변화를 가져온다. 즉 생산 양식의 변화는 사회 및 정치 질서의 전면적 재편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은 다른 발전 단계에서 다른 생산 양식을 가진다. 거칠게 말해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 원시 공동체는 하나의 생산 양식이고, 노예제는 또 다른 생산 양식이며, 봉건제는 세 번째 생산 양식 등등이다. 이에 따라 사회 체제, 정신생활, 사고방식, 정치 제도도 변화한다.

 

각각의 생산 양식은 모두 대체로 그 자체가 사회가 되며, 사상이론이 되고 정치적 관점과 제도가 된다.

 

거칠게 말해서 어떤 인간의 생활 방식이든 그것은 인간의 사고방식으로 된다.

 

이것은 사회 발전의 역사가 무엇보다도 생산 발전의 역사이며, 수세기에 걸쳐 교체되어 온 생산 양식의 역사이며,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역사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회 발전의 역사는 동시에 물질적 가치를 생산하는 생산자 자신의 역사, 즉 생산 과정에서 기본적 힘이며 사회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물질적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 대중의 역사이다.

 

따라서 역사 과학이 진정한 과학이 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사회 발전의 역사를 왕이나 장군의 활동, 국가 “정복자”와 “통치자”의 활동으로 축소하지 말고, 무엇보다도 물질적 가치를 생산하는 생산자들의 역사, 노동 대중의 역사, 인민들의 역사 연구에 헌신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 역사 법칙을 연구하는 열쇠를 인간의 정신, 사회사상이나 사고방식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주어진 역사적 시대의 사회에 실현되는 생산 양식에서 찾아야 한다. 즉 사회 역사 법칙은 사회의 경제생활에서 찾아야 한다.

 

따라서 역사 과학의 주된 임무는 생산의 법칙,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발전 법칙, 사회의 경제 발전 법칙을 연구하고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당이 진정한 당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생산 발전 법칙, 사회 경제 법칙에 대한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당이 정치적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강령 작성과 실천 활동에서 주로 생산의 발전 법칙, 사회의 경제적 발전 법칙에서 출발해야 한다.

 

(ㄷ) 생산의 두 번째 특징은 생산의 변화 발전이 항상 생산력의 변화 발전, 무엇보다도 생산 도구의 변화 발전과 함께 시작한다는 것이다. 생산력은 생산의 가장 가변적이고 혁명적인 요소이다. 먼저 사회의 생산력이 변화 발전하고 그 다음에 이런 변화에 따라 그리고 그에 맞게 사람들의 생산관계, 경제관계가 변한다. 그러나 이것이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생산력이 생산관계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생산관계는 생산력의 발전에 의존하지만 생산관계는 생산력에 반작용하여 생산력을 촉진하거나 지연시킨다. 이와 관련하여 생산관계는 생산력의 성장에 너무 오랫동안 뒤쳐지거나 생산력과의 모순 상태 속에 계속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생산력은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성격과 상태에 부합하여 생산력의 발전을 전면적으로 열어 줄 때만 충분히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생산관계가 생산력에 뒤쳐진다고 해도 조만간 생산력의 발전 수준과 생산력의 성격에 부합해야 하고, 실제로도 부합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생산 체제 내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통일이 근본적으로 침해되어 생산의 전면적 혼란, 생산의 위기, 생산력의 파괴를 보게 될 것이다.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성격에 맞지 않아 생산력과 충돌하는 경우는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 공황이다. 이 나라들에서는 생산 수단의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가 생산 과정의 사회적 성격인 생산력의 성격과 명백한 부조화 상태에 있다. 이러한 부조화의 결과는 생산력을 파괴하는 경제 공황이다. 더욱이 이러한 부조화는 그 자체가 사회 혁명의 경제적 기초가 된다. 사회 혁명은 기존의 생산관계를 파괴하고 생산력의 성격에 부합하는 새로운 생산관계를 창출한다.

 

이와 반대로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성격에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는 쏘련의 사회주의 인민 경제이다. 쏘련에서는 생산 수단에 대한 사회적 소유가 생산 과정의 사회적 성격과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경제 공황도 생산력의 파괴도 없다.

 

결과적으로 생산력은 가장 가변적이고 혁명적인 요소일 뿐만 아니라 생산의 발전에서 결정적인 요소이다.

 

생산력 수준이 어떠하든 생산관계는 반드시 생산력을 따라야 한다.

 

생산력의 수준은 인간이 필요한 물질적 가치를 생산하는 생산 수단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제공한다. 반면에 생산관계의 상황은 다른 문제에 답을 제공한다. 즉 생산 수단(토지, 산림, 하천, 지하자원, 원료, 생산 도구, 생산 건물, 교통수단과 통신 수단 등등)을 누가 소유하고 있으며, 생산 수단은 누가 관리하는가라는 물음, 전체 사회에 의해 소유 통제되는가 아니면 개인, 집단, 계급에 의해 소유 통제되어 다른 개인, 집단, 계급을 착취하는 데 사용되는가?라는 물음에 답을 제공한다.

 

다음은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생산력 발전의 대략적 묘사이다. 조잡한 석기에서 활과 화살로 넘어가고, 더불어 수렵 생활에서 동물의 가축화 및 원시 목축을 하는 생활 양식으로 넘어갔다. 석기에서 철기(쇠도끼, 쇠 날을 끼운 쟁기 등등)로 넘어가면서 이에 상응하여 경작과 농업으로 이행했다. 원료 가공을 위한 금속 도구가 더욱 개선되고 제철용 풀무와 도자기가 도입됨에 따라 이에 상응해 수공업이 발달하여 농업에서 수공업이 분리되고, 독립 수공업과 이후 공장제 수공업으로 발달하였다. 수공업 생산 도구가 기계로 대체됨에 따라 독립 수공업과 공장제 수공업은 기계제 공업으로 전환되고 이는 기계 씨스템으로 발전하여 현대의 대규모 기계 공업이 출현하였다. 이것이 인류 역사 과정에서 사회의 생산력 발전에 대한 불충분하나마 일반적인 모습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생산 수단의 발전과 개선은 생산하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사람과 무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생산 수단의 변화 발전의 결과 다시 생산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사람도 변화 발전하여 생산 경험, 노동 기량, 생산 수단을 이용하는 능력도 변화 발전하였다.

 

사회 생산력이 변화 발전하는 역사적 과정에 따라 인간의 생산관계, 그 경제적 관계도 변화 발전하였다.

 

역사에는 다섯 가지 기본적인 생산관계의 유형(원시 공동체,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사회주의)이 있다.

 

원시 공동체 생산관계의 기초는 생산 수단에 대한 사회적 소유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당시의 생산력 수준에 부합하는 것이다. 석기 도구와 이후의 활과 화살로는 인간이 개별적으로 자연의 힘과 맹수에 맞설 수 없었다. 인간은 숲에서 열매를 따고 물고기를 잡고 주거지를 마련하기 위해서 함께 일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굶어 죽거나 맹수나 이웃 부족의 희생물이 되었을 것이다. 공동 노동은 생산 수단과 생산물의 공동 소유로 이어졌다. 여기에서는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라는 개념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맹수를 방어하기 위해 사용되는 일부 생산 도구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착취도 없고 계급도 없었다.

 

노예제하에서 생산관계의 기초는 노예 소유주가 생산 수단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노예주는 또 생산자인 노예를 소유하고, 가축처럼 사고팔고 죽일 수도 있었다. 이러한 생산관계는 기본적으로 당시의 생산력에 조응한 것이다. 당시는 석기 대신에 철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때 목축과 농업이 없던 초라한 원시적 수렵 경제를 대신하여 목축업, 농업, 수공업이 나타나고 이러한 생산 분야 사이에 분업이 발생하였다. 개인이나 집단 간 생산물의 교환과 소수의 수중에 부가 축적될 가능성이 생겨났으며 실제로 소수자의 수중에 생산 수단이 축적되었다. 그러자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고 다수가 노예화할 가능성이 생겨났다. 여기서는 더 이상 생산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공동체적이며 자유로운 노동은 찾을 수 없다. 여기서는 일하지 않는 노예주에게 착취당하는 노예들의 강제 노동이 지배했다. 생산 수단과 생산물에 대한 공동 소유는 없어졌다. 공동 소유는 사적 소유로 대체되었다. 노예주는 문자 그대로 최초이자 제일의 사적 소유자로 등장했다.

 

부자와 가난한 자, 착취자와 피착취자, 완전한 권리를 가진 자와 권리가 없는 자, 이들 사이의 격렬한 계급 투쟁 ― 이것이 노예제의 상황이다.

 

봉건제하에서 생산관계의 기초는 봉건 영주가 생산 수단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봉건 영주는 생산자를 완전히 소유하지는 못한다. 봉건 영주는 농노를 사고팔 수는 있어도 죽일 수는 없었다. 봉건적 소유 외에 생산 수단에 대한 농민과 수공업자의 개인 소유가 존재했다. 이는 그들 자신의 노동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러한 생산관계는 기본적으로 당시의 생산력에 조응하는 것이다. 철의 제련과 가공의 추가적 향상, 철제 쟁기와 방직기의 보급, 농업, 채소 재배, 양조, 낙농 등의 가일층한 발전, 수공업 제작소 외에 공장제 수공업의 등장 ― 이것이 당시 생산력 수준의 특징이다.

 

새로운 생산력을 위해서는 생산자가 생산에서 어느 정도 주도성을 갖고 일할 의향이 있으며 일에 관심이 있어야 했다. 따라서 봉건 영주는 노동에 관심이 전혀 없고 주도권이 없는 노예를 포기하고 농노를 선호하였다. 농노는 자체 경제와 생산 수단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기 위해 그리고 수확물 중 일부를 영주에게 공물로 바치기 위해 필수적인 일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사적 소유는 더욱 발전한다. 착취는 노예제하에서만큼 가혹하지만 약간 완화된다.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의 계급 투쟁은 봉건제의 기본적 특징이다.

 

자본주의 체제 생산관계의 기초는 자본가가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생산자는 임금 노동자로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임금 노동자는 인격적으로 자유이다. 따라서 자본가는 임금 노동자를 죽이거나 사고팔 수 없다. 그러나 임금 노동자는 생산 수단이 없으므로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자기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지 않을 수 없다. 즉 착취의 멍에를 메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생산 수단에 대한 자본주의적 소유 외에도 농민과 소공업자의 사적 소유가 광범위하게 존재하였다. 이들은 더 이상 농노가 아니었으며 이들의 사유 재산은 개인 노동에 기반하고 있었다. 이들 개인 작업장 수공업과 공장제 수공업은 기계를 갖춘 대규모 작업장과 공장으로 대체되어 갔다. 농민의 조잡한 생산 도구로 경작되던 귀족 영지는 과학적 방식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농기계를 사용하는 대규모 자본주의 농장으로 변하였다.

 

새로운 생산력은 생산자들이 억압받고 무지한 농노보다는 좀 더 교육을 받아 똑똑해지기를 요구한다. 기계를 이해하고 정확히 다룰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농노의 속박에서 해방되고 기계를 제대로 다룰 수 있을 만큼 교육을 받은 임금 노동자를 선호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생산력을 엄청난 규모로 발전시킨 후 해결할 수 없는 모순에 빨려 들어간다. 자본주의는 점점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여 가격을 낮추고 경쟁을 심화시킨다. 다수의 중소 소유자는 파산하여 프롤레타리아트가 되어 그들의 구매력은 감소한다. 그 결과 생산된 상품은 팔리지 않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는 생산을 확장하고 수백만 노동자를 대규모 작업장과 공장에 집중시킨다. 이것은 생산 과정을 사회적으로 만들어 자체 기반을 파괴한다. 왜냐하면 생산 과정의 사회적 성격은 생산 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요구하지만 생산 수단은 여전히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는 생산 과정의 사회적 성격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생산력 수준과 생산관계의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은 과잉 생산의 주기적 공황으로 나타난다. 공황이 닥치면 자본가들은 지불 능력 있는 수요를 찾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주민 대중을 파산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가는 제품을 불태우고, 공산품을 파괴하고, 생산을 중단하고 생산력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 이때 수백만 인민은 일자리를 잃고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인민의 실업과 기아는 상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상품이 과잉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더 이상 사회의 생산력 수준에 적합하지 않고 사회의 생산력과 화해할 수 없는 모순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혁명을 잉태했음을 의미한다. 이 혁명은 생산 수단에 대한 기존의 자본주의적 소유를 사회주의적 소유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기본 특징이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 사이의 가장 첨예한 계급 투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쏘련에서만 실현되고 있는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생산관계의 기초는 사회적 소유이다. 여기에서는 더 이상 착취자와 피착취자는 없다. 생산물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원칙 아래 노동에 따라 분배된다. 생산 과정에서 사람들 사이의 상호 관계는 동지적 협력과 착취에서 해방된 노동자들의 사회주의적 상호 지원으로 특징지어진다. 여기에서는 생산관계가 생산력 수준과 완전히 일치한다. 왜냐하면 생산 과정의 사회적 성격은 생산 수단의 사회적 소유에 의해 강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쏘련의 사회주의적 생산은 과잉 생산의 주기적 공황과 그와 관련된 터무니없는 현상도 없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생산력이 급속도로 발전한다. 왜냐하면 생산력에 적합한 생산관계가 그러한 발전을 위한 충분히 넓은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생산관계가 발전하는 장면이다.

 

이것이 바로 생산관계의 발전이 사회의 생산력 발전, 특히 생산 도구의 발전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존성 때문에 생산력의 변화 발전은 조만간 그에 상응하는 생산관계의 변화 발전을 일으킨다.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동 도구의 제작과 사용은 동물의 일부 종에게도 맹아적으로 존재하지만 인간 노동 과정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래서 프랭클린은 인간을 도구를 만드는 동물이라고 정의하였다. 멸망한 사회 경제 구성체를 판단하는 데 있어 노동 도구 유물의 중요성은 멸종한 동물 종을 확인하는 데 있어 화석 뼈의 중요성과 같다. 무엇을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생산하느냐가 경제 시대를 구분한다. 노동 도구는 인간 노동이 획득한 발전의 기준일 뿐만 아니라 노동이 수행되는 사회적 상황의 지표이기도 하다. (맑스, ≪자본론≫ 제1권, 1935, p. 121.)

 

그리고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회적 관계는 생산력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새로운 생산력을 획득하게 되면 생산 방식을 바꾼다. 생산 방식을 바꾸면 생계를 꾸리는 방식도 바꾸고 모든 사회적 관계도 바뀐다. 맷돌은 봉건 영주가 이끄는 사회를 만들고, 증기 제분기는 산업 자본가가 이끄는 사회를 만든다. (맑스ㆍ엥엘스, 제5권, p. 364.)

 

생산력의 증가, 사회적 관계의 파괴, 관념의 형성은 모두 끊임없이 변한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운동 변화의 추상적 개념뿐이다. (같은 곳.)

 

엥엘스는 ≪공산당 선언≫[의 독일어판 서문]에서 역사적 유물론을 정식화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역사적 시대의 경제적 생산과 그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회 구조는 그 시대의 정치적 지적 역사를 이루는 근간이다. 그러므로 토지의 원시적 공동 소유가 해체된 이래로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 즉 각이한 사회 발전 단계에서의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의 투쟁,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투쟁의 역사였다. 그러나 이 투쟁은 새로운 단계에 도달했다. 이는 피착취, 피억압계급(프롤레타리아트)이 사회 전체를 착취와 억압 그리고 계급 투쟁으로부터 해방시키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계급(부르주아지)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없는 그러한 단계이다. (≪공산당 선언≫ 독일어판에 대한 엥엘스의 서문.)

 

(ㄹ) 생산의 세 번째 특징은 새로운 생산력과 그에 상응하는 생산관계의 발생은 낡은 체제와 분리되어 낡은 체제가 소멸된 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낡은 체제 안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간의 의도적 의식적 활동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의지와는 독립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이다. 자연적이고 인간의 의지와 독립적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인간은 하나의 생산 양식이나 다른 생산 양식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모든 새로운 세대가 삶을 시작할 때 이미 존재하는 생산력과 생산관계, 즉 이전 세대가 노동한 결과와 마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세대는 초기에 생산 영역에서 접하는 이미 만들어진 모든 것을 수용하고 이에 적응해야 물질적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

 

둘째, 인간은 이런저런 생산 도구와 생산력 요소를 개선할 때 이러한 개선의 사회적 결과를 깨닫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며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들의 노동을 덜어 주며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일상적인 이익만을 얻고자 하였다.

 

원시 공동체 사회의 일부 구성원이 암중모색하며 석기 사용에서 철기 사용으로 점차 넘어갈 때, 그들은 물론 이 혁신이 어떠한 사회적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알지 못했으며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석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것이 생산에서 혁신을 의미하며, 장기적으로 노예 체제로 이어질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깨닫지도 못했다. 그들은 단순히 노동을 줄이고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이익을 얻으려 하였다. 그들의 의식적 활동은 일상적인 개인적 이익의 좁은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었다.

 

봉건 시대 유럽의 신흥 부르주아지가 소규모 길드 작업장과 함께 대규모 수공업 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하여 사회의 생산력을 발전시켰을 때, 그들은 이 혁신이 가져올 사회적 결과를 알지 못했고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 “자그마한” 혁신으로 사회 세력이 재편성되고 결국 혁명으로 끝날 줄은 깨닫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이 혁명은 그들이 그렇게도 높이 평가했던 왕의 권세와 자신들의 최고 대표자들이 종종 동경했던 귀족 둘 다에 반대하였다. 부르주아지는 단순히 상품 생산을 싸게 하며 더 많은 상품을 아시아와 최근에 발견된 아메리카 시장에 출시하여 더 많은 이윤을 남기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들의 의식적 활동은 이 일상적이고 실용적 목표의 좁은 범위 내에 제한되어 있었다.

 

러시아 자본가들이 외국 자본가와 결탁하여 러시아에 현대적 대규모 기계 공업을 정력적으로 이식하면서도 짜르 체제는 그대로 두고 농민들을 지주의 부드러운 자비나 바라도록 내버려 두었다. 당시 그들은 물론 생산력의 이 거대한 확장이 야기할 사회적 결과를 알지 못했고 깊이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사회 생산력 영역에서 이러한 큰 도약은 사회 세력의 재편을 야기했고 프롤레타리아트는 농민과 연합하여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를 가져왔다. 자본가들은 단지 공업 생산을 한계까지 확장하고, 거대한 내수 시장을 장악하고 독점자본가가 되어 국민 경제에서 가능한 많은 이윤을 짜내려고 하였을 뿐이다. 그들의 의식적 활동은 일상적이고 순전히 실용적 이익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자기의 삶을 사회적으로 생산하는 데 있어서(즉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물질적 가치를 생산하는 데 있어서―쓰딸린) 불가피하며 자신의 의지와는 독립적인 일정한 관계, 즉 자신의 물질적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 상응하는 생산관계에 들어간다. (맑스, ≪선집≫ 제1권, p. 269.)

 

그러나 이것은 생산관계의 변화, 즉 낡은 생산관계에서 새로운 생산관계로의 이행이 갈등도 격변도 없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대로 이러한 이행은 보통 낡은 생산관계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새로운 생산관계를 수립하는 것에 의해 일어난다. 어떤 기간까지 생산력의 발전과 생산관계 분야에서의 변화는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연 발생적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어떤 순간, 즉 새롭게 발전하는 생산력이 충분히 성숙 상태에 이르는 순간까지만이다. 새로운 생산력이 성숙된 후에는 현존하는 생산관계와 이 생산관계를 지지하는 지배계급은 [자체로]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 된다. 이 장애물은 새로운 계급의 의식적 활동, 이 계급의 물리적 행동, 혁명에 의해서만 제거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새로운 사회사상, 새로운 정치 제도, 새로운 정치권력의 엄청난 역할이 특히 눈에 띈다. 이들의 사명은 낡은 생산관계를 물리력으로 파괴하는 것이다. 새로운 생산력과 낡은 생산관계의 충돌로부터, 그리고 사회의 새로운 경제적 요구로부터 새로운 사회사상이 발생한다. 새로운 사상은 대중을 조직하고 결집시킨다. 대중은 새로운 정치적 군대로 뭉쳐, 새로운 혁명 정권을 수립한다. 혁명 정권은 생산관계의 낡은 체제를 물리력으로 폐지하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한다. 자연 발생적 발전은 인간의 의식적 활동에, 평화적 발전은 폭력적 격변에, 진화는 혁명에 자리를 내주는 것이다.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와 투쟁하는 동안 정세의 힘에 의해 스스로를 하나의 계급으로 조직할 수밖에 없다. … 그들은 혁명으로 스스로 지배계급으로 만들고, 지배계급으로서 낡은 생산관계를 무력으로 쓸어버린다. (≪공산당 선언≫, 1938, p. 52.)

 

나아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하여 부르주아지의 모든 자본을 단계적으로 빼앗고, 모든 생산 수단을 국가의 수중에, 즉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시킬 것이다. 그리하여 총체적 생산력을 가능한 빨리 증가시킬 것이다. (같은 책, p. 50.)

 

폭력은 모든 낡은 사회에서 새로운 사회를 낳는 산파이다. (≪자본론≫ 제1권, 1935, p. 603.)

 

다음은 맑스의 역사적 유물론의 본질에 관한 천재적 정식화이다. 이는 맑스가 1859년에 그의 유명한 저서 ≪정치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역사적 서문에서 제시한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삶을 사회적으로 생산하는 데 있어서 불가피하며 자신의 의지와는 독립적인 일정한 관계, 즉 자신의 물질적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 상응하는 생산관계에 들어간다. 이러한 생산관계의 총체는 사회의 경제 구조, 즉 현실의 토대가 된다. 이러한 토대 위에 법률적 정치적 상부 구조가 들어서고, 그에 상응하는 일정한 사회적 의식이 세워진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 양식이 일반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생활 과정을 좌우한다. 인간의 의식이 인간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이 일정 발전 단계에 이르면 그 안에서 지금까지 잘 작용해 왔던 기존의 생산관계 또는 소유관계(이는 생산관계의 법률적 표현에 불과하다)와 충돌하게 된다. 이 관계는 생산력의 발전 형태에서 생산력의 질곡으로 변한다. 바야흐로 사회 혁명의 시대가 도래한다. 경제적 토대의 변화에 따라 거대한 상부 구조 전체가 다소 빠르게 변한다. 이러한 변화를 고찰할 때 우리는 다음 두 가지를 구별해야 한다. 하나는 생산의 경제적 생산 조건의 물질적 변화이다. 이는 자연 과학으로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법적, 정치적, 종교적, 미학적 또는 철학적, 간단히 말해 이데올로기적 형태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형태로 인간은 갈등을 자각하고 투쟁에 나선다. 우리가 한 개인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의 자신에 대한 생각을 근거로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변혁의 시대도 그 시대의 의식에 의해 판단할 수 없다. 반대로 이 의식을 물질적 생활의 모순으로부터, 사회적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현존하는 충돌로부터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사회 질서도 생산력 발전의 여지가 있는 한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운 보다 높은 생산관계는 그 생존을 위한 물질적 조건이 낡은 사회의 태내에서 성숙할 때까지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류는 언제나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을 제기한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문제 자체는 그것을 해결할 물질적 조건이 이미 존재하거나 적어도 형성 과정에 있는 경우에만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맑스, ≪선집≫ 제1권, pp. 269-70.)

 

이것이 맑스주의 유물론을 사회생활과 사회 역사에 적용한 것이다.

 

이상이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의 주요 특징이다.

 

1938년 9월

노사과연

 

신재길 교육위원장

3개의 댓글

  • 전통적인 사적 유물론은 거시적인 제도적 구조와 그것들로 이루어진 체계 수준에서의 분석은 치밀하고 정교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회적 생활 전체를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고 보여집니다. 전통적인 맑스주의 사적 유물론에서는 제도적 구조로 환원되지 않는 일상생활적인 미시적 상호작용이라는 차원-우리의 삶에서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차원-을 거의 논급하지 않고, 따라서 저 차원을 다룰 적절한 개념틀이 없습니다. 맑스주의자들이 앞으로 연구해야할 주제이자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맑스주의보다, 일상적 미시상호작용 분석에서 강세를 지니고 있는 철학은 현상학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사적 유물론이 변증법적 유물론이 사회역사 부문에 적용된 것이다 라고 스탈린은 적고 있는데, 저는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봅니다. ‘적용’이라고 하면, 외부에서 사태를 연구하는 자가 유물론의 보편적 원리를 미리 가지고 있다가 연구되어야할 사태에 외적으로 그 원리들과 개념틀을 부과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이것은 두 가지 점에서 잘못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 레닌의 가르침에 따르면, 유물론은 사태의 선차성을 인정하는 입장이며, 구체적 사태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미리 준비된 제범주들을 인식주관이 사태에 외적으로 적용해버리면, 이것은 유물론, 레닌의 유물론의 원리에 어긋납니다.

      2. 보편성과 특수성은 항상 불가분리적으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맑스주의자라면 모두 인정할겁니다. 그런데, ‘적용’이라는 술어는 유물론의 보편원리가 특수한 사태와 일단은 동떨어져 있다가, 결합되는 듯한, 그것도 외적 주관에 의해 결합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저는 이것은 스탈린의 오류라고 봅니다.

  • 변증법은 항상 사태의 동태적 전개과정에-사태의 선차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주의를 기울이고 사태 자체에서 어떠한 일이 움터나오는지를 전면적으로 고찰해야합니다. 자기 전개해나가면서 점차 풍부해지고 매개가 복잡해지는 물질적 총체성이 일차적이고 이 총체성은 여러 특수한 부분적 계기들로 분화되어 있으며, 그것들 속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의 보편원리는 혼탁함없는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자신을 관철시킵니다. 그러므로 유물변증법의 보편적인 존재론적 원리는 특수성과 상호침투하며 얽히고 설켜있으며, 이것(특수성)에 내재적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스탈린의 ‘적용 테제’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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