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자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 민족분단의 고착화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 2000년 6ㆍ15 남북 공동선언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 사례를 중심으로

 

이병진 | 편집위원

 

* 이 글은, <사월혁명회>에서 발행하는 ≪사월혁명회보≫ 제134호(2021. 7.)에 “국가보안법 없는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1. 시작 글

 

국가보안법은 1948년 12월 1일 일본의 치안유지법과 보안법을 토대로 제정되었다. 1945년 미군정 지배 아래에서 친일 잔재 청산 요구와 사회주의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좌-우 이념 대립이 있었고 그런 가운데 건국 초기 친미, 친일-지배계급은 국가보안법을 악용하여 그들의 정치적 경쟁자들을 제거하였다.[1]1945년 해방 이후 분단 상황에서 미국 제국주의 지배 세력은 사회주의 세력을 배제하는 정부를 수립하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적산불하 과정에서의 … Continue reading 이후에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 독재 정권은 정권 안보와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국가보안법을 악용하였다.[2]박원순은 국가보안법의 역사와 오남용 그리고 폐지에 대해서 비판적 연구를 하였다. 그는 국가보안법의 역사와 악용 사례들, 그리고 폐지의 필요성을 … Continue reading 그 결과 2004년 8월 23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였고,[3]국가인권위원회, “[보도자료] 국가인권위, 국회의장과 법무부장관에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 2004. 8. 24.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4대 입법개혁 과제의 하나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공약하였다. 2004년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가 결성되어 시민사회 진영에서도 국가보안법폐지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을 만든 초기 국가보안법의 표적은 좌익 사회주의 계열이었지만, 4ㆍ19 혁명과 군부 독재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 핵심은 반공을 내세워 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남쪽의 진보적인 정치 세력들을 북과 연계시켜 민주주의 운동을 탄압하는 국가 폭력이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남ㆍ북 사이의 불신과 대결을 조장하면서 남ㆍ북 화해를 부정하고, 노동자들의 정당한 정치 세력화와 조직화를 좌경ㆍ용공 활동으로 몰아 정치사상의 자유를 빼앗아 갔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은 반민주 악법으로서 국가 폭력의 최고 결정체이다. 그것은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가보안법으로 수많은 민주 인사들이 사형되거나 정치적으로 숙청된 역사적 진실들에서 확인되고, 입증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4년에 역사적으로 국가보안법이 “그 법률의 자의적 적용으로 인한 인권 침해 역사”였고, “법 규정 자체의 인권 침해 소지로 인해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켜 온” 이유로 폐지를 권고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질 때부터 “절차적 정당성” 없이 “죄형법정주의에 위배”하여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인간의 존엄성을 해할 소지”가 많으며 “국제 사회의 여론 결정을 수용할 필요가 있고”[4]국제인권조약, 특히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 지속해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 (김기남, “참을 만큼 참은 유엔 “국가보안법 7조 … Continue reading, “시대적 환경 변화에 부응하는 자세로 북한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였다.

2000년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6ㆍ15 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남ㆍ북 관계는 결정적인 변화의 국면을 맞았다. 남과 북의 최고 지도자들이 만나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우리민족끼리” 평화롭고 통일된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2007년 10ㆍ4 남북 정상 선언 그리고 2018년 4ㆍ27 판문점 선언에 이르기까지 남과 북의 최고 지도자들이 적대적인 남북 관계의 정상화를 위하여 노력했지만,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지는 못했다. 여전히 한반도는 1953년 정전협정 상태다.

이 글은 국가인권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왜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적 탐구를 위해서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 이후 인 2005년경부터 국가보안법의 사례들을 실증적으로 분석한다. 이 글의 연구 가설은 국가보안법이 이북을 반국가단체로 특정하기 때문에 남북 관계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번영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남의 기득권 세력이 국가보안법 폐지에 미온적인 이유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 얻는 이익보다는 북을 적대시함으로써, 체제 유지와 정권 안보에 대한 편익이 크기 때문에 굳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싶지 않다는 예비 결론을 도출하였다. 남한의 단독 정부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던 미국 제국주의 지배 세력 역시 국가보안법 폐지에 따른 친미 세력의 약화에 대한 정치적 부담 때문에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서 적극적이지 않은 점도 중요한 정치적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이 글이 시사하는 바는 2000년 남북 관계의 변화가 생겼지만,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는 이유는 ‘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를 넘어서서 국가보안법이 남쪽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와 안정을 유지하는 폭력적 수단이라는 것이고 그래서 인권 침해와 정치적 오ㆍ남용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폐지되지 않고 있다는 정치적 성격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국가보안법 폐지는 법리와 인권 침해 해소라는 시민사회 운동을 넘어서서 정치적 운동을 수반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글에서는 국가보안법의 반민주성과 반인권적 속성뿐만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폭력성과 야만성을 보게 된다.

 

 

2. 2000년 이후 국가보안법 사건들의 추이와 그 특징

 

법무부에 따르면 1948년에서 1986년 사이 국가보안법으로 230명이 사형당했다.[5]Amnesty International, ≪안보의 이름으로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제약하다≫(Index Number: ASA 25/006/2012), 2012. 12. 28., p. 16. [표1]은 1961년부터 2017년 사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사람들을 보여 준다. 1961년부터 1980년 사이 국가보안법으로 검거된 인원이 1,968명이었고 반공법으로 검거된 인원은 4,167명이었다. 1980년부터 1987년까지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으로 기소된 인원은 1,759명이었다. 제6공화국이 출범한 직후 1988년부터 1992년 사이에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으로 기소된 인원은 1,519명이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부터 1998년 사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인원은 1,989명이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부터 2003년 사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인원은 1,058명이었다. 노무현 정부(2003년-2008년) 시기에는 469명이 기소되었으며, 이명박 정부(2008년-2013년) 때는 402명이 기소되었고, 박근혜 정부(2013년-2017년) 시기에는 350명이 기소되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면서 국가보안법 사건이 큰 폭으로 줄었다.

 

시기

기소된 인원()

1961년-1980년[6]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국가보안법 적용에서 나타난 인권 실태≫(2003년도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 보고서), 2004. 2., p. 23.

국가보안법 위반(1,968명)

반공법 위반(4,167명)

1980년-1987년[7]같은 책, p. 30.

국가보안법 위반(1,535명)

반공법 위반(224명)

1988년-1992년[8]같은 책, p. 36.

국가보안법 위반(1,519명)

1993년-1997년[9]같은 책, p. 44.

국가보안법 위반(1,989명)

1998년-2003년[10]같은 책, p. 66.

국가보안법 위반(1,058명)

2004년-2008년

국가보안법 위반(469명)

2009년-2013년

국가보안법 위반(402명)

2014년-2017년

국가보안법 위반(350명)

[표1] 1961년-2017년 사이 국가보안법 구속자 수

출처: 2004-2017년 자료는, 위키백과 “국가보안법(대한민국)”에서 인용(http://ko.wikipedia.org 검색일: 2021년 7월).

 

[그림1]은 2000년부터 2011년 사이 매년 국가보안법 수사 현황을 보여 준다. [그림1]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가보안법 폐지 여론이 놓았던 2004년부터 2009년 사이에는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 이것은 2000년 6ㆍ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남북 관계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면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그런데 국가보안법 사건의 추이를 보면 중요한 두 가지의 변화가 관찰된다. 첫째는 국가보안법 사건 위반자들이 2004년을 기점으로 큰 폭으로 줄어들다가 2008년경부터 다시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둘째는 2007년 이후부터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국가보안법 7조(고무ㆍ찬양)가 차지하는 비중에서 커졌다. 그러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는데, 사이버 환경에서 국가보안법 7조 위반이 크게 늘었다. 이런 현상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나타난 특징이다. 여기서는 이런 흐름의 변화에 주목하여 김대중ㆍ노무현 시기의 국가보안법과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국가보안법의 특징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그림1] 2000년-2011년 국가보안법 위반 현황 (단위: 건)
출처: 경찰청(송경화 기자, “‘종북척결’ 앞세워 인터넷 샅샅이…보압법 기소 85%가 ‘찬양ㆍ고무’”, ≪한겨레≫, 2011. 11. 28.에서 재인용.)

 

1)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시기: 통제와 개입의 폭력 기제로서 국가보안법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 세력들의 파상 공격으로 ‘IMF 국가부도 사태’라는 상황에서 정권을 인수하였다. 세계 초국적 자본가들의 탐욕적 투기자본의 교란과 압박으로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는 노동시장 유연화와 자본시장 개방을 강제당하면서 사회경제적 위기가 증폭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에 충실히 순응하면서 구조조정을 통해 대규모로 비정규직을 양산하였다. 김대중 정부는 노동자계급의 정치 세력화를 통제하고 제어하기 위하여 기존의 통치 방식과 달리 남북 관계 긴장을 완화하여 세련된 방식으로 지배하였다. 자주ㆍ민주ㆍ통일 운동 진영 일부를 체제 내에 포섭하여 자본주의 체제의 고도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모순의 저항을 통일 운동 진영과 노동 운동 진영을 갈라치게 하였다. 이런 “분리 지배(divide and rule)”[11]영국 제국주의 지배 세력은 힌두와 이슬람을 종교로 갈라치는 “분리와 지배(divide and rule)” 전략을 통해서 식민 지배를 공고히 하였다. 그 결과 … Continue reading 전략은 저항 운동을 분산시켜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었다. 이와 같은 계급적 이해관계 때문에 김대중 정부는 북을 인정하면서도 인정하지 않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 정책은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포용’으로 포장하였지만, 정부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청년학생들의 자주ㆍ민주ㆍ통일 운동에 대해서는 반국가단체와 내통한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7조를 가지고 탄압하였다.

[표2]는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사람들이 무슨 내용으로 기소되었는지 정리한 것이다. [표2]를 보면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된 대부분 사람이 국가보안법 7조로 구속되었다. 이런 사실은 김대중 정부가 남북 관계를 대결과 긴장에서 화해와 포용 정책으로 바꾸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정권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국가보안법으로 대중들의 자발적인 통일 운동을 탄압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2001년과 2002년 사이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의 적용 법률이 대부분 7조5항(이적표현물), 7조3항(이적단체), 7조1항(고무ㆍ찬양)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김대중 정부는 6ㆍ15 공동선언으로 남북 관계에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면서도 여전히 북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북에 대해서 순수하게 객관적으로 보려는 흐름을 강력히 제어하였다.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 학문ㆍ예술의 자유를 부정하는 인권 침해를 내포하는 국가 폭력의 결정체임을 명확히 보여 주는 것이다.

 

내용

연도

7조5항

(이적표현물)

7조3항

(이적단체)

7조1항

(고무ㆍ찬양)

3조

(반국가단체)

6조

(잠입ㆍ탈출)

8조

(회합ㆍ통신)

합계

01년

(인원)

13명

92명

1명

1명

7명

4명

118명

02년

(인원)

20명

100명

2명

1명

1명

2명

126명

[표2] 2001-2002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사람들에게 적용된 위반 내용 현황
출처: 민가협, ≪국가보안법 적용에서 나타난 인권 실태≫
(2003년도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 보고서), 2004. 2., pp. 90-91.

 

2000년 6ㆍ15 공동선언으로 남북 관계를 공식적인 당국자 사이의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 열렸다. 2004년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의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되었고 당국의 규제와 통제를 받는 제한적인 남북 교류가 열리었다. 이처럼 남북 사이에 서로 왕래하면서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되는 사례가 크게 줄었다. [그림1]에서도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이 존재함으로써 남북 관계에 근본적인 질적 변화를 이끌 수는 없었다. 특히 김대중 정부도 이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한총련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탄압하였다. [표3]은 2002년 한 해 동안 국가보안법 사건을 항목별로 분석한 표이다. [표3]을 보면 2002년 한 해 동안 국가보안법 사건 127건 가운데 한총련 관련 사건이 90건으로 71퍼센트(%)를 차지한다. 남북 관계에 새로운 국면이 열린 2000년대였지만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진취적인 학생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폭력 기제로 작동하였다.

2000년 6ㆍ15 공동선언 이후 남북 관계의 빗장이 풀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국가보안법 사건의 관점에서 보면 남북 관계는 여전히 적대 관계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것은 남북 관계의 급진적인 발전이 한미 관계와 한미 군사동맹 체제를 흔들 수 있다는 미국의 정치적 입장의 반영이기도 하다.[12]남북 관계를 적대 관계에서 협력 관계로 바꾸려는 김대중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극도로 불신하였다. 노무현 정부의 윤영관 … Continue reading 이 지점이 미국 제국주의 지배 세력이 국가보안법 폐지에 소극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남쪽의 청년학생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면서 주한미국 철수와 한미 동맹 해체를 주장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보안법 폐지와 한미 군사동맹 관계 해체가 동전의 앞뒤처럼 맞물리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목소리가 북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적 행위’가 되고 처벌받았다. 이런 사실을 통해서 국가보안법은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분단 기득권 세력의 체제 안보를 위한 폭력적 기제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건명

인원

기소 내용

재판 결과

판결내용

한총련 대의원

90명

이적단체 가입

(7조3항)

1심 집유 85명

2심 집유 4명, 실형 1명

이적단체

이적표현물 사건

15명

이적표현물

(7조5항)

집유 10명,

실형 4명

(2심 집유 3명,

형확정 1명)

이적표현물

국제사회주의자들 유인물 사건

3명

이적표현물

집유 3명

이적표현물

찬양ㆍ고무 동조 사건

2명

찬양, 동조

집유 1명,

실형 1명

 

한청 사건

3명

이적단체

보석

 

자주대오 관련 사건

4명

이적단체

가입

집유 3명

이적단체가입

범청학련 사건

2명

이적단체 가입, 회합ㆍ통신

집유 1명,

실형 1명

이적단체, 회합ㆍ통신

범청학련 후원회 사건

3명

이적단체, 이적표현물, 편의제공

집유 2명

이적표현물

민혁당 사건

1명

반국가단체

실형 1명

반국가단체

가입

회합ㆍ통신 사건

1명

회합ㆍ통신(8조)

집유 1명

회합ㆍ통신

21세기 진보학생연합

1명

이적단체

항소심 선고유예

이적단체가입

진보의련 사건

2명

이적단체

1심 집행유예

이적단체구성

민족해방군 사건

1명

이적단체

2심 집유

이적단체가입

[표3] 2002년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재판 결과
출처: 민가협, ≪국가보안법 적용에서 나타난 인권 실태≫
(2003년도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 보고서), 2004. 2., p. 95.

 

2) 이명박ㆍ박근혜 정권에서 국가보안법: 종북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정권 안보를 강제하는 폭력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처음으로 여당에서 야당으로의 수평적인 정권 교체로 인해, 기존의 수구 보수 기득권층의 불안감과 불만이 높았다. 특히 공안 세력들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불안감과 불만이 컸다.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 시절에 정보기관에 납치되어 죽을 위기까지 겪었다. 그만큼 정보기관의 불법적인 정치 공작의 폐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대중들 역시 군사 파쇼 통치 시기에 공안 통치 기관이 국가 안보를 핑계로 야당 정치인을 탄압하고 정치 공작을 벌인 사실들을 잘 알고 있었기 정보기관에 대한 개혁 요구가 컸다. 그런 정치적 상황은 공안 세력들에게 상당한 위기의식을 주었다. 김대중 정부는 정보기관의 국정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서 국가안전기획부를 국가정보원으로 바꾸었다. 국가안전기획부의 인력도 대폭 줄였다.[13]국정원 강제퇴직자 모임(‘국정원을 사랑하는 모임’)의 송영인 대표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직후 1998년 4월 1일 서기관급 이상 국정원 직원 … Continue reading 노무현 정부에서도 국정원의 기능과 역할은 축소되었다.[14]국가정보원에서 군 정보당국 실무자였던 유 모 씨는 “노무현 정부 때까지 계속 20% 정도씩 줄였다. 김만복 위원장 때는 예산이 거의 반 토막 났다. … Continue reading 국가정보기관의 예산과 조직 축소는 시대적 요구의 반영이었다. 지난 시기 국가보안법 사건들 대부분이 정권 안보를 위한 고문과 조작에 의한 정치 공작이었다. 그런 활동들이 국가 안보라는 허울을 쓰고 집행되었다. 군사 독재 정권은 그런 비합법적인 수단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정권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정통성이 취약하였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선출된 정부였기 때문에, 정권을 지키기 위해서 정보기관을 이용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기존 정부에 비교해서 줄었다.[15]초대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 씨는 중앙정보부가 광범위하게 국내 정치에 개입하고 정당도 만들고 선거에 개입하고 공천 작업도 주도하였다고 … Continue reading

노무현 정부에서 공안 기구의 축소가 집행되자 2006년 12월 공안 기관은 6ㆍ15 공동선언 이후 최대의 간첩 조직을 적발하였다며 소위 “일심회”라는 가상의 반국가단체를 조작해서 대규모 간첩단 사건을 만들었다. 그러나 재판 결과 이적단체 구성은 무혐의로 밝혀졌다. 당시 정황상 대규모 간첩단 사건을 조작하여 공안 기관의 입지를 세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16]김승규 당시 국정원장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청와대 참모들은 간첩 수사를 하면 북한을 자극해 화해 무드를 깰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 Continue reading

세계 경제 공황에 따른 한국의 경제 위기가 불어닥치자 대중들의 경제 발전에 대한 기대감을 얻고 건설회사 사장 출신이었던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대기업과 독점자본가들의 이해관계를 충실하게 따르면서 친기업과 친시장주의로 거침없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미국산 수입 소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시민 진영과 갈등하였다. 자본의 이윤에 충실히 따르는 이명박이 시민들의 건강권을 무시하고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미국산 수입 소고기를 허용하자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촛불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대통령 이명박 씨는 광화문에서 시민들이 부르는 ‘아침이슬’을 들으면서 시민들의 저항을 까부수기 위한 정권 차원의 공작을 요구하였다.[17]자이미, “JTBC 뉴스룸―이명박의 ‘아침이슬’ 그 후, 댓글 부대와 대남 선전전”, Mediaus, 2017. 9. 27. 이명박 정부는 국가정보원과 국방부를 이용해 심리전단을 만들었다. 이들은 남북 화해의 기운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대북 적대심을 고취하였다. 이들은 소위 댓글 부대를 만들어서 시민들의 정부 비판 활동을 ‘친북’ 또는 ‘종북’ 활동으로 몰아 탄압하였다. 그들은 국가보안법을 이용하여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려고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 무소불위의 폭력을 마구 휘둘렀다.[18]박사라 기자, “‘블랙리스트’ 연예인들, 검찰에 이명박ㆍ원세훈ㆍ박근혜 등 고소”, ≪중앙일보≫, 2017. 9. 25. 이 과정에서 9천 명에 달하는 예술인과 340여 개 단체가 피해를 봤다.[19]이웅 기자, “‘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2년여 대장정 마무리”, ≪연합뉴스≫, 2018. 12. 31.

2000년 6ㆍ15 남북공동 선언 이후 남북 사이에 자유로운 왕래가 빈번해지자 북에 궁금증이 커지고 그런 대중들이 북에 대해서 인터넷 카페 등에 자유롭게 의견을 올리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공안 당국은 그런 활동들조차 탄압의 표적으로 삼았다. 이것은 단순히 대중들의 ‘종북’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것뿐만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활발하게 형성되는 시민들의 공론장을 위축시키고 검열시키는 정치적 목표가 있었다.

[그림1]을 보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08년부터 사이버 사범이 크게 늘었다. [표4]를 보면 2011년 공안 당국이 얼마나 철저히 인터넷망을 감시하고 인터넷상에서의 인민 대중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까지 통제하려 했는지 알 수 있다.

 

카페명

회원 수(포털)

개설

정론직필

1,600명(다음)

2011년 2월

민족통일을 바라는 사람들

1,000명(다음)

2010년 12월

사이버 민족방위사령부

최대 1만2천 명(다음)

2002년 2월

최대 7천 명(네이버)

2007년 8월

자주독립통일민중연대

330명(다음)

2011년 9월

120명(네이버)

2010년 12월

통일파랑새

1,400명(다음)

2005년 12월

세계물흙길연맹

최대 560명(다음)

2003년 3월

서프라이즈 국제방

비회원제(개방운영)

 

[표4] 2011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공안 당국의 수사를 받았던 인터넷 카페
출처: 송경화 기자, “최대 통일카페 ‘사방사’…위장가입도 많아”, ≪한겨레≫, 2011. 11. 28.

 

물론, 공안 기관이 대중의 정치적 공론장을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속성은 이명박 정부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 역시 집권 5년 동안 국가보안법 사건 1,058건 가운데 971건(92%)이 7조(고무ㆍ찬양)였다.[20]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앞의 책, p. 67. 다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 특이하게도 7조(고무ㆍ찬양) 죄를 온라인 공간까지 확대 적용하여 가상 공간까지도 탄압의 족쇄를 채웠다.

이런 공안 기관의 목표는 전 국민을 상대로 정치ㆍ사상의 표현을 옥죄고 자기 검열을 하게 하려는 신공안 정국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런 정권 안보를 위해서 국가보안법은 매우 좋은 폭력 수단으로 그 진가를 발휘하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국가보안법은 정권 안보를 위한 여론 조작 도구로 이용되었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이명박 씨 관련 크고 작은 사건들을 처리하며 승승장구하여 검찰총장으로 지명된 한상대 검찰총장은 취임하면서 종북 좌익 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이것은 대중을 폭력적으로 다스리는 데 국가보안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선포한 것이다.[21]조호진, “한상대 ‘종북 좌익세력과 전쟁’”, ≪조선일보≫, 2011. 8. 12.

한동안 감소세를 보이던 국가보안법 사건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갑자기 늘어났다. [그림1]을 보면, 국가보안법으로 입건된 사건이 2008년 40건(이 가운데 기소된 사건이 16건)에서 2010년에는 입건된 사건이 151건(이 가운데 기소된 사건은 32건)으로 증가하였다. [그림1]을 보면 실제로 기소까지 이루어진 비율로 본다면 두 배로 늘어났지만 입건된 사건 수를 기준으로 본다면 거의 4배 수준으로 증가하였다. 또한 입건 사건들과 비교해서 실제 기소까지 간 경우가 훨씬 작은데, 이런 사실은 기소조차 할 수 없는 부실한 증거를 가지고 마구잡이로 국가보안법 수사를 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그만큼 국가보안법을 가지고 정권 안보 차원에서 악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국제 앰네스티도 이명박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정권 안보 수단으로 악용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한다.[22]Amnesty International, Policing the candlelight protests in South Korea(Index Number: ASA 25/008/2008), 2008. 10. 6. 국제 앰네스티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대다수의 국가보안법 사건은 2008년 촛불 집회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국가보안법은 반체제 인사를 침묵시키거나 의사ㆍ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평화로이 행사하려는 개인과 시민 단체를 괴롭히고 자의적으로 기소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수사 당국은 국가보안법을 이용해 공공의 토론의 장을 축소시켜 왔다. 국가보안법의 조항은 온라인 공간을 제한하는 검열의 한 형태로 사용되어 왔다. 국가보안법은 정부 입장 혹은 정책을 반대하는 견해를 알리는 표현물을 발간 배포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데도 이용됐다. 국가보안법은 확립된 정치적 관점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사람을 제거하거나 북한 관련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막는 데 사용되었다.[23]Amnesty International, ≪안보의 이름으로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제약하다≫(Index Number: ASA 25/006/2012), 2012. 12. 28., p. 21.

 

이처럼 국제 앰네스티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국가보안법은 안보의 이름으로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제약한다고 비판하였다. [표5]는 국제 앰네스티가 제출한 국가보안법의 피해 사례들이다. [표5]에서 김명수 씨와 오세철 교수, 박정근 씨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연구소 사건 사례를 보면 국가보안법이 어떻게 정치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날것으로 입증된다. 참여연대 사건은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사건인데, 정부의 정책에 비판적인 의견을 국제기구에 제출했다는 이유만으로 적을 이롭게 한다는 명목으로 국가보안법의 철퇴를 휘둘렀다.[24]필자도 2009년 9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8년의 옥고를 치렀는데, 수사 기록에는 민주평통 자문위원 자격으로 미국 휴스턴에 가서 이명박 … Continue reading 또 다른 사례는 헌법재판소가 불법적이라고 도청과 감청은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판결을 내렸는데도 그런 불법적인 도청과 감청으로 확보한 증거를 가지고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가 인정되었다. 불법적인 도ㆍ감청을 하여 마구잡이식 끼워 맞추기식 수사를 하였음에도 기소가 되고 유죄가 인정되는 반헌법적인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피의자들의 인권 침해 사례도 있는데 왕재산 사건의 경우, 피의자들이 묵비권을 행사하자 그런 정당한 권리마저 정보기관이 폭력적으로 짓밟았다. 김은혜 씨 사건의 경우 노무현 정부 때 합법적으로 방북 승인을 받고 북에 다녀왔는데도, 정권이 바뀐 후 이명박 정보기관에 의해서 그런 행위조차 얼마든지 간첩 사건으로 조작되어 기소되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합법적인 방북 승인을 받아 방북하여도 정권의 이해와 필요에 따라서 방북 사실이 얼마든지 조작되고 왜곡되어 간첩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실증적인 사건이었다. 정보기관의 마구잡이식 구속과 재판 회부는 대중에게 불안감과 북에 대해서 자기 검열을 하게 하였다. 정치적으로는 정부에 대해서 비판적인 의사 표현과 활동만으로도 종북으로 몰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정치적 피해 의식을 주어 정치적 의사 표현에 재갈을 물리는 정치적 효과도 만들었다. 바로 그와 같은 정치적 목표를 위해서 이명박 정부에서는 간첩 사건을 조작하여 대북 적대감을 고취시킬 정치적 목표가 있었다. 이것은 국가보안법을 가지고 무리하게 간첩 사건들을 조작하는 정치적 요인이었다.

 

시기

피의자

사건 내용

2007년 5월 3일[25]김미향 기자, “보안법 6년 싸움에 찢긴 ‘학자의 꿈’”, ≪한겨레≫, 2014. 2. 17.

김명수, 국가보안법 제7조 5항 위반 혐의로 기소

국가보안법 적용으로 ‘불온’서적 판매를 처벌하고 학문의 자유를 부정

2008년 8월 26일

사회주의노동자연합 결성자인 오세철 교수를 포함해 소속 활동가 7명을 국가보안법 제3조(반국가단체 구성 등)와 제7조(찬양ㆍ고무) 위반 혐의로 체포함.

평화로이 결사의 자유를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조사, 기소, 처벌

2009년 5월 7일

이규재(73세,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이경원(43세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 최은아(37세, 범민련 남측본부 선전위원장) 국가보안법 제3조-10조 위반 혐의로 체포함.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수단을 통해 모은 증거에 기초해 유죄판결

2009년 7월 30일

김은혜, 2004년 북을 합법적으로 방문했는데, 당시 한총련 간부였다고 간첩 혐의로 체포됨.

이전 정권의 공식적 허락으로 북한을 방문한 이유로 국가보안법 하에 간첩으로 처벌받음.

2010년 6월 16일

참여연대가 유엔 안보리의 15개 이사국에 천안함 사건 관련 공개서한과 보고서를 발송했다는 이유로 간사들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 착수

국제적으로 정부를 비판한 것에 대해 국가보안법 적용

2011년 3월 21일

자본주의 사회연구회 소속 최호현(38세), 최**(24세) 국가보안법 제7조(고무ㆍ찬양)의 이적단체 구성으로 체포함.

자의적으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부정하고 학술 토론을 위축

2011년 8월 23일

왕재산 사건, 반국가단체 및 간첩 활동으로 다섯 명을 기소함.

심문 과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당한 피의자들

2011년 9월

박정근, 인터넷에 북 웹사이트의 내용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것으로 7조 위반으로 기소됨.

인터넷 풍자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적용

[표5] 국제 앰네스티가 보고한 국가보안법 악용 사례
출처: Amnesty International, ≪안보의 이름으로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제약하다≫
(Index Number: ASA 25/006/2012), 2012. 12. 28., pp. 23-37.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종북 척결”을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간첩 사건을 조작하는 과감한 지시를 하였다.[26]디지털뉴스팀, “원세훈 대법원 상고…“원장은 ‘종북척결 지시만””, ≪경향신문≫, 2015. 2. 12. 기존에 전혀 없었던 탈북자를 대상으로 간첩 조작 사건을 공작하였다. 그 첫 사례가 원정화 간첩 사건이었다.[27]원정화 간첩 사건은 광우병 촛불 시위로 위기를 맞은 이명박 정권이 국면 전환을 위해서 공안 정국을 조성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조작한 사건이다. … Continue reading 원정화 간첩 조작 사건은 원정화를 최초로 수사한 보안경찰관이 의혹을 제기하면서 공론화가 되었다. 소진만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진상 규명을 철저하게 요청합니다. 수원 관내 중부경찰서 무보직 발령을 냅니다. … 나는 지금까지 세계 역사상 원정화 같은 간첩을 본 적이 없어. 간첩이 인터넷도 모르는 간첩이 있냐 이거지.[28]한상진, “여간첩 원정화, 조작의 증거들”, ≪뉴스타파≫, 2017. 11. 4.

 

그는 동료 경찰관들에 의해서 출판물에 의한 명예 훼손으로 피의자 조사를 받았는데 소진만 전 보안수사대장은 피의자 신문조서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위 원정화 사건은 애완견을 황소로 만든 사건으로 특히 지휘부가 간첩을 키워서 정치경찰, 정치군인으로 출세하는 일은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29]같은 기사.

 

국가정보원의 간첩 조작 사건은 더욱 대담하고 조직적으로 발전하였다. 국가정보원은 2013년 2월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유우성 씨를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되었는데, 그의 간첩 혐의는 조작과 날조였음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30]황재하 기자, “‘간첩조작 사건’ 유가려씨 “국정원서 매 맞고 조서 작성””, ≪연합뉴스≫, 2021. 3. 19.; 박태인 기자, “동생 171일 가두고 진술 … Continue reading

필자 역시 2009년 9월에 소위 대학강사 간첩 사건으로 8년을 복역하였다. 국가정보원은 해외에서 북측 인사를 만난 사실을 빌미로 나를 감시하고 도청하던 중에 우연한 교통사고로 자동차에 설치된 도청 장치가 발견되자 나를 긴급 체포하였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체포된 나는 “간첩이 아니다”라며 학문적 호기심에서 북에 다녀왔고 이후 해외에서 동북아 정세 등을 토론하기 위한 학술 목적에서 서너 차례 북측 인사를 만났다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그런 나의 진술을 부풀려 간첩 사건으로 만들었다.[31]나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극도로 공포심과 불안감에서는 정상적인 진술을 할 수 없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 Continue reading

 

 

3. 국가보안법의 정치적 의미: 지배 도구로서 국가 안보와 국가보안법

 

고대 원시 사회에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 의식(祭天儀式)을 통해서 조직을 규율하고 통치하였다. 오늘날 과학적 관점에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행위가 정치적 행위로 볼 수 없고 명백한 사기 행위로 인식된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부족한 고대 사회에서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자연 현상에 대해 신성한 권위를 부여하고 조직의 우두머리는 제천 의식을 독점하여, 그의 힘과 권위를 과시하며 그 부족을 지배하였다. 비과학이 지배하였던 고대 사회에서는 제천 의식을 통해서 집단을 장악한 것이다. 제사장과 지배자들은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명분으로 그런 제천 의식에 받칠 공물을 각출하는 방식으로 곡물을 빼앗고 심지어 희생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런 폭력을 신성한 것으로 미화하였다. 이처럼 고대 사회의 제천 의식은 통치를 위한 수단이었고 그런 폭력은 제천 의식의 탈을 쓰고 대중들을 지배하고 수탈하는 폭력이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 발전하면서 무지한 대중들이 점점 정치의식이 높아지면서 그와 같은 무지와 미신에 기반한 지배 방식은 그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개인의 자유와 존엄에 바탕한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하여 개인들의 정치적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다고는 하지만 지배와 피지배의 긴장 관계의 본질은 현대 정치에서도 그대로 관철되고 있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고위급 관료들은 대중을 “개ㆍ돼지” 취급하면서[32]장은교 기자, “교육부 고위간부 ‘민중은 개ㆍ돼지…신분제 공고화해야’”, ≪경향신문≫, 2016. 7. 8. 억압하고 길들이는 대상으로 보았다. 지배 기득권 세력의 이와 같은 인식은 단지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고위급 관료들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고 오늘날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다.[33]2010년 11월 SK 그룹의 일가인 최철원 씨는 50대 운수 노동자를 야구 방망이로 구타하면서 “엎드려라, 한 번에 100만 원이다”며 폭력을 휘둘렀다. … Continue reading 지배 세력의 폭력이 일상화되면 될수록 그것에 저항하는 반작용과 반발의 힘은 커질 것이고 그런 아래로부터 끌어올려지는 힘을 제어하고 통제하지 못하면 지배 체제는 무너지고 혁명의 시대가 도래한다. 국가 안보라는 것은 외부에서의 힘도 있겠지만 이와 같은 체제 모순의 심화에 따른 혁명적 열기가 고조되면서 체제가 붕괴하기도 한다. 지배 세력은 바로 그런 체제 내부의 변화에 대해서 무척 긴장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끊임없이 지배 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한 정치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 소위 “개ㆍ돼지”들을 길들이기 위한 폭력 수단이 필요한데 한국에서 국가보안법이 그런 기능을 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공산주의 체제가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위협한다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북괴’ 집단을 반국가단체로 특정하여 지배 세력에 대한 내부의 비판 세력들을 이적 동조죄와 찬양ㆍ고무로 재갈을 물려 처벌함으로써 피지배자들에게 공포심을 주고 불안감을 조장하여 지배 체제에 순응하게 만드는 고도의 국가 폭력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법학자들은 국가보안법 폐지의 근거로 죄형법정주의를 위배하여 인권 침해와 오ㆍ남용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하지만[34]심희기ㆍ이석수, ≪국가보안법의 운영실태와 개정방안(The Uses of National Security Law and the Debates on How to Reform NSL in Korea 2004)≫,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04. … Continue reading 그런 주장은 헌법재판소에 의해서조차 번번이 기각되는 현실이다. 이것은 국가보안법이 단순히 형식적인 법리만 가지고 그 존재의 의미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국가보안법은 원시 시대의 제천 의식과 같이 현대 대한민국의 지배 체제를 폭력적으로 보위하는 강력한 정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적대 세력이 필요하다. 그런 적대 세력을 특정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간첩이 생산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2000년 이후 유연한 대북 접근 전략이 채택되었음에도 왜 여전히 남북 관계에서 적대적 관계가 해소되지 않았는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그 적대적인 남북 관계의 청산이야말로 기존 기득권 질서를 파괴하는 위험천만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소위 ‘촛불 혁명’ 정부라는 문재인 정부조차 ‘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4ㆍ27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서 새로운 남북 관계의 시작을 열어 가겠다고 다짐하였다. 남북 사이의 긴장과 적대를 해소하고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전쟁을 끝내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렇지만 그런 선언은 지켜지지 않았고 남북 관계는 파국에 놓였다.[35]북은 2021년 6월 개성 공단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였다. 남북 정상들이 남북 합의를 하였음에도 미국은 한미 워킹그룹을 만들어서 남북 관계를 제어하고 통제하였다.[36]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은 2021년 2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하여 “한미 워킹그룹은 한미 간 대북정책 이견 조율을 한 중요한 플랫폼이었지만 … Continue reading 남쪽의 진보 세력과 평화 세력이 이런 사실을 비판하면서 한미 군사동맹과 예속적인 한미 관계를 비판하면 북의 주장에 동조하였다고 하여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는 사례들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사실들로 비추어 본다면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미국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남북 관계를 발전시킬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새로운 시대로의 방향 전환은 선언만으로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전망과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새로운 정치 세력을 중심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기존의 질서와 관점에서 벗어나 현실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자유롭고 비판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런 활동을 목적의식적으로 지향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조직적인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 그런 정치 세력이 정치사상의 자유를 보장받고 자유롭게 활동할 때, 근본적인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될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정치사상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

‘촛불 혁명’의 성과로 문재인 정부가 세워졌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정치적 과제로 내세웠다. 대중들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고 있으며,[37]021년 3월 진보적인 100여 개의 시민사회 단체가 모여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 행동’을 조직하였다. 국민행동은 국가보안법 폐지 10만 국민청원 운동을 … Continue reading 그렇게 할 수 있게끔 행정 권력뿐만 아니라 의회 권력까지 손에 쥐여 주었다.[38]2020년 4월 15일 치러진 총선에서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을 얻었다. 이것은 20대 총선(123석)보다 57석을 더 얻은 압승이다. 이런 반수 이상의 … Continue reading 대중들은 이제 20세기의 역사적 유물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21세기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는 새로운 정치 질서 체제를 요구하고 있다. 갈등과 민족 대결의 불신이 지속되는 한 민족 전체가 공멸하거나 제국주의 지배 세력이 강요하는 노예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북의 핵무장은 이제 기정사실화되었다.[39]전석운 특파원, “북한 핵무장은 기정사실”, ≪국민일보≫, 2017. 7. 9. 장기적으로 북을 고립 압살시켜서 스스로 붕괴를 유도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70년 이상 동안 남과 북이 긴장과 갈등을 통해서 얻은 것은 분열과 고통뿐이었다. 더군다나 자본주의 체제 모순이 심화하면서 세계 경제 공황은 일상화되고 있으며 미국의 경제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자국의 경제 위기를 모면하려고 천문학적으로 돈을 찍어 내고 있는데 이것은 세계 경제 질서뿐만 아니라 미국의 패권적 지위까지 흔들고 있다. 미국은 자신의 제국주의 지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쿼드(미국, 인도, 일본, 호주)’, ‘한ㆍ미ㆍ일’ 안보 공동체를 강화하여 동북아의 질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이렇게 안보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적대적인 남북 관계가 더 첨예하게 심화한다면 한국 사회가 감당하지 못할 정치ㆍ경제적 환경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바로 그런 이유로 한국은 이제는 미국에 예속적인 정권보다는 동북아시아에서 자신의 힘으로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강력한 정치 조직이 필요하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들 수 없다. 자본주의의 자본 축적이 고도화되고 4차 산업 혁명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자본 운동의 모순이 심화하고 있다. 사회의 양극화는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른 대중들의 불만과 피폐한 삶은 이루 말할 수 없다.[40]2014년 2월 가난에 허덕이던 송파 세 모녀가 번개탄을 이용해 자살하였다. 이 사건 이후 5년이 지난 시점인 2018년 2월 통계청의 가계 동향 조사 결과에 … Continue reading

미국의 예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구 보수 지배 세력은 대결적인 남북 관계를 개선하는 것처럼 보여 대중들을 기만하였지만, 국가보안법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남북 관계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지난 김대중ㆍ노무현ㆍ문재인 정부에서 입증해 주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남북 관계의 변화를 만들려 해도 북을 반국가단체로 특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그 어떤 선언과 약속도 무의미한 말잔치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 지난 2000년 6ㆍ15 공동선언 이후 지금까지 걸어온 남북이 보아 왔던 현실이다. 그리고 그런 남북 관계의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고 개입하고 통제하려 했던 것이 미국 제국주의 지배 세력이었다. 그리고 이런 지배 체제의 모순을 은폐하고 대중들의 정치의식을 교란하려는 간첩 사건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2018년 판문점 4ㆍ27 선언 이후 그동안 잠잠하였던 국가보안법 사건이 2021년 5월에 들어서 4개의 국가보안법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41]2021년 5월 공안당국은 4.27시대 연구원 이정훈 연구원을 국가보안법 8조 회합ㆍ통신과 7조 반국가단체이적표현물 소지로 구속하였으며, ≪세기와 … Continue reading 이것은 지난 노무현 정부 시기 잠시 주춤하였던 국가보안법 사건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종북 세력 척결”로 국가보안법 사건이 급증하면서 간첩 사건을 조작하고 온 나라를 암흑과 아비규환의 파쇼 지배 체제로 돌아갔던 과거를 연상시킨다. 필자는 2000년 이후 국가보안법 사건의 특징과 추이를 살펴보기 위해서 국가보안법 사건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덧붙인 [자료1]이 그 결과다. 국가보안법 사건들을 정리하면서 느낀 점은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거나 수감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민족의 통일과 민주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모순을 인식하고 헤쳐 나가려는 진취적이고 양심적인 시민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위해서 헌신하고 싸우는 사람들이었다. 필자처럼 우연한 기회에 호기심으로 북에 다녀와서 획일화된 반공 이데올로기의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탐구하려는 학자들도 있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그런 경계를 넘어서고 진취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진보적인 사람들을 반국가 행위자로 내몰아 탄압하고 폭력을 행사하였다.

또한 2000년 이후 대부분의 국가보안법 사건들이 7조(찬양ㆍ고무) 죄였는데, 이것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정치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폭력이다. 정치적 동물로서 정치사상의 자유는 사람들이 갖는 기본적인 권리이며 민주주의의 뿌리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정치적 선택과 결사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오랜 기간 진보적인 인류 역사의 성과이자 투쟁의 산물이기도 하다. 특정한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요해서도 안 되고 강요당했을 때 거부할 수 있는 저항권이 있다. 특정한 지배 체제와 지배 이데올로기를 폭력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야만의 시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어떤 지배 체제를 선택하고 주권을 누구에게 위임하고, 스스로 정치의 주체로 책임지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민주주의 본질은 훼손되고 유린되고 있다.

 

 

4. 나오는 글: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과 그 전망

 

짧은 이 글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와 운동의 전망까지 제출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 글은 2000년 이후 국가보안법 사건들의 사례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대한민국에서 국가보안법이 가지는 정치적 함의를 대략적인 수준에서라도 분석하려는 것이었다. 1945년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 이후 한반도는 격변의 시기를 겪었고, 국가보안법은 민족분단을 고착화하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미군정은 국가보안법을 토대로 남쪽에 반공 친미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남과 북을 사상과 이념의 갈등과 전쟁으로까지 몰고 간 배경이 되었다. 냉전이 끝난 2000년 이후 남북 사이에 화해와 협력의 필요성이 높아졌고 그 결과 남과 북의 최고 지도자들이 여러 차례 만나서 비정상적인 적대 관계를 해소하려는 노력은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별 성과 없이 남북 분단의 상황은 대결과 분열로 고착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이런 구조적인 남북 사이의 적대 관계가 바뀔 것 같지 않다. 2000년 이후 우리의 경험은, 남북이 서로 만나서 대담한 새 시대를 열어 갈 수 있을 거라 확신하였지만 실패하였다. 어떤 이들은 북의 핵무장이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흐름을 차분하게 지켜보면, 북을 적대하는 국가보안법이 남쪽에 여전히 존재하는 한, 싱가포르와 베트남에서 북이 핵 개발을 동결하겠다고 해서 문제가 풀렸을지 의문이 든다. 미국과 한국은 무엇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시기 수많은 국가보안법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북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상상력을 가지고 북을 바라보는 순간 여지없이 국가보안법이 폭력적으로 그것을 부정하고 짓밟아 갈기갈기 찢어 놓고 감옥에 가두었다. 그런 남쪽에 대해서 북이 천진난만하게 핵무장을 포기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우리의 대북 적개심이 북을 핵무장으로 밀어내지는 않았을까? 남북 관계의 변화는 최고 지도자들이 만나서 선언한다고 저절로 실현되는 것이 아님을 역사는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남과 북이 진심으로 한민족, 동포로 대하고 평화와 번영을 함께 만들어 갈 동무로 믿고 굳은 정치적 의지와 실천을 담보하였을 때 실현될 것이다. 우리는 이 글에서 지난 2000년 이후 남과 북의 관계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바꾸어 가자고 약속하였지만, 국가보안법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개혁적이고 정부 비판적인 정치 세력을 마치 북에 동조하는 이적 세력으로 몰아서 적대하였다. 그런 정치 이데올로기를 확대 재생산하기 위하여 간첩을 생산하거나 국가보안법으로 대중들을 겁먹게 한다. 그런 과정에서 대중들의 자주ㆍ민주ㆍ통일 의지를 꺾어 버렸다. 이런 관점에서 국가보안법은 남과 북의 분단을 넘어서고자 하는 새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걸림돌이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낡은 유산인 국가보안법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지배계급은 대중을 ‘개ㆍ돼지’로 보고 국가보안법의 철퇴를 휘두르며 지배 체제를 공고화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일이라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시대에 뒤처진 낡은 통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인민 대중을 억압하려는 것은 정치적 폭력이다. 소수의 지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폭력은 오래가지 못하고 무너졌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폭력에 기반한 지배 체제는 대중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그런 정권은 대중들의 힘으로 무너졌다.

지난 2000년 이후 20년 동안의 국가보안법 사건들이 진정하게 공동체의 안전을 위한 정당한 법 집행이었는지? 아니면 소수의 지배계급이 쥐고 있는 정권 안보를 위해서 조작해서 만든 일이지 냉정하게 살펴보아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자료1]은 2000년 이후 대표적인 국가보안법 사건 하나하나의 사례를 기록하였다.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정치학자 한 사람이 감히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하는 일은 가당치 못하다. 이 짧은 글에서 그럴 만큼의 학문적 연구와 실력도 부족하다. 그렇지만 이 글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광우병 촛불 시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기 위해서 간첩 사건을 조작하고 국가 안보라는 가면을 쓰고 댓글을 조작하고, 선거에 개입하고 대중들을 감시하고 탄압한 국가보안법의 해악은 정당화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 사회와 민족이 문명화된 좋은 공동체로 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의 정치적 당위성을 제출하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하겠는가?”에 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국가보안법은 한미 동맹이라는 역사적 산물이고 미국 제국주의는 독점자본주의 국가의 최고 우두머리로서 사회주의 운동을 압살하려는 독점자본가들의 이해관계에 기초한 국가이다. 이런 조건들이 한국의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런 질문들을 이 글을 읽는 독자들과 함께 연구해 가면 좋겠다.

 

 

[자료1] 2006년-2021년 5월 사이 대표적인 국가보안법 사건

 

≪충북청년신문≫이 조사한 대표적인 공안 사건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42]편집실, “청와대 문고리들 조작질 견인했나(3)”, ≪충북청년신문≫, 2021. 6. 28.

 

시기

사건

내용

2006년 10월[43]이주현 기자, “2006년 일심회 사건이라?”, ≪한겨레≫, 2008. 2. 4.

일심회 간첩단 조작 사건

국가정보원이 일심회라는 6ㆍ15 이후 최대의 간첩 조직을 적발하였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간첩단 사건을 만들었지만, 재판에서 이적단체 구성은 무죄로 판명된 사건

2008년 1월[44]추광규, “국보법 위반 김형근 전 교사, 항소심도 ‘무죄’”, OhmyNews, 2010. 9. 3.

김형근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 기소

2005년 제자 180명을 인솔해 ‘남녘 통일 애국열사 추모제’에 참석한 것을 2006년 12월 ≪조선일보≫가 보도하면서 사건화되어 구속됨.

1심과 2심에서는 무죄였지만 대법원에서 유죄로 뒤집힘.

2008년 2월[45]이세원 기자, “범청학련 의장 윤기진 징역 3년”, ≪연합뉴스≫, 2008. 8. 27.

윤기진 범청학련 의장 10년 동안 수배 생활 끝에 체포됨.

2002년부터 제11기 범청학련 남측본부 의장으로 활동한 혐의로 이적표현물 제작, 배포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음.

2008년 2월[46]윤성호, “최보경 교사 보안법 무죄, 정부는 7년 고통 사과해야”, OhmyNews, 2015. 3. 27.

간디학교 최보경 국가보안법 위반 기소

최 교수가 정리한 학습교재 ≪역사 배움터≫ 등 10여 권에 대해서 국가보안법 위반(고무ㆍ찬양)으로 불구속 기소. 2015년 3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선고함.

2008년 8월[47]한상진, “여간첩 원정화, 조작의 증거들”, ≪뉴스타파≫, 2017. 11. 4.

원정화와

그의 애인인 황** 육군 대위와

계부인 김동순이 국군기무사령부에 의해 구속됨.

원정화는 1심에서 5년 형 선고받음. 황 대위는 원정화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3년 형을 선고받았고, 계부 김동순은 무죄로 풀려남.

2008년 8월[48]한지훈 기자, “‘사노련 사건’ 오세철 교수 사실상 유죄 확정”, ≪연합뉴스≫, 2014. 8. 20.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건

오세철 교수와 회원 7명 기소.

2014년 8월 대법원은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을 국가변란ㆍ선전ㆍ선동 단체로 규정함.

2008년 10월[49]김성욱 기자, “‘우리는 장군님 전사’ 김정일에 대한 충성 맹세―노무현 정부, 이 단체에 6,000만 원 지원” ≪월간조선≫, 2009. 6.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집행위원장 등 핵심 간부 4명 구속 기소

대법원은 2010년 7월에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ㆍ고무)를 적용해 실천연대를 이적단체로 판결함.

2009년 5월[50]이상용 기자, “금강산서 ‘北 지령’ 받은 범민련 간부 3명 구속”, DAILY NK, 2009. 6. 24.

이규재(73세,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이경원(43세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 최은아(37세, 범민련 남측본부 선전위원장) 국가보안법 제3조-10조 위반 혐의로 체포됨.

당국의 허가 없이 금강산과 베이징, 선양 등에서 북측 인사와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북을 찬양하는 이적표현물을 만들어 인터넷 블로그에 올린 혐의로 기소함.

2009년 7월[51]권오헌, “열아홉 달 젖먹이 엄마를 잡아 가둔 국가보안법”, ≪통일뉴스≫, 2011. 11. 19.

김은혜 전 한총련 정책실장 간첩 사건

당국의 승인을 받고 남북대학생 교류사업을 하였는데,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가입’, ‘남북대학생 교류사업을 빙자한 회합ㆍ통신 및 특수 잠입’, ‘남한 내 학생운동권 정황 보고 및 목적수행’, ‘반국가단체 구성원과의 회합, 목적수행을 위한 통신 연락’, ‘이적표현물소지’로 기소했고 1심에서 3년 6월 형을 선고받음.

2009년 9월[52]임재근, “이명박 시절 ‘간첩 누명’ 이병진 교수, 대전에서 출판기념회 진행”, ≪통일뉴스≫, 2018. 12. 8.

이병진 대학강사 간첩 사건

인도 유학 시절 1993년 북에 방북한 것을 빌미로 국가보안법 위반 8년 선고

2010년 2월[53]김만중 기자, “검찰, 출소 앞둔 윤기진 범청학련 의장 구속영장 신청했다가 기각돼”, ≪참여연대≫, 2011. 2. 4.

윤기진 옥중서신 사건

만기 출소를 하루 앞두고 기소하였고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되어 1년 6개월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는데, 2016년 4월 무죄 확정판결 받음.

2010년 8월[54]박민제 기자, “‘국보법 위반’ 진보연대 한충목 공동대표 집행유예 확정”, ≪중앙일보≫, 2014. 9. 29.

진보연대 한충목 공동대표 사건,

북한 공작원을 만나 지령을 받고 반미집회를 주도한 혐의 등으로 기소됨.

공작원과 접촉해 지령을 수령했다는 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ㆍ탈출, 회합ㆍ통신 혐의는 무죄, 반미집회를 주도하여 찬양ㆍ고무 혐의만 유죄로 인정함.

2010년 8월[55]김동철 기자, “한상렬 목사, 방북前 결심 담은 편지 남겨”, ≪연합뉴스≫, 2010. 6. 14.

진보연대 상임고문 한상렬 목사 방북

국가보안법(잠입ㆍ탈출) 3년 실형 선고

2010년 12월[56]유명식 기자, “친북 카페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 운영 40대 구속”, ≪뉴시스≫, 2010. 12. 13.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 사건

국가보안법 7조(찬양ㆍ고무) 위반으로 1년 실형 선고

2010년[57]구교형 기자, “법원 ‘연방통추 이적단체 맞다’”, ≪경향신문≫, 2011. 2. 23.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위원회 사건

연방통추 2기 상임의장 김수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주한미군 철수’, ‘맥아더 동상 타도특위’, ‘연방제통일’을 주장하는 집회를 개회했다는 이유로 2012년 1월 이적단체로 선고받음.

2011년 3월[58]허환주 기자, “국보법 위반으로 대학생 1명 연행, 6명 자택 압수 수색”, ≪프레시안≫, 2011. 3. 21.

새 세대 청년 공산주의자 붉은기 사건

2006년께 ‘새 세대 청년 공산주의자 붉은기’ 단체를 조직하여 자본주의연구회가 개최한 ‘대안경제캠프’ 등의 활동을 함.

2011년[59]사건 2012노 816 국가보안법위반(찬양ㆍ고무 등), 법정 모독 등(구속) 항소심 제1회 청주구치소(262번) 추가건(만세! 3번).

강영준 재판에서 “위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사건

강영준 씨는 인터넷 토론방(통일카페)에 23건의 이적표현물을 포털과 언론사 사이트에 올린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2심이 진행 중이었는데, 법정 모독죄로 8개월이 추가되어 1년 6개월 선고받음.

2011년 8월

왕재산 간첩 사건[60]박진석ㆍ이동현 기자, “‘왕재산’ 총책 김덕용, 1993년 김일성 만나 지령받았다”, ≪중앙일보≫, 2011. 8. 26.

조선 노동당 225국의 지령을 받고 국내에서 간첩 활동을 해 온 혐의로 국가보안법상 ‘간첩, 특수 잠입ㆍ탈출, 회합ㆍ통신’으로 중형이 선고됨.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은 무죄 선고

2011년

여성작가 신정모라 사건[61]신종철, “대법, 북한 찬양 글 신정모라 작가 징역 1년”, OhmyNews, 2013. 4. 21.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바로 알기’ 게시판에 “조선 노동당 총비서이신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장군님께”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1년 형 선고

2011년[62]김원철 기자, “이적표현물 소지만으론 이적 행위 단정 처벌 못 해”, ≪한겨레≫, 2014. 4. 21.

김 모 중위 이적표현물 소지 사건

김 중위는 입대 전인 2006년 8월 중국 여행 중 조선 노동당 출판사에서 출판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불멸의 혁명업적≫ 등의 책을 샀다는 이유와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다” 등의 발언을 한 점을 들어 이적 행위로 기소되었다. 군사법원은 집행유예 1년을 선고

2012년 1월[63]박수진 기자, “리트윗으로 구속…국가에 얻어터진 ‘환자’ 박정근”, ≪한겨레≫, 2012. 1. 13.

박정근 리트윗

구속 사건

박정근 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북의 ‘우리민족끼리’를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가 무죄 선고를 받음.

2012년 6월[64]김계연 기자, “4년 전 ‘GPS 간첩사건’ 대북사업가들 무죄 확정”, ≪연합뉴스≫, 2016. 4. 8.

GPS 간첩 사건

2011년 7월 중국 단둥에서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GPS 전파교란장비와 전파감지기, 고공관측 레이더 등의 군사기밀을 탐지해 전달하려 한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무죄 판결

2012년 8월[65]서재준 기자, “檢, ‘무단방북’ 노수희 범민련 부의장 구속기소”, ≪뉴스1≫, 2012. 8. 9.

노수희 범민련 부의장 무단방북 사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추모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무단 방북한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에 대해서 4년 실형

2012년[66]최재윤 수습기자, “‘국보법 위반’ 안영민 민족21 편집주간 집행유예 확정”, ≪민중의 소리≫, 2018. 7. 26.

안영민 민족 21 편집주간 사건

조총련 공작원 조 모 씨와 이메일을 주고받는 등 접촉한 혐의로 기소되어 집행유예 3년을 받음.

2013년 1월[67]전지성ㆍ최예나, “北탈출 쥔 서울정착 지원업무 ‘탈북공무원’ 간첩혐의 구속”, ≪동아일보≫, 2013. 1. 21.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국정원이 18대 대선에 댓글 조작 사건으로 위기에 몰리자 간첩 사건을 조작하였다. 1심에서 무죄가 나오자 국정원은 항소심에서 공문서를 위조하여 증거까지 조작하였다.[68]문형구, “서울시 간첩조작 사건, 동아일보와 국정원의 특별한 관계”, ≪미디어 오늘≫, 2017. 9. 3.

2013년 8월[69]김수헌 기자, ““국정원 ‘진보당에 내란음모 사건’ 제보자 있다” 영장에 적시”, ≪한겨레≫, 2013. 9. 2.

소위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징역 9년, 김홍렬, 이상호, 김근래, 조양원, 홍순석, 한동근에게는 징역 4-7년을 선고

2013년 9월[70]최영수 기자, “국보법 위반 집행유예 김형근 전 교사 또…구속기소”, ≪연합뉴스≫, 2013. 10. 24.

김형근 교사 국가보안법 찬양ㆍ고무로

구속 기소

2011년 5월부터 2013년 7월까지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보도문’ 등 110여 건의 이적표현물을 게시ㆍ반포한 혐의로 구속

2015년 2월[71]박형빈 기자, “‘종북콘서트 논란’ 황선 2심서 무죄…“증거부족””, ≪연합뉴스≫, 2020. 2. 18.

신은미ㆍ황선

종북 콘서트 논란으로 구속 기소

2014년 11월-12월 ‘전국 순회 토크 문화 콘서트’를 개최하면서 국가보안법(찬양ㆍ고무)으로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남.

2015년 6월[72]이창기, “박창숙 통일운동가 구속은 인권 포기, 통일 거부 선언”, ≪자주시보≫, 2021. 6. 29.

박창숙 통일운동가 사건

인터넷에 북의 입장을 동조하는 글을 올린 혐의로 집행유예 3년 형을 받은 상태에서 동일 블로그에서 활동한 이유를 들어 징역 1년 실형

2015년 11월[73]최석희 기자, “‘목사가 간첩’이라더니! 1월 6일 김성윤 목사 첫 재판, 간첩혐의 빠져”, ≪금천 in[人]≫, 2016. 1. 19.

목사 간첩단 사건

민중총궐기가 열리는 날 새벽 금천구에 있는 ‘평화의 교회’에서 근무하는 김성윤 목사를 체포. 회합ㆍ통신,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로 기소되어 3년 형 실형

2017년 1월[74]김규남 기자, “‘노동자의 책’ 이진영 구속은 사상의 자유 탄압…석방하라”, ≪한겨레≫, 2017. 1. 6.

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 구속

인문사회과학서적 전자도서관 ‘노동자의 책’을 운영하는 이진영 씨를 이적표현물 판매ㆍ배포 혐의로 구속.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

2018년 9월[75]전현진 기자, “김일성대학 출신 IT 기술자와 프로그램 개발…남북 협력인가, 보안법 위반인가”, ≪경향신문≫, 2021. 5. 11.

대북 사업가 김호 사건

통일부에서 승인받고 진행된 대북 사업을 국가보안법 위반(자진지원ㆍ금품수수)으로 기소. 2021년 7월 현재까지 재판이 진행 중

2021년 5월[76]김치연 기자, “‘국보법 위반 혐의’ 이정훈, 4.27시대연구원 위원 구속”, ≪연합뉴스≫, 2021. 5. 17.

이정훈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표현물 소지 및 회합ㆍ통신 등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

2021년 5월[77]김치관 기자, “경찰, 『세기와 더불어』 출간한 김승균 대표 압수수색, ≪통일뉴스≫, 2021. 5. 26.

김승균 도서출판 민족사랑방 대표 압수수색

고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출판 판매한 이유로 출판사와 자택을 압수수색

2021년 5월[78]강호석 기자, “또 국가보안법 회합ㆍ통신, 압수수색”, ≪민플러스≫, 2021. 5. 27.

충북지역 언론인 및 노동운동가 압수수색

및 구속 기소

손종표 충북청년신문 대표이사, 박응용 한국타이어 해고노동자와 부인 박승실 씨, 그리고 윤태영 씨에 대해서 북의 문화교류국 관계자를 만나 지령을 받고 F-35도입 반대 투쟁을 한 혐의로 압수수색. 박응용, 박승실, 윤태영 씨는 구속 기소됨.

 

References

References
1 1945년 해방 이후 분단 상황에서 미국 제국주의 지배 세력은 사회주의 세력을 배제하는 정부를 수립하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적산불하 과정에서의 각종 비리와 농지 개혁의 실패 그리고 식량 문제까지 악화되면서 오히려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가 줄어들지 않았다. 미군정에 대한 대중들의 저항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상황에서 미군정은 1947년 제주 4ㆍ3 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였고 여수에 주둔하던 14연대가 제주도 진압 작전을 거부하자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48년 12월 1일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졌다. 1949년 한 해 동안 국가보안법으로 투옥된 사람이 11만 8,621명이었고 132개 정당ㆍ사회단체가 해산되면서 사회주의 운동 세력은 급속히 위축되었다. (배문석 기자, “남한단독정부, 국가보안법과 국민보도연맹”, ≪울산저널 i≫, 2020. 2. 28.)
2 박원순은 국가보안법의 역사와 오남용 그리고 폐지에 대해서 비판적 연구를 하였다. 그는 국가보안법의 역사와 악용 사례들, 그리고 폐지의 필요성을 3권의 책으로 제출하였다. 박원순, ≪국가보안법 연구 1―국가보안법 변천사≫, ≪국가보안법 연구 2―국가보안법 적용사≫, ≪국가보안법 연구 3―국가보안법 폐지론≫, 역사비평사, 1994.
3 국가인권위원회, “[보도자료] 국가인권위, 국회의장과 법무부장관에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 2004. 8. 24.
4 국제인권조약, 특히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 지속해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 (김기남, “참을 만큼 참은 유엔 “국가보안법 7조 폐지해””, OhmyNews, 2015. 11. 19.)
5 Amnesty International, ≪안보의 이름으로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제약하다≫(Index Number: ASA 25/006/2012), 2012. 12. 28., p. 16.
6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국가보안법 적용에서 나타난 인권 실태≫(2003년도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 보고서), 2004. 2., p. 23.
7 같은 책, p. 30.
8 같은 책, p. 36.
9 같은 책, p. 44.
10 같은 책, p. 66.
11 영국 제국주의 지배 세력은 힌두와 이슬람을 종교로 갈라치는 “분리와 지배(divide and rule)” 전략을 통해서 식민 지배를 공고히 하였다. 그 결과 영국령 인도는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되었다.
12 남북 관계를 적대 관계에서 협력 관계로 바꾸려는 김대중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극도로 불신하였다. 노무현 정부의 윤영관 외교통상부장관은 “김대중 정부와 미국과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미국의 김대중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해 있었다”라고 말하였다. (김태경 기자, “DJ정부 때 한미동맹 문제 많았다. 미, ‘파병’으로 노무현에 의심 풀어”, OhmyNews, 2003. 6. 5.)
13 국정원 강제퇴직자 모임(‘국정원을 사랑하는 모임’)의 송영인 대표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직후 1998년 4월 1일 서기관급 이상 국정원 직원 581명이 면직 및 재택근무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또한 대공경찰 2,500명, 기무사 요원 600명, 공안검사 40명이 해직되었다고 한다. 같은 해 12월에는 300명이 추가로 명예퇴직을 하였다고 한다. (안성규ㆍ전수진 기자, “대북공작 남3,000명, 북250명 숙청된 98년이 분수령”, ≪중앙SUNDAY≫, 2011. 12. 25.)
14 국가정보원에서 군 정보당국 실무자였던 유 모 씨는 “노무현 정부 때까지 계속 20% 정도씩 줄였다. 김만복 위원장 때는 예산이 거의 반 토막 났다. 내가 다루던 100억 원 규모의 휴민트 예산도 거의 반 토막 났다”라고 증언하고 있다. (안성규ㆍ전수진 기자, 같은 기사.)
15 초대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 씨는 중앙정보부가 광범위하게 국내 정치에 개입하고 정당도 만들고 선거에 개입하고 공천 작업도 주도하였다고 증언하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안전기획부는 대공 수사와 국내 수사가 있는데 초대 국가정보원장으로 가서 보니 국내 수사가 많이 늘어나 있어서 구조조정을 했다고 증언하였다. (“[CBS 시사자키(진행: 전관용, 출연: 이종찬, 방송일: 2013. 10. 1.)] 이종찬, “심리전단 운영, 원세훈이 책임져야””, ≪노컷뉴스≫.) 심지어 이종찬 씨는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가정보원장의 보고조차 받는 것을 꺼려서 국가정보원이 “문약해졌다”는 주장까지 할 만큼 정권 안보를 위해서 국가보안법을 휘두르지 않았다고 하였다. 다음은 방송 내용이다.

사회자: “그러면 노무현 정부 때는 어떻게 운영됐는지 혹시 알고 계세요?”

이종찬: “문약해졌다. 이것은 제가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 뭔가 일을 하되 올바른 일을 하도록 자꾸 이렇게 고취를 해 줘야 할 텐데. 국정원장은 만나지도 않으려고 하고 정보 보고는 하는 등 마는 둥 해도 거기에 누가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16 김승규 당시 국정원장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청와대 참모들은 간첩 수사를 하면 북한을 자극해 화해 무드를 깰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말하였다. 당시 국가정보원은 그런 청와대의 정치적 판단까지 고려하여 무리하게 대규모 간첩단 사건을 만들려 했다는 것은 공안 정국으로의 국면 전환을 시도하였음을 암시한다. (강민수 기자, “일심회 사건에 문재인 사람 있어 국정원에 압력 넣었다?”, ≪뉴스타파≫, 2017. 4. 24.)
17 자이미, “JTBC 뉴스룸―이명박의 ‘아침이슬’ 그 후, 댓글 부대와 대남 선전전”, Mediaus, 2017. 9. 27.
18 박사라 기자, “‘블랙리스트’ 연예인들, 검찰에 이명박ㆍ원세훈ㆍ박근혜 등 고소”, ≪중앙일보≫, 2017. 9. 25.
19 이웅 기자, “‘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2년여 대장정 마무리”, ≪연합뉴스≫, 2018. 12. 31.
20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앞의 책, p. 67.
21 조호진, “한상대 ‘종북 좌익세력과 전쟁’”, ≪조선일보≫, 2011. 8. 12.
22 Amnesty International, Policing the candlelight protests in South Korea(Index Number: ASA 25/008/2008), 2008. 10. 6.
23 Amnesty International, ≪안보의 이름으로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제약하다≫(Index Number: ASA 25/006/2012), 2012. 12. 28., p. 21.
24 필자도 2009년 9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8년의 옥고를 치렀는데, 수사 기록에는 민주평통 자문위원 자격으로 미국 휴스턴에 가서 이명박 정부의 “비핵 3천” 정책의 비현실성을 비판한 것을 이적 행위로 특정하였다. 이런 사실에서 국가보안법은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학자들을 이적 행위로 몰아 처벌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25 김미향 기자, “보안법 6년 싸움에 찢긴 ‘학자의 꿈’”, ≪한겨레≫, 2014. 2. 17.
26 디지털뉴스팀, “원세훈 대법원 상고…“원장은 ‘종북척결 지시만””, ≪경향신문≫, 2015. 2. 12.
27 원정화 간첩 사건은 광우병 촛불 시위로 위기를 맞은 이명박 정권이 국면 전환을 위해서 공안 정국을 조성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조작한 사건이다. 원정화는 2008년 7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공소 내용에 의하면 원정화는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에 발탁돼 공작원 양성소에서 교육을 받은 후 탈북자로 위장하고 남한에 와서 황 중위와 내연 관계를 맺은 뒤 군사 기밀을 빼돌리다 체포되었다. 원정화는 징역 5년을 선고받고 2013년 만기 출소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건에 대한 진상들이 드러나고 있다. ≪뉴스타파≫의 보도에 의하면 원정화 간첩 사건을 최초로 수사했던 경기경찰청 보안수사대장이었던 소진만 씨가 원정화 사건은 조작되었다고 지난 10년 동안 주장하다가 수사 배제와 좌천을 당하다가 2017년 목숨을 끊었다.
28, 47 한상진, “여간첩 원정화, 조작의 증거들”, ≪뉴스타파≫, 2017. 11. 4.
29 같은 기사.
30 황재하 기자, “‘간첩조작 사건’ 유가려씨 “국정원서 매 맞고 조서 작성””, ≪연합뉴스≫, 2021. 3. 19.; 박태인 기자, “동생 171일 가두고 진술 압박” 法 질타한 ‘우유성 간첩조작’ 전말”, ≪중앙일보≫, 2020. 11. 12.
31 나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극도로 공포심과 불안감에서는 정상적인 진술을 할 수 없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피의자는 국정원 요원들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휘둘리지 않을 수 없다. 낯설고 불안한 상황에서는 평소처럼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 수사관들은 그런 피의자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하여 의도적인 목적을 가지고 끼워 맞추기식의 수사로 진술을 유도하여 간첩이 만들어지고 조작되는 구조이다. 국가정보원이 표적을 세우고 그 표적을 목표로 공작을 벌인다면 개인 혼자의 힘으로 그 늪에서 헤쳐 나오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이런 필자의 경험을 통해서 볼 때, 간첩 사건이 얼마든지 조작되고 공작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우유성 씨의 사례가 그런 사실을 증명해 준다.
32 장은교 기자, “교육부 고위간부 ‘민중은 개ㆍ돼지…신분제 공고화해야’”, ≪경향신문≫, 2016. 7. 8.
33 2010년 11월 SK 그룹의 일가인 최철원 씨는 50대 운수 노동자를 야구 방망이로 구타하면서 “엎드려라, 한 번에 100만 원이다”며 폭력을 휘둘렀다. (이지윤 기자, ““한 대에 100만 원”…‘맷값 폭행’ 피해자, 8년 지나도 고통은 진행형”, KBS NEWS, 2018. 5. 2.)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은 땅콩 서비스를 문제로 삼아 항공 승무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하고 비행기를 회항하게 하여 실형을 선고 받았다. (정빛나 기자, “‘땅콩회항’ 조현아 징역 1년 선고”, ≪연합뉴스≫, 2015. 2. 12.) 한진그룹 총수의 부인 이명희 씨는 운전기사 등에게 수년간 폭행 및 폭언을 하여 실형을 선고 받았다. (신민정 기자, “‘직원 상습폭행’ 한진 이명희, 상소심도 집행유예”, ≪한겨레≫, 2020. 11. 19.) 전ㆍ현직 직원들에게 ‘갑질 폭행’ 등을 한 혐의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5년 형을 선고받았다. (조윤영 기자, “‘갑질 폭행’ 양진호, 징역 5년 확정”, ≪한겨레≫, 2021. 4. 15.) 아파트 경비원에게 갑질을 하여 경비원이 모욕감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한 입주민에게 5년 형이 선고. (허유진 기자, “끊이지 않는 경비원 폭행…몽둥이 폭행ㆍ갑질ㆍ보복에 경비원은 운다”, ≪조선일보≫, 2021. 3. 20.) 이처럼 끊이지 않는 지배자들의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이다.
34 심희기ㆍ이석수, ≪국가보안법의 운영실태와 개정방안(The Uses of National Security Law and the Debates on How to Reform NSL in Korea 2004)≫,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04. 12.
35 북은 2021년 6월 개성 공단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였다.
36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은 2021년 2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하여 “한미 워킹그룹은 한미 간 대북정책 이견 조율을 한 중요한 플랫폼이었지만 남북관계 개선의 장애물이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인정하였다. (이국현 기자, “‘남북관계 족쇄’ 비판 한미 워킹그룹, 2년 7개월 만에 폐지 수순”, ≪뉴시스≫, 2021. 6. 22.)
37 021년 3월 진보적인 100여 개의 시민사회 단체가 모여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 행동’을 조직하였다. 국민행동은 국가보안법 폐지 10만 국민청원 운동을 벌여 국회에 국가보안법 폐지 안건 상정을 요구하였다. 이와 함께 ‘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 시민운동도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국가보안법철폐긴급행동’은 청와대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38 2020년 4월 15일 치러진 총선에서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을 얻었다. 이것은 20대 총선(123석)보다 57석을 더 얻은 압승이다. 이런 반수 이상의 압도적인 의석수로 승리한 선거 결과의 의미는 적폐를 청산하라는 강력한 대중들의 기대와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39 전석운 특파원, “북한 핵무장은 기정사실”, ≪국민일보≫, 2017. 7. 9.
40 2014년 2월 가난에 허덕이던 송파 세 모녀가 번개탄을 이용해 자살하였다. 이 사건 이후 5년이 지난 시점인 2018년 2월 통계청의 가계 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계층 간의 소득 격차가 더 커졌다. (이상이, “송파 세 모녀 사건 5년, 얼마나 달라졌을까?”, ≪프레시안≫, 2019. 2. 26.) 2020년 코로나19 전염병이 퍼지면서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이후 심각한 경제 위기에 놓여 있다. (“고용원 둔 자영업자, 코로나 이후 11%↓…“외한위기급충격””, ≪MBC 뉴스≫, 2021. 6. 7.)
41 2021년 5월 공안당국은 4.27시대 연구원 이정훈 연구원을 국가보안법 8조 회합ㆍ통신과 7조 반국가단체이적표현물 소지로 구속하였으며, ≪세기와 더불어≫를 출판한 김승규 씨(도서출판 민족사랑방 대표)를 재판에 넘기었으며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간부를 재판에 넘겼고, 충북지역 활동가 4명에 대해서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압수 수색을 하였다.
42 편집실, “청와대 문고리들 조작질 견인했나(3)”, ≪충북청년신문≫, 2021. 6. 28.
43 이주현 기자, “2006년 일심회 사건이라?”, ≪한겨레≫, 2008. 2. 4.
44 추광규, “국보법 위반 김형근 전 교사, 항소심도 ‘무죄’”, OhmyNews, 2010. 9. 3.
45 이세원 기자, “범청학련 의장 윤기진 징역 3년”, ≪연합뉴스≫, 2008. 8. 27.
46 윤성호, “최보경 교사 보안법 무죄, 정부는 7년 고통 사과해야”, OhmyNews, 2015. 3. 27.
48 한지훈 기자, “‘사노련 사건’ 오세철 교수 사실상 유죄 확정”, ≪연합뉴스≫, 2014. 8. 20.
49 김성욱 기자, “‘우리는 장군님 전사’ 김정일에 대한 충성 맹세―노무현 정부, 이 단체에 6,000만 원 지원” ≪월간조선≫, 2009. 6.
50 이상용 기자, “금강산서 ‘北 지령’ 받은 범민련 간부 3명 구속”, DAILY NK, 2009. 6. 24.
51 권오헌, “열아홉 달 젖먹이 엄마를 잡아 가둔 국가보안법”, ≪통일뉴스≫, 2011. 11. 19.
52 임재근, “이명박 시절 ‘간첩 누명’ 이병진 교수, 대전에서 출판기념회 진행”, ≪통일뉴스≫, 2018. 12. 8.
53 김만중 기자, “검찰, 출소 앞둔 윤기진 범청학련 의장 구속영장 신청했다가 기각돼”, ≪참여연대≫, 2011. 2. 4.
54 박민제 기자, “‘국보법 위반’ 진보연대 한충목 공동대표 집행유예 확정”, ≪중앙일보≫, 2014. 9. 29.
55 김동철 기자, “한상렬 목사, 방북前 결심 담은 편지 남겨”, ≪연합뉴스≫, 2010. 6. 14.
56 유명식 기자, “친북 카페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 운영 40대 구속”, ≪뉴시스≫, 2010. 12. 13.
57 구교형 기자, “법원 ‘연방통추 이적단체 맞다’”, ≪경향신문≫, 2011. 2. 23.
58 허환주 기자, “국보법 위반으로 대학생 1명 연행, 6명 자택 압수 수색”, ≪프레시안≫, 2011. 3. 21.
59 사건 2012노 816 국가보안법위반(찬양ㆍ고무 등), 법정 모독 등(구속) 항소심 제1회 청주구치소(262번) 추가건(만세! 3번).
60 박진석ㆍ이동현 기자, “‘왕재산’ 총책 김덕용, 1993년 김일성 만나 지령받았다”, ≪중앙일보≫, 2011. 8. 26.
61 신종철, “대법, 북한 찬양 글 신정모라 작가 징역 1년”, OhmyNews, 2013. 4. 21.
62 김원철 기자, “이적표현물 소지만으론 이적 행위 단정 처벌 못 해”, ≪한겨레≫, 2014. 4. 21.
63 박수진 기자, “리트윗으로 구속…국가에 얻어터진 ‘환자’ 박정근”, ≪한겨레≫, 2012. 1. 13.
64 김계연 기자, “4년 전 ‘GPS 간첩사건’ 대북사업가들 무죄 확정”, ≪연합뉴스≫, 2016. 4. 8.
65 서재준 기자, “檢, ‘무단방북’ 노수희 범민련 부의장 구속기소”, ≪뉴스1≫, 2012. 8. 9.
66 최재윤 수습기자, “‘국보법 위반’ 안영민 민족21 편집주간 집행유예 확정”, ≪민중의 소리≫, 2018. 7. 26.
67 전지성ㆍ최예나, “北탈출 쥔 서울정착 지원업무 ‘탈북공무원’ 간첩혐의 구속”, ≪동아일보≫, 2013. 1. 21.
68 문형구, “서울시 간첩조작 사건, 동아일보와 국정원의 특별한 관계”, ≪미디어 오늘≫, 2017. 9. 3.
69 김수헌 기자, ““국정원 ‘진보당에 내란음모 사건’ 제보자 있다” 영장에 적시”, ≪한겨레≫, 2013. 9. 2.
70 최영수 기자, “국보법 위반 집행유예 김형근 전 교사 또…구속기소”, ≪연합뉴스≫, 2013. 10. 24.
71 박형빈 기자, “‘종북콘서트 논란’ 황선 2심서 무죄…“증거부족””, ≪연합뉴스≫, 2020. 2. 18.
72 이창기, “박창숙 통일운동가 구속은 인권 포기, 통일 거부 선언”, ≪자주시보≫, 2021. 6. 29.
73 최석희 기자, “‘목사가 간첩’이라더니! 1월 6일 김성윤 목사 첫 재판, 간첩혐의 빠져”, ≪금천 in[人]≫, 2016. 1. 19.
74 김규남 기자, “‘노동자의 책’ 이진영 구속은 사상의 자유 탄압…석방하라”, ≪한겨레≫, 2017. 1. 6.
75 전현진 기자, “김일성대학 출신 IT 기술자와 프로그램 개발…남북 협력인가, 보안법 위반인가”, ≪경향신문≫, 2021. 5. 11.
76 김치연 기자, “‘국보법 위반 혐의’ 이정훈, 4.27시대연구원 위원 구속”, ≪연합뉴스≫, 2021. 5. 17.
77 김치관 기자, “경찰, 『세기와 더불어』 출간한 김승균 대표 압수수색, ≪통일뉴스≫, 2021. 5. 26.
78 강호석 기자, “또 국가보안법 회합ㆍ통신, 압수수색”, ≪민플러스≫, 2021.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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