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마오쩌뚱의 ‘인민내부의 모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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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찬 | 연구위원장

 

 

* 이 글은 대구의 현대사상연구소가 발간하는 ≪현대사상≫ 제20호(2018. 12. 31.)에 실린 글입니다.

 

 

머리말

 

마오쩌뚱은 현대 중국에서 애매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중국혁명과 중화인민공화국 건립의 주체이자 지도자로서 자리매김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건설에서 좌편향, 문화대혁명에서의 오류를 저지른 인물로 규정되고 있다. 이는 마오쩌뚱 사후 덩샤오핑 하에서 중국 공산당의 각종 결의를 통해 그런 규정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길을 걷고 있는데 경제적 측면에서는 자본가들에게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허용하는 등 사실상 자본주의의 길을 걷고 있고 경제의 주요 축인 국유기업 또한 자본의 이윤의 논리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적인 회사법 등의 시행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 중국에서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모순이 점차 심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모순의 심화는 다시금 마오쩌뚱을 불러내고 있다. 중국사회에서 마오쩌뚱이 다시금 회자되고 추앙되는 것은 현대 중국사회가 사회주의 시장경제 하에서 계급적 대립이 날카로워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중국은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시진핑이 주창하는 중국몽은 세계에서 중화민족의 부흥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민족주의 이념인데 이러한 부르주아적 현실을 가리기 위해 중국 지도부 또한 마오쩌뚱을 불러내고 있고 중국혁명 시기의 전통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적 현실에서 우리는 마오쩌뚱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대 중국사회에서 마오쩌뚱이 아무리 왜곡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관점에서 마오쩌뚱의 삶과 투쟁 그리고 노선의 의미를 정확히 드러낼 필요가 있다. 이 중에서 가리워지고 있는 것이 그의 사회주의 건설에서의 노력인데 인민내부의 모순은 마오쩌뚱의 사회주의 건설론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주요한 개념이다.

그러나 이 개념은 갑자기 제기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그 근원을 갖는 것이다. 즉, 이 개념은 중국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의 역사의 산물이며 동시에 맑스-레닌주의의 변증법적 논리학의 발전의 필연적 산물로서 제기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민내부의 모순 개념을 고찰하기에 앞서 변증법 자체를 논리학의 관점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으며 모순 개념의 의의를 드러내면서 인민내부의 모순 개념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1. 논리학으로서의 변증법

 

변증법이 하나의 논리학으로 성립한 것은 헤겔에 의해서였다. 그 이전에 논리학 하면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정립된 형식논리학을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동일률, 모순율 등을 내용으로 하는 형식논리학은 약 2천년 동안이나 지고의 학문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형식논리학의 맹점은 그것이 인식의 형식만을 다루고 있으며 인식의 내용, 현실적인 인식의 발전과정을 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어떤 대상의 인식에 있어서 그 대상의 내용, 질과 양, 변화를 담지 못하고 그러한 대상에 대한 주체의 인식에 있어서 인식의 논리적 형식이 올바른가 아닌가를 가리는 소극적인 역할에 머무른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돌파구를 낸 것은 칸트였다. 칸트는 이러한 형식논리학의 한계를 인식하고 실제 대상과 우리 인식의 내용으로서 주요한 범주를 제기했다. 가능성, 현실성, 필연과 우연, 실재성과 부정성 등등 칸트가 제기한 범주들은 단지 인식의 형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칸트는 이를 선험적 논리학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칸트는 이 과정에서 변증법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변증법을 인식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것이지만 이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율배반으로 규정하면서 불가지론으로 빠졌다.

그런데 헤겔은 이러한 칸트 철학을 비판적으로 소화하면서 변증법은 인식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배리가 아니라 형식논리학을 넘어서는 현실의 인식과정의 발전을 표현하는 새로운 논리학임을 입증했다. 헤겔은 변증법을 실제적인 인식과정, 대상에 대한 실제적인 파악, 형식만이 아니라 내용을 포섭하는 논리학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변증법이 긍정의 계기 속에 부정을 포함하는 것이며 변증법적 부정은 무익한 회의가 아니라 발전의 계기로서 부정임을 제기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모순 개념을 정립하면서 변증법을 확고한 기반 위에 세워냈다.

그런데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학은 관념론의 지반 위에서 이룩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헤겔의 변증법은 난해한 설명과 신비로운 접근방식으로 점철되어 있어서 현실의 사회변혁의 무기, 노동자계급의 무기가 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맑스와 엥엘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유물론적으로 개작하였는데 이를 통하여 비로소 변증법은 노동자계급의 변혁의 무기, 하나의 현실적인 과학이 될 수 있었다.

변증법은 헤겔, 맑스를 거치면서 하나의 논리학으로 정립되었다. 그 성립과정 자체가 형식논리학을 넘어서려는 노력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는데 변증법이 사고의 형식만이 아니라 실제 내용을 포섭하여 현실적인 실제적인 사고의 과정을 반영함에 따라 변증법은 사고, 인식에 대한 과학으로 성립하였다. 그리고 그에 따라 논리학에 대한 규정 자체가 변화하였다. 변증법이 논리학으로 성립되기 이전에 논리학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논리학은 2천년이 지나면서 그리고 중세에 그 남용으로 인해 근대에 이르러서는 배척되기에 이르렀다. 즉, 논리학의 위기가 발생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립한 변증법적 논리학은 논리학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논리학에 대한 규정 자체를 변화시켰다. 즉, 이제는 논리학은 사고에 대한 과학으로 자리매김되었다. 이러한 규정이 가능했던 것은 변증법이 논리의 형식을 넘어서서 사고의 실제적인 과정을 반영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변증법적 논리학이 관념론의 지반을 벗어나서 유물론의 지반에 섬에 따라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헤겔에게 있어서 변증법은 절대적 사고에 의한 개념의 자기운동이었다. 그러나 맑스와 엥엘스에 의해 정립된 유물론적 변증법적 논리학에 있어서는 이와 다르다. 유물론의 입장에서 변증법은 단지 사고의 논리, 개념의 자기운동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 외적 세계, 자연과 사회의 발전의 법칙을 반영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의 인식에 대한 고찰에서도 근본적 변화가 나타났는데 인간의 인식은 이러한 외적 세계, 자연과 사회에 대한 반영이라는 유물론적 관점이 정립되었다. 인간의 사고과정에서 나타나는 무수한 개념과 범주들 그리고 그것들의 논리적 결합과 전개과정은 실제로는 자연과 사회에서 나타나는 사물들의 전개과정, 발전과정을 반영한 결과임이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논리학과 인식론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동일한 것이라는 인식이 성립되었다. 인간이 이 세계를 인식할 때는 자연과 사회라는 외적 세계를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의 매개항이 있다. 즉, 개념, 범주 등의 매개를 거쳐서 외적 세계는 인간의 주관적 인식으로 들어오는 것인데 이 개념과 범주들은 곧 논리학의 개념과 범주이며 따라서 인식론과 논리학은 일치하는 것임이 파악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과정, 그리고 논리의 과정의 현실적 모습은 변증법적 과정이라는 점에서 변증법=논리학=인식론이라는 정식이 수립되었다. 이에 대해 레닌은 ≪철학노트≫에서 ≪자본론≫에서 논리학, 변증법, 유물론의 인식론 이 세 개의 낱말은 필요 없다: 그것은 하나이면서 동일한 것이다1)라는 정식을 수립했다.

변증법적 논리학은 이와 같이 논리학이면서 동시에 인식론이다. 이러한 이유는 논리학이 변증법에 이르러 인간의 실제적인 인식과정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변증법은 왜 인간의 실제적인 인식과정과 일치하는가? 이것은 변증법의 본질과 관련되는 것인데 그것은 외적 세계, 자연과 사회가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존재라는 점에 의거한다.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자연과 사회, 유동하는 대상들은 변증법이 아니고서는 정확히 인식될 수 없다. 그리고 운동 자체가 하나의 모순이기 때문에 변증법이 아니고서는 운동의 본질을 인식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변증법은 인간의 실제적인 인식과정과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헤겔의 변증법은 운동과 변화를 사고 자체에 국한시켰지만 유물론적 변증법은 운동과 변화를 존재에까지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인간의 사고가 변증법적 운동을 하는 이유는 외적 세계가 변증법적으로 변화, 발전하기 때문이다. 외적 세계의 반영으로서 인간의 인식! 그리고 그것의 변증법적 내용! 이것이 변증법=논리학=인식론의 일치라는 정식의 현실적인 내용이다.

 

 

2. 변증법적 논리학에서 모순 개념의 의의

 

변증법의 모순 개념은 형식논리학이 모순율로써 금지하는 논리적 모순이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지점에서 형성된 것이다. 외적 세계가 모순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인식은, 혹은 논리의 발전은 일정 단계에서 불가피하게 모순에 부딪히게 된다. 이에 대해 형식논리학은 A가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닐 수는 없다는 모순율로써 그러한 논리가 잘못된 것임을 판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현실의 대상에 존재하는 내적 모순의 운동은 불가피하게 논리적 모순을 야기한다. 예를 들면 고대 원자론은 이 세계의 운동을 원자와 공허(빈 공간) 혹은 존재와 비존재의 통일로서 설명했다. 또 운동의 본질에 대해 변증법은 연속성과 비연속성의 통일로 설명한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모순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형식논리학의 모순율은 무력했다.

이에 대해 헤겔은 변증법적 모순 개념을 정립하여 모순이야말로 자기운동의 원리임을 밝혔다. 헤겔은 모순 개념에 대해 사변적 사유의 본성은 … 오로지 대립된 계기들을 그것들의 통일에서 파악하는 데 있다2)고 하였다. 사변적 사유 즉, 변증법은 대립된 계기들의 통일로 파악하는 것이라고 헤겔은 말하고 있다. 여기서 헤겔은 모순 개념을 대립(물)의 통일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형식논리학에서는 성립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형식논리적 모순 개념을 넘어서고자 한 헤겔은 대립의 통일, 대립의 일치와 동일성을 주장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헤겔은 칸트를 결정적으로 넘어섰다. 칸트는 대립을 파악했으나 그에 대해 이율배반이고 배리라고 규정하면서 불가지론에 빠졌다. 그런데 헤겔은 바로 이 지점에서 대립(물)이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운동이 발생함을 (헤겔에 따르면 개념의 자기운동지만) 밝힌 것이다. 위가 있으면 아래가 있고 안이 있으면 밖이 있고 뜨거움이 있으면 차가움이 있고 등등, 이 세계, 자연과 사회의 모든 모습과 운동은 이러한 대립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서 헤겔은 그러한 대립이 상호 배척하는 것만이 아니라 상호 의존한다는 것, 심지어 상호 전화한다는 인식을 하였고 그 결과 대립들은 대립하는 동시에 통일되어 있다는 인식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대립의 통일은 단순한 통일이 아니라 심지어 동일성으로까지 나아가는 대립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대립을 내포하고 있는 일정한 대상은 자기 운동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헤겔은 운동의 원천으로서 변증법적 모순 개념을 정립했다.

이러한 변증법적 모순 개념에 대하여 레닌은 모순 개념이 변증법의 핵심임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변증법이란 대립물의 통일에 관한 학설이라고 규정될 수 있다.3) 이는 변증법의 전체적인 논리적 체계에 있어서, 변증법의 개념과 범주들에 있어서 모순 개념이 핵심임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변증법의 주요 법칙인 양적 변화의 질적 변화로의 전화는 그 원천으로 모순의 운동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부정의 부정 법칙은 그러한 모순의 운동이 갖게 되는 일정한 경향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변증법적 모순 개념이 결정적 의의를 갖는 것은 그것이 운동의 원천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레닌은 모순 개념의 의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로 모순이란 더 나아가 여기저기에 불쑥 일어나는 일종의 변칙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자신의 본질적인 규정에 있어서의 부정적인 것, 모든 자기운동의 원리인 것이며 이 자기 운동은 모순의 한 표현 이외의 그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 이로부터 나오는 결론은 그 때문에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오히려 운동은 현존하는 모순 자체이다는 것이다.4) 모순이 자기운동의 원리라는 것은 모든 대상에, 심지어 인간의 사고에도 모순이 존재하며 그 때문에 운동이 발생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운동은 현존하는 모순 자체이다라는 명제는 깊은 의미가 있다. 화살이 날아가는 간단한 역학적 운동은 화살이 일정한 시점에 그 지점에 있으면서(불연속성) 동시에 그 지점에 있지 않기(연속성)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즉, 간단한 역학적 운동조차 연속성과 비연속성이라는 대립물의 통일로서 발생하는 것이다. 미시적인 원자 내부를 보면 원자핵과 전자의 운동이라는 대립물의 통일이 원자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며 동시에 원자 내부의 운동을 규정하고 있다. 이렇듯 운동 자체는 그것이 모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시에 운동은 그러한 모순의 운동이다.

이러한 변증법적 모순 개념이 사회적 운동에 적용되는 것은 물론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대립의 통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운동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 어떤 개인이 의도하지 않은 어떠한 상황에 부딪혀서 곤란에 직면했을 때도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그 상황에 숨겨져 있는 모순을 파악하는 데서 가능하다. 그러한 모순을 파악하고 그 모순의 운동 속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운동은 그러한 모순을 회피하는 것(우편향)도 아니며 그러한 모순을 파괴하는 것(좌편향)도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운동은 그러한 모순의 운동의 필연성을 인식하면서 모순의 발전과정 속에서 그 모순을 지양하는 것이다. 모순은 파괴될 수 없다. 왜냐하면 모순이 파괴되면 대상 자체가 사라지는 것인데 이것은 불가능하다. 이 세계의 모든 물질은 파괴불가능하며 단지 다른 물질로 전화될 수 있을 뿐이다(물질의 불멸성).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운동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순의 운동에 따라 자본주의 사회를 사회주의 사회로 전화시키는 것이다. 즉, 모순의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 바로 노동자계급의 운동이다. 모순의 발전을 촉진하는 것은 한편으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이익의 적대적 대립을 의식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에 기초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주의 사회로의 전화의 필연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현실화할 사회주의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여기서 헤겔의 관념론적 모순 개념과 유물론적 모순 개념을 분명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헤겔의 관념론적 모순 개념은 개념 내부의 모순에 그친다. 그러나 유물론적 모순 개념은 자연과 사회 자체에, 물질적 대상 자체에 내적 모순이 있다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내적 모순의 운동이 곧 대상의 운동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3. 마오쩌뚱의 모순론에 대하여

 

마오쩌뚱의 ≪모순론≫은 변증법적 모순 개념을 대중화시킨 뛰어난 저작이다. 마오쩌뚱은 한편으로 1930년대까지의 중국혁명의 실제적 과정을 정리, 반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레닌의 ≪철학노트≫와 쏘련의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철학논쟁을 반영하여 ≪모순론≫을 집필하였다.

≪모순론≫은 중국혁명의 실제 과정을 반영하고 있는데 1920년대 말의 중국공산당의 좌, 우편향에 대한 투쟁의 과정, 그리고 1930년대의 장개석의 국민당군에 맞선 무장투쟁, 그리고 이어지는 항일투쟁 등의 실제적 과정을 모순의 관점에서 분석하여 변증법적 모순 개념을 심화, 발전시켰다. 또한 레닌의 ≪철학노트≫를 전적으로 참고하면서 모순의 보편성, 특수성 등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마오쩌뚱은 ≪모순론≫에서 두 가지 세계관, 모순의 보편성, 모순의 특수성, 주요 모순과 모순의 주요 측면, 모순의 여러 측면의 동일성과 투쟁성, 모순에서 적대가 차지하는 위치5) 등을 해명하였다. 이는 변증법적 모순 개념에 대해 전면적으로 접근한 것인데 마오쩌뚱의 뛰어난 점은 모순의 보편성만이 아니라 중국혁명의 실제 경험에 근거하여 모순의 특수성을 해명한 점이다.

다음은 중국혁명의 실제에 근거하여 마오쩌뚱이 논한 것이다. 질적으로 서로 다른 모순은 질적으로 서로 다른 방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무산계급과 자산계급과의 모순은 사회주의혁명의 방법으로 해결하며, 인민대중과 봉건제도와의 모순은 민주주의혁명의 방법으로 해결하며, 식민지와 제국주의와의 모순은 민족혁명전쟁의 방법으로 해결하며, 사회주의에서 노동계급과 농민계급과의 모순은 농업집단화와 농업기계화의 방법으로 해결하며, 공산당 내의 모순은 비판과 자기비판의 방법으로 해결하며, 사회와 자연과의 모순은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6) 이와 같이 마오쩌뚱은 중국의 현실에 근거하여 모순의 보편성을 넘어서는 특수성에 천착했던 것이다. 중국혁명을 실제적으로 지도하며 전략과 전술, 당건설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모순 개념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인식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오쩌뚱의 ≪모순론≫이 유명해졌던 것은 주요모순이라는 개념 때문이다. 이 개념은 1980년대의 한국의 사회운동에서도 회자되었던 개념이다. 주요모순이라는 개념은 중국혁명의 실제에 근거하고 있다. 즉, 1930년대 초반에는 주요모순이 봉건계급과 인민과의 모순으로 토지혁명이 주요 과제였다면 1930년대 후반에는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항일투쟁이 주요과제로 되었는데 이에 대해 마오쩌뚱은 주요모순 개념을 써서 이를 해명했던 것이다. 즉, 봉건계급과 인민의 모순이 1930년대 초반에 주요모순이었다면 이후는 일제와 중국인민의 모순이 주요모순으로 되었다고 파악하면서 항일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함을 역설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주요모순 개념은 중국혁명의 실제에 근거하여 창조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다.

그런데 마오쩌뚱은 여기서 더 들어가 모순의 주요 측면이라는 개념을 제기한다. 이는 어떤 사물 혹은 어떤 대상, 과정에 내재하는 모순을 구성하는 두 측면 중에서 어느 것이 일정한 시점에 주요한 성격을 띠는가를 해명하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중 어느 것이 우세를 점하고 있는가, 항일전쟁에서 일제와 중국인민 중 어느 편이 우세를 점하는가를 따져서 모순의 두 측면 중 어느 것이 주요한 것인가를 따지는 것이다. 이는 전술적으로 중요한데 만약 일제가 우세한 시기라면 중국인민의 과제는 전략적 방어에 집중해야 하며 반대로 중국인민이 우세한 시기라면 전략적 방어가 아니라 새로운 공세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모순을 구성하는 두 대립물의 어느 하나가 고정적으로 주요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주요한 측면이 바뀔 수 있다는 것으로서 매우 실천적인 관점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마오쩌뚱은 중국혁명의 현실에 근거하여 모순의 특수성에 천착하였다. 그리하여 유명한 모순에서의 적대의 문제 혹은 적대적 모순의 문제를 제기한다. 마오쩌뚱은 쏘련과 중국의 당내 투쟁에서 적대적 모순을 논한다. 쏘련 공산당 역사는 우리에게 레닌, 쓰딸린의 올바른 사상과 뜨로쯔끼, 부하린 등의 그릇된 사상과의 모순은 처음에는 적대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으나 그 후 적대적인 것으로 발전하였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역사에도 이러한 상황이 있었다. 우리 당내의 많은 동지들의 올바른 사상과 진독수, 장국도 등의 그릇된 사상과 모순 역시 처음에는 적대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으나 그 후 적대적인 것으로 발전하였다.7) 이러한 마오쩌뚱의 파악은 실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어떤 차이가 있을 때 그것이 동지들 내부의 문제인지 아닌지, 당내에서 포괄될 수 있는 문제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실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단순한 차이에 불과한가, 아니면 모순의 수준에 이르렀는가, 그리고 모순이라면 비적대적 모순인가 아니면 적대적 모순인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모순 개념을 현실의 정치 영역에 정확히 적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당내의 문제만이 아니라 적대적 모순 개념은 중국혁명의 전략과 전술에서 매우 중요했다. 특히 민족자본가의 문제가 그러했다. 민족자본가는 자본가라는 점에서 노동자계급과 착취, 피착취 관계로 얽혀있고 따라서 적대적 모순을 띠고 있다. 그런데 민족자본가계급이 공산당의 영도를 인정하고 항일투쟁에 참여하는 상황에서 민족자본가계급과 무산계급의 모순이 서서히 비적대적 모순으로 전화하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마오쩌뚱의 모순에서 적대의 문제는 실천적으로 중요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비적대적 모순 개념을 적용하여 마오쩌뚱은 중국혁명에서 절실했던 항일민족통일전선을 민족자본가계급을 포함하여 결성할 수 있었고 그에 힘입어 일제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4. 사회주의 건설론으로서 인민내부의 모순

 

인민내부의 모순이라는 개념은 마오쩌뚱이 1957년에 인민내부의 모순을 정확히 처리하는 문제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제기한 것이다. 이 논문은 1956년 쏘련 공산당 20차 대회에서 쓰딸린이 흐루쇼프에 의해 탄핵된 결과 발생한 헝가리 폭동에 대하여 마오쩌뚱이 충격을 받고 인민내부에도 모순이 있으며 그것을 정확히 처리해야만 사회주의 건설이 순조로울 수 있다는 점에서 쓰여진 것이다.

마오쩌뚱은 적대적 모순과 인민내부의 모순을 구별할 것을 주장한다. 다소 길지만 마오쩌뚱의 언급을 그대로 인용해 보기로 하자.

적아 간의 모순은 적대적 모순(對抗性的 矛盾)이다. 인민내부의 모순, 노동인민 간의 모순을 말하자면, 비적대적인 것이다. 피착취계급과 착취계급 간의 모순을 말하자면 적대적인 일면 이외에 또한 비적대적인 일면이 있다. 인민내부의 모순은 현재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러나 혁명의 각각의 시기와 사회주의 건설의 시기에서 서로 다른 내용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재의 조건 하에서, 소위 인민내부의 모순은 노동계급 내부의 모순, 농민계급 내부의 모순, 지식분자[지식인 혹은 인텔리겐챠를 가리킨다: 역자] 내부의 모순, 노동자와 농민 양 계급 간의 모순, 노동자ㆍ농민과 지식분자 간의 모순, 노동자계급 및 기타 노동인민과 민족자산계급 간의 모순, 민족자산계급 내부의 모순 등등을 포괄한다. 우리의 인민정부는 진정으로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부이고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정부이지만 그러나 그것과 인민 군중 간에는 또한 일정한 모순이 있다. 이 종류의 모순은 국가이익 및 집체이익[집단적 이익: 역자]과 개인이익 간의 모순, 민주와 집중 간의 모순, 영도[지도: 역자]와 피영도 간의 모순, 국가기관의 어떤 사업인원의 관료주의 작풍과 군중 간의 모순을 포괄한다. 이 종류의 모순은 또한 인민내부의 하나의 모순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인민내부의 모순은 인민의 이익에서 근본적으로 일치하는 것의 기초 위에서의 모순이다.8)

여기서 보이는 인민내부의 모순은 인민을 구성하는 다양한 계급과 세력 간의 모순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은 적대적 해결 방법 즉, 폐지나 타도의 방법이 아니라 교육과 설득이라는 다른 방법을 통해 해결해 나간다는 것이 마오쩌뚱의 주장의 요지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민내부의 모순이라는 개념은 실제로는 모순에서의 적대의 문제, 적대적 모순과 비적대적 모순 개념이 발전하여 제기된 것이다. 즉, 혁명과정에서 적대적 모순, 비적대적 모순으로 파악했던 것이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는 인민내부의 모순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한 것이다. 비적대적 모순이라는 개념은 적대가 없다는 소극적 개념인데 반해 인민내부의 모순이라는 개념은 소극적인 내용이 아니라 적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차이는 중국사회가 사회주의 건설과정에 들어섰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즉, 1957년이면 중국은 반제반봉건 혁명의 과제를 완수하고 공업기업의 국유화와 농업의 집단화라는 사회주의 건설과정에 진입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계급과 농민계급의 관계, 인민과 민족자본가계급의 관계, 관료와 인민대중과의 관계 등의 문제를 해명하는 것은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서 관건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즉, 인민내부의 모순을 해명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은 곧 사회주의 건설의 과정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국가관료의 관료주의와 인민대중 간의 모순이 마오쩌뚱에 의해서는 인민내부의 모순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는 적절한 파악인데 관료는 한편으로는 인민에 봉사하는 정부에서 활동을 하는 존재이면서 인민의 문맹과 무지라는 조건에서 위압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관료주의의 문제를 사회주의 사회에서 곧바로 적대적 모순으로 파악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레닌 또한 쏘련에서 관료주의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는 정치혁명의 방법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임을 지적한 바 있다. 즉, 사회주의 사회에서 관료주의는 인민의 문화수준이 높아지면서 인민 대다수가 행정에 참여하면서 극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임을 논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마오쩌뚱이 사회주의 중국에서 관료주의와 인민대중 간의 모순을 인민내부의 모순으로 파악한 것은 적절하다.

이와 같이 인민내부의 모순 개념은 논리적으로 보면 적대적 모순, 비적대적 모순 개념이 발전한 것인데 그것은 단순한 논리적인 것을 넘어서서 사회주의 건설론을 제기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민내부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곧 사회주의 건설의 진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동자계급과 농민계급 간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은 한편으로 생산력 발전이 고도화되고 다른 한편으로 농민의 소규모 자영생산이 대규모의 집단적 농업으로 발전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또 인민과 민족자본가계급의 모순은 민족자본가들이 공사합영(公私合營)9) 등의 방법으로 사회주의적 개조를 받아들이고 사회주의 건설노선을 승인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자본가가 사회주의 개조에 순응하는 것인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공산당과 인민의 압도적인 힘과 헤게모니에 기인한 것이며 매우 예외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또 마오쩌뚱은 노동계급 내부의 모순 또한 인민내부의 모순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것의 주요한 것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간의 대립이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간의 대립을 해결하는 것은 한편으로 생산력이 고도화되면서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들의 문화수준이 높아지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그리하여 노동 자체가 인간의 제1의 욕구가 될 때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간의 모순은 해결될 수 있는데 이는 다름 아니라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인 사회주의 사회가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 사회로 전화되는 것이며 이는 곧 사회주의 건설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민내부의 모순의 해결과정은 곧 사회주의 건설에 해당하는 것이며 역으로 사회주의 건설을 인민내부의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파악은 변증법적 모순 개념을 심화, 발전시킨 마오쩌뚱이기에 가능했던 것인데 맑스-레닌주의의 이론적 보고에 중요한 공헌을 한 것이다.

 

 

결론

 

현대 중국에서 마오쩌뚱은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길을 걷는 현대 중국에서 마오쩌뚱을 포함한 20세기 사회주의는 구사회주의로 치부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현대사회주의라 일컫고 있다. 그러나 현대 중국사회에서 이론과 실천의 괴리는 극단적으로 심화되고 있고 덩샤오핑 이후의 이론들은 변증법이 아니라 절충주의로 점철되고 있다.

마오쩌뚱의 인민내부의 모순 개념은 변증법적 모순 개념의 발전의 정점에 있다. 따라서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논리학으로서의 변증법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전제가 된다. 그러나 21세기 지금 한국사회에서 변증법을 구사하는 운동세력을 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쏘련 붕괴 후 사상 자체가 무너지면서 변증법 또한 구석에 처박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이론가들은 혁명의 대수학이라 불리던 변증법을 매장하기에 바빴다. 쏘련 붕괴 후 밀려들었던 알튀세르, 푸코, 들뢰즈 등의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서유럽 철학자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 모두는 공통적으로 변증법을 부정하고 있고 또 20세기 쏘련 사회주의를 부정하고 있다. 즉, 이들은 부르주아 당파성에 입각하여 사회주의의 역사와 논리를 매장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제는 이러한 상황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변증법은 결코 죽은 도식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유동하고 변화, 발전하는 외적 세계, 자연과 사회를 정직하게 반영하는 논리가 변증법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진보는 일직선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그재그로, 나선형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역사이다.

한국사회에서 변증법을 되살리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한국사회에서 변증법의 부활은 필연적이다. 일차적으로 변증법을 자신의 것으로 하는 운동의 발전을 이루어 내는 것을 기초로 변증법적 논리학에 대한 인식을 심화하고 변증법=논리학=인식론의 일치라는 정식을 정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오쩌뚱은 현재 중국사회에서 뒷방늙은이 신세이지만 중국사회에서 계급모순을 비롯한 각종 모순이 심화되면서 마오쩌뚱은 다시금 역사의 무대로 불려나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다시금 중국이 사회주의로 방향을 튼다면 마오쩌뚱의 인민내부의 모순이라는 개념은 부활하여 중국사회주의 건설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노/사/과/연]

 

 


1) V. 레닌, ≪철학노트≫, 논장, 1989, p. 296.

 

2) G. 헤겔, ≪논리학≫, V. 레닌, ≪철학노트≫, 논장, 1989, p. 59에서 재인용.

 

3) V. 레닌, 같은 책, p. 178.

4) 같은 책, p. 87.

5) 마오쩌뚱, ≪모순론≫(≪모택동 선집≫ 제1권), 범우사, 2001, p. 360.

 

6) 마오쩌둥, 같은 책, p. 372.

7) 같은 책, p. 396.

8) 마오쩌둥, “인민내부의 모순을 정확히 처리하는 문제에 관하여”, ≪노동사회과학 제3호: 맑스-레닌주의와 사회주의의 쟁점≫, 문영찬 역, 노사과연, 2010, pp. 393-394.

9) 공사합영은 중국의 사회주의 건설에서 나타난 독특한 방법인데 민족자본가가 기업의 소유권을 국가에 넘기고 그 대가로 일정 기간 국가로부터 이자를 받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민족자본가 자신은 그 기업의 경영자로서 경영능력을 국가를 위해서 쓰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은 마오쩌뚱 당시는 순조롭게 이루어졌으나 이들 민족자본가들은 경제적 실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덩샤오핑 하에서 이들은 다시 지배계급으로 복권되는 길을 걷는다.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2월 2nd, 2019 | By | Category: 제148호(2019년 2월), 이론 | 조회수: 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