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이론] 마흐주의ㆍ아베나리우스주의의 변종들에 대하여 (하)

 

한동백 | 회원

 

[차례]

머리말

1. 마흐주의ㆍ아베나리우스주의란 무엇인가?

  1-1. 세계 요소

  1-2. 원리적 동격

  1-3. 경험일원론

2. 감각소여이론과 주관주의적 논리학

3. “감각소여이론을 극복한” 감각소여이론의 변종

  3-1. L. J. J. 비트겐슈타인

  3-2. W. V. O. 콰인

결론: 철학의 근본문제의 의의

                           ㆍㆍㆍ <이번 호에 게재된 부분>

 

 

3. “감각소여이론을 극복한” 감각소여이론의 변종

 

앞서 다룬 분석철학의 전기(前期) 흐름은 논리학의 여러 대상을 오로지 운동하지 않는, 완전히 정지해 있는 추상적 보편자로 다루었다는 것에 그 근본적 한계가 있었다. 이는 형식논리학의 한계와 맞닿는 것이다.

 

오래전 헤겔은 논리학에서 형식논리학을 절대시하는 학자들이 각자 형식주의를 고수하는 선에서 그것 체계의 내재적 모순을 직시하는 순간, 그것을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른바, 칸트의 이율배반과 같은―으로 간주해 버린 후, 그 모순에 겁먹고 학적 체계성 범위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철학’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하였다. 오성적 인식은 논리적 사유의 추상적 제 대상의 내적 모순을 드러낼 수 있는 힘을 갖추고는 있지만, 그러한 모순을 극복할 힘은 갖추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이는 변증논리학의 발전사와 관련이 있다. 변증논리학이 그 자신의 확고한 토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형식논리학의 내재적 한계성이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변증논리학은 오로지 이러한 토대 위에서 ― 형식논리학의 내재적 모순이 학문적 인식으로서의 통일의 계기가 되는 한에서 확고한 논리학으로서 세계에 자리 잡을 수 있다.

 

헤겔은 형식논리학적 지(知)의 한계를 오성적 사유 또는 오성적 인식의 한계라고 하였다. 그런데 헤겔은 이 학자가, 즉 형식논리학자 자신이 ‘각자 형식주의를 고수하는’ 필연적 계기를 현실의 역사가 아니라 사유의 역사로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의 저서 ≪정신현상학≫은 이에 관한 난해한 해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헤겔이 말한 그 사유의 역사란 현실의 역사를 반영한다. 오늘날 숱하게 많은 부르주아 철학가의 이른바 ‘학문’적 공황(恐惶) 증세는 자본주의 사멸기, 전반적 위기의 심화 속에서 부르주아―망해 가는 사회를 애써 부여잡고 놓지 않으려는 계급―가 여전히 자본주의 생산력을 관리할 수 없음을 드러내는 한 현실적 측면, 그리고 이 현실적 측면에서 비롯된 부르주아의 위축된 심리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의 반영으로서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그들의 위축된 심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 주지는 않는다. 현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오히려 그것을 매우 적극적으로 은폐하는 것으로서의 이데올로기라는 성격 또한 지닌다. 우리가, 자기 앞에 놓인 현실을 부정하는 수많은 사례를 숱하게 볼 수 있듯이, 현실적 모순을 머릿속 가상을 통해 언제든 ‘없는 것’으로 취급할 수 있는데, 이러한 ‘없는 것’임을 정당화하는 부르주아의 노력도 언제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러한 은폐의 과정은 지난한 ‘학문적 노력’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 즉 사기도 일정 정도 그 ‘내적인 체계성’이 서야지만 비로소 사기로서 기능할 수 있다. 따라서 반동적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현대에 들어서 철학만이 아니라 갖가지 사회과학 분야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번잡한 이념으로 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철옹성과도 같은 강단 패거리의 형성은 더 효율적인 환경에서 이러한 작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앞으로 다룰 <“감각소여이론을 극복한” 감각소여이론의 변종>이라는 것도 바로 언급한 류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전기 분석철학과 후기 분석철학[1]이 두 흐름은 논리실증주의와 일상언어학파의 이론적 변동을 모두 포괄한다.은 모두 극단적으로 형해화(形骸化)된 ‘철학적 서술’, 주관적 관념론에 기초해 있으며, 근본적으로는 부르주아의 이해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동일성을 지니고 있지만, 후기 분석철학은 전기보다 이론적으로, 존재―그들이 ‘형이상학적 주제’의 대상이라 간주하는―와 인식, 그리고 논리학에 대한 더욱 암담한 전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는 1940년대 중반-1950년대 이후 독점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부르주아 국가적 관리와 개입의 대대적인 강화를 반영한다.[2]1920년대 말-1930년대 초부터 자본주의에 대한 국가적 개입이 증대하기는 하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기조가 가일층 강화되었다. 즉 1870-80년대까지의 부르주아 철학이 사회의 생산력을 온전히 관리할 수 있다는 ‘진취성’을 일정 반영하였음에 반해, 분석철학의 후기적 흐름은 자본주의 생산력 관리에서 부르주아의 무능에 대한 정당화가 노골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분석철학의 전기적 흐름은 이 사이에 머무른다.

 

오늘날까지 후기 분석철학에 영향을 준 거론되는 이데올로그는 셀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비트겐슈타인과 콰인이다. 두 이데올로그의 견해가 부르주아 철학 체계, 그중에서도 현대 주관적 관념론의 ‘발전’에서 어떠한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는 수많은 부르주아 철학사가가 정리한 바 있다.

 

먼저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부르주아 철학자인 M. K. 뮤니츠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이 운동[논리실증주의: 인용자]은 영향력이 있었고 응집력을 가졌던 자신 초기의 위상을 이제는 상실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이 나타나게 된 것은, 부분적으로는 논리실증주의 철학의 가장 핵심에 내재해 있는 약점들이 많이 노출되었고, 치명적인 비판적 검토가 많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비판들 가운데서도 특히 논리실증주의자들이 비중을 두고 의거하였던 유의미성의 기준(검증 가능성의 원리)의 해석과 자질에 관한 문제가 많았다. 다른 한편 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출현과 그 영향, 이러한 유형과는 다르지만 옥스퍼드 학파의 일상언어 철학의 번성, 그 밖의 논리학과 언어학의 발달 등은 분석철학의 주요 표본으로서 논리실증주의가 차지하고 있었던 그 중심적인 위상을 빼앗아버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분석철학자들이 골몰하게 된 관심들은, 전쟁 기간 중에 있었던 관심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고, 모든 실천적이고 실제적인 목적에서 볼 때 논리실증주의는 효과적인 철학적 운동으로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3]M. K. 뮤니츠, ≪현대 분석 철학≫(개정판), 박영태 역, 서광사, 1996, p. 433. (강조는 인용자. 이하 동일.)

 

또 다른 부르주아 철학자인 S. P. 슈워츠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일상언어철학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옥스퍼드 철학자들과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논리 원자주의자들과 논리실증주의자들보다 더 개방적이고, 더 인도적이며, 덜 조직화된 방식으로 철학에 접근했다. 그들의 방법은 전통적인 방법과 문제를 일소하고, 그런 방법과 문제들을 신화라 부르며, 전통 철학의 헛소리로 가득한 전문적인 단선적 논변을 지적함으로써 더 느슨하면서 훨씬 더 현대주의적인 형태로 철학을 대변했다. 이것은 양차 세계대전 후 불황에 빠졌다가 그 뒤에는 미국과 소련 간의 무시무시한 핵 교착상태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1960년의 젊은 지식인들은 후기 비트겐슈타인과 오스틴의 주문이 자신들을 황홀케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 미국에서는 많은 철학자가 옥스퍼드 철학자들과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영향을 받았다. 존 설(John Searle)은 오스틴의 언어철학을 확장하고 해설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바쳤다. […] 스탠리 캐밸(Stanley Cavell)의 논문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것을 의미해야 하는가?(“Must We Mean What We Say?”, Cavell, 1964/1958)”는 일상언어철학의 방법에 대해 대단히 칭찬하면서 옹호하고 있는 논문이다.[4]S. P. 슈워츠, ≪분석철학의 역사: 러셀에서 롤스까지≫, 한상기 역, 서광사, 2017, pp. 232-233.

 

이러한 ‘호평’을 받음에 있어 콰인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대다수 부르주아 철학가는 1950년대 이후의 분석철학, 즉 후기 분석철학이 모든 대응적 소여론을 극복하였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대상에 관한 어떠한 사유 규정을 말하는 순간 그것은 소여된 대상으로서의 (정신적인) 감각소여를 인정하는 것이고, 또한 그러한 대상을 기초로 하여 (어떠한 방식으로든) 보편화된 실천 양식이 뒤따른다는 것을 승인하는 순간, 그것은 (인식론적 의미에서의) 대응을 긍정한 것이 된다. 실은 이러한 감각소여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그것이 <변증법과 논리학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어떻게 서술될 수 있는가>라는 방향에서 고찰될 때라야 비로소 중요한 주제로서 다루어질 수 있다. 이를 거꾸로 말한다면, 어떠한 것이 ‘소여’되고, 그것에 ‘대응’된 ‘모종의 실천 양식’이 발생한다는 것만을 언술하는 것은 철학 체계에서 극히 제한된, 추상적인 서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각소여에 대한 이러한 추상적 취급만으로는 인식의 제반 법칙을 설명하기 벅찬 것을 넘어 그 어떠한 유실(有實)한 평가 ― 앞서 언급한 이론에 대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평가가 오고 가기도 힘들다. 이는 마치 사과 껍질의 화학적-생물학적 특성을 구체적으로 연구하기에 앞서 그것의 색상이 어떠한 빛깔을 머금은 붉은색인가 따지는 것과도 같은 막연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과 껍질의 색을 추상적 범주로써 분류하는 것이 그 껍질의 구체적 성질을 연구하기에 앞서 행해지는 과학적 실천의 일종임은 자명하지만, 결과적으로 사과 껍질의 구체적 성질과 빛의 일부 물리적 성질이 체계적으로 밝혀지지 않는 이상 사과 껍질의 색은 그저 추상적인 색상 범주로서의 그 ‘색’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현대 주관적 관념론이 유물론을 자칭하면서 말하는 감각소여이론이란, 바로 이러한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것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갖가지 논변의 집합에 불과하다. 중요하게 다룰 만한 것―내가 제2장에서 언급한 ‘감각소여’를 상기하는 일환으로서 중히 다루어져야 하는 것―은 현대 주관적 관념론 진영에서 감각소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자들 역시 실제로는 감각소여를 전제한 논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는 것이며, 두 집단 모두 객관대상에 대한 인식의 가능성을 부정하거나, 객관적 실재를 주관적 범주와 동격으로 놓고 종국적으로는 주관적 범주만이 실재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부르주아 철학사가들은 그들 견해의 이러한 측면을 일절 다루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현대 주관적 관념론자 사이에서 오고 가는 이 ‘감각소여이론’이란, 실제로 ‘감각소여’를 다루는 이론이라기보단, 인식주관이 그 자신의 주관적 사유 규정, 주관적 범주만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다양한’ 형태로 반복하는 것이거나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객관)대상 그 자체임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분석철학의 후기적 흐름에서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비트겐슈타인과 콰인이라는 학자 각각의 견해를 살펴봄으로써 그것이 이전의 흐름과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으면서, 그저 전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노골화된 주관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3-1. L. J. J. 비트겐슈타인

철학사에서 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대표적 ‘공헌’은 기존 분석철학의 ‘이상(理想)’―오로지 기호를 통해 무모순의 형식논리가 확립될 수 있다는 믿음, 단일한 통사론의 확립으로써 철학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헛된 것임을, 특히 부르주아 논리학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대상언어-메타언어 이중 체계의 내재적 모순을 폭로[5]그러나 오늘날 대다수 분석철학자는 아직도 이 이중 언어 체계에 의존하고 있다.하였다는 데 있다. 그가 폭로한 모순을 지녔던 입장은 그가 ≪논리철학논고≫를 냈을 때만 하더라도 그가 고수하던 것―수리적-기호적 수단을 통해 완전한 논리를 구상해 낼 수 있다는 환상, 전기 분석철학의 ‘이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귀결로써 ‘확립’된 그 자신의 ‘이론’―중기 철학부터 주요한 주제로 된 ‘언어놀이(Sprachspiel)’―을 통해 일관된 체계를 내적으로 보증하는, 또는 보증해 가는 것으로의 학(學), 인식의 가능성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그에게 있어 전기 분석철학의 ‘이상’이든, 개별적 지식을 수미일관한 체계로 통일해 나가는 학의 성립을 희구하는 입장이든, 이러한 것은 “질서와 이상[≪철학적 탐구≫(이하 ‘≪탐구≫’)에서 비트겐슈타인이 항시 부질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 인용자]을 우리의 실제 언어에서 발견해야 한다고”[6]L. J. J.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이승종 역, 아카넷, 2016, 제105절. 믿는 한 경향에 불과하다. 이러한 점에서 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은 양극단을 달리는 체계이기도 한데, 그것은 논리학을 서술함에서 그 모든 부분을 고정불변의 추상적 범주로 다루는 것이 필연적으로 근본적 모순에 도달할 수밖에 없음을 간파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이 모순에서 도출되는 절대적 이율배반의 늪에서 헤겔적 의미로서 <오성적 인식의 한계>에 머물러 유아론으로 빠져든다는 것에 있다.

 

우리는 개별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대상을 취급함에서, 다루어지는 대상의 특수성을 반영한 범주로서의 논리적 범주 형성을 매우 중요한 작업으로 여긴다. 이러한 논리적 범주를 기초로 하여 우리는 대상에 관한 추상적인 파악으로부터 구체적인 파악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대상에 관한 더 많은 연관 방식을 관찰할 수 있게 되고, 이는 필연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논리적 범주 체계의 고도화를 야기한다. 이로써 논리적 범주 역시 추상적인 인식을 반영한, 동시에 그 추상적인 인식의 조건이 되는 추상적인 범주로서 점차적으로 구체적인 범주, 즉 (구체적) 개념으로 나아가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구체적인 것은 그보다 더 구체적인 연관 방식과의 대립에서는 추상적인 것으로 전화하게 된다. 예를 들어 물이 아래로 흐른다는 것을 만유인력의 법칙을 통해 설명하는 것은, 그저 물이 원래 아래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물의 본성’을 거론하는 것보다는 더욱 구체적인 인식이며, 이때 만유인력의 법칙을 통해 물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구체적인 것으로 된다. 그러나 이는 상대성이론을 통해 지구 내 물의 흐름을 파악하려는 시도와 대립해 있을 때는 추상적인 것으로 전화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의 전개는 한편으로 이 과정, 이 매개를 지양(집약)한 것으로서의 직접적인 것을 정립해 내게 된다. 이러한 것 중에서 언어적인 규정을 받는 것이 과학사의 발전을 통해 형성된 여러 낱말, 문장, (통사적 구조까지 포괄한) 기타 문법 등이다. 논리적 범주는 이렇게 변화ㆍ발전한다. 논리학은 이러한 인간의 역사적 실천으로써 불가피하게 개별적으로 규정된 (응용)논리학으로서 발전해 간다. 이것이 대상에 관한 일반적인 취급으로서 다양한 학문이다. 개별적 논리학, 즉 다양한 응용논리학은 이제 특수한 대상의 객관적인 존재 양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은 그것이 다루는 대상의 제 특성에 따라 우리가 흔히 자연현상에 관해 연구하는 수많은 방법론을 포섭해 낼 수 있는 체계로 성장해 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논리학의 이러한 발전양식은 숱하게 등장한 세계 과학사에 관한 문헌을 통해서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교통이 발달하기 전, 즉 동서양 간 소통―간단한 경제적 교류부터 학문적 교류까지 포괄하여―이 가능해지기 전부터 각자 인류는 자연의 여러 대상에 대한 일반적인 논리적 범주를 정립해 왔으며, 그것 내용의 서로 간 유사성이 여러 측면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인식주관이 경제적 활동을 해 가는 과정에서 형성해 낸 주관적 범주, 그리고 이와 연관된 객관적인 것의 제 범주의 모든 연관 방식을 통틀어 이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논리학이라는 것이 인간의 사고작용과도 분리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래서 E. V. 일리옌코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변증법적 논리학은 우리의 의지나 의식에 전혀 의존하지 않으면서 필연적인 운동과 계기로 진행되는 과학적 사고작용의 발전과정을 그 목표로 삼는다. 우리의 의식과 의지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을 반영하고 개념으로 재생산(대상의 정신적 재현)하는 것, 다시 말해 나중에 사실로(실험이나 실천으로) 재창출할 수 있도록 먼저 대상을 개념의 운동논리로 재현하는 것이 바로 논리학이라면, 논리학은 응당 사고가 어떻게 전개되고 발전되는가를 보여 주어야만 한다. 이렇게 볼 때, 논리학은 사고작용에 관한 이론적 표상 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 […] 변증법적 논리학은 자연을 창조적으로 변형시키는 주관적 활동의 보편적 체계일 뿐만이 아니라, 항상 객관적 요구와의 연관하에서 주관적 활동이 수행되는 장()인 자연적 혹은 사회역사적 물질의 변화과정에 관한 보편적 체계이기도 하다.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바로 이러한 점이 변증법, 현대의 과학적(유물론적) 세계관의 인식론 그리고 논리학의 동일성(단지 ‘통일’이 아니라 명백한 동일성, 완전한 일치)에 관한 레닌 테제의 실질적인 요점이다.[7]E. V. 일리옌코프, ≪변증법적 논리학의 역사와 이론≫, 우기동ㆍ이병수 역, 연구사, 1990, pp. 12-13.

 

논리학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정의는 이와 정반대이다. 그는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논리학은 어떤 의미에서 고상한 것인가? 왜냐하면 논리학은 특별한 깊이―보편적 중요성―가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논리학은 모든 학문의 토대에 놓여 있는 듯이 보였다. ― 논리적 고찰은 모든 사물의 본질을 연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물들을 그 토대에서 보려고 하며, 실제 이런저런 방식으로 일어나는 일에는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 ― 그것은 자연현상의 사실에 대한 흥미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고, 인과적 연관을 파악하기 위한 필요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경험적인 모든 것의 토대나 본질을 이해하려는 열망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우리가 이 목적을 위해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야 한다는 말은 아니며, 오히려 우리가 그것으로 새로운 어떤 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탐구에서 본질적인 사항이다. 우리는 이미 눈앞에 있는 명백한 어떤 것을 이해하고자 한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8]≪철학적 탐구≫, 제89절.

 

“논리적 고찰은 모든 사물의 본질을 연구”하지만, 그것은 “자연현상의 사실에 대한 흥미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며, “인과적 연관을 파악하기 위한 필요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논리적 고찰이 목표로 하는 “모든 사물의 본질을 연구”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경험적인 모든 것의 토대나 본질을 이해하려는” 것이 어떻게 자연현상의 사실과 대상의 인과적 연관과 무관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그리고 개별 응용논리학의 발전은 대상에 관한 논리적 범주의 발전을 그 자신의 조건으로 가지면서도 그것을 근거하는 상보적 관계에 있다. 그렇다면 논리학을 통해서 “새로운 어떤 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가? 이는 비트겐슈타인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과 대상의 연관 방식을 규명하는 것 간의 완전히 분리를 염두에 두었음을 입증한다. 이렇게 논리학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규정은 전체적 연관 속에서 살펴볼 때 정합성이 극도로 떨어지는데, 이는 그간 그가 비판하였던 분석철학자들의 논리학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취급 방식과 하등의 차이도 없다.

 

그는 이어서 과학의 체계적 발전에 완전히 독립해 있는 ‘철학’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우리의 고찰이 과학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맞는 말이었다. ‘우리의 선입견과는 반대로 이러저러한 것을 생각할 수 있다’는 느낌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든지— 우리의 관심사 밖이다. (생각함을 정령(精靈)으로 간주하는 견해.) 그리고 우리는 어떤 종류의 이론도 내놓을 수 없다. 우리의 고찰에는 어떤 가설적인 것도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설명[사실에 대한 과학적 설명: 역자]은 사라져야 하고, 기술(記述)만이 그 자리에 들어서야 한다.[9]≪철학적 탐구≫, 제109절.

 

그는 철학은 이른바, ‘기술(記述)’이라는 것만을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철학적 문제라는 것은 ‘기술’(그것도 다름이 아니라 ‘일상언어’에 대한 것으로서)의 문제이다. 이 ‘기술’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취급되어 온 것이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체계상에서 그것은 바로 언어놀이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에 따르면 “‘언어게임’이라는 낱말은 언어를 말하는 일이 어떤 활동의 일부, 또는 삶의 형식(Lebensform)의 일부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10]≪철학적 탐구≫, 제23절.하는 것이다. ‘삶의 형식’이 인간이 사회적 활동을 함에서 얻는 관계항의 총체, 또는 그것의 제 형식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제반 과학 실천과 그 지식은 삶의 형식에 어떻게든 연관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는 ≪탐구≫에서 ‘삶의 형식’이 과학적 실천, 여러 과학적 주제와 독립될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해 일절 다루지 않는다.[11]‘삶의 형식’은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 필수적인 개념으로 거론되기는 하지만, 이 개념은 그의 저서에서 자주 쓰이지 않았을뿐더러, 제대로 된 개념 … Continue reading

 

나는 이 주제에 대해서 조금 더 언급해야만 하겠다. 먼저 ‘삶의 형식’에 관한 앞선 관점을 그대로 가지고 간다면, 과학 실천과 그 성과가 가져오는 여러 (인류) 삶의 내용이 ‘삶의 형식’의 범주 내에 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나중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과학―인류사에서 생산력의 진보를 추동하며, 동시에 생산력의 진보를 통해 촉진되는―이 우리의 삶의 형식을 구성한다는 명확한 사실과 비트겐슈타인의 견해를 결합한다면 비트겐슈타인 주장의 타당성이 크게 흔들리게 된다. 따라서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추종자들은 ‘삶의 형식’에 과학적 실천, 제반 과학의 성과와 관련된 모든 것을 제외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에서 대관절 과학적 사실과 완전히 독립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라도 할 수는 있긴 한가? 과학과 관련된 내용이 ‘삶의 형식’의 내적 계기가 있음을 부정할 수 있는 수단은 인류사와 과학사의 강력한 연관성의 역사적 증언 아래에서 존재할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를 부정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제시한 바 없다. 그리고 그렇다고 한다면, 제반 과학 분야 역시 ‘언어놀이’의 일종이라고 간주하기에 이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예를 들어, 생물학은 ‘생물학의 언어놀이’이며, 경제학은 ‘경제학의 언어놀이’이고, 사회학은 ‘사회학의 언어놀이’이다.

 

이제 언어놀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이것들, 다시 말해 다양한 언어놀이는 서로의 언어놀이 규칙에 그 어떠한 제약성도 부여하지 않는, 서로에 대해 분절된 것으로서 다루어져야만 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그의 언급에서 유추할 수 있다:

 

우리의 명료하고 단순한 언어게임들은 미래에 언어를 규제하기 위한 예비 연구들이를테면 마찰과 공기 저항을 무시한 최초의 근사치들이 아니다. 오히려 언어게임은 유사성과 비유사성을 통해 우리 언어의 연관 관계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비교의 대상(Vergleichsobjekte)으로서 존재한다. 요컨대 우리는 범례를 있는 그대로, 즉 비교의 대상으로 ―현실이 그에 대응해야 하는 선입견이 아니라, 일종의 척도로서― 설정할 때만 우리 진술들의 부당함이나 공허함을 피할 수 있다.[12]≪철학적 탐구≫, 제130-131절.

 

서로 각이한 “명료하고 단순한 언어게임들”이 미래에 있을 언어의 규정적인 한계, 즉 그것의 내적인 한계성을 규정짓는다면 그것은 당연히 미래에 있을 언어―그것이 의미하는바 내용과 형식을 모두 포괄한―를 규제하는 것으로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로에 관해 맺는 연관이라는 시야에서 이것을 바라본다면, 이는 ‘마찰과 공기 저항을 고려한 최초의 근사치’(특수)에 대한 “마찰과 공기 저항을 무시한 최초의 근사치”(보편)의 관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언어놀이들이 서로를 제약하는, 상호 연관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도출할 수 있다. 반면 그 반대―비트겐슈타인이 ‘언어놀이’에 대해 의도하고 있는 그것으로서―일 경우 서로는 분절된 것, 즉 “비교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하는 서로에 대해 상이한 무언가이다.

 

오늘날까지의 과학 발전사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개별과학이 단순한 것에서 고도로 복잡한 체계로 나아가면 갈수록 그것의 발전에서, 그것과 상이한 분야의 과학적 지식을 필연적으로 요구하면서, 이러한 상이한 분야와의 통일이 전개된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각 분야의 논리적 범주―낱말, 문장, 특정한 구문 체계로 표현되는 것 등을 포괄한 것으로서―는 불가피하게 연관을 이루는 대립적 분야의 내적 제약성을 규정한다. 반대로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그것들은 그저 서로에 관해 ‘비교의 대상’으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놀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가족 유사성(Familienähnlichkeit)’과 (삶의 형식에서의) ‘일치(Übereinstimmung)’라는 개념을 고안하였는데, 특히 ‘가족 유사성’은 언어놀이들 또는 언어놀이를 촉발한 과정들 각각이 서로에 대해 공유하는 동일성이 있다는 주장을 겨냥해 있다. 예를 들어 ‘생물학’, ‘경제학’, ‘사회학’ 간의 ‘공통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것이 다루는 대상이 생명체와 관련된 활동과 연관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 외에도 더 많은 (아직은 추상적인) 공통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이를 부정한다: “만약 당신이 그 게임들을 본다면, 그 모두에 공통된 어떤 것이 아니라 유사성들, 연관성들 그리고 이것들의 전체적인 연속을 보게 될 것이다.[13]≪철학적 탐구≫, 제66절. 여기서 말하는 ‘유사성’, ‘연관성’, ‘전체적인 연속’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모든 놀이 또는 일부 놀이가 하나의 보편성을 공유할 수 없고, 그저 한 놀이가 다른 한 놀이와의 직접적 관계 속에서 형성하는 ‘공통성’만이 있으며, 이 ‘공통성’이 각자에 걸린 사슬이라는 공간에 엮여 있는 동시에, 하나의 사슬이 다음의 사슬로 넘어가면 이전의 사슬이 지녔던 그 ‘공통성’은 소멸되고, ‘다음의 사슬’에 속하는 새로운 ‘공통성’만이 존재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14]이에 관한 비트겐슈타인의 예는 다음과 같다: “가령 다양한 연관성을 지닌 보드게임을 보라. 이제 카드 게임으로 넘어가라. 여기서 당신은 첫 번째 … Continue reading 이 ‘전체적인 연속’―또는 ‘가족 유사성’―은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모든 놀이 또는 일부 놀이가 공유하는 보편성으로 전화되지 않는다. 보편성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이러한 거부는 그의 중기 철학에서도 매우 직접적으로 표출되었다. 그는 ≪청색 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일반성에 대한 우리의 열망은 과학의 방법에 대한 우리의 편애라는 또 다른 주된 원천을 가지고 있다. 내가 뜻하는 것은, 자연현상의 설명을 가능한 가장 작은 수의 기본적 자연법칙들로 환원하는 방법이다. […] 철학자들은 끊임없이 과학의 방법을 안중에 두고 있으며, 과학이 하는 방식으로 물음들을 묻고 대답하려는 저항할 수 없는 유혹을 받는다. 이러한 경향이 형이상학의 진정한 원천이다. 그리고 철학자를 완전한 어둠 속으로 이끈다. 어떤 것을 어떤 것으로 환원하거나 어떤 것을 설명하는 것은 결코 우리의 일일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철학은 정말로 순전히 기술적(記述的)이다. […] ‘일반성에 대한 열망’ 대신에 나는 [그러한 태도에 대해: 인용자] ‘특수한 경우에 대한 경멸적 태도’라고도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15]L. J. J. 비트겐슈타인, ≪청색 책ㆍ갈색 책≫, 이명철 역, 책세상, 2006, p. 42.

 

과학에서 다루는 일반성(보편성)에 대해 그는 크게 오해하고 있다. 과학적 방법의 목적은 단순히 “자연현상의 설명을 가능한 가장 작은 수의 기본적 자연법칙들로 환원하는” 것에 있지 않다. 과학의 제반 방법론은 그러한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보편성에 대한 그의 해석은 오늘날까지 과학 발전사에 관한 몰이해에 기초해 있다.

 

예를 들어, 공유결합의 구체적 과정ㆍ실제적 전개는 공유결합을 이루는 모든 화합물 또는 분자가 지니는 화학적 결합의 보편성을 표현한다. 공유결합의 이 같은 보편성을 인정한다고 하여 실제로 공유결합에 속하는 다양한 개별적 화합물, 분자의 전체적 연관 방식, 본질이 단순히 ‘공유결합 그 자체’라는 직접적인 규정으로 환원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러한 환원은 공유결합의 구체적 내용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 공유결합에는 극성 공유결합과 비극성 공유결합이 있다는 것, 공유결합을 이루는 화합물 또는 분자를 그렇지 않은 물질과 비교했을 때, 그것이 다른 화학적 작용력이 가해질 때 어떻게 반응―특히 결합 엔탈피와 관련하여―하느냐(그리고 그것이 이온결합 및 수소결합과 어떠한 차이를 지니는가에 대해서도)에 관한 개별적 연구까지 포괄해 가면서 비로소 공유결합이라는 보편적인 것의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이해된 공유결합은 구체적 보편 개념으로 상승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는 이미 대상의 특수성을 보편성과 통일시켜 나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특수한 경우에 대한 경멸적 태도”와도 거리가 멀다. 이미 이 지점에서부터 과학적 방법을 과학적 다루어질 대상을 “가장 작은 수의 기본적 자연법칙들로 환원”하는 것만으로 여길 수 없음이 밝혀진다. 우리가 여기서 승인해야 하는 사실은, 어떻든 구체적인 것을 얻기 위해서는 대상을 추상적 보편으로 가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반적 과정―추상화와 구체화를 위한 모든 실천을 포괄하는 것―에 수반되는 것이 과학적 방법이다. 맑스가 추상적 보편으로서 상정한 상품 범주를 분석하여 자본의 구체적인 자기 전개 과정, 자본주의 경제의 일반적 운동 법칙에까지 접근한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추상적인 상품 범주가 구체적인 것으로서의 상품 개념―노동의 이중성, 사용가치와 가치, 가치형태, 화폐, 자본의 형태변환 등 계기를 자체 내에 포함하며 대자적으로 존립하는―으로 정립된 그 과정도 이러한 논리의 전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보편의 실재성에 관해 일리옌코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이 헤겔의 논리학(변증법)의 성과를 근본적이고 유물론적으로 재정립한 것은 보편이 객관적으로 실재한다는 주장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이때 보편의 객관적 실재란 플라톤이나 헤겔의 사상의 맥락과는 달리 물질적 현상의 합법칙적 연관, 즉 자기 발전하는 총체성 내에서 물질적 현상이 결합되어 전체를 구성하는 법칙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전체의 모든 구성 요소는 [그것이: 인용자] 하나의 동일한 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상호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발생 기원의 통일성 때문에 상호연관되어 있다. 요컨대 전체의 모든 구성 요소는 하나의 동일한 공동 조상을 지님으로써,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물질적(즉 사고나 낱말과는 독립적인) 성격을 갖는 동일한 실체의 다양한 변형으로 생기(生起)함으로써 상호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공통적인 현상들은 동일한 부류라 간주되기 위한 유일한 근거로서 ‘가족 유사성’과 같은 것을 반드시 지닐 필요가 없는 것이다.[16]≪변증법적 논리학의 역사와 이론≫, p. 267.

 

비트겐슈타인은 이어서 ‘일치’에 대해 말한다. ‘일치’란 언어 사용자들이 (이후 형성될) 놀이의 대상에 관해 사용하는 개념상에서의 친화성, 더 정확히는 그들 간 교차하는 정의(定義)와 판단상에서의 친화성을 의미한다.

 

라는 낱말을 분명하게 경계 지어진 개념을 지시하는 데 사용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개념의 범위가 어떤 경계에 의해 닫히지 않도록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게임이라는 낱말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게임의 개념은 어떻게 닫혀 있는가? 여전히 게임으로 간주되는 것은 무엇이며 더 이상 게임으로 간주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그 경계들이 어디에 있는지 말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당신은 어떤 경계들을 그을 수는 있다. 아직은 아무런 경계도 그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당신이 ‘게임’이라는 낱말을 사용했을 때 당신을 괴롭혔던 문제는 전혀 아니다.) […] 그것은 어디에서나 규칙에 의해 경계 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령 테니스에서 공을 얼마나 높이, 또는 얼마나 세게 쳐도 되는지에 관한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테니스는 여전히 하나의 게임이며 규칙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게임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설명할까? 나는 우리가 그에게 게임에 대해 기술하고서 이렇게 덧붙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 그리고 이와 유사한 것을 게임이라고 부른다.[17]≪철학적 탐구≫, 제68-69절.

 

‘수’나 ‘테니스’의 예와 같은 원리로 작용하는 ‘유사적인 것’이 바로 ‘일치’이다: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정의에 있어서의 일치뿐 아니라 (아주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판단에 있어서의 일치도 필요하다.”[18]≪철학적 탐구≫, 제242절. 이를 통해 비로소 화자들은 어떠한 것으로서 규정된 언어놀이에 접속하는 것으로 되며, 개별적 언어놀이는 다른 상이한 개별적 언어놀이와 그 어떠한 유기적 연관을 이루지 않는 것으로 취급된다.

 

나는 앞서 그가 과학에 적대적인 이데올로그라는 것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보았을 때, 앞서 언급된 것과 같은 주장은 우리에게 그것이 전제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 준다: 먼저 가족 유사성이 타당한 것으로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식 밖에 존재하는 수다적 객체가, 언어놀이의 당사자가 서로의 관계를 통해 우연히 ‘일치’을 형성하기 전까지는 서로에 대해 그 어떠한 보편적인 특성을 공유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가족 유사성은 이미 규정되어 있는 것으로서 즉자대자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의 보편적인 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거나, 그것을 인식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한 도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수다적 객체가 그 본질상 보편적인 것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은 과학적 연구에 의해 밝혀지고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원자력 발전에서 우라늄이 연료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원자력 발전이라는 목적에서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 있을 경우 언제나 그것은 원자력 발전의 연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심지어 우라늄-235와 우라늄-238 간 물리적-화학적 특성의 차이를 알고 있으며, 이 차이는 어떠한 조건을 충족한 어느 원자력 발전소에서나 동일하게 현상한다는 것도 안다.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러한 현상에 관한 이론적 내용, 이 현상에 대한 모든 개념적 취급―비트겐슈타인이 언급하는 ‘언어 활동’의 맥락까지 모두 포괄한―을 ‘일치’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보자. 전문의는 그가 전공한 것에 따라 그 종류가 천차만별이다. 각각의 전문의는 자신 전문 분야의 범위에 들어가 있는 환자를 진찰하고 필요할 경우 수술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때 진찰과 수술에 필요한 지식, 개념은 ‘일치’를 근거로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의학의 학적 대상의 실재적 필연성을 근거로 한 것인가? 신경외과와 정형외과는 서로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 연관성과 관련된 지식을 동원한 의료행위는 대부분 환자에 있어 일정 예측된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이는 신경, 척추 등에 대한 내재적인 필연성에 근거한 체계인가? 아니면 경계 지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자의적 ‘경계 짓기’를 통해 우연히 ‘유사적인 것’을 획득하게 된 것에 근거하는 것인가?

 

나는 방금 ‘생물학’, ‘경제학’, ‘사회학’ 간의 ‘공통적인 것’을 <그것이 다루는 대상이 생명체와 관련된 활동과 연관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물론 추상적인 보편성에 불과하다.[19]물론 이 세 가지 학문이 <모든 ‘놀이’>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비트겐슈타인의 언급한 맥락에서의 ‘놀이’는 오만 가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 Continue reading 실제로 그것은 어떠한 규정된 상태로서의 보편적인 것, 즉 특수한 것으로서 존재한다. 예를 들어 ‘경제학’에서의 이 보편성은 인간의 생산과 소비와 관련된 제반 활동, 생산적 요인과 관계하는 모든 역사적 방식이라는 규정성을 부착한, 규정된 것으로서의 <그것이 다루는 대상이 생명체와 관련된 활동과 연관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의 규정성은 생산과 소비와 관련된 제반 활동, 그리고 생산적 요인과 관계하는 모든 역사적 방식이라는 맥락에서 생명체와 관련된 활동과 연관을 이루고 있는 개별적 규정성이다. 여기서 경제학이라는 개별적 규정성은 보편성과 특수성의 통일을 통해 비로소 개별적인 것으로 되었는데, 특수성은 개별성 속에서 보편성과 불가분의 연관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특수한 것은 필연적으로 그보다 추상적인 것으로서의 보편성이 존재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그 대상의 ‘공통성’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보편과 특수의 통일로서 개별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개별로 전개하는 것으로서의 보편적인 것, 즉 구체적인 보편자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비트겐슈타인도 역시 동일하게 자신이 설명하는 대상에 대해 거론하는 것 아닌가? 그가 말하는 ‘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말한 ‘일치’를 지닌 개체 간 관계의 한 측면이다. 그렇다면 모든 ‘언어놀이’는 <‘일치’를 지닌 개체 간 관계의 한 측면>이라는 추상적 보편성을 지니는 셈이다. 물론 그것은 한 측면이 아니라 전부일 수도 있지만, 전부라고 하더라도 결과는 같다. 이제 비트겐슈타인의 추종자들은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직은 아무런 경계도 그어져 있지 않은 것이지만 동시에 나는 그것에 대해 어떤 경계들을 그을 수는 있다.” 그렇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곧바로 나의 의견을 지양할 수 있다: “놀이는 아직은 아무런 경계도 그어져 있지 않은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 어떤 경계로 그어질 수 있음을 계기를 지닌 것으로서의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일치를 지닌 개체 간 관계의 한 측면 또는 전부>이다.” 사실 여기까지 나갈 필요도 없다. 이미 ≪탐구≫ 제23절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놀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언어 (2)를 실제로 사용할 때 한쪽은 낱말을 외치고 다른 쪽은 그에 따라 행위한다. 하지만 이 언어를 가르칠 때는 다음과 같은 과장이 일어날 것이다: 학습자는 대상의 이름을 말한다. 즉 선생이 석재를 가리킬 때 학습자는 그에 해당하는 낱말을 말한다. […] 나는 이러한 게임들을 ‘언어게임’이라고 부를 것이며, 때로는 원초적 언어(primitiven Sprache)를 언어게임이라고 말할 것이다. […] 나는 또한 언어와 그 언어가 얽혀 있는 활동들로 구성된 전체도 ‘언어게임’이라고 부를 것이다.[20]≪철학적 탐구≫, 제7절.

 

(2)는 제2절에서 말하고자 하였던 바를 의미한다:

 

의미라는 저 철학적 개념은 언어가 기능하는 방식에 대한 원초적 관념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언어보다 더 원초적인 언어의 관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시한 기술(記述)에 들어맞는 하나의 언어를 상상해 보자: 이 언어는 건축 기사 A와 조수 B 사이의 의사소통에 사용된다. A는 벽돌, 기둥, 석판, 들보 등 건축 석재들로 집을 짓고 있다. B는 A에게 필요한 순서대로 건축 석재를 건네야 한다. 그들은 이 목적을 위해 ‘벽돌’, ‘기둥’, ‘석판’, ‘들보’라는 낱말로 구성된 언어를 사용한다. A가 낱말들을 외치면, B는 이러이러한 외침을 들을 때 가져오라고 지시받은 석재를 날라온다. ― 이것을 하나의 완전한 원초적 언어라고 이해하라.[21]≪철학적 탐구≫, 제2절.

 

여기서 말하는 ‘완전한 원초적 언어’는 앞서 언급된 것―‘놀이’는 아직은 아무런 경계도 그어져 있지 않은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 어떤 경계로 그어질 수 있음을 계기를 지닌 것으로서의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일치’를 지닌 개체 간 관계의 한 측면 또는 전부>―과 다른 것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 역시 여지없이 ‘언어놀이’에 대한 술어로서의 추상적 보편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말대꾸에도 비트겐슈타인은 초연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그는 애당초 철학 체계를 형성함에서 그것이 과학과 긴밀한 연관성 갖는 것으로 서술하는 모든 시도를 적대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탐구≫에서 그것이 과학의 성과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야 함을 수많은 실없는 예시를 동원하며 쉴 새 없이 강조한다. 우리는 적어도 그의 철학 체계 전개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그가 인간 인식의 문제를 다룸에서 한갓 소여된 것만을 다룰 수 있다는 견해[22]그는 인식의 자연사적인 과정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애당초 그것은 그가 상정한 철학적 주제와 절대적으로 무관하기 … Continue reading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언어놀이 규칙에 대한 준수가 어떻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리는지를 결정”[23]≪철학적 탐구≫, 제241절.하냐는 질문에 비트겐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리는가 하는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일치하는 것은 그들의 언어 속에서다. 이것은 의견에서의 일치가 아니라, 삶의 형식에서의 일치이다.[24]같은 곳.

 

여기서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란 언어놀이 규칙을 준수하는 참여자의 언어적 활동을 의미한다. 즉, 옳고 그른 것은 이러한 언어적 활동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식에서 옳고 그른 것, 언어적 활동의 전개에서 그것―언어적 활동을 구성하는 모든 의미론적, 통사론적 요소들―의 내적 일관성을 보증하는 것은, 그것이 언어적 활동과 결부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단순히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동격으로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무엇에 대해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기준은 이미 우리의 의식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 구체적인 것을 한쪽의 척도, 그러나 동시에 본질적인 척도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위로 가다”, “위가 허술하다”, “위를 책임지다”는 서로 의미가 다르고 표현도 다른데 이는 어떠한 구체적인 조건 속에서만 성립되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규정된 표현도, 그리고 그것의 규정된 의미도 어떠한 규정된 것으로서의 구체적인 조건을 자신의 산실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 연관의 일측면으로서 ‘위’라는 규정은 그 연관 속에서 규정된 한계를 지니면서 자신의 대립항과 관계하기에 ‘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한계는 여러 요인에 의해 규정된다. 예를 들어, 지도를 펴 놓고 우리는 북쪽을 위라고, 남쪽을 아래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때의 ‘위’는 지도라는 평면상에서 북쪽(주로 12시 방향)을 가리키며, 이 평면상에서 북쪽이 곧 ‘위’를 뜻하는 사태도 역시 규정된 시간적 계기들―나침반의 바늘 위치, 나침반을 통해 방향을 확인함에서 바늘 위치 선정의 중요성, 항해에서 북극성 관찰의 지니는 중요성, 북극성 관찰을 통해 항해하던 북반구 문명이 일반적으로 남반구 문명보다 생산력이 빠르게 발전하였다는 사실 등―에 의해 성립된 사태라는 성격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이제 남쪽이 ‘위’이고 북쪽이 ‘아래’인 경우는 어떠한가? 북반구에서는 남쪽으로 갈수록 온도가 높아지고, 북쪽의 경우는 그 반대이다. 높음은 ‘위’라는 의미와 유사성을 지닌다. 남쪽을 ‘위’라고 가리킨다면 그것을 ‘위’라고 규정할 만한 객관적 작용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왜 ‘높음’이 ‘위’와 유사한 뜻으로 쓰이게 되었는지, 언어사적인 맥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의 과정으로 인해, 어떠한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는 각자 표현이 다르더라도 서로 의미는 같을 수 있다. 낱말, 문장, 문법 구사의 다양한 양태의 본질을 고찰함에서 언어놀이라는 ‘구상’ 따위는 불필요하다.

 

객관적이고도 구체적인 조건은 어떠한 자의와 연관을 이룰 수는 있더라도 그러한 연관이 언어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면 필시 그것은 이미 구체적인 조건으로 된 것일 수밖에 없다. 옳고 그른 것을 단순히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동일시한다면 그것은 아베나리우스의 원리적 동격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된다. 비트겐슈타인 역시 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탐구≫의 제2부라고도 불리는 “심리철학 ― 단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만일 개념 형성이 자연의 사실들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면, 우리는 문법보다는 자연에서 그것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 개념들 사이의 대응, 그리고 자연의 일반적 사실들(그 일반성 때문에 우리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하는 사실들) 사이의 대응은 물론 우리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이 이제 개념 형성에 관한 이런 가능한 원인들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연과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연사(自然史)를 하는 것도 아니다. ― 왜냐하면 우리는 실로 우리의 목적들을 위해 자연사적인 것을 지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만일 누군가 어떤 개념들이 완전히 올바른 개념들이라고 믿고, 그와 다른 개념들을 갖는 것은 마치 우리가 이해하는 어떤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믿는다면 ― 나는 매우 일반적인 어떤 자연의 사실들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과는 다르다고 상상해 보라고 그에게 권하고 싶다.[25]≪철학적 탐구≫, xii, 제365-366절.

 

물론 철학은 인류사에서 언어사적인 개별적 맥락을 과학적(자연사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분야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 언어 활동의 배후를 연구할 수단을 찾아내는 데 필요한 논리적 내용을 일정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영역 속에서 개별적 세계관의 내적인 정합성을 가늠할 토대가 생기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애매모호한 서술을 그가 사실상 제반 과학을 언어놀이의 일종으로 끌어내린 것과 연계해서 해석하였을 때 다음과 같은 결론만이 도출될 뿐이다: (α) 과학의 ‘언어놀이’는 사실에 대한 ‘언어놀이’이다; (β) 여기서 말하는 사실은 ‘언어놀이’의 ‘일치’에 의해 구성된 것으로서의 ‘사실’이다; (γ) 정리하자면, 이러한 ‘일치’를 통해 구성된 ‘사실’들, 즉 ‘언어놀이’의 제반 내용은 우리가 맞닥뜨리는 사실을 구성한다; (δ) 이 ‘사실’은 “어떤 개념의 의의(意義)”[26]≪철학적 탐구≫, 제142절.를 뒷받침하는 “극히 일반적인 자연의 사실들(außerordentlich allgemeine Naturtatsachen)[27]같은 곳.을 이루거나 그 자체이다. 언어, 논리, 인식에 관한 이러한 관점을 정리하기 위한 가장 좋은 문구로서 나는 그의 중기 철학에서 나타나는 이 한 문구를 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유아론자라고 부르는, 그리고 오직 자기 자신의 경험들만이 실재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로써 그 어떤 실천적 사실 문제에 관해서도 우리와 불일치하지 않는다.[28]≪청색 책ㆍ갈색 책≫, p. 106.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매우 일반적인 어떤 자연의 사실들”에 관한 비트겐슈타인의 서술은 주관적 관념론자 마흐에 대한 레닌의 비판, 즉 <쓸데없는 공연한 일이라고 선언한 바로 그 핵심과 핵심 간 상호 작용가정>[29]V. I. 레닌,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상)≫, 박정호 역, 돌베개, 1992, p. 72.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그의 철학 역시 마흐주의ㆍ아베나리우스주의의 변종임을 파악할 수 있다.

 

모순은 언제나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존재하지만 동시에 그 모순은 해소된다. 모순의 해소는 객관과 주관의 일치를 보증하고, 여기서 다시 모순이 발생한다. 그리고 발생한 모순은 다시 해소된다.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형식주의의 모순을 일정 인식하였으며, 더 나아가 낱말과 문장이 단순한 기호의 집합이 아니라 상호 관계하는 특정한 규정성이라는 것까지 파악하였다. 하지만, 그 모순을 통해 실재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즉 그 모순이 사실적인 반영의 필연적 계기로 된다는 것까지 파악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그 결과 그는 그 모순을 극복될 수 없는 것으로 방치할 것을 주문하였다.

 

≪탐구≫ 번역가이자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대가인 이승종 교수는 이 문헌의 해제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그의 ≪철학적 탐구≫는 “진보란 대체로 그 실제보다 훨씬 위대해 보이는 법이다”라는 네스트로이의 경구를 책의 첫머리로 삼음으로써 이 작품이 반시대적 고찰임을 아주 선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사람들이 진보를 목격하고 칭송했던 과학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인간 정신의 퇴보를 목격했고 실망했다. 그렇다면 과학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절망, 거기서 그가 강렬하게 느낀 가공할 퇴보의 실체는 무엇인가? 과학이 조장하는 진보에 대한 신앙은 일상인들의 생활세계와 경험과 언어를 위협한다. 집합론의 옹호자들은 전체와 부분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뒤흔들고,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옹호자들은 각각 시공간과 인식에 대한 우리의 상식이 크게 잘못된 것처럼 꾸짖는다. 과학은 이처럼 생활세계와 거기에 뿌리내린 일상적 경험을 부정하고 그 위에 새로운 권위로서 군림하려 한다. 니체와 하이데거는 그로부터 어떠한 정신적 가치나 의미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유물론자(혹은 물리주의)의 도그마와 그것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허무주의(니힐리즘)의 창궐을 보았다. 경배의 대상이었던 신이 그 존재를 증명받아야 할 수상스러운 가정(假定)으로 변모하고, 윤리적 언명이 ‘자연주의적 오류’로 지적되는 것도 이러한 경향과 궤를 같이한다.[30]≪철학적 탐구≫, pp. 693-694.

 

우리는 이러한 내용의 해제를 통해서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전모를 더더욱 낱낱이 알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통념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 해제에서 극단적인 주관적 관념론자이자 파씨즘의 맹아인 니체와 독일의 파씨스트 관료였던 하이데거를 거론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데, 비트겐슈타인의 반합리주의는 그 내용이 반동적인 실존주의와 매우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던 일상언어학파의 일원들은 반동적인 실존주의자들(종교적 ‘통념’을 향한 하이데거의 각별한 애정을 상기해 보자!)과 서로 긴밀한 협력 관계에 있었다.

 

오늘날 통념은 지배적인 경제적 관계를 반영하며, 그것은 곧 부르주아적 생산관계를 의미한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생산력의 발전을 계기로 이제 가상적 인식에 머물러 있는 것이며, 과학성은 오로지 프롤레타리아만이 보증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오늘날 부르주아의 사고는 극단적으로 반동화―반과학과 반합리주의―되어 있다.

 

통념이 인류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 왔는가를 안다면 결코 그것을 과학의 위에 두거나, 또는 과학과 동급으로 놓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역사적인 한 사례를 놓고 생각해 보자: 미생물학이 발달하여 미생물과 질병이 직접적인 연관을 이룬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기 전인 18세기 이전에는 질병에 관한 온갖 ‘통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이러한 통념은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되었기는커녕 오히려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오늘날에도 통념은 일반적으로 사회를 좀먹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대개 구습이며, 사회경제적 조건의 근본변혁을 통해 사회가 더욱 합리적으로 재구성된다면 대부분 어느새 사라져 버릴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는 어디까지나 부르주아 이데올로그가 혐오해 마지않는 ‘과학주의 유물론’의 언어이다. 그들이 말하는 ‘과학주의 유물론’의 본질은 통념의 유지와 과학의 진보 사이에서 후자를 ‘무비판적’으로 택하고 그것을 ‘찬양’한다는 것에 있다. 그렇다. 프롤레타리아 당파는 과학의 진보를 ‘무비판적’으로 택하고 그것을 ‘찬양’한다.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당파는 통념의 유지를 ‘무비판적’으로 택하고 그것을 ‘찬양’한다. 생산력이 진보하는 것만큼, 과학이 진보하는 것만큼 통념은 그 지배적 지위를 순탄히 유지할 수 없다.

 

또 다른 부르주아 철학자인 엄정식은 비트겐슈타인 철학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첫째, 비트겐슈타인의 철학관은 철저하게 비(非)과학주의적이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철학은 경험과학의 일종이 아니므로 세계에 관한 이론적 체계이어서는 안 된다. 둘째, 바로 그렇기에 철학은 과학처럼, 혹은 전통적인 철학관과 달리 현상에 대해서 소극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언어의 오해에서 야기된 철학적 문제들을 해소하는 일이다. 셋째, 철학적 문제의 해소는 질병의 치유라는 성격을 지닌다. 즉, 영원한 진리를 발견하거나 세계를 개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원인을 규명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전통적인 서양철학의 부정을 의미하며 동시에 이론적 체계로서의 철학이 불가능함을 역설하는 것이다.[31]엄정식, ≪비트겐슈타인의 사상≫, 서강대학교 출판부, 2003, p. 13.

 

“영원한 진리를 발견하거나 세계를 개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비트겐슈타인이 염두에 두던 의미에서) “질병의 치유”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철저하게 비과학주의적”이다. 무엇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고자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이론적 체계도 아니고, 과학과는 관련도 없는 비과학주의적인 것이다. 여기서도 <쓸데없는 공연한 일이라고 선언한 바로 그 “핵심과 핵심 간 상호 작용”의 ‘가정’>이 반복된다. 부르주아 학자들은 어떠한 것의 기계적, 화학적, 목적적 연관을 조금이라도 규명하려는 즉시 그것이 과학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음을 계속 망각하고 있다. 물론 단순히 이 연관 방식과 관련된 ‘원인’을 규명한다고 선언하는 것만으로 그것을 과학이라고 규정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오늘날 “‘무엇’에 대한 원인을 규명”한다면서 공공연하게 비과학을 설파하는 부르주아 학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학문을 대하는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태도는 과학을 자칭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일반적인 태도와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3-2. W. V. O. 콰인

초기 분석철학은 비엔나 학파의 영향으로 인해 (‘순수한’ 존재로서 ‘존재 일반’이든, 어떠한 것에 의해 규정된 존재이든, 우리의 의식 외부에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객관적 대상이든지 무관하게) ‘존재’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형이상학’이라고 간주하며 이를 철학에서 다루길 극도로 멀리하였다.[32]레닌이 활동하던 시기에도 이러한 현상이 횡행했다: “이제 철학적 조류로서의 마흐주의의 자연과학에 대한 태도를 살펴보자. 마흐주의 전체는 … Continue reading 그러나 인식론과 논리학을 전개함에서 이러한 주제를 완전히 다루지 않을 수는 없기에, 실제로는 그들 역시 ‘인식론이나 논리학의 영역을 뛰어넘는’ 여러 주제를 다루었다. 특히 비엔나 학파에서는 마흐의 ‘요소’를 이름만 바꾼 후 그것을 자신 철학 전개에서 그대로 활용ㆍ‘논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비엔나 학파가 따르는 전통과 유사한 전통을 추구하는 거의 모든 주관적 관념론자는 항상 ‘형이상학적(‘존재론적’)’ 방법론을 혐오하면서도 그 자신이 그 ‘형이상학적’ 방법론을 답습하는 모순을 달고 산다. 오늘날에도 분석철학 진영 내부에서 존재론적인 것을 다루는 것을 ‘형이상학’이라고 하여 배척하는 분위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이지만, 앞서 언급하였듯이 그들 주제는 거의 언제나 존재론적인 것과 겹친다. 실태가 바로 이렇기에 아예 ‘형이상학적 주제’를 완전히 배척해 놓고는 온전한 철학 이론의 전개가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그들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나오는 실정이다.

 

콰인 역시 ≪존재하는 것에 관하여≫(이하 ‘≪존재≫’)에서 존재론적인 것, 즉 그가 ‘실재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다루었으며, ≪경험주의의 두 독단≫(이하 ‘≪독단≫’)[33]분석-종합 구분에 대한 ≪독단≫의 비판은 이 글에서 다루지 않는다.에서도 역시 이 주제와 겹치는 것에 대해 다루었다. 뮤니츠에 따르면 그는 “논리실증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던 철학 시기 동안 분석철학을 풍미하고 있었던 ‘형이상학’에 대한 전반적인 혐오감을 극복할 수 있는 방향을 향해 분석철학자로서 그리고 논리학자로서 중요한 공헌”[34]≪현대 분석 철학≫, p. 640.을 하였다. 그는 콰인이 “건전한 존재론적 견해를 개발해야 할 필요성과 중요성에 관해 긍정적인 태도”[35]같은 곳.를 취했다고 말한다. 이 <건전한 존재론적 견해>가 무엇인지 파악해 보도록 하자.

 

콰인은 자신이 설정한 가상의 철학자인 ‘McX’의 견해―보편자 존재론을 받아들이는 견해―와 그에 반대되는 자신의 견해를 비교해 가며 자기 입장을 전개해 나간다:

 

한 존재론적 진술이 어떤 별도의 정당화를 필요로 하지 않고도 지탱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존재론적 진술들은 일상적 사실에 관한 모든 인과적 진술로부터 직접 귀결된다. 이는 마치 ―McX의 개념적 틀의 관점에서 볼 때― ‘속성이 있다’가 ‘붉은 집, 붉은 장미, 붉은 황혼 등이 있다’로부터 귀결되는 것과 같다. 또 어떤 사람이 다른 개념틀에서 판단한다면, McX가 공리라고까지 생각했던 존재론적 진술도 똑같이 즉각적이고 당연하게 거짓이라고 판단될지도 모른다. 그는 붉은 집과 장미와 황혼이 있다는 것까지는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언어의 통속적이고 잘못된 방식으로 말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것들이 어떤 공통적인 것을 소유하고 있음은 부정할 것이다. ‘집’, ‘장미’, ‘황혼’ 등의 단어들은 집들과 장미들과 황혼들인 잡다한 개별적ㆍ실재들에 대해서 참이며, 또한 ‘붉은’ 혹은 ‘붉은 대상’이란 단어는 붉은 집, 붉은 장미, 붉은 황혼 등의 갖가지 개별적 실재 각각에 대해서 참이다. 그 외에 거기에 덧붙여진 어떤 실재도 없다. 다시 말해 개별적이거나 그렇지 않든 간에, 단어 ‘집’, ‘장미’, ‘황혼’ 등이 명명하는 실재도 없다. 집과 장미와 황혼들 모두가 붉다는 것을 궁극적이며 환원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래서 실제 설명력의 관점에서 볼 때 ‘붉음’과 같은 이름 아래 상정했던 신비스러운 실재들 때문에 McX의 형편이 더 나아진 것도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McX가 자신의 보편자 존재론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사용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가 보편자 문제로 돌아서기도 전에 이미 제기되어 버렸다. McX는 우리 모두가 일치되게 사용하는 ‘붉은’이나 ‘~이 붉다’ 같은 술어들이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기 위해 그 각각이 단일한 보편 실재의 이름으로 여겨져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아 온 바에 의하면, 어떤 것의 이름이라는 것은 의미 있다는 것보다 훨씬 특수한 특징이기 때문이다.[36]W. V. O. 콰인, “존재하는 것에 관하여”, ≪논리적 관점에서≫, 허라금 역, 서광사, 1993, pp. 24-25.

 

그는 ‘존재론적 진술’―실재하는 것 또는 실재하는 것과 연관하여 다루어지는 모든 논리적, 인식론적 진술―이 일상적 경험에서 얻는 여러 가지 사실로부터 ‘인과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McX는 일상적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특수자가 있다는 것만으로 그 특수자의 상위에 존재하는 속성이 있을 것이라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다시 다른 일상적 경험에 의해 언제든 거짓이라고 간주될 수 있다. (논리적으로 표현된) 모든 보편적인 것은 그것들의 개별적 양태들에 대해서는 참이며, 이것만이 오로지 이 보편적인 것이 지닌 “실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실재” 외에는 그 어떤 다른 “덧붙여진 어떤 실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 보편적인 것이 “명명하는 실재”, 즉 이 ‘보편적인 것’이 그 자체로 지시하는 실재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언어 활동에서 개념적ㆍ속성적 의미가 존재하지 않음을 주장한다:

 

의미[개념적ㆍ속성적 의미: 인용자]를 인정하지 않는 데 대해 나는 어떠한 꺼림직함도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단어나 진술이 의미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의미에 관해 말하는 혹은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유용한 방식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그 하나는 의미 가짐 곧 유의미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미의 같음 혹은 동의어이다. 소위 한 발화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일상적으로, 원래의 것보다 분명한 언어로 한 동의어를 발화하는 것일 뿐이다. 만일 그런 의미가 아주 싫다면 직접적으로 발화에 관해 유의미하다거나 무의미하다거나 혹은 서로 동의어라거나 이의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 형용사 ‘유의미한’과 ‘동의어적인’을 어느 정도 분명하고 정밀하게 설명하는 문제는 ―되도록이면 나처럼 행동의 관점에서― 그것이 중요한 만큼 어렵다. 그러나 소위 의미라는 특별하고 환원 불가능한 매개적 실재가 설명적 가치를 가진다는 것은 분명히 망상이다.[37]“존재하는 것에 관하여”, ≪논리적 관점에서≫, pp. 25-26.

 

콰인이 주장하는 것은, 보편-특수-개별이라는 이른바, ‘위계화’된 진술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콰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의미’란 바로 이러한, 보편-특수-개별로 이어지는 개념적 틀이 언어에 그 의미로 ‘실재’한다는 맥락으로서의 ‘의미’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언어 활동과 관련하여 주어진 사태―낱말이 쓰이는 현상, 술어가 형성되는 현상, 이를 둘러싼 제반 현상들―를 극히 제한적 시각에서만 바라본 주장이다. 그리고 그는 보편-특수-개별이라는 매개적 운동이 실제로 서로 인과적 관계를 이루면서 규정되는 실재적인 것임을 조금이라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형식논리학은 “(본질과 기원의 양 측면에서) 실체 개념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발전에 관한 관념, 일견 매우 이질적으로 보이는 현상들(추상적인 것이 아닌 한, 이 현상들에서 공통의 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의 발생적 공통성이라는 원리를 논리학 내에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38]≪변증법적 논리학의 역사와 이론≫, pp. 262-263. 이미 비트겐슈타인 철학을 다루는 과정에서 보편-특수-개별의 실재적인 매개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었으니, 첫 번째 인용문에서 나타난 문제에 대해서만 다루어도 족할 것이다.

 

우리가 ‘집’, ‘장미’, ‘황혼’이든, 또는 그것의 특수한 것, 즉 그것의 규정된 것으로서의 ‘붉은 집’, ‘붉은 장미’, ‘붉은 황혼’이든, 이러한 류의 낱말을 사용한다고 했을 때를 상정한다면, 물론 이것은 추상적 개념 개념을 구사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러한 단어에 정확히 또는 근사적으로라도 대응되는 객관적이고도 구체적인 사물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추상적 제 개념이 사물을 그것의 날것 ‘자체’로 지칭할 수 있다거나 또는 사물에 대한 우리 인식에서 가장 ‘원자적인 단위’이며 고로 그것이 사물에 대한 가장 풍부한 인식을 보증한다는 말은 환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주어진 대상에 관한 존재하는 추상적 틀이며, 이러한 추상적 틀을 통해 우리는 대상에 대한 더욱 내밀한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붉은빛을 띠는 지붕, 붉은빛을 띠는 장미꽃잎, 붉은빛을 띠는 황혼이 “붉은빛을 띠는” 그 이유에는 분명히 어떠한 빛 스펙트럼에 실재하는 것으로서 객관적으로 존재함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변증법적으로 자기에 대해, 그리고 타자에 대해 전체적으로 갖는 제 관계는 물론 단순히 ‘붉다’라는 추상적 표현만으로 파악될 수는 없고 따라서 ‘붉다’는 이러한 특정한 파장 범위의 스펙트럼이 지니는 관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것은 분명히 그 관계의 일부 측면을 반영한 표현이다. 만약 그것이 일반적으로, 붉은빛을 띠게 하는 특정한 파장을 벗어나 있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붉다’라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붉음’과 ‘집’, 그리고 ‘붉은 집’ 간 관계를 파악해 보자. 콰인은 ‘붉은 집’에 대해서 그것의 보편적 속성이라 간주되는 ‘붉음’이 단순히 그것의 개별적 양태인 ‘붉은 집’에 있어서만 ‘참’으로 될 수 있으며,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붉음’ 역시 ‘색상’의 한 개별적 양태이며, ‘붉은 집’ 역시 ‘허름한 붉은 집’에 대해서는 한 추상적 보편으로 기능한다. 개념적 틀이 이러한 연관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파악할 때, 우리가 콰인의 전제에 따르면 그 어떠한 것도 ‘그 자체’로는 실재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개별적 지칭체는 동시에 보편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편 모든 개별적 지칭체는 그보다 상위에 놓인 추상적 보편자를 자기 계기로서 지니고 있음을 파악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붉음’은 ‘색’이라는 보편자와, 그리고 ‘붉은 집’은 ‘집’ 또는 ‘붉음’이라는 보편자와의 관계에서 비로소 특수자로 규정될 수 있다. 이미 콰인조차 “어떤 것의 이름이라는 것은 의미 있다는 것보다 훨씬 특수한 특징”라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이 다루는 대상을 어떠한 보편적인 것과 연관 지어 ‘특수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보편적인 것은 특수한 것과의 관계를 통해 비로소 보편적인 것으로서의 자기 동일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며, 특수한 것은 그러한 보편적인 것의 존재 양식을 통해 비로소 그 스스로를 특수한 것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다. 보편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어간다면, 우리는 그것이 끊임없이 운동하는 것이며, 상호 연관을 이루면서 자기 규정적인 것으로 화하는 규정성임을 파악할 수 있다.

 

철학적 유물론은 논리적 내용을 구성하는 여러 계기와 요소를 반드시 객관적 실재와 연관을 이루는 것으로 다룬다. 눈에 전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추상적 제 개념들, 여러 추상적 지칭 표현 역시 객관적인 것을 그 계기로 지닌다는 것을 유물론적 세계관은 승인한다. 그리고 이러한 승인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데, 심리학ㆍ언어학적으로 인간에 의해 구사되는 모든 낱말, 문장은 항상 외부 조건을 반영한다는 것이 계속하여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L. S. 비고츠키는 이와 같은 언어적 개념의 활용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어린이는 게임과 말에 있어 상징과 그 가치의 연결에 어떠한 조건성과 자의성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 실험을 통해 볼 수 있다. 하나의 사물이 나타내는 상징이 되기 위해서는 낱말은 지정된 대상의 자질에 의존해야 한다. 어린이의 게임에서는 어떤 것이 아무것이나 다 될 수는 없다. 사물의 실제 성질과 그 상징적 의미가 복잡하게 구조적으로 얽혀 있음이 게임에서 드러난다. 어린이는 낱말을 사물의 특성에 따라 사물과 연관 지으며, 이 사물의 특성은 그것이 가진 보편적 구조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 실험에 참가한 어린이는 바닥을 유리창(그 위로 걸을 수 없어요! )이라고 부를 수 없지만, 게임 과정 중에 그 성질이 바뀐 의자(마치 기차인 것처럼 취급된)는 기차가 될 수 있다. “램프 위에다는 쓸 수가 없고 탁자로는 불을 켤 수가 없어요”라며 어린이는 ‘탁자’와 ‘램프’의 의미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대상의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그 성질을 바꾸는 것이다. 말을 처음으로 시작하는 어린이가 기호와 그 가치 사이의 관계를 알지 못하며 매우 오랫동안 이 관계를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명확히 보여 주는 것은 없다. 진전된 실험들 역시 단 한 번의 발견을 통해 명명의 기능이 나타나지 않으며, 이 또한 그 자신의 자연적 역사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어린이가 말을 형성할 때 최초로 나타나는 것은 개별의 사물에 각각의 이름이 있다는 발견이 아니라 사물을 조작하는 새로운 방법, 즉 이름을 통해 사물을 조작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모든 외부적 기호들이 기능적으로 비슷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기호와 그 가치의 연결이 성인에 의해 만들어진 상응하는 연결과 일찍부터 닮기 시작하지만 그 연결들은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종류의 심리적 형성물이다.[39]L. S. 비고츠키, ≪도구와 기호≫, 비고츠키 연구회 역, 살림터, 2012, pp. 45-46.

 

언어철학을 전개함에서 인간의 언어적 활동을 외부 대상에 대한 반영이라는 사실과 완전히 무관한 것임을 전제하는 현대 주관적 관념론자들의 망동은 일반적으로 다양한 언어적 활동을 설명함에서 단편적 문구에 대한 의미론과 통사론적 ‘분석’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이러한 시도는 불가피하게 낱말, 문장, 문법적 요소의 토대를 해명함에서 조잡한 형태의 순환논증을 반복하는 데에 그칠 수밖에 없거나, 일상언어학파의 극단적인 유아론으로 퇴행할 수밖에 없다. <건전한 존재론적 견해>라는 것 역시 이 두 경향 사이에 걸쳐 있는 주관주의의 한 형태일 뿐이다.

 

언어 활동에서 개념적 연관 고리를 부정하는 콰인은 이제 모든 언어적 활동에서 문장이 갖는 의미는 그것의 논의 형식이 “어떤 존재론에 개입하고 있는가”[40]“존재하는 것에 관하여”, ≪논리적 관점에서≫, p. 28.에 따라 그것의 계기와는 하등 무연고하게 ‘전환’할 뿐이며, 이 ‘전환된’ 외적 실천 형태는 “그 이론의 속박 변항[41]형식논리학의 일종인 술어논리(양화논리)에서 주어진 문장의 논의 영역을 표현하는 규정적 요소인 양화사(量化辭)를 의미한다.이 지칭할 수 있어야만 하는 실재에 그리고 그 실재에만 개입[42]“존재하는 것에 관하여”, ≪논리적 관점에서≫, p. 28.한다. 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존재론’이란 이러한 ‘개입’이 요구하는 주관적 체계로서의 실재를 의미한다. 따라서 예를 들어, “물리적 대상이란 유전하는 경험에 대한 해명을 마무리 짓고 단순화하기 위해 요청된 실재[43]“존재하는 것에 관하여”, ≪논리적 관점에서≫, p. 32.에 불과하다. 각자의 의미는 각자의 속박 변항에 한해서만 의미를 지니기에, “내가 McX의 존재론에 반대하면서 나의 존재론을 고수하는 한, 나는 McX의 존재론에는 속하면서 내 존재론에는 속하지 않는 실재들을 내 속박 변항들로 하여금 지칭하도록 허용할 수는 없다.”[44]“존재하는 것에 관하여”, ≪논리적 관점에서≫, p. 30.

 

콰인의 이러한 주장은 형이상학의 전형이며, 그 형태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는 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유아론과 다르지 않다. 콰인에 의하면 모든 지식은 설정된 속박 변항에 제한된 의미만을 지니며, 그것은 다른 속박 변항 및 그 변항의 토대와 그 어떠한 연관을 이루어 통일된 체계로 나아갈 수 없다. 이러한 관점은 총체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의식 외부에 독립해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 그 핵심이 있다. 그래서 그는 또한 ≪독단≫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나는 한 사람의 경험주의자로서 과학의 개념적 틀을 궁극적으로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서 미래의 경험을 예측하는 도구라고 줄곧 생각해 왔다. 물리적 대상이란 편리한 매개물로서 개념적으로 상황에 맞게 도입된다. 이것들은 경험에 의한 정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식론적으로 호메로스의 신들에 비견되는 환원 불가능한 설정물들이다. 나는 비전문적인 물리학자로서 물리적 대상들은 믿고 호메로스의 신들은 믿지 않는다. 또한 나는 그와 다르게 믿는 것을 과학적 오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식론적인 입장에서 보면 물리적 대상과 신들은 정도만 다르지 종류는 다르지 않다. 두 종류의 실재들 모두는 오직 문화적 설정물으로서 우리의 개념 작용 내에 들어온다(Both sorts of entities enter our conception only as cultural posits). 물리적 대상의 신화는 경험의 흐름을 다루기 쉬운 구조로 파악하는 장치로서 다른 신화들보다 더 효과적임을 증명해 왔다는 점에서 다른 대부분의 것들에 비해 인식론적으로 우월하다. 설정물은 거시적 물리 대상에 그치지 않는다. 원자적 차원의 대상들은 거시적 대상에 대한 법칙들과 최종적으로는 경험의 법칙들을 더 단순하고 다루기 쉽게 만들기 위해 설정된 것이다. […] 과학은 상식의 연장이며, 이론을 단순화시키기 위해 존재론을 부풀리는 상식적인 조치를 계속한다.[45]“경험주의의 두 가지 도그마”, ≪논리적 관점에서≫, pp. 63-64.

 

이것이 <건전한 존재론적 견해>의 실질이다. 그렇다면 콰인의 기획은 주관주의적 소여론이나 갖가지 대응론의 극복인가? 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유의미한 용어는 감각 자료의 이름이거나 그런 이름들의 복합어이거나 또는 그런 복합어의 약어이다. 이렇게 진술함으로써 이 이론에는 감각 사건으로서의 감각 자료와 감각적 성질로서의 감각 자료 간 애매함이 남게 된다. 그리고 허용될 수 있는 결합 방식들도 모호하게 남게 된다.[46]“경험주의의 두 가지 도그마”, ≪논리적 관점에서≫, p. 57.

 

[…] 우리는 더 그럴듯하면서도 극단적 환원주의라는 것의 한계를 넘지 않도록, 완전한 진술들의 의미 있는 단위들로 간주할 수 있다. 따라서 전체로서의 진술들이 감각 자료 언어로 번역될 수 있어야 하긴 하지만, 용어 대 용어로 번역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47]같은 곳.

 

[…] 환원주의의 독단은 더 세련되고 섬세한 형태로 경험주의자들의 사상에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 있다. 이 관념은 각 진술에 혹은 각 종합적 진술에 가능한 감각 사건들의 고유 영역이 결합되어 있어서 그중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하든지 그 진술의 진리에 그럴듯함을 더해 줄 것이고, 또한 각 진술에 가능한 감각 사건들의 다른 고유 영역에 결합되어 있어서 그것들의 발생함으로 인해 그 진술의 그럴듯함이 감소될 것이라는 생각이 남아 있다. 물론 이런 관념은 검증 이론에서는 절대적이다.[48]“경험주의의 두 가지 도그마”, ≪논리적 관점에서≫, p. 59.

 

이 서술에서 핵심이 될 “전체로서의 진술”의 구체적 내용에 관해 콰인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만약 우리가 경험주의자라면, 사실적 구성 요소는 마땅히 확증 가능한 경험의 영역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또한 문제되는 것이 언어적 요소뿐인 극단적인 경우에서 참인 진술은 분석적이다. […] 현재 나의 제안은 어떤 개별 진술에서든지 언어적 구성 요소와 사실적 구성 요소에 관해 말하는 일이 무의미하며, 또한 이것이 많은 무의미함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과학은 언어와 경험에 이중으로 의존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중성은 개별적으로 취해진 과학적 진술로는 의미 있게 추적될 수 없다. […] 균형 있는 고려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체 장에 영향을 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개별 경험들도 그 장 내에 속해 있는 어떤 개별 진술들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49]“경험주의의 두 가지 도그마”, ≪논리적 관점에서≫, pp. 60-61.

 

콰인의 주장은 소여된 것만을 취급할 수 있다는 주관적 관념론의 전형이다. 이러한 주장은 전혀 새롭지 않다. 이는 레닌의 비판 대상이었던 주관주의자 보그다노프의 주장과 그 본질에서 단 한 치의 차이점도 없다:

 

『경험일원론』의 제1권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객관성의 기초는 집단적 경험의 영역 내에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나 동일한 생활상의 의의가 있는 경험의 소여, 즉 우리가 모순 없이 우리의 활동을 그것에 입각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확신에 의하면 다른 사람들도 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반드시 그것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될 그러한 경험의 소여를 객관적이라고 부른다. 물리적 세계의 객관적 성격은 그 세계나 나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만인을 위해서 존재하며[거짓말이다! 물리적 세계는 “만인”으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한다: 레닌] 또 만인에 대하여 일정한 의의, 나의 확신에 의하면 나에 대해서와 똑같은 의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있다. 물리적 계열의 객관성은 그 보편 타당성이다.” (25쪽, 보그다노프의 강조.) “우리가 우리의 경험에서 마주치는 물리적 물체의 객관성은 결국 각이한 사람들의 발언의 상호 검증 및 합치를 기초로 하여 확립된다. 일반적으로 물리적 세계란 사회적으로 동의되고 사회적으로 조화된, 한마디로 말하면 사회적으로 조직된 경험이다.” (36쪽, 보그다노프의 강조.)[50]≪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상)≫, pp. 168-169.

 

“관념론은 말한다: 물리적 자연은 생물의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51]≪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상)≫, p. 293. 콰인의 주장과 이전 분석철학자들의 주장에는 아주 지엽적인 차이 빼고는 없다. 그는 소여된 감각 요소를 기존 경험주의의 방식으로 ‘분해’―러셀이나 무어로부터 유래한 방법으로서―하여 ‘사실적 구성 요소’에 대응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관점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콰인이 택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실제로 완강히 저항하는 경험에 직면해서 한 진술을 다른 것보다 우선적으로 선택할 경우, 그것은 우리 선택의 상대적 그럴듯함을 반영하는 느슨한 연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엘름가의 벽돌집이 있다는 바로 그 진술을 같은 주제에 관해 그에 관련된 진술들과 함께 재평가함으로써, 분명히 우리의 체계를 조정하게 될 완강한 경험들을 상상할 수 있다. 우리는 켄타우로스가 없다는 바로 그 진술을 동종의 진술들과 더불어 재평가함으로써, 우리의 체계를 조정하게 될 완강한 경험들도 상상할 수 있다. 완강히 저항하는 경험은 전체 체계의 서로 다른 선택 가능한 부분들 내에서 대안이 되는 서로 다른 재평가 중 어느 것에 의해서도 조정될 수 있다고 나는 주장하였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상상한 예들의 경우에는 가능한 한 전체 체계를 혼란시키지 않으려는 자연적인 경향으로 인해, 우리는 수정의 초점을 벽돌집과 켄타우로스에 관한 이들 특수한 진술들에 맞추어도 될 것이다.[52]“경험주의의 두 가지 도그마”, ≪논리적 관점에서≫, pp. 62-63.

 

콰인은 “완강히 저항하는 경험”이 드러날 때마다 ‘조정’되는 진술만 취급되어야 한다는 ‘대안’을 내놓는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은 대응 개념을 부정한다기보단, 오히려 대응 개념을 전제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이 “(기존 경험적 사실에 대하여) 완강히 저항하는 경험”이 그 자신의 의미를 진술에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 “완강히 저항하는 경험”이 조정을 유발함에 선차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전제이며, 이러한 부여 역시 대응―“우리의 체계를 조정하게 될 완강한 경험들”과의 대응―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결론은 “물리학이나 논리학이나 존재론의 고도로 이론적인 진술보다는 더 분명한 경험적 지칭체를 갖는 것”[53]“경험주의의 두 가지 도그마”, ≪논리적 관점에서≫, p. 63.을 승인하는 것이며, 감각 자료와의 대응 자체가 부정됨을 전제하기보단 조정 행위에 “[조정에 전제되는 의미론적 요소가: 인용자] 감각 자료와의 우선적 연관성 탓에 간섭당하는 경우가 거의 없음을 의미할 뿐”[54]같은 곳.이다. 대응이 개별적이고 즉각적ㆍ원자적으로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긍정―러셀의 관점―하는가, 아니면 대응이 항시 ‘전체’적이며 지연―조정 과정으로 인한―을 포함하는 것으로서만 성립함을 긍정하는가, 이 차이만 있을 뿐이다.

 

콰인이 말하는 이 ‘조정’, 이 “완강히 저항하는 경험”은 마흐주의의 ‘요소’와 무엇이 다른가? 그의 주장은 철학적 불가지론의 정당화를 위한 장치를 쓸데없는 장광설과 함께 늘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조정’은 (콰인이 목표로 하지도 않았겠지만) 인식이 객관적 사태로 접근함을 보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조정이 갖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으로서의 규정성이라는 것도 경험 자료에 의해 규정되는 방식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또는 그러한 가능성을 단순히 콰인의 기획으로는 도저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론: 철학의 근본문제의 의의

 

현대 주관적 관념론, 특히 영국과 미국적 전통에서 배양된 관념론은 한국의 강단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는 세계 자본주의에서 신식민지 한국이 지니는 특수한 규정성에 기인한다. 이러한 상황은 강단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는 청년의 인식 형성에 돌이키기 힘든 악영향―보편성 추구 경시, 진리 인식 가능성에 대한 절대적 거부, 총체성에 대한 거부, 제국주의 약육강식 논리에의 순응, 즉물적 인식에 대한 찬양, 염세주의, 이기주의, 허무주의 등으로 발현되는―을 끼치며, 사회 전체적으로는 과학 혐오를 부추긴다.

 

분석철학이 그 어느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보다도 맹독성인 이유는 이 철학이 다른 부르주아 철학과는 달리 논리적인 것으로 보이는 외관―기호논리학을 통한 극도로 형식주의적이고 공허한 서술로 대표되는―을 띠면서 그 체계의 비정합성과 비논리성을 적극적으로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분석철학은 그 이론적인 원천을 직접적으로 다룰 때라야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황당한 것이며 현대과학의 발전양식에 반하는지를 알 수 있다.

 

분석철학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그 본질상, 철학의 근본문제에서 관념론의 두 부면을 여지없이 지니고 있다: (I) 물질과 관념의 선차성에 관한 문제에서 관념의 선차성을, (II) 존재와 사유의 동일성에 관한 문제에서 동일성이 있을 수 없음을 승인한다. 그들 철학에서 본질을 흐리는 것처럼 보이는 온갖 군더더기 역시 그것이 갖는 내적인 체계를 깊게 파고들면, 그것이 불가피하게 철학의 근본문제에서 두 가지 관념론적 입장을 승인하는 것으로 귀착함을 알 수 있다.

 

철학의 근본문제의 첫 번째 부면에서 유물론적 세계관의 필연적ㆍ내재적 조건은 물질과 의식의 선차성 문제에서 물질의 선차성을 승인하는 것이다: “물리적 세계는 심리적인 것이 유기 물질의 최고 형태의 최고 산물로서 나타날 수 있기 전에 먼저 존재하고 있었다.[55]≪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상)≫, p. 290. 두 번째 부면에서 그것은, 세계의 과정 총체를 인식할 수 있느냐, 불가능하느냐의 문제에서 세계의 과정 총체를 인식할 수 있음을 승인하는 것이다. 근본문제를 구성하는 첫 번째 부면과 두 번째 부면에서 유물론적 세계관을 보증하는 내용 중 어느 하나만 결여하고 있어도 그것은 필연적으로 관념론적 세계관으로 전락하게 된다.[56]이에 대해 레닌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유물론자들은 누구나 다 사물 자체의 인식 가능성을 주장한다는 것을 모른다면, 빅토르 체르노프 씨여, … Continue reading 물질과 의식에서 물질의 선차성을 승인하는 것, 그리고 세계를 이루는 총체의 가인식성을 승인하는 것은 서로 표리관계이며, 그 반대의 경우도 표리관계이다.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을 통해, 이것의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다:

 

철학 전체, 특히 근대 철학에서 중요한 기본문제는 존재와 사유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 철학 전체의 최고 문제인 존재에 대한 사유의 관계, 자연에 대한 정신의 관계 문제는 온갖 종교와 마찬가지로 야만시대 인간의 제한되고 무지한 사고에 그 근원이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비로소 충분히 두드러지게 제기되고 그 완전한 의의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유럽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적 중세기의 기나긴 동면에서 깨어난 때부터였다. 존재에 대한 사유의 관계, 다시 말해서 무엇이 일차적인가, 정신인가, 그렇지 않으면 자연인가 하는 문제 ― 중세기의 스콜라 철학에서도 역시 큰 역할을 담당했던 이 문제는 교회의 의사와는 반대로 세계는 신이 창조한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보다 첨예한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철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대답하는가에 따라서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졌다. 정신이 자연보다 먼저 존재하였다고 주장한 사람들, 따라서 결국 어떤 종류이든지 우주의 창조를 승인한 사람들은 관념론의 진영을 형성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자연을 근원적인 것으로 본 사람들은 유물론의 각종 학파에 속하였다.[57]F. 엥겔스, ≪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양재혁 역, 돌베개, 1987, pp. 31-33.

 

앞서 언급한 그대로 첫 번째 부면에서 유물론적 세계관이냐, 관념론적 세계관을 구분 짓는 기준은 존재와 사유, 즉 물질과 의식의 선차성에서 어떠한 입장에 서 있냐에 따라 결정된다. 여기서 물질과 의식은 기나긴 현실투쟁과 이를 반영한 철학적 대립사에서 각각 질료와 형상,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 자연과 이념, 인간과 신이라는 다양한 개별적 양태를 취하였다. 삼라만상을 관통하는 기본 규정을 관념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면, 모든 사물의 근원적 계기를 관념적인 것에 두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사물은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규정을 띠는 것에 의해 산출된 것으로, 창조된 것으로, 또는 후차적으로 변형된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련의 견해는 종국적으로는 관념의 자연 창조라는 입장을 승인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현실적인 것, 질료적인 것을 본래에 영원히 존재하였다고, 그리고 관념을 그것의 파생태라고 간주한다면, 관념은 자연이 창조해 냈다는 입장을 승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물음은 철학적 대립의 근저를 이루는 현실적 당파성의 발현 영역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또한 이 물음은 근원성에 관한 물음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인간 창조의 비밀’에 대하여 종교적 창조론을 거부하고, 진화론을 옹호한다면, 종교인들은 종국적으로는 그러한 진화를 가능하게 한 모든 제반 자연적 조건의 근원을 신이 창조하였다고 강변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유물론자는 또한 그에 대응하여, 본래 자연은 영원히 존재해 온, 존재 자체의 ‘불멸’하는 조건이자 기본 규정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물질과 관념 사이의 ‘제3의 규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협잡꾼이나 극도의 바보만이 이 두 계열의 극도로 포괄적인 개념에 대해서 그중의 어느 하나가 일차적인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을 단순히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을 그러한 정의를 요구할 수 있는 것[58]≪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상)≫, p. 196.이다.

 

철학적 대립은 현실투쟁을 반영하고, 현실투쟁은 인간의 역사적 제반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국은 이 문제는 인식의 문제를 포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첫 번째 부면에 기반하여, 유물론적 세계관과 관념론적 세계관 간 첨예한 대립의 양상을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또 하나의 부면이 등장한다. 두 번째 부면에서의 철학적 투쟁의 역사가 그것이다:

 

그러나 존재에 대한 사유의 관계는 또 하나의 다른 측면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관한 우리의 사상은 이 세계 자체와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우리의 사유는 현실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가? 우리는 현실에 관한 우리의 표상과 개념 속에 현실을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가? 철학에서는 이 문제를 사유와 존재의 동일성에 관한 문제라고 한다. 절대 다수의 철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대답할 것이다. […] 사유가 애당초부터 사상(事象)의 내용을 형성하고 있다고 전제하였으므로 그 내용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논증되어야 할 명제가 여기서는 이미 그 전제 자체에 암암리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그것은 자명한 것이다.[59]≪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p. 33.

 

유물론자라면 철학의 근본문제의 첫 번째 부면에서 유물론적 입장을 승인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러한 입장을 승인할 수 있음은, 우리의 사유와 우리 사유의 객관적 근저를 이루는 객관적 실재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입장의 승인이 전제될 수밖에 없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연관을 부정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사유가 종국에는 사유와는 이질적인, 현실적이고 사상(事象)적인 요인 간의 절대적 분리를 주장하는 셈이다. 이러한 입장에 대한 승인은 세계 총체에 대한 불가지론적 견해로 귀착하여, 필연적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신비화를 정당화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레닌이 언급한 “인간 의식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물질”이 어떠한 의미를 뜻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레닌의 이 간명한 말은, 물질과 의식이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그것이 서로 이원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되레 물질이 의식을 규정하여, 이 규정된 의식은 물질의 고유한, 특수한, 규정되어 있는 자연필연성을 바꿀 수 없다는 뜻이다. 의식은 다만, 즉자대자적으로 그 자체 존재하는 객관세계의 필연적 법칙성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로부터 의식의 상대적 자율성, 주관적인 것의 상대적 자기운동, 인간의 자기목적적 운동이 성립된다.

 

나는 철학의 근본문제의 첫 번째 부면과 두 번째 부면을 거론하며, 그것이 서로 상반되는 입장이 각 문제에 대해 표리관계를 이룬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선차성 문제에서 관념적인 것이 일차적임을 승인하면 동일성 문제에서 세계 총체에 대한 가인식성을 승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앞서 인용한 엥엘스의 해명은, 관념론자이면서, 가지론(可知論)자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례로, 철학사적으로 헤겔이 관념론자인 동시에, 당대 불가지론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전개했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보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 왜냐하면 모든 완고한 관념론은 철학적 이원론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헤겔은, 아니 헤겔 이전의 모든 진리 인식의 가능성을 무한히 긍정―이원론이나 다원론적 체계가 아니라 표면적으로 일원론적 체계를 기반으로 하는―하였던 ‘일원론적’ 객관적 관념론자들의 존재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이에 관해 엥엘스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헤겔의 사유와 존재의 동일성에 관한 그의 논증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는 것을 막지 못하였다. 다시 말해서 그의 사유가 그의 철학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그의 철학이야말로 유일하게 정당한 철학이며, 또 사유와 존재는 동일하기에 인류는 이 철학을 이론으로부터 실천으로 옮겨 전 세계를 헤겔의 근본원리에 따라서 개조함으로써 그것을 입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상은 헤겔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철학자에게서 볼 수 있다.[60]≪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pp. 33-34.

 

그리고 헤겔의 체계는, 그 체계의 총체적ㆍ내적 안정성을 보증하기 위해서 종국에는 다음과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된다:

 

데카르트로부터 헤겔에 이르는, 그리고 홉스로부터 포이어바흐에 이르는 이 오랜 기간에 걸쳐 철학자들을 움직여 온 것은 그들이 생각한 것처럼 한갓 순수사유의 힘만은 결코 아니었다. 그와는 반대였다. 실제로 그들을 앞으로 추동한 것은 주로 위력 있고 더욱더 급속하고 급격한 자연과학과 산업의 발전이었다. 유물론자들에게는 이미 이 점이 직접 눈에 띄었다. 관념론적 체계도 정신과 물질의 대립을 범신론적으로 조화시키려고 하면서 더욱더 유물론적 내용으로 충만되어 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헤겔에 와서는 그 체계가 그 방법에서나 내용에서나 관념론적으로 거꾸로 선 유물론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기까지에 이르렀다.[61]≪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pp. 34-35.

 

생산력 진보가 가져오는 과학적 성과를 광범위하게 포괄하는 방식으로써 내적인 일관성을 준거로 삼는 모든 체계의 고도 발전은, 체계의 유물론적 성격을 강화한다. 설사 그것이 스스로의 체계가 관념론적 세계관임을 공공연히, 직접적으로 ‘표명’하였다고 하더라도, 과학적 성과를 반영하는 모든 일관적인 체계는 일관적인 유물론으로 나아가게 된다. 물론 실제 역사적으로 나타난 헤겔 체계는 관념론적 사변 철학의 한계를 그대로 지니고 있었으며, 바로 그러한 점에서 관념론적 세계관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체계가 더욱 고도화되고, 동시에 그러한 고도화에 걸맞는 일관한 체계로 나아가는 도정상에서 유물론적 세계관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에 처했던 것이다. 바로 헤겔의 철학 체계는 이러한 운명의 경계를 아주 극렬하게 보여 준 철학 체계였다. 이는 우리가 스피노자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목도할 수 있는 사실이다. 스피노자는 그 누구보다도 ‘신’에 취해 있었지만, 그가 당대의 과학적 진보를 의식하는 한에 있어 ≪에티카≫에서 전개한 기하학적이고도 사변적인 논증은, 그것이 자기 체계의 일관성을 보증하는 한에서, 그가 ‘신’을 자연 총체(“Deus sive Natura”)로 여기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과학의 진보가 있는 한, 유물론적 세계관의 승리는 필연적이다. 과학의 진보는 삼라만상에 대한 인간 이해가 지니는 모든 일관적 체계의 유물론적 고도화를 불러오며, 모든 관념론적 견해를 역사의 쓰레기통에 내던져 버린다. 관념론자들은 자기들이 역사의 쓰레기통에 내던져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과학적 진보의 내용을 왜곡하여 일련의 사이비 문제로 뒤덮인 비일관적 체계―신칸트주의, 실증주의, 신실증주의, 실용주의, 분석철학 등―를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이 틈바구니에서 성장한 것이 바로 불가지론이다. 그러나, 불가지론의 도피처는 과학의 진보를 반영하는 과학적 이데올로기의 체계적 고도화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일관적인 체계는, 당연하게도 스스로의 일관성을 보증해야 하는바, 고도화의 여정에서도 이러한 일관성이 관철되는 한에서, 종교적 관념론과 불가지론의 도피처는 좁아진다. 예를 들어, 우리는 귀신을 눈으로 본 적이 없으나, 그것이 없다는 것 또한 ‘직접적 감각’으로써 ‘입증’한 적이 없다. 불가지론자들은 이러한 것에 의존하여 유물론에 대해 온갖 저질스러운 시비를 건다. 그러나, 귀신이 존재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일련의 객관적인 체계적 연속성의 내용은 생산력이 발전하고, 과학이 발전할수록 설 자리를 완전히 잃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비로소 우리는 <귀신의 비존재를 직접 눈으로 보는 ‘경험’>―불가지론자들이 고함을 내지르며 계속 ‘요구’하는 그 ‘경험’―을 거치지 않더라도 귀신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일상의 세밀한 모든 측면을 ‘예정’한 미지의 존재―현세를 초월해 있는―가 존재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일련의 일관된 그리고 연속된 체계의 존재 가능성은 생산력의 발전을 반영한 과학의 진보에 의해 계속 줄어들고 있다. 먼 과거, 종교주의자들은 해충의 범람을 신의 징벌이라고 여겼지만, 근대기에 들어서 그것에 대한 일반적인 해명 방식은 여러 기후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는, 과학적 설명 방식으로 대체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종교주의자들은 그러한 기후적 요인을 신의 징벌이라고 여겼지만, 또한 그것은 머지않아, 기후적 요인 역시 행성이라는 거대한 무ㆍ유기적 자연의 내적 체계상에서 일어나는 물질적인 운동임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철학적 유물론이 포섭할 수 있는 현상은 많아졌지만, 종교를 포함한 온갖 관념론이 포섭할 수 있는 현상은 크게 감소하였다. 철학의 근본문제에서 유물론적 세계관과 관념론적 세계관의 대립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생산력의 발전, 과학적 진보 속에서 관념론적 세계관은 설 자리를 계속 잃고 있다.

 

관념론자들은 이러한, 사멸하는 자신들의 운명을 애써 막기 위해 가지각색의 현대 주관적 관념론을 주조해 낸다. 이것들은 여러 가지 잡다한 ‘이름’을 자기 간판으로 걸어 놓고 있지만, 그것을 철학의 근본문제의 두 부면이라는 리트머스지를 통해 본다면, 그것이 항상 불가피하게 신앙주의로 귀착함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의식 있는 활동가라면 이러한 신앙주의를 유포하는 부르주아 교수들, 즉 “억지로 짜낸 관념론으로 민중을 기만하는 학위를 받은 종복들”[62]P. J. 디츠겐, ≪철학 소론집≫, p. 53.;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상)≫, p. 186.의 헛소리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노동계급 사이에서 과학적 사회주의 학습의 기풍을 세워야 할 것이다.

노사과연

 

References

References
1 이 두 흐름은 논리실증주의와 일상언어학파의 이론적 변동을 모두 포괄한다.
2 1920년대 말-1930년대 초부터 자본주의에 대한 국가적 개입이 증대하기는 하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기조가 가일층 강화되었다.
3 M. K. 뮤니츠, ≪현대 분석 철학≫(개정판), 박영태 역, 서광사, 1996, p. 433.
4 S. P. 슈워츠, ≪분석철학의 역사: 러셀에서 롤스까지≫, 한상기 역, 서광사, 2017, pp. 232-233.
5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 분석철학자는 아직도 이 이중 언어 체계에 의존하고 있다.
6 L. J. J.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이승종 역, 아카넷, 2016, 제105절.
7 E. V. 일리옌코프, ≪변증법적 논리학의 역사와 이론≫, 우기동ㆍ이병수 역, 연구사, 1990, pp. 12-13.
8 ≪철학적 탐구≫, 제89절.
9 ≪철학적 탐구≫, 제109절.
10 ≪철학적 탐구≫, 제23절.
11 ‘삶의 형식’은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 필수적인 개념으로 거론되기는 하지만, 이 개념은 그의 저서에서 자주 쓰이지 않았을뿐더러, 제대로 된 개념 정의를 끌어낼 만한 내용 또한 그의 저서에서 보이지 않는다.
12 ≪철학적 탐구≫, 제130-131절.
13 ≪철학적 탐구≫, 제66절.
14 이에 관한 비트겐슈타인의 예는 다음과 같다: “가령 다양한 연관성을 지닌 보드게임을 보라. 이제 카드 게임으로 넘어가라. 여기서 당신은 첫 번째 부류에 해당하는 많은 것들을 발견하지만, 다수의 공통된 특징들은 사라지고 다른 특질들이 나타난다. 다음으로 구기 게임으로 넘어가면 많은 공통점은 그대로 있지만 또 많은 것이 사라진다.” (같은 곳.)
15 L. J. J. 비트겐슈타인, ≪청색 책ㆍ갈색 책≫, 이명철 역, 책세상, 2006, p. 42.
16 ≪변증법적 논리학의 역사와 이론≫, p. 267.
17 ≪철학적 탐구≫, 제68-69절.
18 ≪철학적 탐구≫, 제242절.
19 물론 이 세 가지 학문이 <모든 ‘놀이’>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비트겐슈타인의 언급한 맥락에서의 ‘놀이’는 오만 가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까지 포괄하는 추상적 보편성을 우리는 인식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그것 모두가 <‘일치’를 지닌 개체 간 관계의 한 측면>이라는 것이다. (이는 비트겐슈타인이 제66절에서 든 예시에 등장하는 ‘공통성’과 본질적으로 하등 다르지 않다.)
20 ≪철학적 탐구≫, 제7절.
21 ≪철학적 탐구≫, 제2절.
22 그는 인식의 자연사적인 과정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애당초 그것은 그가 상정한 철학적 주제와 절대적으로 무관하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는 소여된 감각, 즉 감각 인상을 매우 자주 언급한다. 이에 대해서는 ≪철학적 탐구≫ 제354절, 제355절, 제486절, 그리고 “심리철학 ― 단편”의 제59절, 제269절을 참고하라.
23 ≪철학적 탐구≫, 제241절.
24, 27, 35, 47, 54 같은 곳.
25 ≪철학적 탐구≫, xii, 제365-366절.
26 ≪철학적 탐구≫, 제142절.
28 ≪청색 책ㆍ갈색 책≫, p. 106.
29 V. I. 레닌,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상)≫, 박정호 역, 돌베개, 1992, p. 72.
30 ≪철학적 탐구≫, pp. 693-694.
31 엄정식, ≪비트겐슈타인의 사상≫, 서강대학교 출판부, 2003, p. 13.
32 레닌이 활동하던 시기에도 이러한 현상이 횡행했다: “이제 철학적 조류로서의 마흐주의의 자연과학에 대한 태도를 살펴보자. 마흐주의 전체는 시종일관 자연과학의 형이상학과 투쟁하고 있는데, 마흐주의가 이 명칭으로 부르고 있는 것은 자연과학적 유물론, 즉 외부 세계는 객관적 실재이며 우리의 의식은 그것을 반영한다는, 자연과학자의 압도적 다수고 품고 있는 자연발생적이고 무의식적이고 무정형적이고 철학적으로 자각되지 못한 신념이다. 그리고 우리 마흐주의자들은 이 사실에 대해서 기만적으로 침묵을 지킴으로써, 자연과학자들의 자연발생적 유물론과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고 또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수백 번이나 확증된, 한 경향으로서의 철학적 유물론과의 불가분적인 연관을 호도 내지 혼란시키고 있다.” (V. I. 레닌,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하)≫, 박정호 역, 돌베개, 1992, p. 123.) 다음과 같은 언급도 주목할 만하다: “순수과학과 가장 추상적인 듯이 보이는 이론의 사제(司祭)들은 그저 분노에 신음하고 있다. 그리고 철학적 들소들(관념론자 파울젠, 내재론자 렘케, 칸트주의자 아디케스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의 이러한 모든 모표에서 하나의 기본 동기가 역력히 들린다: 자연과학의 ‘형이상학’ 반대, “독단론” 반대, “자연과학의 가치 및 의의의 과장” 반대, “자연과학적 유물론” 반대, 그놈의 유물론자다, 쉿쉿! 그놈을 잡아라, 유물론자를 잡아라, 그놈은 솔직하게 유물론자라고 자칭하지 않고 세인을 속이고 있다 ― 바로 이것이 특히 존경할 만한 교수 양반들을 광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같은 책, pp. 125-126.)
33 분석-종합 구분에 대한 ≪독단≫의 비판은 이 글에서 다루지 않는다.
34 ≪현대 분석 철학≫, p. 640.
36 W. V. O. 콰인, “존재하는 것에 관하여”, ≪논리적 관점에서≫, 허라금 역, 서광사, 1993, pp. 24-25.
37 “존재하는 것에 관하여”, ≪논리적 관점에서≫, pp. 25-26.
38 ≪변증법적 논리학의 역사와 이론≫, pp. 262-263.
39 L. S. 비고츠키, ≪도구와 기호≫, 비고츠키 연구회 역, 살림터, 2012, pp. 45-46.
40, 42 “존재하는 것에 관하여”, ≪논리적 관점에서≫, p. 28.
41 형식논리학의 일종인 술어논리(양화논리)에서 주어진 문장의 논의 영역을 표현하는 규정적 요소인 양화사(量化辭)를 의미한다.
43 “존재하는 것에 관하여”, ≪논리적 관점에서≫, p. 32.
44 “존재하는 것에 관하여”, ≪논리적 관점에서≫, p. 30.
45 “경험주의의 두 가지 도그마”, ≪논리적 관점에서≫, pp. 63-64.
46 “경험주의의 두 가지 도그마”, ≪논리적 관점에서≫, p. 57.
48 “경험주의의 두 가지 도그마”, ≪논리적 관점에서≫, p. 59.
49 “경험주의의 두 가지 도그마”, ≪논리적 관점에서≫, pp. 60-61.
50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상)≫, pp. 168-169.
51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상)≫, p. 293.
52 “경험주의의 두 가지 도그마”, ≪논리적 관점에서≫, pp. 62-63.
53 “경험주의의 두 가지 도그마”, ≪논리적 관점에서≫, p. 63.
55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상)≫, p. 290.
56 이에 대해 레닌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유물론자들은 누구나 다 사물 자체의 인식 가능성을 주장한다는 것을 모른다면, 빅토르 체르노프 씨여, 그것은 무지이다. 사유의 ‘대상적 진리성(gegenständiche Wahrheit)’이란 사유에 의해 옳게 반영되는 대상(=‘사물 자체’)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것을 생각지 않고 이 테제의 바로 그 첫 구절을 건너뛴다면, 빅토르 체르노프 씨여, 그것은 무지이거나 아니면 한없는 경솔이다.”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상)≫, p. 145.) “엥겔스는 여기서 철학적 경향의 어떠한 두 노선을 대립시키고 있는가? 한 노선은 감관이 우리에게 사물의 옳은 모상을 준다는 것, 우리는 이러한 사물 자체를 안다는 것, 외부 세계는 우리 감각기관에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물론이므로 여기에는 불가지론자가 동의하지 않는다.” (같은 책, p. 149.)
57 F. 엥겔스, ≪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양재혁 역, 돌베개, 1987, pp. 31-33.
58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상)≫, p. 196.
59 ≪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p. 33.
60 ≪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pp. 33-34.
61 ≪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pp. 34-35.
62 P. J. 디츠겐, ≪철학 소론집≫, p. 53.;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상)≫, p.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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