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노동운동과 시민(부문)운동과의 관계

 

박문석 │ 연구위원

 

 

들어가며

 

생산력 발전에 따른 자본주의적 생산의 위기는 가속화 되고 있는 반면에, 사회변혁의 주체이어야 할 노동운동과 함께 해야 할 시민(부문)운동의 관계가 복잡하고 불명확한 상황이다. 이에 한국에서의 시민운동의 발생과 전개 상황을 알아보고, 더욱 강화된 독점자본에 반해 소부르주아의 몰락이 가속화되는 현실에서 노동자계급 운동과 괴리되어 진행되고 있는 시민운동의 한계와 그 발전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1. 노동 운동에서 바라보는 시민운동

 

1) 시민운동의 정의와 태동

 

-시민은 민주 사회의 구성원으로 권력 창출의 주체로서 권리와 의무를 가지며,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공공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고대 사회에서는 일종의 특권 계급으로 존재하였고, 근대에는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 계급으로 시민 혁명을 주도한 계층을, 현대 사회에서는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 전체를 의미한다. 자발성과 보편성이며, 비판적 사고와 합리적 의사 결정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과는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시민운동이란 시민들이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집단 행위로서, 공익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믿는 특정 대안을 제시하거나, 공익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되는 정책ㆍ제도ㆍ관행 등을 제거하도록 다른 시민들을 계몽하고 관계 기관에 자극과 압력을 행사하는 활동이다. 최근에는 시민 단체 또는 비정부 기구(NGO) 활동을 시민운동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1960년대 말부터 서구 사회에서 기존의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계급투쟁적 성격의 사회운동에서 벗어나, 환경운동, 여성운동, 평화운동 등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를 신사회 운동이라고 한다. 신사회 운동은 다원적 가치를 중시하고 다양한 분야의 쟁점을 대상으로 하며, 인류와 지구의 미래에 관련된 문제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다. 오늘날의 시민운동은 대부분 이러한 신사회 운동의 부류라고 할 수 있다.1)

 

1960년대 말부터 세계 자본주의 진영의 불황으로 유럽 국가들에서 복지 해체를 내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도입되었다. 이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고조 되면서 직접적인 계급투쟁이 아닌 신사회 운동(시민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이와 더불어 80년대 후반의 수정주의와 90년대 초 쏘련의 해체를 겪으면서 변혁운동 진영이 대거 전향하여 시민운동진영으로 활동 영역을 이전하게 된다.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계급투쟁과는 다른 결로서 시민(부문)운동이 본격적인으로 사회운동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2) 부문운동으로서 시민운동 또한 계급성을 반영한다.

 

시민운동이란 경제적 착취에 기반한 계급투쟁 운동과는 구분되는 ‘비계급적 사회운동’이다. 아래의 내용과 같이, 다수의 문헌에서 체제 내적 개량이 목적이라고 서술된다.

 

유팔무 외(1999:72)의 정의에 따르면 시민운동이란 맑스적 의미의 시민 혹은 부르주아가 주체가 되어 벌이는 운동이나 단순히 도시 주민(시민)들이 주도하는 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 벌이는 ‘사회운동’을 의미한다. 아울러 노동운동이나 계급적 기반을 갖는 운동과는 구분되는 ‘비계급적(非階級的) 사회운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이병천(1991:44-45)은 시민운동의 성격을 경제적 착취에 기반한 계급투쟁 운동과 구분하고 있다. 그보다는 새로운 정치적 민주화 운동과 더불어 시민사회 내 모순의 복합적 차원에 조응하는 환경운동, 평화운동, 여성운동, 청년운동, 인종차별반대 운동, 민족운동 등 다양하고도 새로운 사회운동의 독자적 의의를 승인하는 복합적ㆍ집합적 운동이 곧 시민운동이라 본다.

한편 시민운동을 문화적ㆍ정신적 지배관계를 좌우하는 사회운동으로 보기도 한다. 이때 시민운동은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운동만을 포괄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계급모순에서 파생되는 사회문제, 곧 언론통제, 남녀차별, 환경운동 등을 해결하려는 자발적 운동으로 그 영역이 확대되기도 한다2)

 

그러나 이러한 표현들은 절반만 옳다. 필자는 부문운동으로서 시민운동도 일정한 계급성을 반영한다고 본다. 시민(부문)운동 또한 계급투쟁의 확장된 영역이다. 단지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대립이 직접적으로 첨예하게 드러나지 않고 ‘비계급성’의 형태를 취하지만, 본질은 노ㆍ자 양대 계급의 이해관계가 경제영역의 외부에서 대립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어느 계급의 헤게모니가 작동하느냐에 따라 시민운동(부문운동) 또한 노동자계급의 사회변혁에 복무하거나 또는 부르주아 독재 권력의 강화에 복무할 뿐이다.

 

계급사회에서 계급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 대부분의 시민운동은 부르주아 지배의 계급모순을 완화(절충)하고, 운동의 급진적 발전을 방해하며, 부르주아 독재를 유지 강화하는 데 복무하기 때문에 계급적이다. 그러한 시민운동은 소부르주아적 운동이며, 이들 운동의 배경에는 국가와 자본의 지원이 있다.

 

사회주의혁명을 지향하지 않는 시민(부문)운동은 결국 부르주아의 지배에 복무하게 된다. 그래서 시민(부문)운동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지도가 따라야 한다. 시민(부문)운동은 사회변혁의 동력을 형성하는 또 하나의 장으로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노동운동 진영에서도 사회혁명의 동맹관계로 바로 설 수 있도록 지도하고 지원하고 함께 투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 운동 내에 이를 지도할 독자적인 정치적 참모부인 ‘당’이 건설되어야 한다. 아직 이러한 ‘당‘이 없으니 한국의 시민(부문)운동이 정치적 전망을 잃고 몰(沒)계급적 실천 속에서 헤매고 있거나 지배계급의 이해에 복무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운동은 자본주의사회에서 부차적인 모순을 다루고 있으며, 주요모순의 해결로 이 모순 또한 해결된다. 그래서 기본모순이자 주요모순인 계급모순으로 역량과 관심을 보다 집중해야 하며, 부문운동 또한 노동운동과 함께 전체 운동에 복무하며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시민운동의 반동성이 극명하게 보였던 것으로 쏘련의 사례를 들수 있다. 제국주의 진영의 쏘련에 대한 파괴 공작은 문화, 언론 등의 부문에서 활발히 전개되었고, 쏘련의 몰락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다른 한편으로는 쏘련의 몰락에 따라 사회변혁의 전망을 상실한 세계 각국의 활동가들이 대거 시민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체제 내적 개량을 위한 운동에 투신한다. 그러한 과정의 배후에는 서구 제국주의 진영의 공작정치와 이데올로기적 물량 공세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변혁운동을 포기하고 전향한 활동가들은 부문운동의 영역에서 살길을 찾으며 계급대립의 은폐와 계급투쟁의 급진적 발전을 가로막는 데 기여한다. 국가와 독점자본의 재정지원은 곧 이들에 대한 매수이다.3) 이들의 활동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완화하는 정부 기능의 대체이다.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결과는 노동자계급 해방투쟁에 이토록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3) 한국에서의 시민운동

 

한국에서의 시민운동의 시작은 1987년 6월 항쟁에 이은, 7ㆍ8ㆍ9월 노동자 대투쟁에서 보였던 전투성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소시민계급의 반응이었다. 1989년 불로소득을 봉쇄하고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평화적인 시민운동을 천명하며 만들어진 ‘경실련’의 활동은 제도적인 수단에 의존한 체제내적 개량이 목적이었다.

 

1994년에 출범한 ‘참여연대’는 1998년 정부지원 없이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금으로만 운영되는 단체로 자리를 잡았으며, 2020년에는 15,000명의 회원을 가진 대표적인 시민단체로 성장했다. 2000년대를 전후하여 한국에서는 환경단체, 인권단체, 여성단체, 문화단체, 언론단체 등의 시민단체들이 폭발적으로 생겨났고, 지역에서도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결성되어 활동하였다. 진보적인 시민단체가 있는 반면에, 보수적인 시민단체도 많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인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세력이 설립한 ‘뉴라이트 전국연합’,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바른사회 시민회의’, ‘시대정신’ 등이 보수적인 시민단체들이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에 따른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과, 90년대 초 쏘련의 몰락과 변혁 전망의 상실, 중산층의 형성, 사회의 다양화, 자연 생태와 환경의 위기 심화 등이 한국에서의 시민운동의 성장 배경이었다. 현재 한국에서의 시민운동은 생태, 환경, 여성, 통일, 성소수자, 빈민(철거, 노점, 노숙), 학생, 문화예술, 의료, 지방자치(풀뿌리), 평화, 반핵, 언론 등등으로 폭넓게 전개되고 있다. 한국에서의 대부분의 시민운동 또한 국가와 자본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해 왔다.

 

80년대 후반 초기 민주화운동을 거쳐 1992년까지 노태우 정부의 집권기간은 정부가 시민단체의 활동을 허용하기 시작하면서 시민단체와 정부 간 관계는 대립과 갈등의 관계로 나타났다.

1993년-1996년의 김영삼 정부 집권기간은 정부가 몇몇 시민단체의 협력에 의존하여 주요정책을 추진하거나 국가 요직의 인재 풀(pool)로 활용하는 등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의 일방적 의존관계의 특징을 보였다. 한편 1997 김대중 정부의 출범은 보다 적극적인 친NGO 성향의 변화를 표방하면서 시민단체에 대한 지원을 제도화하는 등 시민단체의 활동을 지원하였으며, 시민단체도 사안에 따라 정부 정책에 협력하는 상호의존적 관계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4)

 

 이처럼 80년대 후반의 계급투쟁의 고양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시민운동의 허용이라는 제도 내적 개량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후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시민운동은 정부와 밀접한 관계가 되었다. 시민운동단체는 국가 요직의 인재 풀로, 정계 입문의 통로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국가로부터 제도화된 지원은 시민운동을 국가에 보다 의존하게 만들고 국가는 이를 활용하여 정부 정책에 협력하는 공존 관계를 형성했다.

 

시민단체의 입장에서 보면 재정기반이 취약한 여건 하에서 정부 재정지원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의존이 불가피하다. … 한편 정부입장에서는 환경, 교통, 여성, 인권 문제 등과 같이 정부가 독자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문제의 해결이나 특정부문의 개혁을 추진할 경우 시민들로부터 높은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있는 시민단체를 통해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거나 정당성을 확보하는 문제가 정부 정책 과정의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또한 사회복지, 교육, 문화, 자원봉사 등과 같이 지역사회의 서비스 제공과 관련하여 정부나 자치단체의 기능영역을 보완하는 시민단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다. 이와 같은 시민단체와 정부 간 관계의 진전은 구체적 관계 여하에 따라 시민단체의 정체성과 사회적 효용성이 결정될 것이다.5)

 

4) 시민운동의 한계

 

시민운동은 자본주의 모순과 역사발전의 필연성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분석하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이런 모순은 모두 비정상적이고 그릇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이 얻은 결론과 내놓은 처방은 오류와 공상에 빠질 수밖에 없다.

 

채만수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소장은 시민운동의 반동성을 아래와 같이 지적한다.

 

이제 노동자ㆍ민중 역량의 성장으로 과거와 같은 노골적 폭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분위기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효과적 방어를 위해서는 누군가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면서 대중의 분노를 어딘가로 분출시켜 감압시키는 임무를 떠맡아야 한다. 그리하여 등장한 것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다. 그들은 부동산 가격의 폭등과 그에 따른 노동자ㆍ민중의 생존권 파괴가 자본주의적 생산에 고유한 산업순환상의 특정 국면에서의 필연적 현상임을 은폐하고, 정부의 우연적인 정책의 실패인 것처럼 몰고 갔다. 그러면서 이른바 ‘토지공개념’의 확대를 요구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러한 선전 전술이 대중적으로 성공하면서 그들은 시민단체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확립하게 된다. …

‘경실련’의 핵심적 인사들이 주관적으로 그것을 인식하든 아니든, ‘경실련’의 이데올로기는 ‘반봉건 산업자본’의 그것이고, 그리하여 ‘토지공개념’이란 것도 사실은 민중적 혹은 노동자적 이해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전자본주의적 토지소유에 반대하여 산업자본의 이해를 대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자본주의적 토지소유가 시대착오적인 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이다. 이미 시대는 산업자본주의 단계를 훨씬 지나 금융자본주의 단계, 그것도 그 마지막 국면에 있기 때문이다. 6)

 

‘재벌개혁’이니 ‘재벌해체’니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독점자본의 합리화의 문제여서 독점자본가계급의 프로젝트이지 노동자ㆍ민중의 프로젝트가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도 저 ‘진보적’ 시민운동가들, 시민운동 단체들은 그것을 노동자ㆍ민중의 부담으로 해내려 하고 있고, 노동운동 내부에도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7)

 

‘재벌개혁’을 주장하며 ‘독점자본의 합리화’를 통해 독점부르주아의 이익에 복무하고자 하는 소부르주아적 시민운동이 갖는 한계는 명확하다. 나아가 이들의 이데올로기가 노동운동 내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데에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재벌해체’의 목소리는 노동자계급의 요구로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 밖에 ‘경실련’의 대표적인 활동으로 ‘금융실명제 실시, 토지공개념 강화. 재벌기업 내부의 부당거래 고발(재벌개혁), 사외이사제(경영투명성), 소액주주 대변’ 등이 있으며, 이러한 활동들은 부르주아적 요구와 실천으로 정리된다. 그리고 이러한 유의 시민단체들을 채만수 소장은 ‘새롭게 등장한 관변단체’라고 말한다.

 

우리는 공기업의 이러한 분할매각 과정에서의 이른바 ‘시민운동단체’들의 역할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 수많은 ‘시민운동단체들’ 역시 ‘비효율적인 공기업의 독점’을 비판하면서 그것들을 ‘분할매각’하는 ‘개혁’을 요구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사실 ‘경실련’이나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등, 오늘날의 ‘시민운동단체들’이야말로 1987년의 ‘민주화 대투쟁’과 ‘노동자 대투쟁’ 이후, 혹은 김영삼의 이른바 ‘문민정부’ 이래, 변화된 정치적ㆍ사회적 조건을 반영하여 새롭게 등장한 관변단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도, 노동자계급 운동 내부의 지도적 세력조차, 많은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과의 ‘연대’에 열심이니, 참으로 딱한 노릇입니다. 8)

 

시민운동이 대중 속에서 헤게모니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정부의 지원과 더불어 언론의 적극적인 지원과 호응이 있기 때문이다. 언론과의 우호적인 관계는 상호 간의 공생관계이기도 하다. 언론 또한 자본가들의 것이고, 언론의 활동도 체제 유지에 복무한다. 정부와 언론의 지원은 시민단체의 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이른바 ‘진보언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조ㆍ중ㆍ동 등의 수구언론이 ‘우리사주 공대위’ 측의 지분 참여에 딴죽을 걸고 나서는 것은 물론, 적어도 주관적으로는, 친자본ㆍ반노동자적인 동기에서이다. 이에 대해서는 새삼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사주 공대위’ 쪽을 거들고 있는 이른바 진보언론 쪽의 동기는 어떤가? ‘반자본적’이기까지는 않더라도 친노동자적인 동기에서 거들고 있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물론 주관적으로 명확히야 ‘반노동자적’이지 않겠지만, 이들 언론도 분명 친자본적인 동기에서 ‘우리사주 공대위’ 쪽을 거들고 있다. 표면적으로도 그러한 친자본적인 동기를 결코 숨기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들 ‘진보언론’의 친자본적 동기는, 독점자본의 근시안적 관점을 사실상 그대로 여과 없이 반영하고 있는 수구언론의 그것보다 훨씬 더 교묘하고 치밀하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에게는 그만큼 더 위험하다. 다름 아니라 ‘재벌 개혁’이라는 슬로건으로 제시되는 독점자본의 합리화, 그리고 이른바 ‘상생적 노사관계’의 확립, 즉 노동운동의 거세가 이들의 목적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이는 바로 총자본, 혹은 자본의 이성으로서의 국가가 ‘우리사주제’니 ‘종업원지주제’니 하는 것들을 입법ㆍ제도화하는 동기이기도 하다). 이들 ‘진보언론들’이 사실상 얼마나 (비록 미필적일지 모르지만) 반노동자적이고 친자본적인 동기에서 우리사주제를 찬양하면서, 근시안적인 자본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확대하도록, 그리고 노동자들에게는 그쪽으로 달려 들어가도록 유도하고 있는가는, 예컨대 ≪한겨레≫의 <월급쟁이서 주인으로 … 노사상생 ‘선순환’>(www.hani.co.kr., 2005. 9. 20.)이라는 기사가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 기사는 주로 “우리사주조합 최대 지분 쌍용건설”이 “위기 넘기며 주가 2천원 → 9천 원대로” 뛴 우리사주제 최대(?)의 성공담을 최대의 찬사로써 소개하고 있는데 … 9)

 

국가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정당도 이들 시민운동단체를 적극 활용한다. 정책과 관련해서도 그렇고, 보수정당의 수혈 루트로도 그렇다. 시민운동 활동가들도 정치판을 기웃거리며 정계 입문의 도구로 삼는다. 시민운동을 통해 육성된 인력들로 생명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 가는 보수정치권이다. 시민운동이 철학과 올바른 전망을 갖지 못하면 지배계급의 수혈도구로 전락한다는 사실은, 문재인 정권 출범 1년 뒤 청와대와 내각에 참여연대 출신이 62명이라는 수치에서 드러난다. 시민운동 초기인 김영삼 정부에도 경실련의 인사들이 입각했고,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때는 뉴라이트 시민단체들의 인사들이 줄지어 입각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참여연대정부’. 문재인 정부에 붙은 별명 중의 하나다. 조국(전 민정수석, 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장하성(전 청와대 정책실장, 주중대사), 김상조(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참여연대 출신이 문재인 정부의 요직에 다수 포진되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뒤인 2018년 <중앙일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청와대와 내각 등에 참여연대 출신이 62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문재인 정부에 너무 많은 참여연대 출신이 들어가 생겨난 ‘참여연대정부’라는 비아냥거림이 대표적인 예지만, 시민운동 초기인 김영삼 정부 초기에 이미 정성철, 안병영, 이수성 등 경실련 인사들이 입각해, 경실련이 ‘정치단체화’ 되었다는 비판을 들었고, 정계로 가기 위한 수단으로 시민단체에 참여하는 학자 등도 다수 생겨났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때는 뉴라이트 시민단체들의 입각이 줄지었다.10)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와 자본의 재정지원은 미국의 경우 50%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의 경우 정부의 재정지원이 미국보다는 못하지만, 시민운동단체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의 재정은 정부와 기업의 지원과 회원들의 회비, 그리고 모자라는 부분은 활동가들의 헌신(희생)에 의해서 충당된다. 사업비와 운영비를 확보하지 못하면 도태되기 십상이다.

 

정부 재정지원 요인은 시민단체의 성장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 관계자에 대한 설문결과 응답자의 70% 이상이 정부 재정지원이 단체의 성장에 미친 영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실증자료의 분석결과 프로젝트 공모사업을 통한 정부재정 지원비중은 평균적으로 조사대상 단체 예산의 약 27%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부 재정지원 비중은 조사대상 단체의 재정자립도(단체 예산 중 회원이 납부하는 회비 비중)가 30.2%의 수준임을 감안할 때 정부 재정지원의 영향은 높다고 판단된다.11)

 

국가가 시민운동단체에 지원한 보조금의 규모를 연도별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12)

 

비영리단체 정부 보조금 교부액 (원)

2014년

12,326,746,000

2015년

8,759,500,000

2016년

8,774,000,000

2017년

6,328,400,000

2018년

6,783,000,000

2019년

6,877,000,000

2020년

6,301,500,000

합계액

56,150,146,000

 

많은 시민단체들이 정부와 자본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 박근혜 정권 시절에는 뉴라이트 단체들에게 자금지원을 해서 관제 시위까지 사주를 하였고, 정권이 바뀔 때면 자금지원의 대상도 달라지면서 시민단체들의 목줄(자금줄)을 권력이 좌지우지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일부 시민단체 지도자들은 대기업의 사외이사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는 시민단체는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시민단체로서의 역할을 할 수가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시민운동은 정부와 자본의 지원을 받으며 언론(부르주아 상부구조의 하나)과 긴밀한 연계 속에서 사업을 한다. 이러한 사업구조는 부르주아 지배의 강화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모순을 완화하는 목적과 결과로 수렴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라는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의 이익에 복무하고 있음을 은폐하는 기만적인 표현일 뿐이다. 설사 활동가들의 선의(무지)에 의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노동자계급에게 있어서는 지옥으로 가는 길일 뿐이다.

 

요즘은 정보통신망과 누리소통망(Social Networking Service, 이하 SNS)의 발달로 시민들이 시민단체보다 더 빨리 SNS를 통해 당면 문제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고 행동에 나선다. 입법청원운동 등 개개인들의 SNS를 통한 사회참여 활동은 빠르고 폭넓게 진행되고 있기에 전통적인 시민단체의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민단체의 입법 발의나 정책 제안은 대폭 감소하고, 시민단체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가 적어지고, 회비나 후원금도 줄고, 활동가들도 하나 둘 자리를 떠나고, 상근자 모집도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은 시민운동의 위기를 상징한다.

 

한국시민단체네트워크가 발표한 ‘시민단체 신뢰도 평가조사’에 따르면, 시민단체의 위기의 이유 3가지를 ‘시민 없는 시민운동, 정파적ㆍ이념적 편향성, 시민단체의 권력화’로 꼽는다. 시민운동의 위기의식은 2017년 9월부터 11월까지 광주 혁신을 주제로 한 시민 대토론회에서도 엿보인다. 역시나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재원 마련은 어려울 것이라는 한계를 노정한다.

 

다시 정리하자면, 부문운동으로서 시민운동의 한계는 소부르주아적 입장이라는 것. 변혁적 전망이 없다는 것. 체제 내적 개량을 목적으로 하며, 지배계급과의 영합 속에 생존한다는 것이다.

 

발달한 독점자본주의 시대에 소부르주아의 물적 토대는 축소되고 몰락해 갈 수밖에 없다. 독점자본은 축적 위기의 완충판으로, 시장 확대(집중)의 영역과 대상으로 소부르주아의 물적 토대를 끊임없이 공략한다. 특히나 공황과 장기침체에 따른 현재의 위기 상황은 독점자본에 의한 소부르주아의 물적 토대에 대한 타격이 집중되게 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 통제는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 한다. 소부르주아적 입장에서 국가와 자본의 지원을 받으며 체제유지와 강화에 복무해온 시민운동도 이러한 정세에서 그 영향력이 축소되고 있다.

 

5) 체제변혁적 시민(부문)운동

 

일부 변혁적 활동가들이 대중을 조직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민운동에 접근하는 경로도 있다. 이들의 사업방식은 부르주아 국가와 자본에 대립하며 전투적인 활동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도 대부분 계급운동을 기본운동이 아닌 수평적인 운동으로 나열하는 오류를 범한다. 사업 작풍도 노동자계급과의 밀착과 협력 속에서 진행하기 보다는, 재정지원 등에 따라 정부(지자체)사업에 경도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자계급과 함께하지 않고 지배계급의 사업에 관심이 더 가는 상황이니 운동의 독립성(자주성)에 있어서도 문제가 될 것이다. 정치적 전망도 일치하지 않는다. 이러한 한계는 빠르게 극복되어야 한다. 시민(부문)운동이 맑스-레닌주의 사상으로 지도되고, 체제변혁 투쟁에 복무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때 비로소 그 부문에서의 해방도 가능하다.

 

 

2. 시민운동의 이론적 근거인 푸코 이론13)

 

쏘련의 해체 후 맑스주의 운동이 부정되고, 푸코 류의 소부르주아 시민운동이 득세하게 되었다. 변증법을 부정하며, 노동자계급 해방을 통한 인간해방을 부정하는 푸코의 이론이 시민운동의 이론적 근거로서 제시되고 있다. 다양한 저항운동(여성, 환경, 성소주자, 인권 등)의 연합이 변증법을 대체해야 한다고 푸코는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곧 소부르주아 운동의 한계와 비과학성을 드러낸다. 시민운동이 올바른 전망을 갖기 위해서는 그 이론적 근거인 푸코의 주장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이 필요하다.

 

푸코는 68혁명을 통해 유럽의 혁명운동이 맑스주의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파악한다. 그러한 푸코 또한 68혁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변혁운동 진영에 몸담고 활동했던 사람들이 쏘련의 붕괴를 맞아 운동의 전망을 상실하고 다른 길을 찾을 때, 이들에게 계급투쟁이 아닌 다른 길로의 전향을 안내해주었던 이론이 바로 푸코의 이론이었다. 푸코 주장의 핵심은 “기존의 맑스주의는 거시적인, 총체적인 권력 현상만을 문제 삼아서 미시적(감옥, 병원, 광인, 성 등의) 권력 메커니즘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권력을 중심으로 하는 계급투쟁을 떠나 “국가권력 밖에 존재하는 미시적인 권력 현상에 대한 저항”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푸코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문영찬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장의 비판을 따라가 보자.

 

푸코는 이러한 권력의 미시물리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국가 바깥에 존재하는 권력현상을 분석한다. “국가는 일련의 권력관계의 그물망 위에 존재하는 상부구조이며, 실제로 인간의 육체를 규정하고 성이나 가족관계, 인척관계, 지식 그리고 기술 따위를 규제하는 것은 사회전체에 퍼져있는 섬세한 권력의 그물망일 뿐입니다.” 이와 같이 푸코는 국가 이외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권력 현상을 ‘섬세한 권력의 그물망’으로 파악하고 있고 그러한 미시적 권력의 작동메커니즘을 파악하는 것을 권력의 미시물리학이라는 개념으로 이루어내고 있다. 그런데 푸코는 여기서 더 나아가 기존의 맑스주의는 미시적 권력에 대해 놓치고 있다고 비판한다. 14)

 

국가권력 자체만이 아니라 학교, 병원, 감옥, 철거현장, 노동현장 등, 사회 곳곳에 감시의 시선과 권력의 그물망을 파악하고, 대중이 맞닥뜨린 억압과 감시에 맞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저항의 이론을 세워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 다만 푸코가 기존의 맑스주의가 자신의 시야를 국가기구에만 한정했다고 비판하는 점은 문제가 있다. 맑스-레닌주의는 국가권력의 문제를 혁명의 근본문제로 파악하면서 일체의 억압에 대한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정치폭로를 사회주의 정치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로 본다. 이러한 포괄적인 정치폭로가 푸코가 말하는 ‘권력의 미시적 현상’에 대한 폭로와 저항이다. 기존의 맑스주의가 미시적 권력 현상을 놓쳤다고 비판하는 것은 푸코의 오류라는 것이다.

 

푸코는 권력의 미시물리학이라는 개념을 강조하기 위해 권력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포기하고, 권력을 경제와 분리시켜 파악한다. 이러한 사회에 대한 총체적 접근을 부정하는 몰(沒)계급적 접근은 사회변혁의 전망의 상실을 초래할 뿐이다.

 

국가 그리고 국가 바깥의 섬세한 권력의 그물망은, 사회 곳곳의 감시와 억압체제인 판옵틱은 근본적으로 경제적 생산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것들이다. … 국가의 발달의 이유는 단 하나, 즉 계급대립의 심화 때문이다. 이것이 국가와 그를 둘러싼 다양한 권력관계, 권력의 그물망의 발달의 본질인데 푸코는 권력에 대한 계급적 접근은 맑스주의적 접근으로 낡은 것이고 경제적 접근과 계급적 접근을 떠나 권력에 대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푸코처럼 (국가)권력에 대한 경제적, 계급적 접근을 놓치면 남는 것은 사회변혁의 전망의 상실이고 고작해야 사회의 다양한 영역의 권력현상에 대한 저항, 배제의 논리에 대한 저항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푸코적 접근, 배제의 논리에 대한 저항은 지금은 우리 사회의 운동에서 상당한 영향을 발휘하는 논리가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운동은 전망을 상실하고 있고 역으로 운동의 전망의 상실이 푸코적 논리를 강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15)

 

푸코의 이러한 접근, 즉 맑스주의적으로 국가에 접근하는 것을 부정하고 권력의 미시물리학만을 강조하는 입장은 논리적으로 보면 사회에 대한 총체적 접근을 부정하는 것이다. … 사회에 대한 총체적 접근이 결여되면, 나아가 국가에 대한 맑스주의적 접근이 결여되면 계급투쟁의 개념과 노선은 사라지게 되고 운동은 전망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맑스주의적 총체성의 개념은 다시 복원되어야 하며 거시적 접근과 미시적 접근의 통일을 이루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 사실 푸코가 강조하는 권력의 섬세한 그물망은 국가의 고도화와 그것에 기초한 사회 곳곳의 억압과 감시체제의 발달에 다름 아니며 그것은 자본주의가 폐지되지 않는 상태에서 계급대립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기초로 한다. 따라서 푸코처럼 권력에 대한 계급적 접근을 거부하면 미시권력에 대한 투쟁 또한 올바로 이루어질 수 없다. 사회와 국가에 대한 총체적 접근, 맑스주의적 접근을 복원하면서 그것을 미시적 접근과 통일시킬 때만 변혁의 전망과 미시권력에 대한 투쟁들을 다 아우를 수 있다.16)

 

거시적 접근과 미시적 접근의 통일은 전략과 전술의 통일이며 전체운동과 부문운동의 통일이다. 계급적 관점에서 사회에 대한 총체적 접근을 하지 못한다면 운동의 전망은 사라지게 된다. 사회와 국가에 대한 총체적 접근, 맑스주의적 접근의 복원을 통해서만 푸코가 말하는 미시권력에 대한 투쟁 또한 올바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푸코는 참된 인식은 직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직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은 푸코 스스로가 자신의 이론이 반과학임을 선언하듯이 과학적이고 개념적인 사고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가 저술한 광기, 임상의학, 감옥, 형벌, 성 등의 영역의 저서들은 과학의 입장에서 배제되는 영역을 고찰하고 그를 기초로 배제에 대한 저항을 넘어서서 과학의 권력효과라는 개념을 통해 과학=권력으로 인식하고 그에 대한 대항을 선언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다. 과학은 필연성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법칙성을 탐구하는 것인데 여기에 대해 아무리 대항한다고 해서 과학이 부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푸코의 문제의식을 살리는 것은 과학의 권력 효과에 대한 대항이 아니라 과학의 이름으로 민중들을 기만하는 사이비 과학을 폭로하고 나아가 과학이 계급적 억압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음을 폭로하는 계급적 접근으로 나아가는 것이다.17)

 

푸코의 이론은 가치 개념에 있어서도 오류를 범한다. 가치란 곧 인간노동의 응결물이다. 노동에 의해 가치가 형성된다는 것이 노동가치설의 기본내용이다. 그러나 과학적 개념이 아니라 직관을 최고로 치는 푸코는 가치의 형성이 노동, 생산이 아니라 소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푸코는 또한 변증법에 적대적이다.

 

푸코가 맑스주의를 반대한다는 점에서, 계급투쟁을 떠난 저항의 이론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회주의 운동을 침식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변혁의 이론과는 거리가 멀다. 푸코는 변증법에 매우 적대적이다. 그러나 그의 변증법에 대한 인식은 피상적이다. 그는 모순을 통일성의 외관으로 파악한다. “모순, 그것은 숨는 또는 숨겨지는 어떤 통일성의 외관일 뿐이다.” 모순이 단지 통일성의 외관일 뿐인가? 모순은 통일성 내에 존재하는 대립을 가리키는데 푸코에게서 모순의 역동적 성격은 거세되고 모순은 단지 통일성이 어떤 조건에서 어긋나고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것이며 따라서 모순은 제거되어야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것은 변증법에 대한 매우 피상적인 이해에 기초한 것이며 통일성 속의 대립을 통한 운동이라는 것은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이렇게 변증법에 대해 매우 피상적으로 접근한 푸코는 변증법을 대체하는 것으로서 전략의 논리를 내세운다 … 모순을 통일성의 외관으로 파악하는 푸코에게 변증법은 변혁과 저항의 무기가 아니며 배제에 따라 성립하는 이질성들의 연합이 저항의 논리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계급투쟁을 떠난 저항의 논리의 핵이라 할 수 있다.18)

 

 

3. 노동운동과 시민(부문)운동의 올바른 결합

 

 세계자본주의 시장경제가 2007년 말에 도래한 공황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장기침체로 인해 체제위기에 직면해 있다. 독점자본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고, 그 방향은 소생산자를 타격하며 인간 노동력의 배제를 위한 구조조정으로 향하고 있다. 위기는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2010년 23.5%에서 2020년에는 20.6%로 떨어졌고, 매출액도 급감했다. 독점자본의 위기전가와 집중의 강화로, 코로나 방역통제의 영향으로 소부르주아계급의 물적 토대(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소자본의 몰락이 가속화 되고 있다.19) 골목상권까지 독점자본의 장악이 본격화 될 것이고, 비대면 산업으로, 전면적인 자동화로 빠르게 시장이 변화할 것이 예상되고 있다.

 

<자료: 통계청>

 

민주노총을 비롯한 시민사회운동에서는 재벌해체와 불평등구조의 해소를 요구하며 중소자본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를 요구하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러한 것들은 독점자본 합리화이며, 이윤을 포기할 수 없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의 공상에 불과하다.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몰락하는 소생산자들과 이들의 집단행동에 노동자계급은 정치적 지도력을 행사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이들을 노동자계급의 사회변혁 투쟁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견인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은 사회변혁의 주력인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참모부(당)가 없으며, 국가보안법을 위시한 파쇼장치들로 인해 정치적 발전을 억눌려 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노동자ㆍ민중이 저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자본주의사회의 기본모순은 노동자ㆍ자본 간의 계급모순이며, 제국주의시대에 발달한 국가독점자본주의인 한국사회의 주요모순 또한 계급모순이다. 사회변혁을 향한 계급투쟁은 기본모순이자 주요모순인 계급 모순에 기초하는 만큼, 여타의 시민(부문)운동은 부차적인 모순으로서 주요모순의 해결과 연합할 수 있다. 따라서 부문운동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역량들이 노동자계급의 운동과 밀착하여 사회변혁 운동에 복무하는 방향으로 부문운동 또한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아래의 글은 여성운동에 대한 글이다. 이 짧은 글 속에 부문운동이 어떤 전망을 가지고 투쟁을 해야 하는지 잘 드러나 있다.

 

여성해방은 사회변혁을 통한 생산수단의 사회화로 여성 전체가 사회적 노동에 참여하는 것과 가사노동의 사회화로만 성취될 수 있다. 그럴 때만이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과 더불어 자본에 대한 종속이 종식될 수 있다. 이러한 세상을 쟁취하기 위하여, 여성에 대하여 더욱 가혹한 착취와 억압을 불러 오는 자본주의 세상을 뒤집기 위하여 남성 프롤레타리아와 여성 프롤레타리아의 단결된 투쟁이 더욱 절실하다. 모든 남성 프롤레타리아와 여성 프롤레타리아의 일치단결된 투쟁으로 여성해방, 노동해방의 세상으로 나아가자. 20)

 

사회문제에 대해 총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에 기초하여 부문의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전체운동과 부문운동에 대한 통일적 사고가 필요하고, 전체운동에 복무하는 부문운동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부르주아 시민운동에 대해 독자성을 확보하고 뚜렷하게 분리 독립하여 투쟁해 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운동의 전망을 일치시켜야 한다. 부문운동과 기본운동인 노동운동의 결합,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할 지도력 또한 하나의 정치적ㆍ전략적 전망으로 통일된 ‘당’ 조직에서 나올 것이다. 그 ‘당’은 노동자계급의 당이어야 하며, 노동자계급의 지도는 당을 통해서 이루어 질 것이다.  노사과연

 


1) [네이버 지식백과] 시민 운동 [市民運動] (Basic 고교생을 위한 사회 용어사전, 2006. 10. 30. 이상수)

 

2) 한정자, “시민운동에서의 여성 참여 실태와 활성화 방안 연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https://www.kwdi.re.kr/research/projectView.do?p=80&idx=113452>

 

3) 미국은 시민단체 재정의 30%를 정부가, 20%는 자본이 지원한다. (절반이상의 자본과 정부 지원). 고용된 인원도 전체 고용의 7%에 해당하는 1100만 명이나 된다.

 

4) 강상욱, ≪우리나라 NGO의 성장에 관한 연구-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1, p. 11.

 

5) 같은 논문, p. 12.

 

6) 채만수. ≪노동자교양경제학≫, 노사과연, p. 534.

 

7) 같은 책, p. 353.

 

8) 같은 책, p. 564.

 

9) 같은 책, p. 315.

 

10) 손호철, “시민단체인가 관변단체인가, 갈림길에 선 시민운동”, ≪프레시안≫, 2021. 8. 16.

 

11) 강상욱, ≪우리나라 NGO의 성장에 관한 연구-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1, p. 8.

 

12)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 관리정보시스템

(<https://npas.mois.go.kr>)

 

13) 문영찬. ≪세계관과 변증법적 유물론≫, 노사과연.

 

14) 같은 책, p. 599.

 

15) 같은 책, p. 600.

 

16) 같은 책, p. 602.

 

17) 같은 책, p. 604.

 

18) 같은 책, p. 608.

 

19) “자영업자단체는 코로나로 인한 생계 곤란 때문에 그동안 목숨을 끊은 사례가 최근 이틀 동안 20여 건이나 접수됐다고 밝혔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 “코로나가 초래한 ‘자영업자 타살’ … 이 유행병에 국가는 왜 손을 놓는가”, ≪프레시안≫, 2021. 9. 18.)

 

20) 조남수, “페미니즘에 대한 일고찰”, ≪노동사회과학≫ 13호, 노사과연, p.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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