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특집: 쏘련 사회주의에 대하여] ≪맑스주의 역사 강의≫ 서평

― 몇 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전우재 | 회원

 

* 한형식, ≪맑스주의 역사 강의―유토피아 사회주의에서 아시아 공산주의까지≫, 그린비, 2010.

 

 

1.

 

천 가지 사회주의가 있다. 만 가지 사회주의도 있다. 천 가지 사회주의와 만 가지 사회주의가 서로 싸운다. 수 갈래 나뉜 사회주의가 싸우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직 사회주의를 내거는 나라들이 정말 사회주의인지, 그 사회주의가 바람직한지, 우리가 주장할 사회주의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와 같은 쟁점을 두고 의견이 나뉘어서다. 토론은 죄가 없다. 인원수 몇 없던 러시아 볼쉐비끼 당이 성장했던 까닭은 원칙에 따른 실천과, 그 실천을 반성하는 토론을 하며 끊임없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원칙과 상관없는 실천을 하고, 그런 실천 없이 다른 이가 했던 행동을 반성하며 하는 토론도 있다. 토론은 죄가 없지만 저런 토론은 죄가 된다. 사회주의가 이때까지 보여 온 역사, 원칙, 의식과 상관없는 실천을 하거나, 그런 실천도 없이 토론하게 된다면 토론이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기 어렵다.

 

사회주의를 주제로 토론하는 사람은 많다. 올바른 쟁점을 두고 토론하는 사람은 적다. 국가보안법이란 씨수말은 많은 자마를 남겼다. 그 자마들은 북을 핑계로 민중을 향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쓰였고, 이때까지 사회주의가 밟아 왔던 역사와 전혀 상관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데 쓰였다. 진정한 사회주의가 무엇이냐는 담론이다. 사회주의가 가진 본래 모습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현실 국가에서 악용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어떤 맥락과 관계 속에서, 어떤 역사 배경을 가지고 사회주의 국가가 나타나고 행동했는지 토론하는 건 문제가 안 된다. 그런 맥락과 관계에 관한 고민 없이, 사회주의는 이래야 한다는 연역 판단을 근거로 토론이 이뤄지면 그 토론은 문제가 된다.

 

현실은 계속 변한다. 현실을 설명하는 이론도 계속 변한다. 사회주의는 하나의 명제가 아니라 거대한 움직임이다. 활동가들과 사상가들은 가지각색인 그 시절과 환경에 걸맞은 이야기를 했고 실천을 했다. 각 이론은 각 현실에서 상황에 맞게 적용된다. 지금 존재하는 사회주의는 18세기 사회주의가 아니라, 19세기와 20세기를 거쳐 완성되고 완성된 형태이다. 처음 나온 사회주의 사상이 이랬기 때문에 지금 혹은 그때 존재했던 사회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다. 현실은 급속도로 바뀌고 있는데 이론이 반영을 못 한 셈이다. 변하는 현실에 맞게 이론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그리고 그 적용을 통해 후대 사상가들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보아야 한다. 사회주의가 가진 그 내력과 배경을 알아야 최신 정세를 해석할 수 있고, 다음 방향도 예측할 수 있다. 본래 사회주의가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 존재했던 사회주의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는 현실을 더 깊이 있게 설명할 수 없다.

 

… 그런데 절대적 진리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의 역사적 발전과 무관하기 때문에, 그것이 언제 어디에서 발견되는가 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다. 게다가 이 절대적 진리, 이성, 정의는 유파의 창시자마다 서로 다르다; 이 특수한 종류의 절대적 진리, 이성, 정의는 또한 유파의 창시자마다의 주관적 이해력, 그 생활 조건, 그 지식과 사고 훈련의 정도에 의해 제약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적 진리들의 이와 같은 충돌은 그 진리들이 서로 부딪쳐서 닳지 않고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 사회주의를 과학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실재적 토대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1]프리드리히 엥겔스, ≪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 변혁≫(≪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5권), 박종철 출판사, 1994, p. 22.

 

실제 역사상에서 어떤 움직임을 보였는지 알아야 한다. 사회주의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다. 그 변천 과정과 방향에 관한 이해와 공부가 필요하다. 무슨 주장을 하는 건지보다 왜 그런 주장을 하게 되었는지가 더 중요하다. 사회주의에서 추상할 수 있는 핵심, 그 핵심으로 이뤄진 이론과 세계관을 알아야 하고, 그에 못지않게 그 이론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그 세계관을 받아들인 사상가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도 알아야 한다.

 

말처럼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 사회주의는 어렵다. 자본주의에 발 디디고 사는 사람에게 사회주의는 생소하다. 변증법적 유물론, 역사적 유물론이나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같은 개념이 낯설다. 언론이 맹비난을 퍼부어 더욱 친숙하지 않다. 자본가계급이 소유한 언론은 사회주의 담론이 기어 나오는 걸 막는다. 노동계급이 사회주의에 친숙해지고, 자본주의 아닌 대안을 요구하거나 생각하는 걸 막아야 한다. 그래야 지배를 계속할 수 있다.

 

… 한껏 찬사받는 언론의 자유라는 게 실상은, 대단한 부자들이 신문사를 소유하고, 자신의 눈, 즉 거대 기업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의 모습을 대중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자유일 뿐이다. … 노동계급에게는 일간 신문사를 사들여 운영할 돈이 없다. 하지만, 부자들에게는 있다. 따라서 우리가 접하는 뉴스는 편향되고, 왜곡되고, 억제된 내용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적대적이고, 부자들에게는 우호적이다. 사실은 그처럼 단순하다.[2]리오 휴버먼, ≪휴버먼의 자본론―과연 자본주의의 종말은 오는가≫, 김영배 역, 어바웃어북, 2011, pp. 346-351.

 

자본가계급이 행하는 악선전과 온갖 어려움을 뚫어 내고, 과학적인 사고를 함양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건 아니다. 변화는 부분적으로 일어난다. 자본주의 사회에 몸담은 사람이 단시간에 과학 사상으로 무장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 토양에서 자신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그 영향으로 어떤 사고를 하게 되었는지를 차차 알아 가고, 차차 바꿔 나가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가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왜 노예제와 봉건제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만물이 변화하는 자연 세계에서 영원처럼 보이는 무언가도 결국 변화 중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회주의가 의회를 거치지 않아 민주적이지 않은 체제라고 생각하거나, 단지 폭력적인 체제라고 생각한다면 왜 그런 외피를 가지게 되었는지, 왜 자본가계급이 그런 부분을 공격하는지, 실제로는 어떻게 작동되었는지 줄기를 따라 올라가 알아보아야 한다.

 

전문적인 책을 보기 전에, 이런 전문적인 논의가 왜 나오게 된 건지를 알아야 한다. 간단한 논의가 확장되며 복잡한 논의가 된다. 천 가지, 만 가지 사회주의는 비교적 간단한 명제를 비교적 복잡한 현실에 어떻게 적용하느냐를 두고 갈라진 결과물이다. 농민이 많은 상황에서 사회주의를 퍼뜨릴 수 있냐는 현실 문제를 두고 정파가 갈라졌다. 그 분리는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일 수도 있고, 쁘레오브라줸쓰끼와 쓰딸린일 수도 있다. 이런 흐름이 왜 생겨난 건지 전체적으로 해설해 주는 문건들을 보며 탐구를 시작해야 한다.

 

사회주의 전반을 설명해 주는 책은 이전에도 있었다. 깊게는 다루지 않더라도 간략히 역사와 흐름을 언급해 주는 책들이 있었다. 문제는 역사를 언급하고 흐름을 쉽게 풀어 쓰는 건 좋은데 잘못된 견해를 다루는 책이 많았다. 내용은 알기 쉬워도 20세기 사회주의를 전면 부정하는 논조가 많았다. 맑스 시대에는 사회주의가 순수했는데, 억지로 사회주의를 참칭해 권력을 잡은 자들이 나타났다는 식이었다. ≪맑스주의 역사 강의≫는 쉬이 찾아볼 수 있는 책에서 그렇듯, 쓰딸린을 악마화하거나 20세기 사회주의를 전면 부정하지 않는다. 잘못된 선택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이었다고 판단하기보다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를 살핀다.

 

이 책은 공산주의라는 말이 나오게 된 침례교의 한 분파부터 설명하기 시작해, 여럿 혁명과 전쟁을 거쳐 사회주의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서술하고 있다. 공상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 무정부주의와 맑스주의, 서구 사회주의와 동구권 사회주의끼리 얽힌 복잡한 관계를 보기 쉬운 구어체로 풀어 설명하고 있다. 배경지식이 없어도 사회주의가 어떤 내력을 가져왔는가를 공부하기 좋게 구성되어 있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어떤 주장을 했기 때문에, 후대 사상가인 맑스에게 영향을 미쳤고, 맑스와 엥엘스가 무정부주의자들과 어떤 토론을 했기 때문에, 후대 사상가인 레닌에게 영향을 끼친 건지를 알아야, 지금 사회주의가 왜 이런 모습을 띠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전후 관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2.

 

사회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 어떤 형태를 거쳐 지금까지 온 건지 살펴봐야 한다. 그 과정을 잘 설명한 좋은 책이 있다면 어떤 경과가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설명해 주는 좋은 책이지만, 서문에서 저자가 밝히듯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었다.

 

… 또 맑스주의의 역사를 정리하는 데 있어서도 저 개인의 입장을 가급적 배제하고자 했습니다. 물론 온전히 객관적인 역사 서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특히 맑스주의처럼 당파적인 정치사상의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역사에서 좀 더 큰 영향력을 가졌던 맑스주의 해석들을 제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고 소개하려 애썼습니다.[3]한형식, ≪맑스주의 역사 강의―유토피아 사회주의에서 아시아 공산주의까지≫, 그린비, 2010, p. 10.

 

중립적인 서술은 어렵다. 사람은 주변 환경에 따라 생각이 변하고 생겨난다. 주변 환경에 따라 다른 배경지식을 가지게 되고, 똑같은 무언가를 보아도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객관적 현실은 인간에 작용하고 그의 의식에 반영되어 관념적으로 변환된다.”[4]A. 스피르킨, “의식”, L. 랴호베츠키 외, ≪소비에트 철학≫, 박성수 역, 이성과 현실사, 1988, p. 84. 당파적이라는 말은 단순히 진영 논리를 뜻하지 않는다. 자기가 겪거나 겪고 있는 환경에 따라 사람의 사고하는 방식이나 틀이 규정됨을 뜻한다. 사람은 그 틀을 통해서 생각하고 사고한다. 자기 틀을 통해서, 자기 환경에 따라서 생각하게 되므로, 사람은 당파적인 결론을 짓게 된다.

 

당파적인 의견의 예시는 이전 문단에서 제시한 휴버먼의 사례가 될 수 있다. 자본가계급은 자본가계급이라는 환경과 조건에 처해 있다. 자본가계급은 노동자계급이었다면 알 수 없고, 알려 하지 않는 많은 무언가로부터 영향받는다. 환경과 조건과 배경지식을 통해, 자본가계급만이 낼 수 있는 의견을 내고 생각을 하게 된다. 자연히 자본가계급이 저지른 행동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사고하고, 표현하게 된다. 자본가계급은 자본가계급만이 할 수 있는 당파적 사고와 의견을 내게 되고, 노동자계급은 노동자계급만이 할 수 있는 당파적 사고를 하게 된다. 월급 받아 일해야 한다는 임금 노동자라는 처지, 자본을 축적한다거나 마련할 수 없는 처지, 설사 자영업을 하는 소생산자가 되더라도, 재벌 독점자본과 국가에 의해 분해되어, 도로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와 조건과 환경 속에 있기 때문에, 노동자계급만이 할 수 있는 사고를 하게 된다.

 

당파적인 서술을 하게 됨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당파적 서술을 하는 책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했으면 어땠을까. 20세기 사회주의가 걸어온 길을 중립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가질 수 있는 관점에서, 노동자계급이 했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책을 만들었다고 선언했으면 어땠을까. 사회 구조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합법칙성을 깨닫는 것은, 그 구조를 유용하게 활용할 때 큰 의미가 생긴다. 사회주의 공부를 왜 하는가. 우리가 조금 더 풍요롭고, 조금 더 내 주변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라는, 현실적인 목표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때까지 선배 사회주의자들이 이런 활동을 해 왔기 때문에, 인류가 조금이나마 더 진보할 수 있었고, 오늘날 우리에게 이러한 영향을 주었다며, 노동자계급 입장에서 서술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책이었다면 더 좋지 않았겠는가 생각해 본다.

 

 

3.

 

<노동전선>에서 발행하는 ≪전선≫에 실린, 이 책에 대한 다른 서평을 살펴보자.

 

… 저자는 이러한 저작활동의 목적이 “맑스주의를 좀 더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그러나 개론서 또는 입문서가 가지는 일반적 특징으로서의 단순화는, 사상을 도식적으로 이해하게 하거나 주관식 문제가 아닌 객관식 문제와 같이 지식화하는 오류를 낳을 수 있다. 이 책이 그렇게 기능하는 것을 저자가 절대로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 책을 통해 맑스주의적 실천에 대한 충분한 호기심을 자극받기 원했을 것이며, 오늘의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야 할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한 천만 가지 이상의 실천을 꿈꿔 보기를 바랐을 것이다.[5]김지심, “<책 소개> 쫄지 말자!―『맑스주의 역사 강의―유토피아 사회주의에서 아시아 공산주의까지』 서평”, ≪전선≫ 제120호, 현장실천 … Continue reading

 

위 서평은 이 책이 맑스주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쓰인 입문서이며, 개론서 성격을 띤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은 딱딱한 문어체와 전문 용어가 많은 책이 아니다. 독자가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게, 그러나 치밀하게 본문이 구성되어 있다. 소설을 읽는 듯 몰입하여 읽을 수 있어 쉬이 덮을 수 없는 책이지만, 쟁점이 되는 부분을 조금만 더 풍부하게 구성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책이기도 하다. 사회주의는 그 성격상 논란이 되고 쟁점이 되는 부분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전위당론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문제와, 혁명 이후 농민과 같은 소생산자를 어떻게 다루어야 바람직하냐는 문제 같은 것들이다.

 

먼저 전위당론에 대해 살펴보면, 전위당론이 계몽사상에 영향을 받았다는 서술이 있다.

 

… 사실 맑스주의에서 ‘전위당’에 대한 생각은 카우츠키에게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그는 대중은 스스로 혁명적으로 될 만큼의 의식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지식인계급이 대중 바깥에서 노동자계급에게 계급의식을 주입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식인들의 특권적인 지도를 당연하게 본 것입니다. 카우츠키가 특별히 엘리트주의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계몽의 모델, 계몽주의자들의 생각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입니다. 일찍 계몽된 지식인들이 무지몽매한 대중을 각성시켜 주어야 한다는 이념이 맑스주의에도 똑같이 수용된 것이죠.[6]한형식, 앞의 책, p. 162.

 

그러면, 계몽사상이 무엇인지 동녘에서 펴낸 ≪철학대사전≫을 통해 알아보자.

 

… ‘계몽(Aufklärung)’ 내지 ‘계몽하다(aufklären)’라는 말은, 인간은 신의 계시에 의존한다는 신학적 견해와 대조되는 것으로 인간 자신의 자연적 본성에 관한 자각과, 인간 본성과 이성에 적합한 조화롭고 인간적인 사회 제도 내에서 이루어질 수 있고 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인류의 자기실현에 대한 자각을 의미한다. … 칸트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계몽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 자신의 지성(Verstand)을 사용할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7]한국철학사상연구회 편, ≪철학대사전≫, 동녘, 1990의 “계몽주의” 항목 중에서.

 

계몽사상은 귀족 봉건계급에 맞서 생겨난 사상이다. 왕과 귀족과 같은 구체제의 세력과 대결한 시민 자본가계급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민중을 동원한다. 이 책은 전위당론이 전위가 민중을 이끌어야 한다는 이론이므로, 자본가계급이 앞장서서 민중을 이끌던 계몽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분석을 하고 있다. 계몽주의는 신의 이름으로 지배를 정당화하는 봉건 세력을 공격하기 위해, 인간에게는 보편적인 이성이 존재하고 그 보편 이성을 발휘함으로써 봉건 지배를 벗어날 수 있다는 사상이다. 계몽주의가 말하는 보편 이성은 실제로는 보편 이성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의 당파적인 이성이고, 배워서 아는 이성이 아니라 원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이다. 계몽주의는 인간이 태어나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사회 속에서 이성이 생겨나는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원래 가지고 있는 이성이 있다고 전제한다.

 

전위당론은 인간의 의식성을 주목한다. 이전 문단에서 일부 인용한 ≪반뒤링론≫과 ≪휴버먼의 자본론≫에서 일컫듯, 사람의 의식과 생각은 주변 조건과 환경에 의해 형성된다. 자본주의 사회에 발 딛고 사는 노동자는 자본주의가 바라는 방향이 아닌 생각을 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자본주의 사상을 이야기하는 동료, 상사, 부하에게 영향을 받고, 자본주의 사상을 이야기하는 언론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가진 합법칙성을 남들보다 좀 더 아는 사람이 선진분자가 되어 대중의 의식을 환기시켜야 한다. 대중이 처한 주변 환경을 조금씩 바꾸어 사회주의적 의식을 끌어올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전위당론은 지식인계급이 민중을 지도하는 걸 정당화하는 이론이 아니다. 사회주의와 관련해 의식 수준이 높고, 사회 경제 전반을 아우르는 합법칙성을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운동을 이끌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의식 수준이 높은 사람은 물론 교수가 될 수도 있지만, 현장 활동가가 될 수도 있고, 일선 노동자가 될 수도 있다. 노동자계급 당파성이 확고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운동을 독려할 수 있는 선진분자가 될 수 있다. 전위당론은 운동을 이끌 선진분자를 정치적 결사체인 당을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하자는 이론이다. 생득적인 이성을 끌어내자는 계몽사상과는 정반대 전제에서 출발한다.

 

카우츠키는 대기론과 흡사한 이야기를 한 바가 있다. 이 책의 137쪽에서 정리하듯, 카우츠키류 사상가들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극심해지면 알아서 자본주의가 붕괴하고 사회주의가 찾아오리라는 주장을 했다. 이 책은 대기론이 계몽주의적 역사관에서 영향받아 나타났다고 분석한다. 카우츠키가 계몽주의에 영향을 받았을 수는 있겠으나, 계몽주의에 영향받은 카우츠키가 주장했기 때문에 전위당론 또한 계몽주의가 끼친 영향이 많았으리라는 해석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다음으로, 러시아 혁명 시기의 농민 문제와 관련해 서술한 구절을 보자. 쏘련의 농민 문제는 농민과 같은 소생산자를 혁명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이론이 현실에서 나타난 구체적 형태이다. 혁명에 누구를 참여시키고 누구를 적으로 설정하느냐를 다루는 중요한 부분이고, 혁명 후에 생산 수단을 가진 소생산자를 어떻게 대우해야 하느냐를 다루기 때문에 중요하다. 농민 문제를 언급한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처음에 스탈린은 좌익과 우익 사이에서 절충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런데 트로츠키를 제거하고 부하린도 제거한 뒤 1928년에는 ‘제1차 5개년 계획’을 발표합니다. 이 계획에서 스탈린은 좌익반대파들이 주장했던 것을 전면적으로 수용해서 급격한 산업화를 추진합니다. … 좌익 반대파들이 스탈린과 통합했던 이유는 스탈린이 자기들의 주장을 다 수용해 반대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 이 논쟁에서 세 노선이 아무리 달랐다 하더라도, 결국은 생산력의 급속한 발전을 사회주의의 아주 중요한 과제로 설정했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 생산력 발전을 위해 중화학공업 위주의 경제개발을 해야 한다는 전망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8]한형식, 앞의 책, p. 290.

 

쓰딸린이 처음에는 좌파인 쁘레오브라줸쓰끼와 우파인 부하린 사이에서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이내 당내 좌파가 주장하는 바를 받아들여 산업화를 서둘렀다는 서술이다. 좌파는 강제를 통해서라도 농민을 노동자로 전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이고, 우파는 농민이 자기 농사를 지으며 부를 축적하도록 장려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인용문에는 없지만, 이 책은 그 까닭을 독일과 같은 외부 세력이 끼치는 위협에서 보았다. 쏘련에서 농민층을 집단 농장으로 조직하는 시기에, 자발성이 억압되고 강제성을 띤 행정이 집행되기도 했다. 반대로 그런 강제성이 결국 도움이 되지 않으며, 무엇보다 자발성을 원칙으로 강조해야 한다는 의견 또한 있었다. 자발성을 강조하는 기조로 돌아선 쏘련은 결국 1937년에 농업 조직화를 높은 수준으로 달성해 낸다. 단순히 사적 재산을 사회화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타인 노동을 통해 불로 소득을 얻는 자본가와 부농을 먼저 억압하고, 나머지 소생산자를 설득하여 자발적으로 생산 수단의 사회화를 지지하도록 만드는 게 원칙이고 정도이다. 쓰딸린은 1930년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한다.

 

… 우리의 협동 농장 정책이 성공한 원인은 무엇보다도 이 정책이 자발성 원칙을 가진 것과, 쏘련 각 지방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한 데에 있다. 협동 농장 정책을 강제로 보급해서는 안 된다. 어리석고 반동적인 일이 된다. 협동 농장 운동은 반드시 농민 대중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어야 한다. 발달한 지방에서 적용된 협동 농장의 사례를, 발달이 덜한 지방에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어리석고 반동적인 짓이다. … 협동 농장 정책은 쏘련 내 지역들의 다양한 환경을 고려해 진행되어야 한다. … 협동 농장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 우리가 장악해야 할 지금의 형태는, 농업 아르쩰 형태이다. 아르쩰 형태는 기본 생산 수단, 주로 곡물 재배에 필요한 기본 생산 수단…이 사회화된다. 주택, 가축 … 등은 사회화되지 않는다.[9]J. V. Stalin, “Dizzy with Success―Concerning Questions of the Collective-Farm Movement”, Pravda, No. 60, March 2, 1930. … Continue reading

 

쏘련은 부농과 대립했다. 부농을 중농과 빈농을 조직하며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대립하며 생산 수단의 사회화와 집산화를 일궈 나갔다. 자본가와 같이, 임금 노동자인 농부를 통해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부농은 타도 대상이 된다. 부농이 아닌 중농과 소농은 회유할 대상이 된다. 레닌은 농민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프롤레타리아 주권은 여하튼 소농에게도 중농에게도 그들의 경지 보존을 보장해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보통 소작해 오던 경지까지도 주어서(소작료는 폐지하고) 그들의 토지면적을 확대해 주어야 한다. 부르주아지에 반대하는 단호한 투쟁과 이런 조치를 결합하는 것은 중립화 정책의 성공을 완전히 보장하여 줄 것이다. 집단경영에로의 이행에 있어서는 프롤레타리아 국가주권은 오직 최대의 신중성과 점진성을 가지고 모범의 힘을 가지고 중농에 대한 아무런 강제도 없이 실현하여야 한다.[10]레닌, “농업문제에 관한 테제 초안”, 강좌편집위원회 편, ≪노농동맹과 농민문제≫, 학민사, 1989, pp. 156-157.

 

쏘련의 농업 조직화는 논쟁적인 주제다. 당내에서도 농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뜨겁게 논쟁했다. 원칙은 존재했다. 소농과 중농은 혁명 과정에서 노농 동맹에 참여시키거나 적어도 반대하지 않게끔 하였고, 대농은 타도할 대상이 되었다. 사회주의 혁명은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는 임노동 관계를 폐절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모든 사적 소유를 일거에 박탈하자는 게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가 계속되었으면 어차피 소농과 중농은 분해될 운명이 된다. 자신이 가진 생산 수단을 빼앗기고 노동자가 된다. 사회주의 체제가 되어야만 진정한 자기 노동이 가능해진다. 자기 노동이 가능한 상황임에도 집산화가 가진 장점을 설명하여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끔 하는 방향이 바람직한 방향이 된다.

 

 

4.

 

이 책은 맑스주의가 거대한 흐름이라고 분석한다.

 

… 맑스주의는 아주 다양한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흐름들은 약간의 입장 차이를 가지고 평화롭게 공존했던 게 아닙니다. … 대부분의 맑스주의 이론들은 정치적 투쟁과 이론적 논쟁 과정 속에서 생성됩니다. 따라서 그것들이 등장한 맥락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와 싸우면서 한 말인지, 누구에게 찬성하면서 한 말인지, 또 누구의 주장에 영향받은 이론인지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11]한형식, 앞의 책, pp. 10-11.

 

책을 읽으며 계속 되새겨야 할 중요한 문장이다. 오늘날 사회주의나, 그 시절 사회주의가 왜 그런 형태를 가지게 되었는지, 왜 그런 구조였는지, 과거 사건을 시작으로 분석해 나가야 한다. 사회주의가 어떤 내력이 있었는지 학습하는 건 좋지만, 과거 사회주의가 단지 실패뿐이고 청산해야 할 과거라는 태도로 서술된 글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점이 긍정적이었는지, 어떤 점이 부정적이었다면 왜 부정적인 선택을 강요받았는지 탐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 책은 사회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이 밟아 온 길을 풀어 해설하여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책임에도, 과거 사회주의가 잘못투성이라고 청산하지 않고 있다. 단행본이라는 지면의 한계상 쟁점이 되는 모든 부분을 풍부하게 수록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 이 책은 사회주의가 가진 모든 부분을 집대성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을 계기로 사회주의를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이 책이 가진 목적이 이뤄지는 셈이다.

 

맑스주의는 흐름이다. 맑스주의는 강이고, 바다이다. 강과 바다가 어디서 흘러온 건지 알기 위해서는 역사라는 산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책은 강으로 가는 길과 계곡으로 가는 길을 마냥 안내만 하는 책은 아니다. 왜 강으로 가야 하고, 왜 계곡으로 가야 하는지 그 맥락과 흐름을 역사 관계 속에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가진 목적은 사회주의 역사를 책 한 권으로 통달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아니다. 이 책을 계기로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공부를 하게끔 하는 것이, 이 책이 가진 목적이다. 좋은 책을 보고, 좋은 수업을 들어 얻는 가르침도 귀중하지만, 결국 공부는 스스로 하게 된다. 왜 자신이 사회주의를 공부해야 하는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책이라는 의견을 남기며,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노사과연

 

 

[참고 자료]

– 한형식, ≪맑스주의 역사 강의―유토피아 사회주의에서 아시아 공산주의까지≫, 그린비, 2010.

– 프리드리히 엥겔스,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5권, 박종철 출판사, 1994.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편, ≪철학대사전≫, 동녘, 1990.

– L. 랴호베츠키 외, ≪소비에트 철학≫, 박성수 역, 이성과 현실사, 1988.

– 리오 휴버먼, ≪휴버먼의 자본론―과연 자본주의의 종말은 오는가≫, 김영배 역, 어바웃어북, 2011.

– 강좌편집위원회 편, ≪노농동맹과 농민문제≫, 학민사, 1989.

– J. V. Stalin, “Dizzy with Success―Concerning Questions of the Collective-Farm Movement”, Works, Vol. 12, Moscow: Foreign Languages Publishing House, 1955.

– 문영찬, ≪20세기 사회주의의 역사적 성격≫, 노사과연, 2022.

– 김지심, “<책 소개> 쫄지 말자!―『맑스주의 역사 강의―유토피아 사회주의에서 아시아 공산주의까지』 서평”, ≪전선≫ 제120호,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2020. 6. 5.

 

References

References
1 프리드리히 엥겔스, ≪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 변혁≫(≪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5권), 박종철 출판사, 1994, p. 22.
2 리오 휴버먼, ≪휴버먼의 자본론―과연 자본주의의 종말은 오는가≫, 김영배 역, 어바웃어북, 2011, pp. 346-351.
3 한형식, ≪맑스주의 역사 강의―유토피아 사회주의에서 아시아 공산주의까지≫, 그린비, 2010, p. 10.
4 A. 스피르킨, “의식”, L. 랴호베츠키 외, ≪소비에트 철학≫, 박성수 역, 이성과 현실사, 1988, p. 84.
5 김지심, “<책 소개> 쫄지 말자!―『맑스주의 역사 강의―유토피아 사회주의에서 아시아 공산주의까지』 서평”, ≪전선≫ 제120호,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2020. 6. 5. <https://napo.jinbo.net/v2/archives/5603>
6 한형식, 앞의 책, p. 162.
7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편, ≪철학대사전≫, 동녘, 1990의 “계몽주의” 항목 중에서.
8 한형식, 앞의 책, p. 290.
9 J. V. Stalin, “Dizzy with Success―Concerning Questions of the Collective-Farm Movement”, Pravda, No. 60, March 2, 1930. <https://www.marxists.org/reference/archive/stalin/works/1930/03/02.htm>
10 레닌, “농업문제에 관한 테제 초안”, 강좌편집위원회 편, ≪노농동맹과 농민문제≫, 학민사, 1989, pp. 156-157.
11 한형식, 앞의 책, pp.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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