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현장] 고민을 하다―대우조선해양 도보투쟁 참여기

 

김범수 | 회원

 

* 이 글은,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노동전선)>이 발행하는 ≪전선≫ 제134호에 실린 글인데, 본지에 다시 실으며, 약간의 내용을 추가하였습니다.

 

 

아직 여름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9월 8일,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들은 대우조선 서문에서 출발해 천 리 길 도보행진에 나섰다. 하루도 빠짐없이 도보행진을 하기에는 결코 짧지 않은 8박 9일이라는 기간 동안 통영-고성-함안-김해-양산 등 남해안 기자재 산업이 몰려 있는 지역을 지나 경남도청까지 도보행진을 하고 있었다. 노동전선의 동지들은 4일차인 9월 11일에 ‘집중 연대의 날’을 정해 함안에서 대우조선 노동자들의 도보투쟁에 함께 합류했다. 필자 또한 이 대오에 합류했다. 자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이 컸다.

 

4일째 도보행진 중인 대우조선해양 동지들을 함안군 칠북면사무소 앞에서 만났다. 먼 길을 걸으며 힘겹게 도보투쟁을 이어가는 동지들은 그늘에 앉아서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노동전선 동지이자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지회장이신 신상기 동지도 계셨다. 정자 아래에서 양말을 벗고 다리를 쭉 뻗고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신 동지의 발바닥에는 벌써 물집이 가득 잡혀서 터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아픔이 느껴질 정도였다. 신 동지 외에도 대우조선 동지들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가슴이 아팠다. 다리에 쥐가 나고, 발바닥에는 물집이 터지고, 땀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동지들은 절대 힘들다고 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이 있고, 이 투쟁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식사를 든든하게 하고 도보행진을 시작했다. 평소보다 사람이 적은 구간이라서 좀 빨리 걸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 일정을 마치고 다시 되짚어 보니 행진 대오가 지나간 구간이 사람이 많이 왕래하는 곳은 아니었다. 사람이 꽤 보이는 곳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수가 많든 적든 간에, 대중들은 집회에 나갈 때마다 우리가 그들로 하여금 관심을 보이도록 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반응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 주고, 또 의미를 던져 주고, 때로는 고민거리를 던져 주기도 한다.

 

도보행진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지나쳤다. 박수를 쳐 주는 사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주는 사람,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 이상한 것을 본 듯 흘겨보는 사람, 대놓고 욕을 하는 사람, 무슨 의미인지 모를 경적을 크게 울리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을 그냥 지나치기도 하고, 웃으며 손을 흔들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를 이상하게 보는 저 사람도 노동자겠지? 우리에게 욕을 하는 저 사람도 노동자겠지? 아마 그럴 것이다. 당장 내가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직장인 친구들도 고향에 많은데 말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대우조선해양의 노동자들이 무엇 때문에 2년 넘게 생업도 미뤄 두고 투쟁을 하는지, 왜 그 먼 길을 직접 두 발로 돌고 돌아서 도보로 이동하는지, 왜 스피커로 민중가요를 크게 틀어 놓고 행진을 하는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행진 대오를 향해 욕을 하던 사람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그 분은 차를 타고 있어서 대오를 금방 지나쳐 갔다. 만감이 교차했다.

 

슬슬 발바닥이 아파 오기 시작할 무렵이 되자, 행진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보투쟁을 마친 동지들은 마무리 집회를 하면서 일정을 마쳤다. 모두들 웃는 얼굴로 수고했다는 인사를 나눴다. 지쳐서 자리에 주저앉은 동지들도 많이 보였다. 음료수를 한 캔 마시고 숨을 고른 뒤, 함께 도보투쟁에 참가한 전선 동지들과 주먹을 불끈 쥐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은 동지들 옆으로 근처 가게의 주인아주머니로 보이는 분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질문을 하나 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집회를 크게 하냐고. 마침 가까이 있던 천연옥 동지가 대우조선해양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왜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들이 투쟁할 수밖에 없는지 간단히 설명을 해 드렸다. 설명을 들은 아주머니는 반문했다. “현대 같은 큰 곳에서 인수하면 더 좋은 거 아니에요?”

 

아주머니와 천연옥 동지 사이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전부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아주머니의 저 한마디 만큼은 똑똑히 들렸다. 욕을 하던 아저씨를 봤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아, 이렇구나. 자본주의는 노동자를 착취할 뿐 아니라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구나. 대오를 향해 욕설을 내뱉던 아저씨, 더 큰 현대에 인수되면 좋은 거 아니냐고 반문하는 아주머니…. 그리고 나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미련하게 거기까지 가서 뭐하러 사서 고생하냐고 말하는 고향 친구들까지.

 

대우조선해양의 동지들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고, 더 나아가서 노동해방의 그날 또한 반드시 올 것이다. 하지만 2021년 현재 아직 그날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묻는다. 왜 굳이 그렇게 힘들게 투쟁을 하냐고. 아직 우리에게는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가 있어야 돌아갈 수 있는 자본주의의 현실을 자본가계급의 이데올로기와 교육으로 인해 전혀 보지 못하고 있는 이런 대중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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