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신년사를 대신하여] 운동의 과학성ㆍ혁명성을 재확립해야 한다

 

채만수 | 소장

 

I

 

금년엔 새해 벽두부터 이윤 앞에서 인명을 중시하는 자본의 정신을 새삼 확인하였다. 다름 아니라, 중대재해기업보호법!

하루 평균 6-7명씩, 한 해에 2천 수백 명씩의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 ‘산업재해’, 정확히 말하자면, 자본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들이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이제 사실상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동안 그러한 살인들이 간간이 (자본의 입장에서는 ‘재수가 없으면’) 사회적 문제로 되었을 뿐 사실상 은폐되어오다가 마침내 대대적인 사회적 이슈가 되어, “일하다가 죽는 일이 없도록”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제정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는데, 그에 대한 국가, 즉 자본 측의 대답이 곧 이름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되, 실상은 ‘중대재해기업보호법’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아니라 ‘중대재해기업보호법’으로서의 그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그것을 제정하기까지 오간 언설들도 참으로 기가 막힌다.

우선 그 내용을 보면, 다른 것은 다 그만두더라도, 5인 미만의 사업장들은 아예 적용대상에서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들은 그 적용을 3년 유예한단다.

노동자들과 희생 노동자 유가족들의 강한 반발과 압력으로 관철시키시지는 못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자본의 정신은, 과연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한 ‘촛불정신’을 계승ㆍ대변한다는 자칭 ‘촛불정부’의 정신답게, 더욱 가관이었다. 주지하다시피, 국회에 제출한 ‘정부안’이라는 것이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4년간, 100인 미만 사업장에는 2년간 법 적용을 유예하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촛불정부’의 총아로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서는 박영선 장관이 총관(總管)하는 중소벤처기업부는 “‘주 52시간제도 도입’과 같이 300인 이상, 50-299인, 50인 이하로 3단계 유예 조항을 넣어달라고 수차례 주장하기도 했다.”[1]노지원ㆍ이지혜 기자, “중대재해기업 처벌은 어쩌다 ‘재해기업 보호법’이 됐나”, ≪한겨레≫, 2021. 1. 7. … Continue reading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원래 여야 발의안에도 없고 정부 의견서에도 없던 ‘5인 미만 사업장 제외’가 갑자기 들어왔다”며 “이게 박영선 중기부 장관 본인의 뜻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2]같은 기사.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아니라 ‘중대재해기업보호법’이 제정되기까지 오고간 언설의 요지는 참으로 소름 끼친다.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시키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법 적용을 3년간 유예하는 이유가, 그리고 3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수년간 유예하자던 이유가, 이들 중소자본들이 그 법의 적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니 말이다.

결국 노동자들이 목숨으로 감당하라는 요구다! ― 바로 자본의 정신!

 

 

II

 

그런데 이 ‘중대재해’, 즉 자본이 저지르고 있는 이 살인들은 극단적인 형태이긴 하지만, 자본이 저지르고 있는 살인의 전체는 아니다. 해고ㆍ실업을 통해서, 그리고 장시간 노동을 통해서 자본은 헤아릴 수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을 늘상 죽음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대역병을 억제하기 위한, ‘거리두기’ㆍ‘영업장 폐쇄’ㆍ‘영업시간 제한’ 등의 방역조치들이 특히 사실상 과잉노동자 인구, 즉 산업예비군의 침전층인 이른바 ‘소상공인들’과 그에 고용되어 있던 정규직ㆍ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격하면서, 그리고 택배 노동자들을 위시한 일부 노동자들에게는 장시간 중노동을 강제하면서 그들의 삶을 산산이 박살내고 있다. 그런데, 전염병의 발생이야 사회체제를 가리지 않겠지만, 현재와 같이 과학과 생산력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에서의 그 전염병의 광범한 확산과 그에 따른 대량의 인명 손실이나 그 방역조치들에 의한 수많은 노동자ㆍ인민의 삶의 파괴는 명백히 자본주의라는 사회체제에 기인한다.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여 더 많은 잉여가치, 더 많은 이윤을 위해서 경쟁적으로 생산이 이루어지고 그 생산물들이 자본에 의해서 전유되는 사회가 아니라 생산수단이 사회구성원들 간에 공유되어 그들의 필요를 위해 생산이 이루어지고 그 생산물이 분배되는 사회라면, 현재와 같은 고도의 생산력은 분명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전염병이든 그것이 수그러들어 소멸할 때까지 어떤 조바심도 하지 않고, 즉 ‘먹고사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충분히 쉴 수 있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이 사회적 참상, 즉 영세ㆍ중소자본들의 대대적인 파산과 그에 따른 대량의 해고ㆍ실업 사태는 사실은 ‘코로나-19’라는 우연적인 대역병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벌어지지 않을 사태가 결코 아니다.

우선 직접적ㆍ단기적으로는 이 대역병이 발생하기 전부터 새로운 공황이 이미 폭발하고 있었고, 따라서 대량의 파산, 대량의 해고ㆍ실업 사태는 국내에서도 세계적으로도 이미 예정되어 있었고, 시작되고 있었다.[3]여기에서 자세히 논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한국을 포함하여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대도시의 주택가격이 폭등하는 원인의 하나도 바로 이 공황 … Continue reading

그리고 보다 근본적ㆍ장기적으로는 오늘날 AI(인공지능)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생산과 유통, 따라서 재생산과정 전반을 무인화(無人化)해가고 있는 과학기술, 가히 초고도의 생산력과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에 입각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모순이 오래전부터 그러한 대량의 파산과 해고ㆍ실업을 준비해왔고, 또 실현해왔던바, 삶의 전망을 상실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헬조선”이라는 비탄이 나오고 있는 게 벌써 몇 년 전부터인가! 곳곳에서 “못 살겠다”며 항의와 시위가 벌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런데 사실은 ‘헬조선’이 아니라 ‘헬자본주의’다. 극도로 격화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이 국내에서도 세계적으로도 노동자ㆍ인민의 삶을 파괴하면서 그들을, 그들이 의식하든 안 하든, 자본주의를 폐기하도록 투쟁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자본 측에, 끝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노동자ㆍ인민의 그러한 투쟁에 대한 대항수단들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군ㆍ경찰 등을 비롯하여 수많은 직접적ㆍ간접적 억압ㆍ대응수단들, 물리적ㆍ이데올로기적ㆍ경제적 억압ㆍ대응수단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현 국면에서의 한국정부의 대응만을 일별하자면, 극우언론ㆍ극우정치인 등이 “사회주의 정권”이니 “공산주의 정권”이니 하며 규탄해 마지않는 ‘촛불정부’가 “못 살겠다”고 부르짖고 나서는 노동자ㆍ인민의 항의와 시위를 나 몰라라 할 리가 물론 없다. 그리하여 ‘방만한 재정지출로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긴다’는 극우언론의 시끄러운 비난을 무릅쓰고 또 달래면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고, 또 지급하겠다고 한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다만, 그 고마운 분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그 거액의 지원금으로 당신들은 도대체 며칠이나 사실 수 있느냐고! 법과 정의의 수호자 윤석열 검찰이 쪼개기 한 거액의 접대비는 그만두고, 혹시 당신들의 소소한 하루 술값이나 되느냐고!

아무튼, 일부에서 ‘기본소득’이라고 명명하고 있는 이러한 거액의 재난지원금이 자본의 국가가 고맙게도 곤경에 처한 노동자ㆍ인민에게 던져주는 적선이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

 

 

III

 

그런데 적선은 적선일 뿐, 노동자ㆍ인민의 곤경은 더욱 확대ㆍ심화되고 있고, 따라서 그들의 항의와 시위도 더욱 확대되고 있다.

당연하다. 자본주의 국가의 알량한 적선으로는 노동자ㆍ인민의 빈곤화를 저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소부르주아적 진보주의자들은 (자본의 국가에 의한) ‘기본소득’ 운운하고 있지만, 자본은 결코 노동자ㆍ인민의 안녕ㆍ안락을 위해서 존재ㆍ운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AI로 대표되는 고도의 과학기술혁명이 재생산과정의 사실상 전면적인 자동화ㆍ무인화를 통해서 자본주의적 생산체제의 모순을 극한까지, 그것도 급속히 격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주의적 생산체제는 급속도로 그 임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결국 상황은 혁명, 노동자계급에 의한 자본주의적 생산체제의 폐기와 새로운 사회체제의 건설을 요구하고 있다. 과학기술혁명이 고도화함에 따라 급속히 격화되고 있는 자본주의 생산체제의 모순은, 그리고 고도로 대량화되어 있는 핵무기체제 속에서 다시금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는 제국주의 열강 간의 대립ㆍ갈등은, 절실하게 말하자면, 노동자계급에 의한 혁명이냐, 대전쟁에 의한 인류의 사실상의 절멸이냐를 묻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노동자계급은 지난 세기 후반기에 상실한 혁명성, 혁명의 과학성을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곳곳에서 투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주로 당장의 고용ㆍ임금 등등의 경제투쟁에 머물러 혁명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진보정치’를 내세운 일부의 조류는 이른바 ‘기본소득’ 등등, 부르주아 사회체제 내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소부르주아적 환상을 선전하고 있다. 간간이 ‘변혁’을 내걸고 나오는 투쟁들은 대개가 낭만적ㆍ무정부주의적이다. 당연히 모두 불모의 길이다.

국내외 노동자계급 운동의, 과학적 사회주의에 입각한 과학성ㆍ혁명성의 재확립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그것도 시급히!

노사과연

 

References

References
1 노지원ㆍ이지혜 기자, “중대재해기업 처벌은 어쩌다 ‘재해기업 보호법’이 됐나”, ≪한겨레≫, 2021. 1. 7. <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977786.html>
2 같은 기사.
3 여기에서 자세히 논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한국을 포함하여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대도시의 주택가격이 폭등하는 원인의 하나도 바로 이 공황 때문이다. 2007-8년부터 폭발한 대공황으로 국가마다 가히 천문학적인 량의 지폐를 쏟아붓고 중앙은행의 이자율을 0%대, 심지어 마이너스(-)로까지 내렸던 데다가, 새로운 공황에 대응하기 위해서 그러한 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가속화하고 있는데, 대도시의 부동산 가격이 어찌 폭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채만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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