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회원마당: 영화평] 가난에 대하여―영화 ≪하얀 악마; 금요일 밤 택시드라이버≫를 보고

 

 

배은주 | 사무국장

 

 

 

약 10년 전쯤, 서울 중심가에서 자정 넘어 택시를 잡던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늦도록 술자리를 하고서는 불콰한 얼굴로 택시를 잡기 시작했다. 1시간이 훌쩍 넘도록 택시는 도무지 잡히지 않았다. 빈 택시들은 예약이라거나 다른 핑계를 대며 우리를 태우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어떤 승합차 택시를 3만 원에 합의 보고 겨우 귀갓길에 오를 수 있었는데, 우리 일행은 택시에 타자마자 우리를 지나쳐 간 무수한 택시 기사들을 원망해 댔다. 그때 승합차 택시 기사는 외곽으로 가면 빈 차로 운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며 대신 변명하였다. 그날은, 아마도 금요일, 불금이었을 것이다.

 

≪하얀 악마; 금요일 밤 택시드라이버≫, 박승원, 2018.

 

박승원 감독이 ≪하얀 악마; 금요일 밤 택시드라이버≫를 만들게 된 계기는 바로 이런 비슷한 경험에서 비롯했다고 했다. 택시를 잡는데 안 잡혀도 너무 안 잡혀서 처음엔 화가 났는데 나중에는… 어, 이걸로 영화를 만들어 볼까? 했단다. 살면서 한 번쯤은 겪을 수 있는 이런 사소한 경험들이 누군가에 의해서는 작품이 되고 예술이 된다. 단편영화제가 표방하는 것 중에 하나가 누구나가 다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지만 우리의 일상을 응축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건 사실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박 감독은 상영 시간 17분 안에 정제되고 함축적인 장면으로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담아내었다.

 

박 감독은 이 작품으로 제2회 울산단편영화제(2019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 외 제10회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2018년),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2019년)에도 출품하였으며, 제17회 피렌체 한국단편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하였다. 주인공 하얀 악마라는 택시 기사 역할은 영화배우 고수가 맡았다.

 

*          *          *

 

금요일 밤, 하얀 악마의 택시를 탄 젊은 여성 1004가 평창동으로 가자고 한다. 승차 거부를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가지만 하얀 악마는 못내 마뜩잖다. 평창동은 부촌이다. 유명한 정재계 인사들과 연예인들이 사는 동네로 호화 단독주택이 즐비한 곳이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주변에서는 알 수가 없는, 그런 고즈넉한 집들만이 있는 곳, 그런 부촌에 들어가면 개미 한 마리도 태우고 나오지 못할 것이다. 특히나 지금은 금요일 밤인데 공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얀 악마는 택시 기사들의 형편없는 사정을 늘어놓는다.

 

택시 기사가 한 달에 얼마 버는 줄 알아요? 하루 종일 12시간, 화장실도 안 가고 차 안에 있으면 월 300, 회사원처럼 저녁을 집에서 먹으면 월 200, 사회적으로다가 조기 축구도 나가고 배드민턴도 나가고 지인 경조사도 가끔 챙기면 월 150에서 160…

 

하얀 악마는 빚이 800만 원 있다. 대부분 신용카드로 생활하는 소시민들에게 월 몇십만 원 빚은 기본이다. 설령 내 집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대출 없이 내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도 흔하지 않으니, 하얀 악마의 처지가 아주 지독한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이 애매한 부채 800만 원이 좀처럼 갚아지지 않는다. 사실 빚이 얼마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내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일 것이다. 하루 종일 일해서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에, 가끔 인간적으로다가 경조사 겨우 챙기는데, 그 대가가 늘어난 빚이라면?! 그래서 누군가는 눈덩이처럼 커지는 빚 때문에 사리 판단을 잘 못하는 지경이 되고, 누군가는 고리대금 사채를 써야만 하고, 또 누군가는 그 고리대금 사채 때문에 세상을 달리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면?!

 

하얀 악마는 자신의 발목을 잡는 빈곤한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받고 싶다. 그러나 늦은 밤 택시 안 좁은 공간에서 빈곤한 택시 노동자와 평창동 여성 승객 사이에 상호 교감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하얀 악마의 말이 이어질수록 평창동 1004는 불안하다. 안전 운행이라는 서비스와 그에 상응하는 택시비의 교환만이 있으면 될 것인데, 손님한테 서운하다느니, 빚이 갚아지지 않는다느니, 자꾸 남 탓만 하게 된다는 말은 불편하고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입장이 다른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냉랭하고 긴장감은 더욱 팽팽해진다. 영화는 이런 긴장감의 정도를 이용해 사건을 두 개로 설정하고 전개해 나간다.

 

카메라는 하얀 악마의 각지고 마른 옆모습, 낮게 읊조리는 말이 새어 나오는 입술,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뒷모습 등을 앵글이 모자라도록 크게 담는다. 게다가 그가 늘어놓는 말들은 께름칙하고 섬뜩하다. 잠시 후 하얀 악마가 뭔가 큰일을 벌일 것 같다. 마침내 그것은 현실이 되어, 피투성이가 된 1004가 택시 트렁크에 실려 있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하얀 악마는 평창동 1004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딸의 몸값으로 800만 원을 요구한다. 하얀 악마는 자신의 행동에 망연해 하며 빈 택시를 몬다. 하얀 악마는 한적한 곳에 가서 평창동 1004의 신분증을 확인해 보는데 이 1004는 평창동이 아니라 달동네에 산다. 하얀 악마는 몸값은커녕 살인자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감독은 사건 하나를 이렇게 마무리한 후, 조금 전 택시 안, 하얀 악마와 평창동 1004가 대화하는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 다른 사건으로 만든다.

하얀 악마는 평창동 1004에게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한다. 이번에 카메라는 하얀 악마를 정면에서 잡는다. 그의 표정은 애잔하고 쓸쓸하다. 그럼에도 평창동 1004의 이해를 얻기는 어렵다. 하얀 악마는 도중에 내리겠다는 평창동 1004를 어느 육교 밑에 내려 주면서 택시 기사를 미워하지 말라고 호소한다. 평창동 1004는 육교 위를 건너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무서우니 마중 나오라고 말한다.

평창동 1004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또 다른 젊은 여성 1004가 어둠 속에서 통화를 하며 나타난다. 영화에 몰입하지 않으면 이 두 여성의 교체를 눈치채기 어려운데, 그러면 그 다음부터 이야기 전개에 혼란이 올 수 있다. 이 두 번째 1004는 자신의 엄마가 사채업자에게 빌린 돈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 병든 엄마를 건사하며 사채의 원금도 갚았지만 사채업자는 생명까지 위협하며 이자를 내놓으라며 협박한다. 빚 독촉에, 줄어들지 않는 가난의 무게에 가난한 1004는 육교 아래로 투신하는데, 마침 평창동 1004를 내려 주고 돌아가는 하얀 악마의 차 바로 앞으로 떨어진다. 하얀 악마는 피투성이가 되어 숨이 넘어가는 가난한 1004를 내려다보며 앰뷸런스 대신 채권자에게 전화를 걸어 남은 빚 800만 원을 오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영화는 두 개의 사건에서, 평창동 1004가난한 1004, 그리고 부자이고 싶은 달동네 1004를 등장시킨다. 평창동 부잣집 딸일 것이라 생각하고 살해한 1004가 달동네 1004로 밝혀지는 첫 번째 사건의 결말은 전혀 예측 불가능하다. 하얀 악마의 극단적이고 비정상적인 행위는, 결국 자신처럼 가난한 사람을 살해한 것이 되어 버리고 자신 또한 파멸 외에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 두 번째로 전개된 사건에서는, 가난한 삶을 비관하며 투신하는 가난한 1004와 하얀 악마가 이 투신녀를 이용해 얼마라도 챙길 수 있을지 궁리하는 모습이다. 타인과 나를 이어 주는 것은 이용 가능한지 여부에 있다. 거기에는 생명의 존중 같은 건 없다. 달동네 1004의 살해, 가난한 1004의 투신, 그리고 살인자가 된 하얀 악마. 살인과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이 가난한 이들의 몫으로 놓여 있다.

 

절망이다. 이때 삽입된 현악기와 반도네온의 선율은 그것을 더 크게 해 준다. 음악은, 영화 ≪화양연화≫에서 두 남녀 주인공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시선을 마주치는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과 도입부가 같고 분위기가 비슷하다. 현악기에 의한 피치카토곡이 앞서고 첼로와 반도네온 혹은 바이올린이 따라가며 스토리를 받쳐 준다. 한 번은, 이따위 세상, 차라리 다 망해 버리라는 듯, 뒤집힌 세상이 이 선율과 함께 화면을 채우며 흐른다. 그리고 다른 한 장면은, 투신하는 여성과 그 투신녀를 두고 뭔가 궁리하는 하얀 악마를 담아내는 마지막 장면에서다. 두 장면 다 첼로와 반도네온 혹은 바이올린 선율로 보는 사람을 절망에 빠지게 한다.

 

가난한 군상들, 800만 원 빚이 있는 택시 기사 하얀 악마, 부모의 채무로 숨이 막히는 가난한 1004, 그리고 기사식당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 그리고 영화에는 보이지 않지만 가난한 1004의 모친과 고리대금업자도 나온다.

영화는 가난이 인간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고 인간의 품위를 어떻게 떨어뜨리는지를 보여 준다. 가난 때문에 비정상적이고 왜곡된 상상을 한다. 유괴나 인질로 몸값을 뜯어낼 생각을 한다.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않고 주차를 했다면 단돈 1,500원이라도 악착스럽게 받아 내야 한다. 내게 실익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 불필요한 인정을 베풀 이유가 없다.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렸다면 원금과 이자를 갚기 전까지 채무자의 생명은 사채업자의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인간적인 호소가 통하지 않는다. 가난한 군상들이,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서 서로를 붙잡고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모습이다.

 

영화는 가난을 숭고하게 혹은 아름답게 그리지 말 것을 경고하는 것 같다. 아, 왜 그래? 인생, 하루 이틀 살아 봤어?라고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고 훈훈하게 사는 모습은 거기에 없다. 가난한 이들이 자기보다 만만한 사람을 먹이 삼아 살고 있는, 혹은 살 수밖에 없는 수렁만이 있을 뿐이다. 삶의 벼랑 끝에서 하는 상상이 실제로도 왕왕 벌어지고 있는 현실. 세상은 어쩌면 소설보다, 또 영화보다 더 판타스틱한지 모르겠다.

 

영화보다 더 판타스틱한 이 현실, 죽음보다 더 깊은 이 수렁, 그런데 이것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노사과연

 

배은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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