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의 세계사적 의의

 

 

만수 │ 편집위원

 

 

20세기 사회주위 세계체제 해체 후의 세계

 

쏘비에뜨사회주의공화국연방, 즉 쏘련은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의 직접적 산물이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서로는 엘베강 이동의 구 동독으로부터 동으로는 태평양⋅베링해협까지,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에 걸쳐 광대하게 성립했던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 또한 바로 그 10월 대혁명이 성장⋅전화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원인⋅이유야 어떻든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도, 그 기둥을 이루고 있던 쏘련도 해체된 지 벌써 4반세기가 넘는다. 그리하여 그 성과가 해체되어 사라진 지 오랜 조건 속에서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의 세계사적 의의”라고 하는 문제를 제기할 때, 뜬금없다며 어이없어 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독점자본의 대대적 대중조작의 희생자들인 순진한 대중의 정서가 우선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대중의 정서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다. 지식인들 대부분의 정서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강단과 언론을 지배하는 주류 지식인들, 그러니까, 예컨대, 쏘련과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해체되자 “역사는 끝났다”던 프랜시스 후쿠시마(Francis Yoshihiro Fukuyama) 류의 드러내놓은 자본의 지식인들이야 으레 그러려니 치더라도, 언필칭 ‘진보적’ 지식인들조차 그 대부분이 사회주의⋅사회주의 혁명을 잊은 지 오래다. 그 역사적 사명과 수명을 이미 다하고, 최후의 몰락기에 들어선 지 이미 오래인 자본주의의 대공황⋅장기불황을 보면서, 그리고 그에 따라 심화돼가는 노동자 대중의 광범한 실업과 빈곤⋅고통을 목도하면서, 사회주의를 향해,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투쟁하는 대신에, 예컨대, ‘기본소득 보장’ 따위의 망상과 헛소리로 사회주의를 대체하는 것이, 그렇게 노동자 대중을 기망(欺罔)하고 오도하는 것이 오늘날에 유행하는 ‘진보적’ 지식인의 표징의 하나가 아니던가? 다름 아니라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들조차 축소⋅해체돼가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과거 사회주의에의 굳건한 전망을 가지고 투쟁하던 노동운동의 수많은 활동가들이 쏘련과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해체되자 부르주아⋅소부르주아 진영으로 전향해갔고, 일부는 심지어 유능한 극우 중의 극우로까지 변신해가지 않았는가?

이 모두는 언필칭 진보적 지식인들이나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조차 쏘련 및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해체된 후, 이른바 ‘자본주의적 생산체제의 영구성’에 압도되어 사회주의로의 전망을 잃고 허우적대고 있는 모습 그것이다.

그러면,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도, 쏘련도 해체된 지 벌써 4반세기가 넘는 지금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의 의의’를 묻는 것이 얼마나 ‘뜬금없고’ ‘어이없는’ 일인지를 보기 위해서 그간의 특징적 정세 몇 가지를 간략히 짚어보자.

첫째로, 유고슬라비아연방의 해체와 그 과정에서의 전쟁들 ― 수정주의와 그 귀결로서의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얼마나 배타적 민족주의⋅종족주의를 부추기며 전쟁으로까지 발전하는가를 보여준 사건들이었다.

부르주아 언론은 유고연방의 해체와 그 과정에서의 전쟁들을 주로 “옛날부터의 민족적 적대”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45년 동안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은 그것을 구성하는 많은 민족과, 인민, 종족집단, 종교 간에 훌륭하게 작동하는 관계를 수립할 수 있었다. 유고연방은 또한, 이웃 알바니아와도, 그 지도자들과의 날카로운 정치적 견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다. 민족적⋅종교적 차이들을 격화시켜 1991-1998년의 소동을 일으키게 한 것은 NATO의 간섭, 특히 독일과 미국이 조직한 [연방의: 인용자] 전복이었다.1)

 

둘째로, 아프가니스탄⋅이라크⋅리비아, 소말리아, 예멘, 시리아 등에서 벌였고, 벌이고 있는 미제국주의 주도의 침략전쟁과 신식민지화 ― 쏘련 및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라는 반제국주의 견제세력이 사라진 조건에서 미제국주의와 NATO로 묶인 서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거침없이 벌인 제국주의 침략전쟁으로, 반제국주의 정권들을 전복하고 괴뢰정권들을 세워 신식민지화했다.2) 이들 침략전쟁과 신식민지 경영은 그 지역 인민들의 삶을 대대적으로 파괴했고, 오늘날 서유럽의 극우화를 자극하고 있는 주요 요인의 하나인 ‘난민’ 문제는 바로 그 업보, 즉 그들 침략전쟁의 산물이다. 극동, 구체적으로 이 반도에서 그러한 비극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 않는 것은 오직 북이 보유하고 있는 핵병기 때문이라고밖에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미제국주의의 눈엣가시 중의 하나인 이란도 물론 마찬가지이다.

셋째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의 전방위적인 대대적인 공격으로서의 신자유주의 ― 두 말할 나위 없이 재격화된,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반적 위기가 그 근본적 동인이지만,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해체되지 않고, 그리하여 노동자계급이 혁명의 전망을 상실하지 않았더라면, 자본의 공격은 분명 그토록 노골적일 수 없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서유럽 각국에 확립된 이른바 ‘복지국가’ 체제 그것은 1930년대의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특히 쏘련 경제와 그에 따른 쏘련 인민생활의 비약적인 발전 및 그에 기초한 히틀러 나치에 대한 쏘련의 승리에 자극받은 서유럽 노동자계급의 대대적인 사회주의 혁명 열기에 대한 독점자본의 대응, 포섭을 통한 체제 안정화 전략의 결과였다는 것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3)

넷째로, 자본주의 세계의 정치지형의 극우화 ― 신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이 역시 재격화된,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반적 위기가 그 근본적 동인이며,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해체로 인해 노동자계급이 그 혁명적 전망을 상실하고 배타적 민족주의, 쇼비니즘으로 내닫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극우화가 얼마나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가는, 비근한 예로, 지난 10월 22일에 실시된 일본의 중의원 총선 결과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민⋅공명 집권 여당이 의석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둔” 데에 자극받아 ≪한겨레≫의 조기원 도쿄 특파원은 “진자의 축은 어디까지” 우측으로 우측으로 “움직일까”(2017. 10. 27) 하고 묻고 있지만, 일본 정치의 극우화는 사실은 “3분의 2 이상”의 문제가 아니다. 그 훨씬 이상, 중의원 의원의 최소한 85% 이상, 혹은 90% 이상이 사실상 극우 정치인들이다. 총 465석 중 ‘리버럴’로 평가되는 입헌민주당이 55석(득표율 19.88%)를 획득했지만, 위 ≪한겨레≫의 기사가 적절히 지적하고 있듯이, “예전에 비해서 상황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그렇게” 즉, ‘리버럴’로 “보이는 것일 뿐”이지 “지금 리버럴(진보)로 보이는 정치인들도 리버럴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정주의 내지 사민주의로 전락하여 이미 혁명성을 잃은 지 오래지만, 그나마 ‘좌파’랄 수 있는 공산당과 사회민주당4)은 총 465석 가운데 각각 12석(득표율 7.90%)과 2석(득표율 1.69%)을 획득하는 데에, 그리하여 의석의 겨우 3%를 획득하는 데에 그쳐 사실상 전혀 그 존재감을 찾을 수 없다. 1990년대 초까지 사회당과 공산당이 총의석의 평균 35% 이상을 점유하며, 극우 자민당에 맞서던 시절과 비교하면 그 극우화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이런 극우화는 비단 일본의 문제만이 아니다. 사실상 전세계적이다. 미국의 트럼프 집권을 위시하여, 독일, 프랑스, 영국, 오스트리아, 폴란드, 헝가리 등등등 유럽 주요 국가들에서도 ‘좌파의 몰락’⋅‘극우의 득세’가 하나의 대세로 되어 있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이른바 ‘체제전환국가들’, 즉 구 사회주의 사회의 인민들에게 닥친 비참하기 그지없는 불행들 ―

 

지난 80년 동안에 걸친 새로운 인류 문명의 모든 성과와, 새로운 유형의 사회를 건설하고 지키려는 사회주의 국가 근로인민의 수세대에 걸친 사심 없는 노력과 희생의 결과가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적에 의해서 짓밟혀버린 것이다.

이들 국가의 근로인민은, 수십 년에 걸친 자기희생 끝에, 자신들의 생활수준과 경제적⋅정치적⋅사회적 생활의 질이 향상되기를 기대하고 있었고, 또한 자기들 나라의 사회주의적 질서의 결함을 시정하기 위해서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용자] 갑자기 그들에게 빈곤, 기아, 인플레이션, 실업, 주택 상실, 매춘5), 부정부패, 조직범죄, 민족분쟁, 내전, 조국의 분할, 정치⋅군사적 쿠데타,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악으로는 제국주의 정부와 그들의, 국제적 기관에 의한 사회의 모든 경제적⋅정치적⋅사회적⋅군사적 지배라는 파도가 들이닥쳤다.6)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해체 후에 전개되고 있는 이러한 정세들에 비추어 볼 때, 지금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의 의의’를 묻는 것이 참으로 얼마나 ‘뜬금없고’ ‘어이없는’ 일인가!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의 세계사적 의의”를 재확인하고, 혁명의 필연성을 다시 확인하지 않고는 노동자계급은 물론 인류 자체의 어떤 생존의 전망도 찾을 수 없는 정세 추이이니 말이다!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의 성과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 …≫의 저자 바만 아자드는, “80여 년 전에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에 의해서 개시되었고, 세계 최초의 노동자 국가의 수립을 통해서 인류의 역사 발전 경로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던 과정이 지금은 쏘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해체에 의해서 새로운 단계에 돌입하였다”7)며,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의 성과를 다음과 같이 총괄하고 있다.

 

지난 세기에 사회주의 사상은 세계에 광범하게 확산되었다. 발전도상에 있던 사회주의는 단기간에 지구상의 광대한 지역에서 빈곤과 기아⋅실업⋅노숙을 일소하고, 의료와 교육을 정비하였다. 10월 혁명 후 쏘비에뜨 사회는 공업화와 경제적 발전을 향한 거대한 발걸음을 내딛었고, 불과 30년이 채 못 되어 스스로를 후진 자본주의 국가로부터 선진적인 공업사회로 오직 미국 다음의, 제2의 경제적 강국으로 변혁시켰다.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 소유를 확립함으로써 쏘련과 기타 사회주의 국가들의 인민은 전례 없이 많은 권리와 자유를 획득하였다. 이들 국가의 근로인민은 근로의 권리, 주거와 주택의 권리, 무상의 의료와 교육의 권리, 사회보장의 권리, 사회주의 사회가 보장하는 다양한 문화적⋅예술적인 써비스를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권리― 즉,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실상 상상도 할 수 없는 권리 ―를 보장받았다.

헌법과 법률을 통해 사회주의는 곧바로 여성의 평등한 권리를 전면적으로 승인하였는데, 이들 권리는 심지어 20세기 말에도 수많은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조차 충분하게 실현되고 있지 못한 것들이다. 쏘비에뜨 국가는 체계적으로 여성의 적극적인 경제활동 참여를 촉진하였고,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을 보증하였다. 이미 1980년대 중반에는 사회주의 국가인 쏘련에서 여성은 그 사회의 경제 활동 인구의 51% 이상을 점하고 있었다. 많은 경제 분야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쏘련에서는 예컨대 여성은 의사와 의료노동자의 75%, 교사의 73%, 문화노동자의 70%, 무역 부문 노동자의 76%, 통신노동자의 68%를 점했다. 여성의 직장 진출과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의 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한층 더 촉진하기 위해서 사회주의 사회는 여성에게 직장에서의 보육, 충분한 임신⋅출산 휴가, 육아 여성노동자의 노동일 및 노동주의 단축, 유아 보육기간 동안의 재택노동 알선 등의 써비스를 체계적으로 제공하였다. 수세기에 걸친 여성 억압이라는 부정적인 유산이나, 특히 20세기 초의 러시아 사회의 후진성 때문에 여성의 상태가 ‘이상적인’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그것과는 좀 먼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해방이라는 분야에서의 사회주의의 역사적 성과가 전례 없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음은 확신을 가지고 주장할 수 있다.

사회주의가 수립되고 그 사회주의 국가가 모든 민족의 동등한 권리를 승인함으로써 쏘비에뜨 연방에는, 그리고 나중에는 다민족으로 구성된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에도, 모든 민족이 우호적이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조건들이 창출되었다. 사회주의 정권이 존재한 전 기간을 통해서 이들 국가들에서는 다양한 민족이, 그들의 모든 문화적⋅사회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들 일부 사이의 과거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게 그리고 국제주의적으로 서로 이웃해 살았다. 민족분쟁을 일으키는 물질적 조건을 제거하고 그들 모두의 복지를 보장함으로써, 사회주의는 민족 간의 증오나 분쟁은 문화적인 차이 때문이 아니라 빈곤과 저개발 때문에, 그리고 자원을 둘러싼 경쟁으로부터 기인하는 경제적⋅정치적인 경쟁 때문에 일어나는 것임을 증명하였던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된 후 이들 국가에서 재발하고 있는 전쟁과 민족분쟁은 이러한 사실을 생생하게 입증하고 있다.8)

10월 혁명은 세계적으로 이전의 식민지 지배의 붕괴를 이끌어내는 방아쇠가 되었다. 사회주의 진영의 도움으로 과거의 식민지 체제는 지구상에서 제거되었고,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 정치적인 독립과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자립을 획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사회주의 세력, 그 첫 번째 주요 세력으로서의 쏘련은 파시즘의 위협을 타도하고,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위험으로부터 인류를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파시즘에 대한 승리에서의 그 역할뿐 아니라 자신의 내부적 성과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사회주의의 명성이 계속 높아지면서, 많은 나라의 민족해방투쟁이 사회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중국, 쿠바, 베트남, 조선 등과 같은 나라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였다. 쏘련에 의해 제공된 사심 없는 경제적⋅정치적⋅군사적 원조가 이들 국가의 경제적 발전과 사회적 진보에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제국주의가 아직도 잔인하게 파괴하려고 하고 있는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은 사회주의가 달성한 그러한 성과의 생생하게 살아 있는, 부정할 수 없는 실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기에 사회주의는 세계평화를 유지하고, 제국주의 간의 대립이 파괴적인 전쟁으로 전화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만 보더라도, 쏘련과 기타 사회주의 국가들은 세계에 대해서 160번 이상이나 군축 및 핵실험 금지, 혹은 심지어 일방적인 핵무기 삭감을 제안했는데, 이것들은 모두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서 무시되었다. 국가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초래될지 모름에도 불구하고 1985년에 쏘련이 일방적으로 핵무기 감축에 나섰던 일이나, 2000년까지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자고 했던 제안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 평화를 지키고 국제관계에서 긴장을 제거하려고 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노력의 찬란한 실례이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세계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사회주의에 대한 커다란 신뢰와 존경이 생겨났던 것이다.

이러한 성과와 세계 속에서의 사회주의의 물질적⋅정신적 권위의 끊임없는 증대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적⋅정치적⋅사회적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노동자들의 투쟁과 사회주의의 성과가 자본주의 국가들의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노동자들 사이에 사회주의 사상과 공산주의 운동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근로인민에게 최대한의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했던 것이다. 자본주의 세계 전체에서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이 인정되었다.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운동은, 대부분의 경우 사회주의의 국제적인 힘에 뒷받침되어, 새롭게 고양되었고, 자본주의적 질서에 심대한 경제적⋅사회적 개혁을 강제하였다. 미국에서 노동운동은 미국 공산당의 도움으로 지배계급에게 포괄적인 사회보장 제도와 실업보상 제도를 강제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서유럽에서 노동운동은 사회민주주의의 형태로 직접 정치의 영역으로 진출하여, 이들 사회의 교환양식을 주요하게 개혁하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정치적 상부구조에 심대한 변화를 강제했다. 많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민주주의가 정치 분야의 지배적인 조직 형태가 되었다. 많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자계급이 획득한 경제적⋅사회적 제도는 이미 객관적인 현실의 불가결한 일부가 되었고, 그것들을 다시 탈취하려고 하는 이들 국가의 지배계급은 노동자계급으로부터의 격렬한 저항을 받아 중대한 곤란에 직면해 있다.

사회주의가 지구적 규모에서 달성한, 가장 중요하고도 역전시킬 수 없는 성과의 하나는, 기본적 인권이라고 하는 개념의 의미를 확대⋅심화시킨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예컨대 근로⋅주택⋅의료⋅교육 등의 경제적 권리와, 모든 인류에게 가장 보편적인 권리로서의 평화와 사회정의라고 하는 원칙까지도 포함하도록 기본적 인권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전 세계의 압도적인 다수 인민으로부터 환영을 받아온 인권 개념의 이러한 확대는 사회주의 사회의 실제의 성과에 기초하여 이루어졌다. 오늘날 이들 권리를 확보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기본적이고 양보할 수 없는 인민의 요구를 이루고 있지만,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과는 양립할 수 없는 요구이다.

10월 혁명 및 사회주의 체제의 출현은 인류사회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는데, 그 전체적인 영향은 아직 충분히 실현되지 않았다. 다양한 객관적⋅주체적 요인 때문에, 현존 사회주의 국가들이 직면한 모든 곤란에도 불구하고 의문의 여지없이 사회주의는 ―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그 우월성뿐만 아니라 ― 그 필연성을 바야흐로 증명하고 있다.9)

 

“쏘련의 붕괴와 21세기에 대한 그 의미”에 대한 ≪배반당한 사회주의: 쏘련 붕괴의 이면(裏面)≫의 저자들은 “쏘련이 성취한 것들을 간단히 개괄하면, [쏘련의 붕괴로: 인용자] 무엇을 잃었는가가 명확해진다”10)며, 그 성과를 다음과 같이 개괄하고 있다.

 

쏘련은 구체제(old order)의 착취계급들을 일소했을 뿐 아니라, 인플레이션, 실업, 인종적⋅민족적 차별, 가혹한 빈곤, 그리고 부와 수입, 교육, 기회의 심한 불평등도 종식시켰다. 50년 사이에 쏘련의 공업생산은 미국의 그것의 12퍼센트에서 80퍼센트로 되었고, 그 농업생산은 미국의 85퍼센트가 되었다. 쏘련의 1인당 소비는 미국의 그것보다 낮았지만, 일찍이 어떤 사회도 그토록 단기간에 그 인민 모두를 위하여 생활수준과 소비를 그토록 급속히 증대시킨 적이 없다. 고용은 보장되어 있었다. 모든 사람이 유치원에서부터 (일반⋅기술⋅직업) 중등학교, 대학, 그리고 은퇴 후 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을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수업료가 무료일 뿐 아니라, 대학생들부터는 생활비를 받았다. 보건의료는 모두 무료였고, 1인당 의사 수는 미국의 약 2배였다. 다쳤거나 건강이 안 좋은 노동자들에게는 직장이 보장되었고 질병수당이 지급되었다. 1970년대 중반에 노동자들은 평균 21.2노동일의 휴가(1달 간의 휴가)를 즐겼고, 요양소나 휴양지, 이동 캠프는 무료이거나 보조금이 지급되었다. 노동조합은 해고를 거부하고 관리자들을 소환할 권한을 가졌다. 국가가 모든 가격을 조절했고, 기본적인 식료품비와 주거비를 보조했다. 주택 임대료는 가족의 총지출의 단지 2-3퍼센트였고, 수도료 등 공공요금은 단지 4-5퍼센트였다. 소득에 따른 주거의 차별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일부 지역이 고위관료들 용(用)으로 분류되어 있었지만, 나머지는 공장의 관리자들, 간호사들, 교수들, 잡역부들이 서로 이웃해 살았다.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는 문화적⋅지적(知的) 성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국가의 보조금으로 책값이나 정기간행물 가격, 문화행사의 가격은 최소한으로 유지되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흔히 서재(書齋)를 가지고 있었고, 가족마다 평균 4개의 정기간행물을 구독했다. UNESCO는 쏘련의 시민들이 세계의 다른 어떤 인민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영화를 본다고 보고했다. 매년 박물관을 방문하는 사람의 수가 전체 인구의 거의 절반에 달했고, 극장이나 콘써트, 기타 공연에 가는 사람들의 수는 총인구보다 많았다. 정부는 가장 후진적인 지역의 문자 해득률과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그리고 쏘련을 구성하고 있던 100개가 넘는 민족 집단들의 문화적 표현을 고취하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예컨대, 끼르기스스딴에서는 1917년에는 500명당 겨우 1명꼴로 읽고 쓸 수 있었으나, 50년 후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읽고 쓸 수 있었다.11)

 

세계적인 맥락에서도 쏘련의 소멸은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을 의미했다. 그것은 식민지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평형추(counterweight)의 소멸을 의미했다. 그것은, 새롭게 해방된 국가들이 어떻게 서로 다른 민족 구성원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어떻게 자신들의 미래를 미국이나 서유럽에 저당 잡히지 않고 스스로 발전해갈 수 있는가 하는 모델의 소멸을 의미했다.12)

 

자본주의적 착취, 불평등, 탐욕, 빈곤, 무지, 그리고 불의를 넘어, 보다 나은 세계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쏘련의 소멸은 막대한 손실이었다. 쏘비에뜨 사회주의는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었고,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주의 질서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맑스가 정의한 사회주의― 부르주아적 소유와 “자유시장”, 자본주의적 국가를 전복하고 그것들을 집단적 소유와 중앙계획, 노동자들의 국가로 대체한 사회 ―의 진수(眞髓)를 체현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것은 그 모든 시민들을 위하여, 특히 공장과 농장의 근로인민을 위하여 전례 없는 수준의 평등, 안전, 보건, 주택, 교육, 고용, 그리고 문화를 성취했다.13)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의 성과에 대해서 나는 이 이외에 무엇 하나 더하고 뺄 것이 없다.

그러면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이 특히 쏘비에뜨 사회주의의 건설과 그 성과를 통해 입증한 그 역사적 의의는 무엇인가?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의 의의와 교훈

 

그것은 인류가 노동자계급의 혁명을 통해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없는 보다 고도의 사회, 즉 무계급의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폐지하고 그것들을 공동체적 소유한 위에서 중앙집중적인 계획경제에 의해서,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를 통해서 달성된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14) 즉, 무계급 사회로의 인류의 도약의 전형, 그 한 모델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쏘련과 쏘련이 주축을 이루었던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해체된 것과는 무관한 세계사적 의의이다. 왜냐하면, 10월 혁명과 이후의 발전은 결코 소규모의 예외적인, 실험실적인 사건이 아니었고, 대규모의 국제적인 사건이자 70여 년의 장기간에 걸친 역사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도 러시아를 위시하여 노동생산력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졌던 지역에서 막강한 제국주의의 포위⋅간섭⋅압력⋅파괴공작이라는 악조건들을 극복하면서 달성한 성과였기 때문이다.

10월 혁명과 그 발전상으로서의 쏘련은 실로 20세기 초의 후진 러시아와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현대에는 생산수단의 공동소유와 계획경제를 통해서 단기간에 노동생산력을 고도로 발전시킬 수 있고, 인민 모두의 전인격적 발전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쏘련과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해체된 오늘날이지만, 그 해체의 원인은 10월 혁명과 그 결과 건설된 무계급 사회로서의 사회주의 체제의 내적 본성, 그 고유한 본성에서 기인한 것이 분명 아니다.

그 해체의 직접적 원인으로서의 수정주의자들의 반혁명, 그리고 그 온상이었던 관료주의는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기로서의 사회주의 단계에 필수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의 불철저, 즉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의 민주주의적 역량의 동원의 불철저에서 기인한 것이었다.15) 그리고 이러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그 민주주의의 불철저는 다분히 경제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치적⋅문화적으로도 극히 후진적이었던 러시아 사회라는 특수한 조건에서 의해서, 그리고 특히 제국주의의 포위⋅압력⋅공작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조건에 의해서 제약된 것이었다.

제국주의의 포위⋅압력⋅공작이라고 하면, 군사적 그리고 국제정치적 그것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에 대한 제국주의와 진보 혹은 ‘맑스주의자’임을 자임하는 그 좌파 대리인들의 그것이었다. ‘공산독재’라는 이름으로, 특히 ‘쓰딸린(주의)의 독재’라는 이름으로 퍼부어진 중상⋅모략이 쏘련과 동유럽 인민민주주의 국가들 내부의 반혁명을 얼마나 고무⋅격려하고, 그 반동적⋅계급적 성격을 은폐했겠는가! 1956년 쏘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쓰딸린을 비난했던 흐루쇼프의 ‘비밀연설’은, 본인들이 그것을 의식했던 아니든, 바로 제국주의의 그러한 반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캠페인의 반영이었으며, 쏘련과 동유럽 내부의 반혁명을 고무하는, 그리고 노동자 국제주의를 파탄 내는 결정적 계기였다.

그러나 10월 혁명 이후 100년이 지난 현재에는 노동자계급이 일단 혁명을 시작하면 그것을 결정적으로 되돌릴 어떤 경제적⋅정치적⋅국제적 조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선 역사적 시기를 구분하는 경제적 사회구성의 토대가 되는 노동생산력을 보면, 주지하는 바이지만, 그것은 이른바 인공지능 및 스마트 공장이라는 사실상의 전면적 무인(無人)생산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사실상의 전면적 무인생산을 실현하기에 이르고 있는 고도의 생산력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는 절대로 조응할 수 없다. 그리하여 이 생산력과 생산관계 간의 격화될 대로 격화되고 있는 모순⋅충돌이 오늘날 당장은 공황과 장기불황, 대규모의 실업과 빈곤, 제국주의의 침략전쟁과 그 업보로서의 빈발하는 테러 그리고 서유럽의 ‘난민문제’ 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하지만, 격화될 대로 격화되어 가고 있는 이 모순⋅충돌은 그 성격상 이윽고 낡은 생산관계를 깨부수고 새로운 사회로 도약하는 사회혁명으로 폭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혁명의 장(場)이 될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들 어디에도, 일단 사회주의로 이행한 후에 ‘자본주의로의 복귀’를 가능하게 할 ‘경제적 후진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 국가의 노동자⋅근로인민 어디에도 20세기 초의 러시아에서와 같은 정치적⋅문화적 후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신문이나 라디오⋅TV방송 등 여론이라는 이름의 대중매체, 고도로 발달한 자본의 대중조작 기구들이 대중의 정치의식을 왜곡⋅지체시키고 있고, 또한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해체로 많은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에의 전망을 상실한 상태에 있는 것이 당장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조장된 허위의식이 말 그대로 격화될 대로 격화되고 있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덮어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모순에 짓눌려 더 이상 그것을 감내할 수 없기에 이른 그들 노동자계급이 일단 혁명적 투쟁을 개시하면, 그 투쟁과정 자체가 동시에, 독점자본이 조장한 일체의 후진적 정치의식을 일소하는 과정일 것임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다.

게다가, 극도로 격화되고 있는 모순은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들 일반, 제국주의 일반의 문제이다. 그 때문에 어디에서인가 일단 파열구가 나면, 조만간에 그것이 주요 제국주의 국가들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지금까지와 같은 제국주의의 포위⋅봉쇄⋅압력⋅공작 따위는 분명 있을 수 없을 터이다.

조만간 필연적인 노동자 대중의 봉기⋅투쟁⋅혁명 과정에서의 있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크고 작은 전진과 후퇴, 즉 산고(産苦)뿐이다.

따라서 당면의 문제는, 조만간에 어쩔 수 없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노동자 대중의 이 투쟁을 목적의식적으로⋅과학적으로 조직하고 지도할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참모부, 혁명적 정당의 조직 내지 재건이다. 자본주의적 소유⋅생산관계의 폐지와 새로운 사회로의 도약은 필연적이지만, 이 도약과정, 새로운 사회의 탄생과정의 산고를 줄이기 위해서!

그런데, 20세기 사회주의, 특히 쏘련을 되돌아보면, 주지하다시피 쏘련은, 러시아의 낮은 생산력 때문에 서유럽에서의 혁명과 그 국가적 지원이 없으면 러시아에서의 사회주의의 건설이 불가능하다는 뜨로츠끼 류의 이른바 ‘세계혁명론’ 혹은 ‘영구혁명론’의 투항주의를 거부하고 극히 후진적인 생산력과 제국주의의 포위⋅압력⋅파괴공작 등을 극복하면서 훌륭하게 사회주의적 생산관계를 건설⋅발전시킬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쏘련이 물려받은 경제적⋅정치적⋅문화적 후진성이나 제국주의의 포위⋅압력⋅파괴공작 등도, 20세기 사회주의가 보다 더 고도의 공산주의 단계로 이행하지 못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 조건들은 결코 아니었다. 그 좌절은 그러한 조건들, 특히 제국주의와의 긴장⋅대립이라는 조건들 속에서 발생⋅배양⋅성장한 반혁명과의 투쟁에서의 패배였다.

21세기의 혁명은 그 경제적 따라서 사회적 모순의 격렬함 때문에도,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문화적 발전 때문에도, 그리고 제국주의 자체의 파열⋅몰락 때문에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는 절대로 조응할 수 없는 고도의 생산력 때문에 결코 반혁명의 승리를 허용하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반혁명이 승리할 수 없다는 것과, 상당한 기간 동안, 즉 계급사회의, 자본주의의 일체의 잔재가 청산되고 보다 고도의 단계,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로 이행하기까지 반혁명분자들이 역사를 뒤돌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준동할 것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별개의 문제이다. 따라서 이행기로서의 사회주의,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는 이 반동분자들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의 시기,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시기일 수밖에 없으며, 또 그러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를 해체로 이끈 관료⋅수정주의자들의 반혁명은 ‘전인민의 국가’라는 이름으로 프롤레타리이트 독재를 왜곡⋅방기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주의를 억압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미 말한 대로이다. 다시 말하지만, 21세기에는 여러 조건상 그러한 반혁명의 성공은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준동, 따라서 고도의 단계로 이행하기까지의 진통, 일종의 산고는 불가피하고, 따라서 철저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철저한 프롤레타리아트 민주주의는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사회의 절대 다수의 구성원인 노동자계급에 의한, 계급사회를 재건하려는 극소수의 반동분자들에 대한 억압인 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절대 다수를 억압하면서도 민주주의적임을 자처하는 자본의 이데올로그들이나 공공연한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에 의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맑스주의자임을 자임하는 일부 천박한 소부르주아 학자님들에 의해서조차 타기되어야 할 것으로 매도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자본론≫의 번역자의 한 사람으로 성가(聲價)가 높은 강신준 교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기자의 질문]: 하지만 사회주의는 현실에서 실패하면서 퇴물 취급을 받았다.

[강 교수님의 답변]: 우리가 사회주의를 논하면서 주의할 것이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 1889년에 등장하는 제2인터내셔널에서 꽃을 피우게 되는데 이는 레닌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제2인터내셔널이 성공한 이유는 전 세계 노동대중으로부터 민주적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1889년 제2인터내셔널이 다음해 행동계획으로 정한 것이 5월 1일 총파업이었고, 그 핵심 요구안이 8시간 노동과 보통선거권이었다. 당시 유럽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선거권을 가지지 못했는데 민주주의가 노동운동을 통해 달성된 것이다.

마르크스는 프랑스 대혁명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달성했지만 경제적으로는 부르주아 독재로 갔고 이것을 다시 노동대중의 민주주의로 만드는 것, 부르주아 혁명을 완성하는 것이 사회주의라고 했다. 사회를 완전히 민주화시키는 것이 사회주의 운동이고 이 운동의 과학적 내용을 담은 것이 마르크스주의, 이를 서술해놓은 책이 ≪자본≫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민주주의다.

레닌주의도 처음 출발은 민주주의였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배신했다. 물론 역사적 조건이 있었다. 2월혁명 이후 구성된 임시정부의 임무는 몰락한 짜르 체제를 대체할 공화정체제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제헌의회를 구성해야 했는데 11월 선거에서 볼셰비키가 22%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그래서 의회를 해산하고 독재로 갔다. 전까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이 등장했고 이것이 마르크스주의 핵심인 것처럼 레닌이 끌어다 썼다. ‘사회주의는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던 세력은 모두 1차 세계대전으로 몰락했다. 제2인터내셔널 전통이 단절되고 소비에트만이 마르크스주의 적법한 계승자로 남게 된 것이다.

결국 볼셰비키가 만든 소비에트 정권은 1991년 투표에 의해 사망선고를 받았다. 민주주의에 의해서 없어진 것이다. 민주주의가 아닌 사회주의는 망하고 만다.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제2인터내셔널에서 단절됐기 때문에 레닌주의가 무너졌다고 해서 마르크스주의의 유효성이 떨어진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는다면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국내 진보진영도 레닌이 아니라 마르크스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강조는 인용자)16)

눈물겨울 만큼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야말로 당구폐풍월(堂狗吠風月), 서당개가 풍월을 읊고 있다! 정말 제멋대로 사기를 치고 있다!

다른 헛소리들은 제멋대로 지껄이도록 놔두고, 두 가지에 대해서만 언급하자.

우선, “볼셰비키가 만든 소비에트 정권은 1991년 투표에 의해 사망선고를 받았다. 민주주의에 의해서 없어진 것이다.”? ― “1991년 투표”란 분명 쏘련방의 존속 여부를 물은 1991년 3월 17일의 국민투표를 말할 것이다. 그런데 이 국민투표에는 지도부가 연방 잔류를 거부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이른바 발트3국과 아르메니아, 조지아, 몰도바 등 6개 공화국을 제외한 9개 공화국이 참가하였고, 그 결과는 연방 존속 찬성이 77.85%, 반대가 22.15%였다! 투표 참가를 거부한 6개국의 총면적은 쏘련 전체의 2.53%, 1990년 현재 그 인구는 6.12%(약 1,781만 명, 쏘련 전체 인구는 약 2억9,100만 명)였다. 따라서 비현실적이지만 극한적으로 그 6개국 인민 전체가 연방 존속에 반대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쏘련 전체로는 찬성 비율이 73%를 넘는다. 그런데 이런 압도적 다수의 의견을 무시한 반동분자들의 쏘련 해체가 우리 강 교수님의 눈에는 “투표에 의해서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고, “민주주의에 의해 없어진 것”이다!

또 하나.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레닌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1918년 1월 제헌의회를 해산하기 “전까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이 등장했고 이것이 마르크스주의 핵심인 것처럼 레닌이 끌어다 썼다.”? 결국,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은 레닌의 창작품이다? ―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글들은 언제, 누구에 의한 것인가요?

 

예문1: “부르주아 역사가들은 나보다 오래 전에 이러한 계급투쟁의 역사적 전개에 관해서, 그리고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이 계급에 대한 경제학적 해부학을 서술해 왔습니다. 내가 새로 한 것은, 1. 계급의 존재는 오직 생산의 특정한 역사적 발전단계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 2. 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로 귀결된다는 것, 3. 이 독재 자체는 단지 모든 계급의 폐지와 계급 없는 사회로의 과도기를 형성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17)

(칼 맑스, 1852년) (강조는 원문대로.)

 

혹시, ‘사신(私信)이라서 1917년까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고요? 그렇다면,

 

예문2: “착취자는 동일한 자, 즉 자본이다. 개별 자본가들은 개별 농민들을 저당과 고리대를 통해서 착취하고, 자본가계급은 농민계급을 국세(國稅)를 통해서 착취한다. 농민의 부동산소유증서는 자본이 지금까지 그를 주술(呪術)로 사로잡아온 부적(符籍)이고,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에 반대하도록 그를 부추겨온 구실이다. 자본의 몰락만이 농민을 상승하게 할 수 있으며, 반자본주의적인 정부, 즉 프롤레타리아 정부만이 그들의 경제적 빈곤, 그들의 사회적 퇴화를 타파할 수 있다. 입헌 공화제, 그것은 연합한 농민 착취자들의 독재이고, 사회-민주주의적 공화제, 즉 붉은 공화제, 그것은 농민의 동맹자의 독재이다.”18) (칼 맑스, 1850년) (강조는 원문대로.)

 

아, 여기에도 “농민의 동맹자의 독재”인 “사회-민주주의적 공화제”, “붉은 공화제”는 있어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없다고요? 다시 그렇다면,

 

예문3: “… 프롤레타리아트는 점점 더 혁명적 사회주의의 주변에, 즉 부르주아지 자신이 블랑끼(Blanqui)라는 이름을 고안해낸 공산주의의 주변에 집결하고 있다. 이 사회주의는 혁명의 영속선언이며, 계급차별 일반의 폐지를 위한, 이 계급차별이 근거하고 있는 모든 생산관계의 폐지를 위한, 이 생산관계들에 조응하는 사회적 관계들의 폐지를 위한, 이 사회적 관계들에서 기인하는 모든 관념의 폐지를 위한 필연적 과도기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독재이다.”19)

(칼 맑스, 1850년) (강조는 원문대로.)

 

“…를 위한 필연적 과도기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독재(die Klassendiktstur des Proletariats als Durchgangspunkt zur …)”! ― 이제 보셨지요, 강 교수님? 아차,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독재”이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아니라구요! 그렇다면, 다시

 

예문4: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 사이에는 전자로부터 후자로의 혁명적 전환의 시기가 있다. 그에 상응하여 역시 정치적 이행기가 있는바, 이 이행기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 이외의 그 어떤 것일 수 없다.”20) (칼 맑스, 1875년) (강조는 원문대로.)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공산주의 사회로의 “혁명적 전환의 시기(die Periode der revolutionären Umwandlung)”,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이행기(der entspricht … eine politische Übergangsperiode)”의 국가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die revolutionäre Diktatur des Proletariats)”! ― 어? 그런데 여기에도 역시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는 있어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개념”은 없구나. 역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 … 레닌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1918년 1월 제헌의회를 해산하기 “전까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이 등장했고 이것이 마르크스주의 핵심인 것처럼 레닌이 끌어다 썼”구나!

 

위 예문들은 모두 (엥엘스와의 공저도 아닌) 맑스의 저작들로부터 따온 것이다. 그런데도 “마르크스 ≪자본≫ 독일어 원본 번역자”이신 우리의 강신준 교수님께서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개념은 맑스와는 무관한 독재자 레닌의 것이며, 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때문에 쏘련은 민주주의에 의해서 없어진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계신다.

강 교수님, 무지를 자랑하는 것이 아무리 교수님의 장기라 해도, 순진한 대중을 상대로 사기는 작작 치시오!

그리고 ‘민주주의’도 그렇게 교수님께서 무지하고 천박하게 생각하시듯이 몰계급적인 것이 결코 아니라오. 예컨대, 위 ‘예문2’에서도 맑스는, “입헌 공화제”, 즉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연합한 농민 착취자들의 독재”, 즉 부르주아지의 독재이고, “사회-민주주의적 공화제, 즉 붉은 공화제”, 다시 말해,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주의는 “농민의 동맹자의 독재”,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라고 언명하고 있지 않소? 아니 그렇소?

 

쏘련과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해체⋅패배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중요한 교훈은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로의 이행기로서의 사회주의 단계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의 절대적 필요성, 즉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의 민주주의적 역량을 동원한 반혁명의 단호한 억압과 근절이다. 기층 노동자 대중의 민주적 역량을 동원한 단호한 억압과 근절이다.

 

 

임박한 혁명과 노동자계급

 

10월 혁명 100주년을 맞아 우리가 그 의의와 교훈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뜬금없고 어이없다’는 혐의를 받는 것처럼, 노동자계급운동은 후퇴할 대로 후퇴해 있고 독점자본의 지배가 일방적으로 관찰되고 있는 이 칠흑같이 어두운 정세 속에서 우리가 노동자계급의 혁명이, 그것도 불가역적이고 대대적인 세계적 혁명이 임박해 있다고 말할 때, 우리는 분명 ‘뜬금없고 어이없을’ 뿐 아니라 ‘미쳤다’는 혐의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우리와는 정반대 편에 서 있는 자본 측의 발언을 들어보자.

 

인공지능의 경제에 대한 위협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한 컴퓨터 과학자에 의하면, 향후 30년 이내에 기계가 전 세계 인구의 반(半) 이상을 일자리에서 내쫓을 것이다. (Machines could put more than half the world’s population out of a job in the next 30 years, according to a computer scientist who said … that artificial intelligence’s threat to the economy should not be understated.)21) (강조는 인용자.)

 

향후 30년 이내에 기계가 전 세계 인구의 반(半) 이상을 일자리에서 내쫓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전문가(Moshe Vardi)는 ‘미국과학발전협회(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AAAS))’에서 말한다.

 

이 위협이 우리에게 닥치기 전에 사회가 이 문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일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기계가 할 수 있다면,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22)

 

그리고 같은 기사에 의하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과 하이테크 억만장자들인 빌 게이츠(Bill Gates)와 엘론 머스크(Elon Musk)도 작년[2015]에 유사한 경고를 했다. 호킹은 인공지능(AI)이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수도 있다(could spell the end of the human race)”고 경고했고, 머스크는 그것이 “우리의 최대의 실존상의 위협(our biggest existential threat)”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현재 인공지능이라는 떠들썩한 이름으로 급속히 전개되고 있는 과학기술혁명이 어떤 사회적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에 대한 자본 측의,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이데올로기적으로도 그 지배 하에 있는 소부르주아 전문가들의 인식이고 전망이다. 우리하고 다른 것은, 우리는 거기에서, 즉 과학기술혁명이 빠른 속도로 일자리를 없애며 대량의 실업을 초래하고 있는 데에서 사회혁명이 임박했음을 전망하는 데에 비해서, 저들은 “인류의 종말” 혹은 그 “실존상의 위협”을 전망하는 데에 있다. 저들이 그렇게 전망하는 것은, 저들이 이 자본주의에서 이른바 ‘역사의 종언’을 보고, 자본주의를 넘어선 보다 고도의 사회를 보지 못하고, 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저들은 말하고 있지 않은가? “향후 30년 이내에 기계가 전 세계 인구의 반(半) 이상을 일자리에서 내쫓을 것”이라고! 그 전망이 다소 과장되어 있다고 해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추세이기 때문이다. 맑스는 이렇게 언명하고 있다.

 

“자유경쟁은 개별 자본가들에게 대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법칙들을 외적 강제법칙으로서 관철시킨다.”23)

실제로 그렇다. 자본주의적 생산체제에서 경쟁에서의 성패는 그 자본의 생과 사의 문제이고, 그리하여 삼성전자 상무 출신의 민주당 최고위원 양향자 의원은 “반도체 전쟁서 중국에 지면 노예국가로 전락”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문재인 정부도 “혁신성장은 경제성장을 위한 핵심전략”이라고 떠들어대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두는 “향후 30년 이내에 기계가 전 세계 인구의 반(半) 이상을 일자리에서 내쫓을 것”이라는 저들의 전망이 다소 과장되어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것, 그 추세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추세, 즉 인공지능의 고도화⋅확산으로까지 발전하고 있고, 그리하여 일자리가 급속히 사라져가고 있는 이 추세를 자본 측의 이데올로그들과 그들의 지배 하에 있는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은 인류의 생존 자체와 충돌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다시 말하지만, 자본주의를 인류 역사의 최종적 단계로 보는 저들 특유의 비과학적이고 편협한 역사⋅사회관에서 유래할 뿐이다.

물론 순수하게 논리적으로는 인공지능이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 만일 노동자계급이 끝내 무기력하게 자본의 노예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제국주의는 결국 핵전쟁으로 치달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인류는 종말을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노동자계급 끝내 무기력하게 자본의 노예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면”이라는 가정으로 시작하는 논리 자체가 생동하며 투쟁하는 현실의 노동자상에 눈을 감은, 비현실적인 사변적 논리일 뿐이다. 과학⋅기술의 진보, 그리고 그에 따른 일자리의 감소에 대해서 맑스는 이렇게 언명하고 있다.

 

노동자의 절대수를 줄이는, 즉 국민 전체로 하여금 실제로 보다 적은 시간에 총생산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생산력의 발전은 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구의 다수를 용도폐기할(außer Kurs setzen)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시 자본주의적 생산의 독특한 한계가 나타나고, 또 자본주의적 생산이 결코 생산력의 발전이나 부의 생산을 위한 절대적인 형태가 아니라, 오히려 일정한 시점에서 그 발전과 충돌하게 된다는 것이 나타난다.24)

 

그렇다. 오늘날 인공지능의 고도화⋅확산과 그에 따른 일자리 감소, 대량실업으로 대변되는 과학기술혁명의 성과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독특한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요, 자본주의적 생산체제의 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지, “인류의 종말”이나 그 “실존상의 위협” 따위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대대적인 사회혁명이 임박했음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제기되어야 할 문제는, 예컨대, 저들처럼 “만일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기계가 할 수 있다면,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따위가 아니다.

제기되어야 하는 문제는, 저들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 즉 어떻게 하여 시행착오와 그에 따른 희생, 산고를 최소화하면서, 이미 그 수명이 다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체제,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10월 혁명 100주년을 맞는 오늘 우리가 의식적으로 제기해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헌법상의 화려한 소위 ‘기본권 조항들’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을 폭압적으로 정치적 무권리상태에 묶어두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지배 하에 있는, 즉 파쇼체제 하에 있는 한국의 노동자계급에게는 이 문제, 즉 어떻게 싸울 것인가의 문제가 더욱 절실하다.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해야 노동자계급 혁명의 정치적 참모부, 전위적 지도부를 획득할 것인가에서부터 수많은 크고 작은 문제들을 제기할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절실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게 실천에 착수할 수 있는 하나의 문제만 제기해보자. ― 부르주아⋅소부르주아적 국가⋅국민주의, 그 민족주의의 배격, 그리고 노동자 국제주의의 재건.

있을지 모를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미리 못 박아 말해두자면, 부르주아⋅소부르주아적 민족주의를 배격해야 한다는 말은 민족문제, 즉 반(反)제국주의 문제를 나 몰라라 해야 된다거나 수수방관해도 좋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그 정반대이다.

독점자본의 착취는 제국주의와 약소민족 간에는 여전히 약소민족의 종속⋅억압을 통해서 관철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신식민지주의 시대에는 독립이라는 허울 속에 은폐되어 있지만, 주지하다시피, 그 종속과 억압, 착취는 현지인 대리통치를 통해서 관철되고 있고, 바로 그 허울 때문에 더욱 더 강고하게 관철되고 있다. 따라서 착취에 반대하고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약소민족, 신식민지 노동자계급에게 있어서 민족모순은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근본모순 중의 근본모순의 하나이다.

문제는 그 민족모순에 대한 투쟁이 대개의 경우, 특히 대중적인 차원에서 극히 왜곡된 형태로, 국가주의⋅국민주의적 형태를 띠고 나타나고 있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서, 독점자본의 대중조작 기구들이, 부르주아⋅소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이 선동⋅조장하는 저 부르주아⋅소부르주아적 국가⋅국민주의, 그 민족주의적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데에 있다.

비근하게는, 최근의 이른바 ‘북핵문제’25)를 둘러싼 대통령 트럼프 등 미국 정부의 적대적 독설⋅거동이나 총리 아베 등 일본 정부의 그것에 분개하는, 인터넷 댓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의식 있는’ 대중의 반응을 보라. 대개는, “미국놈들 …”, “일본놈들 …”이고. 심지어는 “미국놈들 한 놈도 씨를 안 남기도 …” 하는 식이다.

얼마나 심각하게 독점자본의 대중조작 기구들이, 부르주아⋅소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이 선동⋅조장하는 저 부르주아⋅소부르주아적 국가⋅국민주의, 그 민족주의에 중독되어 있는가! 얼마나 몰계급적인가!

이러한 부르주아⋅소부르주아적 국가⋅국민주의, 그 민족주의는, 국내 문제에서의, 역시 저들 자본의 대중조작 기구가 음으로 양으로 선동⋅조성하는 지역주의, 특히 영⋅호남 간의 적대적 지역주의와 더불어, 타기되지 않으면 안 되는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적이다. 영⋅호남의 노동자⋅민중이 단결하지 않고는 이 땅에서 ‘수구세력’으로 불리는 극우세력을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미국과 일본의 노동자계급과의 공동투쟁 없이, 그리고 토착 지배계급이야말로 제국주의의 동맹자요 하수인이라는 명확한 의식과 투쟁 없이 어떻게 미⋅일 제국주의의 지배를 분쇄⋅극복할 수 있겠는가?

부르주아⋅소부르주아적 국가⋅국민주의, 그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노동자 국제주의를 재건하기 위한 선진 노동자들의 목적의식적인 노력이 시급하고도 절실하다. 그리고 이 노력은 한국의 노동운동을 소위 ‘좌⋅우’로 가르고 있는 해묵은 분열을 해소하는 데에도 시급하고 절실하다.  노사과연

 


 

1) John Catalinotto and Heather Cottin, “Behind the turmoil in Kosovo”, Workers World, 2004. 4. 1.

 

2) “만일 강대한 쏘련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다양한 대륙의 많은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과 민족해방혁명이 저토록 성공리에 전개될 수 있었을까? 만일 쏘련, 기타의 사회주의 국가가 세계 제국주의의 주요한 세력을 억압하지 않고, 군사력까지를 포함하여 그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중국, 조선, 베트남, 쿠바, 아랍연합공화국, 알제리아 기타 일련의 나라들은 복잡하기 그지없는 국제적 위기로부터 성공적으로 탈출할 수 있었을까?” (N. 이노젬체프, “10월 혁명, 국제관계와 인류의 사회적 진보”, ≪세계경제와 국제관계≫(일본어판), 제1집, 1968년 6월, 도쿄, p. 12.)

 

3) “쏘련, 기타 사회주의 국가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건설에 있어서 이들 국가들이 달성한 성공들은 많은 자본주의 국가의 근로자가 자신의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한, 사회적 보장을 위한,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민주주의적 권리와 자유를 위한 보다 성공적인 투쟁을 촉진하고, 지금도 촉진하고 있다. 이 점에서도 10월의 승리로부터, 쏘련에서의 사회주의의 건설로부터 우리나라의 국민뿐 아니라 전세계의 노동자계급과 근로자도 이익을 얻었다고 완전한 근거를 가지고 말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현재 2개의 세계체제가 공존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에 적응하지 않을 수 없고, 인민대중에 대하여 책략을 이용하고, 사회적, 정치적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사회주의 국가라는 실례의 힘은 계급대립을 격화시키고, 독점체에 반대하여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성공적 투쟁에 필요한 정치적 요인들을 성숙시키는 강력한 자극이 되었다.” (N. 이노젬체프, 같은 글, pp. 11-12.)

 

4) “본래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선두에 서서 ‘전위’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수행해 야 할 일본 공산당은, 노동자계급의 세계관⋅역사관을 내던져 노동자계급의 당임을 그만두고, 도시소시민층에 영합하는 부르주아 의회당으로 변질해버렸다. 의회당으로의 변질과정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방기, 부르주아 민족주의에의 굴복과 언제나 표리(表裏)를 이루었다. 그것은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에 걸친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해체, 반혁명의 승리를 단서로 하여 개시된 것이 아니다. 그 기원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196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국회에 의석을 가진 두 개의 정치세력, 즉 일본 공산당과, 구 일본사회당으로부터 전환한 현 사회민주당은 이미 말의 엄밀한 의미에서의 노동자계급의 당으로서의 실질(實質)을 잃은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당은 지배계급이 그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헌법개악에 반대하는 세력이기 때문에, 우리는 두 당의 공동투쟁의 실현을 핵심으로 하여 헌법개악의 저지라는 폭넓은 통일전선의 형성―그 중심축을 담당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노동자계급이 아니면 안 된다―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야마시타 이사오(山下勇男),  “일본 공산당의 변절 ― 체제 내 ‘건설적 야당’으로의 전락의 궤적”, ≪노동사회과학 제4호: 20세기 사회주의와 반혁명≫, 2011, pp. 133-134, 134.) ―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나마 ‘좌파’랄 수 있는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이라고 말하는 소이(所以)이다.

 

5) “상품화된 러시아 여성들의 성 문제는 … 서구 전체의 ‘골칫거리’다. 1년에 서구에서 매춘에 종사하는 옛 소련지역 출신 여성의 숫자는, 거의 50만 명에 이른다. 그 중에서 상당수(약 30∼50%)가 한국에서처럼 강요된 ‘빚’과 그에 의한 준(準)노예 신분, 과도한 착취, 상습적 폭력에 시달린다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로 보인다.” (박노자, “‘밤의 나비’ 골치는 아파도…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러시아 매춘여성들을 대하는 정책에서 배울 점―”, ≪한겨레21≫, 제353호, 2001. 4. 12, p. 89.)

 

6) 바만 아자드 저,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 사회주의 국가 쏘련을 해체시킨 요인들≫, 채만수 역, 2009, 노사과연, pp. 21-22.

 

7) 바만 아자드 저, 같은 책, p. 15.

 

8) 인용자 주: 특히, 앞에서 언급했던, 유고연방의 해체과정에서 벌어졌던 비극적 전쟁들의 원인은 이에 비추어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9) 같은 책, pp. 15-21.

 

10) Roger Keeran and Thomas Kenny, Socialism Betrayed: Behind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iUniverse, Inc.: New York, 2010, pp. 1-2.

 

11) Roger Keeran and Thomas Kenny, op. cit. pp. 2-3.

 

12) op. cit. pp. 4-5.

 

13) op. cit. pp. 3.

 

14) “10월 혁명은, 유일하게 진정으로 혁명적인 계급으로서 그 역사적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사회주의⋅공산주의를 건설하려는 최초의 시도를 지도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잠재력과 역량을 증명하고 있다.” (D. Koutsoumpas, GS of the CC of the KKE, “The significance of the October Revolution in the era of the transition from capitalism to socialism-communism”, <http:// inter.kke.gr/>, 2017. 5. 23.)

 

15) 쏘련의 후반기, 특히 흐루쇼프 이후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즉 ‘프롤레타리아트 민주주의’의 불철저가 어떻게 쏘련과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해체, 반혁명의 승리로 귀결되었는가는 이 책에 수록된, 권정기, “흐루쇼프 수정주의의 발생과 쏘련에서의 반혁명”을 참조.

 

16) 이승훈 기자, “”미국발 금융위기, 마르크스로 돌아갈 때  이명박 ‘나홀로 신자유주의’ 파국맞을 것” [인터뷰] 마르크스 ≪자본≫ 독일어 원본 번역자 강신준 교수”, ≪오마이뉴스≫ 2008. 11. 24.

 

17) “1852년 3월 5일에 맑스가 요셉 바이데마이어(Joseph Weydemeyer)에게 보낸 편지”, MEW, Bd. 28, S. 507-508.(≪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제2권, 박종철출판사, 2005, p. 497.)

 

18) ≪1848년에서 1850년까지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MEW, Bd. 7, S. 84.(≪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제2권, p. 88.)

 

19) 같은 책, MEW, Bd. 7, S. 89-90. (같은 책, p. 94.)

 

20) “고타 강령 비판”, MEW, Bd. 19, S. 28.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제4권, pp. 385-386.)

 

21) Alan Yuhas, “Artificial intelligence (AI): Would you bet against sex robots? AI ‘could leave half of world unemployed’”, <https://www .theguar dian.com/technology/2016/feb/13/artificial-intelligence-ai-unemployment-jobs-moshe-vardi> (2017. 2. 13.)

 

22) 같은 기사.

23)  ≪자본론≫ 제1권, MEW, Bd. 23, S. 286.

24) ≪자본론≫ 제3권, MEW, Bd. 25, S. 274.

 

25) ‘북핵문제’라고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사실 이는 올바른 규정이 아니다. 실제로는 미국을 위시한 제국주의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적대⋅위협의 문제이다. 극우 레이건 행정부의 재무성 경제정책실장(Assistant Secretary of the Treasury for Economic Policy)이었고, 월스트리트 저널의 편집자 중 한 사람이었던 인사조차 이렇게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 “믿든 말든, 러시아도 중국도, 미국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그리고 미국의 불의의 일격에 쓰러져 이제는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리비아, 소말리아, 예멘, 시리아, 세르비아, 우끄라이나와 같은 또 다른 워싱턴의 희생물이 되지 않을 수단을 갖겠다는 소망 이외에는 어떤 죄도 없는 나라인 조선(North Korea)에 더 많은 그리고 더욱 가혹한 제재를 가하려는 유엔 안보리에 워싱턴과 함께 찬성표를 던졌다. (Believe it or not, both Russia and China voted with Washington on the UN Security Council to impose more and harsher sanctions on North Korea, a country guilty of nothing but a desire to have the means to protect itself from the US and not become yet another Washington victim like Afghanistan, Iraq, Libya, Somalia, Yemen, Syria, Serbia, and Ukraine overthrown in a US coup and now poverty-stricken.)” (Paul Craig Roberts, “Russia and China Capitulated Out Of FEAR?”, <http://www.4thmedia.org/2017/09/have-russia-and-china-capitulated-out-of-fear/> (2017. 9. 15.)) (강조는 인용자.) 내친 김에 참고로 말하자면, 이 글의 필자 폴 크레익 롸버츠는 글을, 필시 기독교 성경에서 따왔을, “파랗게 질린 말을 보라, 기수(騎手)가 사신(死神)이다. (Behold a Pale Horse, and its Rider is Death.)”로 시작해서, 의미심장하게도, “보라, 파랗게 질린 말을, 기수가 워싱턴[미국 정부]이다. (Behold, a Pale Horse, and its Rider is Washington.)”로 끝내고 있다.

 

채만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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