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회원마당] 전태일 열사 사후 50년, 열사의 염원은 아직도 유효하다

 

정순욱 | 자료회원,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 사무국장

 

* 이 글은 사무금융노조/연맹이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진행한 전태일평전 독후감공모전 수상작(우수상, “지나온 50년, 아직도 열사의 염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을 수정ㆍ보완하여 새로 작성한 글입니다.

 

전태일 열사.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03년, 사회당(현재 노동당) 서울시당의 당원으로 가입하고, 주말에 열린 노동자대회의 현장에서 처음 들었고, 이후 서울시당 사무실에 있던 ≪전태일 평전≫을 보게 되면서였다. 1999년 생일 선물로 받은 ≪최열 아저씨의 우리 환경 이야기≫라는 책과 재미 교포 출신 환경 운동가 대니 서의 책 두 권을 읽으며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2000년 환경단체 녹색연합에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청소년 모임의 창립 멤버로 활동하였고, 2002년 생일날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이 발생하며 구성된 청소년 대책위 활동을 하면서 사회 운동에 첫발을 들여놓은 나였지만, 노동조합이나 노동 운동은 나와는 상관없는 내용이라고 생각을 많이 하였다. 어쩌면 사회 운동과 노동 운동은 아무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이처럼 나는 사회 운동에는 관심이 있지만 노동자들의 집회나 노동 운동의 경우 그 본질을 파악하기보다 뉴스에 나오는 불법성, 도로 점거 등으로 인한 교통 불편에 오히려 민감했다. 당시 나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는 고등학생이었고, 집이 있던 서울의 신월동에서 학교가 있는 명동까지는 버스로 통학을 하였는데 이 버스는 화곡동-신촌-충정로-서울역-남대문-명동을 지나가는 노선이었다. 즉, 노동자들의 집회로 교통이 통제되면 그 피해를 입는 시민 중에 한 명이었다.

사회당에 당원으로 가입한 것도 환경 운동, 청소년 운동을 하면서 가장 열심히 연대하던 두 정당 중에 하나였고, 이들과 함께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고민을 하다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전신이던 청년진보당이라는 이름, 그리고 활동 내용에 더 끌려 당원 가입을 했던 것이다. 당원이 된 후 장애인단체 집회, 노동조합의 집회 등을 다니게 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이름이 바로 전태일 열사였다. 당시의 나와 열사가 몸을 불사르며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였던 어린 여공들과 비슷한 나이였고, 청소년 운동을 하면서 “어린것들이 뭘 알고 그러냐, 니들은 (시민단체 어른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기도 하였기에 열사의 사후 30년이 지났지만 변하지 않은 세상, 청소년들은 보호의 대상만으로 바라보는 세상에 안타까움과 분노만 가득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사회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자 했다.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 청소년 대책위에서 함께하였던 청소년단체 ‘희망’[1]정식 명칭은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에서 2004년부터 진행한 학생회 법제화 문제, 강의석의 1인 시위로 시작된 ‘미션스쿨 학교 내 종교 자유’ 문제가 터졌고, 2001년 시도되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던 ‘두발 자유’ 문제 등에 적극 결합해서 청소년 운동을 시작하였다. 2005년, 인터넷 사이트 아이두[2]10대 독립 아이두. <http://www.idoo.net>와 청소년단체들에서 각각 두발 자유 집회를 개최였을 때 당시 나는 아이두 측 준비위원 중에 한 명으로 집회 신고와 진행을 담당하였다.

집회 신고 이후 교육청 장학사로부터 연락이 와서 학생을 선동하지 말라는 소리도 들었고, 집회 과정에서 청소년단체들과의 문제도 있었지만, 내가 나서서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 본 첫 사례였던 것으로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2006년 부산에서 열렸던 APEC 반대 집회에 사회당 학생위원회 사람들과 함께 며칠 동안 함께하면서 기존의 내 인식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으로 연대의 소중함, 함께 투쟁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부모님의 사정으로 어렸을 때 큰집에 맡겨졌으나 노점상을 하던 큰어머니가 잔병치레가 잦았던 나를 키우기 어려워 6개월 때 고아원에 다시 맡겨져 그곳에서 생활하다 우연히 받은 책을 통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어려움 속에서도 사회 활동에 뛰어들었던 나였다. 성공회대학교에 지원하였다 떨어지고 다니던 실업계 고등학교의 추천을 받아 전문대학교에 진학하였던 나였고, 대학교 학비는 시설의 추천으로 장학재단의 학비 지원을 받았지만, 장학금 수여 기준이던 B0를 넘기지 못하여 결국 학교를 휴학하고 2007년 도메인 등록업체 ‘아이네임즈’ 콜센터의 상담원으로 노동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은 서울본부 산하 희망연대노동조합을 비롯해 콜센터 노동조합이 몇 개나 있고, 감정 노동자 보호법이라는 법이 있어 콜센터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장치가 여러 개 있지만, 그 당시는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요구여도, 욕설을 하여도 전화를 먼저 끊을 수 없었고, 자신의 실수가 아니어도 사과하며 고객을 달래는 것을 우선으로 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콜센터 상담사들의 90% 이상이 여성이었고, 사람들 사이에도 콜센터 노동자는 임시직, 주부들이 용돈벌이를 위해 일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내가 있던 아이네임즈도 관리직은 남자가 대부분이지만, 상담원 20여 명 중 남성은 나를 포함 3명만이 남자였었고, 간혹 고객이 남자 직원임을 알고 관리자로 오해하거나 보이스피싱이 아닌가 오해하기도 했었다. 2010년 중반까지도 남자 상담원은 관리자이거나 잘못 걸은 것으로 오해하던 시기가 계속되었다.

사회 운동을 해 왔고, 사회를 바꿔 보겠다던 나조차도 그런 인식 속에서 콜센터에서 벌어지는 관리자 갑질이나 부당한 일을 겪어도 참고 견디거나 다른 일을 구해서 옮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전태일 평전≫에 나오는 나이 든 선배가 했던 말처럼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라는 생각 혹은 바보회 초창기 최 아무개라는 사람이 이야기하던 “우리는 이제 겨우 20대가 아닌가? 좀 더 알고 좀 더 나이가 들어서 본격적으로 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한 건 아닐까?

 

당시 뉴스를 통해 접하거나 직접 참여하던 노동조합의 집회에는 ―지금도 일부 업종에서는 비슷한 경우가 많지만― 대다수 노동자들은 40대 이상인 사람들이 많았기에 노동조합은 그런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고, 나에게 아직 노동 운동은 먼 이야기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내가 콜센터 일을 시작하던 20대 초반에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지 않던 평화시장의 현실에 분노하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바보회, 삼동친목회로 이어지는 노동 운동과 자신의 몸을 불살라 청계천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는 큰 역할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07년, 소규모 인터넷쇼핑몰업체에서 일하게 되고 홈플러스-홈에버 파업에 연대 방문을 가면서 아는 동생의 소개로 알게 된 IT노조[3]민주노총 서울본부 직가입인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약칭 IT노조), SW개발자 등 프리랜서 IT산업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어 2003년부터 활동 중인 … Continue reading에 조합원으로 가입을 하며 노동 운동을 제대로 경험하게 되었다. 조합원으로 있던 당시 회사 측으로부터 해고를 당해 노동부에 부당 해고 및 임금 체불 진정을 하였고, 조사 과정에서 노조 사무국장님의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노동 운동이 무엇인지, 그리고 법이 있음에도 소규모라는 이유로 법망을 피해나가는 곳이 많다는 것을 이때 깨닫게 되었다.

이때 프리랜서, 그리고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겪는 부조리를 어렴풋이나마 들어보기만 했었지만 그때도 나에게 해당이 되지 않는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다.

 

그 이후 2008년, 광우병소고기사태가 발생하였고, 일자리를 찾던 나에게 언론시민단체였던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4]약칭 언소주. 당시 조중동폐간국민캠페인, 현재의 언론소비자주권국민행동.의 상근 활동, 용산 아이파크몰 야간 보안요원으로 근무를 하면서 나도 조금씩 성장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깨달았다.

내가 대구의 롯데홈쇼핑 고객센터에서 근무할 당시 발생한 ‘가짜백수오사태’[5]가짜백수오사태는 2015년 당시 여성에게 좋다며 TV홈쇼핑에서 판매되던 백수오라는 한약재 추출물들이 몸에 좋지 않은 ‘이엽피우소’라는 것이 … Continue reading로 인해 회사들이 비정규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장 실감하게 되었다. 롯데홈쇼핑은 식약처의 첫 발표 이후 최종적으로 환불 절차가 진행되기까지 약 3개월가량의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고객 응대 스크립트는 약 7번이 변경되었으며, 당시 내가 있던 대구센터를 포함하여 전국 5개 고객센터는 일부 장기근무 상담원 중 일부를 백수오 관련 응대 전담 상담원으로 근무를 시키는 등 회사가 말하는 ‘고객과 만나는 최접점’에서 고객의 항의와 분노를 앞장서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렇게 최종 환불 절차가 결정되기까지 3개월가량은 기본 2시간 이상의 추가 근무, 특근 등으로 급여가 매월 세후 200여만 원[6]지금도 그렇지만, 콜센터 노동자들의 기본급은 최저임금에 맞춰져 있고, 교통비와 식대가 추가되는 경우가 많다. 2007년 당시 기본급은 약 160만 … Continue reading이 나올 정도로 모든 상담원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렇게 가짜백수오사태가 마무리된 이후, 롯데홈쇼핑 본사 직원들은 성과급[7]백수오사태가 마무리되던 당시와 롯데홈쇼핑 직원에 대한 성과급지급기간과 겹쳤고, 콜센터 상담원들도 내부인트라넷에 접속이 가능하여 그곳에 … Continue reading이 나왔었지만, 고객센터 상담원들은 백설기 떡 두 개와 엔젤리너스 아메리카노 쿠폰 두 장―그나마 백설기는 본사가 아닌 고객센터 운영업체에서 준 거였다―이 전부였고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 차별을 실감하고 필요할 때만 “우리 직원”을 이야기하는 원청의 행동에 실망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내가 일하던 고객센터는 매월 출근 시간이 변경되었는데 오전 6시-오후 3시까지 매 시간별로 출근 시간이 변경이 되었었고, 출근 시간에 따라 퇴근 시간도 오후 3시-새벽 2시까지로 다양하였다. 그 과정에서 오후 3시 출근이 오전 6시로 변경이 되었는데 변경 전 휴무는 출근조 변경 10일 전, 변경 후 첫 휴무일이 근무 시작 일주일 후로 경산 영남대가 집이었고, 회사는 대구 북구청 인근으로 약 2시간 이상 걸리는 출근 시간을 감안하면 며칠 동안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었다. 그로 인한 피로 누적과 건강 악화로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고, 이후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서울로 이사 와서도 롯데카드 법인상담팀, 우리카드 고객센터 등 콜센터에서 상담원으로 근무를 하다 대구에 살던 친구의 요청으로 대구로 다시 이사 오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TM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하면서 그 이름도 이상한 ‘특수고용 노동자’와 지금 활동하는 “보험설계사노동조합”을 만나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도 보험설계사나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였고, 보험설계사노동조합의 경우도 그동안의 경험과 보고 들었던 노동 문제, 그리고 처음 일을 시작할 때와 달라진 사회적, 법적 변화는 보험설계사 혹은 TM콜센터들에도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생각, 그리고 이미 준비 중이거나 설립된 노동조합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보험설계사 교육[8]설계사 자격시험 교육. 보험설계사는 보험업법에 따라 일정 시간 이상의 교육을 받고 “(생명/손해)보험판매자격” 시험에 합격한 뒤 보험협회에 … Continue reading을 받는 과정에서 민주노총 대구본부와 사무금융노조에 메일을 보냈고, 사무금융노조로부터 “전국보험설계사노동조합”을 만났다. 그토록 바래왔던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2020년, ‘선전홍보국장’이라는 직책을 맡아 한 해 동안 특수고용 노동자의 현실을 알리고 권리 보장을 위해 활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보험설계사의 경우 특수고용 노동자의 대표적 업종 중에 하나이고, 이 설계사들도 보험사 원수사 소속, 법인보험대리점 소속, TM업체 소속 등으로 다시 분류되게 된다. 그 이름에서 보는 것처럼 “노동자”임에도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근로계약서가 아닌 ‘위촉계약서’, ‘프리랜서계약서’, ‘위수탁계약서’ 등 여러 이름으로 대체된 ‘형식상’의 사업계약서를 작성하고, 주당 40시간 이상의 근로 시간을 견디면서 건당 수수료 혹은 판매 계약당 수수료―심지어는 그 수수료도 회사가 마음대로 정해서 ‘통보’만 하면 되는―를 지불받으며 근로자와 동일한 대우를 받지만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

 

노조의 선전홍보국장으로 일하면서 들은 설계사들이 겪은 수많은 부당 행위들을 보면서 50년 전 전태일 열사가 자신의 교통비를 아껴가며 풀빵을 사주고,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던 청계천 여공들이 지금의 특수고용 노동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태일 열사가 살아 있을 때 근로기준법이 있음에도 법의 허점을 피해 여공들을 착취하는 평화시장 사장, 근로기준법 위반 신고를 하여도 무시하는 근로감독관, 회사의 편을 드는 경찰이 있었던 것처럼.

 

보험업법에 설계사에게 하면 안 되는 불공정 행위가 규정[9]보험업법 제85조의3(보험설계사에 대한 불공정 행위 금지) 1항.되어 있음에도 위촉계약서가 아닌 ‘내부 규정’을 근거로 마음대로 해촉하고, 근로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매일 출퇴근 강요, 복장 지적, 실적 강요를 하면서 근로자처럼 이용하고 문제가 되면 “계약서에 근로자가 아니라고 명시”되어 있고, “근로자는 아니지만 (회사) 조직의 일원이니 그 정도는 지켜야 하지 않느냐”라고 주장하는 회사.

설계사는 근무하는 동안 관리자의 갑질, 성희롱, 성추행, 금전갈취를 견뎌야 하고, 이를 문제 삼으면 회사가 해촉을 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관계 기관.

“정착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선 수수료를 지급하면서 2년간 노예계약으로 묶어 놓은 뒤에 부당함을 시정하라고 요구하니 해촉하고 지원금을 소송을 통해 전부 받아내는 회사.

잔여유지수수료[10]설계사의 경우 보험 판매에 따른 수수료(수당)를 모집수수료와 유지수수료로 구분하여 지급을 하고 있다. 1건의 보험을 판매하면 최초 모집수수료와 … Continue reading는 이직하면 당연히 안 주는 것이지만 고객 관리는 당연히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고객이 보험을 해약하면 해약에 따른 수당 환수도 당연하다는 회사.

고객 관리를 위해 고객이 직접 계약 이관을 요청해도 내부 규정 등 여러 핑계를 대면서 이관을 거부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회사.

관리자가 구두로 약속을 하였지만, 내부 규정에는 다르게 되어 있고, 관리자가 해결할 문제이지 우리는 책임이 없다는 회사.

공문서에 기재된 직책이나 업무보다 “자체 규정”이 먼저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회사.

심지어, 보험업법에는 “코드 말소[11]보험설계사는 근무를 시작하면 소속회사를 통해 손해/생명보험협회와 보험사에 판매코드를 등록을 하게 되는데 이 코드는 소속된 대리점마다 코드가 … Continue reading 지연”은 불공정 행위임이 명시 되어 있어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라는 이름으로 합법노조의 지위를 받은 설계사노조[12]설계사노동조합은 2019년 9월 18일, “전국보험설계사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신고서를 제출한 이후 2020년 7월 대의원대회를 통해 … Continue reading를 비롯하여 4년여 만에 전국단위 노동조합이 된 대리운전노동조합, 100여 일 만에 설립신고증을 받은 라이더유니온, 단체교섭 거부로 법정 싸움까지 진행하는 택배연대노동조합 등 헌법에서 보장된 노동3권을 보장받기 위해 천막농성, 기자회견 등을 진행하여야 하는 이 현실.

 

전태일 열사가 살아서 이 현실을 본다면 ‘지금도 변한 게 없구나’ 하고 탄식하지 않을까?

 

전태일 열사가 50년 전 분신을 하며 외쳤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는 외침은 2020년 현재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3권 보장하라!”라는 외침으로, “비정규직 차별 철폐하라!”라는 외침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15년 전 평전을 읽으면서 내가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전태일 열사처럼 ‘약자를 위해 노력하는 노동 운동가’, ‘노동조합을 세우겠다’라는 그 소망이 일부나마 이루어지는 이 시기, 다시 만난 전태일 열사.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전태일 열사가 나에게 앞으로 나가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꼈다.

 

내(전태일 열사)가 교통비를 아껴 여공들을 위해 사용하였고,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회사와 이를 방관하는 정부 기관에 맞서 이를 바꾸기 위해 투쟁하였던 것처럼. ‘특수고용 노동자’의 당사자로서, 지금도 차별받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투쟁하라고, 그러면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결국에는 그 권리를 쟁취하고, 끝내 승리하라고.

지금 있는 부산에서는 법인보험대리점(GA)[13]법인보험대리점은 주식회사의 형태로 보험대리점 등록을 한 후 여러 보험회사와 판매 계약을 하고, 그 소속 설계사들은 계약을 맺은 개별 보험회사의 … Continue reading 중 하나인 (주)IFC의 설계사에 대한 부당 해촉과 불법 행위를 규탄하는 집회가 매일 열리고 있다. 작년 7월부터 시작한 이 집회는 회사가 법령에도 없는 부당 행위(출퇴근 강요, 복장/외모 지적 등) 이로 인해 설계사와 분쟁이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사과 없이 설계사를 해촉하여 노조가 집회를 계속 열고 있는데 선 집회 신고를 통한 집회 방해[14]회사는 7월 중순경 회사 앞을 집회 장소로 하여 집회 신고를 처음 신청한 이후 매일 오전 집회 신고 연장을 하여 8월 중순 이후 노조는 회사 정문 … Continue reading나 소음 신고, 불법주정차 신고로도 부족한지 11월 말에는 노조를 상대로 집회 금지 및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을 제기하여 현재도 가처분 재판이 진행 중[15]노조 운영위 의결에 따라 12월 7일-12월 16일까지 온, 오프라인을 통해 (주)IFC의 가처분 기각 탄원서를 받았고, 약 750명의 서명을 받아 법원에 탄원서가 … Continue reading이다.

 

 

10월 말, 부산으로 이사 온 이후, 매일 열리던 집회에 노사과연 부산지회장님을 비롯한 노사과연 회원들, 민주노총 부산본부와 사무금융연맹 부산울산경남본부 동지들의 연대 방문이 있었다. 아직 배울 것도 많지만, 회사의 방해와 추위를 견디며 집회를 계속해 오면서 힘든 날도 많았지만, 자신의 시간을 쪼개서 연대 방문해 오는 많은 동지들을 보면 ‘연대의 소중함’, 그리고 이 투쟁의 정당함, 투쟁이 승리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계속 들고 있다. 전태일 열사의 희생으로 청계피복노조가 생겼고,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노조들이 생긴 것처럼.

 

한 명의 열 걸음보다 열 명의 한 걸음이 중요하다는 말처럼, ‘바다는 3%의 소금 때문에 썩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세상을 바꾸는 것은 연대와 투쟁이라는 그 사실을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시 생각해 보고 있다.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계속 투쟁하면 결국에는 권리를 쟁취하고 승리할 수 있다는 그 마음을 담아 올 한 해도 열심히 투쟁하고, 연대하고자 한다. 작년 한 해 여러 동지들이 보내주신 연대와 지지의 힘을 나도 나눠주고자.

노사과연

 

References

1 정식 명칭은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
2 10대 독립 아이두. <http://www.idoo.net>
3 민주노총 서울본부 직가입인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약칭 IT노조), SW개발자 등 프리랜서 IT산업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어 2003년부터 활동 중인 노동조합. 민주노총 산별연맹 중 하나인 ‘정보경제연맹’(전국정보경제서비스노동조합연맹)과 다른 전국단위 노동조합.
4 약칭 언소주. 당시 조중동폐간국민캠페인, 현재의 언론소비자주권국민행동.
5 가짜백수오사태는 2015년 당시 여성에게 좋다며 TV홈쇼핑에서 판매되던 백수오라는 한약재 추출물들이 몸에 좋지 않은 ‘이엽피우소’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식약처 조사 결과 밝혀졌고, 제조업체는 물론 TV홈쇼핑 등에서 대량의 환불 사태, 대국민 사과 등이 벌어졌던 것을 말한다.
6 지금도 그렇지만, 콜센터 노동자들의 기본급은 최저임금에 맞춰져 있고, 교통비와 식대가 추가되는 경우가 많다. 2007년 당시 기본급은 약 160만 원이고, 거기서 교통비, 식대 등을 포함하여 170만 원 정도가 세전 월급이다.
7 백수오사태가 마무리되던 당시와 롯데홈쇼핑 직원에 대한 성과급지급기간과 겹쳤고, 콜센터 상담원들도 내부인트라넷에 접속이 가능하여 그곳에 올라오는 글들을 볼 수 있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8 설계사 자격시험 교육. 보험설계사는 보험업법에 따라 일정 시간 이상의 교육을 받고 “(생명/손해)보험판매자격” 시험에 합격한 뒤 보험협회에 등록하여야 보험 판매가 가능하다. TV의 보험 광고에 기재된 “OO보험 판매자격 보유”가 이 시험에 합격하였다는 의미이다.
9 보험업법 제85조의3(보험설계사에 대한 불공정 행위 금지) 1항.
10 설계사의 경우 보험 판매에 따른 수수료(수당)를 모집수수료와 유지수수료로 구분하여 지급을 하고 있다. 1건의 보험을 판매하면 최초 모집수수료와 일정 기간(보통 13개월) 동안 보험이 유지되는 조건으로 유지수수료를 지급하는데 이 유지수수료는 해당 회사에 근무하는 동안에만 지급하도록 대부분 회사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다.
11 보험설계사는 근무를 시작하면 소속회사를 통해 손해/생명보험협회와 보험사에 판매코드를 등록을 하게 되는데 이 코드는 소속된 대리점마다 코드가 다르다. 이직, 해촉 등으로 해당 회사에 근무를 하지 않는 경우 이 코드가 삭제(말소)되어야 타 회사에서 코드 재등록이 가능하다. 해당 회사에서 이 코드를 삭제해 주지 않으면 다른 회사에서 새로 근무를 하려고 해도 코드 등록이 불가능하여 해당 보험사의 상품을 판매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을 한다.
12 설계사노동조합은 2019년 9월 18일, “전국보험설계사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신고서를 제출한 이후 2020년 7월 대의원대회를 통해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로 산별전환하였고, 2020년 12월 30일 자로 설립신고서 제출 471일 만에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았다.
13 법인보험대리점은 주식회사의 형태로 보험대리점 등록을 한 후 여러 보험회사와 판매 계약을 하고, 그 소속 설계사들은 계약을 맺은 개별 보험회사의 상품을 모두 판매할 수 있는 종합대리점이다. 하이마트나 이마트 같은 종합판매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14 회사는 7월 중순경 회사 앞을 집회 장소로 하여 집회 신고를 처음 신청한 이후 매일 오전 집회 신고 연장을 하여 8월 중순 이후 노조는 회사 정문 앞에서는 집회가 불가능하게 되어 회사 옆 건물 앞에서 집회를 이어오고 있다. 회사는 노조가 집회를 준비하면 내근직원 1-2명이 앰프와 피켓을 들고 노조 집회가 끝날 때까지 옆에서 집회를 진행 중이다.
15 노조 운영위 의결에 따라 12월 7일-12월 16일까지 온, 오프라인을 통해 (주)IFC의 가처분 기각 탄원서를 받았고, 약 750명의 서명을 받아 법원에 탄원서가 제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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