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자료] 한국 노동시장 구조 변화와 노동운동의 새로운 주체 형성

 

신재길 | 교육위원장

 

* 이 글은 지난 1월 16일 <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주최로 열린 “노동자정치와 사회주의정당 연석토론회―민주노총의 운동노선과 민주노조운동의 과제”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1. 노동자 대투쟁과 ‘87년 체제’의 성립

 

1980년대에 들어 자본주의는 일국 중심의 국가독점자본주의에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전제로 한 국제독점자본주의로 이행해 갔다. 국제독점자본주의의 특징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산업 체계의 위계적 분업화이다. 이를 소위 세계화라고 했다. 이에 한국은 자본과 노동력을 집중하여 표준적 조립을 중심으로 하는 중화학 산업에 특화되는 지위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런 산업 분업 체계의 역할로 인해 고숙련 노동력보다는 단순 조립 가공 노동력을 중심으로 노동시장이 형성되었다.

 

한국의 산업 구조는 산업이 발전할수록 노동력이 대량으로 필요하였다. 97년까지 노동력 부족 현상은 지속하였다. 60, 70년대는 농촌의 유휴 노동력이 무제한 공급되었으나, 80년대에 들어와 농촌에서의 노동력 공급은 제한되기 시작했다. 80년대 초까지의 노동시장은 노동자의 이동이 활발한 시기였다. 미숙련 노동이나 반숙련 노동이 주된 노동시장의 요구였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 3저 호황에 힘입어 한국 경제는 중화학 공업화가 진전되고 이에 따라 급속한 생산 확대로 생산직 노동력이 더욱 부족하게 되었다. 노동력 부족에 대응하여 대기업은 필요 노동력을 기업 내에서 양성 조달하여 노동자가 기업에 정착하도록 도모해 왔다. 그 결과 1980년대 중반에는 대기업 남성 생산직 노동자 중에 근속 10년 이상 되는 중견 노동자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노동력의 유동성이 여전히 높은 중소기업 노동시장과 다른 점이며, 노동시장의 단절이 발생하는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대기업이 100이라면 중소기업은 95 정도 수준이었다.

 

대기업 중화학 공업 남성 생산직 중견 노동자 주도로 기업별 노동조합이 조직되었고, 그 운동이 이윽고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분출되어 억압적 노동 체제의 기반을 흔들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노동시장 체제는 크게 바뀌게 되었다. 억압적 노동 체제를 단결력과 투쟁력이 높은 대기업 노동조합이 앞장서 돌파하여 임금 인상 등을 쟁취하면 중소기업이 이를 뒤따르는 전투적 민주노조 시대가 형성된 것이다. 소위 87년 노동 체제이다.

 

그러나 87년 체제는 부정적 요소도 잉태하고 있었다. 즉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대기업 중화학 공업 남성 생산직 노동자라는 중견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1차 노동시장과 6, 70년대 도시 빈민과 연속성을 가진 중소기업 노동자를 비롯한 주변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2차 노동시장으로 구성된 단절적 노동시장 체제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변 노동자는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격심한 노동과 이직을 반복하고, 노동조합 조직화도 곤란하였다. 이에 반해, 대기업 내부 노동시장에 포섭된 중견 노동자는 강력한 기업별 노동조합운동을 전개하였다. 여기에 2차 노동시장에는 하도급이나 외주 노동자층이 새로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소위 비정규직의 등장이다.

 

 

2. ‘87년 체제’의 변화

 

1990년대에 들어 쏘련이 붕괴하고, 선진 제국에서 국제독점자본 체제가 완비됨에 따라 소위 세계화의 물결은 하위 국가군에도 밀려들게 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가 권력과 자본은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동조합에 빼앗긴 노사 관계의 헤게모니를 되찾고자 다시 공세로 전환했다. 노동조합운동을 경제 이기주의라고 비난하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펼치는 한편, ‘신경영 전략’으로 노동운동에 대항했다. 자본의 반격과 이에 대항하는 대기업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87년 체제’는 심화하여 갔다.

 

87년 체제의 심화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대로 나타났다. 비정규직의 증대는 90년대에 급속히 진행된 여성의 임금 노동자화와 궤를 같이했다.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유동성이 높았으나, 대기업 남성 생산직 노동자들의 유동성은 한층 더 낮아졌다.

 

노동시장 단절의 주요인은 1990년대에 대기업에서 전개된 신경영 전략이다. ‘신경영 전략’의 목적은 임금 인상을 억제하기 위한 경영 합리화와 노동자 대투쟁에서 노동조합에 빼앗긴 현장 통제력을 되찾는 것이었다.

 

먼저 자본은 임금 인상을 억누르고 인원 절감을 위한 자동화 설비에 투자했다. 자동화 기계를 도입하면서 노동력 절감과 동시에 자동화에 의한 작업의 규격화, 표준화, 단순화를 통해 탈숙련화를 추진했다. 이러한 자동화의 진전에 따라 단순 반복 작업이 증대하는 한편, 오히려 노동 강도는 강해졌다. 탈숙련화는 기업 내 기능직 노동자의 형성을 많이 감소시켰고, 그와 동시에 미숙련 노동자인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켰다.

 

더불어 자본은 노동자의 높은 동질성을 기초로 강한 단결력을 유지해 온 기업 내 노동조합에 대해, 신경영 전략을 통해 노동자를 차별화 이질화하고, 개별적으로 기업 조직에 포섭해 갔다. 이로써 노동조합은 약해졌다. 즉 기업 대 노동조합이라는 집단적 노사 관계는 개별적 노무 관리로 변했다. 이는 노동자 개인 간이나 작업반 사이에 경쟁 원리의 도입이었다. 개인별 작업반별로 노동자의 차별화 이질화를 추진하면서 자본에 의한 노동자의 개별적 노무 관리가 가능해졌다. 그 결과 대기업에서는 ‘신경영 전략’에 의해 노동자가 기업에 개별적으로 포섭되어 갔다. 즉 자본 주도의 내부 노동 시장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이렇듯 1차 노동시장의 형성과 강화로 대기업 노동조합운동은 이미 87년 체제에서 약화하기 시작했다.

 

 

3. IMF 경제 위기 이후 ‘97년 노동시장 체제’의 확립

 

한국 노동시장의 제2 전환점은 1997년 IMF 경제 위기다. IMF 경제 위기를 계기로 한국 경제도 세계화에 말려들었다. 그 결과 노동의 비정규직화와 사회의 양극화가 급격히 진행되었다.

 

2차 노동시장(중소기업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의 형성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는 87년 이전부터 존재했던 도시 빈민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노동자층이고, 다른 하나는 97년 IMF 경제 위기를 계기로 대기업의 남성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로 대체되면서 형성된 흐름이다.

 

87년 체제 아래에서 국가 권력과 자본은 정리해고제 등의 노동시장 규제 완화 정책의 도입을 획책해 왔는데, 그것을 실현한 것이 IMF 경제 위기였다. IMF에서 긴급 융자를 받는 조건으로 당시 김대중 정권이 정리해고제를 즉시 도입하자마자, 자본은 대규모의 정리해고를 단행했으며 정리해고된 정규직 노동자를 비정규직 노동자로 대체했다. IMF 경제 위기 이후에도 비정규직화가 지속하였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간의 임금 및 사회적 보장의 격차는 더욱 심화하여 갔다. 이런 1차 노동시장과 2차 노동시장의 분리와 2차 노동시장에서의 착취의 강화는 국제독점자본주의의 일반적 현상이나, 한국의 경우 자본과 노동력을 투입하여 단순 조립 가공하는 국제 분업 구조의 중간에 위치하는 조건에서 1, 2차 노동시장의 분리와 2차 시장에의 착취 압박은 더욱 두드려졌다.

 

1997IMF 경제 위기 이후 생산 씨스템의 자동화 및 디지털화가 가속화하고, 기능 숙련 노동을 배제하는 생산 체제가 더욱 심화 발전하였다. 그 전형적인 예가 모듈형 생산 씨스템의 도입이다. 한국의 수출 지향형 경제 발전을 주도해 온 전자 산업이나 자동차 산업에서는 IMF 경제 위기를 계기로 생산 씨스템의 모듈화가 급속히 진전되었다. 모듈형 생산 씨스템에서 핵심적인 노동은 기술자나 기술자에 의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이다. 직접 생산 노동은 모듈을 장착해 조립하는 단순 반복에 지나지 않는 작업이 되고 말았다. 즉 노동 과정이 철저히 단순화되었고 규격화 표준화됨에 따라 숙련 노동자는 해체되었다. 이 때문에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로 대체되는 것이 더욱 용이해져 노동의 비정규직화가 급속히 진행된 것이다.

 

게다가 87년 체제에서는 기업별 노동조합이 강력했기 때문에 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로 대체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IMF 경제 위기로 인해 노동조합의 힘이 약해지고 정리해고제가 도입되자 남성 정규직 노동자의 비정규직화가 급속히 진전되었다. 남성 정규직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는 강력한 기업별 노동조합운동의 근간이 되어 왔던 대기업의 내부 노동시장을 축소했다. 이에 대기업 남성 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기업별 노동조합운동은 더욱 약화하였다.

 

이로써 대기업 노동운동이 위축되고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가 정착된 ‘97년 체제’가 확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4. 97년 노동시장 체제의 구조적 특징

 

1) 1차 노동시장과 2차 노동시장 간의 단절과 위계화

97년 노동시장 체제의 구조적 특징은 먼저 1차 노동시장과 2차 노동시장이 단절되어 있다는 점이다. 2015년 통계청 자료에 기초해 볼 때, 전체 1,930만 임금 노동자 중 1차 노동시장은 대기업 정규직(290만 명, 전체의 약 15%)과 공공부문 정규직(190만 명, 전체의 약 10%)으로 전체 임금 노동자의 약 25%를 차지한다. 2차 노동시장은 전체 임금 노동자의 75%를 차지하며, 중소기업 정규직과 다양한 비정규직이 포함된다.

 

1차 노동시장과 2차 노동시장 사이에는 임금, 노동 조건, 기업 복지, 사회 보험 적용률 등에서 점차 그 격차가 확대되어 왔으며 양자는 분리되어 서로 이동하지 않는 특징을 갖는다. 양 노동시장에는 서로 다른 규칙과 질서가 작용한다. 가령 정규직의 근속 연수는 7년 5개월이지만, 비정규직은 2년 5개월에 불과하다. 대기업에 노조가 있는 정규직의 근속 연수는 13.1년인데 비해, 중소기업의 노조가 없는 정규직의 경우는 4.7년,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경우는 2.2년으로 격차가 대단히 크다. 1차 노동시장이 이직률이 낮으며 안정적 내부 노동시장이라면, 2차 노동시장은 이직률이 높고 상호 간 끊임없이 이동하는 불안정 노동시장을 이룬다.

 

근속 연수나 노동조합의 조직률 등은 고용 형태와 함께 노동자계급 내부의 위계적 질서를 형성하는 내적 단절을 나타낸다. 최상위에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이 고용 안정과 고임금을 보장받고 있으며, 다음으로 중기업 규모의 정규직 노동자층이 고용 안정과 중간 정도의 임금을, 그다음이 대기업 비정규직, 중소기업 비정규직층이 포함되고 있으며, 써비스 여성 비정규직층과 플랫폼 노동자층이 최하위 부문을 형성하고 있다. 최하위 부분은 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공적 사회 보장에서도 대부분 배제되어 있으며, 노동조합도 거의 없다.

 

2)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원-하청 관계

한국 제조 중소기업의 약 절반이 원하청 관계에 포섭되어 있고, 써비스업도 체인점, 대리점, 위탁가맹점 등의 형태로 원하청 관계 속에 편재되어 있다. 이는 대기업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를 이용하는 착취 구조이다.

 

3) 청년 실업 양산 구조

청년들이 일단 2차 노동시장에 진입할 경우 1차 노동시장으로 올라갈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다. 그리고 1차 노동시장으로 진입한 청년들과 2차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청년의 생애 소득을 계산하면 막대한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청년들은 1차 노동시장 진입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진다. 결국 청년 실업 문제도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중소기업의 노동력 부족으로 이어지고 결혼이 늦어지거나 결혼 포기로 나타난다. 이는 늦은 출산과 저출산으로 귀결된다. 결국 고령화의 구조적 원인도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와 연관 있다고 할 수 있다.

 

4) 기업별 노조의 고착화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해결은 산별노조의 구축과 산업별 임금 및 노동 조건의 교섭으로 가능하지만 반대로 산별 체계로의 진행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애로 작용한다. 임금이나 노동 조건이 직종이나 직업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별 및 고용 형태별로 분리되어 있어 직종별 직업별 노동자 연대를 방해하고 있다. 결국 대기업 정규직은 비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은 2배 이상 받고, 대기업 정규직이 위기 시에 정규직의 고용 유지를 위한 방파제로 비정규직을 인식하고 있는 한 노동자들의 산업별, 직업별 연대는 요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5) 사회 보장의 역진적 선별성의 심화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의 절대다수가 사회 보장 기제로부터 배제되어 있다. 1차 노동시장의 노동자들은 공적 사회 보장이 확대되어 왔으며, 부족한 부분은 적은 조세 부담률에 기초한 가처분 소득의 증대로 사적 사회 보장 기제로 보충하고 있다. 그러나 2차 노동시장의 노동자들은 부족한 공적 사회 보장에 전적으로 의존하거나(중소기업 정규직), 공적 사회 보장뿐 아니라 사적 사회 보장에서도 배제되고, 심지어 노동조합조차도 없는 광범위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이는 사회 보장 제도의 본래적 취지인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과는 반대로 취약 계층일수록 사회 보장 제도로부터 배제되는 역진적 선별성을 나타낸다.

 

6) 노동시장의 젠더 구조

법이나 제도, 그리고 노동조합의 보호나 규제에서 배제되는 경향은 남성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더욱더 강하다. 여성 노동자의 다수는 1990년대 이후 경기 순환에 대응해 비정규직 노동자나 도시 영세 자영업, 혹은 비노동력 인구 사이를 순환 교류하고 있다. 여성 노동자들은 경력 단절로 인해 재취업을 할 때 대부분 비정규직에 흡수되게 된다. 또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같은 일을 해도 남자보다 임금은 적게 받게 되고, 여성들이 대거 진출하는 써비스직은 직업군 자체가 저임금군을 형성하고 있다. 여성이 노동시장의 착취 구조에서도 가장 최하위층을 이루며, 노동력 착취가 집중되는 부분이다.

 

7) 2차 노동시장 노동자의 영세 자영업자 등과의 생활적 동질성

2차 노동시장은 60-70년대 형성된 도시 빈민층과 인적 순환이나 생활 공간의 공통성을 갖는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은 영세 자영업과 비노동력 인구, 그리고 비정규직을 순환하고 있다. 이는 임금 노동자의 증가가 영세 자영업의 감소와 동시에 나타나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이들이 한국 노동시장의 도시 하층으로 저임금과 불안정 취업을 공통적인 특징으로 하는 단일 노동시장을 형성하고 저임금 노동력의 공급원으로 한국의 경제 발전을 지탱했다. 즉 한국의 영세 자영업은 산업예비군적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8)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과 조직률의 편중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989년 19.8%를 정점으로 2010년에 9.8%까지 하락했다. 2017년부터 다시 상승하여 2018년 기준 11.8%이다. 이 중 민주노총 조직률만 보면 4-5% 수준이다. 민주노총이 노동자계급을 대표하기에 조직률이 너무 낮다. 이런 낮은 조직률로 인해 언제나 대표성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그리고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조직률의 편중이다. 부문별로는 민간 부문 9.7%, 공공 부문 68.4%이고, 기업 규모별로는 300명 이상 50.6%, 100-299명 10.8%, 30-992.2% 30명 미만 0.1%이다. 이는 사회 보장의 역진적 선별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노동자계급 내의 위계화와도 연관된다.

 

 

5. 새로운 노동운동의 주체

 

1997년 IMF 경제 위기 이후 굳어진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는 국제독점자본주의 생산관계의 표현 형태이다.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계적 현상이지 한국만의 특수한 문제는 아니다. 한국은 정도에 있어서 양적 질적으로 고도화된 점이 그 특징이라면 특징이라 할 것이다. 이는 한국 자본주의가 국제독점자본주의의 중추에 들어가 있음을 의미하며, 결국 한국에서 국제독점자본주의에 파열구를 내는 중심고리도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혁파에 있음을 암시한다고 하겠다.

 

1) 한국의 노동운동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주체’는 누구인가?

지금까지 한국 노동운동을 이끌어 온 주체는 대기업 중견 노동자였다. 이들이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 발전의 주역이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대기업 노동조합의 강력한 투쟁으로 임금 인상을 쟁취하면 이를 기준으로 해서 중소기업들의 임금 인상률이 정해지곤 했다. 그러나 1998년 이후부터는 이런 공식이 서서히 먹혀들지 않기 시작했다.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가 고착화되었기 때문이다. 자본의 반동적 공세에 밀린 것이다. 이제 대기업 노동자는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에 안주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시장에서의 안정적 지위는 그만큼 부가되는 노동 강도의 강화와 함께했다. 또한 1차 시장과 2차 시장 간의 커져만 가던 임금 격차가 몇 년 전부터 소폭이나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는 주로 1차 시장의 임금 인상이 정체된 데 기인한다. 대기업 노동조합은 GDP 성장만큼은 임금을 인상해 왔다. 그런데 이마저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는 것이다. 노동운동의 주력이 자본에 패배한 것이다. 노동운동에 주력을 보강할 새로운 주체의 형성이 절실한 이유이다.

 

새로운 주체는 물론 2차 노동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대기업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50%에 이른다. 그러나 2차 노동시장의 노동조합 조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임금 노동자의 75%를 구성하고 있음에도 노동조합 조직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과 인적 생활적으로 결합하여 있는 영세 자영업의 조직화는 전무한 수준이고 대부분 부르주아 헤게모니에 포섭된 상태라 해도 무방하다. 2차 노동시장의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층을 조직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활로를 여는 고리가 될 것이다.

 

2) 노동운동에 혁신이 필요하다

노동운동의 혁신 논의는 지난 20여 년의 민주노총 내에서 지속해서 제기되어 왔다. 그 방향은 크게 보아 두 가지이다.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의 조직화와 지역 본부의 강화이다. 이런 방향은 올바른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민주노총 직선제라는 선거 제도 개편으로 끝나 버리고 더 이상의 진전은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른바 ‘관료 기구’ 중심의 혁신 논의가 지지부진하다고 해서 ‘현장’에서의 혁신 시도가 멈춰 선 것은 아니다. 대기업 단위노조나 지역본부 차원에서 사회연대 사업의 일환으로 다양한 사업이 시행되고 진행 중이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아닌 ‘유니온’이라는 이름을 달고 청년유니온을 시발로 노후희망유니온, 라이더유니온, 알바유니온 등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 조직이 등장하고 있다. 유니온 운동은 대체로 전통적인 노사 단체 간의 단체 교섭보다는 사회적 교섭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현실적으로 개별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사용자 단체가 구성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수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여론을 통한 사회적 압박을 가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한편으로 캠페인을 위주로 하는 소비자운동 방식과 유사하다.

 

또 다른 혁신의 시도는 지역 사회운동 노조를 지향하는 회망연대노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동운동 내부에는 산업 노조 건설 흐름과 달리 일반 노조를 주장하는 흐름이 있지만, 대체로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반면 희망연대노조는 창립 때부터 ‘지역 사회운동 노조’를 선언하며 케이블 방송과 통신 산업 비정규직 노동자를 주요 조직 대상으로 설정해서 조직화에 집중하고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희망연대노조는 조직화가 어려운 협력 업체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끌어내면서 새로운 전형을 창출했다. 특히 기업별 노사 간 단체 협약을 통한 노동 조건의 개선이 지닌 한계를 인식하고 사회적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활동을 주요 과제로 설정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연대, 나눔연대, 생활문화연대’를 병행하면서 기존 노동조합과 다른 활동 방식을 보여 주었다.

 

지역 거점 방식의 노동자 조직화와 사회연대 사업을 펼치는 흐름도 있다. 강서 양천 민중의 집과 인천서구 민중의 집, 영등포에 있는 카페 봄봄 등이다. 노동 중심의 지역 거점은 마을 공동체와 노동조합을 연결하고 지역 차원에서 연대를 구축함으로써 노동조합의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지역 사회의 진보적 재편을 추동하는 역할을 한다.

 

공제회를 통한 조직화와 문화연대 사업도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 공제회는 조직화 모델이기도 하지만 기업 복지를 기대하기 어려운 계층에게 의미 있는 사업이 될 수 있다. 대기업 노동자들은 기업 복지를 통해 조합원들의 복리 후생을 해결할 수 있지만, 중소 영세 비정규 노동자들은 기업 복지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회 복지와 더불어 자조와 상호 부조를 조직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시도는 향후 실업 보험과 산재 보험 등을 노동조합이 직접 운영할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를 지닌다.

 

3) 혁신의 방향과 그 의의

위에서 든 몇몇 예는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새로운 시도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민주노총 내부의 혁신 방향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초기업 노동운동의 조직화이다. 민주노총은 산별노조를 추진해 왔고, 지역본부를 강화하고자 노력해 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정규직 중심의 기업별 노조의 임금 극대화 전략에 매몰되고 만 것이다. 소위 전투적 경제주의라 할 수 있다. 상급 단체 수준에서는 고용연대 등을 시도하고 있지만, 기업별 노조 수준에서는 비정규직이 고용 안정의 방패막이로 쓰이는 경우까지 있어서 계급의 해체와 연대의 해체로 나타나고 있다. 자본의 노동자 분할 지배이다. 노동계급의 분할과 위계화가 굳어진 상태에서 이른바 4차 산업으로 ‘고용 없으면 노조 없다’는 ‘신경영 전략’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고용을 둘러싼 노동계급 내부 경쟁은 더욱 격화될 것이 전망된다.

 

이에 대응하는 노동자계급의 전략은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여 계급 내 단결을 이루고, 영세 자영업자들과 연대하여 압도적 다수로 적들의 물리력과 제도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것이다. 즉 노동자계급이 근본적 사회 변혁을 주도하려면 노동자계급이 노동자계급으로서 형성되어야 하고, 사회적 헤게모니를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 영역을 넘어 노동력 재생산 영역까지 조직 사업의 현장으로 삼아야 한다. 계급 간 헤게모니 각축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장은 단위사업장뿐만 아니라 노동력 재생산 영역인 지역 사회도 포괄하는 만큼 계급 내 단결과 계급 간 연대를 통해 수적 우위와 이데올로기적인 우위, 즉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단위노조는 생산 현장에서의 계급 투쟁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로 나와 사회연대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여야 한다. 이는 노동조합이 사회적 영향력과 신뢰도가 추락한 상황을 돌파하는 전략이면서도 동시에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사회관계를 만들고 확장하는 전략이다.

 

4) 노동자의 초기업적 조직을 만드는 데 정당 조직이 복무할 수 있다

그동안 소위 양날개론에 대한 비판이 많았지만, 현실은 노동조합은 생산 현장에서 임금 투쟁에 집중하고, 정당은 사회 개혁에 집중하는 양날개론이 대세였다. 이는 생산 현장에서는 경제주의로, 정치 현장에서는 선거주의로 나타났다. 그 결과는 생산 현장에서도 정치 현장에서도 노동자계급의 입지가 약화한 것이다.

 

노동조합은 지역으로 나와야 하고, 정치 세력은 지역으로 내려와야 한다. 노동운동의 핵심 과제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 노동력 재생산 영역에 대한 적극적 개입, 생활문화운동 참여는 지역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 훨씬 더 의미가 있다. 노동자는 잉여가치 생산 영역인 작업 현장뿐 아니라 노동력 재생산 영역인 지역 생활에서도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아니 이제 지역에서 노동력 재생산 영역이 투쟁의 주 공간이 되어야 한다. 지금 시기 집중해야 할 고리이다. 노동자 정치 활동가들도 부르주아 정치 질서가 강고한 중앙 정치에서 내려와 지역 정치를 활동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중앙 정치를 향한 토대가 강화된다.

 

특히 미조직 노동자의 초기업 조직은 지역을 지반으로 한 전국 조직인 정당 조직이 더 수월하게 조직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노동자 조직은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조직되고 실험되고 있다. 이런 다양한 조직과 내용에 대응하기 위해서 당적 틀이 매우 유용할 것이다. 초단기 계약 형태가 급증하고 플랫폼 노동이 확산하는 중이기 때문에 단위사업장 단위로 조직하는 방식은 한계가 명백하다. 따라서 조직을 담을 그릇으로 초기업 노조, 그리고 초기업 노조운동의 필요성이 도출된다. 이를 추동할 수 있는 틀을 정당 조직이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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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길 교육위원장

1개의 댓글

  • 노동자들이 돈에 타락하여 노동조합과 노동자계급에서 파벌과 분열을 만들어내는 경제주의 조합주의 문제점은 이미 드러난 바 있고, 현재진행형이며

    노동자 계급정치를 표방하는 출세주의자들은 민주노동당 이후 수없이 나타났고,
    이젠 돈이 아닌 정치출세에 타락하여 노동조합, 노동자들을 분열, 파벌화시킨 것에 반성부터 해야 미래가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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