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제10차 총회 인사말> 반파쇼ㆍ민주화 투쟁의 깃발을 높이 들자!

채만수|소장

 

 박근혜 지배집단의 파쇼 공세가 거침없이 강화되고 있는 엄중한 정세 속에서 제10차 총회를 맞고 있습니다.

이러한 파쇼 공세의 강화, 혹은 파쇼 세력의 준동이 비단 박근혜 정권에 한정된 현상, 그러니까 국내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물론 아닙니다. 예컨대 최근 우끄라이나나 시리아, 베네수엘라 등지에서 극우ㆍ파쇼 세력들이 도발해 온 폭력 사태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들 국가들에서처럼 극적으로 폭력적인 사태로까지는 아직 발전하고 있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예컨대 극우화로 치닫고 있는 일본의 정치정세처럼, 극우세력들이 그 정치적 영향력을 빠른 속도로 확대ㆍ강화하고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현 시기의 파시즘은 신자유주의의 직접적 연장이기 때문이고, 최근에 그 공세ㆍ준동이 급격히 격화되고 있는 배경에는 특히 2007년 후반기 이후 전개되고 있는 대공황,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위기의 장기화와 심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파쇼의 공세가 이렇게 세계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박근혜 집단의 그것은 특히 엄중합니다. 무엇보다도 국가권력을 장악한 세력이 ‘제2의 유신체제’라고나 해야 할 폭력적 억압체제의 구축을 위하여, 대선 개입ㆍ조작으로부터 예컨대 내란음모나 간첩의 조작에 이르기까지, 파렴치하게 노골적이면서도 또 간교하게, 그리고 계획적으로 파쇼화를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극우 언론들을 총동원하여 ‘공공부문 개혁’이니, ‘창조경제’니, ‘비정상의 정상화’니, ‘통일은 대박’이니 하면서, 대중 이데올로기 조작을 강화하면서 진보적 정치ㆍ사회 세력과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표적으로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나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팀의 사실상의 해체ㆍ무력화와 같은, 노골적 파쇼체제 구축에 걸림돌이 될지 모를, 내부의 자유주의적 분자들의 숙청조차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국가 권력기관들은 사실상 드러내놓고 파렴치한 범죄단체로 되고 있고, 각종 간판을 단 극우단체들의 인간쓰레기들이 제 세상인 양 설치고 있습니다. (저들 인간쓰레기들을 조종하며 뒷돈을 대주는 게 누구이겠습니까?)

 

이러한 정세는 노동운동 일반에는 물론, 그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에 복무해야 할 우리 연구소에도 엄중한 과업ㆍ과제를 강제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반파쇼ㆍ민주화 투쟁을 강화하고 전면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업, 그 투쟁을 강화ㆍ전면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론적ㆍ사실적 근거를 탐구ㆍ제시ㆍ선전하고, 그러한 작업을 심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 말입니다.

노동운동 내부에는, 특히 ‘좌파’임을 자임ㆍ자부하는 사람들의 내부에는 민주화 투쟁ㆍ‘민주대연합’은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노선이요, 그 전략ㆍ전술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고ㆍ주장은 절대 옳지 않습니다. 그러한 주장은 지금까지 자신들의 경제주의 노선을 그것만이 ‘계급적 노선’인 양 포장하고 정당화하는 역할을 해왔을 뿐입니다. 일부 조직 노동자들의 협소한 경제적 이익, 조합주의적 이익을 노동자계급 일반의 이익으로 포장하면서 노동자계급이 정치투쟁을 방기하고, 나아가서는 새로운 사회로의 영도계급으로서의 역할을 방기하는 데에 일조했을 뿐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뒤돌아보면, 민주화 투쟁, ‘민주대연합’은 지금까지 실제로 주로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의 노선이었고, 전략ㆍ전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까지 그들의 노선이고 전략ㆍ전술이었던 것은 결코 그것이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인 노선,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인 전략ㆍ전술이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지금까지 노동자계급이 그것을 자신의 과업, 자신의 투쟁으로, 시기에 따라서는 삼지 못했고, 시기에 따라서는 삼지 않았기 때문일 뿐입니다.

그 결과는 물론 불문가지입니다. 그 정치적 성과는 당연히 그 반파쇼ㆍ민주화 투쟁을 선도하고 주도한 부르주아ㆍ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의 것이 되었고, 그 실패의 후과는 그들 부르주아ㆍ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과 노동자계급이 공유했습니다. 아니, 그 실패의 후과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가혹하게 노동자계급의 것으로 되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전, 그러니까 박정희ㆍ전두환 정권하에서의 노동자들의 지옥 같은 삶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7ㆍ8ㆍ9월의 노동자 대투쟁도, 그 후 노동자들의 다소 나아진 삶도 6월 민주항쟁의 승리가 없었다면 필시 없었을 것입니다. 민주주의 없이 노동자계급의 해방 없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현 정세가 ‘민주 대 반민주’의 전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거기에 ‘반자본적’ 전선ㆍ성격을 접목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매우 훌륭한 주장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비변증법적 사고, 기계론적 사고, 부질없는 사변(思辨)의 발로에 불과합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노동자계급이, 선진노동자들이 반파쇼ㆍ민주화 투쟁을 선도하고 주도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선진노동자들이, 그리하여 노동자계급이 그 투쟁을 선도하고, 주도할 때, 그때에는 저 훌륭한 주장이 사실상 저절로 실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르주아ㆍ소부르주아지가 선도하고 주도하는 민주주의가 부르주아ㆍ소부르주아 민주주의이듯이, 노동자계급이 선도ㆍ주도하는 민주주의는 당연히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파쇼 대 반파쇼, 민주 대 반민주의 투쟁과정은 어느 쪽이 대중의 다수를, 소부르주아 대중의 다수를, 혹은 소부르주아적인 대중의 다수를 획득하느냐 하는 필사의 투쟁과정이라는 사실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저들은 바로 그 소부르주아 대중, 소부르주아적 대중의 다수를 획득하기 위해서 극우 언론들을 대대적으로 동원, ‘창조경제’니, ‘경제혁신’이니, ‘통일대박’이니 하는 기만적인 화려한 선전으로 대중조작을 강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1970년대 초에 박정희가 ‘조국근대화’라는 신화를 날조하며, 1972년 ‘10월 유신’에 임박해서는 ‘7ㆍ4 남북공동선언’으로 통일이 임박한 것 같은 분위기를 조장하고, 그 통일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10월 유신’을 단행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그들에 의한 장충체육관 선거 ― 기억에 생생하지 않습니까?

요즘 저들이 얼마나 ‘창조경제’ㆍ‘경제혁신’ 이데올로기를, ‘통일은 대박’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기 위해서 광분하고 있는지를 주목하십시오. 저들은 바로 박정희 때 했던 것처럼, 바로 그렇게 대중을 획득ㆍ농락하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필사의 이데올로기 투쟁과 관련하여 우리는 우리 노동자계급 내부를 냉정한 눈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하면, 예컨대,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들의 가족 구성원들의 정치의식ㆍ사회의식의 성향은 어떻습니까?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대개는 소부르주아적이고, 기껏해야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이지 않습니까?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들의 가족들조차 말입니다. 그런데 후진 노동자 대중이나 그 가족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실제로 노동자들의 도시라는, 예컨대 울산이나 마창지역 같은 곳조차 각종 선거를 극우 새누리당이 사실상 휩쓸고 있지 않습니까? 기껏해야 부르주아 야당이 역시 극히 후진적인 정치의식인 지역감정 덕분에 당선되고, 진보정당의 후보가 당선되는 일은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드믄 일 아닙니까? 이들의 이러한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후진성은 물론 저들 독점자본의 이데올로기 지배의 결과이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튼 이들이, 즉 정치ㆍ사회의식에서 소부르주아적인 이들이 바로 노동자계급의 다수 성원들입니다. 후진 노동자 대중입니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선진 노동자들이 절대적인 소수로 전락할 각오를 하지 않고서야, 그리하여 저들 독점자본의 파쇼적 지배와의 투쟁에서 백전백패할 각오를 하지 않고서야 어찌 반파쇼ㆍ민주화 투쟁을 서두르고 강화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서둘러 필사의 각오로 반파쇼ㆍ민주화 투쟁을 조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진 노동자들이 선도하고 주도하는 반파쇼ㆍ민주화 투쟁은 당연히 저들 후진 노동자 대중을 정치적ㆍ이념적으로, 노동자 계급의식으로 계도(啓導)하고, 무장시키는 첩경이고, 특히 저들의 파쇼 공세가 강화되고 있는 정세하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반파쇼ㆍ민주화 투쟁을 통해서 노동자 대중은 대자적(對自的)인 노동자계급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팽두이숙(烹頭耳熟), 즉 대가리를 삶으면 귀도 익는 이치, 바로 그러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한편,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정치조직, 그러한 정치 참모부의 획득은, 선진 노동자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의 노동자계급운동이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달성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과제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정세하에서는 그 획득 전망이 과히 밝지 않다는 것도 또한 널리 인정되고 있는 바입니다. 무엇보다도 국가보안법으로 대표되고 있는 파쇼악법 때문이지만, 주체적으로는 노동운동 자체의 과학적 이론의 저발전ㆍ미성숙과, 그에 따라 선진 노동자들 간에 만연한 강한 종파주의 때문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반파쇼ㆍ민주화 투쟁, 민주대연합 전선은 바로 이러한 객관적ㆍ주체적 장애를 극복ㆍ돌파하는, 그리하여 절체절명의 과업을 수행하는 첩경, 주요하고도 효과적인 과정이기도 할 것입니다. 노동자계급이 선도하고 주도하는 반파쇼ㆍ민주화 투쟁의 승리는 당연히 국가보안법 등 파쇼악법의 제거로 직접적으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고, 그 투쟁과정은 자연히 실천 속에서 옥석을 구별하는 과정, 종파주의를 극복하고 공동의 이해(理解)와 사업을 강화하고 심화해가는 과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이 제10차 총회는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운동에서의 반파쇼ㆍ민주화 투쟁의 의의와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계기, 그 투쟁과정에서의 우리 연구소의 역할을 재확인하고 재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노사과연>

 

201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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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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