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한테 통일의 첫 걸음은 국가보안법 폐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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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인권운동을 하는 ≪해방세상≫이 통일문제를 다루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구속된 양심수 대부분이 통일운동 관련 활동을 하다 국가보안법 적용으로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해방세상≫은 줄기차게 ‘대한민국은 누구의 국가인가?’에 문제제기를 해왔다. 분단의 원인에서 실마리를 찾고,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이 올바른 통일의 전망을 가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분단의 원인

 

먼저 분단의 원인을 짚어보자

혹자는 쏘련과 미국 외세에 의해 분단이 고착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쏘련 붕괴가 냉전체제 종식으로 통일이 앞당겨 진다며 내심 반겼다. 1945년 광복 직후 <조선 인민에게 고함>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미군과 쏘련군이 발표한 포고문을 비교하자.

<미군>

1)조선 인민에게 고함

…….

본관은 태평양 방면 육군 총사령관으로서 본관에게 부여된 권한으로써 이에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 및 조선 인민에 대한 군정을 펴면서 다음과 같은 점령에 관한 조건을 포고한다.

 제 1조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 영토와 조선 인민에 대한 최고 통치권은 당분간 본관의 권한 하에 시행된다.

…….

 제 3조 모든 주민은 본관 및 본관의 권한 하에서 발포한 일체의 명령에 즉각 복종하여야 한다. 점령군(편집자 강조)에 대한 반항행위 또는 공공의 안녕을 교란하는 행위를 감행하는 자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엄벌에 처할 것이다.

 …….

 제 5조 군정 기간에 있어서는 영어를 모든 목적에 사용하는 공용어로 한다.

 …….

제6조 앞으로 모든 포고, 법령, 규약, 고시, 지시 및 조례는 본관 또는 본관의 권한 하에서 발포될 것이며, 주민이 이행해야 할 사항들을 명기하게 될 것이다.

일본 요꼬하마에서 1945년 9월 7일

태평양 방면 미 육군 총사령관

육군대장 더글라스 맥아더

<쏘련군>

 2)조선인들이여!

쏘련 군대와 동맹군대는 조선에서 일본 약탈자를 구축하였습니다. 조선은 자유국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다만 조선 역사의 제1장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조선의 행복도 조선 인민의 영웅적인 투쟁과 근면한 노력에 의해서만 달성되는 것입니다. 일본 통치 하에서 살아온 고통의 사실을 기억합시다. 토담 위의 돌맹이조차도 조선 인민들의 노고와 피땀이 깃들여 있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당신들은 일하였습니까?

…….

 조선 노동자들이여!

노력에 의한 영웅심과 창조적인 노력을 발휘합시다. 조선인의 훌륭한 민족성의 하나인 노력에 대한 애착심을 발휘합시다. 진정한 사업에 대해서 조선의 경제적 및 문화적 발전을 계획하는 자만이 모국 조선의 애국자가 되며 충실한 조선인이 됩니다. 해방된 조선 인민 만세!

3)조선 남녀들이여!

35년 동안이나 전 조선은 혹독한 놈들의 주권 하에서 신음을 하였습니다.

35년 동안이나 왜놈들은 조선 인민들을 압제하였고 조선 부원(富源)을 강탈하여 갔으며 조

선 사람들의 언어・문화 및 모든 생활 제도를 능욕하여 왔습니다.

……

붉은 군대의 위력은 크고도 큽니다. 그러나 그는 이 위력을 어느 때든지 다른 나라 인민들

을 정복함에 이용하지 않았으며 또는 이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

당신들의 해방군인 붉은 군대에 백방으로 방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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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발흥을 담보하는 조선과 쏘련 친선 만세!

1945년 8월

붉은 군대 사령부

미군은 명령에 따르라면서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점령군을 자처하면서 해방을 열망하는 조선 민중에게 쐐기를 박았다. 일제로부터 막 독립한 조선인민들한테 미국은 위압감이 느껴져지는 또 다른 식민지 압제자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에 반해 쏘련군은 일제 때 조선인민들의 고통을 이해하며 위력을 과시하지 않을 것이며 해방군임을 밝혔다. 조선인민들은 엄혹한 일제 때 8시간 노동제를 실현하고, 피억압식민지를 지원한 쏘련을 동경했다. 해방 후 80% 이상의 민중이 사회주의자를 지지했다. 맥아더는 한반도 공산화가 두려운 나머지 미군의 꼭두각시 이승만을 내세워 부랴부랴 이남 단독정부를 수립했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으로 무자비하게 사회주의자를 탄압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하게 표면적으로만 보면 한반도에 외세 간의 충돌로 보이지만 근본은(역사적 진실은) 해방 이후에 인민국가를 건설하려는 노동자 계급 및 민중과 독점자본 시장영역을 구축하려는 즉 이남을 반공주의 최후의 보루로 삼아 미제국주의의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자본가계급 간의 미제국주의와의 충돌이며 분단은 그 결과물이다. 미제국주의를 움직이는 배후에는 미국의 독점자본가들이 있다.

  
판문점 선언을 부정하는 국가보안법 탄압

 

2000년 ‘6.15 공동선언’ 정상회담 전후로도 국가보안법 구속자가 여전히 존재했다.4) 그 당시 남북정상회담에 고무된 나이트클럽 종업원이 나이트클럽 홍보를 위해 자신의 차에 인공기가 그려진 현수막을 부착하고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김정일’이란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돌리다 국가보안법 고무찬양죄 혐의로 며칠을 조사받았다.

‘4.27판문점 선언’ 이후 8월 9일 경찰보안수사대는 긴급하게 남북경협 사업가인 김호 씨를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체포했다. 며칠 뒤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 문재인은 남북경협 구상을 밝혔다. 광복절 다음날 16일 김호 씨 변호인단은 보안수사대가 김호 씨를 간첩조작 사건으로 엮으려한 증거조작들이 있다며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변호인 측은 16일 오후 “보안수사대가 구속영장청구 신청서에 허위 사실을 기재하여 증거를 날조하고, 허위공문서를 작성하여 검사의 구속영장 청구업무 및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업무를 위계로 방해하였다”고 서울지방경찰청을 고소하는 한편 일체의 수사 중단을 요청했다.

“이날 장 변호사는 고소장을 접수하면서 ‘보안수사대가 실수한 것인지, 아니면 고의로 날조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씨의 체포영장에 적시된 공소사실에도 많은 허점이 드러났다. 특히 김 씨에게 반국가단체 행위를 지령했다는 박두호 씨는 얼굴인식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북한(조선) 기술전문가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무엇보다 김 씨는 박 씨를 만날 때마다 통일부에 ‘북한주민접촉신고서’를 제출해 합법적으로 만나왔다.”

(2018.08.16.,≪민플러스≫, “국가보안법 김호 구속, ‘실수인가? 고의인가?’”, 강호석 기자)

이로써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은 적국 분단선을 넘나들며 평화 수호자인양 외장을 치지만, 6.15선언 이후에 ‘김정일’ 이름을 쓴 나이트클럽 종업원한테 국가보안법을 적용했던 것처럼, 남북경협 사업가한테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탄압함으로써 남과 북의 평화와 화해를 선언한 판문점 선언을 부정하는 만행을 버젓이 자행하고 있다. 여전히 문재인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내세워 북을 적으로 규정한 채 자주적인 평화통일의 흐름을 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 화회와 협력, 통일의 최우선적인 걸림돌은 여전히 국가보안법이다. 노동자는 우선 북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6.15 공동선언’, ‘4.27판문점 선언’ 정신을 끌어안아야 한다. 그리고 입으로는 통일을 외치지만 문재인 정부에 협력하는 가짜 진보팔이 통일론자들과 철저히 선을 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노동자는 노동자계급의 고유한 사상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상을 지키고 실천하는 첫걸음은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에 노동자들이 앞장서 싸우는 것이다.

  
자! 모두 일어나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치자!!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양심수 석방을 위해 싸우자!!

 


 

1)* 이 글은 ≪해방세상≫ 제23호에 노동자한테 통일의 첫 걸음은 국가보안법 폐지다”로 같이 실렸다.

1)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1≫ 45쪽 참조

2)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1≫ 각주57) 참조

3) ≪한국현대사 오프라인 강의 교안: 쟁점을 중심으로≫ 참조

4) ≪국가보안법 적용상에서 나타난 인권 실태≫ 각주151) 참조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Sep 12th, 2018 | By | Category: 2018년 8/9월호 제145호, 자료, 정세와노동 | 조회수: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