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1)

공유하기

 

 

이오씨프 쓰딸린(Иосиф Сталин)

번역: 신재길(편집위원)

 

 

 

[편집부] 1905년 말과 1906년 초에 그루지야에서 끄로뽀뜨낀의 추종자이며 유명한 무정부주의자인 체르께지쉬빌리와 그의 심복인 미하꼬 쩨레쩰리(바똔), 샬바 고겔리야(Sh. G.) 등등이 지도하는 무정부주의자 집단은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맹렬한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집단은 찌플리스에서 ≪호소≫, ≪노동자≫ 등등의 신문을 발간하였다. 무정부주의자들은 노동계급 속에서 아무런 지지도 받지 못하였으나 룸펜 프롤레타리아와 소부르주아 분자들 사이에서는 약간의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무정부주의자들을 반대하여 쓰딸린은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라는 총제목 하에 연속 논문을 발표하였다. 처음 네 편의 논문은 1906년 6-7월에 ≪신생활≫지에 발표되었다. 그 다음 논문들은 당국이 신문을 폐간한 관계로 발표되지 못하였다. 1906년 12월과 1907년 1월 1일에는 ≪신생활≫지에 발표되었던 논문들이 ≪신시대≫지에 약간 다른 형태로 게재되었다. 신문 편집부는 이 논문들에 다음과 같은 주해를 달았다; “얼마 전에 사무직 노조는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및 기타 이와 유사한 문제들에 대한 논문을 게재할 것을 우리한테 요청하였다(≪신시대≫, 제3호 참조). 몇 명의 다른 동지들도 역시 그러한 요청을 하여 왔다. 우리는 기꺼이 요청에 응하여 여기에 그 논문을 발표한다. 논문 자체에 대하여 말한다면 이 논문들의 일부는 이미 그루지야 출판물에 한 번 발표된 일이 있었다(필자와는 관계없는 원인에 의하여 논문들은 종결되지 못하였다)는 것을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논문 전부를 게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고 그 논문들을 알기 쉬운 말로 개작해 줄 것을 필자에게 요청하였는데 필자는 기꺼이 승낙하고 실행하였다.” 이리하여 ≪무정부주의냐,사회주의냐?≫란 연재물의 첫 네 편에는 두 가지가 있게 되었다. 이 연재물의 계속은 1907년 2월에 ≪우리의 생활≫지와 1907년 4월에 ≪시대≫지에 발표되었다. ≪신생활≫에 발표되었던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의 제논문은 ≪쓰딸린 저작집≫ 제1권에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우리의 생활≫은 볼쉐비끼의 일간신문으로서 찌플리스에서 1907년 2월 18일부터 합법적으로 발간되었다. 이 신문은 쓰딸린이 지도하였다. 전부 13호가 발간되었다. 1907년 3월6일에 신문은 “극단적인 경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정간되었다.

≪시대≫는 ≪우리의 생활≫이 정간된 후 1907년 3월 11일부터 4월 15일까지 찌플리스에서 발행된 볼쉐비끼 일간신문이다. 신문의 지도자는 쓰딸린 이였다. 엠. 차까야, 엠. 다비따쉬빌리도 편집에 참여하였다. 전부 31호가 발간되었다.

 

 

 

현대 사회생활의 기본은 계급투쟁이다. 이 투쟁과정에서 계급들은 각각 자기의 이데올로기를 지침으로 삼는다. 부르주아지에게는 자기의 이데올로기가 있다. 그것은 소위 자유주의라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도 자기의 이데올로기가 있다. 그것은 다 아는 바와 같이 사회주의이다.

자유주의를 그 어떤 전일적이며 구분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부르주아지의 각 계층에 따라 각이한 유파로 갈라져 있다.

사회주의도 역시 전일적이며 구분할 수 없는 것이 아니며 거기에도 역시 여러 가지 유파가 있다.

우리는 여기서 자유주의를 고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다른 기회로 미루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독자들에게 사회주의와 그 조류들만을 소개하려고 한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렇게 하는 것이 독자들에게 더 흥미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는 개량주의, 무정부주의, 맑스주의라는 세 가지 주요 조류로 나눠진다.

개량주의(베른슈타인 등등)는 사회주의가 먼 앞날의 목적일 따름이고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인정한다. 개량주의는 사실상 사회주의 혁명을 부인하고 평화적 방법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려고 하며 계급투쟁이 아니라 계급협조를 주장한다. 이 개량주의는 나날이 무너져 가며, 나날이 사회주의의 여러 특징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의 특징을 규정하고자 하는 이 논문에서 개량주의를 고찰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맑스주의와 무정부주의는 이와는 문제가 전혀 다르다. 이 두 조류는 현재 다 같이 사회주의적 조류로 인정되고 있다. 이 두 조류는 서로 치열한 투쟁을 하고 있으며 서로 자기가 진정한 사회주의 학설이라는 것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보여 주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므로 이 두 조류를 대비 고찰하는 것이 당연히 독자들에게 훨씬 더 흥미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무정부주의”란 말만 하여도 거만하게 손을 내저으면서 “할 일이 없어서 무정부주의를 문제 삼겠는가, 그런 것은 논할 가치조차 없다!”고 멸시하는 태도로 돌아서 버리는 따위의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값싼 “비판”은 진중하지 못하며 무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정부주의자들에게는 “대중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고 자위하는 따위의 사람들도 아니다. 문제는 오늘날 “대중”이 누구를 많이 따르고 적게 따르는가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학설의 본질에 있다. 만일 무정부주의자들의 “학설”이 진리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그 “학설”은 자기의 길을 기어이 개척하고 자기 주위에 대중을 집결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만일 그 “학설”이 불합리하며 허위의 토대 위에 선 것이라면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하고 곧 허공에 뜨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정부주의의 불합리성은 반드시 논증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맑스주의와 무정부주의는 동일한 원칙을 가졌으며 그것들 간에는 다만 전술상의 의견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의 견해에 의하면 이 두 조류를 서로 대립시킨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큰 잘못이다.

우리는 무정부주의자들을 맑스주의의 실재하는 적으로 본다. 따라서 우리는 실재하는 적과는 본격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정부주의자들의 “학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검토해야 하며 이를 모든 측면에서 철저하게 구명해야 한다.

문제는 맑스주의와 무정부주의가 비록 다 같이 사회주의의 기치를 들고 투쟁 무대에 나서고 있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원칙 위에 서 있다는 데 있다. 무정부주의의 초석은 개인이다. 무정부주의의 견해에 의하면 개인의 해방은 대중, 집단을 해방하는 주요 조건이다. 무정부주의의 견해에 의하면 대중의 해방은 개인이 해방되기 전에는 불가능하며, 따라서 무정부주의의 구호는 “모든 것은 개인을 위하여”라는 것이다. 맑스주의의 초석은 대중이다. 맑스주의의 견해에 의하면 대중의 해방은 개인을 해방하는 주요 조건이다. 즉 맑스주의의 견해에 의하면 개인의 해방은 대중이 해방되기 전에는 불가능하며 따라서 맑스주의의 구호는 “모든 것은 대중을 위하여”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술상의 의견 차이뿐만 아니라 서로를 부정하는 두 원칙이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이 논문의 목적은 서로 대립되는 이 두 원칙을 대조하며 맑스주의와 무정부주의를 서로 비교함으로써 그것들의 장점과 단점을 밝히는 데 있다. 여기서 우리는 독자들에게 논문의 대강을 알려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선 맑스주의의 특징을 밝히고 내친김에 맑스주의에 대한 무정부주의자들의 견해를 언급한 다음 무정부주의 그 자체를 비판하는 데로 넘어가려 한다. 즉 변증법적 방법, 이에 대한 무정부주의자들의 견해와 우리의 비판, 유물론적 이론, 무정부주의자들의 견해와 우리의 비판을 서술하고(여기에서 또한 사회주의 혁명, 사회주의 독재, 최저 강령과 전술 일반을 논할 것이다), 다음에 무정부주의자들의 철학과 우리의 비판, 무정부주의자들의 사회주의와 우리의 비판, 무정부주의자들의 전술과 조직을 서술할 것이며 마지막으로 우리의 결론을 내릴 것이다.

우리는 소규모 공동체 사회주의의 설교자인 무정부주의자들이 참다운 사회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에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또한 무정부주의자들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인하는 한 참다운 혁명가가 아니라는 것도 증명하기에 노력할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본론으로 넘어 가자.

 

 

  1. 변증법적 방법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운동한다. …

생활이 변하며 생산력이 성장하여 낡은 관계가 무너진다.

칼 맑스

 

맑스주의는 사회주의의 이론일 뿐만 아니라 전일한 세계관이며 철학체계이다. 맑스의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는 이 체계에서 논리적으로 흘려 나온다. 이 철학체계는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맑스주의를 서술한다는 것은 변증법적 유물론도 서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이 체계를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그 방법이 변증법적이며 그 이론이 유물론적인 까닭이다.

변증법적 방법이란 무엇인가?

사회생활은 끊임없는 운동과 발전 상태에 있다고들 한다. 이것은 물론 옳은 말이다. 생활을 그 어떤 불변하는, 굳어버린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생활은 결코 한 수준에 머물려 있지 않는다. 그것은 영원한 운동, 파괴와 창조의 영원한 과정 속에 있다. 그런 까닭에 생활에는 항상 새것과 낡은 것, 자라나는 것과 죽어 가는 것, 혁명적인 것과 반혁명적인 것을 포함하고 있다.

변증법적 방법은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생활이 끊임없는 운동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따라서 우리는 생활을 운동 속에서 고찰하여야 하며, 생활이 어디로 움직이는가를 문제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생활이 끊임없는 파괴와 창조의 풍경을 보여 준다는 것을 알았다. 따라서 우리의 임무는 생활을 파괴와 창조 속에서 고찰하며 생활에서 무엇이 파괴되고 무엇이 창조되는가를 문제시하는 데 있다.

생활 속에 태어나서 나날이 자라나는 것은 무적이며 그의 전진 운동을 멈출 수 없다. 즉 일례로 생활에서 노동계급이 계급으로서 태어나 날로 자라난다면 지금 노동계급이 아무리 약하고 수가 적다하더라도 결국은 노동계급이 승리하고야 말 것이다. 어째서인가? 그것은 노동계급이 자라나며 강해지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생활에서 늙어가며 무덤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은 지금 거대한 힘을 가졌다 하더라도 반드시 패배하고야 말 것이다. 즉 일례로 부르주아가 점차 자기의 지반을 잃어버리고 나날이 퇴보한다면 지금 그가 아무리 강하고 수가 많다 하더라도 결국 그는 패배하게 될 것이다. 어째서인가? 그것은 부르주아가 계급으로서 쇠퇴하고 약하여지며 늙어가며 생활에서 무용지물로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변증법적 명제가 나온다. 즉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것 다시 말해서 날로 자라나는 그 모든 것은 합리적이며 날로 쇠퇴되는 모든 것은 비합리적이며 따라서 패배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하나의 실례를 들어 보자. 지난 세기 80년대에 러시아의 혁명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일대 논쟁이 벌어졌었다. 나로드니크는 주장하기를, “러시아의 해방”을 담당할 만한 주력은 농촌과 도시의 소부르주아라고 하였다. 왜 그런가를 맑스주의자들은 그들에게 물었다. 나로드니크는 말하기를, 농촌과 도시의 소부르주아는 지금 다수일 뿐만 아니라 또한 가난하고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까닭이라고 하였다.

맑스주의자들은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농촌과 도시의 소부르주아가 지금 다수를 이루고 있으며 실제로 가난한 것만은 사실 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겠는가? 소부르주아가 다수를 이루고 있은 지는 이미 오래지만 그러나 이때까지 노동계급의 지원 없이는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아무런 진취성도 발휘하지 못하였다. 어째서인가? 그것은 소부르주아가 계급으로서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날이 와해되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분해되는 까닭이다. 다른 한편, 가난하다는 것도 여기서는 물론 결정적 의의를 가지지 못한다. “거지들”은 소부르주아보다 더 가난하지만 그러나 그들이 “러시아의 해방”을 담당할 수 있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어느 계급이 지금 다수를 이루며 어느 계급이 더 가난한가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계급이 더 강해지며 어느 계급이 쇠퇴되어 가는가 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노동계급은 끊임없이 나타나고 강해지며 사회생활을 앞으로 추진시키고 자기 주위에 모든 혁명적 요소를 집결시키는 유일한 계급인 것만큼 우리의 임무는 현재의 운동에서 노동계급을 주력으로 인정하고 그 대열에 들어서며 그의 선진적 지향을 자기의 지향으로 삼는 것이다.

맑스주의자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렇듯 맑스주의자들은 생활을 변증법적으로 고찰하였는데 나로드니크는 형이상학적으로 논의하였다는 것이 명백하다. 나로드니크는 사회생활을 한자리에 머물려 있는 것으로 보았다.

변증법적 방법은 이렇듯 생활을 발전으로 본다.

그러나 운동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프롤레타리아가 가슴을 쭉 펴고 무기고를 습격하며 반동을 공격하여 나선 “12월 사변” 때와 같은 사회생활의 운동이 있었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평화적” 발전의 조건 하에서 개별적으로 파업을 일으키고 자그마한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데 그치고 있은 그 이전 시기의 운동도 역시 사회적 운동이라고 불러야 한다.

운동에는 여러 가지 형식이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변증법적 방법은 운동에 두 가지 형식 즉 진화적 형식과 혁명적 형식이 있다고 말한다.

선진 분자들이 자기의 일상 사업을 자연발생적으로 계속하며 낡은 제도에 사소한 양적 변화를 일으키는 경우에 그 운동은 진화적이다.

그러나 그러한 선진분자들이 낡은 제도를 근본적으로 쓸어버리고 생활에 질적 변화를 일으키며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 위하여 서로 단결하고 같은 사상으로 뭉쳐 적진을 공격해 나서는 경우에 그 운동은 혁명적이다.

진화는 혁명을 준비하고 그 토대를 닦아 주며 혁명은 진화를 완성하고 더욱더 그 활동을 촉진한다.

자연에도 비슷한 과정이 있다. 과학의 역사는 변증법적 방법이 진정한 과학적 방법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천문학을 비롯하여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어느 부문에서나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사상을 확증하여 주고 있다. 따라서 자연의 모든 것은 반드시 운동과 발전의 관점에서 고찰하여야 한다. 이것은 변증법의 정신이 전체 현대과학을 일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운동의 형태에 대하여 말한다면 즉 변증법에 따라 사소한 양적 변화가 결국 커다란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에 대하여 말한다면 이 법칙은 자연의 역사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멘델레예프의 “원소주기율”은 양적 변화에서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 자연의 역사에서 얼마나 큰 의의를 가지고 있는가를 명백히 보여 준다. 생물학에서 신다윈주의 다음에 나타난 신라마르크주의의 이론도 같은 것을 증명하여 준다.

우리는 엥겔스가 자기의 저서 ≪반듀링론≫에서 충분히 해명한 기타 사실들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이와 같은 것이 변증법적 방법의 내용이다.

 

* * *

 

무정부주의자들은 변증법적 방법을 어떻게 보는가?

다 아는 바와 같이 변증법적 방법의 창시자는 헤겔이다. 맑스는 이 방법에서 그릇된 것을 내던지고 그것을 개선하였다. 물론 이런 사정은 무정부주의자들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헤겔이 보수주의자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회만 있으면 헤겔을 “복고주의”의 지지자라고 욕설을 퍼 부으며 “헤겔은 복고주의 철학가이다. … 그는 절대주의적 형식의 관료적 입헌주의를 찬양하며 그의 역사철학의 전체 사상은 복고주의 시대의 철학적 유파에 속하며 이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등등을 열심히 “증명”하고 있다(≪호소≫ 1) 제6호, 체르께지쉬빌리의 논문을 보라).

유명한 무정부주의자 끄로뽀뜨낀도 자기의 저작에서 역시 이와 같은 것을 “증명”하려 하고 있다(실례로 러시아어로 쓴 그의 저서 ≪과학과 무정부주의≫를 보라).

체르께지쉬빌리에서 Sh. G.에 이르기까지의 우리의 끄로뽀뜨낀주의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끄로뽀뜨낀의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호소≫의 각 호들을 보라).

사실 헤겔이 혁명가가 아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들과 논쟁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 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동의할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누구보다도 먼저 자신들의 ≪비판적 비판의 비판≫2)에서 헤겔의 역사관이 인민의 주권과 근본적으로 모순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정부주의자들은 헤겔이 “복고주의”의 지지자라는 것을 계속 “증명”하고 있으며 날마다 그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은 이렇게 하는가? 아마 이렇게 함으로써 헤겔의 명성을 떨어뜨리며, “반동분자” 헤겔에 있어서는 방법도 “추악”하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인상을 독자들에게 주려는 것 같다.

이러한 방법으로 무정부주의자들은 변증법적 방법을 논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들이 이러한 방법으로는 자기들의 무지밖에 더 증명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빠스깔과 라이프니츠는 혁명가가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수학적 방법은 오늘날 과학적 방법으로 인정되고 있다. 마이어와 헬름홀츠는 혁명가가 아니었지만 그러나 물리학 분야에서 그들이 발견한 것은 과학의 기초로 되었다. 라마르크와 다윈도 역시 혁명가는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들의 진화론적 방법은 생물학을 확립케 하였다. … 그렇다면 헤겔이 비록 보수주의자이지만 그가 변증법이라는 과학적 방법을 수립하는 데 성공한 사실을 인정해서 안 될 이유는 무엇인가?

전혀 없다. 이러한 방법으로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자기의 무지밖에는 더 증명하지 못할 것이다.

다음으로 넘어가자. 무정부주의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변증법은 곧 형이상학이다.” 그런데 그들은 “형이상학으로부터 과학을 해방시키며 신학으로부터 철학을 해방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변증법적 방법을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호소≫ 제3, 9호의 Sh. G.의 논문과 끄로뽀뜨낀의 ≪과학과 무정부주의≫를 보라).

한심한 무정부주의자들이다! 말하자면 “자기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격이다. 변증법은 형이상학과 투쟁하는 가운데서 성숙하였고 또 이 투쟁에서 명성을 얻었는데 무정부주의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변증법은 곧 형이상학이라는 것이다!

변증법은 세계에는 영원한 것이란 아무것도 없으며 세계의 모든 것은 일시적이고 가변적이며 자연도 변하고 사회도 변하며 도덕과 풍습도 변하며 정의의 개념도 변하고 진리 자체도 변한다고 말한다 ―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변증법은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변증법은 영원한 진리라는 것을 부인한다. 따라서 변증법은 “일단 발견된 후에는 다만 암송하기만 하면 되는” 추상적인 “교조적 명제”(엥겔스,루트비히 포이에르바흐≫3) 를 보라)도 부인한다.

그런데 형이상학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말을 한다. 형이상학에 있어서는 세계는 영구불변한 그 어떤 것이며(엥겔스, 반듀링론을 보라), 세계는 그 누구에 의하여 또는 그 무엇에 의하여 영원히 규정되어 있다 ― 그렇기 때문에 형이상학자들의 입에서는 항상 “영원한 정의”니, “변함없는 진리”니 하는 말이 나온다.

무정부주의자들의 “시조”인 프루동은 말하기를, 세계에는 영원히 규정된 변함없는 정의가 있으니 이 정의를 미래 사회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런 관계로 프루동은 형이상학자라는 칭호를 받았다. 맑스는 변증법적 방법에 의거하여 프루동과 투쟁하였으며, 세계와 모든 것이 변하는 이상 “정의”도 변해야 하며 따라서 “변함없는 정의”란 형이상학의 잠꼬대라는 것을 증명하였다(칼 맑스, 철학의 빈곤을 보라) 그런데 형이상학자 프루동의 그루지야 제자들은 우리에게 거듭 말하기를 “맑스의 변증법은 곧 형이상학”이라고 한다!

형이상학은 여러 가지 애매모호한 교조, 예컨대 “인식할 수 없는 것”, “사물 그 자체” 등을 승인하며 결국은 내용 없는 신학으로 넘어가고 만다. 프루동이나 스펜서와는 반대로 엥겔스는 변증법적 방법에 의거하여 이런 교조와 투쟁하였다(루트비히 포이에르바흐를 보라). 그런데 프루동과 스펜서의 제자인 무정부주의자들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프루동과 스펜서는 학자이나 맑스와 엥겔스는 형이상학자라고 한다!

무정부주의자들이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어쨌든 무정부주의자들이 헤겔의 형이상학적 체계를 그의 변증법적 방법과 혼동하고 있다는 것만은 의심할 바 없다.

불변의 이념에 의거하고 있는 헤겔의 철학체계가 철두철미 형이상학적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온갖 불변의 이념을 부정하는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이 시종일관 과학적이며 혁명적이라는 것도 역시 명백하다.

그렇기 때문에 칼 맑스는 헤겔의 형이상학적 체계에 치명적인 비판을 가하면서도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은 칭찬하였다. 맑스의 말에 의하면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은 “어떤 것 앞에도 굴하지 않으며 그 본질상 비판적이며 혁명적이다.” (≪자본론≫ 제1권, 서문을 보라.)

이것이 엥겔스가 헤겔의 방법과 그의 체계 간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한 이유이다.

 

헤겔의 체계에 중요한 강조점을 둔 사람은 두 분야(종교와 정치)에서 다 같이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반대로 변증법적 방법을 주되는 것으로 인정한 사람들은 정치에서나 종교에서나 아주 극단적인 반대파에 속하였다.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흐≫를 보라.)

 

무정부주의자들은 이 차이를 보지 못하고 경솔하게 “변증법은 곧 형이상학”이라고 지껄인다.

다음으로 넘어가자. 무정부주의자들은 말하기를 변증법적 방법은 “교묘한 말 짜 맞추기”, “궤변의 방법”, “논리상의 재주넘기”(≪호소≫ 제8호, Sh. G.의 논문을 보라)이며, “그 방법에 의하면 진리도 허위도 다 같이 쉽게 증명된다”(≪호소≫ 제4호, 체르께지쉬빌리의 논문을 보라)고 한다.

그래서 무정부주의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변증법적 방법은 진리와 허위를 다 같이 증명하는 것으로 된다.

얼핏 보면 무정부주의자들의 이 비난에는 근거가 있는 듯하다. 실례로 형이상학적 방법의 계승자에 대하여 엥겔스가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를 들어 보자:

 

… 그의 말은 ‘옳은 것을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만 하라, 무엇이든지 이를 넘어서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이다. 형이상학자로서 보면 사물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이다. 마찬가지로 또 사물은 그 자체인 동시에 다른 것일 수는 없다. 긍정과 부정은 절대적으로 서로를 배제한다. … (≪반듀링론≫, 서론을 보라.)

 

왜 이것이 잘못이란 말인가!라고 무정부주의자들은 열을 낸다. 그래 같은 것이 동시에 좋은 것으로도 되고 나쁜 것으로도 된단 말인가?! 이것은 “궤변”이며 “말장난”이다. 이것은 “당신들이 진리와 허위를 다 같이 쉽게 증명하려 한다. …”는 것을 의미한다! …

그러나 문제의 본질을 좀 더 깊이 생각하여 보자.

오늘 우리는 민주주의 공화국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 공화국은 모든 점에서 다 좋거나 혹은 모든 점에서 다 나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천만에, 그렇게는 말할 수 없다! 어째서인가? 그 이유는, 민주주의 공화국이 봉건 제도를 파괴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에는 그것은 좋은 것이지만 부르주아 제도를 공고히 한다는 다른 측면에서 볼 때에는 그것은 나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공화국이 봉건 제도를 파괴하는 한 그것은 좋은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위하여 투쟁하지만 그러나 민주주의 공화국이 부르주아 제도를 공고히 하는 한 그것은 나쁜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반대하여 투쟁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같은 민주주의 공화국이 동시에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며 따라서 “옳은 것”이기도 하고 “아닌 것”이기도 하다.

8시간 노동제에 대해서도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다. 8시간 노동제는 프롤레타리아를 강화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지만 동시 에 임금제도를 공고히 하는 것만큼 “나쁜 것”이기도 하다.

엥겔스는 위에서 든 인용문에서 변증법적 방법을 규정할 때에 바로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었었다.

그런데 무정부주의자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극히 명확한 사상이 그들에게는 애매모호한 “궤변”으로 보였던 것이다.

물론 무정부주의자들이 이 사실을 보고 안 보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다. 심지어 그들은 모래 해안에서 모래를 보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것 역시 그들의 권리이다. 그러나 여기에 변증법적 방법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변증법적 방법은 무정부주의와는 달리 눈을 감은 채 세상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맥박을 느낀다. 세상은 변화하며 운동하는 것만큼 온갖 세상의 현상은 두 가지 경향 즉 긍정적 경향과 부정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중에서 전자를 옹호하고 후자를 배격해야 한다고 단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또 다음으로 넘어가자. 우리의 무정부주의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변증법적 발전은 파멸적인 발전이며, 이 파멸적인 발전에 의하면 처음에는 과거의 것이 완전히 파괴되고 그 다음에 미래의 것이 전혀 새롭게 확립된다. … 퀴비에의 천재지변설[천재지변으로 생물이 절멸하고 일부가 살아남아 다시 번성한다는 다윈 이전의 진화론: 역자]은 미지의 원인에서 생기는데 맑스와 엥겔스의 격변은 변증법에 의하여 생겨난다.” (≪호소≫ 제8호, Sh. G.의 논문을 보라.)

이 필자는 다른 곳에서 쓰기를 “맑스주의는 다윈주의에 의거하고 있으며 이를 비판적으로 대하고 있지 않다”고 하였다(≪호소≫ 제6호를 보라).

이 글에 주의하라!

퀴비에는 다윈의 진화를 부인하고 오직 천재지변만을 시인하는데 그 천변지변이란 “미지의 원인에서 생기는” 불의의 격변이다. 무정부주의자들은 맑스주의자들이 퀴비에를 따르고 있으며 따라서 다윈주의를 거부한다고 말한다.

다윈은 퀴비에의 천재지변설을 부인하고 점차적 진화를 시인한다. 그런데 이 같은 무정부주의자들의 말에 의하면 “맑스주의는 다윈주의에 의거하고 있으며 이에 비판적으로 대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즉 맑스주의자들은 퀴비에의 천재지변설을 부인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무정부주의자들은 맑스주의자들이 퀴비에를 따르고 있다고 비난하는 한편, 동시에 맑스주의자들이 퀴비에가 아니라 다윈을 따르고 있다고 꾸짖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무정부 상태다! 속담에 있듯이 하사관의 과부가 제 손으로 자기를 때리는 격이다! Sh. G.는 ≪호소≫ 제6호에서 말한 것을 ≪호소≫ 제8호에 와서는 잊어버렸다는 것이 명백하다.

제8호와 제6호 중에서 어느 것이 옳은가?

사실을 보기로 하자. 맑스는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은 그 일정한 발전단계에서 … 현존 생산관계 또는 이것의 법률적 표현에 불과한 소유관계와 모순되게 된다. … 그때에 사회혁명의 시대가 닥쳐온다! 그러나 어떠한 사회구성체도, 그것이 충분한 여지를 주고 있는 생산력이 다 발전하기 전에는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 4) (칼 맑스, ≪정치 경제학 비판≫ 서문을 보라.)

 

만일에 맑스의 이 명제를 현대 사회생활에 적용한다면 사회적 성격을 가진 현대의 생산력과 사적 성격을 가진 생산물 소유형식 간에는 사회주의 혁명에 의하여 해결되어야 할 근본적인 갈등이 있다는 것으로 된다. (엥겔스, ≪반듀링론≫, 제3편 제2장을 보라.)

보다시피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에 의하면 혁명은 퀴비에의 “미지의 원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산력의 발전”이라는 아주 명확한 실제적인 사회적 원인에 의하여 일어난다.

보다시피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에 의하면 혁명은 퀴비에가 생각한 것처럼 불의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이 충분히 성숙된 그때에야 일어난다.

퀴비에의 천재지변설과 맑스의 변증법적 방법 간에는 하등의 공통점도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다른 한편 다윈주의는 퀴비에의 천재지변설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을 포함한, 변증법적으로 이해된 발전까지도 부인한다. 그런데 변증법적 방법의 견지에 의하면 진화와 혁명, 양적 변화와 질적 변화 ― 이것은 동일한 운동의 필수적인 두 개의 형태이다.

“맑스주의는 … 다윈주의를 비판적으로 대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도 역시 명백하다.

결국 ≪호소≫는 제6호에서나 제8호에서나 다 오류를 범하였다.

마지막으로 무정부주의자들은 우리를 비난하면서 “변증법은 … 자기 자체에서 벗어나든가 뛰쳐나오든가 혹은 자기 자체를 뛰어넘든가 할 가능성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호소≫ 제8호, Sh. G.의 논문을 보라.)

무정부주의자 여러분, 과연 그것은 진리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존경하는 당신들이 완전히 옳다. 사실 변증법적 방법은 그러한 가능성을 주지 않는다. 왜 그러한 가능성을 주지 않는가? 그것은 “자기 자체에서 뛰쳐나오든가 자기 자체를 뛰어넘든가” 하는 것은 산양이나 하는 일이고 변증법적 방법은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진 까닭이다.

비밀은 여기에 있다! …

변증법적 방법에 대한 무정부주의자들의 견해는 대개 이러하다.

무정부주의자들이 맑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적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명백하다 ― 그들은 자기류의 변증법을 날조하여 그것과 그렇듯 무자비하게 싸우고 있다.

우리로서는 이러한 꼴을 보고 웃을 수밖에 없다. 사람이 자기 자신의 환상과 싸우며 자기 자신이 꾸며 낸 허구를 공격하면서 동시에 자기의 원수를 무찌르고 있다고 열이 나서 단언하는 것을 보고는 웃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 유물론적 이론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칼 맑스

 

우리는 앞에서 변증법적 방법을 다루었다.

그러면 유물론적 이론이란 무엇인가?

세계의 모든 것은 변화하며 생활의 모든 것은 발전한다.

그런데 이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며 이 발전은 어떤 형태로 진행되는가?

예컨대 우리는 지구가 한때 뜨겁게 타오르는 불덩어리였는데 다음에 그것이 차차 식어 갔고 그 다음에 식물과 동물이 생겼으며 동물계의 발전에 뒤이어 일정한 종류의 유인원이 나타났고 이 모든 것에 뒤이어 인간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체로 자연계의 발전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우리는 사회생활도 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이 원시공산주의적 원칙에서 생활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에 사람들은 원시적인 사냥으로 생활을 유지하였으며 숲 속을 헤매면서 먹을 것을 구하였다. 때가 와서 원시공산주의는 모권 제도로 바뀌었다 ― 그때에는 사람들은 주로 원시적인 농업으로 자기의 수요를 충족시켰다. 다음에는 모권 제도가 부권 제도로 바뀌었는데 그때에는 사람들이 주로 목축업으로 생활을 유지하였다. 그 다음에 부권 제도는 노예 제도로 바뀌었는데 그때에는 사람들은 비교적 더 발전한 농업으로 생활을 유지하였다. 노예제도 다음에는 농노 제도가 오고, 그 다음에는 부르주아 제도가 나타났다.

사회생활의 발전은 대체로 이렇게 진행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

그러나 이 발전은 어떻게 수행되었는가? 의식이 “자연”과 “사회”를 발전시켰는가?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자연”과 “사회”의 발전이 의식을 발전시켰는가?

유물론적 이론은 문제를 이렇게 제기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자연”과 “사회생활”보다 먼저 세계이념이 있었고 이 세계이념은 후에 “자연”과 “사회생활”이 발전하는 기초로 되었으며 따라서 “자연” 현상의 발전과 “사회생활”의 제 현상의 발전은 말하자면 세계이념의 발전의 외형, 그의 단순한 표현일 따름이라고 한다.

예컨대 관념론자들의 학설이 이러하였다. 그들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몇 개의 유파로 갈라졌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세계에는 처음부터 서로 부정하는 두 개의 힘 즉 관념과 물질, 의식과 존재가 있었고 이에 따라 현상들도 역시 서로 부정하며 서로 투쟁하는 두 개의 계열 즉 관념적인 계열과 물질적인 계열로 나누어지며, 따라서 자연과 사회의 발전이란 관념적 현상과 물질적 현상간의 끊임없는 투쟁이라고 한다.

예컨대 이원론자들의 학설이 이러하였는데 그들도 관념론자들처럼 세월이 흐름에 따라 몇 개의 유파로 갈라졌다.

유물론적 이론은 이원론이나 관념론을 다 같이 근본적으로 부인한다.

물론 세계에는 관념적 현상과 물질적 현상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서로를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대로 관념적 측면과 물질적 측면은 동일한 자연이나 사회의 다른 두 형태이다. 그것들을 서로 분리시켜 생각할 수는 없다. 그것들은 함께 존재하며 함께 발전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그것들이 서로를 부정한다고 생각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이와 같이 소위 이원론이란 부당한 것이다.

물질적 형태와 관념적 형태라는 다른 두 형태로 표현되는 하나의, 나눌 수 없는 자연, 물질적 형태와 관념적 형태라는 다른 두 형태로 표현되는 하나의, 나눌 수 없는 사회생활 ― 우리는 이렇게 자연과 사회생활의 발전을 보아야 할 것이다.

유물론적 이론의 일원론은 이러하다.

이와 동시에 유물론적 이론은 관념론도 부인한다.

관념적 측면, 일반적으로 의식이 자기발전에서 물질적 측면의 발전보다 앞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직 생물이 없었을 때에도 이른바 “생명 없는” 외부 자연은 벌써 존재하였다. 최초의 생물은 아무런 의식도 가지지 못하였고 다만 자극 감응성감각의 첫 맹아를 가졌을 뿐이었다. 그 후 동물계에는 유기체의 구조와 신경계통의 발달에 따라 점차 감각능력이 발전하여 서서히 의식으로 넘어갔다. 만일 유인원이 항상 네 발로 걸어 다니고 허리를 펴지 못하였더라면 그의 후손인 사람은 자기의 폐와 성대를 마음대로 이용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따라서 말을 하게 되지 못하였을 것이며 사람의 의식의 발전은 근본적인 지장을 받았을 것이다. 또 만일 유인원이 뒷다리로 일어서지 못하였더라면 그 후손인 사람은 항상 네 발로 걸었을 것이며 아래만 보고 거기서 자기의 인상(impressions)을 얻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위를 올려다보거나 자기 주위를 돌아볼 수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네 발 가진 동물이 얻는 인상보다 더 많은 인상을 자기의 뇌수에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사람의 의식의 발전에 지장을 주었을 것이다.

결국 의식이 발전하자면 유기체의 특유한 구조가 필요하며 그의 신경계통의 발달이 필요하다.

결국 물질적 측면의 발전, 외적 조건의 발전이 관념적 측면의 발전, 의식의 발전에 앞서게 된다. 다시 말하면 먼저 외적 조건이 변하고 먼저 물질적 측면이 변하며 그러고 나서 이에 따라 의식, 관념적 측면이 변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자연의 발전사는 소위 관념론을 근본적으로 뒤집어엎고 있다.

인류 사회의 발전사에 대해서도 역시 동일하게 말해야 할 것이다.

역사가 보여 주는 바와 같이 만일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사상과 욕망이 달랐다면 그 원인은 시대에 따라 사람들이 자기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자연과 투쟁하는 방법이 달랐으며 또 이에 따라 그들의 경제적 관계가 달랐다는 데 있다.

사람들이 원시공산주의적 원칙에서 공동으로 자연과 투쟁하는 때가 있었다. 그때에는 그들의 소유도 공산주의적이었고 따라서 당시 그들은 “내 것”과 “네 것”을 거의 구별하지 못하였다. 그들의 의식은 공산주의적이었다. 그러나 생산에서 “내 것”과 “네 것”의 구별이 나타난 그러한 시기가 닥쳐왔다. ― 그때에는 소유도 사적, 개인적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따라서 사람들의 의식에는 개인 소유욕이 나타나게 되었다. 생산이 다시 사회적 성격을 띠게 되고 따라서 소유도 멀지 않아 사회적 성격을 띠며 따라서 사람들의 의식도 차차 사회주의로 물들게 될 시대, 즉 현대가 닥쳐왔다.

간단한 실례를 들어보자. 조그마한 구둣방을 가진 제화공이 있다고 하자. 그는 큰 기업주들과의 경쟁을 이겨내지 못하여 구둣방을 닫고 찌플리스의 아젤하노브 제화공장에 고용되었다고 하자. 그가 아젤하노브 공장으로 들어간 것은 영영 임금노동자로 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돈을 모아 밑천을 만들어 가지고 자기의 구둣방을 다시 꾸려 보자고 한 것이었다. 보다시피 이 제화공의 처지는 이미 프롤레타리아적이지만 그의 의식은 아직 프롤레타리아적인 것이 아니라 완전히 소부르주아적이다. 달리 말하면 이 제화공의 소부르주아적 처지는 이미 사라지고 더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그의 소부르주아적 의식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실제 처지보다 뒤떨어져 있다.

이 사회생활 분야에서도 처음에는 외부 조건 즉 사람들의 처지가 변한 다음에야 그에 따라 그들의 의식이 변한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러면 우리의 제화공을 다시 보기로 하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그는 돈을 모아 가지고 자기의 구둣방을 다시 꾸릴 작정이었다. 노동자가 된 제화공은 일을 계속하면서 임금을 가지고는 먹고살기조차 힘들었기 때문에 돈을 모으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개인 구둣방을 여는 것이 그처럼 마음을 끄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그는 가게 임대료요, 손님들의 변덕스러움이요, 자금 부족이요, 큰 기업주들과의 경쟁이요 하는 각가지 걱정거리가 개인 제화공을 얼마나 괴롭히고 있는가를 알게 된다. 그런데 노동자는 이런 걱정을 비교적 덜하게 된다. 손님이나 가게 임대료 때문에 불안해 할 것도 없다. 그는 아침이면 공장에 가고 저녁이면 “조용히” 집으로 돌아오며 토요일이면 역시 조용히 호주머니에 “봉급”을 받아 넣는다. 여기서 처음으로 우리 제화공의 소부르주아적 공상의 날개가 떨어져 나가며 여기서 처음으로 그의 심중에 프롤레타리아적 지향이 싹트기 시작한다.

날이 감에 따라 우리 제화공은 그가 받은 돈으로는 최저 생활도 할 수 없으며 임금을 높이는 것이 그에게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기 동료들이 노조니 파업이니 하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여기에서 비로소 우리 제화공은 자기의 처지를 개선하려면 자기의 구둣방을 꾸릴 것이 아니라 주인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노조에 가입하여 파업운동에 참가하며 또 얼마 후에는 사회주의 사상에 공명하게 된다. …

이와 같이 제화공의 물질적 처지가 변한 후에 결국 그의 의식도 변하였다. 즉 처음에는 그의 물질적 처지가 변하였고 그 후 얼마간 지나서 그것에 상응하게 그의 의식이 변화하였다.

계급이나 사회 전체에 대해서도 역시 그렇게 말하여야 할 것이다.

사회생활에서도 역시 처음에는 외적 조건 즉 물질적 조건이 변하고 그 후 이에 상응하게 사람들의 사유, 그들의 풍습, 그들의 습관, 그들의 세계관이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맑스는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고 말하였다.

만일 물질적 측면, 외적 조건, 존재 및 기타 이와 유사한 현상들을 내용이라고 한다면 관념적 측면, 의식 및 기타 이와 유사한 현상들은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부터 발전 과정에서는 내용이 형식에 앞서며 형식은 내용보다 뒤떨어진다는 유명한 유물론적 명제가 나온 것이다.

맑스의 견해에 의하면 경제적 발전은 사회생활의 “물질적 기초”, 그의 내용으로 되며, 법률-정치적 발전과 종교-철학적 발전은 이 내용의 “사상적 형식”, 그의 “상부구조”로 되는 까닭에 맑스는 “경제적 기초의 변화에 따라 거대한 전체 상부구조가 혹은 급속히 혹은 서서히 변혁된다”고 결론하였다.

물론 이것은 Sh. G.가 생각한 것처럼 맑스가 형식 없는 내용이 가능하다고 보았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호소≫ 제1호, “일원론의 비판”을 보라). 형식이 없는 내용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어떠한 형식이든지 그 내용보다 뒤떨어지는 까닭에 결코 그 내용에 완전히는 적응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새로운 내용은 일시적으로 낡은 형식을 걸치고 “있지 않을 수 없으며” 결국은 그것들 간에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실례로 오늘날 사적 성격을 띤 생산물 소유형식은 생산의 사회적 내용에 적응하지 않으며 바로 이러한 기초 위에서 현대의 사회적 “갈등”이 발생된다.

한편 의식이 존재의 형식이라는 사상은 의식이 본질상 물질과 같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속류 유물론자들(예컨대 뷔흐너와 몰레쇼트)만이다. 그들의 이론은 맑스의 유물론과 근본적으로 대립된다. 엥겔스는 자기의 저서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흐≫에서 그들을 정당하게 조소하였다. 맑스의 유물론에 의하면 의식과 존재, 관념과 물질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자연 혹은 사회라고 하는 동일한 현상의 다른 두 형식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서로 부정하지 않는(이것은 형식과 내용 간에 갈등이 있다는 사상과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문제는 갈등이 내용 일반과 형식 일반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식을 찾으며 그것을 지향하는 새로운 내용과 낡은 형식 사이에 있다는 데 있다) 동시에 동일한 현상도 아니다. 문제는 오직 자연과 사회의 발전에 있어서 우리의 의식 밖에서 일어나는 물질적 변화가 우리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의식보다 앞선다는 데 있다. 달리 말하면 이러저러한 물질적 변화에 뒤이어 상응하는 관념상의 변화가 조만간 불가피하게 일어난다는 데 있다.

그럴듯하다고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할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연과 사회의 역사에 대해서는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에 있어서 우리의 두뇌 속에서 어떻게 각양각색의 표상(Vorstellungen)과 사상(Ideen)이 생기는가? 소위 외적 조건이란 실제로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이 외적 조건에 대한 우리의 표상만이 존재하는가? 만일 외적 조건이 존재한다면 어느 정도로 그것을 지각할 수 있으며 인식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유물론적 이론은 다음과 갈이 말한다. 우리의 표상, 우리의 “자아”는 이 “자아” 속에 인상을 일으키는 외적 조건이 존재하는 한에서만 존재한다. 우리의 표상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경솔하게 말하는 사람은 어떠한 외적 조건이건 다 부인하게 되며 따라서 그는 자기의 “자아”의 존재만을 시인하고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부인하게 되는데 이것은 황당하며 과학의 원리와 근본적으로 모순된다.

외적 조건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이 조건은 우리 이전에도 존재하였고 우리 이후에도 존재하리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의식에 더욱 빈번히, 더욱 강력하게 작용할수록 그것은 더 쉽게 지각되며 더 쉽게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현재 우리의 두뇌 속에서 어떻게 각양각색의 표상과 사상이 생기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한다면 여기에서도 자연과 사회의 역사에서 일어나는 것과 꼭 같은 것이 간단히 반복된다는 것을 우리는 지적하여야 할 것이다. 이 경우에 있어서도 우리 밖에 있는 사물은 이 사물에 대한 우리의 표상보다 먼저 있었으며 따라서 이 경우에 있어서도 우리의 표상, 형식은 사물 즉 자기의 내용보다 뒤늦게 나타난다. 만일 나에게 나무가 보인다면 이것은 나의 두뇌 속에서 나무에 대한 표상이 일어나기 전에 벌써 나에게 그러한 표상을 일으킨 나무 자체가 존재하였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

이상이 맑스의 유물론적 이론의 간단한 내용이다.

 

사람들의 실천 활동을 위하여 맑스의 유물론 이론이 갖는 중요성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만일 처음에 경제적 조건이 변하고 다음에 그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이 변한다면 우리는 어떤 이상(理想)의 근거를 사람들의 두뇌나 그들의 환상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경제적 조건의 발전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경제적 조건을 연구한 기초 위에서 수립된 이상만이 훌륭하며 받아들일 수 있다. 경제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았고 그 발전에 의거하지 않은 그러한 이상은 모두 쓸데없는 것이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유물론적 이론의 첫 실천적 결론이다.

 

만일 사람의 의식, 그의 풍습과 습관이 외적 조건에 의하여 규정되며 법률적 및 정치적 형식이 쓸모없게 되는 까닭이 경제적 내용에 있다면 우리는 인민의 풍습, 습관과 그의 정치제도를 근본적으로 변경하기 위하여 반드시 경제관계의 근본적 개조를 촉진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하다.

이에 대하여 칼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유물론의 학설과 … 사회주의와의 사이의 … 연관을 간파하기 위해서는 그리 큰 통찰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만일 인간이 그 모든 지식, 감각 등등을 감성적 세계 … 에서 흡취한다면 인간은 주위 세계에서 진정으로 인간적인 것을 인식 습득하며 자기를 인간으로서 인식할 수 있도록 주위 세계를 꾸려야 한다. … 만일 인간이 유물론적인 의미에서 부자유하다면, 다시 말해서 인간이 이러저러한 것을 회피하는 소극적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진정한 개성을 발휘하는 적극적인 힘에 의해서 자유롭다면 개별적 인물들의 범죄를 처벌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범죄를 낳는 반사회적 근원을 소멸 …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만일 인간의 성격이 환경에 의하여 형성된다면 인간은 환경을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흐≫, 부록 “18세기 프랑스 유물론에 관한 칼 맑스의 견해”를 보라.)

 

이것이 유물론의 두 번째 실천적 결론이다.

 

* * *

 

무정부주의자들은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적 이론을 어떻게 보는가?

변증법적 방법이 헤겔로부터 시작한다면 유물론적 이론은 포이에르바흐의 유물론의 발전이다. 무정부주의자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맑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비방하기 위하여 헤겔과 포이에르바흐의 부족점을 이용하려고 한다. 헤겔과 변증법적 방법에 대하여 말한다면, 무정부주의자들의 이러한 계책은 그들 자체의 무지 이외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지적하였다. 포이에르바흐와 유물론적 이론에 대한 그들의 공박에 대해서도 역시 동일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무정부주의자들은 대단한 자신을 가지고 우리에게 말하기를 “포이에르바흐는 범신론자였으며…” 그는 “인간을 신격화하였으며…”(≪호소≫ 제7호, 젤렌지의 논문을 보라.) “포이에르바흐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이란 곧 먹는 존재이며…” 이로부터 맑스는 “가장 주요하며 가장 제1차적인 것은 경제적 처지이다. …”(≪호소≫ 제6호, Sh. G.의 논문을 보라)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물론 포이에르바흐의 범신론에 대해서나 그가 인간을 신격화한 데 대해서나 또 그와 유사한 그의 다른 오류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도리어 맑스와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흐의 오류를 폭로한 첫 사람들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정부주의자들은 이미 폭로된 포이에르바흐의 오류를 또 다시 “폭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어째서인가? 그것은 아마도 포이에르바흐를 욕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적 이론을 비방하고 싶었기 때문인 듯하다. 물론 우리가 문제를 공정하게 고찰한다면, 역사상의 많은 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포이에르바흐에게도 그릇된 사상과 함께 옳은 사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정부주의자들은 여전히 “폭로”하기를 계속하고 있다. …

다시 한 번 말해 두거니와, 그들은 이러한 계책으로는 그들 자신의 무지 이외에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이제 아래에서 보게 되겠지만) 무정부주의자들이 유물론적 이론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이 들은풍월로 그 이론을 비판해 보려고 하였다는 점이다. 그 결과 그들은 흔히 서로 모순에 빠지며 서로 논박하게 되는데 그 때문에 물론 우리 “비판가”들은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실례로 체르께지쉬빌리 씨의 말에 의한다면 맑스와 엥겔스는 일원론적 유물론을 증오하였으며 그들의 유물론은 속류 유물론이고 일원론적 유물론은 아니었다고 한다. 즉,

 

엥겔스가 몹시 증오한 자연 과학자들의 위대한 과학과 그 진화론 체계, 생물 변이설 및 일원론적 유물론은 … 변증법을 기피하였다 운운. (≪호소≫ 제4호, 체르께지쉬빌리의 논문을 보라.)

 

체르께지쉬빌리가 찬성하고 엥겔스가 “증오한” 자연과학적 유물론은 일원론적 유물론이며 따라서 그것은 찬성을 받을 만하지만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일원론적 유물론이 아니므로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무정부주의자의 말에 의하면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은 일원론적 유물론이며 따라서 배격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한다. 즉,

 

맑스의 역사적 견해는 헤겔의 열성형질의 되풀이다. 일반적으로는 절대적 객관주의의 일원론적 유물론과 특수하게는 맑스의 경제적 일원론이란 자연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이론상으로 오류인 것이다. … 일원론적 유물론은 서툴게 위장한 이원론이며 형이상학과 과학의 타협물이다. … (≪호소≫ 제6호, Sh. G.의 논문을 보라.)

 

결국 일원론적 유물론은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며, 맑스와 엥겔스가 일원론적 유물론을 증오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이 일원론적 유물론자라는 사실이 일원론적 유물론이 배격되어야 할 이유라는 것이다.

무정부주의자들은 뒤죽박죽이다. 누가 진리를 말하고 있는가, 전자인가 후자인가, 알 수 있으면 어디 말해 보라! 아직 그들 자신이 맑스의 유물론의 장점과 단점에 대하여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였으며 아직 그들 자신이 맑스의 유물론이 일원론적인지 아닌지를 모르고 있으며 아직 그들 자신이 속류 유물론이 나은지 일원론적 유물론이 나은지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 ― 그런 주제에 맑스주의를 분쇄하였다고 호언장담하면서 우리의 귀청이 터질 듯이 요란을 떨고 있다.

옳소, 옳소, 무정부주의자 여러분이 앞으로도 서로 상대방의 견해를 이렇듯 열성적으로 분쇄한다면 미래는 틀림없이 무정부주의자들의 것일 것이오. …

이보다 못지않게 우스운 것은 몇몇 “저명한” 무정부주의자들이 그들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과학의 여러 가지 유파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드러난 바에 의하면 그들은 과학에 여러 가지 종류의 유물론이 있으며 그것들 간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 예를 들면 관념적 측면의 의의와 물질적 측면에 대한 관념적 측면의 작용을 부인하는 속류 유물론도 있으며 또 관념적 측면과 물질적 측면의 상호관계를 과학적으로 고찰하는 일원론적 유물론―맑스의 유물론적 이론―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무정부주의자들은 이 여러 가지 종류의 유물론을 혼동하며 심지어 그들 간의 확연한 차이도 보지 못하는 주제에 대단한 자신을 가지고 우리는 과학을 갱신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끄로뽀뜨낀은 자기의 “철학적” 저서에서 공산주의적 무정부주의는 “현재 유물론 철학”에 의거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였으나 그는 공산주의적 무정부주의가 어떤 “유물론 철학”에 의거하고 있는가, 속류 유물론인가 일원론적 유물론인가 그렇지 않으면 어떤 다른 “유물론 철학”인가 하는 데 대해서는 한마디도 설명하지 않았다. 명백히 그는 유물론의 여러 가지 경향 사이에 근본적인 모순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으며 또 이 경향들을 서로 혼동하는 것은 “과학을 갱신”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터무니없는 무지를 드러내 놓는 것임을 모르고 있다(끄로뽀뜨낀,≪과학과 무정부주의≫, ≪무정부주의와 그의 철학≫을 보라).

끄로뽀뜨낀의 그루지야 제자들에 대해서도 역시 그렇게 말해야 한다. 들어보라:

“엥겔스의 견해에 의하면, 카우츠키의 견해도 마찬가지이지만, 맑스는” 특히 “유물론적 이론”을 발견“함으로써 인류 사회에 거대한 기여를 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옳은가?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적 기구가 지리적, 기후-지구적, 우주적, 인류학적 및 생물학적 조건에 의하여 운동하게 된다는 견해를 가진 역사가들과 학자들과 철학가들은 모두 다 유물론자임을 우리는 알고 있는 … 까닭이다.” (≪호소≫ 제2호를 보라.)

이들에 의하면 아리스토텔레스와 돌바크의 “유물론” 간에 혹은 맑스와 몰레쇼트의 “유물론” 간에 아무런 차이도 없는 셈이다! 과연 한심한 비판이다! 이런 지식을 가진 자가 과학을 갱신하려고 덤벼든 것이다! 속담에 “구두수선공이 과자를 굽게 되면 엉망이 된다!…”고 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또 우리의 “저명한” 무정부주의자들은 맑스의 유물론이 “창자(belly)의 이론”이라고 한 말을 어디선가 얻어듣고 맑스주의자들을 비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포이에르바흐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이란 곧 먹는 존재이다. 이 공식은 맑스와 엥겔스에게 마술과 같이 작용하였다.” 그리하여 맑스는 “가장 주요하며 가장 일차적인 것은 경제적 처지, 생산관계…”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무정부주의자들은 우리에게 철학적 훈시를 한다.

 

이 목적(사회생활)을 위한 유일한 수단은 먹는 것과 경제적 생산이라고 하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 … 만일 이데올로기가 주로 일원론적으로 먹는 것과 경제적 처지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이라면 대식가들이 천재로 되었을 것이다. (≪호소≫ 제6호,Sh. G.의 논문을 보라.)

 

보다시피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을 논박하기는 이렇듯 쉬운 일이다. 맑스주의의 “비판가”라는 명성을 대번에 얻자면 어떤 여학생에게서 맑스와 엥겔스에 대한 항간의 소문을 얻어듣고 ≪호소≫ 같은 신문에서 철학적 뻔뻔스러움을 가지고 그 소문을 되풀이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신사 여러분, 어디서, 어느 때, 어느 행성에서 어떤 맑스가 “먹는 것이 이데올로기를 규정한다”고 말하였는가? 왜 당신들은 자기들이 말한 바를 확증하기 위하여 맑스의 저서에서 단 한 구절, 단 한 마디라도 인용하지 않았는가? 사실 맑스는 사람들의 경제적 처지가 그들의 의식,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규정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먹는 것과 경제적 처지가 같은 것이라고 누가 당신들에게 말하였는가 그래 당신들은 먹는 것과 같은 그런 생리학적 현상이 사람들의 경제적 처지와 같은 그런 사회학적 현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어떤 여학생이 서로 다른 이 두 가지 현상을 혼동한다면 용서할 수 있겠지만 “사회민주주의의 정복자”이며 “과학의 개혁자”인 당신들이 어찌 그렇듯 경솔하게 여학생의 오류를 반복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또 먹는 것이 어떻게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규정할 수 있단 말인가? 자기가 한 말을 좀 곰곰이 생각해 보라. 먹는 것과 먹는 형식은 변하지 않는다. 옛날에도 사람들은 지금처럼 음식을 씹어 먹고 소화하였지만 부단히 변하고 있다. 겸해서 말한다면 이데올로기 형태에는 고대적, 봉건적, 부르주아적, 프롤레타리아적 형태가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이 부단히 변하는 것을 규정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다음으로 넘어가자. 무정부주의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맑스의 유물론은 “곧 병행설이다…” 혹은 달리 말하면 “일원론적 유물론은 서툴게 숨겨진 이원론이며 형이상학과 과학의 타협물이다…”

 

맑스가 이원론에 빠지게 된 것은 그가 생산관계를 물질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인간의 지향과 의지를, 비록 존재한다 하더라도 아무런 의의가 없는 환상으로, 이상향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호소≫ 제6호, Sh. G.의 논문을 보라.)

 

첫째로, 맑스의 일원론적 유물론은 이치에 맞지 않는 병행설과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맑스 유물론의 관점에 의하면 물질적 측면 즉 내용은 관념적 측면 즉 형식보다 반드시 앞선다. 병행설은 이 관점을 부인하고, 물질적 측면과 관념적 측면이 서로 앞서지 않고 함께 병행적으로 발전한다고 단언한다.

둘째로, 설사 “맑스가 생산관계를 물질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인간의 염원과 의지를, 아무런 의의가 없는 환상으로, 공상으로 묘사한” 것이 사실이라 치더라도 그것이 과연 맑스가 이원론자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알다시피 이원론자는 관념적 측면과 물질적 측면을 두 개의 대립되는 원리로 보면서 양쪽에 동등한 의의를 부여한다. 그런데 당신들이 말한 대로 맑스가 물질적 측면을 더 높이 내세운 반면에 관념적 측면은 “공상”이라 하여 거기에 의의를 부여하지 않았다면 “비판가” 여러분, 당신들은 대체 어디서 맑스의 이원론을 끌어내었는가?

셋째로, 일원론은 물질적 형태와 관념적 형태를 가진 자연 혹은 존재로부터 즉 한 가지 원리로부터 출발하는 반면에 이원론은 그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서로 부정하는 물질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으로부터 즉 두 가지 원리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바인데 유물론적 일원론과 이원론 간에 어떠한 연관이 있을 수 있겠는가?

넷째로, 대체 어느 때에 맑스가 “인간의 염원과 의지를 공상으로, 환상으로 묘사하였는가?” 사실 맑스는 “인간의 염원과 의지”를 경제적 발전으로써 설명하였고 또 어떤 탁상공론적인 철학자들의 염원이 경제적 환상에 부합되지 않을 때에는 그것을 공상적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과연 맑스가 인간의 염원을 모두 다 공상적인 것으로 보았단 말인가? 그래 이 점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야 하겠는가? 그래 당신들은 “인류는 언제나 그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을 자기에게 제기한다”(≪정치 경제학 비판≫ 서문을 보라) 즉 일반적으로 말하면 인류는 공상적인 목적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맑스의 말을 읽어본 적이 없단 말인가? 우리의 “비판가”는 자기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고의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다섯째로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의 염원과 의지는 아무런 의의가 없다”는 말을 누구에게서 들었는가? 왜 당신들은 맑스와 엥겔스가 어디에서 이 말을 하였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는가?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루메르 18일≫, ≪프랑스 계급투쟁≫, ≪프랑스 내전≫ 및 기타 이와 유사한 소책자들에서 과연 맑스는 “염원과 의지”가 가지는 의의를 논하지 않았단 말인가? 만일 맑스가 “염원과 의지”에 의의를 부여하지 않았다면 그는 무엇 때문에 프롤레타리아의 “의지와 염원”을 사회주적 정신으로 발전시키려고 하였으며 무엇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속에서 선전을 하였는가? 또 엥겔스가 1891-94년경에 쓴 유명한 논문들에서 지적한 것이 바로 “의지와 염원의 중요성”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물론 맑스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의 “의지와 염원”은 경제적 처지에서 그 내용을 얻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의지와 염원” 자체가 경제관계의 발전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는가? 그래 이렇듯 단순한 사상이 무정주의자들에게는 그렇게도 이해하기 어렵단 말인가?

무정부주의자 여러분의 또 한 가지 “비난”은 다음과 같다. “내용이 없는 형식이란 생각할 수 없다. …” 그렇기 때문에 “형식이 내용을 뒤따른다(즉 내용보다 뒤떨어진다―K.)고는 말할 수 없다. … 형식과 내용은 ‘공존한다.’ … 그렇지 않다면 일원론은 황당한 것이다.” (≪호소≫ 제1호, Sh. G.의 논문을 보라.)

우리의 “학자”는 또다시 자그마한 혼란에 다졌다. 형식이 없는 내용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은 물론 옳다. 그러나 현존하는 형식이 현존하는 내용에 결코 완전히는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도 역시 옳다. 형식은 내용보다 뒤떨어지며 새로운 내용은 어느 정도까지는 항상 낡은 형식 속에 있게 되며 그 결과 낡은 형식과 새로운 내용 간에는 언제든지 갈등이 있게 된다. 바로 이런 토대 위에서 혁명이 일어나며 바로 이 점에서 맑스의 유물론의 혁명적 정신이 표현된다. “저명한” 무정부주의자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 하였는데 이것은 물론 그들 자신의 탓이고 유물론적 이론의 탓은 아니다.

이상이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적 이론에 대한 무정부주의자들의 견해(이런 것도 견해라고 할 수 있다면)이다. (다음 호에 계속)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Dec 15th, 2016 | By | Category: 번역, 정세와노동 | 조회수: 5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