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알바충(蟲)”, “알바천국(賤國)”

 

배은주 | 편집위원

 

 

 

인공지능 ‘알파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인공지능 알파고와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이 세간의 초미의 관심을 끌며 네 차례 대국을 마쳤다. 알파고가 세 판을 연이어 이기고 네 판째엔 이세돌이 이겼다. 바둑에 문외한인 나는 바둑세계를 알 수 없고, 첨단과학에도 문외한이라 일부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인공지능의 발달이 종래에 인공지능의 인간지배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할 수 없다. 나는 단지 인간의 인공지능 개발과 발전, 그리고 그 쓰임에 더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인공지능의 종착점은, 알파고를 프로그래밍한 구글이 말한 것처럼, 알파고를 계속 발전시켜 의료와 교육 같은 실생활에 적용시키는 데 있어(물론 이것이 진의인지 알 수는 없지만…)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없던 것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엄밀한 의미에서 무에서 유가 생겨난다고 생각하지 않고 단지 상투적 표현을 빌린 것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들을 새롭게 불러오기도 한다. 지난 1월, MIT 연구진은 백열전구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LED 등장으로 점차 퇴출되고 있던 백열전구를 실험을 통해 LED보다 더 높은 에너지효율을 보이는 백열전구로 부활시킨 것이다.

 

알파고와 같은 고도의 인공지능의 등장, 그리고 퇴출위기의 백열전구의 재탄생 등은 인류 과학기술의 발달 정도를 말해준다. 놀라운 기술력에 저절로 감탄하게 된다. 앞으로 그 발전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인데, 문제는, 그것이 어떻게 쓰여지느냐, 우리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이냐에 있을 것이다

 

 

‘알바충’, ‘알바몬’

 

고도의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감탄도 잠시, 한국사회의 노동현장을 돌아보면, 우리가 과연 문명시대에 살고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문명과 야만의 그 어디쯤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문명시대에 야만성을 발휘하며 살고 있다고 해야 할까. 고용주들의 노동력착취는 더욱더 노골적이고 더욱더 야만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아래는, 아주 평범한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처음으로 알바노동을 하며 겪은 상황들 일부를 옮긴 것이다. 처음이라 부당한 경우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겠지만 그러나 경험이 많다 해도 형편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일자리, 특히 서비스분야에서 알바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주마간산으로 읽어 본다.

 

# 20A. 올해 초 처음으로 알바 자리를 알아봤다. 대입 수능시험 후엔 읽고 싶은 책들을 마음껏 보겠다던 욕망은 아쉽게도 시험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사라졌다. 친구들 대부분이 알바를 하거나 구하고 있었고, A씨 역시 용돈도 벌고 사회경험도 쌓을 겸 알바를 하고 싶었다. 고등학교에서 조리를 전공한 A씨는 파스타 음식점의 주방보조 일자리를 구했다. 면접도 쉽게 통과해서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조리를 해 본 경험이 있어 A씨에게 주방보조 일은 그렇게 생경하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사장은 대체로 좋은 식재료를 사용했고, 음식도 맛있게 했으며, 사람들에게도 친절했다. 그 때문인지 가게는 늘 북적였고 단골손님도 많았다. 바쁜 시간대인 주말(토·일)에 알바로 고용된 A씨는 거의 열 두 시간씩 서서 정신없이 일해야 했다. 하지만 사람 좋고 실력 좋은 사장을 만난 것도 행운이라 생각했다. 주중에도 일을 해 주면 좋겠다는 말에 알바시간을 조금 더 늘였다.

한 달 후, 알바비가 통장에 입금되었다. 연말 연시로 최저시급조정이 있었는데도 알바비는 10원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입금되었다. 면접 때 최저시급에 합의하긴 했지만 막상 통장을 확인하고 나니 뭔가 아쉽고 허탈했다. A씨는 꾀도 부리지 않고 오히려 알아서 성심성의껏 일한 것에 대해 사장이 나름 더 생각해 줄 것이라 기대했었던 것이다. A씨는 사람 좋은 것과 돈 계산은 다르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 22B. 고등학생 과외알바와 학원 ‘새끼선생’ 알바를 하고 있다. ‘새끼선생’이란, 학원 강사들이 고용한 대학생 알바를 말한다. 학원강사들이 한정된 시간에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 고안한 방식이다. 강사 자신은 강의만 하고 학생관리는 대학생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B씨는 학생들의 숙제를 검토하고, 학생들의 질문에 이해를 돕는 일을 한다. 학생들 질문이 많을 때면 B씨 역시 학원 강사만큼이나 연신 떠들어야 한다. B씨는 과외나 학원 알바 때문에 정작 자신을 위한 공부시간은 부족하다. B씨는 가르치는 일에 흥미가 있기도 하고, 주변에 알바조차 구하지 못한 친구들도 많고, 비교적 다른 알바에 비해 보수가 나은 편이라 할 수 있는 한 계속할 생각이다.

 

# 24C. 졸업을 앞둔 지난 겨울, 체험공방에서 석 달 정도 일했다. 소규모로 운영되는 공방이었는데 C씨는 일일체험강사로 일했다. 공방 대표는 C씨를 알바로 채용하자마자 적극적으로 호의를 표시해 왔다. 공방을 자기 작업장처럼 생각하고 작품활동공간으로 활용하라, 자체적으로 체험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해도 좋다 등등… 물론, 도중에 수익금이 발생하면 서로 합의해 나누기로 하자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국 자기 잇속을 위한 수사에 불과했다. 그는 습관적으로 알바와 상근자를 이간질했고, 매번 알바비 지급을 미뤘다. 그에게 알바노동자란 자신의 이윤만을 위해 ‘아무 때나 필요할 때 막 쓰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존재’(대표는 상근자에게 알바를 이렇게 대하라고 말했다)였다. 졸업 후 그 공방에서 일을 배워볼까 했던 잠깐의 희망을, C씨는 미련 없이 버렸다.

 

# 21D. 카페에서 주말알바를 했다. 가장 바쁜 시간대인 2시에서 6시 사이였다. 커피를 뽑고 생과일쥬스를 만드는 것부터 서빙과 설거지까지, 정해진 일 없이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다. 1년 가까이 일했으나 D씨는 최저시급 이상을 받지 못했다. 대개 6개월이 지나면 고용주들이 시급을 올려주는데 그러기는커녕 손님이 너무 없다며, 그만 나가라고 해서 쫓겨난 적도 있었다(메르스 사태가 한창이었던 때였다. 물론, 알바비는 일한 시간만큼만 지불받았다). 그리고 알바시간이 조정되어 알바시간보다 일찍 갔을 때는, 알바시간이 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라는 수모를 받기도 했다.

 

# 20E. 백화점에서 저가 여성복을 판매하는 알바를 했다. 옷을 사러 오는 사람들은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어떤 날은 두 장, 어떤 날은 다섯 장을 팔았다. 손님이 너무 없어서 옷 가격을 물어보거나 옷을 입어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반가울 정도였다. 대부분의 다른 매장들도 대체로 한가했다. 차이점은 매장 점주들이 직접 판매하느냐 알바를 쓰느냐에 있었다. 그곳에서 E씨는 타매장 점주들에게 ‘돌려쓰기’를 당했다. 고객이 많지 않고 매장도 붙어있어 인사하고 지낸 어설픈 친분을 점주들은 편리하게 이용했다. 그들 점주들 몇몇은 별도로 알바를 구하는 대신, E씨에게 1시간 정도 일해 달라고 요청하곤 했는데, 그들은 그것을 ‘인간적인’ 것으로 여겼고, E씨는 냉정하게 거절하지 못했다. 물론 계약 같은 건 없었다. 그들은 E씨에게 최저시급을 지급하고 자기 볼 일을 보러 다녔다. 1시간 알바비로 받은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이 E씨를 오히려 우울하게 했다.

 

 

‘알바천국’

 

위 사례에 언급된 고용주들은 대개 소규모 자영업자들이다. 이러한 자영업자들 중에는 임금노동자로 일하다가 어쩔 수 없이 자영업을 선택한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불안정노동에서 밀려나 무한경쟁시스템으로 들어온 피해자라고 할 것이다. 그런 이들이 여기에서 살아남으려고, 새벽부터 새벽까지 자신을 산화하거나, 아니면 결국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해도 살아남는 확률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매우 낮다. 이 자영업자 가운데 많은 수를 잠재적 알바노동자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20대 초반의 알바노동자를 예로 들었지만, ‘알바몬’과 ‘알바충’은 연령과 성별을 초월해 있다. 일부 고용주들이, 불법 행위에도 불구하고, 비용절감을 위해 최저시급보다 알바비를 적게 주는가 하면, 최저시급이나 주휴수당 등을 따지는 젊은이 대신 군소리 않는 60세 이상의 시니어 알바를 써서 정부보조도 챙기려 한다. 일자리에 대한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보니 열악한 조건에도 빈 자리는 지체없이 빠르게 채워지고, 법정최저시급은 불만의 대상이 아닌 최적의 조건이 되어버렸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삶의 고단함을 안고 근근이 살고 있는 것이다. 어찌 알바천국(賤國)이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간해방을 앞당기는 ‘신의 수’

알파고의 등장과 더불어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고 염려한다. 새삼스럽게 일자리 위협이라니?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지? 물론, 그 말은, 과학기술은 발달하는데도 그 문명의 혜택은 있는 자들이나 자본에게만 돌아가고, 한편에선 일자리가 없어 최악의 경우 삶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기에, 나오는 것이리라. 그러니, 이런 이유 때문이더라도 인공지능의 개발이 인간지배로 끝나는 것을 걱정하기 전에, 인공지능을 개발한 IT기업들이나 대자본들이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주목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알파고로 대표되는 고도의 과학기술 문명시대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제각각 장시간 노동, 고강도 노동, 불안정 노동 등에 강제되고 있는 이 모순! 탐욕 그 자체인 자본을 끌어내리지 않는다면 문명의 과실을 맛보기는커녕 자본의 노예, 인간노동의 결과물의 노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보며, 인간해방을 앞당길 수 있는 ‘신의 수’, ‘그것’을 생각한다. <노사과연>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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