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반갑다 로봇친구야!

박현욱 | 노동예술단 선언 “몸짓선언”, 자료회원

 

 

 

‘두 팔을 곧게 앞으로 뻗어 적진을 향해 하늘 날으면~~~~.’ 말 그대로 그보다 멋지고 신날 수는 없었다.

무쇠팔 무쇠다리 로케트 주먹으로 악당들을 무찌르던 로봇들은 꼬맹이 시절 내겐 동경의 대상이자 최고의 친구들이었고 영웅이었다.

흠… 고백하자면… 사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요즘 말로 ‘키덜트’라고들 하던데… 얼추 나도 그 부류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내 방엔 여전히 그 시절 친구들이 제법 서있다.

 

뭐… 그 당시 만화영화들이 담고 있던 내용이나 이데올로기적 배경은 차치하고 로봇들과 함께 하늘을 날아다니며 악당들을 물리치던 상상으로 잠드는 일이 다반사였을 만큼 내겐, 아니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에게 로봇의 세계는 아마도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테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 덕(?)에 진짜로 내가 태어난 이유가 그 거라 생각하던 그 시절,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었던 로봇태권브이가 사실은 일본 로봇 ‘마징가 제트’를 베껴서 만들어진 거라는 사실을 알고선 배신감에 밤새 울기도 했었고,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었던 로봇 ‘아톰’이 자신보다 훨씬 덩치 큰 상대를 때려눕힐 땐 같이 두 주먹 쥐고 함께 싸우고 있었으며, 한편의 대서사시와 같았던 ‘건담’의 세계를 만났을 땐 그 엄청난 스케일에다가 전쟁에 내몰린 인간과 로봇의 비극을 목도한 충격에 밤잠을 설칠 정도였으니까…

 

물론 철이 조금 들면서 로봇은 마냥 친구만은 아니기도 했다. 많은 애니매이션이나 영화 속에서 로봇들은 때론 ‘로봇군단’으로, 인간을 살육하는 무서운 존재로 그려지기도 했는데, 심지어 ‘터미네이터’라는 헐리웃 영화에서는 위협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인간을 지배하는 존재까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암튼 그레이트마징가 손바닥 위에 앉아 전 세계를 날아다니던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 좀 지나면서는 사실 이 로봇이란 게 정말 인간의 친구인지 아니면 인간을 위협하는 적대적인 존재인 건지 살짝 고민이 되긴 했는데, 알고 보니 그런 고민을 나만 한 게 아니더군.

1942년경 미국의 ‘아이작 아시모프라’라는 작가가 ‘로봇공학의 3원칙’이라는 것을 언급했었는데 그 내용이 이렇다.

 

  1. 로봇은 인간에 해를 가하거나, 혹은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2. 로봇은 인간이 내리는 명령들에 복종해야만 하며, 단 이러한 명령들이 첫 번째 법칙에 위배될 때에는 예외로 한다.
  3. 로봇은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만 하며, 단 그러한 보호가 첫 번째와 두 번째 법칙에 위배될 때에는 예외로 한다.

 

이미 일찌감치부터 무쇠팔 무쇠다리 로켓트 주먹이 악당들이나 외계 침략자들이 아닌 바로 우리 인간을 향할까 봐 적잖이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게로군. 허긴 소위 ‘인공지능’이라 불리는 컴퓨터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으니 몸에 조그만 쇳조각 하나만 박혀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인간으로선 온 몸이 쇳덩이인데다가 스스로 생각까지 할 수 있는 존재가 생긴다는 건 실로 무시무시한 일이 아닐 수 없을 터다. 해서 로봇이 인류의 친구이냐 아니면 가장 위협적인 적이냐 하는 문제가 그저 한가로운 상상의 유희 따위로 치부될 일은 아닐진데…

뭐 그렇다 해도 그야 꿈과 미래세계의 얘기이니 나로선 그저 새로 나오는 로봇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등을 보며 메카닉 디자인이 얼마나 매력 있게 잘 빠졌는지나 감상하면 될 일이었다.

헌데… 요즘 들어 그리 한가하게 먼 미래의 얘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 많이 벌어진단 말이지. 어느새 이 로봇들이 꿈과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실제 세계 속에 퍽이나 깊이 현실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들을 곳곳에서 확인하게 된다는 거다.

 

엇! 아직 로봇이 친구인지 적인지에 대한 고민도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뭐 그렇다 한들 이미 반세기도 한참 전에 누군가가 말해 놓은 로봇 3원칙이라는 것이 있으니 별 일이야 있겠냐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째 현실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얼마 전에도 미디어를 통해 로봇에 대한 얘기가 보도된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 내용을 토대로 보자면 로봇 3원칙은 개뿔… 그 첫 번째 원칙부터 어긋나 있었다. 바로 인간에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그 원칙.

당연히 이렇게 얘기 하면 ‘아니 로봇이 로켓트 펀치로 무고한 사람을 공격하고 살인이라도 저질렀나?’하는 생각을 먼저 떠올리시게 될 터인데… 그토록 오랫동안 고민하고 걱정했던 게 허망하게도 로봇의 위협은 전혀 다른 형태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는 말이지. 것도 어찌보면 로켓펀치나 레이저 빔보다 훨씬 더 공포스런 형태로…

 

그 미디어에 나왔던 보도의 내용은 다름 아니라 ‘로봇이 이제는 생산영역뿐만 아니라 서비스영역에까지 진출하게 되면서 수많은 서비스직 노동자들이 대량해고 당하고 일자리를 잃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실업… 해고… 에휴…. 확실히 요즘 세상의 우리에겐 로켓펀치보다 더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을 텐데… 이런 보도에 보태서 데이비드 오터라는 MIT대 경제학 교수께서 이런 말씀도 하셨단다.

“경제학자들이 걱정하는 것은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한다는 게 아니라 로봇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지난 15년간 임금상승이 억제되고 빈부격차가 심화된 이유 중 하나가 자동화와 로봇 때문이다.”

 

자 이쯤 되면 만국의 노동자여 우리의 갈 길은 정해졌다!!! 모든 로봇들을 때려 부수고 더 나아가 로봇을 만들어재끼는 반동적인 공학도들을 처단하여 우리의 안정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떨쳐 일어서자~~~~!!!!…라고 말하자니…

내 방에 여전히 사랑스럽게 서 있는 로봇 친구들을 어찌 쳐다본단 말인가. 상상 속에서나마 둘도 없는 벗으로 지낸 수십 년의 세월을 이렇게 간단히 끝내야 한단 말인가…

음… 그래서 진지하게 그 벗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 녀석들 표정이 참으로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사실 억울한 정도가 아니라 로봇 입장에선 그 데이비드라는 교수를 무고죄 및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할 일이다.

‘로봇들이 일자리를 빼앗아서 노동자 민중이 가난해지고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그러니 로봇들을 몰아내자’ 이렇게 흘러가는 스토리, 뭔가 낯익은 풍경 아닌가 말이지.

19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났던 그 유명한 ‘러다이트 운동.’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사회적 지위가 형편없어진 게 바로 기계 때문이라 생각하고 기계를 때려 부수고 다녔던 운동이다. 뭐 그 당시 노동자들의 현실과 절박함이야 말해 무엇 하겠냐 만은 그와 무관하게 역사적인 관점에선 잘못된 판단으로 벌어진 해프닝 같은 사건이 되어버렸는데. 물론 그 역시 인류의 발전 과정에서 겪어야 할 소중한 시행착오로서의 의미가 있는 거지만.

 

아무튼 무려 두 세기가 지난 지금에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공부 많이 했다면 손꼽힐 만한 위치에 있는 분께서 설마 러다이트 운동을 모르지도 않으실 텐데 저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은 앞뒤 맥락을 차치하고서라도 요즘 말로 웃픈(웃기지만 슬픈)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경제학 교수님께서 경제적 문제를 오롯이 공학도들에게 돌리는 태도도 심히 언짢은 일이고… 실은 이 정도면 만국의 공학도들을 거의 잠정적인 반인륜적 집단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 아닌가 말이지…

 

물론 표면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에 관한한 데이비드 교수께서 하신 말씀은 틀린 게 아닐 게다. 하루 12시간의 장시간 강제노동, 그것도 심야노동에 내몰려 끝내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노동자에게 “당신이 아픈 건 과로 때문이니 충분한 휴식을 취하세요”라고 말하는 의사가 틀린 건 아닐 테니…. 그 말을 듣는 노동자는 당연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간 회사에서 짤릴 거고 짤리면 과로가 아니라 굶어서 죽을 테고 말이다.

그럼에도 그런 의사보다 그 데이빗 교수라는 분이 하는 말이 더 고약한 건 그가 다름 아니라 경제학 교수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이 걱정하는 건…. 로봇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라….

뭐 둘 중의 하나일 거다. 얼치기 경제학자이거나 아니면 진짜 걱정하는 것을 숨기고 거짓을 말하고 있거나.

먼저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그는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진짜 이유를 전혀 모른다. 따라서 경제학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진짜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건 바로 그가 전공하고 있는 경제체제 그 자체이다. 임노동관계로 이루어진 현재의 경제시스템.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작동되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 그 자체는 태생적으로 ‘불평등 심화’라는 원리로 탄생하고 굴러가고 있는 거다. 이는 마치 살인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그 전문가가 ‘칼’의 성능이 좋아져서라고 진단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일이니… 얼치기라 말할 수밖에…

 

두 번째로,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거다. 경제학자들이 걱정하는 것. 그것은 아마도 첫 번째는 생산력 발전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인류발전 법칙 앞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대량의 실업과 그로 인해 생존권 파탄으로 내몰린 노동자 민중의 분노가 자본주의 체제를 향하게 될 것에 대한 걱정일 테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사실 나는 이게 가장 중요한 걸 거라 생각하는데… 바로 로봇의 발전, 즉 자동화라는 가공할 생산력의 발전이 결국 자본주의라는 낡은 체제와 양립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에 대한 걱정일 테다. 일찍이 칼 맑스라는 사람이 일정 정도의 생산력이 발전하면 기존 생산력의 크기 아래서 이루어지던 생산관계(경제체제)가 무너지고 그 생산력 발전에 조응하는 새로운 생산관계가 탄생할 수밖에 없다고 밝혀 놓은 바대로 로봇의 전면화는 곧 임노동관계라는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이제 그 수명을 다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흠… 이 문제는 사실 너무 긴 설명을 필요로 하는 거라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고…

간단하게만 생각해 봐도 이렇다.

임노동관계라는 게 결국 노동자가 취직해서(노동력을 팔아서) 일하고 임금 받아 그 받은 임금으로 다시 자본가들이 생산해 놓은 것들을 구매하고 뭐 이렇게 굴러가는 것인데, 앞서 말했듯 이제 노동자가 일할 대부분의 영역에서 로봇이 일을 한다면 수많은 노동자들은 임금을 받을 수 없고 따라서 아무리 로봇이 무언가를 생산한들 그 생산한 걸 구매하고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물건이 팔리지 않으니 회사는 망하겠지…

 

좀… 너무 머리 써야 할 말을 많이 한 거 같아 식히는 차원에서 옛날 얘기 하나 할게.

내 아버지는 평생 자동차를 운전하는 노동을 하셨는데, 밤마다 난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에 속울음을 삼키며 잠들어야 했었거든. 너무 운전을 많이 하셔서 다리와 허리 쪽에 심한 통증을 일으키는 질병이 생기신 거야.

어렸을 땐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파서 언젠가 아버지를 대신해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로봇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 아버지가 그 고통스런 장시간 노동과 그로 인한 통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지.

물론 아버지는 결국 아버지를 대신해 자동차를 운전할 로봇 친구를 만나지 못한 채 은퇴하셨지만 이제라도 그렇게 우리 아버지와 같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고통스러운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친구로봇들이 현실화 되고 있다는 거야.

이만큼 반가운 일이 어딨겠니?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 로봇이 자신의 고통스러운 노동을 빼앗아 간다고 증오하고 있다는 거야.

 

그래, 아직은 임노동관계라는 시스템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본주의 체제이니 그건 참으로 증오스러울 만한 일이고 고통스러울 만한 일이다. 허나 그렇다고 무려 2세기 전에 노동자들이 했던 실수를 반복한다면 200여 년이라는 시간을 허송세월 한 거잖아.

문제는 로봇이 아니잖아. 노동력을 팔아서 임금을 받아야지만 살아갈 수 있는 이 지긋지긋한 착취의 시스템이지. 그러니 우리의 증오는 우리 인류를 과도하고 고통스런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고 함께 노동하며 세상을 더 풍요롭게 할 로봇이 아니라 그런 세상을 가로 막고 이 착취의 질서를 어떻게든 더 길게 끌어보려고 하는 저 착취자들을 향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난 오늘도 내 방에 있는 로봇 친구들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반갑다 친구야! <노사과연>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0개의 댓글

연구소 일정

3월

4월 2024

5월
31
1
2
3
4
5
6
4월 일정

1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3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4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5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6

일정이 없습니다
7
8
9
10
11
12
13
4월 일정

7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8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9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0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1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2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3

일정이 없습니다
14
15
16
17
18
19
20
4월 일정

14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5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6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7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8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9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0

일정이 없습니다
21
22
23
24
25
26
27
4월 일정

21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2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3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4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5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6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7

일정이 없습니다
28
29
30
1
2
3
4
4월 일정

28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9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30

일정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