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레닌주의의 기초에 대하여(2)

 

이오씨프 쓰딸린(Иосиф Сталин)

번역: 신재길(교육위원장)

 

 

 

2. 방법

 

위에서 맑스 엥겔스로부터 레닌에 이르는 사이에 제2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가 온전히 지배한 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기회주의가 형식적으로 지배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지배한 시기이다. 형식적으로는 충실한 맑스주의자이며 정통파인 카우츠키 등이 제2 인터내셔널을 지도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기회주의적 노선이 제2 인터내셔널의 주요 활동을 지배하였다. 기회주의자들은 타협하려는 소부르주아적 본성으로 말미암아 부르주아지에게 순응하였다. 정통파통일 유지요, 당내 평화요 하면서 기회주의자들과 타협하였다. 그래서 부르주아지의 정책과 정통파의 정책이 서로 연결되었다. 그 결과 기회주의가 궁극적으로 지배하게 되었다.

이 시기는 자본주의가 비교적 평화롭게 발전하던 시기였다. 말하자면 전쟁 이전(以前) 시기로 제국주의의 파국적 제 모순이 아직 낱낱이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경제적 파업과 노동조합은 다소간 정상적으로 발전하였다. 선거투쟁과 국회의원단은 현기증 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투쟁의 합법적 형태가 찬미되었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합법적인 수단으로 죽이려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한마디로 말해 제2 인터내셔널은 편하게 살고 있었다. 혁명에 대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 혁명적 대중교육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이들은 정연한 혁명적 이론 대신에 모순투성이의 가정과 단편적 이론을 내세웠다. 이것은 대중의 살아 움직이는 혁명적 투쟁과 유리되었고 낡아 빠진 도그마로 변하였다. 물론 겉으로는 맑스의 이론을 말하였지만 그 목적은 맑스의 이론에서 혁명적 정수를 거세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은 혁명적 정책을 실시하는 대신에 속물근성으로 맥 빠진 채 우유부단하였고, 야비한 정치적 타협, 의회주의적 흥정과 권모술수를 획책하였다. 물론 겉으로는 혁명적 결의안와 슬로건을 채택하였다. 하지만 그 목적은 그 결의안과 슬로건을 서류함 속에 파묻어 묵살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과오를 교훈으로 삼아 옳은 혁명적 전술로 당을 교육하고 훈련할 대신에 절실한 문제를 그럴듯한 말로 얼버무리거나 감추어 일부러 회피하였다. 물론 겉으로는 절실한 문제를 토론하는 데 반대하지 않았지만 그 목적은 소위 탄력적인 결의안으로 적당히 해치우려는 데 있었다.

이러한 것이 바로 제2 인터내셔널의 진면목이고 활동 방식이며 무기들이었다.

이런 가운데 제국주의 전쟁과 노동계급이 혁명적으로 전투해야 할 새로운 시기가 다가왔다. 낡은 투쟁 방법은 금융자본의 무한권력과 투쟁하기에는 적당하지 않고 무기력하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제2 인터내셔널의 활동 전체와 사업 방식 전반을 재검토하고 속물적 우유부단, 편협성, 권모술수, 변절, 사회쇼비니즘과 사회평화주의를 몰아내는 것이 필요하였다. 제2 인터내셔널의 무기들을 모두 점검하여 녹쓸고 낡은 것은 모조리 버리고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내야 했다. 사전준비 없이 자본주의와의 전쟁에 나선다는 것은 그야말로 무모한 짓이다. 사전준비 없이는 새로운 혁명전투에 직면해서 노동계급이 무장력의 부족을 느끼거나 심지어 완전히 무장해제된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제2 인터내셔널의 아우게이아스 마구간1)을 전반적으로 혁신하고 대청소하는 영광은 레닌주의의 어깨 위에 떨어졌다.

이러한 환경에서 레닌주의의 방법이 생겨나고 단련되었다.

레닌주의 방법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제2 인터내셔널의 교조적인 이론을 대중의 혁명투쟁과 살아있는 실천이라는 혹독한 시련 속에서 검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파괴된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회복하고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혁명 이론으로 무장한 진정으로 프롤레타리아적 당을 창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제2 인터내셔널 정당의 정책을 믿을 수 없는 슬로건이나 결의안이 아니라 활동과 활동의 결과에 근거해서 검증하는 것이다. 정책은 활동과 그 결과에 근거해야만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신뢰를 얻을 수 있으며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모든 당 사업을 대중이 혁명을 준비하고 훈련하도록 하는 새로운 혁명적인 방침으로 재조직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대중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프롤레타리아 당들이 내부로부터 자기비판을 하는 것이다. 즉 자체의 과오를 교훈으로 삼아 훈련 교육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당의 참된 간부와 참된 지도자를 육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레닌주의 방법의 기본이며 본질이다.

이 방법이 실제 문제에 어떻게 적용되었을까?

제2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이 항상 이론적 출발점으로 삼는 많은 이론적 도그마가 있다. 그중 몇 개를 살펴보자.

첫 번째 도그마: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장악할 조건에 관한 것이다. 기회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가 자기 나라에서 다수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에는 권력을 잡을 수 없고 잡아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을 논증할 어떠한 증거도 제출된 바 없다.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이 황당한 명제를 입증할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레닌은 제2 인터내셔널 신사 양반들에게 이렇게 대응한다. 가령 그렇다고 하자. 그런데 만일 주민의 소수를 이루는 프롤레타리아가 대다수의 근로대중을 자기 주위에 결집시키는 역사적 정세(전쟁, 농업공황 등등)가 조성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에 왜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잡아서는 안 되는가? 왜 프롤레타리아가 자본 전선을 돌파하여 전반적으로 종말을 가속하는 유리한 국내외 정세를 이용해서는 안 되는가? 일찍이 맑스는 1850년대에 이른바 농민전쟁의 재판(再版)에 의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뒷받침될 수 있었더라면 독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훌륭하게 되었을 것2)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당시 독일의 프롤레타리아 수가 예컨대 1917년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 수보다 비교적 적었던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바가 아닌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실천적 경험이 제2 인터내셔널의 영웅들이 즐기는 이런 도그마가 프롤레타리아에게는 하등의 실제적 의의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대중은 혁명투쟁의 실천을 통해 이 낡아 빠진 도그마의 잘못을 증명하고 쳐부셔 버린 것이 분명하지 않는가?

두 번째 도그마: 프롤레타리아트가 나라를 관리할 준비된 문화 간부와 행정 간부를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다면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선 자본주의의 조건하에서 간부를 육성한 다음에야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레닌의 대응은 이렇다. 가령 그렇다고 하자. 그러나 반대로 우선 권력을 장악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발전에 유리한 조건을 먼저 조성하면 왜 안 되는가? 유리한 조건에서 근로 대중의 문화 수준을 높이고 노동자 출신의 수많은 지도 간부와 행정 간부를 육성하는 일을 급속히 추진하면 왜 안 되는가? 러시아에서의 경험은 노동자 출신의 지도 간부들이 자본의 지배하에서보다 프롤레타리아 권력하에서 백배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자라난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대중은 혁명투쟁의 실천을 통해 이러한 교조적 이론 역시 사정없이 쳐부셔 버린 것이 분명하지 않는가?

세 번째 도그마: 프롤레타리아트는 정치적 총파업이라는 방법을 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적 총파업은 이론적으로 근거가 희박하고(엥겔스의 비판) 실천적으로 위험하며(그것은 국가의 경제생활의 정상적인 진행을 교란시킬 수 있으며 노동조합의 기금을 고갈시킬 수 있다) 또 프롤레타리아트의 주요한 계급투쟁 형태인 의회투쟁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레닌주의자들은 이렇게 대응한다. 좋다. 그런데 먼저 엥겔스는 총파업의 모든 종류를 비판한 것이 아니다. 일정한 종류의 총파업만을 비판했다. 무정부주의자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투쟁 대신에 내세운 경제적 총파업만을 비판했다. 이것과 정치적 총파업을 택할 수 없다는 것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가? 둘째로, 의회투쟁 형태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주된 투쟁 형태라는 것을 누가 어디서 증명했단 말인가? 혁명운동의 역사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의회투쟁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의회 밖에서의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학교이거나 보조수단에 불과하지 않는가? 또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운동의 기본 문제는 힘으로,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직접적인 투쟁으로, 총파업으로, 봉기로 해결해 오지 않았는가? 셋째로, 어느 누가 정치적 총파업이 의회투쟁을 대체한다고 하였단 말인가? 어느 곳에서 그리고 언제 정치적 총파업 지지자들이 의회 밖에서의 투쟁으로 의회투쟁을 대체하려고 시도했단 말인가? 넷째로, 러시아 혁명은 정치적 총파업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가장 위대한 학교임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자본주의 아성을 공격하는 전야에 프롤레타리아트를 광범위하게 동원하고 조직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수단이라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정치적 총파업이 경제생활의 정상적인 진행을 교란한다느니 노동조합의 기금을 탕진한다느니 하는 속물적 한탄을 하는 것인가? 혁명투쟁의 실천적 경험은 역시 기회주의자들의 이러한 도그마도 분명히 박살내 버리지 않는가?

다른 것들도 역시 이와 같다.

바로 이 때문에 레닌은 혁명적 이론은 … 도그마가 아니다. 그것은 참으로 대중적이고 참으로 혁명적인 운동의 실천 활동과 긴밀한 연결 속에서만 최종적으로 형성된다(≪좌익 소아병≫)라고 하였다.3) 이론은 실천에 이바지해야 하며 이론은 실천이 제기하는 문제에 답해야 하기 때문이며(≪인민의 벗이란 무엇인가?≫)4) 이론은 반드시 실천의 결과에 의해 검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2 인터내셔널 정당들의 정치적 슬로건과 정치적 결의에 관해서는 전쟁에는 전쟁으로라는 슬로건의 이력을 돌이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슬로건은 제2 인터내셔널 정당들의 실천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들은 화려한 슬로건이나 결의로 자신의 반혁명적 행동을 위장한다. 제2 인터내셔널은 바젤 대회5)에서 보란 듯이 시위를 벌였다. 제국주의자들이 감히 전쟁을 시작한다면 끔찍한 봉기가 일어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들이 제출한 슬로건은 무시무시한 전쟁에는 전쟁으로였다. 그러나 얼마 후 전쟁이 임박하자 바젤 결의를 묵살하고 새로운 슬로건을 제시했다.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조국의 영광을 위해 서로 죽이라는 슬로건이다. 이것을 누가 잊어버리겠는가? 혁명적 슬로건이나 결의가 행동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한 푼의 가치도 없다는 것은 명백하지 않는가? 전쟁 당시 제2 인터내셔널의 배신적 정책과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화시키라는 레닌의 정책을 비교해 보라. 기회주의 정상배들이 얼마나 너절한지, 레닌주의 방법이 얼마나 위대한지 능히 알 수 있다.

여기서 레닌의 저서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의 한 구절을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레닌은 제2 인터내셔널의 지도자 카우츠키가 당을 실제 행동이 아니라 종이 위에 쓰인 구호나 문서로 판단하려는 기회주의적 시도를 하는 것을 호되게 질책했다.

 

카우츠키는 마치 슬로건만 제출하면 사태가 변하는 듯이 생각하면서 … 전형적인 소부르주아적이고 속물적인 정책을 추구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전체 역사는 이런 환상의 잘못을 드러낸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은 인민을 속이기 위해 온갖 구호를 제출하여 왔다. 저들의 속셈을 검토하고, 말과 행동을 비교해 봐야 한다. 문제는 관념적이며 기만적인 빈말에 만족하지 말고 계급적 실체까지 파고들어 가야 한다. (≪레닌 저작집≫ 제23권, p. 377을 보라.)6)

제2 인터내셔널의 당은 자기비판을 두려워하며 잘못을 숨긴다. 곤란한 문제는 얼버무리고 만사가 잘되고 있다고 속이면서 결점은 숨긴다. 이것은 생기 있는 사상을 무디게 하며 당이 잘못을 통해 훈련되는 것을 방해한다. 레닌이 조롱하고 호되게 질책한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레닌은 소책자 ≪좌익 소아병≫에서 프롤레타리아 당의 자기비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당 자신의 오류에 대한 당의 태도는 당이 참으로 진실한가와 자기 계급근로대중에 대한 의무를 실제 문제로 수행하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규준(規準)의 하나이다. 오류를 솔직히 시인하는 것, 오류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 오류를 낳게 한 환경을 철저히 분석하는 것, 오류를 시정할 수단을 주의 깊게 연구 토의하는 것 ― 이것이야말로 진실한 당의 징표이다. 이것이야말로 당이 자기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이것이야말로 계급대중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방식이다. (≪레닌 저작집≫ 제25권, p. 200을 보라.)7)

 

어떤 사람들은 당이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고 자기비판하면 당에 위험하다고 한다. 당의 적들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닌은 이런 반대 의견은 어리석고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간주했다. 레닌은 우리 당이 아직 약소했을 때인 1904년에 소책자 ≪일보전진 이보후퇴≫에서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그들(즉 맑스주의자의 적들: 쓰딸린)은 우리의 논쟁을 보고 고소해 하며 기뻐 날뛴다. 그들은 우리 당의 결함과 단점을 다룬 나의 소책자에서 앞뒤 문맥과 상관없이 개별적 구절을 뽑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이용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사회민주당원은 이미 투쟁 속에서 강철같이 단련되었다. 이런 사소한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비판을 수행하며 자신의 결함을 냉철하게 폭로해 갈 것이다. 이 결함들은 노동운동이 성장함에 따라 확실하게 그리고 반드시 극복될 것이다. (≪레닌 저작집≫ 제6권, p. 161을 보라.)8)

 

대체로 이상과 같은 것이 레닌주의 방법의 특징들이다.

레닌의 방법적 원리는 기본적으로 맑스의 가르침에 이미 있다. 그 가르침은 맑스의 말대로 본질적으로 비판적이며 혁명적인9) 것이다. 레닌의 방법은 바로 이 비판적이며 혁명적인 정신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다. 그러나 레닌의 방법이 맑스의 방법을 단순히 복원한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사실 레닌의 방법은 맑스의 비판적이고 혁명적인 방법, 즉 유물 변증법을 복원한 것일 뿐 아니라 구체화하고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3. 이론

 

이 주제에서 세 가지 문제를 다루겠다.

ㄱ) 프롤레타리아 운동에서의 이론의 중요성

ㄴ) 자연생장성(自然生長成) 이론에 대한 비판

ㄷ) 프롤레타리아 혁명론

 

1) 이론의 중요성

어떤 사람은 레닌주의는 이론보다 실천을 우위에 둔다고 생각한다. 즉 레닌주의의 중요한 의미는 맑스주의 명제를 행동으로 옮기며 그 명제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한다. 레닌주의가 이론에 무관심하다는 주장이다. 알다시피 쁠레하노프는 레닌이 이론, 특히 철학에 무관심하다고 여러 번 조롱한 바 있다. 또 오늘날 레닌주의자인 많은 활동가들이 정세가 요구하는 방대한 실천적 임무 때문에 이론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레닌과 레닌주의가 이론을 무시한다는 괴상한 의견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고 사실과도 전혀 맞지 않다. 또 활동가들이 이론을 무시하려는 경향은 레닌주의의 정신에 전적으로 반하는 것이며 사업을 매우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이론이란 모든 나라의 노동운동 경험을 일반화한 것이다. 혁명 실천 없는 이론은 공허(空虛)하고, 혁명 이론 없는 실천은 맹목적(盲目的)이다. 이론을 혁명적 실천과의 밀접한 연결 위에 세울 때 이론은 노동운동의 거대한 힘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론, 오직 이론을 통해서만 운동을 확신할 수 있으며 방침을 결정할 수 있고 주위 사물의 내적 연관 속에서 운동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 오직 이론을 통해서만 오늘날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제 계급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디로 향해 가는지를 깨달아 실천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레닌만큼 다음의 유명한 명제를 셀 수 없이 말하고 되풀이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혁명 이론 없이는 혁명 운동도 있을 수 없다. (강조는 쓰딸린) (≪레닌 저작집≫ 제4권, p. 390을 보라.)10)

 

레닌은 누구보다도 이론의 막중한 의의를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당이 수행하게 된 국제 노동계급의 전위투사의 역할에 비추어 볼 때, 또 우리 당을 둘러싼 국내외 정세의 복잡성에 비추어 볼 때 이론은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레닌은 일찍이 1902년에 우리 당의 이 특수한 역할을 예견하고 다음과 같은 것을 지적할 필요를 절감했다.

 

가장 선진적인 이론에 의해 지도되는 당만이 전위투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레닌 저작집≫ 제4권, p. 380을 보라.)11)

우리 당의 역할에 대한 레닌의 예언이 이미 실현된 지금, 별도의 증명은 필요 없이 레닌의 이 명제는 각별한 힘과 중요성을 갖는다.

레닌이 이론에 부여한 커다란 중요성을 가장 명백히 보여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있다. 오직 레닌만이 엥겔스로부터 레닌에 이르는 시기에 이룩한 가장 중요한 과학적 성과를 유물론 철학에 기초하여 일반화하고 맑스주의자들 내부의 반유물론적 조류들을 전면적으로 비판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엥겔스는 자연과학 영역에서 획기적인 발견이 있을 때마다 유물론은 그 형태를 바꾸어야만 한다12)고 말하였다.

모두 알다시피 바로 레닌이 이러한 시대적 과업을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이라는 걸작을 통해 수행하였다. 그리고 철학에 무관심하다고 레닌을 조롱하곤 했던 쁠레하노프는 그러한 과업을 진지하게 책임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2) 자연생장성(自然生長成) 이론에 대한 비판, 또는 운동에서의 전위의 역할

자생성 이론은 기회주의 이론이다. 노동운동에 있어 자생성을 숭배하는 이론이다. 노동계급의 전위, 즉 노동계급당의 지도적 역할을 사실상 부정하는 이론이다.

자생성을 숭배하는 이론은 노동운동의 혁명적 성격에 매우 적대적이며 자본주의의 토대에 대항하는 투쟁노선에 반대한다. 단지 자본주의에서 실현될 수 있고 용납될 수 있는 요구들만 제기하는 운동을 선호한다. 최소 저항선을 전적으로 찬성하는 것이다. 즉 자생성 이론은 노동조합주의 사상이다.

자생성을 숭배하는 이론은 자생적 운동에 의식적, 계획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한다. 당이 노동계급의 선두에 서서 나가는 것을 반대한다. 당이 대중을 의식적 계급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반대한다. 운동에 있어 당의 지도를 반대하는 것이다. 자생성 이론은 운동이 스스로 가는 길을 방해하지 않는 정치의식만은 찬성한다. 당이 자생적 운동에 순응하여 뒤꽁무니만 따라다닐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자생성 이론은 운동에서 의식적 요소의 역할을 무시하는 이론이며 추수주의 사상이며 온갖 기회주의의 논리적 기반이다.

자생성 이론은 러시아 1차 혁명 이전에 이미 무대에 나타났다. 이 이론의 추종자들인 소위 경제주의자들은 러시아에서 독자적인 노동자 정당의 필요성을 부정하며 짜르 제도를 전복하기 위한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을 반대하였다. 운동에서 노동조합주의 정책을 설교하며 노동운동을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에 완전히 내맡겼다.

레닌은 구이쓰끄라의 투쟁을 통해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행한 추수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통해 경제주의를 격파하고 러시아 노동계급의 참다운 혁명운동에 이론적 기초를 마련하였다.

레닌의 이런 투쟁이 없었다면 러시아에서 독자적인 노동자 정당의 창건이나 혁명에서 당의 지도적 역할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생성을 숭배하는 이론은 러시아만의 현상은 아니다. 제2 인터내셔널의 모든 정당에 형태를 조금씩 달리하여 예외 없이 펴져 있다. 제2 인터내셔널 지도자들이 소위 생산력 이론을 비속화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들은 모든 것을 옳다고 하고 모든 사람들을 온순하게 길들인다. 어떤 사실에 대해 사람들이 진저리가 나 지친 이후에나 그 사실 정황을 확인하고 설명한다. 그것도 사실을 확인만 하고는 만사대길(萬事大吉)이다. 맑스는 유물론은 세계를 설명하는 데 그칠 수 없으며 세계를 변혁시켜야 한다13)고 말했다. 그러나 카우츠키 일파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맑스의 정식화 첫 부분에 머문 채 만족한다.

이 생산력 이론을 적용한 숱한 예 가운데 하나를 들어보자. 제국주의 전쟁 전에 제2 인터내셔널의 정당들은 만일 제국주의자들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전쟁에는 전쟁으로를 선언하겠다고 으른 적이 있다. 그런데 전쟁 바로 직전에 전쟁에는 전쟁으로라는 슬로건을 걷어치우고 제국주의 조국을 위한 전쟁이라는 정반대의 슬로건을 내세웠다. 이와 같이 슬로건을 바꾼 결과 수백만 노동자가 죽어 나갔다. 그러나 카우츠키 일파는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있다거나 누군가 노동계급에 충실하지 못했다거나 노동계급을 배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다 당연히 일어날 대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인터내셔널은 전쟁의 도구가 아니라 평화의 도구이기 때문이고 둘째, 당시의 생산력 수준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비난받아야 할 것생산력인 것이다. 이것이 카우츠키 선생이 우리에게 내려주신 생산력 이론의 정확한 의미이다. 누구든지 이 이론을 믿지 않는다면 맑스주의자가 아니다. 당의 역할이라고? 운동에서 당의 중요성이라고? 그러나 생산력 수준과 같은 결정적 요인 앞에서 당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

맑스주의를 이런 식으로 왜곡한 사례는 무수히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이비 맑스주의는 자신의 기회주의적 진면목을 숨기려고 애쓴다. 그러나 이 사이비 맑스주의는 레닌이 이미 제1차 러시아 혁명 이전에 반대하여 투쟁했던 추수주의 이론의 유럽식 변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애써 증명할 필요는 없다.

당연히 이러한 이론적 왜곡을 타파하는 것이 서구에서 진정한 혁명적 당을 창건하는 선결 조건이 된다.

 

3)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론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관한 레닌의 이론은 세 개의 기본 명제에서 출발한다.

첫째 명제: 금융자본이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지배적 지위를 갖는다. 주식과 증권을 발행하는 것이 금융자본의 가장 중요한 업무이다. 원료산지에 대한 자본수출이 제국주의의 기초 중의 하나이다. 금융자본이 지배한 결과는 금융과두제의 무제한적 권력을 낳았다. ― 이러한 것들은 독점자본주의의 심각한 기생성을 보여주며 자본주의적 트러스트와 신디케이트의 압박을 백배나 더 가중시킨다. 노동계급의 자본주의적 토대에 대한 분노를 격화시키며 대중을 자신의 유일한 구원의 길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이끈다(레닌의 ≪제국주의론≫을 보라).

여기서 첫 번째 명제가 나온다: 자본주의 나라 내부에서 혁명적 위기가 날로 첨예화되고 종주국 국내 전선(戰線)인 프롤레타리아 전선에서 폭발적 분위기가 높아진다.

둘째 명제: 식민지 및 종속국에 대한 자본수출이 격증한다. 세력 범위와 식민지 영토가 확장되어 전 지구를 포괄한다. 자본주의는 극소수 선진국과 세계 대다수 식민지 인민으로 대립되며 선진국이 식민지를 금융적으로 종속시키고 식민지적 억압을 하는 세계적 체제로 전환한다. ― 이러한 것들은 한편으로는 분리된 민족경제와 민족영토를 세계경제라는 단일한 연쇄 고리로 만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상의 인구를 두 진영으로 갈라놓았다. 한 진영은 극소수의 선진자본주의 국가로 광대한 식민지 및 종속국을 착취하고 억압한다. 다른 진영은 대다수 식민지 및 종속국으로 제국주의적 억압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투쟁하지 않을 수 없다(≪제국주의론≫을 보라).

여기서 두 번째 명제가 나온다: 식민지 국가에서 혁명적 위기가 첨예화되고 국제전선인 식민지 전선에서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분위기가 높아진다.

셋째 명제: 세력 범위와 식민지를 몇몇 국가가 독점한다. 자본주의 국가들이 불균등하게 발전한 결과로 이미 영토를 차지한 국가들과 자기 을 요구하는 국가들 간에 세계를 재분할하려는 치열한 투쟁이 벌어진다. 세력 균형은 깨어지고 균형을 회복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제국주의 전쟁이 일어난다. ― 이러한 것들은 셋째 전선인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전선(戰線)을 격화시킨다. 이 전선은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고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앞의 두 전선, 즉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전선과 식민지 해방 전선의 결합을 촉진시킨다(≪제국주의론≫을 보라).

여기서 세 번째 명제가 나온다.: 제국주의하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다. 제국주의 세계 전선에 대항하는 유럽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동방의 식민지 혁명은 필연코 통일된 세계혁명 전선으로 연합한다.

레닌은 이 모든 결론을 한마디로 총괄하였다. 제국주의는 사회주의 혁명의 전야이다.(강조는 쓰딸린) (≪레닌 저작집≫ 제19권, p. 71을 보라.)14)

이로 인해 프롤레타리아 혁명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이 달라진다. 따라서 혁명의 성격, 그 규모, 그 깊이에 대한 취급 태도도 달라지며 혁명 일반의 설계도도 달라진다.

이전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제 조건을 대개 개별 국가의 경제 상태를 보고 분석하였다. 이제 이런 접근 방법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지금은 모든 또는 대다수의 나라들의 경제 상태를 보고, 세계경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개별 국가나 개별 민족경제는 자급자족의 단위를 벗어나 세계경제라는 단일한 사슬의 한 고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낡은 문명적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발전하여 한 줌의 선진국이 세계 인구의 대다수를 금융자본의 노예로 만들고 식민지배로 억압하는 세계체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개별 국가들, 보다 정확히는 몇몇 발달된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객관적 조건들이 있는가 없는가를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제 이런 관점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지금은 하나의 완전한 전체인 세계 제국주의 경제체제에 혁명의 객관적 조건들이 있는가를 말해야 한다. 이 체제 내에서 어떤 국가가 산업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혁명 과정에서 극복하지 못할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체제가 하나의 전체라면, 바로 정확히 이 체제 전체가 이미 혁명을 위해 성숙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몇몇 발달된 국가에서 개별적 일국 자본에 대립하는 고립되고 자족적인 현상으로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제 이런 견해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지금은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해 말해야 한다. 개별적 일국 자본은 세계 제국주의 전선이라는 단일한 사슬의 한 고리가 되었다. 따라서 세계의 모든 나라의 혁명운동도 공동전선으로 이에 대항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순전히 해당 국가의 내적 발전의 결과로 보았다. 이제 이런 관점은 적합하지 않다. 지금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주로 세계 제국주의 체제에서 모순이 발전한 결과로, 세계 제국주의 전선의 사슬이 어떤 국가에서 끊어진 결과로 보아야 한다.

어디서 혁명이 시작될 것인가? 어디서, 어느 나라에서 제일 먼저 자본의 전선이 돌파될 것인가?

산업이 더욱 발전된 곳, 프롤레타리아트가 다수를 이루고 있는 곳, 문화 수준이 더 높은 곳, 보다 민주적인 곳에서 일어난다고 이전에는 보통 대답하였다.

아니다. 레닌의 혁명 이론은 이에 반대한다. 혁명이 반드시 산업이 더 발전된 곳이든가 하는 등등의 곳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제국주의 사슬이 가장 약한 고리에서 자본 전선은 돌파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세계 제국주의 전선의 가장 약한 고리를 파괴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혁명을 시작하여 자본 전선을 돌파한 나라가 자본주의 안에 남아 있는 발전된 나라에 비해 자본주의적 의미에서는 발전이 덜 된 나라일 수도 있다.

1917년에 제국주의 세계전선의 사슬은 다른 나라에서보다도 러시아에서 더 약하였다. 사슬이 끊어지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난 곳은 러시아였다. 왜 그런가? 러시아에서는 위대한 인민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혁명적 노동계급이 선두에 섰고 노동계급은 지주에게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광범한 농민과 같은 중요한 동맹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짜리즘과 같은 추악한 제국주의의 대리인과 대적하고 있었는데 짜리즘은 도덕적 위신을 완전히 잃었고 당연히 모든 주민은 짜리즘을 증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는 자본주의적 의미에서 예컨대 프랑스나 독일, 영국이나 미국보다 발전이 덜 되었지만 사슬은 더 약하였다.

가까운 장래에 사슬은 어디서 끊어질 것인가? 역시 사슬이 가장 약한 곳이다. 예컨대 인도에서 사슬이 끊어질 수도 있다. 왜 그런가? 인도에는 젊고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노동계급이 있고 노동계급은 민족해방운동과 같은 동맹군 ― 의심할 바 없이 강력하고 중요한 동맹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도 충분히 끊어질 수 있다. 왜 그런가? 예컨대 인도에서 작용하고 있는 요인들이 독일에서도 작용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인도와 독일은 발전 수준에서 큰 차이나 난다. 그래서 그 흔적이 독일 혁명의 진행과 결말에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서유럽의 자본주의 국가는 사회주의를 향한 진전이 극에 달하고 있다. … 그러나 이러한 국가들은 내부에서 사회주의의 균등한 성숙 과정을 밟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착취하고, 제국주의 전쟁에서 먼저 패배한 나라에 대한 착취와 동방 전역에 대한 착취가 결합하는 과정을 경유하여 사회주의로 나아갈 것이다. 다른 한편 동방은 바로 이 제1차 제국주의 전쟁의 결과로 확실히 혁명운동에 들어섰다. 결국 전 세계가 혁명운동의 광범위한 소용돌이 속으로 확실히 빨려들어 갔다. (≪레닌 저작집≫ 제27권, pp. 415-416을 보라.)

 

간단히 말하면 제국주의 전선의 사슬은 보통 연결고리가 보다 약한 곳에서 끊어질 수밖에 없다. 어쨌든 자본주의가 보다 더 발전하고 노동자가 어느 정도의 비율이 되고 농민은 어느 정도의 비율인 등등의 곳에서만 제국주의의 사슬이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 국가 내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차지하는 인구 비율을 따지는 통계적 계산은 프롤레타리아 혁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특별한 중요성을 이미 상실했다. 제국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또 혁명을 흑사병처럼 무서워하는 제2 인터내셔널의 교조적 공론가들만이 그것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을 뿐이다.

다음으로 제2 인터내셔널의 영웅들의 주장에 의하면(지금도 계속 주장하고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혁명 사이에는 심연(深淵) 또는 만리장성이 놓여 있다. 이 심연은 상당한 기간 동안 양 혁명을 분리시킨다. 이 기간 동안 정권을 장악한 부르주아지는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노동계급은 힘을 축적하면서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결정적 투쟁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 기간을 보통 수십 년 이상으로 계산하고 있다. 이 만리장성 이론은 제국주의라는 조건하에서는 아무런 과학적 의미도 없다. 단지 부르주아지의 반혁명적 열망을 은폐하고 미화하는 수단에 지니지 않으며 그럴 수밖에 없다. 이것을 굳이 증명할 필요는 없겠다. 제국주의 시대는 충돌과 전쟁을 배태(胚胎)하고, 사회주의 혁명의 전야로서 번영하는 자본주의가 죽어 가는 자본주의(레닌)로 변하고 세계 모든 나라에서 혁명운동이 성장하는 때이다. 제국주의 스스로 짜리즘과 농노제까지 포함하는 일체의 반동세력들과 연합하였다. 그 때문에 서구 프롤레타리아 운동과 동방의 민족 해방 운동을 포함한 모든 혁명적 세력이 반드시 단결하여야 하는 시대이다. 제국주의와의 혁명적 투쟁 없이는 봉건적 농노제적 잔재도 제거할 수 없게 된 시기이다. 이러한 시대에 다소 발전된 나라에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은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접근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은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성장 전화한다. 이는 증명할 필요는 없다. 러시아의 역사가 논쟁의 여지없이 명백히 보여주었다. 레닌이 이미 1차 러시아 혁명 전야인 1905년에 소책자 ≪두 가지 전술≫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을 동일한 사슬의 두 고리로서, 러시아 혁명의 발전이 지니는 단일한 전체상으로 묘사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민주주의 혁명을 최후까지 완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민 대중과 동맹하여 전제권력의 반항을 힘으로 분쇄하고 부르주아지의 동요를 무력화시켜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민 중의 반(半)프롤레타리아 세력 대중과 동맹을 맺어 부르주아지의 반항을 힘으로 분쇄하고 농민과 소부르주아지의 동요를 무력화시켜야 한다. 이것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이다. 그런데 신이쓰끄라파는 혁명의 규모(規模)에 관한 모든 주장과 결의안에서 이런 임무를 아주 협소하게 제기하였다. (≪레닌 저작집≫ 제8권, p. 96을 보라.)15)

 

레닌의 혁명 이론의 초석 중 하나인 부르주아 혁명을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성장 전화시킬 데 대한 사상이 ≪두 가지 전술≫보다 더 뚜렷하게 나타난 후기 저작에 대하여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어떤 동지들은 레닌이 1916년에야 비로소 이 견해에 도달했고 그 이전에는 마치 러시아 혁명이 부르주아 혁명의 테두리 안에 머무를 것이며 따라서 정권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독재기관의 수중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부르주아지의 수중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간주한 것처럼 믿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우리 공산주의적 출판물에까지 침투한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전적으로 잘못이고 사실과도 전혀 맞지 않다.

레닌은 3차 당대회(1905)에서 행한 유명한 연설에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독재, 즉 민주주의 혁명의 승리를 “‘질서의 조직화가 아니라 전쟁의 조직화라고 규정하였다. (≪레닌 저작집≫ 제7권, p. 264를 보라.)16)

다음으로 레닌의 유명한 논문 임시정부에 관하여를 언급하겠다. 여기서 레닌은 러시아 혁명이 앞으로 전개될 전망에 대한 윤곽을 그리면서 당 앞에 임무를 제기하였다. 러시아 혁명은 몇 개월간의 운동이 아니라 여러 해에 걸친 운동이며, 단지 집권세력으로부터 사소한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집권세력의 완전한 타도를 달성하는 것이다. 또 이 전망을 더 확대시켜 유럽 혁명과 연결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그때에는 … 그때야 말로 혁명의 불길이 유럽을 휩쓸 것이다. 이번엔 부르주아 반동 속에서 신음하는 유럽 노동자들의 차례가 되어 궐기하고 우리에게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그 다음에 유럽의 혁명적 파고(波高)가 다시금 러시아로 밀려들 것이다. 몇 년간의 혁명기는 수십 년간의 혁명적 시대로 변할 것이다. (같은 책, p. 191을 보라.)17)

 

또, 1915년 11월에 출판된 레닌의 유명한 논문을 인용하자. 레닌은 다음과 같이 썼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공화제를 위해, 토지몰수를 위해 … 군사-봉건적 제국주의(즉 짜리즘)로부터 부르주아적 러시아를 해방시키는 데 비프롤레타리아 인민대중을 참가시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영웅적으로 싸워 나갈 것이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짜리즘으로부터, 지주의 토지권력으로부터 부르주아 러시아의 해방을 즉시18) 이용할 것이다. 이것은 부농이 농업 노동자들과 투쟁하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프롤레타리아와 동맹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레닌 저작집≫ 제18권, p. 318을 보라.)

 

마지막으로, 레닌의 소책자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에서 유명한 구절을 인용하겠다. 거기서 레닌은 위에서 말한 러시아 혁명의 규모(規模)에 대한 ≪두 가지 전술≫의 구절을 언급하면서 다음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사태는 우리가 예상한 대로 되었다. 혁명의 진행 과정은 우리가 올바로 추론했음을 실증하였다. 처음에는 농민 전체와 함께 군주제를 반대하고 지주 및 중세 체제에 반대하였다. (그런 만큼 혁명은 여전히 부르주아적, 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인 것에 머물러 있다.) 그 다음에는 빈농과 함께, 반(半)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그리고 모든 피착취자들과 함께 농촌의 부자, 쿨락, 그리고 고리대금업자를 반대하고 자본주의를 반대하였다. 이리하여 혁명은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되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준비 정도와 빈농과의 연합 정도 이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 두 혁명을 갈라놓거나 두 혁명 사이에 인위적인 만리장성을 쌓으려는 시도는 맑스주의를 완전히 왜곡하고 속류화시키며 자유주의로 바꿔치기하는 것이다. (≪레닌 저작집≫ 제23권, p. 391을 보라.)19)

 

이만하면 충분할 것 같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레닌은 영구(연속) 혁명 사상과 싸웠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레닌은 농민의 혁명적 능력을 최고로 발휘시키고 농민의 혁명적 에너지를 남김없이 사용하여 짜르를 완전히 청산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넘어갈 것을 주장하였다. 반면에 영구 혁명지지자들은 러시아 혁명에서 농민이 수행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농민의 강한 혁명적 에너지를 과소평가했으며 농민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러시아 프롤레타리아의 힘과 능력도 과소평가하였다. 그래서 농민을 프롤레타리아 주위에 결속시켜 부르주아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하는 사업을 방해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레닌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넘겨받음으로써 혁명이 완성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영구 혁명의 지지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직접 장악하는 것으로부터 혁명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농노제의 잔재와 같은 자질구레한 것에 눈을 감게 하고 러시아 농민과 같은 중요한 세력을 고려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한 정책이 프롤레타리아트 편으로 농민을 끌어들이는 것을 방해할 뿐이라는 점 때문에 레닌은 이들과 싸운 것이다.

결국, 레닌이 영구 혁명의 지지자들과 싸운 지점은 연속성의 문제가 아니다. 레닌 자신이 연속 혁명의 관점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레닌이 싸운 이유는 영구 혁명 지지자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최대 예비군인 농민의 역할을 과소평가하였기 때문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구 혁명 사상을 새로운 사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사상은 맑스가 1840년대 말에 <공산주의자 동맹>에 보낸 유명한 호소문(1850)에서 처음으로 제출한 것이다. 우리의 영구 혁명론자들은 이 문서로부터 연속 혁명의 사상을 취한 것이다. 반드시 지적해야 할 것은 우리의 영구 혁명론자들이 이 사상을 맑스로부터 가져오면서 좀 고쳤는데 고친 결과 못쓰게 만들어 실제로 적용하는 데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오류를 시정하고 맑스의 연속 혁명의 사상을 순수한 형태로 섭취하여 혁명 이론의 초석으로 만드는 데는 레닌의 능숙한 솜씨가 필요하였다.

맑스는 호소문에서 일련의 혁명적-민주주의적 요구를 열거하고 공산주의자들은 이것들을 응당 쟁취해야 한다고 호소한 후 연속 혁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민주주의적 소부르주아지는 위의 요구들을 실현함으로써 되도록 빨리 혁명을 끝내려고 한다. 반면에 우리의 관심과 임무는 끊임없이 혁명을 추진하는 것이다. 크든 작든 모든 유산계급이 지배적 지위에서 배제될 때까지,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권력을 쟁취할 때까지, 프롤레타리아의 연합이 한 나라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의 지배적 국가들에서 충분히 발전하여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경쟁이 없어지고 적어도 결정적 생산력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될 때까지 계속 혁명을 추진하는 것이다.20)

 

다시 말하면:

ㄱ) 맑스는 1850년대 독일에서 혁명을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직접 수립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것을 제안하지 않았다. 이것이 우리의 러시아 영구 혁명론자들의 계획과 상반되는 것이다.

ㄴ) 맑스는 오직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권력을 장악함으로써 혁명이 완성된다고 주장하였다. 프롤레타리아의 권력 장악은 부르주아 분파들을 권력의 지위에서 하나씩 하나씩 쓰러뜨림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한 후에는 차례차례로 모든 나라에 혁명의 불길을 일으켜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레닌이 제국주의 조건하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에 따라 지도하고 실행한 우리 혁명의 모든 과정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러시아 영구 혁명론자들은 러시아 혁명에서 농민의 역할과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 사상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영구 혁명에 대한 맑스의 사상을 (한층 나쁘게) 변경시켜 실천에 적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레닌은 우리의 영구 혁명론자들의 이론을 독특하고 고상한 것이라고 조소하고는 왜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10년 동안 내내 이 고상한 이론을 거들떠보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는 그들을 꾸짖었다(레닌은 이 논문을 영구 혁명론자들의 이론이 러시아에서 나타난 지 10년 후인 1915년에 집필하였다). (≪레닌 저작집≫ 제18권, p. 317을 보라.)

레닌은 영구 혁명론을 반(半)멘쉐비끼 이론이라고 여겼다. 이 이론은 볼쉐비끼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의 결연한 혁명투쟁에의 호소와 정치권력의 탈취(奪取) 사상을 취하고 멘쉐비끼로부터 농민의 역할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21)고 하였다. (레닌의 논문 혁명의 두 노선에 대하여― 위와 같은 곳을 보라.)

이상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성장 전화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 관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즉각적 이행을 목적으로 한 부르주아 혁명의 활용에 관한 레닌의 사상이다.

다음으로, 이전에는 한 나라에서의 혁명의 승리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이는 부르주아지에 대해 승리하기 위해서는 선진적인 나라 전부 또는 적어도 대다수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연합하여 행동해야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한다. 이제 이러한 견해는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한 나라의 승리가 가능하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제국주의 조건 하에서는 다양한 자본주의 나라들의 발전이 불균등하고 산발적인 성격을 띤다는 것, 제국주의 내부의 파국적인 모순들이 불가피하게 전쟁으로 발전한다는 것,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혁명운동이 성장한다는 것. ― 이 모든 사실로 인해 개별적인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승리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의 역사가 이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그러나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부르주아지의 전복은 절대적인 필수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조건들이 없이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장악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레닌은 소책자 ≪좌익 소아병≫에서 이 조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모든 혁명, 특히 20세기의 3차에 걸친 러시아 혁명에 의해 실증된 혁명의 기본 법칙은 다음과 같다. 즉 혁명을 위해서는 단지 피착취 피억압 대중이 이전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식하고 변경할 것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착취자들도 이전대로 살아갈 수 없고 지배할 수 없는 것이 필요하다. 하층계급이 이전 것을 원치 않을 때, 상층계급이전대로 계속해 나갈 수 없을 때 ― 오직 그때에만 혁명은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혁명은 (착취자와 피착취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전 국가적 위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22) 그러므로 혁명을 위해서는 첫째, 노동자의 다수(또는 적어도 계급의식이 있고 사상을 가진 정치적으로 적극적인 노동자의 대다수)가 혁명의 필요성을 완전히 깨닫고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 둘째, 지배계급이 정치의 위기에 봉착해야 한다. 이 위기는 가장 후진적인 대중들까지도 정치로 이끌며 … 정부를 약화시키고 혁명가들이 정부를 신속하게 전복할 수 있게 한다. (≪레닌 저작집≫ 제25권, p. 222를 보라.)23)

 

그러나 한 나라에서 부르주아지 권력을 전복하고 프롤레타리아 권력을 수립하는 것이 아직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승리한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권력을 튼튼히 하고 농민을 이끌고 나가야 비로소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고 건설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완전하고 종국적인 승리를 의미하는 것인가? 다시 말해 한 나라의 힘만으로 사회주의를 종국적으로 확립하고 무력간섭과 구제도의 복구에 대항하여 나라를 완전히 수호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몇 나라에서 혁명이 승리해야 한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의 혁명을 발전시키며 지지하는 것은 승리한 혁명의 중대한 과업이다. 승리한 나라의 혁명은 자족적인 단위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촉진시키는 지원 세력이며 수단으로 보아야 한다.

레닌은 이런 생각을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승리한 혁명의 과업은 모든 나라의 혁명을 발전시키며 지원하고 고무하기 위하여 한 나라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24)하는 것이다. (≪레닌 저작집≫ 제23권, p. 385를 보라.)

대체로 이러한 것들이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의 특징이다.

(다음 호에 계속) <노/사/과/연>

 


1) 아우게이아스 마구간은 아우게이아스 왕이 3,000마리의 말을 기른 마구간을 말한다. 매우 더러운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30년 동안 청소하지 않은 아우게이아스 마구간을 헤라클레스가 하루 만에 청소한다.

2) K. 맑스, ≪맑스 엥겔스 저작 선집≫ 제2권, 박종철출판사, p. 512.

3) V. I.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 김남섭 역, 돌베개, 1992, p. 19. (이하 인용된 모든 번역은, 역자가 다시 번역한 것이다.)

4) V. I. 레닌, ≪인민의 벗이란 무엇인가≫, 김우현 역, 벼리, 1988, p. 170.

5) 제2 인터내셔널의 바젤 대회는 1912년 11월 24‒25일에 개최되었다. 대회는 발칸 전쟁과 임박한 세계대전의 위협에 관련하여 소집되었다. 국제 정세와 전쟁에 반대하는 공동행동이라는 문제만이 토론되었다. 대회는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선언문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과 힘을 사용하여 전쟁의 위험에 반대하는 혁명 투쟁에 나설 것과 “전쟁에는 전쟁으로”를 선언하라고 노동자에게 호소하였다.

6) V. I. 레닌,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허교진 역, 소나무, 1991, p. 88.

7) V. I.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 p. 60.

8) V. I. 레닌, ≪일보전진 이보후퇴≫, 홍수천 역, 풀무질, 1995, p. 15.

9) K. 맑스, ≪자본론≫ 제1권(상), 김수행 역, 2015, p. 19.

10) V. I.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레닌 저작선≫), 홍승기 편역, 거름, p. 145.

11) 같은 책, p. 146.

12) F. 엥겔스,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 그리고 독일고전철학의 종말≫(≪맑스 엥겔스 저작선집≫ 제6권), 박종철출판사, p. 258.

13) K. 맑스, “포이에프바하에 관한 테제”, ≪독일 이데올로기 1≫, 김대웅 역, 두레, p. 41.

14) V. I. 레닌, ≪제국주의론≫, 남상일 역, 백산서당, p. 29.

15) ≪레닌 저작집≫ 제3권 2분책, 전진, p. 233.

16) ≪레닌 저작집≫ 제3권 1분책, p. 381.

17) 같은 책, p. 296.

18) 강조는 쓰딸린.

19) V. I. 레닌, ≪프롤레타리아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p. 113.

20) ≪맑스 엥겔스 저작 선집≫ 제2권, p. 119.

21) V. I. Lenin, “ON THE TWO LINES IN THE REVOLUTION”, LENIN COLLECTED WORKS, VOLUME 21, p. 419.

22) 강조는 쓰딸린.

23) V. I.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 p. 94.

24) V. I. 레닌,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p.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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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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