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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한나 아륜특/아렌트를 읽는 것을 권장 받는 가?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9-01-08 06:48
조회
24

오늘 폭로도서들은 ‘우리는 왜 한나 아륜특/아렌트를 읽는가?’와 ‘한나 아륜특/아렌트의 생각’의 2제이고 폭로문서는 이 도서의 로쟈의 서평 기사문인데 이미 한나 아륜특/아렌트에 대해서는 수종의 도서들을 출간했고 영화까지 존재해 문화 재재의 다수 영역에 걸쳐서 조우할 수 있는 상황인데 이 만큼이나 제국주의의 강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로쟈의 서한문(기사문을 추가한)에서는 입문서를 다수 출간한 사실을 기술했고 이 점은 어쩌면 ‘자본(론)’을 위시한 마극사 - 은격사/마르크스 - 엥겔스의 입문서들의 수마저도 넘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데 그 만큼이나 지식 내지 지성의 감옥(환상적인 표현으로는 ‘결계’)에서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제시한 ‘“자본(론)”을 위시한 마극사 - 은격사/마르크스 - 엥겔스의 입문서’들은 청산주의, 수정주의, 개량주의 등의 시각을 주의해야 하는 점 까지 추가하면 실제적으로 과학에 입각한 도서들은 너무나 왜소한 상황인데 냉전의 감옥(또는 동일하게 결계)의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아륜특/아렌트에 있어서 구체적인 문제를 기사문의 하단에서 찾을 수 있는데 바로 1956년 소위 혁로열부/흐루시쵸[쇼]프의 비밀연설의 연도에 발생한 홍아리/헝가리의 사건을 봉기로 본 것은 결정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이의 봉기에 대한 과학 문서는 지난 3/5세기(60년)를 맞이한 만 3년 전(2016)의 KKE 등에서 발표한 바 있는데 당시에 아무리 이러한 정보를 접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고려한다고는 해도 너무나 결정적인 색상을 노정한 상황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단의 침공과 혁명을 동일시하는 것으로 이로부터 만 1/3세기(33년)를 경과하면서 동구권 해체(올해는 최초 시작 만 30주년이었습니다. )를 진행한 것처럼 너무나 해악이 큰 사건이었는데 너무나 당연하게 발언을 한 것으로 문제적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서한문은 기사문이 리처드 번스타인의 ‘우리는 왜 한나 아륜특/아렌트를 읽는가?’를 일독하고 기술한 문서임을 표명하면서 시작해 아륜특/아렌트의 입문서가 다수 존재하는 점을 기술했습니다. 기사문은 20세기의 주요 정치 사상가로서의 아륜특/아렌트의 도서들을 다수 소개했고 안내서 또한 적지 않은 상황을 기술했습니다. 이 점은 전항에서 기술한대로 과학 혁명의 시작점인 ‘자본(론)’을 포함한 마극사 - 은격사/마르크스 - 엥겔스에 비해서 숫자로도 더 많을 수 있고 질에서는 더욱 많다고 할 수 있는데 특정의 사조, 조류의 강요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문서는 이렇게 입문서와 안내서 모두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리처드 번스타인의 저서의 의미를 기술했고 저자가 아륜특/아렌트를 바라보는 시각을 지목했는데 이 점은 이의 범위 내 에서는 다소 독특한 점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사문은 이의 사상, 주의의 주요 개념들 가운데 특히 ‘난민’, ‘악의 평범 성’, ‘혁명정신’을 주목했다고 기술했는데 역시나 최 후자의 ‘혁명정신’은 유산 진영의 제조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점은 누구들을 연상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전의 누구들 외에도 이러한 어용적 사조, 조류를 추가 생성한 점을 확인할 수 있고 작금의 문제들을 생성한 원천으로 활용했습니다. 기사문은 다른 저자들이 이미 강조했던 ‘정치’와 ‘인간의 조건’등을 기술했고 이 점들은 더욱 강했던 그 간의 냉전적인 시각들(특히 후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사문은 연속해서 주제를 한정하지는 않았으나 전개방식을 다르게 취했다고 기술했고 문단을 교체해 아륜특/아렌트의 생애를 기술한 후 난민으로서의 경험을 강조한 점을 기술했고 아륜특/아렌트가 종합적으로 독일계 유태 난민임을 기술했습니다. 난민인 점은 현 시기에도 너무나 많은 고난에 처할 정도로 문제적인 상황인데 다만 난민이어도 출신 인종과 민족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는 점을 경험한 바 있고 현 시기의 난민들이 주로 유색인종과 신 식민지, 제 3 세계권에서 발생하지만 20세기 중반 까지 에서는 주요 국가에서도 발생한 점은 냉전의 시작의 극히 야만적인 환경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사문은 연속해서 아륜특/아렌트가 미국 사회에 정착하기까지도 만 18년간을 무국적자로 지낸 점을 기술했고 난민의 의미의 변화 과정을 기술했습니다. 문서는 연결해서 문제의 부분을 기술했는데 무국적 난민의 양산 과정에서 소위 ‘전체주의’ 체제의 탄생과 그 유산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한 점을 기술, 폭로했습니다. 소위 ‘전체주의’는 지젝 조차 초기에는 ‘전체주의가 어쨌다고’와 같은 저서로 반대한 점을 감안하면 냉전의 기획이라는 점으로 볼 수 있고 이전 소개도서 ‘친절한 법서사주의/파시즘’에서 비판에 오른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소위 서방 자유세계의 목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사문은 문단을 교체해 아륜특/아렌트의 주저와 유명 인사 화 한 저서 ‘야로철령의 애희만/예루살렘의 아이히만’를 통해 아부도 애희만/아돌프 아이히만(1906. 3. 19 ~ 62. 6. 1)을 악의 화신이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 기술한 점을 강조, 기술했고 이 ‘악의 평범 성’을 자세하게 기술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소위 ‘신화’의 ‘사유’의 봉쇄는 현 시기에도 어느 정도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문제는 바로 이의 냉전적 그리고 유산적 활용인데 기사문은 ‘정치적 동물’로서의 인간을 기술한 후 아륜특/아렌트의 인식에서의 전항에서 지적, 폭로한 문제적인 부분들을 기술했습니다. 일종의 침공을 혁명과 동일하게 본 것인데 지난 2010년대 초의 리비아 등의 침공을 혁명으로 본 시각 역시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다만 아륜특/아렌트는 파려 평의정부/파리코뮌과 노서아/러시아 혁명에 대해 긍정한 점을 볼 때는 어느 정도 다른 특성도 존재하지면 중요한 것은 최 후자의 1956년의 홍아리/헝가리 침공을 혁명과 동의어로 본 문제의 시각입니다. 문서의 최 말미는 최 압권적인 기사의 시각이자 발현이라고 할 수 있고 혁명 정당을 부정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적인 시각의 확대, 재생산은 현존체제 자본주의의 중요 기능들 중 하나인데 아륜특/아렌트에 있어서의 ‘혁명정신’은 이의 가장 극명한 생성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유산적인 정신의 극복은 우리들의 시급한 과제인데 이의 퇴행적 공격들을 감안하면 더욱 이러합니다. 문제는 지난 시간 동안의 거대한 퇴조를 경과하면서 이러한 시각들을 강화한 측면인데 감옥(결계)를 벗어날 수 있는 노력의 중심에 과학 사상, 주의의 부흥을 실현해야 합니다.
로쟈의 서한문 & 기사문의 주소들은 제시 주소 목록과 같습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3&aid=0000038579


http://blog.aladin.co.kr/mramor/10566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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