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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소멸 이후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8-06-04 07:52
조회
25

오늘 폭로문서들은 ‘노동의 종말’ 그리고 ‘노동 없는 미래’의 모습에 대한 도서들과 이들 도서들 및 주제를 취급한 2제의 서한문으로 이들 모두에서 일부 마극사/마르크스를 기술했지만 현존 체제의 종말을 전제하지 않은 도서들과 문서들입니다. 이들의 일단의 조류를 개괄하면 기계문명의 또 한 번의 발전으로 그 만큼 노동의 필요성을 경감하면서 동시에 노동의 소멸에 대한 상상과 전망을 제시했는데 일단 이 점은 작금의 (과잉) 노동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너무나 절실했던 단비와 같은 존재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서들과 이의 관련의 서한문들은 현존의 생산양식과 관련한 노동의 존재를 기술하는 대신 현존체제에 대해서는 기술하지 않으면서 일종의 체제내의 운동 내지는 정책의 측면을 강조, 기술한 비 과학이라고 하기에도 너무나 미달인 상황을 노정하고 있습니다. 또 도서 ‘노동 없는 미래’는 ‘기본소득 제’에 대해서도 취급하고 있는데 이의 ‘기본소득’이 밀턴 프리드만의 발명품으로서의 ‘기본소득’과 동일한지는 확인 불가이지만 도서의 다른 부분 어디에서도 다른 체제로의 선 이행을 전제한 부분을 찾을 수 없고 ‘기본소득’의 현실의 작동의 상황을 기술한 점으로 보아 충분한 규정만을 하고 있을 뿐 현존체제의 밀턴 프리드만의 발명품의 적용을 기술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도서 특히 후자의 ‘노동 없는 세상’은 현실 공간에서의 상황들에 대해서 분석을 다수 했는데 이를 이행을 전제한 분석이라고 볼 근거를 찾을 수 는 없었습니다. 물론 마극사/마르크스와 은격사/엥겔스 역시도 현실 즉 현존체제에서의 분석(특히 자본(론))을 상당부분 했지만 이의 분석은 현존체제의 철폐를 목적으로 한 것인데 반해서 폭로 도서 ‘노동 없는 세상’에서의 분석은 이를 전제하지 않았습니다. 즉 이를 현존 체제에 적용해 일종의 변형을 기획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무엇보다 가장 인간답지 못하게 한 장치 생산양식을 폭로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목은 과학 변혁에 있어서의 비로소 시작한 문명으로의 이행과 같은 감성을 주지만 내용은 동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서한문은 ‘노동의 종말’을 제기하면서 노동이 없는 미래의 준비에 대해서 질의하면서 시작해 존 밀턴(1608 ~ 74)의 실낙원을 인용한 서두를 경과하고 노동과의 결별의 가능성을 기술했습니다. 실낙원의 인용부분은 인간들이 에덴동산에서 축출 당하는 과정에서 이의 징벌로서 발생한 ‘노동’을 기술하고 있는데 일단 이의 비과학성, 몰 과학성은 차치하고라도 ‘노동’이 (바로 생산수단, 시설의 편제로 탄생한) 멍에적인 존재임은 확실합니다. 서한문은 본문으로 도입하면서 다수의 ‘종말’연속물로 유명한 제레미 리프킨(1945 ~ )의 ‘노동의 종말’을 두 구절을 원용했고 이미 1/4세기 전(25년 전입니다만 정확히 1994년)에 자동화한 기계로 인한 인간 노동의 소외의 현실을 기술한 상황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이의 실례로 중국에서의 인공지능 의사와 같은 예를 제시했는데 자동화로 인한 문제를 제시한 점은 일단 일말의 긍정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노동의 종말’을 또 한 번 인용했습니다. 문서는 단락을 전환하면서 비로소 마극사/마르크스의 노동에 있어서의 인간 소외 문제의 기원을 기술했고 ‘경제학 철학 초고’의 다수 부분들을 기술했습니다. 서한문은 연속해서 역사의 역행 방향으로 소급해 성 베네딕트(480 ? ~ 543)에게까지 소급했고 여기에서는 ‘서양 중세사’와 ‘노동의 종말’을 연속으로 원용하면서 독립적인 소규모 공동체로서의 수도원 유형을 제시했습니다. 서한문은 최 말미에 도달해서는 제레미 러프킨의 또 다른 ‘종말’ 연속물 ‘소유의 종말’까지 소개, 제시했고 이 도서에서 소위 ‘공유 경제’를 제시한 점을 기술한 것으로 볼 때 역시 현존체제의 철폐를 사고한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점은 확실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점은 서한문도 동일한데 최 말미의 인용문의 출처가 ‘이코노믹 인사이트’인 점을 보면 더욱 확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서한문은 현 정부의 일자리 대책에서의 누락을 지적한 문서인데 성경 정확하게 신약성경 데살로니가 3장 10절(개역개정)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도입했습니다. 문서는 이들을 제기하면서 사도 바울과 그분의 ‘노동 없는 미래’라는 도서에 대한 가정을 기술했습니다. 그리고 서한문은 문단을 전환해 ‘노동 없는 미래’의 도달 불가능한 이상향으로의 설정을 기술했고 다시 선을 교체해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로봇에게 일자리를 내어주고 원하지 않은 이상향으로의 도달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의 미래를 비록 ‘이상향’으로 적었으면서도 ‘암흑 향’적으로 상상했는데 다소는 사고협착을 목도할 수 있습니다. 이후 서한문은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 대해서 기술했고 노동에 대한 관점으로 주제를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이의 관점에 대한 주제로 도입하면서 고대와 오늘날의 노동에 대한 관점차를 강조, 기술했고 마극사/마르크스 에까지 도달했습니다. 여기에는 다소 현존 체제에서의 문제점들을 기술, 폭로했고 주제를 기본소득 방면으로 이동했습니다.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이미 상에서도 비판을 했고 동시에 많은 비판들이 나와 있는 상황이지만 문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장점(?)을 기술하면서 간략하게 종결했습니다. 문서는 말미로 오면서 우리들이 살고 싶은 미래에 대해 기술했는데 바로 ‘탈 노동’의 미래를 제시했습니다. 다만 이것이 현존체제의 철폐를 전제로 한 것인지는 알 수 없고 만약 이행을 전제로 한다면 경로에 대해서 역시 알 수 없습니다.
분명 도서들의 (부)제목들은 과학변혁의 주제를 (재)연상한 측면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으로 기술한 부분조차도 해당하는 데 작금의 시기가 ‘노동’과 ‘무산’의 주도권 기임을 고려하더라도 맞는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실제 내용들에서는 한 번에 폐지하는 현존체제에 대한 내용을 찾을 수 없어 비 과학이라는 칭호조차도 부족한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공유경제’는 결정적인 문제를 목도한 핵심입니다.
‘노동의 종말’과 ‘노동 없는 미래’의 주제들을 취급한 서한문 2제의 주소들은 제시 주소 목록들과 같습니다.

노동의 종말

 

http://blog.aladin.co.kr/winter_tiger/9976516

 

노동 없는 미래

 

http://blog.bandinlunis.com/bandi_blog/blog/blogMain.do?iframe=viewPost.do&artNo=45951813

전체 2
  • 2018-06-05 18:24
    현장노동자들은 전국 노동투사를 모아서 해고협을 추진하라!!


    한상균 위원장이 석방되었다. 늦었지만 환영한다. 남한의 노동해방 지도자가 돌아왔다. 전국의 선진노동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현장노조에서 분투한 탓에 늦었지만 감옥에서 석방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위원장은 현장이 쌍용차임에도 돌아갈 수 없다. 해고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한 위원장은 쌍용차 투매에 맞서 9년간 해고자 신분으로 노조 선봉에서 싸워왔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결집할 수 있었고 지지난해 박근혜 파시즘의 등장에 맞서 굳건히 투쟁하다 파시즘정권에 미운털이 박힌 채로 구속되었다. 우리 선진노동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민주주의 혁명 전야에서 엄청난 시련속에서 파쇼정부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투쟁을 이끌고 그 투쟁으로 단련된 한 위원장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는 가족도 없으며 돌아갈 공장도 없다. 전국의 선진노동자들은 파업위원회에서 반파쇼 노동해방 깃발을 내걸고 투쟁하다구속되어 무산자로 돌아온 한상균 위원장을 온 맘으로 반기고 인간다운 대접을 해주어야 한다. 위원장이 다시 투쟁을 하기 위해 한동한 조용히 여가를 보낼 수 있도록 활동공간과 생활터전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전국 해고협을 만들고 의장으로 추대해 주어야 한다. 해고협은 민주노총과 질이 다른 반파쇼 깃발아래 사회주의적 노동단체로 거듭나기 위해 한 위원장을 전국 해고협 초대 의장으로 추대하고 다음 정치투쟁을 준비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십시일반 여분의 후원과 노동력을 모아 노동해방투사로서 역사적 사건을 완수한 혁명의 영웅 민중총궐기 결사대장을 모시고 따라야 한다. 반파쇼 반독점 전장을 이끌고 노동자군대를 각성시키고 일반 노동자들을 떨쳐일어나게 한 공이 있다. 한위원장이 반파쇼 가투에서 승리를 쟁취한 개선장군으로 대접해주어야 한다. 그는 더이상 돌아갈 현장이 없고 이름이 팔려 현장 생활을 더이상 할 수 없다. 다른 민주노조 해고자와 노동해방 투사와 마찬가지로 생계문제와 활동조직의 부재로 시달린다. 이러한 싯점에서 남한의 의식적인 활동가들은 노동자평의회를 결의하고 적극적인 지지와 애정과 후원을 보내야 한다. 30여년동안 신자유주의의 화마속에서 노동조합과 공장을 지켜낸 혁명 일꾼이 여기 있다. 바로 한상균 위원장이다. 이제 합법정당이 많이 생겼고 노동운동 저변층이 넓어 졌으므로 우리는 대중적 노동운동을 지지하고 엄호할 의무가 있다. 사회민주주의자가 나서서 해고자를 이끌어야 하고 해고자 조직이 홀로 설 수 있도록 재정사업단을 꾸려 생계를 돌보고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기초를 세우도록 무한 열정을 쏟아야 한다. 후배 노동투사에게 노동해방의 전주곡을 들려줄 수 있도록 전국에 공장조직 네트워크를 건설해야 한다. 재야에서 나와서 재야로 돌아온 노동현장출신 수비대장 한상균 위원장이 남은 여생을 그가 꽃피운 노동조합에서 보낼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사랑과 존경을 바쳐야 한다. 선배가 하늘이고 선배가 선생이다. 노동자 선배가 망하면 후배 노조도 망한다. 프로레타리아트 투사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혁명과업을 결단하라!!<선봉>

  • 2018-06-06 08:16
    투쟁적인 운동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다만 현 시기에 변혁정당의 맹아의 존재라도 가능해야 저런 단체도 구성할 수 있을 텐데 그 동안 당건설 한다는 사람들의 소식이 너무나 형편없는 상황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