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침한 독방 내가 먹는 찬 그릇 묻어 온 고추씨 하나 흙도 없는 마룻장 한구석 솜뭉치를 흙을 삼아 조심조심 놓아 심고 자고 나면 물을 주어 정성껏 가꾸면서 애지중지 살펴 주니 감쪽같이 솟아났네 차츰차츰 새파랗게 움이 색색 자라더니 새싹은 땅에 박고 낡은 씨는 머리에 이고 방긋방긋 자라나네 너를 벗삼아 첫사랑의 설레임처럼 밤낮으로 쳐다본다 그믐밤에도 달은 있었다 출처: 김수룡...
권두시
녹두의 피와 넋을 되살려라!
김남주|시인 오늘도 새벽을 알리는 첫닭이 캄캄한 암흑의 밤을 깨우친다. 그때 갑오년 정월, 동진강변의 찬바람 속에 말없이 모여든 흰옷의 당신들이 보인다. 논밭의 푸르른 때는 날카로운 징벌의 죽창이 되어 탐관오리의 심장을 겨누었고 당신들의 부릅뜬 눈과 움켜진 주먹은 훨훨타는 횃불과 철퇴가 되었다. 봉건왕조는 안으로 더러운 관리들의 협잡과 착취와 압제로서 스스로 썩어가고 있었으며 밖으로는...
총파업은 우리를 자유케 한다!
에리히 뮈잠(Erich Mühsam)
증기기관일랑 세워두고,
길거리로 나가자 무산자여;
이전에 소유자였던 자더러
그 큰 바퀴를 돌리라 하자.
이제 파업하자, 인민이여, 예속의 사슬이 두동강이 날 때까지.
총파업은 진행 중이다,
총파업은 우리를 자유케 한다!
사과를 먹으면서
정설교|시인, 양심수 옥에서 맛보는 풋풋한 사과 한 알 우리농촌 구부러진 할머니들의 손 때 묻은 태양볕 감로 붉은 사과를 베어 물면 아들이 감옥에서 어서 돌아오기만을 축원하시며 서러움을 삭혀내는 팔순에 내 어머니 스물스멀 기어나오는 눈물자국이 보인다. [2013. 11. 7 작성. 옥에서 나에게 가장 감명을 준 책이 있다면 최상철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노동자...
향수
제일호|회원, 시인 개구리 산 마중 가던 타오르던 횃불이 쉬어가곤 하고 연밭 사이 사이로 짓밟힌 역사가 연산천으로 흘러나가던 곳. 일본군 숙소 낡은 일제 관사에 날품팔이, 막노동꾼 공순이, 공돌이 모여 인간으로 더불어 살던 곳. 물밀듯 밀려오는 서러움을 죽는다한들 지울 수 있으리. 수박향이 새어 나오는 이무기가 머무르던 우물가에...
그들이 처음 왔을 때
마르틴 니묄러(Martin Niemöller) 나찌가 공산주의자에게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그래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그래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에게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그래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태인에게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그래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1)...
나 자신을 노래한다
김남주|시인 <신으로부터 불을 훔쳐 인류에게 선사했던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의 자랑이라면 부자들로부터 재산을 훔쳐 민중에게 선사하려 했던 나 또한 민중의 자랑이다> 나는 듣고 있다 감옥에서 옹기종기 참새들 모여 입방아 찧는 소리를 들쑥 날쑥 쥐새끼들 귀신 씨나락 까는 소리를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왜 그렇게 일을 했을까 좀더 잘할 수도 있었을 텐데, 경박한 짓이었어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