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주 질긴 인연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 스치듯 한번 보는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제 가슴속 깊이 들어와 함께 손잡고 가고 있는 나를 봤어 자동차 매연에 기침을 달고 살면서도 가끔 찾아가 머쓱해 하는 나를 봐도 활짝 웃으며 손 꼭 잡고 인사하는 나는 미안한데 그대는 고맙다고 하네요 시간이 너무 오래 흘렀죠 그대는 지쳐 보이죠 모두가 떠난 어두운 광장에서 속울음 참는 그대를...
권두시
[권두시] 시대
정윤경 군화발의 시대는 끝났다 한다 폭력의 시대도 끝났다 한다 시대에 역행하는 투쟁의 깃발은 이젠 내리라 한다 허나 어쩌랴 이토록 생기발랄하고 화려한 이 땅에서 아직 못 다한 반란이 가슴에 남아 자꾸 불거지는 것을 무한경쟁의 시대가 도래했다 세계화의 전사가 되란다 살아남으려면 너희들 스스로 무장을 갖추라 한다 그 모든 전쟁에서 너희들이 만든 그 모든 전쟁에서 승전국의...
[권두시] 악마의 꼬리
고희림 | 편집위원 칼! 칼은 다정했다 새벽 숫돌에 갈려 먹을 것을 썰어주었던 어머니 정지 칼처럼 그러나 광장의 손으로 넘어온 민중의 칼은 한낮의 달처럼 흐지부지해졌다 보안법의 칼을 박물관 칼집에 넣겠다던 대통령은 먼저 죽었고 식민지의 치안법은 노동의 등을 찌르는 용산 아지트의 비수가 되었다 물! 물은 원래 스스로 흘러야 하는 착한 본성을 지녔으나 쪼그라든...
[특집: 우크라이나 전쟁 1년 / 권두시] 독일전쟁 안내 중에서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번역: 김남주 * 하이네ㆍ브레히트ㆍ아라공ㆍ마야코프스키,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김남주 역, 푸른숲, 1995, p. 161. 행진의 대열이 짜져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 열의 선두에 선 자가 적이라는 사실을 지휘하는 소리는 적의 소리 적이 적이라고 고함치는 놈 그 놈이 바로 적이다. * * * 다가오는 전쟁은...
[권두시] 비가(悲歌)―이주노동자(移住勞動者) 2023
조창익 | 회원, ≪현장과 광장≫ 편집위원장 우리가 본디 인간 세상에 들어왔으매 어찌 이주 정주가 따로 있겠는가 금수 세상 계속되니 가슴이 아파온다 어제는 황산 연기 마시고 오늘은 바다로 차였다 우리가 본디 평등하게 세상에 들어왔으매 어찌 이국 본국 따로 있겠는가 차별 세상 계속되니 가슴이 아파온다 어제는 백혈병으로 오늘은 화재로 죽어간다 吾等本來人間世 移住定住何別個...
[권두시] 五賊(오적)
김지하 * 김지하, “[담시] 오적”, ≪사상계≫ 제205호(1970년 5월), pp. 231-248. 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맞춤법, 띄어쓰기 등을 현행 규정에 따라 교정하지 않고, 원문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다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자에 독음을 달고, 편집자 주를 추가하였습니다. 詩시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럈다. 내 어쩌다 붓끝이...
[권두시]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낄라빠윤(Quilapayún) 번안: 김수경ㆍ이건범ㆍ김명진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노래하라 우리의 승리를 단결의 깃발 앞서 나가니 너와 나 함께 행진하리라 너의 노래 깃발이 온 세상을 덮고 붉은 새벽빛이 우리가 우뚝 서는 새날을 외치니 일어서자 우리는 이긴다 다가올 새날 더 좋은 날들 우리의 행복 쟁취하리라 수천의 외침 큰 파도로...
[권두시] 우리 생명의 길 선생님 노동과 함께
고희림 ∣편집위원 “죽일 테면 죽여라 어차피 이렇게는 못산다. 도로에서 죽고 싶지 않다.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끝없는 할부, 기름값, 다단계 수수료 늪에서의 화물연대가 파업을 했습니다 항만, 화학. 탱크로리 동지들은 늘 앞장입니다 정부는 선언합니다. 노동자는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도로에서, 건설현장에서, 일요일에도 일하다 죽어야 한다 자본의 이윤을 위해서, 너희는...
[권두시] 전사 1
김남주 일상생활에서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이름 빛내지 않았고 모양 꾸며 얼굴 내밀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시간 엄수가 규율엄수의 초보임을 알고 일분 일초를 어기지 않았다 그리고 동지 위하기를 제 몸같이 하면서도 비판과 자기비판은 철두철미했으며 결코 비판의 무기를 동지 공격의 수단으로 삼지 않았다 조직생활에서 그는 사생활을 희생시켰다...
[권두시] 청소년은 없다
김해화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던 국군 14연대가 제주 인민항쟁 진압 출병을 거부하고 미국이 내세운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여 봉기하였다 여수 순천 지역 인민들이 봉기군에 합세하면서 10.19 여순인민항쟁이 시작되었다 순천의 여러 학교 학생들이 봉기군과 함께 인민항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진압 이후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그이들은 열 네살에서 열 아홉살...
[권두시] 청소년은 없다 2
김해화 끓어오르는 가슴을 터뜨려버린 피에 젖은 가슴을 젖은 그대로 불살라버린 청년들이 있다 총칼을 앞세운 살인으로도 막을 수 없는 청년들의 불꽃이 두려웠던 제국주의는 그이들을 청년이 아니라 청소년이라고 부른다 여기 어디 청소년이 있는가 어느 시어로도 대신할 수 없는 이 청년들의 뜨거운 이름들 그대로 모셔 와 시로 새긴다 박제기 동생 남자18세 총살 오기수 동생 남자19세...
[권두시] 사회구조적 모순 ― 대통령제에 대하여
고희림 | 회원 대통령은 사회적 실체이다 윤석렬은 대통령이다 윤석렬의 몸은 이제 대통령을 표현하는 재료가 되었다 그의 몸은 예전의 그 몸이 아니다 즉 자연인으로의 몸의 특성들은 사상된다 그 몸은 대통령을 표현하는 형태가 된다 대통령 형태가 된다 노동생산물이 다른 노동생산물과 A=B라는 관계를 가짐으로서 가치형태가 되듯이, 이제 그가 대표자로서 국민 모두와 관계를 가짐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