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현장] 긴급한 과제, ‘정치ㆍ사상의 자유’ 쟁취에 함께 나서자―실천으로 표현되고 있는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 흐름 공유

김형균 | 회원(부산지회)

 

 

 

금요일 저녁이면 부산 서면 거리의 익숙한 풍경

 

유난히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부산 서면 거리에 방송차 한 대가 도착하면, 이동식 앰프가 놓이고 국가보안법 철폐가를 비롯한 민중가요가 울려 퍼진다. 노동조합이나 사회운동단체에서 참석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현수막이며 피켓들을 들고 자리를 잡는다. 선전전 대오는 오가는 행인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제법 큰 현수막에는 정치ㆍ사상의 자유 없는 민주주의는 사기이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라고 적혀 있다. 다른 현수막에는 반국가단체 북한과 회합한 문재인 대통령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하라?는 문구도 보인다. 양심수를 석방하라, 쪽팔린다 폐지하라!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은 개정이 아니라 폐지되어야 한다, 적폐 중에 적폐, 70년 국가보안법 시대 끝장내자~!라는 피켓들, 판문점선언, 평양선언 이행의 걸림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라는 현수막, 한반도 평화로 가는 새 시대에 국가보안법이 웬 말이냐~!, 반노동, 반민주, 반통일 악법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는 다소 많은 내용을 담은 현수막은, 민주일반연맹(부산지역일반노조)에서 만들어 와서 펼쳤다. 성능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이동식 앰프에서 행진곡 풍의 민중가요가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즉석 연사들이 마이크를 잡고 국가보안법의 본질을 폭로하고 그 폐지의 절박성ㆍ정당성을 이야기한다. 정해진 순서나 짜여진 각본이 없어도 즉석 연사들이 오가는 시민들에게 또는 참여자들에게 전달하는 정치연설이 힘차고 당당하다. 금요일 저녁에 부산 서면 거리에서 펼쳐지는 익숙한 풍경이다.

 

 

서면 거리의 특별한 선전전은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되었다.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의 필요성과 절실함을 느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작은 공동실천이다. 그것이 지난 1년 가까이 계속되면서 부산의 대표적인 집회 장소가 된 서면 거리(행정당국이 서면특화거리라고 이름 붙인 곳)를 자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익숙해진 하나의 풍경임에 틀림없다. 캠페인이 지속되는 동안 많은 변화도 감지된다. 처음에는 10명 미만의 소수가 시작하던 국가보안법 폐지 선전전이 지금은 얼핏 보더라도 참여 인원도, 단위도 제법 늘어나는 추세다. 지역의 익숙한 노조 간부들의 얼굴이 반갑다. 시민사회단체 소속 회원들의 참여도 늘어나고 있다.

 

 

부산지역에 나타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행동’들

 

박근혜 퇴진 촛불투쟁이 한창이던 2016년 말부터 부산 촛불대오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현수막이 등장했다. 지금은 그 문구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국가보안법 폐지, 국정원 해체를 내용으로 한 것은 분명하다. 촛불투쟁이 노동자ㆍ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두드러진 현상이었던 것처럼, 이러한 현수막을 제작하여 촛불대오에서 주목받던 행동 역시 누군가의 지극히 자발적인 실천임에 틀림없다. 박근혜 퇴진 구호만이 아니라 국가보안법 폐지, 국정원 해체를 요구하는 현수막은 촛불항쟁 내내 눈에 띄는 것이었다.

박근혜가 탄핵되면서 거리의 촛불도 현저히 줄었고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이 어부지리로 정권을 먹었다. 촛불대오에 나타났던 눈에 띄던 그 현수막 문구의 여운도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해(2017년) 11월에 국가보안법 철폐 필요성을 역설하는 대중강연회(강사: 장경욱 변호사)가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주최로 열렸다. 강연회는 하나의 이벤트에 불과했던 것일까? 그 이후 어떠한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았다.

 

그런데 해가 바뀌어 지난해(2018년) 4월에 4.27 남북 정상회담을 맞이하여 <국가보안법 폐지 부산지역 노동자 1000인 선언>을 조직하자는 제안이 SNS에서 나돌았다. 이때 즈음에 국가보안법 철폐 거리 선전전도 시작된 것 같다. 5월에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부산지역 1000인 선언자 일동>의 이름으로 시청에서 기자회견도 진행되었다. 부산지역 노동자 1000인 이상이 국가보안법 철폐 선언에 동참하고 기자회견까지 한 것은 참으로 반갑고 놀라운 일이다. 수만 명이 참여하는 촛불대오에 달랑 두어 개의 현수막으로 나부끼던 국가보안법 철폐 구호가, 이렇게 1,000명 이상의 부산지역 노동자들로 확산되었단 말인가! 누군가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을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움직이는 활동가들이 있다는 사실, 그것에 함께 호응하는 다수 노동자들의 존재를 확인하니 반가울 수밖에… 이어 6월에는 몇몇 단체들이 공동으로 주최한 <미군 없는, 국가보안법 없는, 한반도 평화실현 촉구대회>가 서면에서 열렸다. 거의 같은 시기에 SNS를 통해 국보법 철폐 부산공동행동 제안서가 노조와 지역의 사회단체에 전달되었다. 7월에는 민주노총부산본부가 국가보안법 철폐, 미군철수, 평화협정 체결 등을 요구하는 출근 선전전을 서면 로터리에서 진행했다.

 

지난해 11월 28일, <제정 70년! 국가보안법 철폐 부산시민 문화제>가 부산지역 36개 단체 및 단위노조의 공동주최로 열렸다. 격주 금요일마다 국가보안법은 폐지시켜야 할 악법이라고 외치고 있는 그 자리에서다. 200여 명 남짓으로 보이는 작은 규모의 집회였으나,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의 과제가 부상되었음을 확인한 셈이다.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을 볼 때 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한 것은 퍽이나 고무적이다.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부산지역의 공동행동의 지평이 넓어진 게 분명하다.

국가보안법은 70년 적폐라고들 한다. 일제하에서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던 치안유지법, 그것을 해방 이후 미군정과 더불어 이승만이 1948년 12월 1일에 국가보안법으로 만들었고, 그 법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가두고, 지금까지 탄압해 왔기 때문이다. 적폐 중의 적폐, 70년의 적폐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에 나서자는 의미를 담은 부산시민 문화제는 그래서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이러한 와중에 전국 곳곳에서 작은 움직임들이 감지된다. 여기저기에서 강연회가 열리고 청와대 앞 1인 시위 소식도 들린다. 그래 봐야 아직은 움직임 수준이다. 국가권력이 신경 쓸 만한 쟁점으로 확산되지도 않았고 투쟁전선이 형성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진보적인 단체에서 투쟁의 우선순위를 놓고 논의가 한창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국가보안법 폐지,

노동자ㆍ민중의 ‘당면 요구’이자 투쟁과제

 

노조 간부든 사회단체 활동가 누구든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할 악법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다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각자 강조점이 다소 다를 뿐이다. 남과 북이 평화와 번영을 논의하고 있는 시점에서 시대정신에 뒤떨어진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한다. 북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판문점선언, 평양선언 이행의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간첩을 조작하고 정권안보에 악용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ㆍ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출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등등.

그 이유를 병렬적으로 나열하면 수없이 많을 것이고 대부분 지극히 정당하고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반민주ㆍ파쇼악법들의 폐기투쟁이, 왜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의 당면한 집중적인 투쟁과제인지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 필자가 크게 공감하는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채만수 선생의 글을 길게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른바 촛불혁명이라는 이 특수한 정국에서 노동자계급은 무엇을 쟁취해야 하는가? 노동자・민중의 당면 요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노동자계급과 노동자계급 운동을 불구로, 기형으로 만드는 원인들과 조건들을 제거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당면의 과제・요구여야 하고, 쟁취해야 할 목표여야 한다. 현 정세에서 쟁취해야 할 당면 목표는, 무엇보다도, 국가보안법을 위시한 반민주・파쇼악법들과 그 제도・기구・관행・인물들을 폐지・척결하여 말 그대로의 민주주의, 특히 사상・학문・언론・결사・통신의 비밀의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어야 한다.

 

국가보안법을 위시한 저 음습한 반민주・파쇼악법들과 그 제도・기구・관행・인물들, 그리고 그에 의한 사상・학문・언론・결사・통신의 비밀의 자유의 합법적・파쇼적 억압이야말로 노동자계급을 불구의 계급, 기형의 계급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야말로 심지어 노동자계급 내에서조차 종북주의 운운하는 자들이, 아니 사실은 저들 극우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대는 저 종북종북주의라는 무기를 애초에 벼려낸 자들이 목청을 높이며 대거 행세하게끔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야말로 노동자들이 역사와 사회의 진실에 접근하는 것을 불가능하게끔 하고, 그럼으로써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의 발전을 가로막고, 노동자계급이 자신들의 정치조직, 자신들의 정당을 갖지 못하도록 억압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을 불구의 계급, 기형적인 계급으로 만들고 있는 원인이자 조건들이기 때문이다.

 

엥엘스는 언명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 결사 및 집회의 자유가 없이는, 어떠한 노동자운동도 불가능하다.

 

… (중략)

 

지금 광장이라는 정치적 공간은 어느 때보다도 활짝 열려 있고, 인민 대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하게 분출하고 있다. 이런 조건 하에서는 저들은 자신들이 헌법전에 써놓은 사상・학문・언론・집회・결사・통신의 비밀의 자유 등등을 문자 그대로, 철저하게 보장하라는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들 자유와 권리는 다름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요구일 뿐 아니라 본래 (소)부르주아의 자유이고 권리이자 요구이기도 하기 때문일뿐더러, 앞으로도 수개월이 남은 대선까지의 기간은 저 야심가들이 대중에 아부해야 할 기간이지 그 요구를 억압할 수 있는 기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들, 이러한 기간을 이용하여 노동자계급은 저들에게 민주주의를 보장하도록 요구하고 강요해야 하며, 선진노동자들은 반드시 민주주의를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을 노동자들에게 기필코 각인시켜 내야 한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언론의 자유, 결사 및 집회의 자유가 없이는, 어떠한 노동자운동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1) (강조는 인용자)

 

인용한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국가보안법을 위시한 반민주ㆍ파쇼악법과 제도들이 노동자계급을 불구의 계급, 기형의 계급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그것이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의 발전을 가로막고, 노동자계급이 자신들의 정치조직, 자신들의 정당을 갖지 못하도록 억압하고 있는 원인이자 조건들이기 때문에, 이를 제거하는 것이, 당면한 요구이자 집중적인 투쟁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정체성이 아니라 시민의 정체성으로 동원되어 촛불혁명이 이루어졌지만, 그 시민의 절대 다수가 이 사회의 계급구조상 사실은 노동자였다는 사실은, 그리고 그들이 승리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또 그리고 유력하게 대권을 노리는 야심가들과 그 집단들이 당분간은 그들 시민 즉 노동자들에게 아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사실은 노동자계급으로서는 쉽사리 만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이다. 요구와 강제, 투쟁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획득・확장하고, 그리하여 노동자계급의 해방이라는 궁극적 목적 해결을 위해 한 발 더 전진하는, 전진해야 할 절호의 기회이다.

 

그리고 그 민주주의의 획득과 확장은 무엇보다도 파쇼악법들을, 특히 헌법상의 인민 대중의 자유와 권리 조항들을 헛껍데기로 만들고 있는 저 헌법 제37조 제2항, 즉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 운운하는 조항을 개폐하는 것이어야 한다. 헌재가, 재판소들이 아무리 정치적이라고 할지라도 저 헌법 제37조 제2항이 없이는 국가보안법 등의 파쇼악법들을 합헌이라고 판결할 수 없는 것이고, 그러한 합헌 판결 없다면, 국가정보원 등 각종 파쇼기구들이 노동자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마구 짓밟을 수도, 나아가 그 기구들 자체가 존속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적어도 마구 짓밟기도, 존속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2) (강조는 인용자)

 

위의 인용문은 원 필자(채만수)가 촛불투쟁이 한창이던 시기와 박근혜 탄핵 직후에 발표한 글인데, 그 당시의 특수한 조건에서나 현재나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 주장의 기저에는 역사발전의 주체로서 노동자계급이 정치적ㆍ계급적으로 진출해야 하는 절박한 과제와 맞닿아 있다. 이러한 근거에서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파쇼악법 폐지투쟁에 대한 집중적 과제 제출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늘 피할 수 없는, 또 늘 닥쳐오는 정부와 자본의 공세에 직면해야 하는 현장 활동가로서는 생각이 복잡해진다.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진출을 가로막는 법적ㆍ제도적 장벽을 허물기 위한 투쟁과 정부와 자본의 직접적인 공세에 맞서야 하는 과제 사이의 연관 속에서, 또 모든 노동자 투쟁이 그 계급적 역량을 축적ㆍ강화하는 한편, 당면한 집중적 과제와 연관 속에서 파악할 필요도 느낀다.

 

 

국가보안법 폐지투쟁,

우선순위로 끌어올려야 할 ‘당면’한 과제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할 악법 중의 악법이라는 사실을 대부분의 주요 노조 간부나 사회 활동가들 중에서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투쟁방침ㆍ전술방침을 내와야 할 지도력들이 당면한 정세에서 투쟁의 우선순위를 따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노동조합의 경우에는, 노동력 판매조건을 확보ㆍ유지ㆍ개선하기 위한 투쟁에 가려 다른 모든 것은 후순위로 밀려난다. 경제위기(자본의 축적위기)의 손실을 노동자와 민중들에게 전가하는 정부와 자본의 공세는 대부분의 노동자들로 하여금 방어투쟁에 집중하게 하는 사정 때문이다.

이미 실업과 반실업(불안전고용문제)이 사회적인 문제가 된 지는 오래되었다. 노동자들이 촛불투쟁에 힘입어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정부가 남발한 장밋빛 공약들이 기만임을 알아차리자마자, 노동법 개악(탄력근로 확대, 최저임금법 개악, 교섭권 및 파업권 약화)ㆍ구조조정(광주형 일자리, 직무급제 도입 기도와 임금억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예고하는 인수합병 등)ㆍ공공부문 민영화(2019년 경제정책 방향에 공공시설 민간투자 확대) 압력이 거세지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와 자본의 노동정책에 대한 수가 뻔히 보이는 데도 경사노위(노사정위) 참여를 고집하는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과 일단의 노조 관료들은, 투쟁의 구심으로서 민주노총에 대한 대중적 신뢰를 갉아먹는 동시에 불필요하게 정력을 낭비하는 한심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으로 북핵을 둘러싸고 북미 간에 교섭국면이 벌어지자, 일명 통일운동 진영은 그 전개 과정에 일희일비하면서 그 실천적 방향타를 둘러싸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역력하다(물론 다는 아니다).

 

문제는, 노동자들이 노동력 판매조건을 둘러싼 과제에 한정된 투쟁 전개한다면, 시지프스의 돌덩이(!)처럼 제자리만 맴돌 뿐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전망을 열어 갈 수 없다. 매 시기 정세 속에서 올바른 전술방침을 구사하고 전망을 열어 갈 노동자계급의 역사적ㆍ정치적 진출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극소전자 혁명을 넘어 4차 산업 혁명이니 하는 거대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생산에 접목되면서, 또한 자본 간의 세계적인 극심한 경쟁으로 인해 벌어지는 과잉생산. 그리고 그에 따른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그것에 대한 어떠한 처방도 내놓지 못하는 채 숨을 헐떡이고 있다. 국가독점자본주의 시대의 국가는 그 위기관리의 보루이건만, 경제성장 수치의 유지를 위해 천문학적 재정을 투입하고 자본의 먹거리를 만들기 위한 정책을 펴지만, 결국 국가의 재정적자는 늘어나고 정부와 공기업 부채로 쌓이면서 위기관리 능력이 극히 협소해지는 형국이다. 자본 진영에서조차 70년대부터 도입하기 시작한(한국의 경우 97년 경제위기 이후 전면화) 신자유주의적 축적전략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볼멘소리를 하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다.

 

자본주의 생산의 속성상 노동자ㆍ민중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전통적인 방법 외에 아무것도 없고 노자 간의 계급대립은 격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노동력 판매조건을 확장ㆍ유지ㆍ개선하는 투쟁은 일상적인 것이고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더욱 격화될 수밖에 없다. 돌파구를 찾을 수 없는 자본의 위기하의 노동운동의 과녁이 어디를 향해야 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현실이다. 성장과 유지의 돌파구가 없는 자본의 위기, 전반적 위기의 시대에 노동운동은, 삶을 유지ㆍ개선하기 위한 당면한 투쟁으로부터 고통의 근본적인 굴레를 깨뜨리는 방향으로 모아져야 한다. 경제적인 투쟁과 노동해방ㆍ민중해방ㆍ인간해방의 전망 간의 간극은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부단히 결합시켜야 한다. 그것만이 위기의 시대에 전망을 움켜쥘 수 있고 당면한 투쟁을 힘차게 전개할 수 있는 길이다.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왜곡시키고 정치적 결사를 가로막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파쇼악법 폐기투쟁은 당면한 투쟁과제임에 틀림없다.

 

한편으로 북미 간의 교섭국면의 전개 과정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너무 과도한 기대로 인해 냉정한 현실을 과학적으로 직시하지 못하면 낭패다. 북미 간의 힘겨루기의 결과가 최상의 것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전제로 이야기해 보자. 종전선언이 이루어지고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상황 말이다. 그것은 조금만 들여다보면 결코 단번에 이루어질 수도 없고, 만약 그러한 가정이 현실이 된다면 어떤 성격의 것이든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이 여전히 미제국주의의 영향력 아래 내외 독점자본을 토대로 한 국가권력이 주도하는 사회라는 점이다. 북이 사회주의 사회라면, 남은 고도로 발달한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다(그것도 미제국주의에 종속된). 이는 생산수단을 독점적ㆍ배타적으로 소유한 자본가계급이 이데올로기 생산수단만이 아니라 온갖 법적ㆍ제도적ㆍ물리적 국가기구도 장악한 사회라는 당연한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가정이 현실이 되면 많은 변화를 수반하겠지만, 그래서 변화된 조건에서 변화된 전술방침이 필요하지만, 내외의 독점자본과 제국주의 역시 변화된 조건에서 고도의 작전(!)을 구사할 것은 불문가지다.

이러한 조건에서 유일한 변수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정세에 개입하여 독자적인 전술운용 주체로서 성장하고 결사하는 수준일 것이다(누구도 그것을 대신해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쪽의 노동운동이 집중할 지점은, 노동자계급 대중이 즉자적이고 왜곡된 자본의 혹은 소부르주아적 의식을 넘어 정치의식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 정치적ㆍ계급적으로 결사하는 것, 그것이 노동운동의 선진부대가 해야 할 항상적이고 집중적 과제임은 틀림없다. 노동자계급의 진출을 가로막고 정치적 성장을 왜곡시키고 있는 법적ㆍ제도적 장벽을 허무는 것이 당면한 집중적 투쟁이 되어야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투쟁,

그것은 지금 당장의 ‘시대적’ 요청

 

국가권력과 자본은 노동자들이 계급적으로 각성하여 정치적으로 결사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래서 자본은 국가기구를 비롯한 온갖 이데올로기적 생산수단을 가동하고 분할통제 씨스템을 구축하여 노동자들의 계급의식ㆍ정치의식의 발전을 교란하고, 노동자 간 경쟁을 유도하는 갖가지 분할통제 기제 설치와 정책을 추진해 왔다.

역사적으로도, 일제로부터 해방된 조선에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군정과 이승만 독재정권은, 한 손에 반공국가보안법을 다른 한 손에 국가폭력을 앞세워, 해방정국의 주도적인 세력이 된 노동자ㆍ민중의 조직과 사상을 무력으로 파괴하고 그 구성원들을 죽음으로 몰아서 말살시켰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자유민주주의(=자본가계급 독재)를 앞세워 해방사상에 재갈을 물렸을 뿐 아니라, 자본독재 하에서 허용될 만한 최소한의 기본권마저 철저히 파괴했다. 80년대 6월 항쟁과 7, 8, 9 노동자 대투쟁이 일정한 변수를 만들었지만, 그 이후 정권 역시 독점자본의 정치권력으로서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그 역사적 바탕 위에 서 있을 뿐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

 

80년 광주 항쟁, 87년 6월 항쟁과 7, 8, 9 노동자 대투쟁으로, 제한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열린 공간만큼 노동자들은 자주적ㆍ민주노조를 건설하고 정당을 만들어 제도권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ㆍ사상의 자유는 저들이 허용하는 테두리 내로 철저히 제한되었다. 그것이 87년 투쟁이 진척시킨 투쟁의 한계 지점이자 여전히 남은 긴급한 과제이다.

지금은 87년의 시대적 조건과 다르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노동자계급이 역사의 주체로 재조직되기를 강력하게 요구받고 있다. 역사적으로 세계적인 규모의 전쟁은, 과잉생산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지만 지금은 핵병기로 무장한 상황이라 선택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축적전략을 추진해 왔지만 그 부작용은 언제 체제 자체를 위협할지 모르는, 자신들의 목을 겨누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고 별다른 수가 없다. 생산은 사회적으로 수행되지만 생산된 가치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계급이 사적으로 전유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착취를 본질로 하는 자본주의는 폐기 처분해야 할 만큼 늙고 낡았다. 생산과 소비의 극심한 모순으로 인해 만성적 경제위기에 막혀 출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생산을 담당하는 사회 구성원들을 더욱 큰 고통의 나락으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고도로 발전한 생산력이 그 사회 구성원들이 골고루 풍요롭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작동될 수 있는, 발달한 생산력에 조응하는 씨스템으로의 교체가 불가피하다. 그 역사적 임무는 바로 피억압 노동자ㆍ민중의 과제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노동자계급이 즉자적 계급에서 대자적 계급으로 성장ㆍ발전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투쟁이 가장 긴급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

노동자ㆍ민중들이 역사와 사회의 진실에 접근하는 것을 불가능하게끔 하고, 그럼으로써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의 발전을 가로막고, 노동자계급이 자신들의 정치조직, 자신들의 정당을 갖지 못하도록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위시한 저 음습한 반민주・파쇼악법들을 철폐하고 사상・학문・언론・결사・통신의 비밀의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 당면한 요구이자 긴급한 과제이다. 노동자ㆍ민중의 정치적 진출은 그 장애물인 법적ㆍ제도적 공간을 열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각도에서 볼 때 국가보안법은 제국주의 지배의 산물이다. 제국주의는 이 땅의 지배계급과 한통속이고 국가보안법의 제정의 뿌리가 곧 미제국주의와 이승만 정권일 뿐만 아니라 분단의 뿌리와 맞닿아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은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노동자 민중의 피를 먹고 유지되어 왔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자주통일은 국가보안법을 위시한 파쇼악법을 폐지하고 노동자계급이 정치적ㆍ계급적으로 결사할 때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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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부산에 사는 사람으로서,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이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화하기를 바라는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부산지역에서의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움직임과 공동실천의 소소한 양상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적었다. 노동조합을 비롯한 기층 대중조직은 물론이고 민중운동 단체들조차 국가보안법은 폐지시켜야 한다는 데 공감하지만, 정작 당면한 요구이자 투쟁과제로 배치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쓴 글이기도 하다. 부디 노조 간부나 활동가들이 국가보안법 폐지 요구를 당면하고 긴급한 과제로 인식하고 공동투쟁에 나서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노사과연

 

 


1) 채만수, “‘촛불혁명’의 직접적 결과와 노동자계급”, ≪사월혁명회보≫(2017년 1월).

2) 채만수, “4월 혁명의 빛깔과 ‘촛불 혁명’의 빛깔―선진 노동자들의 과제와 관련하여”, ≪사월혁명회보≫(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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