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정세] 그래, 맘껏 비웃고 맘껏 조롱해라

채만수 | 소장 대행

 

 

 

어쩌다 노동자들이 파업이라도 하고, 시위라도 하면 그 진하디진한 적의를 감추지 않는, 극우 중의 극우 ≪조선일보≫는 역시 이번에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지난 1월 9일, 그러니까 국민은행 노동조합이 19년 만에 파업한 바로 다음 날의 ≪조선일보≫를 보라.

 

5500명 빠져도 혼란 없어 … 이것이 디지털 시대 은행의 현실

직원 30%가 머리띠 국내 최대은행 총파업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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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월 9일자 ≪조선일보≫ 경제 1면

 

 

가히 대문짝만한 크기의 제목과 부제목에서부터 적의를 넘어 비웃음과 조롱으로, 아니 언제고 승리할 거라는 짐짓 자신감으로, 그러나 또한 역시 억지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기사(정한국ㆍ최종석 기자, 문다영 인턴기자)가 경제면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다.1)

기사 내용은, 우선 KB국민은행 노동조합이 8일 19년 만에 총파업을 해서, 국민은행 측 집계에 따르면 전 직원 1만7000명 가운데 약 30%인 5500명(노조 추산 약 9000명) 안팎이 파업에 참여했…지만 우려와 달리 전국 1058개 지점이 한 곳도 빠짐없이 문을 여는 등 별다른 혼란은 없었다는 것이며, 실제로 이날 참언론인들인 ≪조선일보≫ 기자들은 서울 여의도와 마포, 강남 등 서울 시내 10개 지점을 둘러봤는데, 지점마다 파업으로 업무 처리 시간이 지연되거나 일부 업무가 제한될 수 있다는 대고객 안내문이 붙었지만 실제 분위기는 달랐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어떤 훌륭한 분인지 그 고명은 밝히지 않았지만, 아무튼 이날 파업을 지켜본 한 노동계 관계자의 말씀을 인용해, KB노조는 파업을 했는데도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해 오히려 존재감이 없다는 걸 스스로 입증한 꼴이라며 비웃고 조롱하고 있다.

그러면서 전 직원 1만7000명 가운데 약 30%인 5500명(노조 추산 약 9000명) 안팎이 파업에 참여했지만, 그로 인해 업무 처리 시간이 지연되거나 일부 업무가 제한되지 않고 별 혼란은 없었던 이유를 ≪조선일보≫는 이렇게 분석한다.

 

이미 인터넷 금융 거래가 보편화한 영향으로 보였다. 작년 상반기 기준 국민은행의 모바일ㆍ인터넷 뱅킹 비중은 86%에 달한다. ATM 이용까지 합하면 90%가 넘는 상황이다. … 직원 3분의 1이 안 나와도 지점이 멀쩡하게 문을 열고 큰 불편도 없는 상황은 디지털 시대에 은행 지점이 마주한 현실 운운.

 

상황이 그러하니, (자신감을 얻은 어느 시중 금융회사 고위 임원의 말씀을 빌려 일갈하되) 노조가 지금 성과급 갖고 파업 운운할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결국, 그런 현실, 그런 처지니, 주면 주는 대로 받고,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하면서 그저 노예처럼 살아가라는 뜻이다.

인격화된 자본으로서의 자본가나 그 대변인으로서야 물론 하고도 남을 얘기들이다. 그러나 앞뒤 안 맞는 억지는 부리지 말아야지!

한편에서는 직원 3분의 1이 안 나와도 지점이 멀쩡하게 문을 열고 큰 불편도 없는 상황은 디지털 시대에 은행 지점이 마주한 현실이며, 그러한 현실을 자신들이 실제로 둘러보며 확인했다고 떠들어대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자영업자들(물론 자신들이 누구의 매에 맞아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부 순진한 자영업자들)의 말이라며, 국민은행은 이곳 영세 봉제업체들에서 번 돈으로 영업하는데, 파업을 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느니, 내가 낸 이자로 월급 받으면서 이럴 수 있느냐느니, “‘국민이라는 이름을 달았으면서 밥그릇 챙기기만 나서고 있다느니, 혹은 어떤 노예적ㆍ이기적 교육을 하시는 고매한 선생님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 광화문지점에서 만난 초등학교 교사 오 모(49ㆍ서울 종로구) 씨의 말씀이라며, 억대 연봉 받으면서 일하는데 시스템은 툭하면 점검 시간이라고 하고 오류도 잦다. 고객 서비스부터 제대로 했으면 한다느니 하면서 예의 악선전ㆍ악선동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곁가지로 말씀드리자면, 오 모 선생님, 억대 연봉 받으면서 일하는데라고요? 억대 연봉 받으면서 일[?][시] 분들은, 같은 은행에서 일하지만, 결코 파업에 참가하지 않는다오! 억대 연봉, 그것은 파업에 적대적인 저 높으신 분들의 연봉이고, 그들의 그 지위만큼이나 높디높은 연봉 때문에 올라간 평균치에 불과하다오, 이 양반아!

그런데, 이러한 극우적 악선전ㆍ악선동에 권위를 실어주는 천하의 전문가들의 고명(高名)과 말씀도 여기에 밝혀드리지 않는다면, 있어서는 안 되는 실례를 범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에 적어 두건대,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현재 자영업자, 서민 생활이 어려운 상황인데 자기들이 낸 이자로 월급을 받는 고임금 근로자들의 파업 소식이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면서 경영진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공공성이 강한 은행의 고액 연봉자들이 임금피크제 등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스스로 풀지 못한 채 애꿎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인 셈이 됐다고 말했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한 위기관리협의회를 열고 일반 기업과 달리 은행은 국민 경제의 핵심 인프라여서 파업으로 인한 국가적 손실도 크다국민은행은 국내 최대 은행인 만큼 영향도 커 더욱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          *          *

 

그건 그렇고, 그렇다면 우리는, 노동자는 이 사태를 어떻게 봐야 할까?

우리는 물론 전 직원 1만7000명 가운데 약 30%인 5500명(노조 추산 약 9000명) 안팎이 파업에 참여해도 전국 1058개 지점이 한 곳도 빠짐없이 문을 여는 등 별다른 혼란은 없었다는 것. 바로 이것이 디지털 시대 은행의 현실’”이라는 것을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실제로 현실이니까!

그리고 나아가서는, 현재의 추세, 인공지능이니 뭐니 하면서 비약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조만간에 전 직원 1만7000명 가운데 50%, 아니 60% 이상이 파업해도 (그때는 이미 그 숫자조차 엄청 줄어든) 지점이 한 곳도 빠짐없이 문을 여는 등 별다른 혼란은 없는 것이 디지털 시대, 인공지능 시대 은행의 현실될 수 있다는 것조차도 인정해야 한다.

아니! 조만간에 은행뿐 아니라, 사실상 모든 직종, 모든 부문에서 그러한 상황이 현실될 수도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데 정말 그런 상황이 정말 현실이 될까?

앞에서 그러한 상황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고 한 것은 사실은 인간을, 보다 정확히 얘기하면, 노동자계급을 무골충과 같은 존재로 전제한 위에서의 가정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노동자계급은 결코 무골충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저항하고 투쟁하는 존재다.

최근의 상황 전개가 그러한 상황을 너무나도 절실하게 예고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너무나도라고 할 만큼 자주 인용하고 있고, 심지어 이번 호의 다른 글(<자료>의 한국경제, 무엇이 문제인가 ― 혹은, 한국경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도 인용하는 대목이지만, 이미 한 세기 반 전에 맑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노동자의 절대수를 줄이는, 즉 국민 전체로 하여금 실제로 보다 적은 시간에 총생산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생산력의 발전은 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인바, 왜냐하면, 그것은 인구의 다수를 용도폐기할(außer Kurs setzen)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자본주의적 생산의 독특한 한계가 나타나고, 또 자본주의적 생산이 결코 생산력의 발전이나 부의 생산을 위한 절대적인 형태가 아니라, 오히려 일정한 시점에서 그 발전과 충돌하게 된다는 것이 나타난다.2) (강조는 인용자.)

 

그렇다. 생산도구들을, 따라서 생산관계를, 따라서 전체 사회적 관계를 끊임없이 혁명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3) 부르주아지가 지금 전개하고 있는 과학기술혁명, 그 추세는 바로 노동자의 절대수를 줄이는, 즉 인구의 다수를 용도폐기하고 있는 그것이며, 그리하여 필연적으로 혁명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그것이다.

노동자계급에게 남은 과제는, 새로운 사회를 낳는 산고(産苦)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방책들을 마련하는 것, 즉 노동자 대중의 정치적ㆍ사회적 의식을 높이고, 그들을 노동조합으로뿐 아니라 굳건한 정치조직으로 묶어내고, 그들을 인도할 정치적 참모부,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정당을 결성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등 자본의 온갖 합법적ㆍ불법적, 물리적ㆍ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억압과 회유를 극복하면서 노동자계급이 이 과제를 완성할 때, 조만간 반드시 올 수밖에 없는 그때가 바로 해방의 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없는 새로운 고도의 사회가 열리는 날일 것이다.

물론 저들 자본과 그 극우적 대변인들은 자신들의 명운이 촌각에 달했음을 실감할 때까지는 이것이 디지털 시대의 노동자의 현실 운운하면서 노동자들의 투쟁을 비웃고 조롱하겠지만 말이다.

그래, 맘껏 비웃고, 맘껏 조롱해라. 아직까지는 엄연히 니들의 세상이니까!  [노/사/과/연]

 

 


 

1) 인터넷 판 기사는 다음의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08/2019010802944.html>.

 

2) ≪자본론≫ 제3권, MEW, Bd. 25, S. 274.

 

3) ≪공산당 선언≫, MEW, Bd. 4, S. 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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