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중앙 위원회 정치보고(4)

쏘비에뜨 연맹 공산당(볼쉐비끼) 제14차 대회에서 한 보고

1925년 12월 18일 저서

이오씨프 쓰딸린(Иосиф Сталин)

번역: 신재길(교육위원장)

 

 

[차례]

Ⅰ. 국제 정세

1. 자본주의의 안정

2. 제국주의, 식민지 및 반식민지

3. 전승국과 패전국

4. 전승국들 사이의 모순

5. 자본주의 세계와 쏘비에뜨 연맹

6. 쏘비에뜨 연맹의 대외 정세

7. 당의 임무

Ⅱ. 쏘비에뜨 연맹의 국내 정세

1. 국내 경제 전반

2. 공업과 농업

3. 상업 문제

4. 각 계급, 그들의 움직임, 그들의 상호 관계

5. 농업 문제에 대한 레닌의 세 가지 구호

6. 당의 임무

Ⅲ. 당

 

 

5. 농업 문제에 대한 레닌의 세 가지 구호

중농에 대한 우리의 방침은 옳았는가? 새로운 방침은 원칙적인 측면과 어떻게 부합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레닌의 지시는 있는가?

 

흔히들 코민테른 제2차 대회의 농민에 대한 결의를 언급한다. 결의에는 정권 쟁취를 위한 투쟁기에 노동 계급의 동맹자는 오직 빈농이며 중농은 중립화 대상이라고 지적하였다. 이것은 옳은가? 옳다. 이 결의안1)을 쓰면서 레닌이 염두에 둔 것은 아직 권력을 장악하지 못한 당이었다. 그러나 우리 당은 이미 정권을 장악한 당이다. 바로 여기에 차이가 있다. 농민 문제에 대하여, 노농 동맹이나 개별적 농민과의 동맹에 있어서, 레닌주의는 혁명의 세 시기에 부합하는 세 가지 기본 구호가 있다. 중요한 점은 첫째 구호에서 둘째 구호로 둘째 구호에서 셋째 구호로 넘어 가는 순간을 옳게 포착하는데 있다.

 

이전에, 부르주아 혁명을 수행하며 우리 볼셰비키가 처음으로 농민에 대한 전술을 그릴 때, 레닌은 입헌주의(Cadet) 부르주아지를 중립화시키는 동시에 짜르와 지주들을 반대하는 전체 농민과 동맹할 것을 주장하였다. 당시 이 구호를 들고 부르주아 혁명을 수행하였고, 우리는 승리하였다. 혁명의 첫 단계였다.

 

그 후, 둘째 단계 즉 10월 혁명에 이르렀을 때, 레닌은 새로운 정세에 부합하는 새로운 구호 즉 중농을 중립화시키고 모든 부르주아를 반대하는 노동 계급과 빈농의 동맹이라는 구호를 내놓았다. 이것은 정권을 쟁취하지 못한 공산당의 기본 구호이다. 그리고 정권을 장악하였더라도 아직 권력이 공고하지 못한 때에는 중농과의 동맹은 기대할 수 없다. 중농이란 형세를 살피는 인간들이다. 중농은 누가 승리하는가를 엿보면서 기다리다가 우리가 지주와 부르주아를 몰아내고 승리한 때에야 비로소 우리와 동맹을 맺으려 한다. 바로 그렇기에 이들을 중농이라고 한다. 따라서 혁명의 둘째 단계에 우리는 노동자와 전체 농민의 동맹이라는 구호가 아니라 노동 계급과 빈농의 동맹이라는 구호를 들고 전진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어떻게 하였나? 그 후 우리는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을 물리쳤고, 권력을 충분히 공고히 하였으며, 전면적인 사회주의 건설 시기에 들어섰다. 이 때 레닌은 셋째 구호 즉 노동 계급과 빈농이 중농과 공고한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구호를 제기하였다. 이 구호는 우리 혁명의 새로운 시기 즉 전면적 건설 시기에 부합하는 유일하게 정당한 구호이다. 이 구호가 지금 이러한 동맹이 가능하기 때문에만 정당한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를 건설하는데 있어 수백만이 아니라 수천만의 농민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달리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는 없다. 사회주의는 도시에서만 건설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는 생산수단과 생산도구의 사회화에 기초하여 공업과 농업이 통일된 경제구조이다. 이 두 경제 부문이 통일되지 않고서는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농민과의 동맹에 대한 레닌주의의 구호이다.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서 레닌이 한 말은 전적으로 옳다. 아직 권력을 쟁취하지 못하였거나,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아직 공고하지 못한 때에는 오직 빈농과만 동맹을 맺을 수 있고, 중농은 중립화만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정권을 장악하고 강화하여 건설이 시작되고 이미 수천만 명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때에는 노동계급과 빈농이 중농과 동맹을 맺는 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구호가 된다. “노동 계급과 빈농의 동맹”이라는 낡은 구호에서, 즉 중농의 중립화라는 낡은 구호에서 중농과의 공고한 동맹이라는 구호로 넘어 가는 것은 이미 우리당 제8차 대회에서 제시되었다. 이 대회에서 레닌이 한 개회사의 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지난날 사회주의의 훌륭한 대표들은−그들이 여전히 혁명을 확신하고 이론이나 사상적으로 혁명에 복무하고 있을 때−농민을 중립화시켜야 한다고 말하였다. 즉 중농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지는 못해도, 혁명을 방해하지 않고 적의 편에 가담하지 않는 중립적인 사회계층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개괄적인 이론적 제기는 우리에게 매우 분명하다. 그러나 충분하지는 않다. 우리는 사회주의 건설단계에 들어섰다. 우리는 농촌 사업의 경험에서 검증된 기본적 규정과 지침을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만들어 내야 한다. 이 규정과 지침들은 우리가 중농과 공고한 동맹을 이루기 위한 안내서가 되어야한다.”2)(고딕은 나의 것-쓰딸린)

이것이 현 역사적 시기에 중농과 공고한 동맹을 맺으려는 당 정책의 이론적 기초이다.

 

레닌의 코민테른 제2차 대회 결의안을 가지고 레닌의 위의 말을 반박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솔직히 말해 보라.

 

문제의 이론적 측면은 이렇다. 우리는 레닌의 이론을 개별적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파악한다. 레닌은 농민에 대한 세 가지 구호를 제시했다. 하나는 부르주아 혁명기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10월 혁명기의 것이며, 세 번째는 쏘비에뜨 권력이 공고화된 이후의 것이다. 이 세 가지 구호를 어떤 하나의 일반적 구호로 바꾸려는 사람은 엄중한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이론적 문제가 이와 같다면 실천적 문제는 다음과 같다. 즉 우리가 10월 혁명을 단행하여, 지주들을 내쫓고, 토지를 농민에게 분배한 후에, 레닌이 말한 것처럼 확실히 러시아는 어느 정도 중농의 나라가 되었다. 계급 분화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중농이 농촌에서 다수를 차지한다.

 

물론 계급 분화는 진행되고 있다. 신경제 정책시기인 현 단계에서 다른 길은 없다. 다만 분화 과정은 완만하다. 얼마 전에 중앙 위원회 선동 선전부가 발행한 것으로 여겨지는 지도서와 만약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레닌그라드 조직의 선동 선전부가 발행한 다른 지도서를 읽었다. 이 지도서들에 의하면 짜르 시대에 우리나라에 빈농이 약 60% 가량 있었는데 지금은 약 75%가 있고, 부농은 약 5% 가량에서 8%내지 12%가 되었다고 하며, 중농은 매우 많았지만 지금은 적어졌다고 한다. 악담 할 생각은 없지만, 이 수치들은 반혁명보다도 더 나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맑스주의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것을 꾸며내고 더욱이 출판물에, 그것도 지도서로 출판할 수 있는가? 중앙 위원회 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물론 나도 역시 이 믿기지 않는 과오에 책임이 있다. 짜르 시대에는 부농 육성 정책이 실시되었고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가 존재하였으며 토지를 사고 팔 수 있었다.(이것은 특히 계급 분화를 격화시킨다.) 또 당시의 정부는 전력을 다해 계급 분화를 촉진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농이 60% 이하였다고 한다. 우리 정부, 쏘비에뜨 정부 시대인 오늘날에는 사적 소유가 없고 즉 토지 매매가 금지되고 따라서 계급 분화가 저지되고 있으며, 2년 간 부농 청산을 수행하였고 아직도 부농 청산을 위한 일체의 방법을 버리지 않고 있으며, 또 계급 분화를 저지하기 위한 특별한 신용 정책과 협동조합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제한 속에서 우리나라에 짜르시대보다도 훨씬 더 많은 계급 분화가 일어 날 수 있으며 과거보다 부농과 빈농이 훨씬 더 많아질 수가 있겠는가? 맑스주의자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할 수 있는가? 이것은 희극이며 동시에 비극이다.(웃음)

 

6월에 발표된 중앙 통계국의 비참한 곡물 사료 결산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이 결산에 의하면 잉여 시장 곡물의 61%를 부농이 가지고 있고, 빈농은 하나도 없으며, 중농이 나머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어처구니없는 것은 몇 달 후 중앙 통계국이 61%가 아니라 52%라는 다른 수치를 발표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최근에 중앙 통계국은 이번엔 52%가 아니라 42%라는 수치를 발표하였다. 이런 식으로 계산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중앙 통계국이 과학의 요새라고 믿는다. 중앙 통계국의 수치가 없이는 어떤 기관도 결코 계산하고 계획할 수 없다. 중앙 통계국은 어떤 선입견에도 사로잡히지 않은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입견에 따라 수치를 맞추려는 시도는 형법상 범죄이다. 그러나 이후 중앙 통계국 자신이 스스로의 수치를 믿지 못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간단히 말해, 우리가 토지 혁명을 한 결과로 농촌은 중농화 되어, 계급 분화에도 불구하고 중농이 농촌에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의 건설 사업과 레닌의 협동조합 계획은 농민대중의 광범한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중농과의 동맹 정책은 신경제 정책의 조건에서 유일하게 정당한 정책이다.

 

이상이 문제의 실천적 측면이다.

 

레닌이 신경제 정책을 논증하면서 어떻게 우리의 과업을 정식화하였는가를 보자. 여기 레닌의 소책자 ≪현물세에 대하여≫의 초고가 있다. 기본 지침이 간단명료하게 규정되어 있다.

“지금은 생산물의 증가가 중심축이자 시금석이 되고 있다(아니 이미 되었다). … 따라서 농업에서 중농에 ‘기대’를 걸 것.

부지런한 농민은 우리 경제 성장의 ‘중심인물’”3)

이와 같이 레닌은 농업에서의 중농에 대한 기대와 우리 경제의 고양을 위한 중심인물로 부지런한 농민을 1921년에 언급했다.

 

동지들, 이 사상이 우리당 제14차 4월 대표자회의에서 채택한 결정과 농민에 대한 양보의 기초이다.

 

제14차 4월 당대표자회의 결의는, 제14차 대표자회의 결의들이 만장일치로 채택된 것처럼, 10월4)에도 만장일치로 채택된 빈농 속에서의 사업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중앙 위원회 10월 전원회의에서 제기된 기본 임무는 4월 대표자회의에서 수립된 정책, 즉 중농과의 공고한 동맹 정책의 혼란을 막는 것이었다. 우리당내에 중농과의 공고한 동맹 정책이 잘못이라거나 부적당하다는 분위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중농과의 공고한 동맹 정책이 마치 빈농을 무시하는 것처럼, 마치 빈농을 배제하고 중농과의 공고한 동맹을 맺으려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위기다. 이는 바보 같지만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가 존재한다. 10월 전원회의에 모였을 때 빈농 문제가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었는가? 아니다. 빈농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빈농과 동맹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이것을 레닌의 소책자 ≪빈농에게 고함≫5)이 1903년 처음 발표된 때부터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농촌에서 빈농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에 맑스주의자이며 공산주의자인 것이다. 그밖에 누구에게 의거하겠는가? 이 문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4월이나. 10월이나, 대표자회의에서나, 중앙 위원회 전원 회의에서나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으며, 새로운 것일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결국 빈농문제가 제기된 것은 쏘비에뜨 선거와 관련이 있다.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나? 우리는 쏘비에뜨를 부흥시켰으며, 쏘비에뜨 민주주의는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랬는가? 쏘비에뜨 민주주의란 노동계급의 지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떤 쏘비에뜨 민주주의도 노동계급과 그 당의 지도가 없다면 진정으로 쏘비에뜨적이며 프롤레타리아적인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그런데 노동계급의 지도하에서의 쏘비에뜨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농촌에 노동계급의 대리자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대리자는 누구인가? 빈농의 대표자들이다. 우리가 쏘비에뜨를 부흥시켰을 때 빈농은 어떤 처지에 있었는가? 매우 분열되고 분산된 상태에 있었다. 당시에 일부 빈농들만이 아니라 몇몇 공산당원들도 부농 청산과 행정적 억압의 포기는 곧 빈농의 포기이며 빈농의 이익을 무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농과 조직적으로 투쟁하는 대신에 부끄럽게도 투덜대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했는가? 첫째, 제14차 당대표자회의에서 제시된 당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 필요했다. 빈농에 대한 물질적 원조를 위한 조건, 방법 및 수단을 결정해야 했다. 둘째, 쏘비에뜨 선거, 협동조합 선거 등등의 시기에 중농을 얻고 부농을 고립시키는 공개적 정치투쟁을 수행할 특별한 빈농단체를 조직할 구호를 제기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사실 몰로또프 동지가 빈농 속에서 수행할 사업에 대한 테제에 있다. 이 테제는 몰로또프 동지가 중앙 위원회 농촌 위원회에서 3개월 동안 진행한 사업의 결과이다. 중앙 위원회 10월 전원회의는 이 테제를 만장일치로 승인하였다.

 

알다시피 중앙 위원회 10월 전원회의의 결의는 제14차 당대표자회의 결정의 직접적인 연장이다.

 

첫째, 빈농의 물질적 형편을 향상시키기 위해 물질적 지원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기할 필요가 있었으며 둘째, 빈농을 조직할 구호를 제기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몰로또프 동지가 새로이 제안한 것이며, 빈농단체를 조직할 데에 대한 구호도 그의 의견이다.

 

왜 빈농단체를 조직할 구호가 필요하였나? 이 구호는 빈농의 분산성을 끝내고 공산당원의 지원 하에 빈농이 부농에 대한 투쟁과 중농을 쟁취하는 투쟁에서 농촌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적 보루로서의 자립적 정치 역량이 되도록 하기 위해 필요했다. 빈농은 아직도 의존 심리에 물들어 있다. 국가 안전국이나 지도부, 그 밖의 어디에나 의존하려 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자기 힘은 믿지 않는다. 이런 소극성과 의존성에서 빈농을 해방해야만 한다. 빈농이 마침내 자기발로 서서 공산당과 국가의 원조 하에 단체를 조직하고 쏘비에뜨에서, 협동조합에서, 농촌 위원회에서 그리고 농촌 사회 곳곳에서 국가 안전국에 호소하는 방법이 아니라 정치적 투쟁의 방법으로, 조직적 투쟁의 방법으로 싸우는 법을 배우도록 구호를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빈농이 단련되고, 그래야만 빈농이 조직될 수 있고, 그래야만 농촌 빈농이 의존적 집단에서 농촌 프롤레타리아트의 보루가 될 수 있다.

 

이것이 10월에 빈농 문제를 제기한 이유이다.

 

(다음 호에 계속) <노/사/과/연>

 

1) 레닌, ≪농업 문제에 대한 테제 초안(코민테른 제2차 대회를 위하여)≫, Lenin Collected Works: Volume 31, pp. 152-164.

2) Lenin Collected Works: Volume 29, p. 144.

3) Lenin Collected Works: Volume 32, p. 323.

4) ≪빈농들 속에서의 당 사업에 관하여≫라는 V.M 몰로또프의 보고에 입각하여 러시아 공산당(볼셰비끼) 중앙 위원회 전원회의(1925년 10월 3-10일)가 채택한 결의문을 말한다.(≪쏘련공산당(볼) 대회, 회의 및 중앙위원회 결의와 결정≫ 2권, 1941, pp. 38-41 참조)

5) Lenin Collected Works: Volume 6, pp. 359-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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