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헤게모니 이행기에 전쟁은 필연적인가?―전쟁의 원인, 경제와 전쟁의 순환구조 그리고 미중대결

신재길 | 교육위원장

 

[차례]

1. 전쟁의 원인은 무엇인가?

2. 경제와 전쟁의 순환구조; 역사적 경향

ㄱ. 전자본주의 사회

ㄴ. 과도기 사회

ㄷ. 자본주의 사회

3. 미중 대결과 새로운 패권이행기

4. 북핵의 의미 – 한반도의 지정학적 지위의 변화

 

 

1. 전쟁의 원인은 무엇인가?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무력으로 자신의 의지를 상대에게 강요하는 정치의 연속으로 이해하였다. 전쟁이 정치의 연속이라는 점을 잘 지적한 견해이다. 이는 전쟁의 본질을 간명하게 말해주고 있지만, 전쟁의 원인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맑스주의는 전쟁을 생산 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와 이로부터 결과하는 적대적 계급으로 사회가 분열되면서부터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으로 본다. 이렇게 볼 때 맑스주의에서는 전쟁은 계급투쟁이며 그 원인은 경제적 관계이다. 자본주의 특히 제국주의 단계에서는 부르주아지의 이윤과 권력 추구가 직접적 전쟁 원인이 된다. 그러나 구쏘련의 핀란드 침공이나 헝가리 침공,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은 제국주의 단계에서 부르주아지의 이윤과 권력 추구나 반제국주의 전쟁으로 설명하기에 한계가 있다. 특히 중소 간의 무력 충돌은 더욱 설명이 궁색해 진다. 그래서 현대 정치학의 현실주의자들은 지정학적 요인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현실주의 정치학에서는 전쟁의 원인을 국제관계의 구조적 원인에서 찾는다. “국제관계는 무정부상태에서 독립적인 행위자들이 부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하여 벌이는 끝없는 갈등의 연속이다.”1) 이런 국제관계의 무정부 상태에서 개별 국가가 모두 생존을 추구하면서 전쟁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군사력과 지정학적 위치를 전쟁 승패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본다. 현실주의자들은 국제관계가 무정부적 상태의 독립적 행위자인 국가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국가는 생존을 목적으로 하며 그러기에 패권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는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국가 간에 적용한 것이다.

전쟁은 사회적 현상으로 사회의 특정한 조건이나 특성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계급분화나 무질서 상태가 그러한 사회적 조건이나 특성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계급분화를 전쟁의 원인으로 본다면 원시시대에도 전쟁이 있었다는 증거들을 설명하기 곤란하고, 사회는 형성초기부터 일정한 질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무질서한 상태가 전쟁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전쟁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전쟁의 원인이 되는 사회의 특성을 밝혀내야 한다. 이러한 사회의 특성을 탐구하기 위해 홉스로부터 시작하자.

홉스는 인간의 본성을 이기적 존재로 보고, 자기보호 즉 생존을 최우선시 하였다. 홉스의 사고는 개인이라는 독립적 존재를 전제한다. 이런 독립적 개인이 계약을 맺어 사회를 이루고 국가가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회나 국가는 개인이 먼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이들의 관계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독립적 존재로서의 개인은 근대의 산물일 뿐이다. 근대 이전의 개인은 언제나 집단 속의 객체였다. 이는 사회가 먼저인가 개인이 먼저인가라는 논쟁, 진화론에서 자연선택의 주체가 집단인가 개체인가 유전자인가의 논쟁과 연관되는 문제이다. 다른 생물에 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겠으나 인간의 경우는 사회가 개인보다 먼저고, 자연선택의 주체는 집단이다.2) 유인원의 무리집단이 인간 사회로 전환한 것이지, 유인원이 개별적으로 인간으로 진화한 다음, 즉 독립적 개인이 형성 되고나서, 개인들 간의 계약을 통해 사회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유인원 무리는 지난한 세월을 집단적으로 생활하면서 무리집단 속에서 특이한 속성이 생성되고, 이 특이한 집단적 속성이 집단 속에서 개인에게 교육되고 전이된 것이 개인을 형성하는 근원이다. 이 특이한 집단 속성이 사회를 이루는 본질이다. 유인원은 동물적 무리의 속성과 구분되는 사회적 속성을 획득함으로써 사회를 만들고 인간으로 진화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동물무리와 구분되는 사회적 속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과의 관계에서 생존원리로서의 지배성과 이 지배성의 발현 주체인 사회(인간집단)를 성형하는 원리로서의 집단성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자연에 순종하거나 적응하면서만 살아가지 않는다. 인간은 자연을 개조하고 변형시켜 지배하면서 자신의 생존을 담보한다. 옷을 해 입고, 불을 이용하여 날씨의 한계를 극복하고, 동물을 길들여 가축으로 기른다. 결국 농경을 시작하여 정주하고, 사회를 형성하여 자연으로부터 독립한다. 농경이 시작될 시기에 육상의 척추포유동물 중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객체 수는 0.1%에 불과하였지만 현재는 98%를 넘는다고 한다. 자연으로부터 독립한 인간 사회는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면서 현재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생존원리로서의 지배성이다. 동물일반에 적용되는 자연 적응성이 아니라 자연을 변화 개조시키는 지배성이 인간 사회의 고유한 특징이다. 자연에 적응하고자 한 유인원 집단은 사라지고, 자연을 지배한 유인원 집단만 사회를 이루고 살아남았다.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집단적 과정 속에서 정교한 소통이 필요하였고, 그리하여 언어가 나타났다.3) 언어의 출현은 다시 의식의 고도화를 가속시켰다. 따라서 인간의 고도한 의식성은 사회적 속성인 것이지, 생물학적 속성이 아니다. 이는 늑대 소년의 예에서 실증된다. 늑대소년은 생물학적 조건은 인간이었지만, 사회에서 성장하지 못하였기에 언어를 습득할 수 없었다. 즉 의식이나 언어는 사회에서 형성되는 것이지 생물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의식 개념은 단순히 이성적 계산능력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상호 관계에서 형성되는 제반 감정과 사고 작용, 잠재의식, 사회(집단)의식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이다. 이러한 언어의 정교화와 의식의 고도화는 인간집단의 크기에 영향을 받는다. 자연을 정복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집단의 크기가 클수록 유리하다. 집단이 커진다는 것은 인간관계가 복잡해진다는 의미이며 인간 집단의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호협력이 필수적이다.4) 이러한 인간사회의 속성이 집단성이다. 협력이 잘 이루어진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 집단성의 발현은 개인의 산술적 합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단순 분업만 생각해봐도 집단성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집단성은 사회제도의 형성원리이기도 하다. 일정정도 이상 크기의 집단은 제도를 통하지 않고는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집단성은 개성이라는 전혀 다른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 개성이란 집단의 구성요소인 개인의 능력과 역할이다. 집단이 커지거나 정교화・고도화됨에 따라 개성도 발전한다. 그리고 개성의 발전은 다시 집단성을 발전시킨다. 즉 사회성이 강화될수록 개인의 자유도는 높아진다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사회를 형성하는 원리는 집단성과 개성이고 사회가 생존하는 원리는 지배성이다.

사회의 지배성과 집단성(개성)은 상호 모순적 통일을 이루며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리가 되었다. 사회 발전의 첫 단계는 자연에서 독립하여 사회를 형성하는 단계이다. 자연에서 독립하여 사회를 형성하는 과정에 인간 사회는 지배성이라는 생존원리를 획득한다. 사회가 자연에서 독립하는 과정이 자연을 지배하는 과정이다. 또한 이 과정은 사회형성원리인 집단성의 발현과정이기도 한다. 협력이 잘 이루어지고 질서가 잘 잡힌 집단일수록 자연과의 투쟁에서 생존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집단성과 지배성은 인간 사회가 자연으로부터 독립하는 초기에 형성된 사회의 특징적 원리이다. 그리고 바로 이 원리 때문에 인간은 자연에서 독립할 수 있었다.

사회발전의 다음단계는 타자 지배 단계이다. 타자 지배 단계는 사회내부에서 지배성의 원리가 관철되는 것이다. 사회는 여러 인간 집단으로 이루어진다. 사회의 자연으로부터의 독립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자연과의 투쟁이 집단 간의 투쟁으로 발전한다. 이때 사회생존원리인 지배성의 원리가 관철되면서 어느 집단은 노예가 되고 다른 집단은 주인이 된다. 물론 집단성의 원리도 동시에 관철된다. 피지배 계급들도 집단을 이루는 한 사회적 속성 즉 지배성을 갖기 때문에 지배 계급으로부터 독립하고, 다시 다른 집단을 지배하고자 한다. 이것이 계급투쟁의 사회적 속성이다. 인간이 인간인 한 계급사회에서는 계급이 소멸될 때까지 계급투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계급투쟁은 인간의 생존원리이기 때문이다. 계급투쟁의 정도는 생산력에 지배를 받는다. 생산력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 정도이다. 자연에 대한 지배력이 높아질수록, 즉 생산력이 높아질수록 생산 담당자의 역할은 높아진다. 그러나 생산 담당자 집단의 역할에 합당한 지위나 몫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계급투쟁은 촉발된다. 그리고 계급투쟁에도 집단성의 원리는 작용하여 피지배 계급의 단결이 계급투쟁의 승패를 결정하게 된다.

사회 발전의 다음 단계는 상호지배단계이다. 이는 사회주의단계이다. 역할과 능력에 따른 지위와 몫이 정당하게 주어지는 단계이다. 역할과 능력에 따른 지위와 몫에 차이가 있고 이 차이에 따라 서로 간에 지배하고 지배 받는 관계를 형성하는 단계이다. 계급 지배가 없는 단계로 지위와 몫은 오직 능력과 역할에 따라서만 나눠진다. 따라서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집단성이 한 단계 높아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지배 단계이다.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 단계이다. 어느 집단이 다른 집단을 완전히 지배하면서 동시에 완전히 지배 받는 단계이다. 이는 지배계급이 더 이상 부활할 수 없는 단계를 말하는 것으로 집단성이 최고도에 이른 단계이다. 어느 집단이 다른 집단과 독립성을 갖지만 서로 간 완전한 지배체제를 구축하여 어떤 집단이 새로운 지배집단으로 들어서는 위험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그리고 개인이나 집단이 전체 사회를 완전히 지배하면서 전체사회에 의해 완전히 지배받는 사회이다. 이는 개인이나 집단은 사회전체를 위해 사회는 개인이나 집단을 위해 자기의 능력과 역할을 발휘하는 단계이다.

이렇듯 사회의 지배성과 집단성은 상호 통일되어 있다.

전쟁은 타자 지배 단계의 사회적 현상이다. 상호 지배 단계에 이르면 전쟁은 사라지기 시작하고 자기지배 단계가 완성되면 완전히 없어질 것이다. 그럼 전쟁의 원인은 무엇인가? 생존이 전쟁의 원인이라고도 하고, 무정부적 국제질서가 원인이라고도 한다. 전쟁의 생존 원인설은 생존이 위협받지 않는데도 많은 전쟁이 있었던 전쟁 역사를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국제 질서의 무정부성에서 전쟁의 원인을 찾는 입장은 국제질서란 항상 일정한 질서를 이루고 이 질서가 변화할 때 전쟁이 일어나며, 이때 항상 변화의 동력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사회는 일정한 질서, 즉 자연을 지배하기 위한 역사적으로 적당한 상태의 질서를 이룬다. 언제나 당시의 생산력에 맞는 생산관계를 이루고 사회질서가 세워진다. 생산력이 발전하여, 계급 간 또는 국가 간의 역할과 능력에 적합한 지위와 몫에 균열이 생기면, 변화된 역할과 능력에 맞는 지위와 몫에 대한 요구가 생기고 기존 체제나 질서에서 이를 수용하지 못할 때 전쟁이 발생한다. 즉 전쟁은 타자 지배 단계의 사회 지배성의 발현이다.

그리고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전쟁은 계급지배의 방식이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며 정치란 계급사회에서 기본적으로 계급지배이며, 따라서 계급지배의 연장으로서 전쟁이 수시로 일어난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는 말에 정치는 경제의 집약집중이라는 레닌의 말을 추가하면, 결국 전쟁은 경제의 집약집중이 된다. 이것이 전쟁의 본질이다. 그런데 맑스주의 철학사전에는 “전쟁은 단지 적대적 계급 사회가 계속해서 존재하는 기간에만 나타나는 역사적 현상이다.”5)라고 한다. 이 말을 받아들이면 레닌의 말과 모순된다. 즉 계급사회 이전에는 경제활동이 없었다는 말이 되어 계급사회 이전의 전쟁을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계급사회 이전에도 경제활동은 있었으며 그 집약집중인 전쟁도 있었다고 이해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 철학사전에서는 계급사회 이전의 원시사회에서의 전쟁은 우연적 맹아적 현상이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매우 제한적이다. 윌슨은 부족주의적 공격성은 신석기 시대 이전으로 한참 거슬러 올라간다6)고 하였고, 침팬지도 정복전쟁을 벌인다고 지적하였다.7) 부족주의 전쟁이나 침팬지의 정복전쟁은 우연히 두 집단이 조우하게 되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이는 계획적인 정찰활동과 행동을 통해 자기집단의 세력권을 확보하는 의식적 계획적 행동이다. 따라서 이를 우연적 현상이나 맹아적인 것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전쟁의 연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지배성은 집단성에서 나온다. 한 집단은 다른 집단을 지배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게 되는데 이것이 전쟁의 원인이다. 지배성이라는 생존원리는 자연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나타나며 이는 타자지배단계에서 일반적 원리가 된다.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집단 간 전쟁은 학살이나 약탈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 착취단계로 넘어가 계급사회 단계로 된다. 따라서 전쟁은 계급발생에 기인한다기보다, 어쩌면 전쟁이 계급사회를 만들어 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집단 간에 지배성 원리가 관철되면서 계급이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지배성 원리나 집단성 원리는 경제와 정치 나아가 이데올로기를 통일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개념이다. 맑스주의에서 토대 즉 경제는 상부구조 즉 정치 및 이데올로기를 규정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경제법칙과 정치, 이데올로기 법칙은 다르고, 정치 및 이데올로기 법칙이 경제로 환원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정치와 이데올로기는 경제적 제한을 벗어나기 힘들다. 이는 물리법칙과 화학법칙의 상호관계에 비유할 수 있겠다. 물리나 화학이나 모두 자연법칙의 하나이고 넓은 자연과학 법칙으로 설명되듯이 경제법칙이나 정치법칙도 보다 포괄적인 인간(사회)법칙으로 통일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지배성과 집단성이 인간집단의 생존원리와 형성원리로서의 인간(사회)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배성과 집단성의 원리에 기초해서 인간사회의 경제, 정치, 사상 및 토대, 상부구조를 위계적 구조 속에서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적 경제관계가 생성되기 전에 사회주의사상이 나오고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수립된 이후에 사회주의 경제제도가 확립되는 과정은 토대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는 테제와 모순되는 듯하다. 시간상 사회주의 사상이 가장 앞서고 다음에 사회주의 정치질서가 서고 나서야 사회주의적 경제관계가 확립된 것이다. 그리고 생산력이 뒤진 러시아나 중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먼저 수행된 것도 생산력 발전의 규정력을 손상시키는 현상으로 보인다. 이는 생산력을 단지 과학기술이나 생산도구에 한정하여 생각하는 제한적 사고에 기인한다. 생산력은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결합이라고 한다. 생산수단도 인간의 능력과 역할에 의해 규정된다고 할 때 결국 생산력이란 인간의 능력과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생산력은 자연에 대한 지배력으로 나타나고 자연에 대한 지배력은 인간 집단이 얼마나 협력이 잘 이루어지는가하는 집단성에 좌우된다. 그리고 집단성은 인간집단의 이데올로기와 사람들을 조직 배치하는 정치제도에 영향을 받는다. 결국 생산력이란 단순히 과학기술력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염원을 반영한 이데올로기와 사람들을 조직 배치하는 정치와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물론 경제, 정치, 이데올로기는 물리, 화학, 생물학과 같이 위계적 질서를 이루고 가장 밑바탕에 경제관계가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자연과학의 토대가 자연자체이듯이 사회과학의 토대는 인간집단(사회) 자체이다. 자연의 기초 요소가 원자 등의 입자라면 사회의 기초 요소는 인간이다. 자연과학이 원자의 성격 및 결합구조의 차이에 따라 다른 위상을 갖듯, 사회과학도 인간의 성격인 능력과 역할 및 그 결합구조의 차이에 따라 그 위상이 달라진다. 자연과학에서 화학법칙의 작용으로 물리법칙이 실현되거나 제약되기도 하고 생물학적 변화가 화학적 작용에 반작용을 미치듯이, 사회에서도 정치적 변화가 경제법칙을 실현시키는 조건이 되기도 하고 제약하기도 한다. 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이다. 토대는 단순히 과학 기술력만이 아니라 인간요소의 능력과 역할이며 인간요소의 결합구조가 생산관계, 권력관계, 이데올로기로 나타나고, 이는 생산-권력-사상이라는 위계를 갖지만 권력이나 사상이 인간요소의 능력이나 역할을 변화시켜 생산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과학 기술력은 뒤떨어질 지라도 인간요소의 능력과 역할이 충분히 정치적으로 사상적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 정도로 고양되어 있다면 사회주의는 실현가능하며,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사회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생산관계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치, 사상 수준을 끊임없이 높여 인간의 능력과 역할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려야 가능하다고 하겠다.

 

2. 경제와 전쟁의 순환구조; 역사적 경향

전쟁이 타자지배시기의 지배성의 현상이고, 지배성은 경제와 정치로 표현된다. 경제나 정치나 인간관계이다. 개인적 관계가 아니라, 집단적 관계, 보다 구체적으로 계급적 관계이다. 경제가 생산관계라면 정치는 권력관계이다. 생산관계의 집약적 표현이 권력관계로 나타나고, 권력관계는 생산관계를 규제한다. 역사적으로 생산관계의 변화는 생산양식의 변화로 나타나고, 권력관계의 변화는 정치체제의 변화로 나타난다. 역사적 생산양식은 정치체제에 반영된다. 정치체제는 일국차원에서뿐 아니라 국제관계도 형성한다. 국제정치체제는 무정부적 상태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양식을 반영하여 그에 따라 형성된다. 따라서 계급사회, 즉 타자지배사회에서는 한 나라의 위계질서 즉 계급지배질서와 마찬가지로 국제정치질서도 위계질서를 형성하게 된다. 모든 국가는 지배계급의 국가이기 때문에 국가 간 관계인 국제질서는 지배계급 간 위계질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회주의 국가가 성립되고는 국제질서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국제질서에 피지배계급의 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국제질서를 대변하고 유지하는 최강대국을 패권국이라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패권국이 나오는 필연성은 시장의 세계성과 권력의 민족국가성 사이의 모순에 있다. 세계자본의 요구는 세계단일 국가이지만 현실은 권력이 민족국가 단위로 분산되고 쉽게 통합될 가능성도 없다. 따라서 세계자본은 자본주의 패권국가를 요구하게 되고, 자본주의 패권국가가 자본 간의 갈등을 조절한다. 당연히 패권국은 자본의 힘에 따라 결정된다. 이런 자본 사이의 위계를 확립해야 현대자본주의라는 전쟁의 일상화 속에서도 자본주의 질서에 위협이 되는 전쟁을 방지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할 것은 전쟁의 양상에 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쟁이라고 한다면 국가 간의 정규전을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전쟁의 격렬한 양상일 뿐이다. 전쟁을 경제의 집약집중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모든 전쟁은 기본적으로 계급투쟁이며, 계급투쟁이 폭력을 동반할 때 전쟁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계급사회의 모든 국가권력은 넓은 의미에서 전쟁기계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한 국가 내의 계급투쟁이 무력을 동반할 때도 전쟁으로 표현된다.

경제와 전쟁의 관계는 생산과 권력의 상호관계이다. 어떤 국가가 충분히 경제적 잉여를 생산하고, 적절히 분배가 이루어진다면 그 권력은 유지된다. 그러나 어떤 권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체제가 생산자의 역할과 능력에 맞게 지위와 몫을 분배하지 않는다면, 즉 생산력 발전을 방해한다면 정치체제는 동요하고 전쟁이 일어난다. 전쟁을 통해 새로운 권력과 경제체제가 세워지면 일정정도 안정기를 갖는다. 이렇듯 경제와 전쟁은 역사적 순환구조에 있다. 인류는 생산력 발전의 한계에 봉착될 때 전쟁이란 수단으로 그 한계를 돌파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사회제도에 따른 전쟁의 특성을 살펴보자.

기본적으로 맑스주의에서 사회제도의 역사 5단계를 언급하지만 여기서는 사회제도와 전쟁(계급지배방식)의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서 전자본주의 단계, 과도기 단계, 자본주의 단계로 나누겠다.

 

ㄱ. 전자본주의 사회

전자본주의 사회는 계급사회를 기준으로 볼 때 노예제와 봉건제가 속한다. 전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특징은 농업을 기반으로 한 자연경제이다. 자연경제란 생산이 교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체의 소비를 위해서 행해지던 경제를 말한다. 전자본주의 경제는 생산체감법칙이 관철된다. 생산체감이란 한 단위의 노동을 투입함에 따라 생산량의 증가량이 어느 한도에서 감소하는 것을 말한다. 생산체감법칙이 관철됨에 따라 자급자족형 소농이 주축이 될 수밖에 없다.8) 대규모 생산이 소생산보다 생산력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노예노동의 한계이다. 노예의 생산에 대한 무관심이 증대함에 따라 단위생산량은 소농의 단위생산량보다 적어지게 된다. 생산력의 발전 즉 생산자의 역할과 능력이 높아지게 되어 직접생산자의 의식이 각성되고, 노예폭동이나 생산에 대한 태업 등이 나타난 결과이다. 그런데 노예제 사회에서는 토지가 일부 노예주 중심으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소생산자들은 몰락하게 되고 소생산자 중심의 노예제 국가의 군사력은 약해진다. 전쟁을 통한 노예 확보는 어려워지게 된다. 노예제에서의 전쟁은 직접적인 노동력의 확보 수단이었다. 결국 대토지 노예제는 몰락한다. 노예제의 대규모 단순협업과 달리 봉건제에서는 농노들이 지주의 토지를 자기의 노동도구와 가족노동으로 경작한다. 노예라는 완전한 소유물에서 농노라는 신분적 예속으로 생산자의 지위가 바뀌었다. 이는 생산력의 발전에 기인한 것이다. 생산력 발전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이 강화됨을 의미하고, 직접생산자의 역할과 능력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생산자들은 높아진 역할과 능력에 맞는 지위와 몫을 요구하게 되고, 이는 계급투쟁으로 현상한다. 이러한 계급투쟁은 생산자를 완전한 소유물로 억압 착취할 수 없게 하였다.

자연경제에서는 생산의 확대는 직접적 폭력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노예제에서 전쟁은 노예 확보의 수단이었으며, 노예 노동은 폭력적 강제노동이었다. 봉건제에서 가족농 중심의 소농은 단순재생산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잉여생산물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강압적 지대 착취를 통해 생계를 위해 생산을 늘리게 만들어야 했다. 즉 수탈이 증산하는 요인인 것이다. 수탈이 없다면 잉여생산물을 생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수탈은 결국 생산력의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고, 생산력 발전에 따른 지위와 역할의 상승은 새로운 욕구의 상승을 가져왔다. 이는 생산의 더 한 층의 증가를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자연경제는 생산체감법칙이 관철되어 생산력 발전의 한계에 봉착하고, 이를 타개하는 수단으로 전쟁이 일어난다. 즉 생산 정체의 돌파구로 정복전쟁에 나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복전쟁이 생산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식이었다. 이렇듯 노예제나 봉건제에서 폭력적 수탈(계급전쟁)은 생산을 증가시키는 직접적 수단이었고, 정복전쟁은 생산의 한계를 극복하는 수단이었다.

전자본주의 시대의 전쟁의 승패는 전투력에 있었다. 전투원 개개인의 숙련된 전투기술이나 훈련된 조직력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했다. 개인적 전투력은 몽고의 기마술로 대표되는 유목민들을 들 수 있고, 조직력은 로마의 중장보병밀집대형을 들 수 있겠다. 기사나 사무라이 등도 이런 예가 되겠다. 따라서 농업제국은 중국의 진나라나 로마 등에서 보듯이 토지가 척박하여 농업생산력이 떨어지는 지역에서 나왔다. 이 지역은 농업생산력이 떨어지기에 농업에 종사하기보다 전쟁을 선호하고, 전쟁을 통해 생산력의 한계를 극복해 간 것이다. 이런 전투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계기는 중국의 전국시대이다. 당시의 군사기술의 발전을 제1차 군사혁명이라고도 한다. 보급체계와 대규모 군대의 운영, 그리고 전투기술과 무기의 발전, 그리고 치밀한 전략전술까지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전투원의 전투력은 지배계급의 전투력으로 전쟁 승리의 힘이었지만 피지배 계급을 지배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느 정도 사회가 안정되면 힘든 수련기간을 들이지 않고 전투력을 확보할 수 있는 총포기술은 억압된다. 중국에서 화약을 놀이수단에 한정시킨 것이나 일본이 조총을 서서히 도태시킨 것이 이런 이유이다. 이는 생산자의 지위와 몫을 저하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중국은 전국시대를 진나라가 통일하고 제국체계에 들어선다. 그리고 중원에서 강남지역 등으로 생활지역을 확대하는 것을 통해 생산력을 주변 유목민족들보다 높게 유지할 수 있었다. 중국의 대운하가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중국은 생산력을 주변보다 높게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특유의 관료제와 천하체계를 갖추고 순환적 제국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것이 중국이 제국의 빈번한 교체에도 불구하고 제국체계를 2000여 년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그러나 대운하는 중국이 이후 해금조치를 취하는 지정학적 기반이 되기도 한다. 결국 이 체제는 서구열강의 침입으로 무너진다.

서구는 로마멸망 이후 이렇다 할 제국이 없이 군소국가의 분열과 할거가 지속되었다. 유럽은 16세기 들어 소위 2차 군사혁명이 일어난다. 총기가 창칼을 대체하고, 군대가 대규모되며, 군함과 대포가 결합되어 해양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군사혁명에 따른 각국의 갈등은 승패가 나지 않았다. 이는 상업발전의 조건으로 작용하였다. 유럽의 각 나라들은 전장을 유럽에서 유럽 밖으로 옮겨갔다. 중국제국이 농업생산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상업을 억압한 것과 대조적으로 유럽의 국가들은 세수확보를 위해 상업(사실은 약탈, 해적질)을 장려하였다. 결국 유럽이 상업국가를 거쳐 자본주의로 발전한 원인은 유럽에서 16세기에 군사혁명이 일어나고. 베스트팔렌조약(1648) 이후 유럽에서 세력균형의 갈등이 해외 진출을 부추기고, 동시에 중국이 정화의 원정이후 해금(海禁)정책을 실시한 때문이었다.

 

ㄴ. 과도기 사회

다음은 전자본주의 시대에서 자본주의 시대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시기를 보자. 이 시기는 상업국가시대라 할 수 있는데 편의상 상업사회라고 하자. 상업사회는 독자적 사회성격을 갖지 못하지만 전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의 단초가 되고, 자본주의와 같은 특징을 공유한다. 즉 생산기반은 전자본주의적이나 상업자본이 형성된 점에서 자본주의적 특성을 동시에 갖기 때문에 별도로 볼 필요가 있다.

상업사회는 전자본주의 사회와 다르게 확대 재투자 체계를 갖는 특징이 있다. 상업사회는 상업자본이 축적되고, 이를 확대하기 위한 재투자를 수행하며, 재투자를 위해 새 상품을 도입하도록 자극하였다. 그러나 상업사회는 확대재생산에 한계가 분명했다. 유통 상품이 기본적으로 농업 생산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농업 생산물에 의존한다는 것은 상업자본의 증대에 한계로 작용하였다. 네덜란드가 향신료무역, 영국이 차무역으로 상업자본을 축적하고 있었지만 이를 대체할 상품이 없었다. 차를 고급 사치품에서 실론티 등으로 대중화하여도 대중화가 완료되면 더 이상의 확대 투자는 어려웠다. 이를 타개한 것은 영국이었다. 영국은 초기 모직물 산업에서 면직물 산업으로 산업혁명을 일으켜 자본주의를 선도하게 된다.

상업사회에서 전쟁은 교통로가 차단되거나, 상품 공급이 감소하여 상업사회 순환구조가 붕괴될 때 일어난다. 새로운 교통로나 시장, 상품 등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발생하는 것이다. 상업사회의 전쟁은 상업정책의 일환이었다. 상업경제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직접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전쟁의 목적이었다. 항로 선점, 상권 확보, 식민지 획득 등은 모두 상업전쟁의 성격을 띤다. 상인의 이익이 곧 국가의 세수 증가와 일치되어 있었다. 국가는 상인들의 이익 공동체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네덜란드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아시아의 상업네트워크를 지배하였다. 인도의 직물, 인도네시아의 후추, 대만의 사슴가죽, 중국의 비단, 일본의 은을 연결하는 순환구조의 지배이다. 이때 한 지역에서 거래를 완료하고 다음지역으로 이동해야하는데 여기에는 많은 위험이 따랐다. 이를 무력으로 극복했다. 상선은 곧 무장선이었다. 전자본주의 사회와 같이 전쟁이 직접적인 경제적 수탈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아직 전쟁은 상업네트워크를 만들고 유지하는 주요한 축이었다.

상업사회의 전쟁 승패는 막대한 전쟁비용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확보하는가에 달여 있었다. 이미 이 시대는 군사혁명이 일어나 총, 포가 군대의 주축이 된 때였다. 따라서 전투원의 전투력은 의미를 잃었다. 총, 포 및 전투함 마련을 위한 자금 조달이 전쟁 승패의 관건이었다. 작은 나라라 하더라도 효율적 금융수단을 통해 자금을 많이 확보하면 큰 나라와 전쟁을 하여 이길 수 있었다. 네덜란드가 대표적으로, 17세기에 암스테르담은 세계금융의 중심지였다. 네덜란드 같은 작은 나라도 자금조달 능력은 큰 나라들보다 우위에 있었다. 이는 네덜란드를 상업사회의 중심국가가 되게 하였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교역을 확대할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지 못하였고, 축적된 상업자본은 금융자본화, 투기자본화되었다. 잘 알려진 튤립투기열풍이 투기자본화의 예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금융자본화한 네덜란드 자본은 경쟁국인 영국에 투자되어, 영국의 성장에 자양분이 되었으며, 결국 영국에 밀려 네덜란드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여기서 자본의 금융화가 그 사회가 몰락하는 단초가 되는 패턴을 볼 수 있다.

 

ㄷ. 자본주의 사회

자본주의사회는 확대재생산을 위한 생산력 발전의 자기 동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 이전 사회와 다른 특징이다. 확대재생산의 자기 동력이란 생산관계의 확대재생산 체계를 말한다. 이는 면공업을 중심으로 한 영국의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상업사회는 생산을 상업사회 내부에 두지 못하고 외부 사회의 생산물을 중계하는 순수 중계무역에 가까운 사회(국가)였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과 유통을 모두 자본주의 사회 내에 가져옴으로서 자기 완결적 확대재생산 구조를 갖추었으며,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게 되었다.

영국이 주도한 초기 자본주의는 자유경쟁 자본주의로 성장하는 자본주의다. 기업은 가족중심의 중소규모였으며, 직물과 철강 산업이 주축이었다. 동인도 회사의 인도무역 독점권은 폐지되고 중소기업의 자유로운 인도무역이 시작되었다. 국가는 재생산과정에서 빠져나와 야경국가로 남았다. 전쟁이나 무력사용이 생산관계 외부로 나온 시기이다. 소위 1차 산업혁명시대라 칭하기도 한다. 자유경쟁은 주기적 공황을 지날 때마다 자본의 집약 집중을 심화시켰다. 1870년대를 지나면서 자본주의는 독점자본주의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자유경쟁 자본주의는 평균이윤율 법칙이 관철되지만 독점자본주의는 독점이윤법칙이 작용한다.9) 이미 1890년대에 이르면 공업생산량에서 미국은 영국을 추월하기 시작하였으며, 20세기에 들어서면서는 독일도 미국 다음의 공업국이 된다. 미국과 독일은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중화학 공업의 독과점을 형성한 반면 상대적으로 영국은 중소규모의 가족기업형태를 유지하며 숙련공 중심의 경공업 위주였다. 이 시기를 내연기관, 전자, 비철화학공업이 주도한 제2차 산업혁명기라고도 한다.

이 시기 영국은 최대 자본 수출국이었는데 과잉자본 돌파구의 하나는 금융자본화 투기자본화이고, 다른 하나는 설비의 경쟁적 갱신 확장이다.10) 금융화는 그 사회의 기생성을 나타내고 사회가 자체 발전 동력을 상실한다는 의미이다. 그 자체로 지속가능한 국가가 되지 못하고 몰락의 단계로 접어드는 것이다. 특히 영국의 과잉자본은 미국에 투자를 집중했다. 미국은 세계 제일의 공업국이 되었고, 독일도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유럽 제일의 공업국이 되었다. 그러나 독일은 역할과 능력은 높아졌으나, 유럽에서의 지위와 몫은 그대로인 상태였다. 그래서 독일은 성장한 역할과 능력에 맞는 지위와 몫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나타났다. 즉 자본주의의 불균등 발전과 식민지 재분할 전쟁이다. 세계대전으로 독점자본주의의 위기가 일시적으로 해소되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서구에서는 참정권이 보장되고, 동구에서는 노동자 정부가 들어서는 등 지위와 몫이 높아졌다.

그러나 독점자본주의는 한층 모순을 심화시키며 국가독점자본주의로 강화된다. 이미 독점자본주의는 자본량에 따른 균등한 이윤배분이 파기되고, 규모와 권력에 따라 잉여가치가 재분배되기에 이르러 국가독점자본주의로의 발전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겠다. 국가는 소위 야경국가로서 자본주의 재생산과정의 외부에 머물러 있었으나, 이제 국가가 자본주의 재생산과정에 직접 개입하게 된다.11) 이는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 즉 구조적 위기에 독점자본가계급이 대응한 결과이다.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나타나기 시작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뉴딜과 나치의 형태를 띠다가, 2차 대전 이후 케인즈주의로 제국주의 열강의 일반적인 형태가 되었다. 국가 개입의 핵심은 군수산업과 관리통화제도이다. 미국의 경우 국방비는 재량예산의 약 50%를 차지하며 직접적으로 자본의 재생산에 투입된다.12) 전쟁이 위기상황의 일시적 돌파구로 작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일상적 재생산의 일부가 된다. 소위 보이지 않는 손은 가치법칙의 관철인데 화폐의 금 태환이 부정되고 관리통화제도가 됨으로서 자본주의가 가치법칙을 스스로 부정하게 되었다. 자본주의는 자기부정의 체계인 것이다.

1970년대 들어 케인즈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위기에 봉착하자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전환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은 금융의 재생산과정에서의 분리(투기자본화)와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강화이다.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핵심인 군수산업과 관리통화제도는 전혀 변화시키지 않았고 오히려 강화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생산력 발전에 따른 생산자의 지위와 몫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낮추는 반동이다. 생산물을 새로운 생산에 재투입하지 않는 군수산업은 더욱 강화되었으며, 과잉자본은 제로섬 게임에 몰두하는 투기자본화 되었다.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특징은 경제의 군사화와 금융화이다. 특히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경제군사화는 생산에 전혀 기여하지 않는 군사화이다. 이전 시기의 전쟁이나 군사행동은 생산수단의 확보나 직접적 증산 수단으로 작용했으나 국가독점자본주의에서 경제의 군사화는 과잉자본의 소비 출구일 뿐이다. 이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기생성을 극명하게 나타낸다. 기생성이 강화된 사회일수록 생산에서의 역할과 능력은 낮아지게 된다. 결국 자체 확대재생산의 동력을 상실한다. 이는 역할과 지위간의 불균형과 불안정을 초래한다. 결국 지배성과 집단성의 원리가 관철될 때 세계는 전쟁의 위험성이 높아지게 된다.

자본주의의 전쟁은 기본적으로 제국주의 전쟁이다. 제국주의 전쟁은 제국주의 식민지 침략전쟁과 제국주의 간 식민지 재분할 전쟁이다. 자본주의 전쟁의 승패요인은 전자본주의 시대의 전투력, 상업국가시대의 비용조달능력과는 다른 공업생산력과 기술력이다. 공업생산력과 기술력이 전쟁 승패의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은 전쟁이 총력전임을 의미한다. 즉 한 국가의 총체적 생산력의 대결인 것이다. 2차 대전 때 승패의 관건은 항공력이었는데, 미국은 항공기 생산능력에서 독일의 2배 이상이었고, 일본의 4배에 달했다(위키백과). 독소 전쟁에서는 탱크전이 중요하였는데 쏘련의 탱크생산량이 독일의 2배 이상이었다(위키백과). 군함 생산에서도 미국은 일본의 15배정도 되었다(위키백과). 결국 자본주의 시대의 전쟁은 각국의 생산력 수준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국주의시대의 전쟁은 사회주의 혁명 전쟁과 식민지 민족해방 전쟁도 있다.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제국주의 열강의 간섭전쟁에서 공업생산력과 기술력의 우위는 제국주의 열강에 있었지만 볼쉐비끼의 올바른 전략전술과 노동자 농민의 단결은 제국주의 열강의 간섭전쟁을 승리로 마무리 지었다. 식민지 해방전쟁도 공업생산력과 기술력만으로 전쟁의 승패가 갈리지 않는다. 중국혁명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이 그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이 전쟁들은 식민지 민중의 단결력과 전략 전술적 기민성이 공업생산력과 기술력의 우위를 극복한 경우이다. 사람의 역할과 능력이 자연과의 관계에서는 공업생산력과 기술력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공업생산력과 기술력으로만 사람의 역할과 능력을 가늠할 수는 없다. 공업생산력과 기술력으로 대표되는 생산력은 자연과의 관계에서 인간집단의 지배성이고 지배성은 인간집단의 집단성에 좌우된다. 식민지 민중의 단결과 전략 전술적 우위가 곧 집단성의 발현이다.

이상에서 경제와 전쟁의 순환구조를 보았다. 즉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며, 정치는 경제의 집약집중이다. 경제와 정치는 인간의 역할과 지위의 문제이다. 인류사에 끊이지 않는 전쟁은 여러 우연적 원인들이 있겠지만, 근본적 원인은 경제문제이다. 경제문제는 경제관계문제이며 경제관계는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변한다. 생산력은 인간의 지위와 역할에 관한 문제다. 따라서 전쟁은 인간의 역할과 능력에 인간관계, 즉 생산관계와 권력관계가 조응하지 못할 때 나타난다. 인간의 역할과 능력은 인간집단의 자연과 사회에 대한 지배력이다. 인간의 자연과 사회에 대한 지배력은 인간의 독특한 생존원리이다. 인간은 역할과 능력에 맞는 각 집단의 지위와 몫이 분배되는 상호관계를 맺는다. 이 인간관계가 각 집단의 역할과 능력의 발전을 방해하거나 합당하지 않을 때 상호투쟁이 일어나고 전쟁이 된다. 따라서 인류사에서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인간의 역할과 능력을 끊임없이 높이고 이에 적합한 지위와 몫을 분배해야만 한다. 적합한 지위와 몫은 사회제도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나 사회제도가 사유제도에 기초하여서는 역할과 능력에 따른 지위와 몫이 적합하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각 집단이나 개인의 지위와 몫이 소유자체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사유제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끊임없을 것이며, 인간의 역할과 능력이 높아짐에 따라 사유제는 철폐되고 전쟁은 사라질 것이다. 사유제는 인간의 지배성 발전에서 타자지배단계에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3. 미중 대결과 새로운 패권이행기

자본주의에서 역사적 패권이행기는 한 번 있었다. 1914에서 1945년 사이의 두 번의 제국주의 전쟁을 포함하는 시기이다. 물론 산업혁명이전, 과도기의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의 패권이양까지 포함한다면 두 번의 패권이행기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패권이행기에 주목한 이유는 패권이행기에 역사적 혁명이 일어났다는 점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의 이행기에 프랑스 부르주아혁명이 일어났고,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이행기에 러시아 사회주의혁명과 식민지 민족해방혁명이 일어났다. 이제 바야흐로 새로운 이행기에 접어들고 있다. 이번 이행기에 어떤 혁명이 또 일어날지, 어떤 사회정치적 변화를 동반할 지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변화 자체만은 분명히 예상해 볼 수 있겠다.

1914에서 1945년 시기는 경제적으로 독점자본주의 단계이며, 정치적으로 독점자본주의에 맞는 국제적인 상부구조 구축기이다. 규모와 권력에 의해 잉여가치가 분배되는 독점자본주의에서는 경제적으로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유럽의 새로운 강자인 독일은 공업생산량에서 영국을 넘어섰으나, 영국은 자본의 규모에서 독일을 압도하고 있었다. 미국은 지정학적 요인으로 해서 유럽에 개입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영국과 독일은 힘의 우열을 전쟁으로 직접 가려야 했다. 두 번의 전쟁을 통해 자본주의 패권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새로운 현대자본주의 체제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이다. 미국 제국주의를 최고 정점으로 하고 영국, 독일, 일본, 프랑스 등이 하위단위로 연합한 위계적 제국주의 연합 체제이다. 이는 독점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의 결과였다. 독점자본주의의 1차 위기로 쏘련이 탄생하고, 1930년 자본주의의 전반적 구조위기로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위기관리 체제로서의 제국주의 연합체제가 탄생한다. 물론 쏘련에 대한 대응이라는 냉전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위기관리 체제로서의 국가독점체제가 위기관리 능력을 상실하자, 노골적인 반동인 신자유주의정책으로 전환했다. 한편 쏘련은 1970년대 자본주의 위기를 전반적 위기의 막다른 길로 판단하고 국력을 과도하게 제3세계 민중운동과 군사력에 투하하여 붕괴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때 쏘련이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한 이유 중 하나는 1970년대 오일쇼크로 원유값 폭등이 있었다. 쏘련은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으로 쏘련 경화의 80%를 원유수출에서 얻고 있었다. 그러나 80년대 초중반 석유값 하락으로 쏘련경제는 타격을 입게 된다.13) 여기서 더해 고르바쵸프의 잘못된 개혁개방정책이 맞물리면서 붕괴했다. 1970년대 오일달러가 쏘련을 착시에 빠뜨렸듯이 1990년대는 쏘련의 붕괴가 자본가들이 자본주의 위기를 과소평가하는 착시현상을 일으켰다. 쏘련이 개혁의 적기를 놓치고 잘못된 정책으로 몰락했듯이 미국도 신자유주의 반동 정책을 일방적으로 강화하는 잘못된 정책을 지속하여 보다 빨리 패권이행기를 맞이하고 있다.

물론 현대 자본주의 위기가 단순히 신자유주의 정책의 잘못에 기인하는 정책적 위기는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의 위기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자체의 위기임은 틀림없다. 단지 신자유주의 정책은 이런 위기를 보다 빠르게 그리고 깊게 한 것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정책은 자본주의국가 중 새로운 강자를 만들어 냈다. 중국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는 중국이었다. IMF에서 공개한 2018년 국가별 명목 GDP기준으로 미국이 약 20조 4100억 달러이고, 중국은 14조 900억 달러로 미국의 70%에 육박하고 있다. 구매력 기준으로는 미국을 능가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조선비즈, 2015.07.21.). 이런 추세라면 2020년대 중반이면 중국이 경제력에서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직접적으로 패권국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경제가 정치적 역학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데는 많은 매개를 거쳐야 한다. 그 중 세계 패권을 다투는 데는 각 국가의 지정학적 조건이 매우 중요하다. 지정학적 관점에서 보면 1차 그레이트 게임은 영국과 러시아의 대립이었고, 2차 그레이트 게임은 쏘련과 미국이었다. 이제 3차 그레이트 게임이 운위되고 있으며 중국과 미국의 대결이다. 1차 그레이트 게임의 일방이었던 러시아는 당시 공업생산량에서 세계 5, 6위 정도였다. 그러나 영국은 자신의 세계패권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미국도, 프랑스도, 독일도 아닌 러시아를 주목했다. 이는 지정학적 요인에 기인한다. 러시아는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큰 나라로서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부에 가장 가까운 나라이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중아아시아를 지배하는 거대국가가 나타날 경우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중앙아시아로의 남하정책을 전력을 다해 추진했고 영국은 이를 극구 막아섰던 것이다. 지정학적 관점은 유라시아를 중심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대립을 기본축으로 분석한다.

아직까지 미국이 세계유일 패권국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으로 해상로를 장악하고 있으며, 세계 결제수단인 달러와 에너지, 식량을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여 서서히 자신의 지위와 몫을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고,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자 한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방법은 3가지가 있다. 먼저 중국이 아직 힘이 약할 때 예방전쟁을 수행하는 것, 두 번째는 중국의 경제적 성장을 저지하는 것, 세 번째는 봉쇄하는 것이다. 이중 예방전쟁은 불가능하기에 경제성장을 저지하고 봉쇄전략으로 나올 것이다. 미국은 이미 오바마 때 세계전략을 아시아 중시전략으로 변경하고 태평양 사령부를 인도 태평양 사령부로 개편하면서 대중 전략의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은 대쏘봉쇄전략의 성공사례가 있다. 대쏘봉쇄전략의 백미는 중국을 대쏘봉쇄에 끌어들인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 수교를 하고 아프가니스탄이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미국과 반쏘전선을 형성했다. 이런 중국의 반쏘행동은 단순히 중소 이념논쟁으로 이해하기엔 한계가 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북방유목민족을 최대의 불안요인으로 여겼고 실질적으로도 그러했다. 만리장성은 그 공포감이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쏘련은 중국에게 이런 북방민족의 다른 이름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당시 중국은 내륙에서 쏘련과 대립하고 있었고, 해양에서 미국에 봉쇄당하고 있었다. 중국은 미국과 수교하여 바닷길을 열고 미국의 대쏘봉쇄전략에 동참한다. 그리고 쏘련은 붕괴하였다. 여기서 시사하는 바는 대륙의 두 대국이 대립하여 어느 한나라가 해양세력에 동참한다면 다른 나라는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대중국 봉쇄전략에서 러시아가 미국에 중요한 위치가 된 이유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대중국 무역전쟁은 중국의 경제성장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선공이다. 이번 무역전쟁의 핵심은 2025로 알려진 중국의 10대 첨단기술산업의 성장을 저지하는 것과 중국 금융시장의 개방인 것 같다. 아직까지 중국의 금융은 세계 금융자본이 완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통제력을 어느 정도 행사하고 있다. 이를 완전히 세계금융자본이 장악하게 된다면 중국은 금융식민지가 될 것이고 미국에 대한 도전은 요원할 것이다. 또 중국의 2025가 성공할 경우 세계자본주의 위계질서에서 하청조립이라는 하위단위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지위는 변하게 된다. 중국이 미국에 의존하는 것은 결제수단, 무역로, 에너지뿐 아니라 지적재산권으로 대표되는 첨단기술과 소비시장이 있다. 중국은 미국에 대한 이런 의존을 서서히 탈피하고자 한다. 일대일로가 바로 무역로와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라면 2025는 기술의존을 탈피하고자 하는 대안이다. 소비시장의 형성은 이미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대일로는 미국의 적극적 대응으로 어려움이 있으나 2015년 파키스탄의 과다르항을 확보함으로써 중국은 유사시 말레카 해협이 봉쇄되더라도 원유를 수송할 루트를 마련한 상태이다. 그리고 중국내 소비시장 확대는 미국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아마도 이번 공격의 주 대상은 작게는 2025이고 크게는 중국 금융일 것이다.

구쏘련도 미국의 봉쇄전략을 뚫지 못하고 무리하다가 망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중국을 봉쇄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쏘련과 중국은 지정학적 지위가 많이 다르다. 쏘련은 내륙국가로 바닷길이 거의 없다. 즉 해상봉쇄가 쉽다. 그러나 중국은 남동중국해안의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고 양질의 항구가 다수 있다. 그리고 내륙 깊숙이 발달된 운하도 가지고 있다. 거기다 세계의 중심인 유라시아 대륙의 인구대국이다. 또한 중국은 어느 대국도 가지고 있지 못한 화교의 세계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이런 지정학적 이점을 가진 중국이 한 세기 넘게 세계 중심국에서 밀려나 있었다는 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것이 구쏘련과 다른 점이기도 하고 미국이 중국을 두려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대는 미국이다. 미국의 지정학적 이점은 지구상 그 어느 국가도 따라올 수 없다. 거대한 대륙 국가이면서 파나마 운하를 통해 3면이 바다와 같은 이점도 갖고 있다. 주변 국경을 접하는 국가는 캐나다와 멕시코뿐이다. 주변에서 국경갈등을 일으키거나 위협할 나라가 없다. 거기다 풍부한 지하자원에 곡창지대, 내륙을 가로지르는 해운이 발달한 긴 강, 개방적 이민정책으로 인구의 유입 등 패권국가가 될 지정학적 요소는 모두 가지고 있다.

지정학적 조건이나 정치경제적 힘의 역관계로 볼 때 중국이 미국을 당분간 따라잡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패권은 단지 경제력이나 군사력, 지정학적 조건에 의해서만 획득되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패권국은 당면한 현대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를 해결해야 하고, 그를 위한 정치, 문화적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영국이 자유무역주의와 인종주의적 계몽주의, 그리고 세력균형으로 경제, 문화, 정치적 세계질서를 창출하고 패권을 유지했듯이, 미국은 소위 수정자본주의, 보편적 인권주의, 위계적 구조로 세계질서를 창출하고 패권을 유지하였다. 이제 현대자본주의의 전반적인 구조적 위기국면 속에서 중국의 중국식 시장사회주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문화상대주의, 그리고 신중화주의인 천하체계14)가 새로운 세계질서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더 지켜볼 일이다.

작금의 미중 대결국면으로 접어드는 국제관계에서 러시아를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미국의 대쏘련 봉쇄전략에서 중국이 한 역할을 이제는 반대로 대중국 봉쇄전략에서 러시아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세계전략은 역외 균형전략으로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역외 균형전략이란 영국이 바다건너에서 유럽대륙의 균형을 유지하며 유럽대륙의 패권국을 용인하지 않은 전략이다.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절대적 패권을 유지하고 유라시아 대륙에서 지역패권국의 출현을 막는 균형을 유지한다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중국, 유럽, 러시아, 인도 등 강대국들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약한 나라는 도와주고 강국은 억제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는 인도와 러시아를 도와주고 중국을 제한하면서 유럽에서 발을 빼는 국면이다. 영국과 일본, 호주는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해양세력의 손발이 되어 대륙세력이 대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는 방파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역외 균형전략은 지상군 파견을 가급적 회피한다. 따라서 주독미군과 주한미군은 철수할 공산이 크며, 중동에서는 러시아의 입지를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이다. 트럼프의 대러시아 친화는 이런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대중국 봉쇄전략은 대쏘련전략과 비교하여 볼 때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일단 미국은 쏘련과 달리 중국과 경제적으로 상호보완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미국이 소비시장이고 중국이 생산 공장이다. 둘째로 냉전초기와 지금의 미국은 그 위상이 많이 다르다, 냉전초기는 막 세계패권을 장악한 막강한 미국이었다면, 지금은 금융위기로 타격받은 쇠락하는 패권국이다. 셋째로 냉전기에는 대립전선이 비교적 분명하였지만 지금은 대립전선이 불명확하고 합종연횡의 가능성이 다방면으로 열려있다. 따라서 미국의 대중 봉쇄의 성격도 많이 달라진다. 즉 대중봉쇄가 압살정책이거나 소위 중국 해체전략일 수는 없다. 중국이 성장해 감에 따라 미국은 중국의 힘을 인정해 가면서도 일정정도 억제하는 차원에서 대중국 전략을 구사한다고 보아야 한다. 강한 봉쇄라기보다는 약한 역외 균형전략이 미국이 취할 최선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직접 미국에 대항하는 것을 피한다. 적이 공격하면 피하고 적이 후퇴하면 전진한다. 미국이 일본의 군사화를 강화하고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 공을 들이며 동진하고 있을 때, 중국은 러시아와 파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접근하였다. 그 성과가 상하이 협력기구이다. 상하이 협력기구에는 중국이 전천후관계라고 하면서 가장 중시하는 파키스탄을 비롯해 공식적으로 가장 높은 단계의 전략적 공동 행동 관계를 유지하는 러시아가 참가하고 있으며 인도도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일대일로의 철길을 통과하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참가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러시아 중국 인도의 관계이다. 러시아는 군사력에서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이고 중국은 경제력으로 미국을 위협하며 인도는 미래의 잠재력을 가진 국가이다. 중국은 상하이 협력기구를 강화하여 미국에 대항하고 있다.

중국은 달러 결제수단에 대한 대응으로 금을 다량 매입하고 있다. 물론 공식적 보유량은 미국에 한참 못 미치지만 중국은 민간보유로 위장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의 금 보유량의 추정치는 중앙은행 보유량 4천여 톤을 포함하여 대략 1만9500톤이고, 인도가 다른 귀금속을 포함하여 약2만여 톤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대기원 시보 한국어판 2017.3.21.). 이는 미국의 공식적인 금 보유량인 8천여 톤을 훨씬 능가하는 수치이다. 그리고 미국의 금보유량은 매우 의심되고 있다. 실질적으로 미국의 금보유량은 8천 톤에 많이 모자랄 것으로 추정된다. 분석가들은 중국이 달러 이후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도 금 확보에 가세하고 있다(연합뉴스, 2018.2.22.). 금을 가지고 있는 자가 룰을 만든다라는 격언이 있다. 중국 러시아 인도는 새로운 룰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중국은 위안화국제결제시스템(CIPS)을 완성해 놓았으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성공으로 새로운 세계경제를 구축해가고 있다. 위안화 원유선물거래도 시작했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는 오일 위안화시대를 여는 신호로 평가하고 있다(인터넷 조선 2018. 3. 26). 이미 2014년에 중국과 러시아는 원유와 가스거래에서 달러를 배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인터넷 중앙일보 2014. 7. 7). 중국이 이렇게 새로운 세계금융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면 러시아는 세계 에너지 지형을 바꾸고자 한다. 막대한 천연가스를 이용하여 이미 유럽을 에너지로 지배하고 있는 형국이며 중국 한국 일본에도 연결되는 가스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자 한다. 이렇듯 유럽과 동북아시아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지고 그 결제수단이 루블이나 위안화가 될 때 미국의 달러 패권은 무너지게 된다.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카타르의 천연가스를 사우디아라비아-시리아-터키를 통해 유럽에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하여 러시아의 시장지배력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이 계획에 시리아가 반대하여 시리아는 내전에 휩싸이고 러시아가 적극 개입하게 된다. 현재 러시아의 승리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유럽과 중동의 전략적 요충지인 터키마저 미국과 대립하고 러시아와 친해지고 있다. 미국의 중동 지배력이 많이 무너진 상태이다.

중국 러시아 인도는 금을 확보하고 새로운 결제 시스템을 만들고 원유거래에서 달러를 배제하며 에너지 패권을 넘보고 있다. 미국지배의 세계경제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인 셈이다. 여기서 인도의 행보를 주시해 봐야할 것이다. 중국 중심의 상하이 협력기구와 미국 중심의 미국, 인도, 일본, 호주의 4자 연합의 대립구도에 인도가 끼여 있기 때문이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친러시아 성향이다. 러시아가 중국과 연합한 이상 인도를 미국이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자본주의의 위기는 다시 한 번 미국을 강타할 것으로 생각된다. “美 장단기 금리차 11년來 최저…장기 경제전망 ‘암울’” 매일경제의 지난 6월 26일자 기사 제목이다. 미국의 국채 10년물과 2년물 간의 금리차이가 11년 만에 최저 수준에 달했다는 말이다. 장기국채의 금리는 미래경제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고 단기국채의 금리는 현재의 비용을 나타낸다고 한다. 장단기 금리차가 줄어든다는 것은 미래전망은 암울한데 현재 비용은 늘어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보다 장단기금리차이가 중요한 것은 장단기금리가 역전되는 것이 경제전망에 미치는 신호에 있다. 장단기금리차이는 대표적인 선행지표로 알려져 있다. 장단기 금리 역전은 경제공황의 지표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5월 장단기금리가 역전되고 8월에 금융공황이 시작되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올해 말(2018년)이나 내년 초에는 역전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기초해 본다면 2019년이나 2020년에 새로운 공황이 덮칠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2007년과 같이 달러를 찍어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2007년 대공황 이후 새로운 대안을 찾지 못한 자본주의는 다시 신자유주의로 돌아갔고 위기는 해결되지 않고 심화되고 있다. 2007년 글로벌 금융공황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2014년 10월까지 양적완화를 3차례 실시해 약 9000억 달러이던 자산을 4조 5000억 달러까지 늘렸다. 2007년 이후 풀린 달러는 2007년에 유통되는 달러의 거의 4배가 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회수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호경기 이면에 버블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9-20년 정도로 예상되는 주기적 공황이 얼마만큼의 구조적 위기로 나아갈 것인지는 예상하기 힘들지만 2007년 여파가 가시지 않는 현재 상황에서 구조적 위기로 파급될 것은 필연이다. 이때 생산기반이 취약하고 기생적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미국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은 분명하다. 아마도 미국중심의 세계 금융시스템에 심대한 타격을 가할 것이다.

새로운 패권이행기로 접어든 이 때 강대국 간의 전쟁 가능성은 매우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상호 의존성이 줄어들고 양강 구도가 구체화 될수록 국지적 충돌은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미중의 전면적 충돌은 합리적 판단에 기초한다면 희박하다. 미국이 역외 균형전략으로 세계전략을 변화시키고 중국이 미국과의 대결 회피전략을 고수한다면 당분간 위험한 충돌은 없겠으나 공황에 휩싸이고 급격히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다가온다면 군산복합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세계 질서의 불안정성은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4. 북핵의 의미- 한반도의 지정학적 지위의 변화

한반도는 16세기 이전에는 대륙의 변방이었다. 그래서 대륙의 세력교체기마다 전쟁에 말려들었다. 대륙세력들이 대결하는 배후가 되었기에 본격적인 세력대결 이전에 한반도가 먼저 전황에 휩싸이곤 했다.

16세기에는 서구의 해양세력의 영향을 받은 일본이 성장하여 임진왜란을 일으켰는데 이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지위가 변화된 것을 말해준다. 즉 대륙의 변방에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교두보 내지 완충지대로서 대립전선이 형성되는 지역으로 변한 것이다. 두 세력이 대립될 때 한반도는 언제나 전장이 되었다. 임란이 그랬고,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국전쟁이 그러했다. 해양세력이든 대륙세력이든 어느 쪽이 승리한 경우에는 승리한 쪽에 편입되어 민족과 국가의 자주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리고 양 세력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균형을 이룰 때 한반도는 분단된다.

이렇듯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사회변화가 내적 동력에 의해서 추동되기보다는 외세에 의해 강요되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며 큰 사회적 변화는 특히 외부의 영향이 컸다. 분단체제의 성립도 외세에 의한 규정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냉전체제가 확립된 것이 그렇다.

쏘련의 붕괴 이후 한반도 세력균형은 급격히 무너졌다. 대륙은 급격히 미국체제에 편입되었고 한반도 북단만이 외딴 섬처럼 고립되었다. 그러나 북은 2017년 핵무기 체계 완비를 선언하고 전략국가로 들어섰다고 천명하였다.

먼저 한반도에 주둔한 미군의 의미를 살펴보자. 냉전기 주한미군은 대쏘전진기지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미군의 해외주둔군 지위에서 독일, 일본 다음으로 주한미군이 수적으로 많다. 이는 주한미군의 중요성을 말해 준다. 즉 주한미군은 미국에게 세 번째로 중요한 해외주둔군이다. 그 의미는 한반도가 태평양과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주일미군과 비교한다면, 기본적으로 섬은 방어하기에 유리한 지형이다. 일본섬은 쏘련이나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방어하는 의미가 크다. 그러나 한반도는 육지로 연결되어 있어 주한미군은 대륙진출의 공격적 성격을 띤다. 냉전기에는 대쏘공격의 전진기지였다면 지금은 대중공격의 전진기지 역할을 주한미군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중국의 입장에서 일본에 배치된 사드와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 된다. 일본의 사드배치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중국이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하자 격렬한 반대를 나타낸 이유이다.

그러기에 한반도 이북지역은 중국의 입장에서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다. 한반도 전체가 미국의 세력권이 된다면 반도문제만이 아니라 곧바로 황해권이 미국의 세력권에 들어간다. 이는 북경이 직접적으로 위협받게 됨을 의미한다. 중국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목에 비수를 겨누고 있는 형국이 되기 때문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남이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가면 미국의 입장에서 일본은 최전방이 된다. 결국 제1도련선(일본-오키나와-대만-필리핀-남중국해-말레이시아)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면 대만과 남중국해를 포기해야 한다. 중국은 동남아시아를 자신의 영향권에 확보하게 되고 인도양으로 가는 해상로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게 된다. 이 해상로는 중국 에너지 수입의 80%이상이 지나가는 길이다. 남중국해는 로마의 지중해, 미국의 카리브해와 같이 중국의 앞바다가 되고 미국은 제2도련선(일본-사이판-괌-인도네시아) 밖으로 밀려나도록 압박받게 된다. 미국은 이런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 아시아에서의 영향력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세계지배가 붕괴되는 것이다. 이렇듯 한반도 분단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세력균형추로서 작용하고 있다. 이남은 대중국 전진기지고 이북은 이런 공격을 막아주는 완충지대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북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일단 지정학적 의미에서만 본다면 이북은 세력균형의 균형자로서의 지위에 올라섰다고 할 수 있다. 핵무력 완성은 어느 강대국도 무력으로 제압할 수 없다는 의미이며 정치적으로 독자적 전략을 구사하고 관철시킬 힘이 있다는 의미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대륙 공격의 전진기지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이북이 단지 미일의 공격을 막아주는 완충지대가 아니라 새로운 전략지대로 된 것이다. 전략지대란 무엇인가? 이전의 한반도는 지역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즉 쏘련과 미국, 중국과 미국의 대립에서 어느 한 세력권에 들어가던가, 아니면 세력균형지대로 완충지 역할을 하던가 하였다. 이런 지위와 역할의 규정력은 주로 대립하는 강대국들의 힘의 역관계에서 나왔다. 그러나 핵무력 완성으로 강대국들의 힘의 역관계가 어떠하든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자신이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대립하는 두 강대국이 상대방의 힘을 고려하여 자신의 입지를 정하고 한반도 전략을 구사하였고, 한반도는 이런 강대국의 전략에 종속되었다, 그러나 이제 이북은 강대국 세계전략의 독립변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북의 행보가 어떠한가에 따라 미중의 대립구도와 세계판도는 변하게 된다. 미국이 북을 베트남에 비교하는 것은 경제적 의미보다 정치적 의미가 더 크다. 아시아에서 베트남과 한반도는 중국 대륙의 양 날개와 같다. 반대로 중국의 복부와 목을 겨누는 비수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은 북이 베트남처럼 중국을 향한 비수가 되기를 원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보지 못한 것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정치적 힘이다. 한반도는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 일본과도 국경을 맞대고 있다. 경제 규모로 보더라도 이남은 러시아보다 크다. 이북에 핵무력이 완성되었다는 의미는 동북아에서 미중 대립구도가 깨질 수도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러시아 이북 일본 인도가 연합하여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을 배제할 수도 있다. 한반도가 전략적 지위를 갖지 못할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은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만은 없다. 이것이 한반도의 전략적 지위의 변화이다. 이북이 전략적 지위에 올라섬으로서 동북아 나아가 유라시아 세력판도의 가능한 경우의 수가 매우 복잡해진 것이다.

여기서 잠깐 북미회담을 전망해 보고 마무리하자.

북미회담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어떻게든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북미 수교는 이루어질 것이다. 이는 트럼프의 개인성향이나 미국 내 선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세계전략의 차원에서 전망되는 것이다. 미국은 개입전략에서 역외 균형전략으로 세계전략을 변화시키고 있다. 물론 이런 세계전략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조정과 준비를 해야 하기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미국 내의 군산복합체세력의 반발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로는 기존의 개입전략을 지속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가오는 경제위기는 이런 경향을 가속화 시킬 것이다. 주한미군은 철수하고 이남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급속히 축소될 것이다. 남북은 당분간 교류협력을 증가시킬 것이며, 국가연합정도까지는 발전할 것이나, 연방제 통일은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다.

북에 대해 잠깐 보면, 북은 시장에 대한 정책이 일관되지 못해왔다. 쏘련 붕괴이후 어쩔 수 없이 시장을 용인했다. 그러다 화폐개혁을 단행하며 시장을 부정하는 정책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미 시장이 일정 정도 북의 경제에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화폐개혁을 단행하자 시장에서 유통화폐가 인민폐에서 위안화로 급격히 이동한 것으로 볼 때, 화폐개혁 등으로 시장을 단숨에 통제하거나 제거할 수는 없을 듯하다. 이에 북은 시장을 계획경제에 의식적으로 포섭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변화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계획경제 내에서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시험을 하는 듯하다. 이런 의미에서 북미 수교가 진행되는데 따라 남북교류도 활성화 될 것이다. 이렇게 소위 개방이 활성화 된다면 기존의 사회주의 체제에 어떻게 작용할지 우려된다.

세계는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불균형은 커지고 있다. 새로운 혼돈의 시대, 새로운 질서가 새워지지 못한 상태에서 기존질서는 급속히 붕괴되고 있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 깊이와 폭이 얼마나 클지 그리고 그 고통의 시간은 얼마가 길지 아직 가늠할 수는 없다. 세 번째로 맞이하는 커다란 이행기에서 강대국의 충돌은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행기마다 민중은 자신의 지위와 몫을 키워왔다. 프랑스혁명이 그랬고, 러시아 혁명이 그렇다.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는 세계노동자계급에겐 기회가 될 것이다. <노/사/과/연>

 

1) 로버트 길핀, ≪국제정치에서의 전쟁과 평화≫, 임상순역, 선인, p. 21.

2) 에드워드 윌슨, ≪지구의 정복자≫, 이한음 옮김, 최재천 감수 해설, 사이언스 북스, 2012, p. 75.

집단 선택을 강조한 윌슨의 말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개체 선택이 집단 선택을 압도하는 일은 포유동물을 비롯한 척추동물에서는 드물 뿐만 아니라. 결코 완성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포유동물의 생활사와 집단 구조가 근본적으로 그것을 막는다.”

3) 위의 책, pp. 279-280. “인지 능력의 진화는 초기 정착지에서 활발하게 벌어지던 사회적 상호 작용에서 출발하여, 의도를 읽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의 점진적 향상과의 상승 작용을 거쳐서, 타자와 바깥 세계를 추상화하는 능력이 생겨나고, 마지막으로 언어가 등장하는 순서로 발달했다.”

4) 새뮤얼 보울스. 하버트 긴티스, ≪협력하는 종≫, 최정규. 전용범. 김영용 옮김, 한국경제신문, 2016, pp. 20-21.

“우리는 두 개의 명제를 제시하려 한다. 첫째, 사람들은 이기적인 이유에서뿐 아니라 진정으로 타인의 복지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사회규범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것 그 자체를 가치 있게 여기기 때문에 협력을 한다. 동일한 이유로 사람들은 타인의 협력 행위를 악용하는 사람들을 처벌한다.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득을 위해 공동 프로젝트 성공에 기여함으로써 만족감과 자긍심, 심지어 한껏 고무된 느낌을 갖기도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때때로 부끄러움이나 죄의식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둘째, 우리가 이러한 ‘도덕 감정’을 보유하게 된 것은 우리의 선조들이 살았던 환경에서 비롯된다. 서로 협력하고 윤리적 규범을 준수하는 성향을 가진 개인들로 구성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이나 세력 확장에 더 유리했으며, 사회 지향적 동기가 확산될 수 있도록 자연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었다.”

5)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대사전≫, 동녘, 1989, p. 1128.

6) 에드워드 윌슨, ≪지구의 정복자≫, 이한음 옮김, 최재천 감수 해설, 사이언스 북스, 2012, p. 93.

7) 위의 책, p. 96.

8) 김태유. 김대륜, ≪패권의 비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7, p. 34.

이하 경제와 전쟁의 순환구조에서 전자본주의 사회와 과도기 사회는 많은 부분 ≪패권의 비밀≫에 근거한 바이며 일일이 출처를 밝히지는 않겠다.

9) 채만수, ≪노동자 교양경제학≫, 노사과연, 2013, pp. 597-598.

“독점가격이란, 다름 아니라, 거대 자본이 그 시장지배력을 이용하여 평균이윤율을 넘는 이윤, 즉 독점이윤을 취하는 가격입니다. 이를 맑스는 ‘상품의 생산가격에 의해서도, 상품의 가치에 의해서도 규정되지 않고, 구매자의 욕망과 지불능력에 의해서 규정되는’가격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것은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서 형성되는 가격이 아니라 독점자본이 작위적으로 설정하는 관리가격입니다.

독점이윤은, 다른 자본의 이윤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총이윤 혹은 총잉여가치의 일부입니다. 독점자본이, 따라서 독점가격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한 사회의 일반이윤율, 즉 평균이윤율은 투하된 총자본에 대한 총잉여가치의 비율과 같을 것이고, 자본은 그러한 이윤율로 그 사회의 총잉여가치를 서로 분배할 것입니다. 그런데 독점이 성립되어 평균이윤율을 넘는 독점가격이 설정되게 되면, 그 사회의 일반이윤율은 그만큼 압박을 받아 내려갈 수박에 없게 되고, 그에 따라서 경쟁에 따른 집중, 즉 약체자본의 도산이나 경영상의 압박과 독점자본에 의한 그 인수 합병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10) 위의 책, p. 602.

11) 위의 책, p. 606.

12) 위의 책, p. 587.

13) 정의길, ≪지정학의 포로들≫, 한겨레출판, 2018, p. 299.

14) 자오팅양, ≪천하체계≫, 노승현 옮김, 도서출판 길, 2010.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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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 시기를 누군가는 고대에서 중세, 중세에서 근세로의 전환기와 같은 시대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너무나도 야만적인 가능성까지 점치는 상황인데 무엇보다 근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을 목도하는 시기의 문제를 선봉, 전위 정당의 지도력으로 해결해야 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서 일독 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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