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레닌주의의 기초에 대하여(1)*

 

이오씨프 쓰딸린(Иосиф Сталин)

번역: 신재길(교육위원장)

 

* 쓰딸린의 강의 “레닌주의의 기초에 대하여”는 1924년 4월과 5월 ≪쁘라우다≫지에 발표되었다. 1924년 5월에는 쓰딸린의 소책자 ≪레닌과 레닌주의에 대하여≫가 발행되었다. 여기에 회상기 “레닌에 대하여”와 강의 “레닌주의의 기초에 대하여”가 포함되어 있다. “레닌주의의 기초에 대하여”는 쓰딸린의 저작 ≪레닌주의의 제 문제≫의 모든 판에도 수록되어 있다.

 

레닌주의의 기초에 대하여

쓰베르들로프 대학에서 한 강의

 

레닌을 기념하여 입당한 동지들에게 드린다.

J. Stalin

 

 

 

레닌주의의 기초는 큰 주제이다. 이 주제를 충분히 설명하자면 온전한 책 한 권은 필요하다. 아니 여러 권을 써야 할 것이다. 당연히 이 강의가 레닌주의를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잘해야 레닌주의의 기초를 간명하게 추리는 정도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러한 개요라도 소개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레닌주의를 잘 연구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몇 가지 기본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레닌주의의 기초를 설명하는 것이 레닌의 세계관의 토대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레닌의 세계관과 레닌주의의 기초는 그 각각의 범위가 다르다. 레닌은 맑스주의자이고 맑스주의를 세계관의 토대로 삼고 있다. 그렇다고 맑스주의의 기본부터 레닌주의를 설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레닌주의를 설명한다는 것은 레닌이 맑스주의 보물고에 기여한 것으로 레닌의 이름과 관련된 특수하고 새로운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내가 이 강의에서 말하고자 하는 레닌주의의 기초란 이러한 의미이다.

그러면 레닌주의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들은 레닌주의란 맑스주의를 러시아의 특수한 조건에 적용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의가 진실의 일면을 나타내긴 하지만 완전하지는 않다. 레닌은 맑스주의를 러시아의 현실에 아주 능수능란하게 적용하였다. 그러나 만일 레닌주의가 단지 맑스주의를 러시아의 특수한 사정에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면 레닌주의는 순전히 일국적인, 오직 일국적인 즉 순전히 러시아적인, 오직 러시아적 현상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레닌주의가 국제적 발전 전반에 뿌리를 박고 있는 국제적 현상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레닌주의에 대한 위 규정이 일면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다른 사람들은 레닌주의란 1840년대의 맑스주의가 지녔던 혁명적 요소를 부활시킨 것이라고 한다. 소위 온건하고 비혁명적인 후기 맑스주의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맑스의 학설을 혁명적 부분과 온건한 부분으로 나누는 어리석고 속류적인 방법은 일단 논외로 하자. 그러면 전체적으로 보아 불충분하고 적당하지도 않은 이 정의에서도 진실의 일면을 보게 된다. 즉 제2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이 파묻어 버린 맑스주의의 혁명적 내용을 레닌이 부활시켰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아직 진실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레닌주의의 진짜 진실은 맑스주의를 부활시켰다는 것만이 아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본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새로운 조건에 맞게 맑스주의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는 데 있다.

그러면 레닌주의란 결국 무엇인가?

레닌주의는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 시대의 맑스주의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레닌주의는 일반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론과 전술이고 특수하게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이론과 전술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혁명(우리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전(以前) 시대에 활동했다. 이 시대는 발달한 제국주의가 발생하지 않았던 시대로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을 아직 준비하던 시대, 즉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직접적 실천적으로 필연적이지 않은 시대였다. 그러나 맑스와 엥겔스의 옹호자인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펼쳐지던 시대에 활동했다. 이 시대는 발달한 제국주의 시대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이미 한 나라에서 승리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쏘비에트를 열어 놓은 시대이다.

바로 이 때문에 레닌주의란 맑스주의를 가일층 발전시킨 것이 된다.

흔히들 레닌주의는 유달리 전투적이고 혁명적이라 한다. 지극히 옳은 말이다. 레닌주의가 이런 특성을 가지게 된 데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로 레닌주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태내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흔적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둘째로 레닌주의는 제2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에 대항하는 투쟁 속에서 자라나고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기회주의와의 투쟁은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맑스, 엥겔스에서 레닌에 이르는 사이에 제2 인터내셔널이 완전히 지배한 일정 시기가 있었다. 이 기회주의에 대한 무자비한 투쟁이 레닌주의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점을 잊어선 안 된다.

 

 

1. 레닌주의의 역사적 근원

 

레닌주의는 제국주의의 제 조건하에서 자라났고 실현되었다. 제국주의 시대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도에 달하여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직접적 실천의 문제로 대두된 시기이다. 혁명의 준비기가 절정에 이르고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에 전면적 공세를 취하는 새로운 시기로 들어선 시대이다.

레닌은 제국주의를 죽어가는 자본주의라고 불렀다. 왜 그런가?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모순들을 그 마지막 한계까지 밀고 갔기 때문이다. 이 극단을 넘어서면 혁명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모순들 중 다음의 세 가지 모순이 가장 중요하다.

첫째 모순은 노동과 자본 간의 모순이다. 제국주의는 산업 국가에 있어서 독점적 트러스트와 신디케이트, 은행과 금융과두제의 막대한 권력이다. 이 막대한 권력에 맞서는 투쟁에서 노동계급의 관습적 방법들인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원내정당과 의회투쟁은 이미 무력화되었다. 자본의 자비심에 매달려서 여전히 이럭저럭 살아가며 점점 나락(奈落)으로 떨어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무기를 집어 들 것인가. 이것이 제국주의가 대다수 프롤레타리아 대중에게 제기한 양자택일이다. 제국주의는 노동계급이 혁명에 나서도록 하고 있다.

둘째 모순은 각종 금융 패거리들 간이나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모순이다. 이들은 원료산지와 타국 영토를 약탈하기 위해 서로 싸운다. 제국주의는 원료산지에 자본을 수출한다. 원료산지를 독점하려고 광적으로 발버둥 친다. 이미 분할된 세계를 재분할하려고 발악한다. 태양이 비치는 찬란한 대지를 찾는 신흥 금융 패거리와 열강은 이미 약탈한 것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기성 패거리와 열강에 대항하여 아주 맹렬히 싸운다. 자본가 패거리들 간의 이런 광적인 싸움은 제국주의 전쟁의 불가피한 원인이 된다. 제국주의 전쟁은 타국 영토를 약탈하는 전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국주의자들은 서로를 약화시킨다. 일반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진지(陣地)가 약화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촉진되고 필연적인 실천적 문제가 된다.

셋째 모순은 한 줌의 지배 문명민족과 수억에 달하는 세계의 식민지 및 종속국 인민 간의 모순이다. 제국주의는 광대한 식민지 및 종속국에 살고 있는 수억의 인민을 그야말로 파렴치하게 착취하고 그야말로 비인간적으로 억압한다. 이러한 착취와 억압의 목적은 초과이윤을 짜내는 것이다. 그러나 착취하기 위해서 제국주의는 철도, 공장, 제분소, 상공업 중심지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정책의 필연적 결과로 노동계급이 출현하고, 토착 인텔리가 등장하며, 민족의식이 깨어나 해방운동이 강화된다. 예외 없이 모든 식민지와 종속국에서 혁명운동이 강화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 준다. 이와 같은 상황이 노동계급에게 중요한 것은 식민지 및 종속국을 제국주의의 예비군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예비군으로 전화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진지를 뿌리째 헐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체로 이전의 꽃 피우던 자본주의를 죽어가는 자본주의로 전화시킨 제국주의의 주된 모순들이다.

10년 전에 발발한 제국주의 전쟁[제1차 세계대전: 역자]은 무엇보다도 이 모든 모순을 한데 묶어 저울 한편에 올려놓음으로써 노동계급의 혁명적 전투를 가속화하고 쉽게 해 주었다.

달리 말해 제국주의 전쟁은 혁명을 필연적인 실천적 문제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본거지를 직접 공격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다.

이것이 레닌주의가 태어난 국제정세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건 모두 옳지만 전형적인 제국주의 국가도 아니었고 그럴 수도 없었던 러시아가 여기에 무슨 상관이 있는가? 무엇보다 주로 러시아에서, 러시아를 위해 활동한 레닌이 여기에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무슨 까닭에 다름 아닌 러시아가 레닌주의의 모국이 되었으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론과 전술의 발원지가 되었는가?

그것은 러시아가 제국주의의 모든 모순의 중심 고리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러시아가 다른 나라보다 혁명적 기운을 더 많이 내포하고 있었으며 오직 러시아만이 혁명적 방법으로 이 모순들을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로, 짜르 러시아는 가장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온갖 종류의 억압 즉 자본주의적, 식민지적 및 군사적 억압의 발원지였다. 알다시피, 러시아에서는 자본의 힘이 짜리즘의 폭정과 결합되어 있었다. 러시아 민족주의의 침략성은 비러시아 인민에 대한 짜리즘의 잔인무도한 정책과 결합되어있었다. 그리고 터키, 페르시아, 중국 등 광범한 지역에 대한 착취는 짜리즘의 강탈이나 정복전쟁과 결합되어 있었다. 레닌이 짜리즘을 군사적-봉건적 제국주의라고 한 것은 옳은 말이었다. 제국주의가 갖는 최악의 특징들이 짜리즘에 집중되었고, 짜리즘은 그것을 더욱 악화시켰다.

다음으로 짜르 러시아는 서구 제국주의의 가장 큰 예비군이었다. 이것은 외국자본이 연료 및 금속공업과 같은 러시아 민족경제의 기본분야를 자유로이 통제하였다는 것에서뿐만이 아니다. 러시아가 서구 제국주의자들에게 수백만 병사를 제공하였던 의미에서도 그렇다. 영국과 프랑스 자본가들의 엄청난 이윤을 보호하기 위해 제국주의 전장에서 1,400만의 러시아 병사가 피 흘린 사실을 상기해 보라.

그 다음으로 짜리즘은 동유럽에서 제국주의의 사냥개였을 뿐만 아니라 빠리와 런던, 베를린, 브뤼셀에서 제공된 차관에 대한 수백만금의 이자를 수억의 주민에게서 짜내는 서구 제국주의의 앞잡이였다.

마지막으로, 짜리즘은 터키, 페르시아, 중국 등을 분할하는 데 있어서 서구 제국주의의 가장 충실한 동맹자였다. 알다시피, 짜리즘은 협상국[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중심의 동맹국의 반대 진영인 프랑스, 영국, 러시아: 역자] 제국주의자들과 동맹하여 제국주의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러시아는 중요 참전국이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짜리즘과 서구 제국주의의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 마침내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라는 하나의 실타래를 이룬 이유이다.

이전의 전제적이고 부르주아적인 러시아는 서구 제국주의에게 동방의 강력한 기둥이고 병력과 자원의 풍부한 저수지였다. 이런 러시아를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 서구 제국주의가 러시아 혁명에 반대하고 짜리즘을 방어 보전하기 위한 결사적 투쟁을 단념하겠는가? 물론 아니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짜리즘을 공격하려는 자는 누구나 불가피하게 제국주의를 공격하게 되고, 짜르에 대항하려는 자는 누구나 제국주의에 대항하게 된다. 짜리즘을 전복하려는 자가 참으로 짜리즘을 단지 패퇴시킬 뿐만 아니라 여지없이 소탕하려고 생각했다면 제국주의도 역시 전복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짜리즘에 반대하는 혁명은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혁명으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성장 전화해야만 했다.

러시아에서 일어난 위대한 인민혁명은 세계에서 가장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가 지도하였으며, 프롤레타리아에게는 러시아의 혁명적 농민과 같은 소중한 동맹자가 있었다. 혁명은 중도에 멈추지 않았다. 혁명은 승리하여 마침내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봉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앞으로 더욱 전진하였다. 이것을 구태여 증명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와 같이 러시아는 제국주의의 모순들이 집중된 중심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제국주의 모순의 중심 고리가 된 것은 모순들이 러시아에서 특히 추악하고 참을 수 없는 것이어서 쉽게 폭로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또 러시아가 서구 금융자본을 동방의 식민지와 연결시켜 주는 서구 제국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둥이였기 때문만도 아니다. 러시아가 제국주의 모순의 중심 고리가 된 것은 러시아가 제국주의 모순을 혁명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재적 세력이 존재했던 유일한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러시아 혁명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되었으며 그 발전의 첫날부터 국제적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세계 제국주의의 지반 그 자체를 뒤흔들어 놓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하에서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이 활동을 러시아 혁명이라는 좁은 민족적 범위 내에 제한할 수 있었겠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반대로 정세는 국내정세(심각한 혁명적 위기)나 국제정세(전쟁)나 모두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이 활동의 범위를 국제적 무대로 옮아가게 만들었다.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은 제국주의의 병폐를 폭로하고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파멸을 증명하며 사회배외주의와 사회평화주의를 분쇄하였다. 결국 러시아에서 자본주의를 전복한 데 기초해서 노동계급을 위한 새로운 투쟁의 무기, 즉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과 전술을 만들어내어 전 세계 노동계급이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활동을 촉진하였다.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은 달리 행동할 수 없었다. 오직 이 길만이 부르주아 질서의 복구로부터 러시아를 지킬 수 있는 국제정세의 일정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러시아가 레닌주의의 발원지가 되고 러시아 공산주의자의 지도자인 레닌이 레닌주의의 창시자가 된 이유이다.

러시아와 레닌에게 일어난 일은 1840년대에 독일과 맑스, 엥겔스에게 일어난 일과 같다. 당시 독일은 20세기 초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혁명의 기운이 넘쳐나고 있었다. 맑스는 당시 공산당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공산주의자들이 독일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독일이 부르주아 혁명의 전야에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부르주아 혁명은 17세기 영국이나 18세기의 프랑스보다 더 발전된 유럽문명의 조건하에서, 그리고 더욱 발전된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수행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독일의 부르주아 혁명은 오직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직접적인 서곡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1)

 

다시 말해 혁명운동의 중심이 독일로 이동한 것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맑스가 지적한 상황이 독일이 과학적 사회주의의 발원지가 된 바로 그 원인이며 독일 노동계급의 지도자인 맑스와 엥겔스가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가 된 의심할 바 없는 원인이다.

20세기 초의 러시아도 같은 상황이었다. 물론 그 정도는 훨씬 더 심하였다. 러시아는 당시 부르주아 혁명의 전야였다. 이 부르주아 혁명은 당연히 유럽의 상황이 더욱더 진전된 조건하에서, 그리고 1840년대 독일의 부르주아 혁명 때보다도(영국과 프랑스의 부르주아 혁명은 말할 것도 없고) 더욱 발전된 노동계급과 함께 수행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사실은 부르주아 혁명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촉매이자 서곡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레닌은 러시아 혁명이 겨우 맹아적 시기였던 1902년에 일찍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예지적 발언을 하였다. 이는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역사는 지금 우리 앞에(즉 러시아 맑스주의자 앞에: 쓰딸린) 긴급한 임무를 제기하였다. 그것은 어떤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직면한 모든 긴급한 임무보다도 가장 혁명적인 임무이다.

 

그리고 

 

… 이 업무의 실현, 즉 유럽의 반동뿐만 아니라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시아적 반동의 가장 강력한 방파제를 파괴하는 일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를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인 전위로 만들 것이다.2)

 

달리 말해, 혁명운동의 중심이 러시아로 옮아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러시아 혁명의 과정은 레닌의 예지적 발언을 확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모든 것에 비추어 볼 때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성취하고 혁명을 성취한 노동계급을 가진 나라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론과 전술의 발원지가 된 것이 어찌 놀랄 일이겠는가?

동시에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인 레닌이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이론과 전술을 창시하고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가 된 것이 어찌 놀랄 일이겠는가? (다음 호에 계속) <노/사/과/연>

 

 

 

 


1) [역자 주] 맑스, “공산당 선언”,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제1권, 박종철출판사, pp. 432-433. 여기에는 역자가 일부 수정한 번역을 실었다.

2) [역자 주]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레닌 저작선≫, 거름, p.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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