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증세와 노예

 

이영훈 | 회원, 건설 노동자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어도 우리 노동자들의 앞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쥐꼬리만한 급여와 호황 때나 공황에도 아랑곳 않고 꿋꿋이 오르거나 올리는 물가는 그나마 모아놓은 돈을 야금야금 휴지조각으로 만든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삶이 편해져야 정상인데 모두 지배계급 개인들의 사적인 이윤을 위해서만 적용되니 노동자들 스스로 알량한 일거리 하나 가지고 지배계급과 싸우는 것이 아닌 서로의 목을 옥죄고 있다.

요즘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쓰기 전에 생각나는 것은 전과 달라진 게 없다…

거짓말처럼 시대와 사람만 다를 뿐 비참한 광경이 똑같을 수 있을까?

4월 중순쯤 어느 일요일 저녁 어머니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한마디 하신다.

이놈의 인간들은 어디서 이렇게들 튀어나오는 건지 으메 죽겠다 죽겠어! 하루 종일 계산대에서 찍어대느라 나갈 수가 없네!

여기까지만 보면 어머니가 단순히 9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이 바빠서 저러려니 하겠지만 자세히 얘기 해 보지 않아도 핵심은 뒤에 있었다.

으휴 한 년이 그만 뒀는데 요즘 장사가 좀 안 되는지, 사람 뽑을 생각을 안 하더라. 손님은 몰리고 직원은 적어지고. 세 명에서 하루 종일 찍느라 죽겠다 등등…

직원들은 맨날 사람이 몰려서 죽을 맛이라는데 얼마나 더 이윤을 뽑아내야 만족할는지….

그 이전에 듣기로는 휴무도 마음대로 못하고 서로 원하는 날짜 쉬겠다고 난리가 나는 바람에 그냥 임의로 날짜 배정 당하시고… 내 어머니만 이렇다고 생각하기엔 주위에 이름도 얼굴도 어떤 삶은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불쌍한 어머니들이 너무나 많다.

이래저래 노동자는 힘들다. 뭐 노동절은 당연히 특별한 추가 휴무 날 없이 일하시고.

거리에 있는 건물에 수많은 서비스직 노동자들이 밥 짓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계산하고 온갖 노동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니 다른 산업 현장은 오죽할까?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이윤을 위해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 불쌍한 노동자들.

5월 1일 노동절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무너지면서 6명이 숨지고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치고 2명도 위태위태하다고 하는데 그래도 안전 대책은 또 똑같겠지. 왜냐하면 노동자는 돈의 노예니까. 노예들아 안전은 자기 자신이! 내가 한다! 알았지? 다 여러분들을 위해 이렇게 하는 겁니다! 이제 저런 말 좀 그만 듣고 싶다. 그럼 그럼 노예 몇천 명이 산업 현장에서 숱하게 죽어도 그게 자본의 입장에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죽어가는 사람 살리는 것보다 산 사람 시체 만드는 게 더 싼데 노예들을 위해서 현장을 안전하게 해 줄 필요가 없지. 일은 빨리 하게 만들어 놓고 사고가 나면 우리는 안전하게 할라 그랬는데 노동자들이 협조를 안 해 줘서요라고 하면 되고 사람들이 항의해 봤자 힘도 없는 놈들이 울다가 곧 사라질 거고 내 전 재산 털리고 회사가 망할 것도 아닌데 뭐 하로 안전하게 해? 수백억 쓸 바엔 수억을 목숨 값이라고 내놓으면 그만이지.

가만 보면 세금 걷어서 저런 거 막아 달라고 관리 잘하라고 국가에 준다고 배우는데…  저런 거 막는 꼬라지를 못 봤다. 산업현장 말고 그 몸에 해롭다고 맨날 떠드는 담배만 해도 세금 걷어서 흡연자들 금연시키고 치료하는 데 쓰긴 썼나? 세금 올려도 열심히 피우니까 내비두던데? 온갖 세금들이 열심히 올라가고 노동 시간이나 노동 강도는 기술이 발전해도 줄기는커녕 옆에 직원도 잘라 버리고서라도 현상유지하거나 야근까지 시켜버리는 데도 우리의 임금은 하루 살기도 벅차다.

그렇다. 우리는 어느 회사 어느 직장 어느 일터의 직원이 아니라 노예였던 것이다.

임금이라는 기만적인 말장난에 가려져서 자기가 일한 만큼 받는다고 착각하는 노예라서 몰랐던 것이다. 눈 밑이 시커멓게 휴식 없이 죽어라 일해도 심지어 자기 분야의 최고가 되라는 멋진 말로 포장해서 평생 일하는 것만을 위해 공부하고 자격증 따고 기술만 익히다 죽으라는데…. 왜 저들이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이름을 고쳤는지 너무나 잘 알겠다. 말 그대로 일만 열심히 하라고. 이게 노예지 뭐. (돈만 아는 저질이 되는 건 덤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 녀석이 불만을 토로했다. 기능학교 나와서 카센터 일하면서 3개월 정도 하면 130만 원에서 적당히 협의해서 올려준다더니 5달째 됐는데 돈 올려준다는 말도 없고 하는 소리가 너 일할 거 면 앞으로 더 열심히 하면서 진지하게 배우든가 지금처럼 어정쩡하게 하면 이도 저도 안되니 다른 분야 생각해 보라고 했다며 불평을 했다.

그것과는 별개로 그쪽 상사 분들은 얼마나 훌륭한 삶을 사나 얘기를 들어보니 핸드폰 게임하고 온갖 RPG PC게임에 매달려서 자기도 비위 맞추려고 같이한다고 한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 전까지 12시간 가까이 일해 주는 직원한테 저따위 소리나 하고 자빠져 있으니…. 나도 첫 취업하고 저런 식으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주변에도 저렇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세상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거라고 떠드는 게 당연한 게 되고 자기도 훌륭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면서 무의미한 여흥에 주말을 탕진하고 사는 같은 임금노예 주제에…. 이제 저런 말 들으면 그래. 열심히 살아야지, 근데 당신들 방식대로 열심히 살지는 않을 거야. 내 인생이 당신들 인생하고 같을 리가 없잖아?

이번엔 시골로 넘어가서 사과 농사짓는 아버지가 자식들 보고 좀 와서 주말에 일 좀 도와주면 안 돼나며 아쉬운 소리를 하시는데 사과 따고 정리시키고 하는 작업을 하루에 시키려면 인당 7만원이 좀 넘는 돈을 써야 된다고 하신다.

세상에 치여 농사를 시작하신 지 3년이 조금 넘으셔서 모아놓은 것도 없어 기반이 약한 것도 있겠지만 문제는 당장 하루하루 엄청난 육체적 노동 강도로 일해야 하는 내 앞가림도 하기 힘든데 노동에 찌든 몸으로 가서 차비까지 써 가며 일해 주려고 생각하니 갑갑하기만 하다.

몇 푼 안 되는 돈도 아쉬워서 자식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온갖 종류의 자영업을 하시는 소부르주아 사장님들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누군가를 더 싸게 아니면 무상으로 노동력을 구할 수 있다면 가족에게라도 부탁하는 그 모습에서 착취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만 남을 착취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참모습을 내 가족을 통해 보게 될 줄이야….

이토록 세상이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살다보니 다들 술에 절어서 산다.

한국에서는 음주로 인한 사건 사고가 무진장 많다고 한다. 근데 왜 그럴까? 건설이나 공업 현장 제조업 등 그 외에 노동 강도가 비인간적이라고 소문난 곳의 노동자들을 보면 무절제한 음주와 품격 없어 보이는 삶을 사는 것 같다고 세상이 손가락질하지만 정작 그들은 그러한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강요받기에 술 없이 못 사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실 주변에 둘러보면 사무직이고 하얀 색깔 직종이라고 하는 사무직들조차 다 술 없이 못 사는 삶이지 않은가?

아래 사진은 동네 마트에서 찍었다. 평소에도 사람이 많은 마트인데 금요일 그날도 사람이 질려버릴 정도로 몰렸다. 저런 상황에서 스트레스 안 받고 술 담배 안 할 수 있으랴?

 

IMG_0762

 

정작 이걸 본 정부 공직자 놈들은 엉뚱하게 민중의 건강이 어쩌고 무절제한 음주문화 타령하며 술값을 올리겠다며 증세할 생각이나 하고 자빠져 있다.

이 세상살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로워서 그 고통이나마 잊기 위해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알코올을 몸에다가 때려 박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데! 그래서 퍼 마시는 건데!

이 잔혹한 자본주의에서 감히 폐를 새까맣게 안 태우며 간을 혹사시키지 않고 누가 버티랴?

몸에 좋지도 않은 거 팔아먹으면서 건강한 민중을 위한다는 요상한 핑계를 대며 담배에 이어 주류세도 올리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짜증이 안 날 수가 없다.

이 빌어먹을 나라가 직접세고 간접세고 새로운 세금을 만들고 증세를 한 만큼 더 내기 위해 노동하는 삶. 정치꾼들과 자본가들 쌈짓돈 하라고 세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니면 모르는 거려나?

저러기만 하면 모른다. 속도와 경쟁에 치여 일할 때나 쉴 때나 갈 길 바쁘고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을 위해 교통 잘 지키라고 교통위반 관련해서 벌금 올려주시고 방송세니 주민세니 뭐니 몇 년간 못 올렸다며 온갖 지역세금 올리시고 수출 잘되게 한다고 환율 조작해서 물가 올려서 부가가치세도 물가 오른 만큼 더 내게 만드시고 세계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위해 환경을 더럽히는 물건을 잘만 만들어 내더니 갑자기 친환경 물건을 만들어 내라며 호객행위를 하고 기후협약이 어쩌고 탄소배출세가 어쩌고, 알지도 못하는 것들 포함하면 셀 수가 없다 없어.

우리 민중은 이렇게 혜택은 없이 소비를 강요당하고 세금 올리는 대로 내주는 삶이라니…

이렇게 살기 힘든 세상, 한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노동현장에서 정년에 벌벌 떨며 쥐꼬리만한 연금 생각에 고된 노동현장에 하루라도 더 붙어 있으려고 오늘내일 걱정하는 분들을 생각하고 집에 와서 다시 부모님을 봤다. 그들보다야 조금 어리시지만 이제 세월을 걱정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20살이 30살만 돼도 나이가, 경력이 어쩌고 따지고 40대만 돼도 잘라버리려고 드는데 60세가 넘는 분들은 노예로도 안 보일 것이다. 아마 폐기물이라고 여기겠지?

글을 쓰다 보니 어린 시절 애들이 하던 정신 나간(?) 농담이 하나 생각난다.

MBC에서 짤막하게 엄마 세상은 참 따듯한 거죠? 우리 문화방송~ 이러는 광고가 있었다. 아마 9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자주 TV에서 봤던 것일 텐데 저 말대로 세상이 참 따듯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우리의 어린 학생들은 뒤의 가사를 이렇게 바꿔서 낄낄대며 놀았다. 엄마 세상은 참 따듯한 거죠? 미친놈아 겨울이야~

이런 농담에 아무 생각 없이 동기들과 낄낄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쩐지 어른 되고나서 세상이 너무 쌀쌀맞더라….. 하….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들던 말이 현실일 줄이야….

요즘 기초철학 쎄미나를 하며 배웠던 미하일 일린의 ≪인간의 역사≫에는 고대 이집트에 노예가 불렀다던 노래가 있는데 그 명곡의 가사가 현대를 살아가는 나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소들아 이삭을 짓밟아라!

이삭을 짓밟아 버려라!

어차피 그건 주인 것이다.

 

노예제 사회에 나온 노래지만 생각 안 하면 자본주의 사회와 차이가 느껴지지 않아 보인다.

노예=임금노예(노동자)이고, 주인(귀족, 노예주)=자본가(정치 모리배, 하수인들)로 본다면 후후… 같은 시간 일하면 노예는 만원 주인은 천만 원 정말 공평한 세상이군.

단지 착취당하는 방식의 차이라면 예전엔 양반이나 귀족은 대놓고 세금을 안 내거나 조금만 내고 피지배계급은 눈에 보이게 자기가 직접 그 무거운 세금을 현물로 실어 날랐지만 오늘날에는 노예임을 눈치 못 채게 계좌이체라는 아름다운 방식으로 납부한다는 것이려나? 지배계급은 가진 것이 많으니 지식인을 고용하여 은밀하게 위대하게 탈세를 하고.

디지털 세상 온갖 세금으로부터 도망조차 못 가는 불쌍한 문명의 노예여, 아!

정말 주변 사람들과 민중이 이렇게 고통받는 것을 지켜보고 나열하는 것도 싫다 싫어. 전국 고통받기 자랑하나? 전 세계에 근로대중들도 희망 없는 노동에 매몰되어 얼마나 힘들꼬. 위 아 더 월드! 세계는 하나다!

5월 16일 화요일 어머니는 일 끝나고 저녁에 돌아오신 뒤 4시간 동안 쉬지도 못하고 계산했다며 죽겠다고 하신다. 꼼짝없이 계산대에서 못 나오는데 사람도 안 바꿔 준다며 야채 쌈을 곁들인 밤참에 내가 사온 맥주를 한잔 들이키신다. 술 자주 사다놓으면 안 된다고 하시더니 한숨도 안 나올 정도로 가혹한 노동 앞에서는 별수 없이 마셔야 되나 보다.

나도 건설 노동에 찌들어서 다음 날 열심히 맥주를 집에서 마셔댔다.

눈앞의 고통에 억지스러운 인내와 감내 타령 보다 술이 가까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 모두 성인군자는 아니니까. 그것을 거부할 정도로 세상이 자비로운 것도 아니고.

 

이제 며칠이나 됐을까? 그놈의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지 얼마 안됐는데 얼마나 전 두 번의 정권이 노골적으로 민중을 개 무시했으면 별달리 한 거 없이 전 정권이 하던 짓만 걷어찼을 뿐인데 나라가 제대로 돌아간다며 지지자들이 눈물을 흘려댈까? 그러나 수많은 노동 투사들은 아직 잊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에게 억압과 약탈, 감옥과 죽음을 선사했던 자들이 바로 정권을 지금 다시 차지한 저들이라는 것을. 곧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면을 벗어던지고 민중에게 허울뿐인 민주주의 위에서 우아한 근로노예의 삶을 강요할 것을.

≪인간의 역사≫에 나오는 고대 스파르타의 노예들이 몸소 보여 줬던 행동의 구절로 마무리 한다.

그렇다, 노예로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아 여기서 하는 말이 자살하자거나 무의미하게 죽자는 건 아니고, 한 많았던 세상 이렇게 얌전하게 그냥 죽어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진정 박 터지게 한번 싸워 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삶은 소중하니까.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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