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2)

 

이오씨프 쓰딸린(Иосиф Сталин)

번역: 신재길(편집위원)

 

 

3.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이제 우리는 맑스의 이론적 학설을 알았다.

그의 방법을 알았으며 그의 이론도 역시 알았다.

우리는 이 학설에서 어떠한 실천적 결론을 내려야 하는가?

변증법적 유물론과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간에는 어떠한 연관이 있는가?

변증법적 방법에 의한다면 나날이 자라나며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며 훌륭한 미래를 위하여 꾸준히 싸우는 그 계급만이 노예의 멍에를 벗어던질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라나며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며 미래를 위하여 싸우는 유일한 계급은 도시와 농촌의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복무하여야 하며 그들에게 우리의 희망을 걸어야 한다.

이것이 맑스의 이론적 학설에서 나오는 첫 실천적 결론이다.

그러나 복무하는 데도 여러 가지가 있다. 베른슈타인도 역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복무하고 있다. ― 그는 사회주의를 잊어버리라고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설교하고 있다. 끄로뽀뜨낀도 역시 프롤레타리아에게 복무하고 있다. ― 그는 광범한 산업토대를 못 가진 분산적인 공동체적 사회주의를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권하고 있다. 칼 맑스도 역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복무하고 있다. ― 그는 현대적 대공업의 광범한 토대에 의거하는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를 건설하라고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호소하고 있다.

우리의 활동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이롭도록 하자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복무하여야 할 것인가?

유물론적 이론에 의한다면, 어떠한 이상이든 그것이 국내의 경제적 발전에 모순되지 않고 그 발전의 요구에 완전히 부합되는 때에만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직접 봉사할 수 있다. 자본주의 제도의 경제적 발전이 보여 주고 있는 바와 같이 현대의 생산은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생산의 사회적 성격은 현존하는 자본주의적 소유를 근본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요 과업은 자본주의적 소유를 전복하고 사회주의적 소유를 확립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주의를 잊어버리라고 설교하는 베른슈타인의 학설이 경제적 발전의 요구와 근본적으로 모순되며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해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자본주의 제도의 경제적 발전은 현대의 생산이 날로 확장되어 개개의 도시나 도의 한계 내에 머물러 있을 수 없고 부단히 그 한계를 타파하여 전 국토를 포괄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따라서 우리는 생산의 확장을 환영하여야 하며 개개의 도시나 공동체가 아니라 전 국가의 불가분적인 전 영토를 미래의 사회주의의 기초로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영토는 앞으로 더욱더 확장될 것이다. 이것은 미래의 사회주의를 개개의 도시나 공동체의 한계 내에 몰아넣는 끄로뽀뜨낀의 학설이 강력한 생산 확장의 이해와 모순되며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해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범한 사회주의적 생활을 주요한 목표로 삼고 투쟁 하는 것 ― 우리는 이렇게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복무하여야 한다.

이것이 맑스의 이론적 학설에서 나오는 두 번째 실천적 결론이다.

명백히 프롤레타리아적 사회주의는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나오는 필연적인 결론이다.

그러면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오늘날의 제도는 자본주의 제도이다. 이것은 세계가 두 개의 서로 대립되는 진영 즉 한 줌도 못 되는 소수의 자본가 진영과 대다수를 이루는 프롤레타리아 진영으로 나뉘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지만 여전히 가난하며 자본가는 일을 안 하지만 부유하다. 그런데 이것은 노동자가 미련하고 자본가가 영특하기 때문인 것이 아니라 자본가가 노동자의 노동의 열매를 빼앗기 때문이며 노동자를 착취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노동자 자신이 아니라 바로 자본가가 노동자의 노동의 열매를 가지게 되는가? 왜 노동자가 자본가를 착취하지 않고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가?

그것은 자본주의 제도가 상품생산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상품의 형태를 취하며 어디서나 매매의 원칙이 지배하고 있다. 이 제도하에서는 일용품이나 식료품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노동력, 그들의 피, 그들의 양심까지도 살 수 있다. 자본가들은 이 모든 것을 알고 노동자의 노동력을 사며 그들을 고용한다. 이는 자본가는 그가 사들인 노동력의 주인으로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는 자기가 판 노동력에 대한 권리를 잃어버린다. 다시 말하면 이 노동력이 만들어 낸 것은 이제는 노동자의 것이 안 되고 자본가의 것으로 되며 그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 가령 당신이 판 노동력이 하루에 100루불의 상품을 생산한다고 하자.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것으로 되지 않으며 당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그것은 자본가의 것으로 되며 그에게만 관계가 있는 것이다. 당신은 하루의 임금을 받을 뿐이다. 그것은 물론 당신이 아껴 쓰는 경우에야 겨우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일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사며 노동자를 고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자본가가 노동자의 노동의 열매를 가지며 또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가 자본가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하필이면 자본가가 노동자의 노동력을 사는가? 왜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고용되지 않고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고용되는가?

그것은 생산도구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가 자본주의 제도의 주되는 기초로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장, 토지, 지하자원, 삼림, 철도, 기계 및 기타 생산수단이 한 줌도 못 되는 소수 자본가들의 사적소유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노동자가 이 모든 것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본가가 공장을 돌리기 위해서 노동자를 고용하게 된 이유이다. ― 그렇지 않다면 그의 생산도구와 생산수단은 아무런 이윤도 주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노동자가 자기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게 된 이유이다. ― 그렇지 않다면 그는 굶어 죽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일반적 성격을 명백히 보여 준다. 첫째로, 자본주의적 생산은 그 어떤 단일하고 조직된 생산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완전히 개개의 자본가들의 사적 기업체로 분할되어 있다. 둘째로, 분산된 이 생산의 직접적인 목적은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이윤증가를 위한 판매용 상품을 생산하는 데 있다는 것도 역시 명백하다. 그런데 자본가들은 누구나 다 자기의 이윤을 증대시키려고 열망하는 것만큼 그들은 저마다 될 수 있는 대로 더 많이 상품을 생산하려고 하여 그 결과 시장에 급격히 상품은 차고 넘쳐나며 상품가격은 떨어져 드디어 전반적 공황이 닥쳐오게 된다.

이렇듯 공황, 실업, 생산의 중단, 생산의 무정부성은 현대의 비조직적인 자본주의적 생산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비조직적인 이 사회제도가 아직 무너지지 않고 아직 그것이 노동계급의 공격에 완강하게 대항하고 있는 것은 우선 자본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정부가 그 사회제도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기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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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할 바 없이 미래의 사회는 전혀 다른 기초 위에 건립될 것이다.

미래의 사회는 사회주의 사회이다. 이것은 우선 그 사회에 어떠한 계급도 없으리라는 것 즉 자본가도 없고 노동자도 없으며 따라서 착취도 없으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 사회에는 집단적으로 노동하는 창조자들(Schaffende)만이 있게 될 것이다.

미래의 사회는 사회주의 사회이다. 이것은 또한 그 사회에 가서는 착취가 없어짐과 함께 상품생산과 매매도 없어질 것이며 따라서 그 사회에 가서는 노동력의 구매자와 판매자 즉 고용주와 피고용자가 있을 수 없고 다만 자발적인(freie) 창조자들만이 있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의 사회는 사회주의 사회이다. 이것은 마지막으로, 그 사회에 가서는 임금노동이 없어짐과 함께 생산도구와 생산수단에 대한 온갖 사적소유가 청산될 것이며 그 사회에 가서는 가난한 노동자도, 부유한 자본가도 없게 될 것이며 다만 전체 토지와 지하자원, 전체 삼림, 전체 공장, 전체 철도 등을 집단적으로 소유하는 창조자들만이 있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보다시피 미래의 생산의 주요 목적은 자본가들의 이윤을 증대시키기 위한 판매용 상품을 생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수요를 직접 충족시키는 데 있는 것이다. 이 사회에 가서는 상품생산이요, 이윤을 위한 투쟁이요 하는 것 등은 없어질 것이다.

미래의 생산은 사회주의적으로 조직되고 고도로 발전된 생산이라는 것, 그것은 사회의 수요를 타산하고 사회에 요구되는 수량만큼 생산하게 되리라는 것도 역시 명백하다. 거기에는 생산의 분산성도, 경쟁도, 공황도, 실업도 없을 것이다.

계급이 없고 부자와 가난뱅이가 없는 곳에서는 국가도 필요 없게 되며 또 가난한 사람을 구박하고 부자를 옹호하는 정치적 권력도 필요 없게 된다. 따라서 사회주의 사회에 가서는 정치적 권력의 존재가 필요 없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벌써 1846년에 칼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노동계급은 발전과정에서 낡은 부르주아 사회를, 계급과 계급적 대립을 배제하는 한 개의 협동체(Assoziation)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리고 본래의 의미에서의 정권은 벌써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철학의 빈곤≫을 보라.)

 

그렇기 때문에 1884년에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요컨대 국가는 머나먼 태고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없어도 되었으며 국가와 국가권력을 전혀 모르던 사회가 있었다. 계급으로의 사회의 분열과 필연적으로 연결된 경제적 발전의 특정한 단계에서 국가는 … 필연적인 것으로 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계급의 존재가 필연적이 아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생산의 실제적인(positives) 장애물로 되는 그러한 생산발전단계에 급속한 발걸음으로 접근하고 있다. 계급의 소멸은 과거에 그 발생이 불가피하였던 것처럼 불가피하다. 계급의 소멸과 함께 국가도 불가피하게 소멸할 것이다. 생산자들의 자발적(freier)이고 평등한 협동(Assoziation)에 기초하여 생산을 새로이 조직하는 사회는 전체 국가기구를, 그때에 그것이 응당 가 있어야 할 곳으로 보낼 것이다. 즉 물레와 청동도끼와 함께 박물관으로. (≪가족, 사적소유 및 국가의 기원≫을 보라.)

 

이와 동시에 사회주의 사회에는, 여러 가지 정보를 집중하게 된 지방 사무소들과 아울러 공동의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전 사회의 수요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며 다음에는 노동자들 간에 여러 가지 사업을 적절히 배정해야 할 중앙통계국이 필요하게 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대표자협의회(conferences)와 특히 대표자대회(congresses)도 역시 필요하게 될 것이며 그 대회의 결정은 다음 대회까지 소수파로 된 동지들에게는 무조건 의무적인 것으로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발적인(freie) 동지적 노동이 미래의 사회주의 사회의 전체 수요를 역시 동지적으로 완전히 충족시켜야 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런데 이것은 미래의 사회가 자기의 매개 성원에게 그가 할 수 있는 정도의 노동을 요구할 것인 만큼 그 사회는 또 각자에게 필요한 정도의 생산품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수요에 따라! ― 이러한 원칙 위에서 미래의 집단주의(kollektivistisch) 제도는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 노동에 익숙하지 못한 구성원들이 새 생활에 참가하게 되고 생산력도 역시 충분히는 발전하지 못하고 또 힘든노동과 깨끗한 일이 여전히 남아 있게 될 사회주의의 단계에서는 각자에게는 수요에 따라라는 원칙을 실현하기가 물론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는 일시적으로 어떤 다른 중간의 길에 설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미래의 사회가 제 궤도에 들어서고 자본주의 잔재가 근본적으로 청산되는 때에는 상술한 원칙이 사회주의 사회에 적합한 유일한 원칙으로 되리라는 것도 역시 명백하다.

그렇기 때문에 1875년에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공산주의 사회의 보다 높은 단계에서, 개인이 노예와 같이 분업에 예속되는 상태가 소멸되고 이와 함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간의 대립이 소멸된 후에야, 노동이 생활을 위한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생활상 제1차적 요구로 된 후에야, 개인들의 전면적 발전과 함께 생산력도 장성하게 … 된 후에야, 그때에야 비로소 좁은 부르주아적 권리(민법)의 한계(bürgerliche Rechtshorizont)는 완전히 극복되고 사회는 자기 깃발에다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수요에 따라!라고 쓸 수 있다. (고타 강령 비판을 보라.)

 

이상이 맑스의 이론에 따른 미래 사회주의 사회의 대체적 모습이다.

이것은 모두 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과연 사회주의는 실현될 수 있는가? 사람들이 자기의 야만적인 습관을 없애 버릴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또 각자는 수요에 따라 받는다고 하는데 사회주의 사회의 생산력은 그렇게 하는 데 충분할 만한 수준에 올라서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사회주의 사회는 충분히 발전한 생산력과 인간의 사회주의적 의식과 그들의 사회주의적 계몽을 전제로 한다. 현존하는 자본주의적 소유는 현대의 생산력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데 미래 사회에 가서는 이런 소유가 없어지리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생산력이 10배나 더 증대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미래의 사회에 가서는 수십만에 달하는 오늘의 기생충들과 실업자들이 취업하여 근로자들의 대열을 보충하게 되며 이것이 생산력의 발전을 크게 촉진하리라는 점도 역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야만적 감정이나 견해에 대하여 말한다면, 이것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영원불변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 사적소유를 인정하지 않던 원시공산주의 시대가 있었는데 그 후에는 사적소유가 사람들의 감정과 이성을 지배하던 개인적 생산의 시대가 닥쳐왔으며 지금은 새 시대, 사회주의적 생산의 시대가 닥쳐오고 있다. ― 그런즉 사람들의 감정과 이성이 사회주의적 염원으로 물들어 간다 해서 놀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래 존재가 인간의 감정과 견해를 규정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런데 사회주의 제도가 필연적으로 수립된다는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현대 자본주의의 발전에 뒤이어 사회주의가 온다는 것은 불가피한가? 혹은 달리 말하면 맑스의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가 단지 감상적인 공상이나 환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에 대한 과학적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역사는 소유형태가 생산형태에 직접 종속되며 그런 까닭에 생산형태의 변화와 함께 조만간에 소유형태도 불가피하게 변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소유가 공산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던 시기 즉 원시인들이 돌아다니던 산과 들이 개별적인 사람들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전체 사람들에게 속하여 있던 시기도 있었다. 왜 그 시기에는 공산주의적 소유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생산이 공산주의적이었으며 노동이 공동적, 집단적이었으며 따라서 모두가 공동으로 일하였으며 또 서로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 이와는 다른 시기 즉 소부르주아적 생산의 시기가 닥쳐왔는데 그때에는 소유가 개인적(사적)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따라서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물론 공기와 햇빛 등을 제외하고는)이 사적소유로 인정되고 있었다. 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는가? 그것은 생산이 개인적 생산으로 되고 사람들이 저마다 외진 곳에서 자기를 위하여 일하게 되었던 까닭이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적 대규모 생산의 시대가 닥쳐왔는데 여기서는 수백 수천의 노동자들이 한 공장의 한 지붕 밑에 모여 공동노동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여러분이 각자 분리된 사람들이 단독으로 일하던 낡은 식의 작업을 보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매개 노동자나 매개 직장의 전체 노동자가 자기 직장의 동료들이나 다른 직장들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어느 한 직장의 작업만 정지되어도 전 공장의 노동자들이 작업을 못 하게 된다. 보다시피 생산과정과 노동은 이미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사회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다. 이것은 개개의 공장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개 생산부문 내에서와 여러 부문들 간에서도 볼 수 있다. 철도 노동자들이 파업하기만 하면 생산이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되며 원유와 석탄의 생산이 중지되면 얼마 후에 전체 공장들이 문을 닫게 된다. 여기에서는 생산과정이 사회적, 집단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 그리고 점유(占有)의 사적 성격은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현대의 집단적 노동은 불가피하게 집단적 소유를 가져오기 때문에 사회주의 제도가 밤이 가면 낮이 오는 것과 같이 자본주의에 뒤이어 불가피하게 닥쳐오고야 말 것은 명백하다.

이와 같이 역사는 맑스의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의 불가피성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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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사회적 생산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며 자기 수중에 생산의 주요한 기능을 장악하고 있는 계급이나 사회적 집단이 결국은 필연적으로 이 생산의 주인으로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여 준다. 여자들이 생산의 주인으로 인정되었던 모권시대가 있었다. 이것은 무엇으로써 설명할 것인가? 그것은 당시의 생산 즉 원시적 농업에 있어서 여성들이 주역을 담당하고 그들이 주되는 활동을 수행한 반면 남자들은 짐승을 찾아 숲속을 돌아다니었다는 것으로써 설명된다. 그 다음에 생산에서 지배적 지위가 남자들의 수중으로 넘어간 부권시대가 되었다. 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는가? 그것은 당시의 생산에서 목축업이 지배적이 되어서, 창, 올가미, 활과 화살 등의 생산도구를 사용하는 남자들이 주되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 자본주의적 대규모 생산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 시기에는 노동자가 생산에서 주역이 되기 시작하였으며 주요한 모든 생산기능이 그들의 수중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들이 없이는 생산이 하루도 지속될 수 없으며(총파업을 상기하라) 자본가들은 생산에서 무익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생산의 방해물로 되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모든 사회생활이 완전히 파괴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가 머지않아 필연적으로 현대의 생산을 지배해야 한다는 것, 그것의 유일한 소유자, 사회주의적 소유자로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적 소유의 임종의 기도를 올리면서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하는 문제를 결정적으로 제기하는 현대 산업공황은 이 결론을 극히 명백하게 보여 주고 있으며 자본가들의 기생성과 사회주의 승리의 필연성을 뚜렷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렇게 해서 역사는 맑스의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의 필연성을 입증하여 준다.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는 감상이나 추상적 정의나 노동자들에 대한 사랑에 입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과학적 근거에 입각하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는 과학적 사회주의라고도 한다.

엥겔스는 벌써 1877년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일 … 오늘날의 노동생산물 분배방식이 바야흐로 변혁을 앞두고 있다는 데 대한 우리의 확신이 단지 이 분배방식은 불공정하며 그러므로 정의는 언젠가는 승리해야만 한다는 의식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려운 처지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며 우리는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이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대 자본주의 생산방식에 의하여 생산된 생산력이나 그에 의하여 조성된 부의 분배제도나 다 그 생산방식 자체와 극심한 모순에 빠지게 되었으며, 그것도 현대사회 전체가 멸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생산과 분배 방식에 변혁이 일어나 모든 계급적 차이를 일소하지 않으면 안 될 그러한 정도에 이른 데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주의의 승리의 확신은 법이니 불법이니 하는 탁상공론적인 철학자의 관념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 이 명료한 물질적 사실, 바로 이 사실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반뒤링론≫을 보라.)

이것은 물론 자본주의가 와해되어 가는 것만큼 어느 때든지 자기가 하고만 싶으면 사회주의 제도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무정부주의자들과 기타 소부르주아 사상가들만이다. 사회주의적 이상은 모든 계급의 이상이 아니다. 이것은 오직 노동계급의 이상일 따름이다. 또한 이 이상의 실현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는 것은 모든 계급이 아니라 오직 노동계급만이다. 그런데 이것은 노동계급이 사회의 극히 적은 부분을 이루고 있는 동안은 사회주의 제도의 수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낡은 생산형태들의 파멸, 자본주의적 생산에로 가일층의 집중과 사회의 대다수의 프롤레타리아화 ― 이러한 조건이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아직 불충분하다. 사회의 대다수가 이미 프롤레타리아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사회주의는 아직 실현되지 못할 수 있다. 그것은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데는 이 모든 것 외에도 노동계급의 계급적 의식, 그의 일치단결과 자기 자신의 사업을 지도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갖추자면 또 이른바 정치적 자유, 즉 언론, 출판, 파업, 결사의 자유, 한 마디로 말해서 계급투쟁의 자유가 필요하다. 그런데 정치적 자유는 어디서나 동일하게 보장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계급은 그가 어떠한 조건하에서 투쟁하게 되겠는가, 즉 전제적-농노제적 조건하에서인가(러시아), 입헌군주제적 조건하에서인가(독일),혹은 대부르주아 공화제적 조건하에서인가(프랑스),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 공화제적 조건하에서인가(러시아 사회민주당의 요구) 하는 데 무관심할 수 없다. 정치적 자유는 민주주의 공화제에서 가장 훌륭히, 가장 원만하게 보장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정치적 자유가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제도하에서 보장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의 전체 지지자들은 반드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가장 좋은 다리인 민주주의 공화제가 수립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맑스주의의 강령은 현 조건에서는 두 부분 즉 사회주의를 목표로 하는 최고 강령과 민주주의 공화국을 거쳐 사회주의로 가는 길을 개척할 목적을 가진 최저 강령으로 나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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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급은 자기의 강령을 자각적으로 실현하며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명백하다.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지와 타협하는 것으로써는 사회주의를 이룩할 수 없다. 노동계급은 언제나 변함없이 투쟁의 길로 나아가야 하며 또 그 투쟁은 반드시 계급투쟁이어야 하며 전체 부르주아지를 반대하는 전체 노동계급의 투쟁이어야 한다. 부르주아지와 그의 자본주의인가 그렇지 않으면 노동계급과 그의 사회주의인가, 둘 중의 하나이다. 노동계급의 활동과 그의 계급투쟁은 반드시 여기에 기초하여야 한다.

그런데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계급투쟁으로서 들 수 있는 것은 예컨대 동맹파업인데 그것이 부분적 파업인가, 총파업인가 하는 것은 여기서는 아무래도 좋다. 보이콧과 태업도 물론 계급투쟁이다. 대중 집회, 시위, 대의제 기관(그것이 의회이건 지방자치기관이건 할 것 없이)에 참가하는 것 등등도 역시 계급투쟁이다. 이 모든 것은 동일한 계급투쟁의 다양한 형태들이다. 우리는 이 투쟁 형태 중에서 어느 것이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에 더 큰 의의를 가지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기서 밝히지 않고 다만 때와 장소에 맞게 적용될 때에는 어느 형태나 노동계급의 자각과 조직성을 발전시키는 불가결의 수단으로서 그들에게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만을 지적해 둔다. 그런데 자각과 조직성은 노동계급에게는 공기처럼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에게 있어서는 이 모든 투쟁형태가 준비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을 하나하나 떼어 놓는다면 어느 한 형태도 자본주의를 타도할 수 있는 노동계급의 결정적 수단으로는 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이다. 총파업만으로는 자본주의를 타도할 수 없다. 총파업은 자본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약간의 조건을 준비할 수 있을 따름이다. 노동계급이 의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써 자본주의를 전복할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의회 투쟁으로써는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한 약간의 조건을 준비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면 자본주의 제도를 전복할 수 있는 노동계급의 결정적 수단이란 무엇인가?

그러한 수단은 바로 사회주의 혁명이다.

동맹파업, 보이콧, 의회 투쟁, 대중 집회, 시위 등 ― 이 모든 투쟁 형태는 노동계급을 훈련하며 조직하는 좋은 수단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단 중 어느 하나도 현재의 불평등을 근절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를 철저히 파괴하자면 이 모든 수단을 하나의 주되는 결정적인 수단에 집중시켜야 하며 노동계급이 궐기하여 부르주아지에 대한 결정적인 공격을 가하여야 한다. 바로 이러한 주되는 결정적인 수단이 사회주의 혁명이다.

사회주의 혁명을 불의의 타격이나 단번의 일격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부르주아지를 패배케 하고 그의 진지를 점령하는 노동자 대중의 장구한 투쟁이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승리는 동시에 패배한 부르주아지에 대한 지배로 되며 또 계급들의 충돌 시에는 한 계급의 패배가 곧 다른 계급의 지배를 의미하는 것만큼 사회주의 혁명의 첫 단계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노동계급의 정치적 지배로 될 것이다.

노동계급의 사회주의적 독재, 노동계급의 권력쟁취 ― 바로 여기로부터 사회주의 혁명은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부르주아지가 아직 완전히 패배하지 않았고 그의 재산이 아직 몰수되지 않고 있는 동안은 노동계급이 반드시 군사력을 자기 손에 틀어쥐고 있어야 하며 그에게는 반드시 자기의 노동자 수비대가 있어야 하며 이 수비대에 의거하여, 빠리 꼬뮌 당시에 빠리의 노동계급이 한 것처럼, 죽어 가는 부르주아지의 반혁명적 공격을 물리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계급의 사회주의 독재는 노동계급이 부르주아지를 수탈하며 모든 부르주아지들에게서 토지, 삼림, 공장, 기계, 철도 등등을 몰수하기 위하여 필요하다.

부르주아지에 대한 수탈 ― 바로 이것을 사회주의 혁명은 목표(lead to)로 하여야 한다.

이러한 노동계급의 사회주의 독재가 노동계급이 현대 자본주의 제도를 전복할 때에 의거하게 되는 주되는 결정적인 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1847년에 벌써 칼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노동자 혁명에 있어서의 제1보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계급에로의 전화(Erhebung)이다. … 프롤레타리아트는 자기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하여 부르주아지의 자본 전체를 점차 탈취하며 모든 생산도구를 … 지배계급으로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시킨다. … (≪공산당 선언≫를 보라.)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면 노동계급은 반드시 이러한 길을 걸어야 한다.

이 일반적 원칙에서 다른 모든 전술상 견해들이 흘러나온다. 파업, 보이콧, 시위, 의회 투쟁 등등은 그것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노동계급을 조직하며 그의 조직체를 확대ㆍ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한에서만 의의를 가진다.

 

*          *          *

 

그런즉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필요하고 사회주의 혁명은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지를 수탈(expropriate)하기 위하여 정권을 자기 수중에 장악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실현하자면 노동계급의 조직화, 단결과 통일이 필요하며 노동계급의 강한 조직체들을 창건하고 그것을 부단히 발전시켜야만 한다.

노동계급의 조직체들은 어떠한 형태를 가져야 하는가?

가장 일반적인 대중적 조직체는 노동조합과 노동자 협동조합(주로 생산협동조합과 소비협동조합)이다. 노동조합의 목적은 현대 자본주의의 범위 내에서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하여 (주로) 산업자본과 투쟁하는 데 있다. 협동조합의 목적도 두말할 것 없이 같은 현대 자본주의의 범위 내에서 필수품 가격을 내리는 방법을 통해 노동자들의 소비증진을 보장하기 위하여 (주로) 상업자본과 투쟁하는 데 있다. 노동조합이나 협동조합은 물론 다 같이 노동자 대중을 조직하는 수단으로서 노동계급에게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맑스와 엥겔스의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노동계급은 반드시 이 두 형태의 조직체를 틀어쥐어야 하며, 물론 현재의 정치적 조건이 허락하는 한에 있어서 이 조직체를 견고하게 강화하여야 한다.

그러나 단지 노동조합과 협동조합만으로는 투쟁하는 노동계급의 조직적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 상술한 조직체들은 자본주의의 범위 내에서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할 목표를 내세우고 있는 것만큼 그것들은 자본주의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적 노예생활에서 완전히 벗어나려고 하며, 자본주의의 테두리 내에서 맴돌려고만 하지 않고 이 테두리 자체를 때려 부수려고 한다. 그러므로 각종 직업에 종사하는 계급의식 있는 노동자들을 자기 주위에 결집시키며 노동계급을 의식적 계급으로 만들고 자본주의 제도의 분쇄와 사회주의 혁명의 준비를 자기의 가장 주되는 목적으로 내세울 그러한 조직체가 또한 필요하다.

이러한 조직체가 곧 노동계급의 사회민주당이다.

이 당은 다른 당들에서 완전히 독립적인 계급적 정당으로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당은 오직 자기 자신의 손에 의해서만 자기를 해방할 수 있는 노동계급의 당이기 때문이다.

이 당은 혁명적인 정당으로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은 혁명적인 방법에 의해서만 즉 사회주의 혁명에 의해서만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당은 국제주의적 정당으로 되어야 하며 당의 문은 계급의식이 있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열려져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의 해방은 민족적 문제인 것이 아니라 그루지야의 노동자나 러시아의 노동자나 기타 민족의 노동자들에게 동일한 의의가 있는 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로부터 명백한 바와 같이 서로 다른 민족의 노동자가 더욱 굳게 결속될수록, 그들 간의 민족적 장벽이 더욱 철저히 파괴될수록 노동계급의 당은 더욱 강대하여질 것이며 노동계급은 더욱 쉽게 하나의 불가분의 계급으로 조직될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의 조직체들에서는 그것이 당이건, 노동조합이건, 협동조합이건 할 것 없이 연방주의적 산만성(散漫性)에 대립하여 중앙집권제 원칙을 최대한으로 도입하여야 한다.

또한 명백한 것은 이 모든 조직들이 민주주의적 원칙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인데 물론 이것은 그 어떤 정치적 조건이나 기타 조건의 지장을 받지 않는 경우에 한하는 것이다.

당을 한편으로 하고 협동조합과 노동조합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이 둘 간의 상호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협동조합과 노동조합은 당적인 것으로 되어야 하는가? 혹은 비당적인 것으로 되어야 하는가? 이 문제의 해결은 노동계급이 어디서, 어떤 조건하에서 투쟁하게 되는가 하는 데 달려 있다. 그러나 어쨌든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이 노동계급의 사회주의적 정당과 긴밀한 관계에 있으면 있을수록 더 충분히 발전하게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만일 이 두 개의 경제적 조직체들이 강력한 사회주의적 정당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대개 편협하게(petty) 되고 협소한 직업적 이해 때문에 전체 계급의 이해를 잊어버리게 되며 따라서 노동계급에게 큰 해를 준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 있어서나 반드시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에 대한 당의 사상ㆍ정치적(ideological and political) 영향이 보장되어야 한다. 오직 이렇게 된 때에만 상술한 조직체들은 개별적인 집단으로 분산되어 있는 노동계급을 의식적인 계급으로 조직하는 사회주의의 학교로 될 것이다.

이상이 맑스와 엥겔스의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의 대략적인 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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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부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를 어떻게 보는가?

우선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가 단순한 철학 학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는 노동자 대중의 학설, 그들의 기치이며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이를 존경하며 숭배하고 있다. 그러므로 맑스와 엥겔스는 단순히 어떤 철학 학파의 창시자인 것이 아니라 나날이 장성ㆍ강화하는 살아 있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살아 있는 지도자이다. 이 학설과 투쟁하며 그것을 전복하려고 하는 자는 누구나 힘에 겨운 이 투쟁에서 공연히 자기의 이마를 깨지 않으려거든 이 모든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무정부주의자 제씨는 이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맑스, 엥겔스와 투쟁할 때 매우 별난 새로운 무기를 사용한다.

이 새로운 무기란 무엇인가? 자본주의적 생산에 대한 새로운 연구인가? 맑스의 ≪자본론≫에 대한 논박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혹은 그들이  새로운 사실귀납적 방법으로 무장하고 사회민주주의의 성서인 맑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을 과학적으로 논박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비범한 수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맑스와 엥겔스가 표절하였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여러분이라면 이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결국 맑스와 엥겔스에게는 독창적인 것이란 아무것도 없고 과학적 사회주의는 순전히 꾸며낸 것인데 그것은 맑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처음부터 끝까지 빅또르 꽁씨데랑의 ≪선언≫에서 훔쳐 온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극히 가소로운 이야기이다. 그러나 무정부주의자들의 비할 바 없는 지도자 체르께지쉬빌리는 대단한 자신을 가지고 이 가소로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으며 체르께지쉬빌리의 얼빠진 사도 삐에르 라무쓰란 자와 우리의 국내 무정부주의자들이 이 발전을 열심히 되풀이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간단하게나마 이 이야기를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체르께지쉬빌리의 말을 들어 보라.

 

≪공산당 선언≫의 전체 이론적 부분 즉 제1장과 제2장은 … 빅또르 꽁씨데랑에게서 빌려 온 것이다. 그러므로 이 합법적인 혁명적 민주주의 성서인 맑스와 엥겔스의 ≪선언≫은 빅또르 꽁씨데랑의 ≪선언≫을 서투르게 되풀이하여 놓았을 뿐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꽁씨데랑의 ≪선언≫의 내용만을 훔친 것이 아니라 … 심지어는 개개의 제목까지도 그대로 베끼었다. (≪공산당 선언≫의 유래라는 표제 하에 독일어로 출판된 체르께지쉬빌리,라무쓰,라브리올라의 논문집, 10페이지를 보라.)

 

이 이야기는 다른 무정부주의자 라무쓰도 반복하고 있다.

 

그들(맑스와 엥겔스)의 주요 저작(≪공산당 선언≫)은 순전한 절취(표절), 파렴치한 절취이며 그것도 도적들이 보통 하듯이 말마디마다 그대로 베낀 것이 아니라 사상과 이론만을 절취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 (같은 책,4페이지를 보라.)

 

≪호소≫, ≪노동자≫1), ≪목소리≫2) 등등에서 우리의 무정부주의자들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이리하여 과학적 사회주의와 그의 이론적 기초는 꽁씨데랑의 ≪선언≫에서 절취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주장할 만한 근거라고 할 것이 있는가?

빅또르 꽁씨데랑은 어떤 사람인가?

칼 맑스는 어떤 사람인가?

1893년에 사망한 빅또르 꽁씨데랑은 공상적 사회주의자 푸리에의 제자였으며 구제할 수 없는 공상주의자(utopian)였던 그는 프랑스의 구원을 위한 희망을 계급들의 타협에서 찾았다.

1883년에 세상을 떠난 맑스는 유물론자이며 공상주의자들의 적이었던 그는 인류해방의 담보를 생산력의 발전과 계급들의 투쟁에서 보았다.

그들 간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과학적 사회주의의 이론적 기초는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적 이론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사회생활의 발전은 전적으로 생산력의 발전에 의하여 규정된다. 만일 지주-농노제의 뒤를 이어 부르주아 제도가 나타났다면 그 는 부르주아 제도의 발생을 불가피하게 한 생산력의 발전에 있다. 또 현대 부르주아 제도를 대신하여 사회주의 제도가 불가피하게 나타난다면 그 원인은 현대 생산력의 발전이 그것을 요구한다는 데 있다. 자본주의가 파괴되고 사회주의가 수립될 역사적 필연성은 여기에 기인한다. 우리가 자기의 이상을 인간의 정신(minds)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생산력 발전의 역사에서 찾아야 한다는 맑스주의의 명제는 여기에서 온 것이다.

이것이 맑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의 이론적 기초이다(≪공산당 선언≫, 제1장, 제2장을 보라).

빅또르 꽁씨데랑의 ≪민주주의 선언≫에 이와 비슷한 말이라도 있는가? 꽁씨데랑은 유물론적 관점을 받아들이는가?

체르께지쉬빌리나 라무쓰나 우리의 ≪호소≫파는 꽁씨데랑이 유물론자이며 사회생활의 발전을 생산력의 발전에 근거하여 설명하였다고 확증할 단 하나의 성명도, 단 한 마디의 말도 꽁씨데랑의 ≪민주주의 선언≫에서 인용하지 않았다고 우리는 단언한다. 그와 반대로 우리는 꽁씨데랑이 사회주의의 역사에서 관념론적 공상주의자로서 알려져 있다는 것을 대단히 잘 알고 있다(폴 루이, ≪프랑스 사회주의의 역사≫를 보라).

무엇 때문에 이 괴상한 비판가들은 쓸모없는 수다를 떨고 있으며 어째서 그들은 유물론과 관념론도 구별하지 못하는 주제에 맑스와 엥겔스를 비판하려고 덤벼들었는가? 단지 사람들이나 웃겨 보려고 한 것인가? …

과학적 사회주의의 전술적 기초는 비타협적인 계급투쟁에 관한 학설이다. 그것은 이 학설이 노동계급의 수중에 있는 최고의 무기인 까닭이다. 노동계급의 계급투쟁 ― 이것은 노동계급이 정권을 전취하고 다음에 사회주의를 수립하기 위하여 자본가계급을 수탈하는 무기이다.

이것이 맑스와 엥겔스의 ≪선언≫에 서술되어 있는 과학적 사회주의의 전술적 기초이다.

꽁씨데랑의 ≪민주주의 선언≫에 이와 비슷한 말이라도 있는가? 꽁씨데랑은 계급투쟁을 노동계급의 수중에 있는 최고의 무기로 인정하였는가?

체르께지쉬빌리와 라무쓰의 논문들(위에서 언급한 논문집을 보라)에서 보는 바와 같이 꽁씨데랑의 ≪선언≫에는 이런 말이 한 마디도 없다. 거기에는 다만 계급투쟁이 유감스러운 사실이라고 지적되어 있을 따름이다.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수단으로서의 계급투쟁에 대해서는 꽁씨데랑은 자기의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본과 노동과 재능 ― 이것이 생산의 세 개의 기본요소이며 부의 세 개의 원천이며 산업 메커니즘의 세 수레바퀴다. … 이것들을 대표하는 세 계급은 공통된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역할은 기계가 자본가와 인민을 위하여 작동하도록 하는 데 있다. … 그들에게는 … 통일된 민족 내부에서 모든 계급들의 연합을 결성할 위대한 목적이 있다. … (칼 카우츠키의 소책자 ≪공산당 선언―어떤 표절≫, 14페이지를 보라, 거기에 꽁씨데랑의 ≪선언≫으로부터 인용되어 있다.)

 

모든 계급들이여, 단결하라!이것이 빅또르 꽁씨데랑이 자기의 ≪민주주의 선언≫에서 선포한 구호이다.

계급들을 타협시키려고 하는 이 전술과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 모든 반(反)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반대하여 단결하라고 견결히 호소하는 맑스와 엥겔스의 비타협적 계급투쟁의 전술 간에 무슨 공통점이 있는가?

물론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그런데 왜 체르께지쉬빌리와 그의 얼빠진 추종자들은 이 부질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가? 그들은 우리를 죽은 사람으로 아는가? 우리가 그들을 폭로하지 못할 줄 알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이 있다. 빅또르 꽁씨데랑은 1893년까지 살았다. 1843년에 그는 자기의 ≪민주주의 선언≫을 출판하였다. 1847년 말에 맑스와 엥겔스는 자기들의 ≪공산당 선언≫을 썼다. 그 후 맑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은 유럽의 각국어로 거듭하여 출판되었다. 맑스와 엥겔스가 자기의 ≪선언≫으로써 신기원을 열어 놓았다는 것은 모두 아는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꽁씨데랑이나 그의 친우들은 누구 하나 맑스와 엥겔스의 생존 시에 이들이 꽁씨데랑의 ≪선언≫에서 사회주의를 표절하였다는 말을 어디에서도, 단 한 번도 한 일이 없다. 독자들이여! 이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면 무엇이 귀납법을 뽐내는 이… (실례이지만) 학자들로 하여금 부질없는 소리를 지껄이게 하였는가? 누구의 이름으로 그들은 지껄이고 있는가? 과연 그들은 꽁씨데랑보다 그의 ≪선언≫을 더 잘 안단 말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빅또르 꽁씨데랑과 그의 지지자들이 ≪공산당 선언≫을 읽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러나 이만하면 충분하다. … 무정부주의자들 자신도 라무쓰-체르께지쉬빌리의 돈 끼호떼식 진격에 큰 주의를 돌리지 않고 있다. 이 가소로운 진격의 수치스러운 종말은 너무나 명백하므로 많은 주의를 돌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

이제 본질적인 비판으로 넘어 가자.

 

*          *          *

 

무정부주의자들에게는 어떤 고질병이 하나 있다. 그들은 자기의 반대파 당을 비판하기는 아주 즐겨하나 이 당들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조금도 노력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무정부주의자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변증법적 방법과 유물론적 이론을 비판할 때에도 역시 그러한 태도를 취하였다. (제1장과 제2장을 보라.) 그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에 대해서도 역시 그렇게 하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사회혁명당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 간에 원칙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모를 사람이 있겠는가? 사회혁명당원들은 맑스주의, 맑스주의의 유물론적 이론, 그의 변증법적 방법, 그의 강령과 계급투쟁을 부인하는데,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전적으로 맑스주의에 입각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혁명 러시아≫(사회혁명당원들의 기관지)와 ≪이쓰끄라≫(사회민주주의자들의 기관지) 간의 논쟁을 조금이라도 얻어들은 사람이라면 그에게는 이 원칙적 차이가 명백할 것이다. 그런데 이 차이를 보지 못하고 사회혁명당원이나 사회민주주의자나 다 맑스주의자라고 떠들어 대는 비판가에 대하여 당신들은 무엇이라고 말하겠는가? 무정부주의자들은 예컨대 ≪혁명 러시아≫와 ≪이쓰끄라≫ 두 기관지가 다 맑스주의적 기관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무정부주의자들의 논문집 ≪빵과 자유≫, 202페이지를 보라.)

사회민주주의의 원칙들에 대한 무정부주의자들의 앎(familiar)이란 이런 정도이다!

따라서 그들의 과학적 비판이 얼마나 근거가 있겠는가 하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명백하다. …

비판을 고찰하여 보자.

무정부주의자들의 주되는 비난 내용은 그들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진정한 사회주의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들은 사회주의자가 아니고 사회주의의 적이라고 그들은 계속 되풀이한다.

이에 대하여 끄로뽀뜨낀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우리는 … 사회민주주의 학파의 대다수 경제학자들과는 다른 결론을 내린다. … 대다수 사회주의자들(사회민주주의자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저자)의 결론은 국가자본주의와 집단주의인데 우리의 결론은 … 자유로운 공산주의이다. (끄로뽀뜨낀, ≪현대과학과 무정부주의≫,74-75페이지를 보라.)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국가자본주의집단주의란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끄로뽀뜨낀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독일 사회주의자들의 말에 의하면 축적된 전체 재부(財富)는 국가의 수중에 집중되어야 하는데 국가는 그 재부를 노동자의 협동체에 맡기고 생산과 교환을 조직하며 사회의 생활과 노동을 관리하게 되리라고 한다. (끄로뽀뜨낀, ≪폭동자의 연설≫, 64페이지를 보라.)

 

그리고 또 이렇게 썼다.

집단주의자들은 … 자기들의 계획에서 … 이중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 제도를 청산하려고 하면서도 그 제도의 기초로 되는 두 가지 조직 즉 대의제 통치와 임금노동을 보존하고 있다. (≪빵의 쟁취≫, 148페이지를 보라.) … 주지하는 바와 같이 집단주의는 … 임금노동을 … 그대로 보존한다. 다만 … 대의제 정부가 … 주인 자리에 앉는 것이 다를 뿐이다. …

이 정부의 대표들은 생산에서 생기는 잉여가치를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사용할 권리를 가진다. 이외에도 이 제도에서는 노동자의 노동과 교육받은 자의 노동 간에 … 차이를 둔다. 집단주의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미숙련 노동자의 노동은 단순노동이며 맑스가 복잡노동이라고 한 그러한 노동에 종사하는 수공업자, 기사, 학자 등등은 더 많은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 (같은 책, 52페이지.) 이리하여 노동자들은 필요한 생산물을 그들의 수요에 따라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봉사에 비례하여 받게 될 것이다. (같은 책, 157페이지를 보라.)

그루지야 무정부주의자들도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데 다만 그 뻔뻔스러움이 더할 뿐이다. 그들 중에서 유달리 무모하게 떠들어 대는 이가 바똔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집단주의란 무엇인가? 집단주의 혹은 더 정확히 말하여 국가자본주의는 다음과 같은 원칙 위에 서 있다. 즉 각자는 자기가 원하는 만큼 혹은 국가가 정해 주는 만큼 일하면서 자기 노동의 대가를 상품으로 받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 그런즉 여기서는 입법의원이 필요하며 … 집행권 즉 장관(ministers), 온갖 행정관, 헌병과 밀정들이(역시) 필요하게 되며 만일에 불평을 품은 자들이 지나치게 많다면 아마 군대도 필요하게 될 것이다. (≪호소≫, 제5호, 68-69페이지를 보라.)

이상이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무정부주의자 제씨의 첫째 비난이다.

 

*          *          *

 

그런즉 무정부주의자들의 논의대로 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1.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사회주의 사회는, 주되는 주인으로서 노동자들을 고용하며 장관 … 헌병, 밀정을 반드시 가지게 될 정부가 없이는 해 나갈 수 없다.

2.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힘든 노동과 깨끗한 일 간의 구별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각자에게 수요에 따라라는 원칙이 거부되고 각자에게 노동에 따라라는 다른 원칙이 인정되게 될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무정부주의자들의 비난은 이 두 가지 점에 귀결된다.

무정부주의자 제씨가 제기하는 이 비난에는 어떤 근거가 있는가?

우리는 여기서 무정부주의자들이 말하는 그 모든 것은 어리석음의 결과가 아니면 부질없는 허위선전이라고 단언한다.

사실은 다음과 같다.

일찍이 1846년에 칼 맑스는 이렇게 말하였다:

 

노동계급은 발전과정에서 낡은 부르주아 사회를, 계급과 계급적 대립을 배제하는 한 개의 협동체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리고 본래의 의미에서의 정권은 벌써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철학의 빈곤≫을 보라.)

 

1년 후 맑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공산당 선언≫ 제2장)에서 역시 그와 같은 견해를 진술하였다.

1877년에 엥겔스는 쓰기를 국가가 참으로 전 사회의 대표자로서 등장하는 최초의 행위―사회의 이름으로 생산수단을 장악하는 것―는 동시에 국가가 국가로서 취하는 최후의 독자적인 행위이다. 그때에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국가권력의 간섭이 한 부분씩 연이어 불필요하게 되어 저절로 잠들고 만다. … 국가는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시들어 사라지게 된다(absterben)라고 하였다. (≪반뒤링론≫.)

1884년에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요컨대 국가는 머나먼 태고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없어도 되었으며 국가와 국가권력을 전혀 모르던 사회가 있었다. 계급으로의 사회의 분열과 필연적으로 연결된 경제적 발전의 특정한 단계에서 국가는 … 필연적인 것으로 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계급의 존재가 필연적이 아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생산의 실제적인(positives) 장애물로 되는 그러한 생산발전단계에 급속한 발걸음으로 접근하고 있다. 계급의 소멸은 과거에 그 발생이 불가피하였던 것처럼 불가피하다. 계급의 소멸과 함께 국가도 불가피하게 소멸할 것이다. 생산자들의 자발적(freier)이고 평등한 협동(Assoziation)에 기초하여 생산을 새로이 조직하는 사회는 전체 국가기구를, 그때에 그것이 응당 가 있어야 할 곳으로 보낼 것이다. 즉 물레와 청동도끼와 함께 박물관으로. (≪가족, 사적소유 및 국가의 기원≫을 보라.)

 

엥겔스는 1891년에 이것을 다시 반복하였다. (≪프랑스 내전≫ 서문을 보라.)

보다시피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견해에 있어 사회주의 사회란 소위 국가 즉 장관, 도지사, 헌병, 경찰과 병사들을 가지고 있는 정치적 권력이 존재할 수 없는 그러한 사회이다. 국가 존재의 마지막 단계는 사회주의 혁명시기이다. 그때에는 노동계급이 자기의 수중에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부르주아지를 종국적으로 폐절하기 위하여 자기의 정부(독재)를 수립할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지가 폐절되고 계급이 폐절되고 사회주의가 수립될 때에는 어떠한 정치적 권력도 필요 없을 것이며 소위 국가는 과거의 일로 되고 말 것이다.

보다시피 상술한 무정부주의자들의 비난은 아무 근거도 없는 비방이다.

비난의 둘째 조항에 대해서는 칼 맑스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공산주의(즉 사회주의) 사회의 보다 높은 단계에서, 개인이 노예와 같이 분업에 예속되는 상태가 소멸되고 이와 함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간의 대립이 소멸된 후에야, 노동이 … 그 자체가 생활상 제1차적 요구로 된 후에야, 개인들의 전면적 발전과 함께 생산력도 장성하게 … 된 후에야, 그때에야 비로소 좁은 부르주아적 권리(민법)의 한계(bürgerliche Rechtshorizont)는 완전히 극복되고 사회는 자기 깃발에다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수요에 따라!라고 쓸 수 있다. (고타 강령 비판을 보라.)

 

보다시피 맑스의 견해에 의하면 공산주의(즉 사회주의) 사회의 최고 단계란 힘든 노동과 깨끗한 일의 구분,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간의 모순이 완전히 없어지고 노동이 평등하게 되며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수요에 따라라는 진정한 공산주의적 원칙이 사회에서 지배하게 되는 그러한 제도이다. 여기에는 임금노동을 위한 여지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비난 역시 전혀 무근거하다는 것이 명백하다.

둘 중의 하나이다. 즉 무정부주의자 제씨가 맑스와 엥겔스의 상술한 저서를 전혀 보지도 않고 들은풍월로 비판하고 있든가 그렇지 않으면 맑스와 엥겔스의 상술한 저서를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첫째 비난의 운명이다.

 

*          *          *

 

무정부주의자들의 둘째 비난은 그들이 사회민주주의의 혁명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혁명가가 아니며 당신들은 폭력적 혁명을 부인하고 오직 선거에 의하여 사회주의를 수립하려 한다고 무정부주의자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들어 보라:

… 사회민주주의자들은 … 혁명, 혁명투쟁, 무장투쟁을 논하기를 즐겨 한다. … 그러나 만일 당신이 순진하게도 그들에게 무기를 요구한다면, 그들은 당신에게 선거 때에 쓸 투표지를 엄숙한 태도로 내여 줄 것이다. …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혁명가들에게 알맞는 유일하게 합리적인 전술은 자본주의나 기성정권이나 현존하는 전체 부르주아 제도에 충직할 것을 맹세하는 평화로운 합법적 의회주의이다. (논문집, ≪빵과 자유≫, 21, 22-23페이지를 보라.)

그루지야의 무정부주의자들도 역시 같은 것을 더 뻔뻔스럽게 말하고 있다. 바똔을 실례로 들어 보자.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전체 사회민주주의가 … 공공연하게 성명하는 바에 의하면 소총과 기타 무기에 의한 투쟁은 혁명의 부르주아적 방법이며 다만 투표지에 의해서만, 총선거에 의해서만 당들은 정권을 쟁취하고 다음에 의회 내의 다수파와 입법권을 통하여 사회를 개조할 수 있다. (≪국가권력의 탈취≫, 3-4페이지를 보라.)

 

무정부주의자 제씨는 맑스주의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난에는 근거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는가?

우리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여기서도 역시 자기의 무지와 허위선전에 열중하는 버릇을 보여 주고 있다고 단언하는 바이다.

사실은 다음과 같다.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47년 말에 벌써 다음과 같이 썼다:

 

공산주의자들은 자기의 견해와 의도를 은폐하는 것을 경멸할 일로 본다. 그들은 자기들의 목적이 현존하는 일체 사회제도를 폭력적으로 전복함으로써만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언한다. 지배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 전율케 하라. 공산주의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굴레뿐이고 그들이 얻을 것은 전 세계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공산당 선언≫을 보라. 어떤 합법적 번역판에서는 말마디가 일부 빠져 있다.)

 

1850년에 독일에서의 새로운 투쟁을 기대하면서 칼 맑스는 당시의 독일 동지들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무기와 탄약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주어서는 안 된다. … 노동자들은 … 지휘관과 총참모부를 가진 독자적인 프롤레타리아 수비대를 조직하여야 한다.임박한 봉기와 그 후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쾰른 재판, 공산주의자들에게 보내는 맑스의 호소문을 보라.)

1851-1852년에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 일단 봉기가 시작되면 최대의 결단성을 가지고 행동하며 공세로 넘어가야 한다. 방어는 일체 무장봉기의 파멸이다. … 적의 군대가 아직 흩어져 있는 동안에 그를 불시에 습격해야 하며 비록 사소한 승리라도 매일매일 새로운 승리를 거두어야 하며 … 적이 그대를 반대하여 자기의 병력을 집결할 수 있기 전에 적을 퇴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지금까지에 알려진 혁명적 전술의 대가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대가인 당통의 말, 즉 용감하고, 용감하고, 다시 한 번 용감하라는 말대로 행동하라. (≪독일에서의 혁명과 반혁명≫.)

 

우리는 여기에서 문제로 되고 있는 것이 투표용지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빠리 꼬뮌의 역사를 상기하여 보라. 꼬뮌이 빠리에서 거둔 승리에 만족하고 반혁명의 소굴인 베르사유로 진공하기를 거절하였을 때 꼬뮌이 얼마나 평화적으로 행동하였던가를 상기하여 보라. 당신들은 맑스가 그 당시 어떻게 말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그래 맑스는 빠리 시민들에게 선거를 호소하였는가? 그래 그는 빠리 노동자들의 무사태평(빠리는 전부 노동자들의 수중에 있었다)을 찬동하고 있었으며 패배한 베르사유파에 대한 그들의 관대한 태도를 찬동하고 있었는가? 맑스의 말을 들어 보라:

 

빠리 사람들은 그 얼마나 민첩하였으며, 그 얼마나 역사 앞에 선도적이었으며, 그 얼마나 자기희생적이었는가! … 6개월간의 기아 … 이후 그들은 … 프로이센의 총검 아래에서도 무장봉기를 결행하였습니다. … 역사는 일찍이 이러한 영웅주의의 실례를 모릅니다! 만약 그들이 패배를 당한다면 그 책임은 그들의 관대함 이외에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처음에 비느와가, 그 다음에는 빠리 국민방위대의 반동층이 빠리에서 후퇴하자마자 당장 베르사유로 진격하여야 했습니다.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은 선량한 마음의 주저 때문이었습니다. 간악한 기형아 띠에르가 빠리를 무장 해제하려는 시도로써 이미 내전을 개시하였는데 마치도 그렇지 않은 듯이 그들은 내전을 시작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쿠겔만에게 보낸 편지.)

 

이것이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생각하며 행동하는 바도 역시 그러하다.

그런데 무정부주의자들은 여전히 되풀이하여 말하기를 맑스, 엥겔스와 그들의 후계자들은 투표용지에만 관심을 가지고 폭력적인 혁명적 행동은 시인하지 않는다고 한다!

보다시피 이 비난도 역시 맑스주의의 본질에 대한 무정부주의자들의 무지를 폭로하는 비방일 따름이다.

이것이 둘째 비난의 운명이다.

 

*          *          *

 

무정부주의자들의 셋째 비난을 보자. 그들은 사회민주주의의 인민적 성격을 부인하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관료주의자라고 부르며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사회민주주의적 계획은 혁명의 파멸이라고 주장하며 또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러한 독재를 지지하고 있는 것만큼 그들은 실제에 있어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라 노동계급에 대한 그들 자신의 독재를 수립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끄로뽀뜨낀 씨의 말을 들어 보라:

우리 무정부주의자들은 독재에 대하여 최종 판결을 내렸다. … 온갖 독재는 그 의도가 아무리 성실하다 해도 혁명을 파멸케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 독재 사상이란 노예제도를 영구화하려고 항상 노력하는 … 정부 물신성의 악독한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끄로뽀뜨낀, ≪폭동자의 연설≫, 131페이지를 보라.)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혁명적 독재만 승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또한 노동계급에 대한 독재의 지지자들이다. … 그들이 노동자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것은 노동자들이 그들의 수중에 있는 규율 있는 군대이기 때문이다. … 사회민주당은 노동계급의 힘을 빌려 국가기구를 자기 수중에 장악하려고 한다. (≪빵과 자유≫,62, 63페이지를 보라.)

그루지야의 무정부주의자들도 역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전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독재의 지지자들은 곧 국가를 주장하는 자들이며 그들의 독재는 전체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활동으로 되지 않고 사회의 선두에 지금과 같은 대의제 정권을 수립하는 것으로 된 것이기 때문이다. (바똔, ≪국가권력의 탈취≫,45페이지를 보라.)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의 해방을 촉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그들 자신이 지배하는 새로운 노예제도를 수립하기 위하여 독재를 찬동하는 것이다. (≪호소≫, 제1호, 5페이지, 바똔의 논문을 보라.)

이상이 무정부주의자 제씨들의 세 번째 비난이다.

무정부주의자들이 독자를 기만할 작정으로 꾸며낸 이런 상투적인 비방을 폭로하는 데 그리 많은 노력이 필요치는 않다.

우리는 모든 독재는 혁명의 파멸을 가져온다고 하는 끄로뽀뜨낀의 극히 그릇된 견해를 여기서 분석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에 무정부주의자들의 전술을 검토할 때에 언급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문제 삼으려는 것은 비난 그 자체이다.

일찍이 1847년 말에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노동계급이 사회주의를 수립하려면 반드시 정치적 독재를 전취하여야 하며 이 독재에 의하여 자산계급의 반혁명적 공격을 물리치고 그들에게서 생산수단을 빼앗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독재는 몇몇 개인들의 독재로 될 것이 아니라 계급으로서의 전체 노동계급의 독재로 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기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하여 부르주아지의 자본 전체를 점차 탈취하며 모든 생산도구를 … 지배 계급으로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시킨다. (≪공산당 선언≫을 보라.)

 

다시 말하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로 될 것이며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몇몇 개인들의 지배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 후 그들은 거의 모든 저서에서, 예를 들면 ≪루이 보나빠르트의 브뤼메르 18일≫, ≪프랑스 계급투쟁≫, ≪프랑스 내전≫, ≪독일에서의 혁명과 반혁명≫, ≪반뒤링론≫과 그 외의 자신들의 저서에서 이 사상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맑스와 엥겔스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어떻게 이해하였으며 또 그들이 이 독재를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 것으로 여겼는가를 해명하는 데 있어서 매우 흥미 있는 것은 빠리 꼬뮌에 대한 그들의 태도이다. 문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무정부주의자들에게서 비난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온갖 푸줏간 주인과 선술집 주인을 포함한 도시 소부르주아와 맑스와 엥겔스가 속물이라고 한 모든 사람들에게서도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엥겔스는 이러한 속물들을 염두에 두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최근 독일의 속물들3)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말을 듣고 또다시 비명을 지르며 공포에 빠진다. 신사 여러분, 이 독재가 어떠한 것인가를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빠리 꼬뮌을 보라. 그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 (≪프랑스 내전≫, 엥겔스의 서문을 보라.)

 

보다시피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빠리 꼬뮌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맑스주의자들이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빠리 꼬뮌을 고찰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화제를 빠리 꼬뮌으로 돌려 보자. 만일 빠리 꼬뮌이 실지로 노동계급에 대한 몇몇 개인의 독재였다는 것이 판명된다면 그때에는 맑스주의를 타도하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타도하자! 그러나 빠리 꼬뮌이 실지에 있어서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 그때에는 맑스주의자들과의 투쟁에서 거짓말을 꾸며 내는 외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무정부주의적 비방자들을 마음껏 조소하자.

빠리 꼬뮌의 역사는 두 시기로 구분된다. 첫 시기는 주지의 중앙 위원회가 빠리에서 사업을 지도하던 시기이며, 둘째 시기는 중앙 위원회의 권한이 끝나고 사업에 대한 지도가 방금 피선된 꼬뮌으로 넘어간 시기이다. 중앙 위원회는 어떠한 것이었으며 또 그 성원은 어떠하였는가? 우리 앞에는 아르뛰르 아르누의 저서 ≪빠리 꼬뮌의 인민사≫가 놓여 있다. 이 책은 아르누의 말에 의하면 이 문제에 대한 간단한 해답을 준다. 투쟁이  시작되자마자 중대와 대대로 편성된 근 30만 명의 빠리 노동자들은 자기 대열에서 대표를 선출하였다. 중앙 위원회는 이렇게 구성되었다.

자기 중대나 대대의 부분적 선거에서 선출된 이 모든 공민들(중앙 위원회 위원들)은 그들을 자기 대표로 선거한 자그마한 집단 내에서만 알려져 있었다. 그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떤 사람이며 그들은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고 아르누는 말하였다. 이것은 거의 다 보통 노동자들과 소사무원들로 조직된 무명의 정부였는데 그 성원의 4분의 3의 이름은 그들이 사는 거리나 사무소 밖에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 전통은 파괴되었다.  생각도 하지 못하던 일이 세계에서 일어났다. 그중에는 통치계급의 일원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법률가도, (국회)의원도, 기자도, 장군도 참가하지 않은 혁명이 폭발하였다. 그들 대신에 크뢰조의 광부, 제본공, 요리사 등이 나섰다. (≪빠리 꼬뮌의 인민사≫, 107페이지를 보라.)

아르뛰르 아르누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중앙 위원회 위원들은 말하였다. 우리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기관이며 공격받은 인민의 수중에 있는 소박한 도구이다. … 우리는 … 인민의 의사에 복무하는 자이다. 우리는 그들의 메아리가 되며 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려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인민이 꼬뮌을 원하므로 우리는 꼬뮌 선거에 착수하기 위하여 남아 있을 것이다. 오직 그것뿐이다. 이 독재자들은 군중보다 더 높이 서 있지도 않았으며 더 낮게 서 있지도 않았다. 그들은 군중과 함께 살며 군중 속에서 살며 군중에 의지하여 살고 있다는 것, 그들은 군중과 시시각각으로 상의하며 의견을 듣고 들은 것을 전달하면서 오직 30만 명의 의사를…, 가급적 간명하게 전달하기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책,109페이지를 보라.)

 

빠리 꼬뮌은 그 창건 첫 시기에 이렇게 행동하였다.

빠리 꼬뮌은 이런 것이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이런 것이다.

이제 우리는 중앙 위원회 대신에 꼬뮌이 활동하던 시기인 꼬뮌의 둘째 시기로 넘어가자. 2개월간 계속된 이 두 시기를 이야기하면서 아르누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인민 독재였다고 감격적으로 부르짖었다.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들어 보라.

이 인민이 두 달 동안에 보여 준 위대한 광경은 우리에게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 힘과 희망을 준다. 이 두 달 동안에 빠리에는 진정한 독재, 한 사람의 독재가 아니라 정세(situation)의 유일한 지배자인 전체 인민의 가장 완전하고 논쟁할 여지없는 독재가 수립되어 있었다. … 이 독재는 3월 18일부터 5월 22일(1871년)까지 2개월 이상이나 중단됨이 없이 존속하였다. … 본래 … 꼬뮌은 정신적 권력일 따름이었고 공민들(Bürger)의 … 전반적인 동의(Zustimmung) 이외의 다른 물질적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인민은 곧 통치자, 유일한 통치자였으며 그들 스스로 자기의 경찰과 사법제도를 창설하였다. … (같은 책, 242, 244페이지를 보라.)

이것이 바로 빠리 꼬뮌의 성원이며 그 백병전의 적극적 참가자인 아르뛰르 아르누가 묘사한 빠리 꼬뮌의 특징이다.

빠리 꼬뮌의 다른 한 성원이며 역시 그러한 적극적인 참가자인 리싸가레도 빠리 꼬뮌의 특징을 그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그의 저서, ≪빠리 꼬뮌사≫를 보라.)

유일한 통치자로서의 인민, 한 사람이 아니라 전체 인민의 독재” ― 이것이 바로 빠리 꼬뮌이었다.

빠리 꼬뮌을 보라. 그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고, 엥겔스는 속물들에게 외쳤다.

바로 이것이 맑스와 엥겔스가 생각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

보다시피 프롤레타리아 독재, 빠리 꼬뮌, 그리고 무정부주의자들이 계속 비판하는 맑스주의에 대한 무정부주의자 선생님들의 지식이란 중국 문자에 대한 나와 독자 여러분의 지식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두말할 것도 없이 독재에는 두 가지가 있다. 소수의 독재, 소수자 집단의 독재, 인민을 반대하는 뜨레뽀프 도당과 이그나찌예프 도당의 독재가 있다. 이와 같은 독재는 보통 비밀 결정을 채택하는 독재자의 비밀고문단에 의해 지휘되며 이들은 대다수 인민의 목에 올가미를 씌운다.

맑스주의자들은 이와 같은 독재의 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맑스주의자들은 소란스럽게 떠들어 대는 무정부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완강하게 헌신적으로 이러한 독재와 투쟁한다.

다른 종류의 독재, 부르주아지에 대한, 소수자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적 다수의 독재, 대중의 독재도 있다. 이 독재의 우두머리에는 대중이 서 있으며 여기에는 비밀고문단도, 비밀 결정도 있을 수 없다.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공개적으로 가두에서, 군중집회에서 진행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두의 독재, 대중의 독재이며 온갖 압박자들을 반대하는 독재이기 때문이다.

맑스주의자들은 쌍수를 들어 이런 독재를 지지한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독재는 위대한 사회주의 혁명의 장엄한 시초이기 때문이다.

무정부주의자 제씨는 이 두 개의 상호 부정하는 독재를 혼동한 까닭에 맑스주의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환상과 싸우며 맑스, 엥겔스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옛날의 돈 끼호떼처럼 풍차와 싸우는 가소로운 처지에 빠진 것이다. …

이것이 셋째 비난의 운명이다. (다음 호에 계속)4)  [노/사/과/연]

 

 


1) [편집부] 1906년 찌플리스에서 간행된 그루지야 무정부주의자들의 일간지.

 

2) [편집부] 1906년 찌플리스에서 간행된 그루지야 무정부주의자들의 일간지.

 

3) [편집자 주] 엥겔스가 작성했던 원래의 표현은 “사회민주주의의 속물들”이다. 이 서문(≪프랑스 내전≫ 독일어 제3판 서문)은, 1891년 빠리 꼬뮌 2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 내전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독일 사회민주주의당의 이론지 ≪신시대(Die Neue Zeit)≫에 최초로 발표되었는데, 이때 편집자들이 이 부분을 “독일의 속물들”로 바꾸어 출판했고, 쓰딸린도 이렇게 수정된 판본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4) [편집부] 출판물은 계속하여 발표되지 못했다. 그것은 1907년 중기에 쓰딸린 동지가 당 중앙위원회의 지시에 의하여 당 사업을 하기 위해 바꾸로 갔는데 그곳에서 몇 달 후에 체포되었고,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란 저작의 마지막 몇 장의 원고가 경찰의 수색 시에 분실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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