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편집자의 글 – 격동하는 정세일수록 이론의 전진이 필요하다

그리스 위기에 이어 스페인의 정세가 격화되고 있다. 유럽연합 전체의 경제는 작년의 마이너스 성장에 이어 올해 더 심각한 위기를 겪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으로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경제가 본격적으로 공황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고 이러한 경제적 위기는 이란 전쟁의 발발 위험으로 표출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총선 결과는 반동부르주아지의 승리,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와 소부르주아지의 야권연대의 약진으로 나타났다. 노동자계급은 자신을 대표할 당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총선의 주요 변수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의 정세가 세계정세, 동아시아 정세와 무관할 수 없고, 그 위기가 더욱 격화되고 있는 유럽의 정세와 중국과 일본에서 본격화되고 있는 경제위기는 당연히 한국의 경제위기를 폭발시킬 수밖에 없다. 대격돌을 앞둔 숨고르기가 현재의 정세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세의 전개는 서서히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재생시키고 있다. 그리스의 총파업, 스페인의 총파업은 대중들을 분기시키고 있고, 한국의 경우도 8월 정치총파업을 민주노총 지도부가 선언한 상태이다. 그러나 운동의 재건은 경제상황에 의해 자동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재건은 경제적 토대의 위기를 기초로 하되 노동자계급의 사상의 재건을 필요로 한다. 이는 쏘련 붕괴 뒤 밀려들었던 뜨로츠끼주의, 좌익공산주의, 자율주의 등 사이비 사회주의 이론,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의 가면을 쓴 반공주의 이론과의 투쟁을 요구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개량주의, 우편향과의 투쟁을 요구한다. 이러한 사상투쟁을 통해 그동안 무너져 있던 노동자계급의 사상을 건설할 때에만 ‘절망에서 희망으로’의 전환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희망은 노동자계급의 전위당 건설의 전망의 개척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사회과학≫ 제5호는 ‘좌ㆍ우익 기회주의의 현재’를 주요 주제로 잡았다. 그동안 뜨로츠끼주의에 대한 비판은 있었지만 좌익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이 부재했는데, 이번 호에서는 좌익공산주의 전반에 대한 비판과 특히 이들의 쏘련 사회주의에 대한 왜곡을 비판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세계정세에서 반동적 역할을 하는 중국의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비판을 실었다. 일본의 ‘활동가집단 사상운동’의 중국에 대한 비판적 입장과 중국의 국제적 역할에 대한 그리스 공산당의 비판적 입장이 실렸다. 이상이 좌ㆍ우익 기회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면, 그 외에도 다양한 글을 실었다. 흐루쇼프의 스딸린 탄핵에 항의하는 한 인도 공산주의자의 글을 실었는데, 당시의 세계적 운동 상황, 사상적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라 할 수 있다. 또 최근에 ≪자본론≫을 번역한 강신준 교수가 ≪자본론≫의 논리와 내용을 왜곡하고 있는 것을 서평의 형식으로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또한 사회주의 운동이 선전단계를 넘어 본격적으로 전술을 구사하는 단계로 진입해야 함을 주장하면서 이를 위해 맑스주의 전술론을 고찰한 글을 실었다. 그리고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도 문예비평을 실었는데, 문예의 당파성이 운동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마오쩌뚱의 “옌안문예강화”를 통해 고찰한 글이다. 끝으로는, 일본의 ‘활동가집단 사상운동’에서 보내주신 3.11 대지진 이후 일본정세를 다룬 글을 실었다.

먼저, “좌익공산주의의 발생 배경, 출현과 그 주장”은 좌익공산주의의 현실에 대한 소개와 비판의 글이다. 한국에는 레닌의 ≪공산주의에서 좌익소아병≫을 통해 알려져 있던 좌익공산주의는 현재 20세기의 쏘련 사회주의를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하면서 운동의 전망을 흐리고 있다. 이러한 실천적 관점에서 전성식은 좌익공산주의가 발생하게 된 배경을 제2인터내셔널의 우익기회주의로 파악하여, 요컨대 우익기회주의에 대한 반발이 좌익공산주의의 태동 배경이었다고 파악하고 있다. 좌익공산주의자들은 부르주아 의회를 활용하는 전술을 거부하고, 심지어는 노동조합을 자본의 통제기구로 규정하면서 백안시한다. 또한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일부 조류로서의 평의회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의 당을 부정하는데, 실천적으로는 사회민주당과 볼쉐비끼 당의 차이를 부정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20세기 초 발생기의 좌익공산주의자들은, 비록 좌편향이었지만, 부르주아지와 현실적인 혁명투쟁을 전개하고 역사의 패배를 맞보았던 반면, 21세기 현재의 좌익공산주의자들은 그러한 전통을 계승한다면서도 현실적으로 반공ㆍ반쏘련의 경향을 보이면서 역사의 왜곡조차 서슴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의 이러한 논리의 기초는 ‘자본주의 쇠퇴론’인데, 이는 구체적 현실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라는 맑스주의의 정신, 변증법의 정신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21세기 사회주의 운동의 재건은 혁명적 수사를 넘어서서 현실의 조건에 대한 분석,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엄격한 평가를 요한다는 점에서 좌익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채만수의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쏘련론(상)”은 아우프헤벤(Aufheben) 저, 오세철 ‘번역’의 ≪소련은 무엇이었나≫를 비판적으로 분해하는 글이다. ‘상ㆍ중ㆍ하’로 세 번에 걸쳐서 연재할 예정인 글의 첫 회 분인 이 글은, 총 4부로 구성된 ≪소련은 무엇이었나≫ 가운데, 영국의 좌익공산주이자 집단인 저자 아우프헤벤이, 한편으로는 자신들과 공동의 대(對)쏘 적대전선을 펴면서도, 동시에 서로 대립하고 있는 뜨로츠끼주의 진영의 쏘련론을 ‘비판적으로’ 소개하면서 쏘련을 국가자본주의로 몰아가는 제1부와 제2부를 주로 다루고 있다. 필자는 먼저 오세철 ‘번역’의 ≪소련은 무엇이었나≫가 번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오역투성이의 무성의한 ‘번역’임을 지적하면서, 게다가 오역은 둘째 치고 내용적으로 중요하고 민감한 부분을 ‘번역자’가 그나마의 ‘번역’에서조차 누락시키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의도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통박한다.

그리고 필자는 좌익공산주자들과 뜨로츠끼주의자들이 쏘련 사회주의를 국가자본주의라고 왜곡ㆍ모략하는 가운데 본의 아니게 무심코, 즉 자신들의 의도에 반하여 쏘련의 사회주의적 현실을 누설하고 있음을 저들 자신의 글을 인용하여 입증한다. 예컨대, 쏘련에서의 임금은 자본주의와 달리 사실상 ‘연금’과 같은 성격이었다는 저들의 주장이나 쏘련에서는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물질적 생활수단과 교육ㆍ의료 등 써비스의 상당부분이 무료로 공급되었다는 것, 쏘련에서는 국가가 완전고용을 보장했다는 것, 쏘련에서는 경영진이 노동과정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했고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과정을 통제했다는 것을 뜨로츠끼주의자들과 좌익공산주의자들이 스스로 실토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이외에도 필자는 1930년대와 제2차 대전, 스페인 내전과 관련하여 좌익공산주의자들이 이른바 스딸린주의를 ‘비판’하면서, 그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음을 역사적 사실들을 제시하며 입증하는 한편, 다른 한편에서는 저들 스스로가 역시 본의 아니게 무심코 실제로는 그 사안들의 진실을, 즉 쏘련 사회주의야말로 진보적ㆍ혁명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실토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필자는 진실은 스스로 빛을 발한다는 것을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쏘련론에 대한 비판을 통해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쏘련 사회주의에 대한 왜곡이 뜨로츠끼주의와 더불어 전형적인 좌편향이라면, 현대 사회, 즉 21세기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중국의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우편향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단순한 편향을 넘어 세계정세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때마침 해외에서 이들을 비판하는 글이 발표되어 번역하여 실었다.

먼저 일본의 ‘활동가집단 사상운동’의 야마시타 이사오(山下勇男)의 “중국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파악하는 관점”은, 30여 년에 걸친 중국의 개혁ㆍ개방의 궤적을 담담히 추적하면서, 그 행로가 사회주의의 원칙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필자는 중국공산당이 자국을 사회주의라 규정하는 근거를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 먼저 중국공산당이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근거를 쏘련의 1920년대의 네쁘(NEP)에서 구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며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네쁘를 훨씬 넘어섰음을 지적한다. 또한 “공유제를 주체(주요한 몸통-편집자)로 한다”는 것을 근거로 중국공산당이 사회주의라 주장하는 것도 비판하고 있는데, 중국에서는 이미 국유기업 대부분이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끝으로 필자는 중국공산당 구성에서 노동자계급의 쇠퇴, 이데올로기에서 민족주의가 주류로 등장하는 현상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필자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성격 규정을 내리는 것을 피하면서도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사회주의의 원칙으로부터 훨씬 벗어나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비판은 일본에서만이 아니라 그리스공산당에 의해서도 가해졌다. 그리스공산당 중앙위원이면서 국제담당 책임을 맡고 있는 엘리쎄오스 바게나스(Elisseos Vagenas)는 최신의 자료를 인용하면서 “중국의 국제적 역할”을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 먼저 필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중국의 눈부신 경제적 상승을 묘사한다. G2의 반열에 오른 중국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서 다른 제국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자원의 개발과 수입에 열을 올리는 현상을 서술한다. 그리고 군사력에서 힘의 증대, 방위비의 증대를 서술하고, 이에 대해 미제국주의가 주목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국제조직에서의 위상강화를 언급하면서 중국이 2010년에만 10,000명의 군대를 평화유지활동의 명목으로 해외에 파견하고 있고, 상하이 협력기구와 정기적인 군사훈련을 행하고 있으며, G8, G20 그리고 브릭스(BRICs) 나라들과 협력하고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중국이 스스로를 사회주의라 주장하는 것에 대해 필자는 쏘련의 경우 해외 자원을 쓸어 담지 않았고, 평화공존의 경우에도 미국의 국채(國債)를 보유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면서, 중국이 말하고 있는 “자원 약탈이 아니라 사회간접시설을 제공한다”는 주장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또한 국제관계에서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라는 제국주의 질서에 편입되어 있고, 이란 핵과 코소보의 경우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방기했으며,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그리스의 위기에 대해 집권당인 사회민주당을 지원ㆍ옹호하여 그리스 민중의 이익을 해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끝으로 필자는 중국에서 민족주의가 지배적인 현실을 드러내면서 중국이 네쁘라는 경험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것을 비판하며, 중국에서 자본주의 권력에 반대하여 자신의 당에 의해 대표되는 혁명적 노동운동의 필요성으로 결론을 짓는다. 그리스공산당의 중국에 대한 이러한 입장은 대부분 혁명적 관점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입각한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마오쩌뚱 시대 후반기의 중-쏘 논쟁과 중국과 미국의 수교를 전후한 시기의 중국의 국제정책에 대한 비판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한편 역사적 자료로서 가치가 있는, 인도의 공산주의자 고쉬가 1962년에 발표한 “스딸린에 반대하여 쏘련공산당이 취한 조치들에 대하여”라는 공개서한을 번역하여 실었다. 고쉬가 글을 발표한 1962년은 흐루쇼프의 스딸린 탄핵으로 인하여 세계 공산주의 운동이 분열의 길로 접어들고 있을 때였다. 이때 고쉬는 반스딸린, 반흐루쇼프라는 양대 조류의 중간에 서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고 있다. 고쉬는 세 가지를 다루고 있는데, 개인숭배, 관료주의, 스딸린의 권력남용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이라는, 흐루쇼프에 의해 제기된 쟁점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고쉬는 개인숭배라는 흐루쇼프의 문제제기를 승인하면서 권위주의의 문제를 말한다. 그러나 이는 당시 중국공산당의 입장과는 다른데 중국공산당의 경우 개인숭배라는 문제제기 자체가 민주집중제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지도자를 탄핵하는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또한 관료주의 문제에 대해 고쉬는 절충적인 입장을 취하는데, 즉, 스딸린 자신은 관료주의에 반대하여 투쟁했지만, 실제로는 관료주의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권력의 남용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이라는 지점에 대해서는 고쉬는 반론을 편다. 권력 행사에 있어서의 오류에 대해서 스딸린 스스로 무고한 숙청이 있었음을 인정했고, 그러한 것이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고쉬의 글은 많은 한계 그리고 부분적인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962년 당시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상황을 생생하게 반영하고 있고, 스딸린에 대해 올바른 입장을 세우기 위해 어떤 쟁점을 통과해야만 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한편 천연옥의 “강신준의 ≪그들의 경제 우리들의 경제학― 마르크스 「자본」의 재구성≫을 읽고”는, ≪자본론≫의 번역자인 강신준이 ≪자본론≫의 기본원리도 모르고 번역을 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즉, 필자는 강신준의 저서인 ≪그들의 경제 우리들의 경제학― 마르크스 「자본」의 재구성≫이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을 심하게 왜곡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강신준의 저서를 맑스와 엥겔스로부터의 인용을 통해 체계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자본론≫의 재구성을 주장하는 강신준의 현학적이고 비과학적인 태도가 곳곳에서 비판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맑스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폐기라는 단순한 결론을 위해 ≪자본론≫을 쓴 것이 아니라는 강신준의 주장에 대해 필자는 엥겔스를 인용하며 ≪자본론≫의 목적은 자본주의의 폐기라는 단순한 결론을 위한 것임을 주장한다. 또 필자는 강신준이 맑스주의와 케인즈주의의 경계를 흐리고 있다는 것을 비판하며, 자본주의에서 국유화의 강화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즉, 강신준의 기본적 관점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개선과 개량에 머물러 있음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필자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강신준의 옹호를 비판한다. “상대에 대한 인정과 합의, 이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원리가 아닌가?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의 원리 위에 세워진 인위적인 제도인 것이다”라는 강신준의 주장이 민주주의에 대한 초역사적이며 비과학적 주장임을 비판한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필자는, 강신준이 맑스에 대한 몰계급적 해석을 유포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견해가 노동운동에 확산되는 것을 경계한다.

문영찬의 “맑스주의 전술론 발전의 역사”는 맑스에서부터 마오쩌뚱에 이르는 전술론 변화의 역사를 추적한 글이다. 필자는 전술론의 전제로서 정세분석론을 맑스의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을 통하여 분석한다. ‘계급역관계’라고 일컬어지는 정세의 정의 자체가 맑스의 산물이며, 노동계급이 계급적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변혁의 전략을 가져야만 하고,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일체의 무기를 활용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또한 레닌의 ≪민주주의 혁명에서 사회민주주의자의 두 가지 전술≫과 ≪공산주의에서 좌익소아병≫을 분석하면서 전술의 정의, 전술과 선전의 차이, 전술원칙 등을 고찰하고, 전술에서 좌편향을 분석한다. 또 스딸린의 ≪레닌주의의 기초≫를 분석하면서 스딸린이 레닌주의의 전술론을 계승하면서 사회주의 건설에서의 전술론을 세웠으며, 전략과 전술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을 기초로 맑스-레닌주의 전술론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또 꼬민떼른에서의 전술론을 분석하면서 꼬민떼른의 전술론이 시기가 지나면서 풍부히 발전하고 있음을 말하고, 특히 국제조직의 특성상 국제적 차원의 전술원칙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어서 마오쩌뚱의 군사전술론을 분석하는데, 항일전쟁과 혁명전쟁에서 마오쩌뚱이 변증법적 유물론을 풍부히 구사하면서 고난에 찬 중국 혁명전쟁을 지도하는 가운데 발전시킨 전술론을 추적하고 있다. 끝으로 맑스주의 전술원칙으로서 그 과학성, 정세분석과의 연관성, 전략과 전술의 관계,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와 동맹군의 문제, 철학과 전술의 관계, 일반원칙으로서 혁명적 현실주의를 논하고 있다.

최상철의 “옌안문예강화 당파적으로 읽기(1)”은 지난 호에 이어지는 문예에 대한 글이다. 혁명운동에서 혁명적 문예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고, 마오쩌뚱의 문예론이 맑스-레닌주의 원칙을 발전시키면서도 중국의 토양을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문예에 있어서 대중성, 마오쩌뚱과 루쉰과의 관계 등이 다루어지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뜨로츠끼의 문예론을 비판하고 있는 것인데, 뜨로츠끼는 프롤레타리아 독재하에서 독자적인 문예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여 혁명적 문예의 성립을 부정하였다는 것을 폭로하고 있다. 계급을 초월한 문화라는 뜨로츠끼의 입장은 문화에 있어서 당파성의 부정인 것이다. 필자는 문예가 정치, 경제의 반영이고, 역으로 정치,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과 더불어 특히 “옌안문예강화”의 경우 마오쩌뚱 단독의 작품이 아니라 옌안이라는 해방구에서의 집단적 작업의 산물이며, 특히 쏘련의 경험을 흡수한 결과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문예에 대한 교조주의적 접근을 경계하는 것인데, 이러한 접근 자체가 문예가 혁명운동을 풍부히 한다는 자신의 본질과 일치하는 방법론이 아닌가 보인다.

일본의 ‘활동가집단 사상운동’에서 일본의 정세 글을 보내주었다. ‘사상운동’ 상임위원회의 소개 글과 닛타 스스무(新田 進)의 글 두 편이다. 닛타 스스무는 “‘전후’의 박살과 ‘3.11 이후’의 강제”라는 글에서 일본의 지배계급이 3.11 대지진 참사를 이용하여 ‘전후체제’를 종식시키고, 일본사회를 신자유주의적으로 개조하며 반동적인 개헌을 강행하려 한다고 폭로하고 있다. 오랜 세월을 끌어왔던 국철(國鐵)ㆍJR 재판에서 조합원인 원고의 상고가 기각되어 법적으로 국철개혁을 마무리했다는 것, 일장기ㆍ기미가요 재판이 일본 사회의 극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폭로한다. 학교 교사가 일장기에 대한 숭배를 거부하고 기미가요를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는 사태가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이는 일본에서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강요라는 것을 폭로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정세는 일본의 지배계급이 지진 대참사를 활용하여 사회를 극우적으로 개조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노다 신정권 ‘부흥’의 이름으로 헌법과 신자유주의 노선 매진, 노동운동의 재건으로 대항을”이라는 글을 통해 닛타 스스무는 반동적인 개헌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무너져 있는 일본의 노동운동을 분석하고 있는데, 18.5%의 노조 조직률, 쟁의 건수의 저락을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노다 정권의 ‘관제 사회운동’과 개헌 강행에 맞서 대중운동의 재건, 통일전선의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편집자의 글>

2012년 4월 19일

문영찬(노사과연 연구위원장)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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