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세계관과 변증법적 유물론(2)*

 문영찬 | 연구위원장

* 편집자: 연구소에서 철학세미나를 지도하고 있는 문영찬 연구위원장이 그동안의 성과를 정리하여 “세계관과 변증법적 유물론”을 2015년 1월호부터 연재하고 있다.

[목차]

머리말

제 1 장 세계관과 철학의 근본문제

  1.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2. 철학의 근본문제

  3. 세계의 통일성

제 2 장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의 역사

  1. 철학의 발생

  2. 데모크리토스 노선과 플라톤 노선의 투쟁

  3. 아리스토텔레스

  4. 에피쿠로스-루크레티우스에 의한 고대 원자론의 발전

  5. 토마스 아퀴나스, 유명론과 실재론의 논쟁

  6. 코페르니쿠스, 브루노, 갈릴레이, 케플러, 뉴턴

  7. 베이컨, 홉스

  8. 데카르트

  9. 스피노자

  10. 로크

  11. 흄

  12. 라이프니쯔

  13. 디드로, 달랑베르, 엘베시우스

  14. 볼테르, 루쏘

  15. 칸트

  16. 피히테, 셸링

  17. 헤겔

  18. 포이에르바하

제 3장 맑스, 엥겔스에 의한 철학에서의 혁명

  1. 맑스, 엥겔스에 의한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의 창시

  2. 변증법적 유물론의 범주들

    1) 물질과 운동

    2) 공간과 시간

    3) 물질과 의식

    4) 원인과 결과

    5) 개별-특수-보편

    6) 필연성과 우연성

    7) 본질과 현상

    8) 가능성과 현실성

    9) 양적 변화의 질적 변화로의 전화

    10) 모순 혹은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내용과 형식)

    11) 부정의 부정

    12) 인식론

  3. 자유와 필연성

  4. 목적의식성

  5. 사적 유물론의 범주들

  6. 레닌, 스탈린, 마오쩌뚱, 그람시에 의한 맑스주의 철학의 발전

제 4 장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철학사조에 대한 비판

  1. 콩트, 밀

  2. 쇼펜하우어, 니체

  3. 후설

  4. 하이데거

  5. 프로이트

  6.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7. 샤르트르

  8. 하버마스

  9. 알튀세르, 발리바르

  10. 푸코, 들뢰즈, 데리다, 라캉

  11. 지젝

  12. 자율주의

  13. 이진경

  14. 롤즈의 《정의론》, 마이크 샌덜의《정의란 무엇인가》

제 5 장 과학의 발전과 그에 대한 철학적 일반화

제 6 장 철학과 종교

제 2 장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의 역사

1. 철학의 발생

노동자계급의 세계관,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해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넘어서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세계관에 대해 도식적 이해를 넘어서기 위해 중요하다. 그리하여 변증법적 유물론의 탄생이 철학 발전의 합법칙적인 결과라는 것을 논증함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의 복원을 도모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철학을 그 발생에서부터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를 통해 철학에 대한 신비로운 이해를 벗어 던지고 철학 발전의 합법칙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에 다가설 수 있다.

고대 사회에서 철학의 발전은 그 전에 인간의 인식이 원시단계에서 지적 단계로 발전하였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유인원에서 인류로 진화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두 발로 서서 걷게 되었다는 점, 불의 사용, 언어의 발생 등인데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인간이 노동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손의 형성 및 노동과 함께 시작된 자연에 대한 지배는 매번 새로운 진보가 이루어질 때마다 인간의 시야를 확장시켰다. … 이렇게 언어의 발생을 노동으로부터, 노동과 함께 설명해내는 것이 유일하게 옳은 것임은 동물과 비교함으로써 증명된다.”1) 노동과정에서 인간들 상호 간의 공동협력의 필요성이 언어의 발생을 가져왔다. 그런데 이러한 언어의 발생은 인간의 인식에서 비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두뇌와 이에 예속되어 있는 제 감각의 발달, 점점 더 깨어나는 의식, 추상능력 및 추리능력 등이 노동과 언어에 끼친 반작용은 이 양자에게 항상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새로운 충격을 주었다.”2) 그리하여 추상능력과 추리능력의 발전은 인간에게 일반적 개념을 사고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자신의 주위에 있는 여러 산들을 보면서 ‘산’이라는 일반개념을 생각하게 되고 쌓인 눈, 내리는 눈, 눈보라 등 눈에 관련된 현상을 고찰하면서 ‘눈’이라는 일반명사를 사고하게 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지금도 원시부족의 언어를 보면 개별의 구체적 현상을 가리키는 언어는 많이 있으나 그것들 모두를 일반화하는 일반명사는 없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일반화 능력이 인간 사고의 오랜 기간의 발전의 산물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반화의 능력, 추리능력의 발전과 더불어 철학의 발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인식이다. “자연으로부터 인간의 분리, 즉 자연은 우리들의 외부에 우리와는 따로 존재함을 가장 소박한 형태로 이해하는 것, 즉 이것이 의식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3) “인간은 일상생활에서 만물에 대한 관찰을 수없이 되풀이함으로써 자신 이외의 사람, 동물, 식물, 산, 강 등이 자신과는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 사회의 전 역사를 통하여 모든 인간이 삶의 실천 속에서 이룩해낸 것, 그것으로부터 도출해 낼 수 있는 단 하나의 필연적인 결론은 우리들 외부에 우리로부터 독립적으로 대상, 사물, 물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4)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자신과 독립되어 있는 객관적 실재로 이해하는 것은 과학적 사고의 출발점이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로써 관찰을 통해서 얻는 지식의 축적, 세계에 대한 분석과 종합, 체계화 등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러한 지식의 축적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서 일정 시점에서 철학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식의 축적을 기초로 한 철학의 발생은 전통적인 신앙과의 충돌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신앙에서 과학적 사고로! 이것이 철학 발생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원시사회에서 종교 혹은 신앙이 발생했던 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력감 때문이었다. 또한 인간 사고에 있어서 추상능력, 일반화의 능력이 공상과 결합되면서 태양신, 산신령 등 자연물과 결부된 종교적 관념이 발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이 축적되고 체계화되면서 과학적 사고 혹은 로고스(이성)를 추구하는 철학이 종교적 관념과의 투쟁 속에서 발생했던 것이다.

인류의 유년기, 고대 사회에서 철학의 발생은 고대 이집트, 인도 등에서 그 원형이 보인다. 이집트는 기원전 4,000년대 말엽에 노예제가 발생했고 이후 노예제는 상품화의 비율이 높아지고 교환이 발전하고 사회생활에서 화폐의 의의가 증대되었다. 그리하여 종래의 노예 소유자계층에 대하여 새로운 노예 소유자계층이 나타나고 이들 계층의 진보적 사상이 종래 지배계층의 낡은 종교적 관념에 대해 공격을 가했다. “고대 이집트 문학의 고전적 작품(하프의 노래)은 내세를 이야기하러 오는 사자(死者)는 한 사람도 없다고 단정하고 내세를 기대하는 대신에 ‘현세의 일’에 부지런해야 한다고 이 노래는 소리 높여 부르짖고 있다. 인류 사상사에서 이 문헌이 갖는 큰 의의는 이 속에서 비로소 ‘내세’를 잘 알기 위한 근거로 지금껏 체험에 또한 감각과 이성에 의거하려는 시도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단한 솔직성과 논리적인 힘으로 고창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5) 이리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지식과 신앙이 공공연히 충돌”하였던 것이다. 고대이집트에서는 역사상 최초의 달력이 만들어졌고 체계적인 천문학의 관측이 실시되었고 농업발전은 기하학의 맹아를 탄생시켰고 수학이 발전했다. 그리하여 철학의 맹아가 나타났는데 “맹아적 형태로 자연현상들의 물질적 근원에 관한 문제가 이미 제기되었고 모든 생물을 만들어내고 또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차가운 물과, 마찬가지로 또한 공간을 채우는 ‘모든 것 속에 들어 있는’ 공기에 관한 기술(記述)이 발전되었다.”6) 그러나 이집트에서 철학과 과학사상은 높은 수준에 이르지 못했는데 이는 강력한 종교적 관념으로 인해서였다.

고대의 인도는 이집트보다 훨씬 더 발전된 철학과 과학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고대 인도에서 지배적이었던 것은 브라만교였다. “브라만교를 기초지우고 있는 관념론의 학설은 비인격적인 세계정신—브라만—이 유일한 본질, 곧 제 1의 실재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객관적 물질세계 전체를 브라만의 유출이라고 간주하였다.”7) 그런데 기원전 9-2세기에 인도에서 유물론의 사조가 형성되고 관념론에 대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고대 인도철학의 최초의 발전단계는 이미 반브라만교적이었는데 사후세계에 대한 교의를 비판하는 것이었다. “살아 있는 한은 행복하구나! 죽지 않은 사람은 모두가 다 귀하다. 죽어 재가 된 그 때에는 어디서 다시 태어날까?” “종국적인 해탈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세에서 영혼도 존재하지 않는다.”8) 이러한 내용은 찬가의 일종인 베다(Veda)에 있는 것인데 종교적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철학의 발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인도의 유물론 철학은 매우 발전된 모습을 띠는데 《우파니샤드》에서는 “원질 곧 물·불·공기·빛·공간·시간 등의 하나가 바로 세계의 근본원소라고 보는 학설”9)이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유물론은 의식적으로 관념론에 맞서는 것이었다. “영혼이란 다만 의식의 총체에 불과하다. 이들 원소(물·흙·불·공기)로부터 생긴 후 그것(영혼)은 그들 원소로 돌아간다. 인간이 죽으면 의식은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10) 이는 나름대로 인간의 정신, 의식을 유물론적으로 해명하려 시도한 것이었다. 여기서는 의식의 일차성, 절대성이 부정되고 있고 물질적 원소들이 궁극적인 것이라는 사상이 명백히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의식과 물질의 관계에 대한 과학적 해명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또 유물론 사조의 하나였던 프로트 상키야 학파는 물질 개념에 대한 주목할 만한 일반화를 이루고 있다. “이 학설은 물질(프라크리티)을 세계의 궁극적 실재라고 본다. 프라크리티는 영원히 존재하고 어떤 것에 의해서도 창조되지 않은 자기 원인이며 끊임없는 창조와 붕괴의 상태에 있다.”11) 물질에 대한 이러한 관념은 당시의 미발달된 과학의 수준을 고려하면 직관에 기초하여서는 거의 완성된 수준으로 물질 개념을 끌어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념은 고대 그리스의 수준과 비교하여 거의 뒤지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고대 인도철학에서 주목되는 것은 고대 그리스와 같이 원자론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나야 학파와 바이세시카 학파의 학설에 따르면 세계는 물·흙·공기·불이라는 질적으로 종류가 다른 작은 미립자(원자)로 구성되고 이들 미립자는 공간과 시간과 방향 속에 포함되어 있다. 자연계의 모든 객체는 이들 원자로부터 형성된다. ‘원자’ 자체는 영원하여 창조될 수도 파괴될 수도 없지만, 그들로부터 형성된 객체는 변천해가는 것이며 가변적이고 항상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다. 원자는 질적으로 구별될 뿐만 아니라 양적으로도 자신의 크기와 형태에 의해 구별된다.”12) 이러한 고대 인도의 원자론은 고대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과 비교되는데 고대 인도의 유물론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음을 말해준다.

이외에도 중국 등 많은 곳의 고대 문명에서 지식의 축적이 신앙과 충돌하면서 철학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리스 식으로 말하면 철학의 발생은 신앙(신화)에서 로고스로의 이행으로 특징지어진 것이었다13). 그러면 고대 철학의 정점에 서 있는 그리스에서 철학의 발생을 검토해 보자.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의 발생은 기원전 6세기에 원시공동체가 노예제 체제로 교체되던 시기에 이루어졌다. 노예들은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고 서로 다른 종족으로 구성되었고 상이한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어서 철학의 담당자가 될 수 없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의 담당자는 노예소유자 계급이었는데 이 노예소유자 계급 내에서 귀족제와 민주주의 당파 간의 차이가 고대 관념론과 유물론의 차이를 낳은 배경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유물론 철학은 흔히 자연철학이라 불린다. 이는 그들 철학자들이 세계의 근본요소를 물·불·흙·공기 등 자연의 물질에서 찾았기 때문인데 철학의 발생 당시는 아직 의식적인 철학적 관념론이 발생하지 않았고 철학하면 자연에 대한 근원적인 지식을 의미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 유물론의 창시자는 탈레스이다. 기원전 6세기에 활동을 했던 탈레스는 이집트 등의 선진적인 학문을 받아들이고 수학·천문학·기상학·물리학 등의 발전에 기여했고 고대 그리스의 7현인의 한 사람으로 유명했다. 탈레스는 세계의 근본요소(아르케)를 물(水)에서 찾았다. 그러나 물에서 세계의 근원성을 찾는 관념은 탈레스에 고유한 것은 아니었고 고대 이집트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러한 탈레스의 주장의 의미는 세계를 신화로부터 벗어나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하고 세계의 다양한 현상들 속에서 자연적인 통일성을 추구한 것이었다.14) 이 점이 아르케 혹은 세계의 근본요소의 관점, 그러한 접근법의 의미였던 것이다. 이를 통해 고대 그리스에서 신앙에서 로고스로!의 이행이 시작되었다. “자연의 다양한 현상들을 자연 안에 있는 어떤 것의 변환으로 설명하려고 한 최초의 인물”15)이라는 점에서 탈레스는 그리스 철학의 문을 열었던 것이다. “우주의 합법칙적인 질서를 굳게 믿었던 것, 자연현상에 대한 결정론적인 입장을 고수한 것, 보편적인 이론에 도달하기 위해 경험주의를 극복하려고 시도했던 것”16) 등이 탈레스가 개척한 새로운 단계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탈레스의 아르케 혹은 세계의 근본요소라는 접근법은 이 세계의 통일성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그 통일성의 내용으로서 ‘물’이라는 요소를 제기한 것이었다. 이 세계가 무수한 연관으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전체라는 통일성 관념은 이 그리스 철학자가 자연발생적으로 변증법적 사고를 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데 고대 그리스의 대부분의 철학자들 또한 마찬가지로 자연발생적인 변증법론자라 할 수 있다.

탈레스의 제자 아낙시만드로스는 세계의 근본요소를 아페이론(무한자: 불확정적이며 무한정한 물질)에서 찾았다. 이 아페이론이라는 개념은 탈레스와 달리 근원물질에 구비되어 있던 감성적 구체성이 탈각된 것인데 이는 획기적인 진전이라 할 수 있다. 아낙시만드로스에게는 자연발생적인 변증법적 사고가 보이는데 그는 “아페이론으로부터 그 속에 있는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 건조한 것과 습한 것이라는 대립물이 분리되어 모든 물체가 형성된다”17)고 설명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대립물이라는 관념이다. 세계를 어떤 대립되는 요소 간의 관계로 설명하는 것은 직관에 기초한 변증법적 관념의 발전이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아페이론을 통해 우주의 발생을 설명한다. “아페이론은 발생과 소멸의 모든 원인을 포함하고, 그로부터 모든 하늘과 무수히 많은 세계전체가 분리되었다.”18) 특이한 것은 아낙시만드로스가 인간의 기원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인데 그는 “생물은 태양에 의해 증발된 습기로부터 생겨난다”는 인식에 기초하여 “처음에 인간은 물고기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 후에 인간이 상어처럼 먹이를 먹으면서 자신을 지킬 능력을 획득하게 되자, 비로소 물을 떠나 육지로 올라오게 되었다.”19)고 파악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기원을 신에 의한 창조라고 보는 종교적 관념을 떠나 합리적,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었고 실로 고대의 진화론이라 일컬을 만하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 아낙시메네스는 세계의 근본요소를 공기라고 보았다. “공기는 희박성과 농밀성에 따라 다양한 존재형태를 지닌다. 희박해지면 불이 되고, 보다 농밀해지면 바람이 되었다가 다시 구름이 되고, 더 농밀해지면 물이 되었다가 이윽고 땅이 되며, 그 다음에는 돌과 이 돌에서 생겨나는 다른 모든 것들이 된다. 아낙시메네스는 운동이란 영원하며, 변화도 이 운동을 통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20) 이러한 아낙시메네스 주장의 특징은 질적 변화를 양적 변화에 의해 설명한다는 점인데 이 또한 자연발생적인 변증법적 사고라 할 수 있다. 또한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과 아낙시메네스의 차이는 아페이론이 직관에 기초한 추상임에 반해 아낙시메네스는 공기의 희박화와 농밀화라는 물리적 과정으로 세계를 설명함으로써 철학에서 물리적 사고를 개척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 대해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파악한다. “그리하여 바로 여기에 원초적이고 자연발생적인 유물론이 보이는데, 이 유물론은 매우 당연하게도 그 시초에 있어서 제 자연현상의 끝없는 다양성 속에서의 통일을 자명한 것으로 보고, 이 통일을 탈레스가 물에서 찾았던 것처럼 특정한 물체적인 것에서, 특수한 것에서 찾았다.”21)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는 자연철학자 혹은 자연발생적인 유물론자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그리스에서 이집트 등 동방의 학문을 흡수하면서 철학이 발생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후의 시기는 이전 시기를 이어가면서도 철학에서 당파가 발생하고 이 당파의 투쟁이 뚜렷이 형성된 시기였다. 대표적인 사람이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였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연발생적인 변증법을 거의 완성된 형태로 제출했고 반대로 파르메니데스는 변증법에 의식적으로 반대하면서 부동(不動)의 정신이 근본적 요소라는 관념론의 원형을 제기했다. 파르메니데스의 관념론은 플라톤에 이어지면서 오늘날까지 존재하는 관념론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데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의 대립을 통해 철학의 양대 진영인 유물론과 관념론 대립의 원형을 파악할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세계의 근본요소를 불에서 찾았다. 여기서 불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세계, 즉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것은 신들 및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그것은 법칙에 따라 불타고, 법칙에 따라서 꺼지면서,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영원히 살아 있는 불이다.”22) 이것은 극히 제한적으로 전해지는 헤라클레이토스 자신의 언급인데 여기에는 유물론의 정신과 변증법의 정신이 훌륭히 통일되어 있다. 세계, 자연은 신이든 인간이든 어떤 존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영원히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현대 유물론의 물질개념과 동일한 것이다. 또한 법칙에 따라 불타고 영원히 살아 있는 불이라는 것은 운동의 불멸성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현대 유물론에서 주장하는 물질과 운동의 불멸성 및 상호전화와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헤라클레이토스의 불은 물질의 영원한 운동과 변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변증법의 철학자, 유동(流動)의 철학자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서 전형적으로 확인된다. “같은 시냇물에서도 항상 새로운 물이 흘러들어 오기 때문에,” 따라서 “어느 누구도 같은 시냇물에 두 번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23) 여기에는 이 세계가 부단한 변화와 운동의 과정이라는 것에 대한 번득이는 통찰이 담겨 있고 헤라클레이토스의 변증법은 그러한 세계에 대한 정직한 인식이었다. 또한 그는 대립물의 통일과 상호전화라는 변증법의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생과 사, 각성과 수면, 젊음과 노년은 어느 것이나 모두 동일한 것으로서 우리들 속에 있다. 이것이 전화하여 저것이 되고, 저것이 변화하여 이것이 되기 때문이다.”24) 여기에는 대립물의 동일성, 혹은 통일성이 정확히 표현되고 있고 나아가 그 대립물의 상호전화라는 사상이 훌륭히 표현되고 있다. 그리하여 헤겔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문장 가운데 내가 나의 논리학에 수용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25)까지 하였다. 그러면 헤라클레이토스의 변증법을 좀 더 살펴보자. “대립이야말로 유익하고, 상이한 것으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생겨나며, 만물은 투쟁에 의해 발생한다.”26) 이것은 대립을 부조화 내지는 악덕, 예외로 치부하는 기성의 사고와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으로서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이야말로 만물의 생성과 변화의 원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후대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의 초석인 모순율을 정식화하고 형식논리학을 완성하였는데 논리에 있어서의 모순은 승인하였지만 현실에서의 모순,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은 부정하였다. 그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철학과 학문을 총괄하였다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변증법에 관한 한 헤라클레이토스보다 후퇴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헤라클레이토스에게는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변증법적 통찰이 보이는데 그것은 ‘진리는 구체적이다’는 것이다. “바다는 마실 수 있는 가장 맑은 물인 동시에 가장 더러운 물이다. 그것은 고기에게는 마실 수 있고 생명을 가져다주지만 인간에게는 마시면 생명을 앗아간다.”27) 이것은 무엇이 올바른가는 그것과 연관되는 조건들, 상황들과 떨어져서 파악될 수 없다는 것으로서 진리의 문제에 대한 변증법적 인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헤라클레이토스의 변증법에 대해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연이나 인간의 역사 또는 우리 자신의 정신적 활동을 곰곰이 고찰해 볼 때 우리 앞에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은 연관들과 상호 작용들의 무한한 착종상인 바, 거기서는 사태가 어떠하며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가 불변인 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운동하고 변화하고 생성하고 소멸한다. 원시적이고 소박하긴 하지만 사실상 올바른 이 세계관은 고대 그리스 철학의 세계관이며, 이 세계관은 헤라클레이토스에 의해서 처음으로 다음과 같은 말로 명료하게 표명되었다: 만물은 존재하는 동시에 또한 존재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만물이 유동하기 때문이며, 만물이 끊임없는 변화와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의 과정 속에 있기 때문이다.”28)

그리하여 헤라클레이토스는 파르메니데스의 부동(不動)의 철학에 대하여 유동(流動)의 철학으로 불리었다.

파르메니데스는 부유한 귀족가문 출신인데 그는 “가변적이고 다양한 자연현상을 ‘억견’(臆見)의 대상으로 간주”했고 “그가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했던 것은 변화하지 않는, 부동의 단일한 ‘존재하는 것’ 일반뿐으로, 이것을 그는 사고와 동일시했다.”29) 파르메니데스의 부동의 존재는 관념적인 것인데 방법론적으로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변증법에 반대하는 것이고 근본요소라는 점에서는 물질, 자연이 아니라 정신을 일차적으로 보는 것이었다. 다음의 인용문은 플라톤을 비롯하여 이후까지 이어지는 관념론의 정신, 관념론의 원형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길지만 인용의 가치가 있다.

“… 여전히 남는 것은 단지 존재하는 것은 있다라고 설명하는 방법의 문제이다. 이 방법에는 매우 많은 표적이 있다. 말하자면 존재하는 것은 생성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불멸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전무결한 것, 또한 동요하지 않는 것, 그리고 끝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찍이 어떤 시기에만 존재했던 것도 아니고 언젠가 어떤 때에 처음으로 존재할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재 동시에 전체로서, 하나로서, 연속되는 것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떤 기원을 그대는 찾으려는 것인가? 어떻게 어디에서 발생하고 성장해 왔단 말인가? 나는 그대가 존재하지 않는 것(非存在)으로부터라고 말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말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부득이한 필요 때문에 보다 먼저 혹은 보다 후에 처음에는 무(無)로부터 생겨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일까? 이리하여 그것은 전적으로 존재하든가 전적으로 존재하지 않든가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30)

이것은 파르메니데스 자신의 서술인데 여기에는 헤라클레이토스와 대립되는 그의 견해가 요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관통되는 관념론의 본질이 잘 드러나 있다. 파르메니데스의 사고는 자연의 다양성과 변화를 억견 즉, 근거가 없는 생각으로 치부하는 것을 기초로 한다. 그리하여 파르메니데스는 변화에 대립하여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범주를 설정하고 그것은 부동의 정신이라고 파악하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는 생성과 소멸을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기 때문에 버려야 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요점은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의 개념이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하는 것은 생성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불멸”이라고 본다. 이러한 관점은 존재라는 개념을 현실로부터 추상하여 설정하는 것으로서 자연의 무수한 생성과 변화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나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말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고 본다. 이는 비존재의 설정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경우 만물은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데 이러한 관점을 철저히 거부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파르메니데스에게는 정신적 본질을 가지는 오직 완전하고 단일한 존재이외에 아무 것도 없고 그러한 존재는 부동의 존재이며 운동과 변화를 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파르메니데스의 “존재하는 것이라는 추상체는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분리되고 자립화한 본질로 해석”31)된다. 이러한 파르메니데스의 사고는 부동의 정신적 존재, 진정한 존재라는 추상적 범주를 설정하는 것을 기초로 현실의 자연과 세계, 나아가 그것들의 운동과 변화를 억견이라는 이름으로 지워버리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와 사고를 동일시하고 있는데 인용해보자.

“… 그리고 사고와 그 사상은 그것이 존재하는 바의 것과 동일하다. 왜냐하면 그것에 관한 사상이, 말로서 표현되는 바의 존재하는 것과 관계없는 사고를 당신은 발견할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존재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운명의 신이 그것을 속박하여 언제까지나 전체로 있게, 또한 불변하게 할 테니까….”32)

여기서 파르메니데스는 존재와 사고의 동일성을 존재와 사고의 관련성에서 그 근거를 구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논리의 비약이 보인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사고는 불가능하고 따라서 존재와 사고는 동일하다는 것인데, 이는 두 가지 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 첫째,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사고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공상과 상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사고를 말한다. 둘째, 존재하는 것에 대한 사고가 있을 때 사고 자체가 존재와 동일하다는 것은 비약이다. 사고는 단지 존재의 반영물, 상(像)에 지나지 않는다는 관점도 얼마든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파르메니데스의 부동의 정신적 존재라는 관념, 그리고 현실세계와 그것의 변화와 운동을 억견으로 보는 관념은 이후 다양하게 전개되는 관념론의 뿌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파르메니데스는 인식의 세 가지 길을 구별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자신의 길은 옳지만 나머지 두 가지 길은 잘못된 것이다. “(1)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2) 있는 것은 있고 그리고 없는 것도 있다.(피타고라스의 이원론) (3) 존재와 비존재는 동일하고 또한 동일하지 않다.(헤라클레이토스의 변증법)”33) 여기서 파르메니데스는 (1)의 길인 자신의 견해만이 올바르다고 했다. 파르메니데스에게는 비존재 자체가 상정되지 않는다. 비존재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고의 대상이 되지 않고 그것을 사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는 그것의 절대성으로 인해 생성과 소멸의 대상이 아니며 따라서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며 시간 밖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는 부동의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관념론의 원형,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념론의 발생, 많은 고대 문명의 철학에서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의 발생은 일정한 합법칙성과 근거를 갖는 것인데 이에 대해 엥겔스는 관념론의 발생근거를 다음과 같이 정식화하고 있다.

“손과 언어기관, 그리고 두뇌의 협력이 개개인에게서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인간은 더욱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 더욱 고도의 목적을 설정하고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노동은 세대가 거듭할수록 더욱 완성되고 다면적이며 다양한 노동으로 되었다. 사냥과 목축에 이어 농경이, 농경에 이어 방직과 직조가, 금속가공이, 제도(도자기 제조: 필자)와 운항이 등장하였다. 상공업과 함께 마침내 예술과 과학이 출현하였고, 종족으로부터 민족과 국가가 형성되었다. 법과 정치가 발전되었고, 이와 함께 인간적인 것이 인간두뇌에 공상적으로 반영된 것, 즉 종교가 발생하였다. 당초에는 두뇌의 산물로 나타났으나 곧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 이러한 모든 창작물 앞에서 노동하는 손의 보잘 것 없는 생산물들은 배후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이미 사회발전 단계의 매우 초기(예를 들면 단순가족 내에서)에 노동을 계획하는 두뇌가 계획된 노동을 자신의 손이 아닌 타인의 손을 통해 수행할 수 있게 됨으로써 더욱 촉진되었다. 급속히 발전하는 문명이 모두 머리의, 두뇌의 발전 및 활동의 공적으로 되었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자신의 욕구로부터가 아니라(물론 이 욕구는 머리에 반영되어 의식으로 나타난다) 사유로부터 설명하는데 익숙해졌다—이렇게 해서 특히 고대세계의 몰락 이후 두뇌를 지배해 온 저 관념론적 세계관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립되어 갔다.”34)

노동을 통해 인간의 문화와 문명의 발생이 가능해졌지만 그 결과 종교, 법 등 정신의 생산물들이 사회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함에 따라 인간이 자신의 행위를 사유로부터 설명하게 되고 이러한 점이 물질에 비해 정신을 일차적으로 보는 관념론적 세계관의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가, 그리고 육체노동에 대한 정신노동의 지배가 관념론의 뿌리임을 말하는데 파르메니데스의 관념론은 당시 사회의 지배계급인 귀족계급의 이데올로기로서 자연철학, 고대 유물론에 맞서 의식적으로 창출된 것이었다.

이렇게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는 자연이 근원적인가 정신이 근원적인가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대립했고 또 세계를 생성과 소멸, 유동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 아니면 부동성, 절대성에서 볼 것인가라는 점에서 방법론상의 차이를 보였는데 이는 이후의 철학의 역사에서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 변증법과 형이상학의 대립의 원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2. 데모크리토스 노선과 플라톤 노선의 투쟁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의 대립은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과 플라톤의 이데아론의 투쟁으로 발전한다.

변화와 운동을 부정하고 부동의 정신을 주장한 파르메니데스의 견해를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준 것은 엠페도클레스와 아낙사고라스였는데 이들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의 전제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파르메니데스가 변화를 부정한 것은 단일한 실재를 상정했기 때문이라고 믿은 엠페도클레스는 실재의 단일성을 포기하고 궁극적 실재를 불, 공기, 흙, 물의 네 가지 원소(만물의 뿌리)로 보았다. … 세계의 사물은 이 네 가지 뿌리가 여러 비율로 결합된 복합체이며 생성과 소멸은 실은 이 결합과 분리에 주어진 명칭에 불과하다. 엠페도클레스는 변화를 무(비존재)에서 존재가 생겨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으며, 무로부터 아무 것도 생겨날 수 없고 참된 존재는 영원 불변하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동시에 변화를 궁극적 실재들의 결합과 분리라는 기계적 운동으로 이해함으로써 변화와 불변을 중재하려 하였다.”35) 이러한 엠페도클레스의 견해는 만물의 뿌리라는 원소를 상정함으로써 원자론의 전제를 보여주고 있고 또 그러한 원소들의 결합과 분리를 통해 운동과 변화를 설명하려 했다. 그런데 원소들의 결합과 분리를 통해 운동을 설명하는 것은 기계적인 것으로서 헤라클레이토스의 변증법적 사고로부터는 일정하게 후퇴한 것이다.

아낙사고라스는 “만물이 지니고 있는 무한한 다양성을 네 개의 요소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궁극적 요소를 스페르마타라고 불리는 만물의 종자로 보았다. 스페르마타는 질적으로 상이한 영원불변의 미세한 물질로서 무한히 존재하며 이들의 결합과 분리로부터 사물의 변화가 초래된다. 스페르마타는 질적으로 상이하며 무한히 분할될 수 있다는 점에서 원자론의 원자와 구분된다.”36) 이러한 아낙사고라스의 견해는 엠페도클레스가 사물의 근원을 네 가지 원소로 국한한 것을 극복하고 만물의 종자라는 일반화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진일보이고 원자의 개념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운동과 변화를 이들 원소들의 결합과 분리라는 기계적인 것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고 대립물의 상호 이행이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관점과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아낙사고라스의 견해에 대해 레닌은 다음과 같이 파악하고 있다. “여기서 어떤 사람들은 전화라는 것을 질적으로 규정된 미립자들의 현존 및 이 미립자들의 증가(내지 감소)[결합과 분리]라고 하는 의미로 파악한다. 또 다른 파악(헤라클레이토스)—일자의 타자로의 전화”37)

이러한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의 견해는 당시 고대 그리스의 유물론자들이 “자연현상을 물질적 미립자의 결합과 분리로 간주했다”38)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며 나아가 이들을 극복하고 원자론을 확립함으로써 고대 유물론을 완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의 직접적 선행자는 스승인 레우키포스였는데 그는 고대 그리스 철학 최초로 원자와 공허(空虛)에 관한 학설을 제기하고 인과성의 원리도 정식화하였다. “어느 것도 터무니없이 생겨날 수는 없다. 오히려 모든 것은 근원으로부터 필연에 의해 생겨난다.”39) 그러나 레우키포스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용이 전해지지 않고 있고 데모크리토스 또한 방대한 내용의 많은 저술을 했지만 그의 책으로서 전해지는 것은 없고 단지 많은 해석자들의 단편적인 내용을 통해서만 전해질 따름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를 있는 것(존재), 공허를 있지 않은 것(비존재)으로 불렀는데 이때 그는 공허를 원자에 못지않게 실재하는 것으로 생각했다.”40) 데모크리토스의 원자 개념에 대해서 전해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자는 질을 갖고 있지 않은 극히 작은 물체이고 공허는 어떤 장소이다. 이 속에서 이들 모든 물체는 영원한 옛날부터 위로 또는 아래로 뛰어 다니고 또는 어떤 방법으로 서로 뒤얽히며 서로 충돌하고 배척하며 뿔뿔이 흩어지고 또한 다시 서로 마주치는 결합물이 된다. 이렇게 하여 그것들은 다른 모든 복잡한 물체도 우리의 신체도 그 상태와 감각도 만들어내는 것이다.”41)

이러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개념은 아낙사고라스의 종자 개념이 다양한 질을 갖는데 비해 원자는 질이 없고 단지 양적으로만 구분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의 구성은 원자와 공허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원자는 스스로 운동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커다란 공허’ 속에서 우주의 무한한 공간 속에서, 원자는 저절로(자동적으로) 영원히 운동하고 있다…. 특히 귀중한 의의를 갖는 것은 운동이 물질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데모크리토스의 추론이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원자의 운동은 영원히 존재하며 시간상의 기원을 갖지 않는다. 이처럼 이 사상가는 자연 그 자체로부터 설명하려고 했다.”42) 이렇게 원자 스스로 운동성을 지니고 있다는 추론에 의해 그는 물질과 운동의 통일성이라는 유물론의 초석을 세웠고 자연과 세계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 세계전체는 물질의 운동에 다름 아니라는 견해로 나아갈 수 있었다.

여기서 원자론의 또 하나의 축인 공허에 대해 살펴보자. 공허는 장소적 의미의 빈 공간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혹은 비존재로 해석되기도 한다. 파르메니데스가 비존재는 없다고 하면서 오직 존재만이 가능하다고 한데 반해 데모크리토스는 비존재, 공허 또한 원자 못지않게 실재한다고 보았다. 스스로 운동하는 원자는 공허 속에서 운동하는 것으로서 공허는 원자의 자기운동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필요조건이다. 왜냐하면 공허가 없고 세계 전체가 꽉 찬 존재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원자의 운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데모크리토스는 파르메니데스의 변화에 대한 부정과 부동의 정신의 단일한 존재라는 형이상학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 공허 개념은 변증법적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비존재의 실재성이 바로 그것이다. ‘없는 것(비존재)이 있다(존재)’는 것인데 없는 것, 비존재가 원자의 운동이라는 변화와 실재성의 조건이 되고 존재와 비존재의 통일이 곧 운동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헤겔은 ‘생성은 존재와 무의 통일’43)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헤겔의 관점과, 원자의 운동이라는 생성과 변화를 공허라는 비존재의 실재성을 조건으로 파악하는 데모크리토스의 관점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공허라는 비존재를 원자의 운동의 조건으로 도입함으로써 성립되었다. 이러한 “원자론의 위대성은 운동하는 원자 외부에 운동의 원인을 설정하지 않고 운동을 원자에 내재해 있는 한 특성으로 파악한 점에 있다. …원자론 철학은 소박하나마 물질의 영원성과 불멸성, 세계의 무한성 그리고 물질과 운동의 통일성을 인식했다는 점에서 고대 유물론의 완성된 형태”44)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세계를 원자의 자기운동으로 설명하는 관점에 서서 데모크리토스는 “자연에는 인과성이 없으며 합목적성이 지배한다는 목적론과 달리 자연에 있어서 객관적인 인과성, 필연성 그리고 합법칙성을 승인하였다.”45) 돼지는 인간에게 잡아먹히기 위해 신이 창조하였다는 식의 목적론은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인데 이에 대해 인과성의 객관성을 승인하는 것은 목적론을 극복하고 세계의 여러 현상들에 대한 과학적 인식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데모크리토스는 인과성을 철저히 밀고나가기 위해 필연성만을 인정하고 우연성은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 사람들이 우연적으로 혹은 운명에 따라 일어난다고 하는 모든 일들도 정확히 규정되어 있는 원인에 따라 일어난다.”,“그러므로 우연히 일어나는 일의 원인은 규정될 수 없다. 따라서 우연은 규정될 수 없는 것의 영역에 속하는 듯하며, 인간은 이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46) 이렇게 우연성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필연으로 설명하는 것은 숙명론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당시 과학의 한계를 반영하는 것인데 인과성을 철저히 관철하는 것이 곧 우연성의 부정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많은 현상들은 우연성과 필연성의 통일로 나타난다. 우연성 속에 관철되는 필연성이라는 관점은 과학적 탐구의 길잡이가 된다. 확률이라는 개념 또한 많은 우연적 현상 속에서 관철되는 필연성을 도출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은 데모크리토스의 한계는 인간 정신에 대한 그의 설명에서도 나타난다. “데모크리토스는 영혼을 초자연적 원리라고 보는 관념론적 생각을 거부하고 영혼의 물질적 성격에 관해 설명했다. 영혼이나 불은 둥글고 민활한 원자의 결합이고 영혼은 신체 내의 ‘불의 원리’라고 그는 말했다. 죽음이란 신체로부터 영혼의 이탈이 아니고 신체의 원자와 영혼의 원자 사이의 자연필연적인 분리이며, 영혼도 신체와 같이 죽을 수 있는 것이다.”47) 이는 데모크리토스가 영혼으로 파악되는 인간 정신에 대해서도 원자론에 입각하여 유물론적 관점에서 일관되게 설명하려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간정신 혹은 영혼을 원자의 결합이라고 파악하는 것은 현대 유물론의 관점에서 보면 기계적이고 속류적이다. 물론 영혼의 불사를 주장하는 관념론에 대한 투쟁에서 그러한 관점이 큰 역할을 했지만 엄밀하게 보면 인간정신에 대한 과학적인 관점은 아니다. 인간의 정신, 의식은 물질 발전의 오랜 역사의 결과 성립한 물질의 최고산물이다. 뇌라는 심리기관의 성립과 발전은 자연의 발전과 진화의 오랜 기간의 산물인데 이러한 뇌의 내적 상태, 뇌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및 물리적 과정의 통일이 의식이다. 따라서 의식 혹은 영혼을 원자의 단순한 결합과 분리로 파악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 의식에 대한 속류적, 기계론적 인식이라 할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가 인간 정신 혹은 영혼에 대해 과학적 해명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데 부동의 정신, 현실 너머의 이데아의 세계를 주장하는 관념론을 온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나아가 그러한 관념론에 의해 원자론이 밀려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론에 입각하여 모든 방면에서 과학적 인식을 추구한다.

데모크리토스의 큰 공적은 인간 사고에 있어서 감각과 사고의 의의에 대해 유물론적으로 해결을 시도한 점에 있다. 그는 ‘참으로’ 존재하는 것과 ‘관습으로’ 존재하는 것을 구별했는데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원자와 공허뿐이며 ‘관습으로’ 존재하는 것은 색·맛·향기·소리·따듯함·차가움 등이다. ‘관습으로’ 존재하는 것은 원자의 결합에 의해 발생된 표상일 뿐 원자 자체에는 고유하지 않다. “데모크리토스는 감각을 지식의 최초의 단계로 간주했다. 감각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소박하지만 유물론적인 ‘에이돌라’의 이론을 만들어냈다. 그는 대상의 표면으로부터 극히 얇은 흐름—대상의 박리상(에이돌라)—이 떨어져 나와 그 상이 인간의 눈 앞에 있는 공기에 작용하여 눈이 그 대상을 보는 것처럼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감각은 ‘어두운’ 인식이다. 그것만으로 원자와 공허에 대한 지식을 줄 수 없고 그렇게 하는 데는 더욱 예민한 종류의 인식, 요컨대 ‘참된’ 인식, 즉 이성(이론적 사고)의 관여가 필요하다.”48) “데모크리토스는 인식론을 형상적으로 서술했다. 그는 ‘감성’과 ‘이성’으로 하여금 서로 논쟁하게 했다. 이 논쟁에서 ‘이성’은 바로 자신이 원자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고 따라서 진리를 인식하지 못하는 감성보다 뛰어난 것이라는 의견을 진술했다. 그러나 ‘이성’의 이 의견은 ‘감성’과 충돌한다. ‘불쌍한 이성이여, 그대는 우리에게서 증거를 입수한 끝에, 그 증거에 의해서 우리를 논박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대의 승리란 그대의 몰락이 아닌가!’”49) 이렇게 이성과 감성을 충돌시켜 그 과정에서 인식의 발전을 도모하는 접근은 매우 변증법적이라 할 수 있고 또한 인식에 있어서 이성과 감성 중 감성의 일차성을 분명히 한 것은 유물론적 인식론의 틀을 세운 것이라 할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고대 유물론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세계 전체를 원자라는 물질의 운동으로 설명한 것, 운동에 대해 원자의 자기 스스로의 성질로 파악한 것, 공허라는 비존재를 원자의 운동의 조건으로 파악하여 운동에 대한 변증법적 관점을 정립한 것, 인식론에 있어서 감성과 이성의 구별을 정립하여 유물론적 인식론의 초석을 놓은 점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원자론의 성과는 당시 과학의 한계를 반영하고 있는데 우연성을 부정하고 필연성만을 주장하여 숙명론에 빠진 점, 인간 정신에 대해 원자의 결합과 분리로 파악하는 기계론적 설명을 보여서 이후 물질에 대한 인간정신의 선차성을 주장하는 관념론에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는 점 등이 한계라 할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 고대 유물론을 완성된 형태로 제출한 것이었다면 고대 관념론 또한 플라톤에 의해 완성된 형태로 제출된다. 파르메니데스가 부동의 정신의 단일한 존재를 주장하여 관념론의 원형을 제공했다면 플라톤은 그러한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계승하여 발전시켜 이데아론을 제출하여 객관적 관념론의 창시자가 된다.

데모크리토스와 거의 동시대 사람으로 기원전 5세기에 활동한 플라톤은 귀족집안의 자손으로서 소크라테스에게 배우고 소크라테스의 죽음 후에 아테네에 아카데미아라는 철학연구기관을 창설한다. 플라톤은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당파에 반대하고 귀족계급의 이익을 옹호하였으며 데모크리토스 사상에 대해 반대하여 활동하였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현실세계 너머의 일종의 정신적 세계인 이데아의 세계를 주장하는 이론이다. 그 이데아의 세계는 계층적인데 맨 위에 선(善)의 이데아가 있고 그 아래 덕(德)의 이데아가 있는 식이다. 그리고 현실의 세계는 이데아 세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의 이데아론은 이데아 자체가 정신적 본질로서 영구불변의 부동의 것이라는 점에서 파르메니데스의 부동의 정신적 존재 이론을 계승한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데아가 파르메니데스와 다른 점은 부동의 정신적 존재를 실제적 존재로 끌어올린 점인데 그 과정에서 플라톤이 사용한 방법은 보편의 자립화, 실재화이다. “그렇다면 ‘많은 아름다운 것’을 보되, ‘아름다운 것 자체’는 못 보며, 거기로 자신들을 인도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는 사람들을, 또한 ‘많은 올바른 것’을 보되 ‘올바른 것 자체’는 못 보는 사람들, 그리고 또 일체의 것에 대해서 그러는 사람들을 가리켜 우리는 그들이 모든 것에 대해 의견은 갖지만, 자기들이 의견을 갖는 것들에 대해서 아무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걸세.”50) 이러한 플라톤의 접근은 ‘아름다운 것 자체’(보편)를 인식하지 못하면 아름다운 것들(개별)을 보더라도 아무 것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것으로써 개별적인 것은 의미 없고 오직 보편만이 의미 있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보편을 절대화시키는 것인데 플라톤이 이렇게 보편을 절대화하는 것은 그렇게 절대화된 보편의 자립성, 독립적 실재성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많은 아름다운 것’ 아닌 ‘아름다운 것 자체’가 또는 ‘많은 각각의 것’이 아닌 ‘각각의 것 자체’가 ‘있다’고 대중이 인정하거나 믿게 되는 게 가능하겠는가?”51) 아름다운 것 자체라는 보편의 실재성의 주장! 그러한 보편이 개별과 독립되어 독자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이것이 플라톤의 이데아론의 현실적 내용이다. 즉, 보편이 개별로부터 분리되어 자립화되어 독립적 존재를 갖게 된다는 것인데 플라톤은 거꾸로 그러한 자립적인 보편 존재를 이데아로서 상정하고 현실세계와 개별적 존재를 역규정한다. “그런가 하면 아름다운 것 자체니, 좋은 것 자체니 하고, 그리고 그때 우리가 ‘많은 것’으로 상정한 모든 것과 관련해서도 이런 투로 말하며, 이번에는 각각의 것에 한 이데아가 있는 것으로 상정하여 이 한 이데아에 따라 이 각각을 ‘실재하는 것’이라 우리가 일컫네.”,“그리고 앞에 것들은 ‘보이기는’ 하되 ‘지성에 알려지지는’ 않는다고 우리가 말하는 반면에 이데아들은 지성에 알려지기는 하나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하네.”52) 아름다운 어떤 것에는 그에 상응하는 아름다운 것 자체라는 이데아가 있는 것이고 그 이데아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것이며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것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부동의 정신적 존재의 선차성이라는 관념론에 기초를 두는 것이지만 방법론에 있어서는 개별과 보편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많은 아름다운 것을 보며 아름다움 자체를 사고하는 것은 많은 꽃들을 보며 그것의 공통된 성질인 꽃이라는 관념을 떠올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여러 개별적인 것들 속에서 그것들에 공통된 보편적 성질을 추출하는 것인데 이는 인식의 발전과정의 하나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별과 보편의 관계에 대해 플라톤이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편이 개별로부터 독립되어 별도로 실재한다는 것은 공상이다. 정반대로 보편은 개별 ‘속에’ 실재하는 것이다. 즉, 개별과 독립된 것이 아니라 개별과의 관련 속에서만, 개별에 존재하는 성질의 하나, 한 측면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한편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정반대로 보편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고 보편은 개별 속에, 개별을 통하여 존재한다고 인식하는 것이 보편과 개별의 관계에 올바른 접근이다. 이렇게 플라톤은 개별과 보편의 관계를 그르치고 부당하게 보편을 자립화하여 개별로부터 독립시켜서 이데아의 세계를 창조했다. 그리고 현실의 세계, 감각적 세계는 이러한 이데아의 세계로부터의 파생물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이후 역사에서 많이 등장하는 객관적 관념론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데 객관적 관념론은 인간의 정신적 본질을 절대화하고 자립화하여 인간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독립적으로 실재화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렇게 현실 너머 정신적 세계인 이데아의 세계를 창조하고 거꾸로 그로부터 현실세계와 인간의 인식을 설명한다. 그의 인식론은 상기론(想起論)인데 즉, 우리가 현실세계에서 느끼고 사고하는 모든 것은 이데아의 세계에서 있었던 일을 상기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그는 참된 인식에 있어서 감각의 역할을 부정한다. “철학은 영혼에게 눈과 귀와 그밖의 감각 기관들에 의한 인식은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그런 감각 기관들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 이외에는 그런 감각 기관들을 사용하지 말라고 설득하네. 그리고 철학은 영혼에게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가라앉아 자기 자신 이외의 것은 아무 것도 신뢰하지 말고 오직 영혼 자신이 스스로 이해한 ‘사물 그 자체’만을 신뢰해야 하며, 자신 이외의 경로를 통해 들어오는 모든 것과 서로 다른 형태를 취하는 모든 것들은 감각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들이므로 결코 참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과, 그러나 영혼이 자기 자신의 본성으로써 보는 것은 지혜를 예측하고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네.”53) 이는 인간의 인식에서 감각의 의의를 전면 부정하고 영혼이 인식하는 사물 그 자체만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으로서 절대화되고 자립화된 보편에 대한 인식이외에 감각을 통한 인식은 참된 인식과 배치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인식은 감각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성적 판단을 위한 자료를 얻을 수 없고 나아가 사물 그 자체라는 절대적 보편성 혹은 보편에 대한 참된 인식 또한 감각을 통한 개별에 대한 인식 없이는 성립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보편은 개별의 어떤 성질, 측면을 추상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감각은 인간의 인식에서 이성과 더불어 주요한 두 측면의 하나이다. 감각을 통한 인식은 구체성과 직접성을 인식에 가져다주고 이성적 인식은 이를 가공하는 것일 뿐이며 우리의 인식은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의 총체적인 통일과정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인식에서 감각의 의미를 전면 부정하는 플라톤의 인식론은 독선적이고 일면적이라 할 수 있다.

상기론은 이데아의 세계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인간 인식의 구체성과 풍부함, 능동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획득한 지식을 태어날 때 잊어버렸다가 나중에 감각을 사용하여 예전에 알고 있었던 것들을 되찾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본래 우리의 소유였던 지식을 되찾는 것이 아니겠나?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상기라고 부르는 것이 옳지 않겠나?”54) 현실의 삶과 사고는 이데아의 세계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상기론은 숙명론적 삶과 사고를 강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인식이 단지 상기에 불과한 것인가? 개념의 획득과 인식은 인류가 축적한 지식에 상당부분 의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개념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은, 예를 들면 아름답다거나 멋있다거나 하는 인식은 어떤 대상을 전제로 하고 주체와 대상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그것은 단지 과거의 것, 이데아의 세계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삶이며 상호작용이며 능동적인 것이다. 즉, 인간의 인식은 이데아의 상기가 아니라 현실의 대상에 대한 주체의 인식이다. 그에 따라 현실의 다면성과 풍부함, 구체성이 인간의 인식에 들어오고 주체의 능동성에 따라 인식의 폭과 깊이는 얼마든지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 인식의 본질은 이데아의 상기가 아니라 현실의 대상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대상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 대상의 많고 적음, 대상의 크기와 길이, 질적 차이의 발생과 변화 등등을 반영하는 것이 인간 인식인 것이다. 그에 따라 진리의 개념은 대상과 인식의 일치가 된다. 우리의 인식이 대상을 올바르게 반영할 때 진실된 인식, 오류가 없는 인식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상기론은 자립화된 보편을 진리로 못 박고 인간의 인식을 수동적으로 가두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본질은 절대화되고 자립화된 보편이 아니며 진리는 구체적인 것이다. 여기서 옳은 것이 저기서는 오류가 될 수 있고 이때는 옳은 것이 저때는 잘못된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개별에서 보편으로 나아가는 것은 인식의 발전을 의미하지만 인식의 그러한 한 측면을 절대화하면 그것은 오류로 전화되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그러한 인식의 한 측면, 보편의 추구를 절대화하고 나아가 자립화한 것이며 따라서 인간 인식의 발전을 속박하는 것이다.

그런데 플라톤은 이렇게 이데아론으로써 보편의 절대화와 자립화를 추구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연발생적인 변증법의 일면을 보인다. “분리와 결합, 차가워짐과 뜨거워짐 등등은 모두 그러한 생성이며, 때로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생성들도 있지만 어쨌든 서로 반대되는 것들은 반드시 그 반대되는 것으로부터 생겨나며, 각각으로부터 반대되는 것으로의 생성과정이 있는 것일세.”55) 대립물의 통일로서의 생성, 그 상호전화라는 이러한 관점은 변증법적 인식을 보여준다. 그런데 플라톤은 이러한 자연발생적인 변증법적 인식에서 궤변으로 나아간다. 반대되는 것들은 그 반대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을 절대화하여 생명은 죽음으로부터 생겨난다고 비약을 한다. “삶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입니다.”, “그러면 죽음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은?”, “삶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군요.”, “그렇다면 살아 있는 것은 사람이건 사물이건 죽은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겠지?”, “그렇습니다.”56) 이것은 변증법의 외양을 취하고 있으나 실은 궤변에 불과하다. 삶이 죽음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일면의 진실이 있다. 생명은 무생물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아 생명을 유지하고 또 씨앗이 수분과 양분을 흙으로부터 얻어 싹을 틔우는 것은 살아 있지 않은 것으로부터 살아 있는 것이 생겨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러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삶이 생겨나기 때문에 죽은 자의 영혼이 죽음의 세계 어디에 있다가 현실세계로 되돌아온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대립물의 상호전화라는 개념을 주관적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레닌의 다음과 같은 언급이 적절한 비판이 될 것이다. “제 개념의 전면적, 보편적 굴신성, 대립물의 동일성에까지 나아가는 굴신성—여기에 본질적인 것이 있다. 이러한 굴신성이 주관적으로 적용되면, 절충주의 및 궤변으로 된다. 이러한 굴신성이 객관적으로 적용되면, 즉 이 굴신성이 물질적 과정의 전면성 및 이 과정의 통일성을 반영하면, 그것은 변증법이며, 세계의 끊임없는 발전에 대한 올바른 반영인 것이다.”57)

이와 같이 플라톤은 이데아론에 기초하여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는데 보편의 절대화와 자립화를 진리로 치부하고서는 그러한 철학에 기초한 철학자가 다스리는 이상국가론을 전개한다. “철학자들이 이 나라에 있어서 군왕들로서 다스리거나, 아니면 현재 이른바 군왕 또는 ‘최고 권력자’들로 불리는 이들이 ‘진실로 그리고 충분히 철학을 하게’ 되지 않는 한, 그리하여 이게 즉 ‘정치권력’과 철학이 한데 합쳐지는 한편으로, 다양한 성향들이 지금처럼 그 둘 중의 어느 한쪽으로 따로따로 향해 가는 상태가 강제적으로나마 저지되지 않는 한, … 인류에게 있어서도 ‘나쁜 것들의 종식’은 없다네.”58) 이는 정치가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올바르지만 철학자가 곧 정치권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비약이라고 할 수 있고 당시 그리스의 현실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이며 자신의 이데아론이 그리스의 지배적인 철학과 정치현실이 되어야 한다는 강변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의 이상 국가는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전체주의 사회라 할 수 있다. 이상 국가에서는 여성과 아이들 그리고 재산이 공유의 대상이 된다. “이들 모든 남자의 이들 모든 여자는 공유하게 되어 있고, 어떤 여자도 어떤 남자와 개인적으로는 동거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네. 또한 아이들도 공유하게 되어 있고, 어떤 부모도 자기 자식을 알게 되어 있지 않으며, 어떤 아이도 자기 부모를 알게 되어 있지 않다네.”59) 이러한 플라톤의 주장은 현상적으로는 사적 소유를 부정하고 있지만 공산주의를 꿈꾸는 공동체적 주장이라기보다는 전체주의와 가까운 것인데 왜냐하면 자신의 국가에서 계급질서는 의연히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으론 그 성향 상으로 장인이거나 또는 다른 어떤 돈벌이를 하는 사람이 나중에 부나 다수 또는 힘에 의해 또는 이런 유의 다른 어떤 것에 의해 우쭐해져서는 전사의 부류로 이행하려 들거나, 혹은 전사들 중의 어떤 이가, 그럴 자격도 없으면서, 숙의 결정하며 수호하는 부류로 이행하려 든다면, 그리하여 이러한 사람들이 서로의 도구나 직분을 교환하게 된다면, 또는 동일한 사람이 이 모든 일을 동시에 하려 든다면, 그런 경우에 내 생각에도 그렇지만, 자네한테도 이들의 이 교환이나 참견이 이 나라에 파멸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라 생각하네.”,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세 부류의 이들 사이의 참견이나 상호 교환은 이 나라에 대한 최대의 해악이며, 따라서 무엇보다도 더한 ‘악행’이라 불러 지당할 걸세.”60) 여기서 플라톤은 사회의 계급을 철학하는 수호자 집단, 전사 집단, 장인이나 돈벌이로써 경제적 역할을 하는 집단으로 나누고 있고 이들의 구분을 절대화하고 그 구분을 약화시키는 것을 ‘악행’이라 규정하고 있다. 플라톤이 이러한 정치관을 펴는 것은 당시 그리스 상황에서 귀족제와 민주주의 당파 간의 투쟁에서 플라톤이 민주주의 당파를 적대시했던 것과 연관이 있다. 이러한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철저한 계급사회, 전체주의적 사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에 대해 일찍이 맑스는 “이집트의 신분제도의 아테네적 이상화에 지나지 않는다…”61)고 하였다.

플라톤은 또한 이데아론에 입각하여 자신의 예술론을 펼치는데 현실의 세계가 이데아의 모방이며, 예술은 현실 세계의 모방이므로 예술은 모방의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 예술을 매우 낮게 평가하였다.

이러한 플라톤 철학의 의미는 이전의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을 계승하여 이데아론으로써 관념론을 고대세계에서 완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플라톤에 이르러 이전의 자연철학, 유물론과 구별되는 관념론, 정신을 세계의 일차적 요소로 보는 철학이 완성된 모습을 나타내었다. 고대 유물론과 원자론이 밀려나고 플라톤의 철학과 관념론의 흐름이 지배적이 된 것은 정치적 측면을 제외하면 철학 내적으로는 고대 유물론과 원자론이 인간정신의 본질을 제대로 해명할 수 없었던 때문이다. 이는 당시 과학발전의 한계를 반영하는 것인데 이러한 한계는 근대에 접어들어 다시금 자연과학이 발전하고 변증법적 자연관이 성립하게 되면서 극복이 된다. 고대 원자론은 이후 헬레니즘 시대의 에피쿠로스와 로마의 루크레티우스에 의해 계승, 발전된 모습을 띠게 되는데 중세 이후 잠복되었다가 근세에 이르러 가상디에 의해 재조명된다.

3.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였다. 18세에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 들어가서 플라톤에게서 20년간 수학했으나 플라톤과 이견이 생기면서 플라톤 사후 아카데미아를 나왔고 이후 마케도니아의 왕이 된 알렉산더의 스승이 된다. 그리고 아테네에 자신의 학문기관인 리케이온을 창설하고 활동하는데 알렉산더가 죽은 후에 아테네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얼마 못가서 사망하였다.

맑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고대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불렀고 엥겔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두뇌’로 평가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 논리학, 심리학, 자연과학, 역사학, 정치학, 윤리학, 미학 등 전 방면에서 연구하였으며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전해지지 않는 데모크리토스의 저작들을 제외한다면 최대의 백과전서적인 사상가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모순율을 핵으로 하는 논리학의 창시 등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런데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모순적인 면이 있는데 과학적 논리학을 창시하는 등 과학의 추구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신에 대한 승인 등 관념론적인 면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선 자신의 스승인 플라톤의 핵심적 주장인 이데아론을 철저히 거부한다. “꼴들이 본(원형)이고 다른 것들은 이것을 ‘나눠 갖는다’(분유한다)고 말하는 것은 빈말하는 것과 같고, 시적인 비유를 말하는 것과 같다. 도대체 이데아들에 시선을 두고 (이를 본뜨며) 일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62)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가 현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시적인 비유에 불과하다고 격하하여 이데아의 실체성을 부정한다. 이러한 기본관점에 기초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가 현상들의 원인이 아님을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지혜(‘철학’)는 ‘보이는 것’(현상)들의 원인을 찾지만 우리(플라톤주의자들)는 이 점을 내버려 두었다. {‘(어떤) 변화가 비롯하는 원인’(변화의 원인)에 대해 우리는 말하는 바가 전혀 없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의 실체를 설명한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종류의) 실체(‘이데아’)들이 있다(존재한다)고 주장하지만, 어떻게 이것들이 보이는 것들의 실체인지에 대해선 빈말을 한다. ‘나눠가짐’(分有)은 앞서 말했듯이 아무것도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63)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 세계의 개별 사물이 이데아를 나눠가진다(분유한다)는 것은 현실세계, 현상의 원인의 설명이 못됨을 지적하고 있다. 나눠가짐(분유)은 시적인 비유는 될지언정 과학적인 원인 개념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동의 정신적 실체라고 하는 이데아로는 현실세계의 운동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움직임(운동)에 관한 한, 큼과 작음이 움직임이라면, 분명히 (이것들을 밑감으로 갖는) 꼴(이데아)들도 움직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움직임이 아니라면 어디서 (이데아를 본뜬 감각 대상들의) 움직임이 나왔겠는가?”64) 현실세계는 운동과 변화로 가득 차 있는데 부동의 이데아를 본뜬 것이 현실 세계라면 현실의 운동은 설명될 수 없다는 점을 통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의 오류의 핵심인 개별과 보편의 관계에 대해 평가를 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예를 들어, ‘개별적인 것들’(즉 동물들의 꼴들)과 따로 (떨어져) 어떤 ‘동물’도 있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규정 속에 든 것(요소)들은 어떤 것도 ‘개별적인 것들’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65) 이와 같이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과 독립된 보편의 자립화를 내용으로 하는 이데아론을 비판하면서 보편은 개별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이데아론의 발생배경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파악하고 있다. “이데아론은 그 지지자들이, (사물들의) 참모습과 관련하여, 모든 감각 대상들은 항상 흐르는(변하는) 상태에 있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에게 생겨났다. 그래서 어떤 것에 대한 앎이나 인식이 있으려면 (항상 변하는) 감각대상들 말고 다른 어떤 변함없는 실재들이 따로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흐르는 상태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앎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66) 즉 이데아론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을 비판하는 가운데 흐르는 것에는 진정한 앎이 성립할 수 없고 따라서 부동의 실재가 흐르는 대상과 독립되어 존재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유동의 헤라클레이토스와 부동의 파르메니데스의 대립을 관념론의 입장에서 극복하려 한 것이 플라톤의 이데아론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흐르는 상태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앎이 있을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그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흐르는 상태, 즉 운동과 변화에 대해서 진정한 앎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한계는 바로 흐르는 상태, 운동에 대한 전면적 고찰이 빠져 있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도 있다. 운동에 대한 전면적 고찰은 변증법적 사고와 방법론을 요하는 것인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을 창시하는 등 과학의 추구에 혼신을 다했지만 그 과학은 운동의 본질에 대한 고찰이 빠진 과학이라는 한계가 있었고 그리하여 그의 논리학은 당시로서는 거대한 진보였음에도 변증법적 내용이 없거나 매우 부족한 형식논리학이라는 성격을 띠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저작인 《형이상학》은 자신의 선행자들에 대한 평가로부터 시작한다. “‘모든 것’(우주)을 한 가지 것으로, 그리고 어떤 한 가지 실재를 밑감(재료)으로, 그것도 물질적이고 크기를 갖는 밑감으로 놓은 사람들은 분명히 여러모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그들은 오로지 물체들의 요소들만을 놓을 뿐, 비물체적인 것들의 요소들은 [비물체적인 것들이 또한 있음에도 불구하고] 놓지 않기 때문이다.”67) 이는 자신의 선행자들이, 즉 탈레스, 헤라클레이토스, 나아가 데모크리토스 등이 세계의 물질적 구성원리를 세계의 근본요소라는 개념으로 혹은 원자론으로 나름대로 해명하고 있으나 인간 정신에 대해서는 올바른 해답을 주지 못한 한계가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전개되는데 여기서 그의 질료와 형상의 철학이 전개된다. 질료(밑감)는 물질적 요소를 말하는 것이고 형상(꼴)은 형태, 형식을 말하는 것인데 예를 들면 청동그릇에서 청동은 질료(밑감)가 되는 것이고 그릇이라는 형태는 형상(꼴)이 되는 것인데 그는 질료와 형상의 관계에서 형상을 보다 근본적인 것으로, 나아가 실체로 놓는다. “예를 들어, “이것(밑감)들은 왜 집인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그것은 집-임(집의 본질)이었던 것이 그것들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또는 이런 모양을 갖는 이 신체가 왜 사람인가? 이렇듯 우리가 찾는 것은 밑감의 원인이며 [이것은 꼴(형상)이다]. 이것 때문에 밑감은 어떤 (특정한) 것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그 사물의) 실체다.”68) 이것이 질료와 형상의 철학의 전형적인 내용인데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이 실체라고 파악하고 있다. 집-임(집의 본질)은 꼴(형상)인데 이것이 밑감(질료)가 어떤 특정한 것이 되는 원인이며 따라서 형상이 실체라고 보는 것이다.  그는 앞서 자신의 선행자들이 비물체적 요소를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에 기초하여 이렇게 형상을 실체로 보는 자신의 철학을 수립한 것이다. 질료(밑감)는 전형적으로 지금의 물질 개념에 해당하는 것이고 형상(꼴)은 물체의 형태, 형식을 말하는 것으로서 어떤 점에서는 물질의 형식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정신이 작용한 산물이라는 점에서 관념적 요소이기도 한데 형상이 그 사물의 실체라는 주장은 그가 관념론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승인한다는 점에서 결정론자라 할 수 있는데 그는 세계에 존재하는 원인들의 종류를 4가지로 분류한다. “원인은 네가지 방식(뜻)으로 말해진다. 그 가운데 하나를 우리는 실체 즉 ‘(어떤 것이) 있다는-것은-무엇-이었는가’(어떤 것의 본질)이라고 부른다. …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밑감(재료)이나 ‘바탕이 되는 것’(基體)이며, 셋째는 ‘운동이 비롯하는 곳’(운동의 근원)이며, 넷째는 이것에 맞놓인(대립되는) 원인, 즉 ‘무엇을 위해’(목적)와 좋음(善)이다.”69)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체로 보는 원인은 형상인을 가리키고 나머지는 질료인, 운동인, 목적인이라고 할 수 있다. 있다는-것은 어떤 존재를 가리키고 무엇-이었는가는 본질을 설명하는 고대 그리스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러한 본질은 실체를 말하며 이러한 실체가 원인의 하나로 설명되고 있다. 이러한 원인들의 종류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건축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예를 들어, 집의 경우 ‘움직임이 비롯하는 곳’(운동의 근원)은 기술(‘건축술’)이며, ‘무엇을 위해서’(목적)는 (집의) 기능이며, 밑감(재료)은 흙과 돌들이며, 꼴(형상)은 (집의 본질에 대한) 정의(定義)이다.”70) 즉, 집의 재료는 질료인, 집짓는 기술은 운동인, 집의 형태는 형상인으로서 집의 본질에 해당하고 그리고 집의 기능은 목적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목적을 원인으로 파악하는 것인데 바로 이 지점이 다양한 목적론이 나타나는 근거가 되었다. 목적은 원인의 한 종류가 될 수 있는가? 목적을 원인으로 파악하면 목적론이 나타나는 것은 불가피해지는데 예를 들면 젖소는 인간에게 젖을 제공하기 위해 생겨났다는 설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적은 현실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만 변화, 운동의 원인으로 파악될 수는 없다. 어떤 현상이 있을 때 그러한 현상을 초래한 것은 특정한 원인이고 행위이다. 목적은 그 배후에 있는 것으로서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행위의 근거로 작용하는 것이지 목적 자체가 원인인 것은 아니다.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가 목적을 원인의 한 종류로 파악한 것은 그의 관념론적 경향을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의 근본물음을 제기하고 있는데 오늘날과 같은 물질과 의식의 대립의 문제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있음, 무엇임의 문제, 즉, 실체가 철학의 근본문제라 하고 있다. “그리고 정말, 예나 지금이나 늘 묻지만, 늘 (대답하기) 어려운 물음은 “있는 것이란 무엇인가? 다시 말해 실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이 하나라고, 어떤 사람들이 하나보다 많다고,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개수에서) 한정된다고, 어떤 사람들이 무한하다고 주장했던 것이 바로 이 실체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이렇게(으뜸으로) 있는 것’(실체)에 관해, 이것이 무엇인지를 특히 비중을 두어 집중적으로 연구해야 한다.”71) 그러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의 종류를 세 가지로 나눈다. “실체는 세 가지다. 그 중에 감각되는 실체가 있다. {그리고 이 실체 중 어떤 것은 (즉 해, 달, 별 등의 천체들은) 영원하며 어떤 것은 사라진다(소멸한다). 사라지는 실체는 온갖 동식물처럼 사람들이 다들 실체로 인정하는 것들이다}. 이런 감각되는 실체의 요소들을, 이것들이 하나든 여럿이든, 우리는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남은 한 종류의 실체는 움직이지(변하지) 않는 것인데, 사람들은 이것이 ‘따로 떨어져 있는’(독립한) 것이라고 말한다.”72)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를 감각되는 것 중 영원한 것과 소멸하는 것으로 그리고 감각되지 않는 불변의 것으로 나누고 있는데 감각되지 않는 불변의 것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것이거나 아니면 수학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감각되는 것은 자연학 즉, 자연과학의 대상이 되며 감각되지 않는 불변의 것은 형이상학의 고찰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실체의 종류를 셋으로 나누고 그 중 감각되지 않는 불변의 것을 포함하는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신의 존재를 승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의 근본물음을 실체라는 개념으로 제기하고 있는 것은 철학의 발전에 매우 큰 족적을 남긴 것이다. 실체라는 개념은 근대 유럽에서 스피노자 등에 의해서도 많이 연구되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은 그러한 흐름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선행자들에 대한 비판은 날카로운 면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평가하면서 “운동에 관련하여, 사물들이 어디로부터, 어떻게 운동을 하게 되느냐는 문제를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안이하게 제쳐 놓았다.”73)고 비판하였다. 이는 데모크리토스가 원자는 저절로 움직인다고 한데 대하여 ‘어떻게 저절로 움직이게 되는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것으로써 이는 데모크리토스 원자론의 한계를 정확히 지적한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식의 문제에 있어 유물론적인 경향을 보인다.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바탕이 되는 것들은 감각이 없으면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감각은 분명히 자신에 대한 감각이 아니며, 감각에 반드시 앞선, 감각 외의 다른 어떤 것이 또한 (그 대상으로서) 있기 때문이다. (감각 대상이 감각에 앞서는 까닭은) 움직이게(변하게) 하는 것이 움직이는(변하는) 것보다 본성에서 앞서기 때문이다.”74) 감각에 의해 감각되는 대상이 규정되는가 아니면 감각되는 대상에 의해 감각이 규정되는가는 인간의 인식의 본질에 관련된 것이고 관념론적 인식론과 유물론적 인식론을 가르는 지점이다. 감각되는 대상의 일차성을 승인하는 것, 감각은 감각되는 대상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은 유물론적인 인식론인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지점에서는 명백히, 의식적으로 유물론적 인식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네가 (얼굴이나 입고 있는 옷이) 희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생각이 맞기 때문에 네가 흰 것이 아니다. 반대로 네가 희기 때문에 이를 주장하는 우리의 말이 맞다.”75) 이는 주관과 객관의 관계에서 객관의 일차성을 승인하는 것인데 역시 유물론적 인식론을 아리스토텔레스가 의식적으로 정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물질과 운동의 관련에 대해 유물론적 입장에 근접해 있다. “이렇듯, 생겨나는 것이 (힘의) 사용과 별개의 것인 경우에는, 발휘상태는 ‘만들어지고 있는 것’ 안에 (들어) 있다. {예를 들어, 건축행위는 ‘지어지고 있는 것(집)’ 안에 (들어) 있고 직조행위는 ‘짜여지고 있는 것(직물)’ 안에 (들어) 있다. 그리고 다른 경우들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움직임(변화)은 움직여지는(변화되는) 것 안에 (들어) 있다.”76) 이는 소박하지만 물질과 운동의 통일성을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더욱 더 정확한 형태로 물질과 운동의 통일성을 말한다. “사물들과 따로 떨어져 있는 움직임(운동)이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변화는 늘 ‘있음’의 범주에 따라 일어나기 때문이다.”77) 여기서는 물질과 운동의 통일성이 더욱 직설적인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그 근거는 아직 정확히 과학적인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물질과 운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을 좀 더 살펴보면 그는 물질의 불멸성, 운동의 불멸성에 다가가고 있다. “다음으로 (주목할 것은) 밑감(재료)도 꼴(형상)도 {여기서 밑감과 꼴은 마지막 밑감과 꼴을 말한다} 생겨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것은 어떤 것(A)이다가 어떤 것(B)에 의해 어떤 (상태의) 것(C)으로 변한다.”78) 여기서는 물질의 불멸성에 대해 소박한 인식이 보인다. 밑감도 꼴도 생겨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무로부터는 아무 것도 생기지 않는다는 입장을 아리스토텔레스도 승인하는 것이고 따라서 물질은 이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전화한다는 것, 그에 따른 물질의 불멸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실체는 있는 것(사물)들 가운데 으뜸가는 것이며, 또 모든 실체들이 사라지는(소멸하는) 것이라면, 모든 것들은 사라지는 것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움직임(운동)이 (언젠가) 생겨난 것이거나 사라진 것일 수는 없다. {그것은 항상 있어왔기 때문이다}.”79) 여기서는 운동이 생겨난 것이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있어왔다는 것을 명백히 말하고 있는데 이는 현대의 용어로 운동의 불멸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의 근본물음으로서 실체 개념을 정립하고 그에 기초하여 물질과 운동의 통일성, 나아가 물질과 운동의 불멸성에 대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유물론적 인식은 적어도 자연학의 영역, 자연과 관련될 때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명백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에 대해 일정한 과학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그는 운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나는 ‘잠재 상태로 있는 것’이 그것인 조건 아래에서 (완성상태로) 실현되어 감을 “움직임(운동)”이라 부른다.”80)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에 대한 정의는 잠재상태 혹은 가능성이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완성상태 혹은 현실성의 전화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운동의 종류를 나누는데 생성과 소멸, 성질의 변화, 크기의 증감, 위치의 이동이 그것이다.81) 단 생성과 소멸은 변화에는 포함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운동은 아니다. 왜냐하면 운동은 있는 것의 운동인데 생성은 있지 않은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의 종류를 나누고 운동의 원인을 고찰함에 있어 일정한 비과학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것을 움직이게 하는 으뜸가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움직이는(변하는) 것들을 항상 움직이게(변하게) 하는 어떤 것이 있으며, ‘(다른 모든 것들을) 움직이게(변하게) 하는 으뜸가는 것’(原動者) 자신은 움직이지(변하지) 않기 때문이다.”82) 여기서 원동자는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것인데 이는 사실 신의 이름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가 운동의 원인에 대해, 운동의 원천에 대해 비과학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변증법에 대해 거리를 둔 것과 관련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의 초석이 되는 모순율을 정립했으나 거기서 더 나아가 현실에서 모순의 존재를 부정했다. 변증법의 입장에서는 운동의 원천이 되는 것이 모순인데, 특히 내적 모순인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형식상 모순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넘어서 그것을 존재, 실체에까지 확대하여 내적 모순을 부정한 것이다. 이를 좀 더 자세히 고찰해 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순율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하고 있다. “그것은 ‘같은 것(속성)은 같은 것(관점)에 따라 같은 것(대상)에 들어 있으면서 동시에 들어 있지 않을 수 없다’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소피스트들이 으레 하는 것과 같은) 말 트집에 대응하기 위해 다른 단서들을 (이 원리에 대한 규정에) 추가로 달아야 할 것이다. 이 원리는 정말 모든 원리들 중에서 가장 확실한 원리다. 왜냐하면 이 원리는 앞에서 말한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아무도 ‘같은 것이 있으면서/…이면서 (동시에) 있지/…이지 않다’고 믿을 수 없다. 어떤 이들은 헤라클레이토스가 그런 (모순율을 부인하는 식의) 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83) A가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닐 수는 없다, 어떤 것이 참이면서 동시에 거짓일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모순율은 논리학의 초석이면서 최소한의 논리적 오류를 범하지 않게 하는 기준이다. 어떤 명제가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면 과학은 성립할 수 없다. 2-2=0이 참인지 거짓인지가 확정되어야 수학이 성립하는 것이다. 지금은 당연한 듯이 보이는 이러한 명제, 모순율이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정립되었다는 것은 인류의 지적 발전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철학이 의존하는 직관을 넘어서서 과학이 초보적이나마 성립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모순율에 기초하여 오늘날 형식논리학이라 불리는 논리학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모순율이 논리형식상 참, 거짓을 판별하는 것임을 정립하는 것을 넘어서 현실 세계에서, 사물의 존재에서 서로 반대되는 것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 “(사유의) 혼란에 빠진 사람들은 감각대상들(에 대한 관찰)에 바탕을 두고 그러한 견해에 이르게 되었다. 먼저 (1) 그들은 같은 것(사물)에서 반대되는 것(성질)들이 생겨가는 것을 봄으로써, 모순되는 것(성질)들이나 반대되는 것(성질)들이 동시에 (같은 것 안에) 들어 있다는 견해에 이르게 되었다….아낙사고라스가 “모든 것은 모든 것 안에 섞여 있다”고 말하듯이. 그리고 데모크리토스가 말하듯이 말이다. 데모크리토스는 (텅) 빈 것(空)과 (꽉) 찬 것(滿)이 똑같이 모든 부분에 들어 있고, 이 가운데 뒤의 것은 ‘있는 것’이지만 앞의 것은 ‘있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84) “모순되는 것(술어)들이 동시에 같은 것(주어)에 대해 참일 수 없기 때문에, 반대되는 것(성질)들도 분명히 동시에 같은 것(대상)에 들어 있을 수 없다.”85) “예를 들어 ‘건강한 힘을 가진다고 말해지는 것’은 ‘아플 힘을, 그것도 동시에, 가진다고 말해지는 것’과 같다. …이렇듯, ‘반대되는 것들에 대한 힘이 있음’은 동시에 있다. 그러나 반대되는 것(성질)들은 동시에 (같은 대상에) 들어 있을 수 없으며, 건강함과 아픔처럼 (두 가지 반대되는) 실현상태들도 동시에 (같은 대상에) 들어 있을 수 없다.”86) 이렇듯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의 형식의 문제인 모순율을 존재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이는 그가 헤라클레이토스의 변증법,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와 공허의 개념을 거부한 것과 관련이 있다. 사실 내적 모순이 없다면 일체의 운동은 불가능하다. 내부에 모순을 담지한 것만이 변화와 운동이 가능한 것이고 그 모순은 운동의 원천이 된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능성의 차원에서는 모순을 승인하였다. 건강한 힘을 가진다는 것은 아플 힘도 동시에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건강함의 가능성과 아픔의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임을 승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현상태 혹은 현실성에서는 그러한 모순의 존재를 부정했고 그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순율을 정립하여 과학적 진보를 이루었지만 이후 시대에 있어 변증법적 사고를 제약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변증법적 사고가 제약되어 있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곳곳에서 드러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론》이라는 저작을 쓸 정도로 인식의 과학적 기초를 다지는데 힘을 쏟았다. 그가 정립한 범주들은 실체, 양, 관계, 질, 능동과 수동, 대립, 반대되는 것, 먼저(시간), 같이, 가짐(소유) 등이다. 이러한 범주들은 이후 중세를 넘어 근대철학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칸트가 전개한 범주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범주들은 변증법적 사고의 전제가 되는 것들인데 예를 들면 범주들의 상호연관이라는 인식(예를 들면 양과 질의 상호관계)은 곧 헤겔에 의해 정립된 변증법의 법칙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각각의 범주에 대해 각 범주의 의미 자체가 무엇인가를 확립하는데 집중했다. 예를 들면 관계 혹은 부분과 전체의 개념에 있어서 관계하는 주체, 대상들의 상호작용, 부분과 전체의 상호관계라는 데까지 나아가면 변증법이 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거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부분의 개념 자체, 전체의 개념 자체를 확정하는 데 치중한다. 그리하여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 맹아가 보였던 모순 혹은 대립물의 통일이라는 관념을 거부하고 반대되는 것은 가장 큰 차이남을 가리킨다는 형식논리로 그친다. “완전한 차이성은 끝을 가지며 끝의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다. … 끝의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으며, 완전한 것은 모자란 게 아무 것도 없다. 이렇듯 분명히 반대됨은 완전히 차이 남이다.”87) 여기서 헤라클레이토스였다면 반대됨은 완전히 차이남이지만 반대되는 것은 서로 통일되어 있고 대립물로 상호전화한다고 했을 것이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한계는 그가 논리를 모순율에 위배되지 않는 형식논리로 국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의《변증론》에서도 실제 변증법적인 내용은 거의 없고 ‘논쟁술’, ‘논쟁의 규칙’에 대한 연구에 머물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는 세계의 통일성에 대한 일정한 인식이 보인다. “{분명히, 우주는 하나다(단일하다). 인간들처럼 우주가 여럿이라면, 각 우주에 관한 원리는 꼴(종류)에서 하나지만, 수로 볼 때는 여럿일 것이다. 그러나 개수가 여럿인 것들은 밑감(재료)을 갖는다. 예를 들어 사람의 경우처럼, 여러 사물에 한 가지 같은 정의(定義)가 적용되지만, 소크라테스는 (밑감과 꼴로 된)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으뜸가는 ‘(어떤 것이) 있다는-것은-무엇-이었는가’(어떤 것의 본질)는 밑감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완성상태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것을 움직이는 으뜸가는 것’은 정의에서나 개수에서나 하나이다. 그리고 또한 늘 끊임없이 (그것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우주)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우주는 오로지 하나뿐이다.}”88)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의 통일성을 주장하지만 그 근거는 유물론적이지 않다. 엥겔스는 세계의 통일성은 그 물질성에 있다고 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와 달리 으뜸가는 어떤 것의 본질(있다는-것은-무엇-이었는가)은 밑감, 즉, 물질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실상 신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에 의해 통일성이 담보되는 것이고 그에 따라 우주는 하나라는 것이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 우주가 물, 불, 흙, 공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 자연철학자들에 비해 본질 개념을 구사한다는 점에서는 앞서 있지만 그 본질 개념을 물질성이 아니라 신에게 귀착시켰다는 점에서는 후퇴했다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모순율을 초석으로 하는 형식논리학을 완성했지만 그의 관심은 단지 이론적인 것에만 머문 것은 아니었다. 그가 대제국을 이룬 알렉산더 왕의 스승이었듯이 그는 현실사회와 현실정치에 깊숙이 개입했다. 그가 쓴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정치학》은 윤리학과 정치학에 있어서 현대에까지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개념은 플라톤의 선(善 좋음)의 이데아를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또 좋음은 존재가 이야기되는 방식 만큼이나 많은 방식으로 이야기된다. … 그렇기에 좋음이 어떤 공통적이며 단일한 보편자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모든 범주에서 좋음이 이야기되지 않고 오직 하나의 범주에서만 이야기되어야 했을 테니까. ….”89) 이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선(善)의 이데아로써 사회의 윤리를 재단하는 길을 거부하고 현실사회에서 요청되는 실제적 윤리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길로 들어선다. “그렇다면 각각의 좋음은 무엇인가? 그것을 위해서 나머지 것들이 행해지는 것인가? 이것은 의술의 경우에는 건강이고, 병법의 경우에는 승리이며, 건축술에서는 집이고, 다른 경우에는 각기 다른 것으로, 모든 행위와 선택에 있어서 그 목적이다.”90), “그런데 우리는 그 자체로 추구되는 것이 다른 것 때문에 추구되는 것보다 더 완전하다고 말하며, 다른 것 때문에 선택되지 않는 것이 그 자체로도 선택되고 그것[다른 것] 때문에도 선택되는 것보다 더 완전하다고 말한다. … 그런데 무엇보다도 행복이 이렇게 단적으로 완전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행복을 언제나 그 자체 때문에 선택하지, 결코 다른 것 때문에 선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91)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실천적이다. 어떤 개념을 기준으로 윤리적인가 아닌가라는 접근을 거부하면서 부분적으로는 윤리에 있어서 유물론적인 접근을 보인다. “이렇게 정의로운 일을 행함으로써 우리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며, 절제 있는 일들을 행함으로써 절제 있는 사람이 되고, 용감한 일들을 행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92) 이러한 접근은 중요한데 왜냐하면 기존에 윤리에 대한 지배적인 인식은 사람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라는 식의 형이상학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지배적 통념은 정의로운 사람이니까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보고 따라서 정의로운 사람이 무엇인가를 배우고 연마해야 하는 것이 윤리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라는 것인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반대로 정의로운 일을 행함으로써 정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접근을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중요한데 윤리를 어떤 관념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로 자리매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을 으뜸가는 윤리로 친다. “그렇다면 세 가지 성향이 있는 셈인데, 그중 둘은 악덕으로서 하나는 지나침에 따른 악덕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모자람에 따른 악덕이다. 나머지 하나가 중용이라는 탁월성의 성향이다.”93) 중용은 아리스토텔레스만이 아니라 고대 동아시아에서도 널리 이야기된 것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용을 도출하는 방식은 관념적인 면이 있다. 지나치거나 모자라면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를 윤리의 으뜸가는 덕목으로 삼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변증법을 아리스토텔레스가 거부한 것과 중용은 일정한 관계가 있다. 내적 모순, 대립물의 투쟁을 원리적으로 거부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실천의 기준은 중용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용이 무엇인지,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는 선험적으로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올바름, 진리는 구체적이라는 변증법의 정신은 여기서 더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선험적인 중용이 아니라 진리의 구체성을 추구하는 것, 올바름을 때와 장소, 조건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변증법론자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정의(正義)에 대한 고전적인 분류를 하였다. 분배적 정의, 시정(是正)적 정의, 교환적 정의가 그것이다. 이들 분류를 고찰하기에 앞서 정의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규정을 살펴보자. “우리는 하나의 단일한 방식에 따라 정치적 공동체를 위해 행복과 행복의 부분들을 만들어 내고 그것들을 보전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라고 말한다.”94)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몇 가지 요소로 나뉠 수 있는데 단일한 방식이라는 것을 법률에 따라서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고, 정치적 공동체라는 것은 국가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국가에 요구되는 선과 복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정의라고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법률에 따라 공동체를 위한 행복의 요소들을 만들고 보전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대한 규정이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대한 규정은 오늘날까지 통용되는 정의에 대한 일반적 규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법률, 정치공동체라는 지배계급의 요소를 뺀다면 나머지 규정은 매우 추상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의라는 관념은 부정의한 현실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정의 개념에 내포되는 내용은 역사적 단계, 역사적 현실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 유물론적일 것이다. 분배적 정의를 살펴보면 분배적 정의는 분배에 있어서 정의의 문제인데 “정의로운 것은 일종의 비례적인 것이다.”95)라고 한다. 여기서 비례적임은 정의와 관련되는 요소, 주체들 간의 적절한 비례가 지켜지는 분배여야 한다는 것이다. 시정적 정의는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는 손해와 이익의 문제, 누구에게 상해를 입혔을 경우 보상의 문제 등을 올바로 처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바로잡는다는 의미에서 정의로운 것은 이익과 손해의 중간일 것이다.”96)라고 하여 시정적 정의에도 중용의 원칙을 적용한다. 교환적 정의는 화폐가 개입되는 거래관계에서의 올바름의 문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천적 지혜를 검토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또 실천적 지혜는 보편적인 것에만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것들까지도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실천적 지혜는 실천적인데, 실천 혹은 행위는 개별적인 것들에 관련하기 때문이다.”97), “나이가 젊더라도 기하학자나 수학자가 될 수 있고 또 그와 같은 일에 있어서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지만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과 같다는 사실이다. 그 까닭은 실천적 지혜가 개별적인 것들에도 관련하는데, 개별적인 것들은 경험으로부터 알려지고 젊은이들에게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98) 윤리의 문제로서 실천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과 개별의 관련 속에서 ‘지혜’를 말하고 있는데 보편의 인식, 법칙의 인식, 과학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실천에 있어 부족하고 개별적 조건, 개별적 대상까지도 포함하여 실천을 구상하고 행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타당하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완전한 행복은 관조적인 것이라고 자신의 윤리학을 결론짓고 있다. “이 관조적 활동만이 그 자체 때문에 사랑받는 것 같다. 관조적 활동으로부터는 관조한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 반면, 실천적 활동으로부터는 행위 자체 외의 무엇인가를 다소간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99) 그런데 관조는 여가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이는 지배계급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입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의 모든 개념은 당시 그리스에서 노예에게는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고 노예소유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보다 실천적인 입장, 당시 그리스에서 정치에 대한 견해로 넘어가 보자. 먼저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를 자연스런 것이라 파악한다. “이전 공동체들이 자연스런 것이라면 모든 국가도 자연스런 것이다. … 이로 미루어 보건대 국가는 자연의 산물이며,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물임이 분명하다.”100) 이러한 입장은 국가의 발생에 대한 과학적인 입장은 아니다. 인간의 본성에서 국가의 필연성을 끌어내는 것은 계급발생의 문제를 간과하는 것이고 또한 정치적 기관으로서 국가의 필연성이 계급대립에서 도출되어야 함을 놓치는 것이다. 국가를 인간의 본성에서 파악하면 국가를 도구로 한 지배계급의 착취와 억압, 수탈은 자연적인 것이 되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그는 노예를 생명 있는 도구이고 재산으로 파악하고 노예제도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라 본다. 남성의 여성 지배도 마찬가지로 자연스런 것으로 본다. “마찬가지로 수컷이 본성적으로 더 우월하고 암컷은 열등하다. 그래서 수컷이 지배하고 암컷은 지배받는다. 그리고 이런 원칙은 인간관계 전반에 적용되어야 한다.”101)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은 윤리가 인간 본성의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 발전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는 플라톤의 이상국가를 비판하는 것을 기초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전개한다. 그는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의 개념을 먼저 규정하는데 다음과 같다. “이제 시민의 개념이 분명해지기 시작한다. 의결권과 재판권에 참여할 권리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 나라의 시민인 것이다.”102) 여기서 시민은 노예와 여성, 외국인을 제외하고 또 평민 중에서 처지가 열악하여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은 제외하고 구성된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민 개념의 핵심은 해당 국가에서 정치적 권리를 가지는 자라 할 수 있다.

그의 《정치학》에서 주된 개념은 정체(政體)라 할 수 있다. 국가의 연속성과 동질성을 판별하는 기준으로서 그는 정체를 들고 있다. “국가는 공동체, 그것도 하나의 정체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공동체인 만큼, 정체가 바뀌어 다른 종류의 것이 되면 국가도 필연적으로 더 이상 같은 국가일 수 없다.”103) 그리고 그러한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정체란 여러 공직, 특히 모든 일에 최고 결정권을 가진 기구에 관한 국가의 편제이다.”104) 그러면서 어느 국가에서나 정부가 최고권력을 가지므로 정부가 실제로는 정체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정체가 나라에 따라 다양한 이유에 대해 “여러 정체가 존속하는 것은 모든 국가가 여러 부분과 상이한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105)고 파악하고 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국가 발생의 근거는 자연에서 찾았지만 정체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상이한 계층’에서, 즉, 계급구성의 문제에서 근거를 찾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체의 종류를 왕정, 귀족정, 입헌정체로 나누고 이것이 올바른 정체의 종류이며 이것들이 왜곡될 때 참주정, 과두정, 민주정체가 나타난다고 했다. 이러한 입장은 전형적인 지배계급의 입장에선 정체 분류라 할 수 있는데 그는 법의 지배를 주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법과 마주치게 된다. 공직을 번갈아 맡는 것과 같은 제도는 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들 가운데 한 명이 지배하는 것보다는 법이 지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106) 이것은 지배계급의 자의적인 지배를 비판하면서 법치를 주장하는 것인데 당시로서는 일정한 진보성을 띤다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의 지배를 정체의 문제와 연관지어 다음과 같이 고찰하고 있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러하듯, 정체에 법을 맞춰야지 법에 정체를 맞춰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정체는 공직들이 어떻게 배분되며 국가의 최고권력은 누가 가지며 각각의 공동체가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국가의 제도인 반면, 법은 정체의 이런 규정과는 달리 치자들이 거기에 따라 통치하고 위반자를 감시하고 제지하는 규칙들이기 때문이다.”107) 이는 정치에서 본질적인 것은 권력이며 법은 그러한 권력이 행사되는 규칙인 것임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정확히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철학, 논리학, 윤리학, 정치학, 자연학 등등 모든 방면에 걸쳐 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의 그리스의 학문과 철학, 사상을 집대성한 인물이라 할 수 있고 중세유럽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이 종교와 결합되어 스콜라 철학이 되기도 할 정도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사에서 위치를 보면 모순율을 핵으로 하는 형식논리학을 정립하여 철학과 과학이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자연학과 인식론에서 유물론적 입장에 가까웠고 변증법의 전제가 되는 범주들을 정립했으나 변증법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한 측면도 있다고 할 수 있다.

4. 에피쿠로스-루크레티우스에 의한 고대 원자론의 계승, 발전

데모크리토스에 의해 정립된 고대 원자론은 세계를 원자라는 물질의 자기운동으로 설명하여 고대유물론을 공고한 기초에 놓았다. 이러한 원자론은 지속적으로 이어졌는데 기원전 3세기 이후의 헬레니즘 시대에 에피쿠로스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고 로마의 루크레티우스에게까지 이어졌다.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은 세계를 원자와 공허로 구성하는 데모크리토스의 철학을 이어받은 것이었으나 일정한 질적인 차이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원자의 운동에서 옆으로 비껴나가는 원자의 자발적 일탈을 상정한 점, 데모크리토스와 달리 우연성을 승인한 점 등이 그러하다. 원자의 자발적 일탈은 맑스에 의해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철학의 결정적 차이로 설명되기도 했다.

에피쿠로스는 원자의 운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원자들은 영원히 운동한다. 원자들 중 어떤 것은 아래로 곧장 떨어지고 어떤 것들은 비스듬히 떨어지고 다른 것들은 충돌해서 위로 튕긴다. 그리고 튕겨나가는 것들 중 어떤 것은 서로 멀리 떨어지게 되는 반면, 어떤 것들은 다른 원자들과 엉키거나 주위를 둘러싼 원자들에 갇혀서, 한 곳에 정지해서 진동한다.”108) 여기서 ‘어떤 것들은 비스듬히 떨어지고’라는 부분이 편위라고 불리는 원자의 자발적 일탈을 가리키는 부분이다. 이러한 편위의 의미에 대해 맑스는 다음과 같이 파악하고 있다. “우리는 직선으로부터 원자의 편위가 초래한 결과를 고려하기 이전에 오늘날까지 완전히 간과되어 온 지극히 중요한 계기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직선으로부터의 원자의 편위는 에피쿠로스 자연학에서 우발적으로 생겨난 규정이 아니다. 그것이 표현하는 법칙은 오히려 에피쿠로스 철학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말할 것도 없이 자명한 것이지만, 이 법칙 발현의 규정성은 그 법칙이 적용되는 영역에 의존하여 있다. … 루크레티우스가 원자들이 편위를 하지 않는다면 어떤 충돌이나 마주침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세계는 결코 창조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옳았다. 왜냐하면 원자들은 자기 자신의 유일한 대상이고 그들 자신과만 관계하기 때문이다. 공간적으로 표현하자면 다른 것에 관계되어 있는 것과 동일한 원자의 어떤 상대적인 실존도 부정됨으로 해서 그것들[원자들]이 서로 마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상대적 실존은 우리가 보아 온 대로 원자들의 본원적 운동, 즉 직선으로 낙하하는 운동이다. 그래서 원자들은 직선으로부터 편위의 힘에 의해서만 만나게 된다. … 에피쿠로스에게는 원자개념의 실현이었던 것이 데모크리토스에게는 대조적으로 강제된 운동, 맹목적 필연성의 행위로 변형된다…”109) 이와 같이 맑스는 에피쿠로스가 원자의 운동에서 빗겨나가는 운동, 자발적 일탈을 상정함으로써 데모크리토스가 원자의 운동을 맹목적 필연성으로 설명했던 것과 달리 세계의 다양성과 변화를 포착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데모크리토스는 우연성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필연성의 결과로 파악하여 숙명론에 빠졌는데 에피쿠로스는 이와 달리 우연성을 승인하고 있다. “모든 것이 필연에 따라 생겨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자신의 주장(“모든 것이 필연에 따라 생겨난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논박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이론에 대한 부정도 필연적으로 생겨난다고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110) 모든 것이 필연적이라고 하면 위와 같은 논리적 모순에 처하게 됨을 들어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에피쿠로스는 원자의 운동에서 자발적 일탈을 승인하는 점, 우연성을 승인하는 점 등에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다.

에피쿠로스는 인식론에 있어서도 유물론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는 주어진 인생의 목적과 지각의 분명한 증거—우리는 우리의 추측을 지각의 분명한 증거에 비추어 보아야 하는데—를 곰곰이 따져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만사가 미결정성과 혼란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당신이 모든 감각에 대항해서 싸운다면, 당신은 감각이 틀렸다고 말할 기준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111), “또한 우리는 감각에 의지해서 모든 탐구를 진행해야 하며, 확증을 필요로 하는 것이나 불분명한 것을 판단할 증거를 가지려면, 전적으로 마음의 직접적 영상 포착과 다른 어떤 판단 기준의 직접적 포착에 의존해야 하며,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존재하는 느낌들에 의존해야 한다.”112) 이와 같이 에피쿠로스는 인식에 있어서 감각의 역할을 전적으로 승인하고 있고 ‘감각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의 어리석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관념론이 감각을 불신할 것을 조장하는 것에 대한 비판인데 과학적 인식론의 기초를 놓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후대에 쾌락주의로 불렸는데 이는 정확한 개념이 아니다. 에피쿠로스가 강조하는 쾌락의 의미는 속류적으로 이해되는 쾌락이 아니다. 에피쿠로스에게 있어 쾌락은 일차적으로 고통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우리가 쾌락의 부재로 인해 고통을 느낄 때에는 쾌락을 필요로 하지만,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면 더 이상 쾌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쾌락이 행복한 인생의 시작이자 끝이라 말한다.”113), “마음의 동요가 없음과 몸의 고통이 없음은 정적 쾌락이다. 하지만 즐거움과 환희는 운동을 동반한 실제적 쾌락이다.”114), “나는 맛의 즐거움, 사랑의 쾌락, 듣는 즐거움, 아름다운 모습을 보아서 생기는 즐거운 감정들을 모두 제외한다면, 선을 무엇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115), “우리가 우주의 본성이 무엇인지 모르고, 신화의 정당성을 의심한다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연학이 없다면, 우리는 순수한 쾌락을 얻을 수 없다.”116) 이와 같이 에피쿠로스는 마음의 동요없음과 몸의 고통없음을 중심으로 하면서 육체적 즐거움까지 포함하는 것을 쾌락이라 보고 있다. 이러한 에피쿠로스의 쾌락에 대한 개념은 무감동을 강조하고 금욕으로 나아갔던 스토아 철학과 대비되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지금은 그의 저작이 거의 전해지지 않을 정도지만 당시에는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로마시대의 루크레티우스는 에피쿠로스를 매우 높이 평가하면서 그의 원자론을 내용으로 철학시를 썼다.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라는 그의 철학시는 고대원자론에 대해서 오늘날까지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거의 유일한 것이다.

루크레티우스의 철학시는 ‘아무것도 무에서 생겨나지 않음’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므로 정신의 이 두려움과 어둠을, 태양의 빛살과 낮의 빛나는 창들이 아니라, 자연의 모습과 이치가 떨쳐버려야 한다. 그것의 첫 원리는 다음과 같은 것에서 우리를 위한 시작점을 얻어야 한다. 즉 그 어떤 것도 신들의 뜻에 의해 무(無)로부터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이다.”117) 이것은 신에 의한 세계창조를 부정하는 것이고 세계에 대한 유물론적 인식의 틀을 놓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이것들이 무로부터 만들어졌다면, 모든 것들로부터 모든 종(種)이 생겨날 수 있었을 것이고, 어떤 것도 씨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118) 이는 소박한 형태로 세계의 창조불가능성을 말하는 것인데 씨앗의 존재를 들어 무로부터의 생성을 부정하고 있다. 이어서 ‘아무것도 무로 돌아가지 않음’을 말한다. “여기에 다음 것이 덧붙여진다. 즉 자연은 각각의 것들을 다시금 그 자신의 알갱이로 해체한다는 것, 사물들을 결코 무(無)가 되도록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이.”119) 여기서 알갱이로 해체된다는 것은 원자로 분해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원자로 표현되는 물질의 불멸성을 말한다. “그러나 만일 그 시간과 지나가버린 세월에 그것들로부터 사물들의 이 총체가 재생되어 유지된 그런 것들이 있었다면, 그것들은 확실히 불멸의 본성을 부여받은 것들이다. 따라서 각각의 것들이 무로 돌려질 수는 없다.”120) ‘사물들의 이 총체’는 우주, 세계를 가리키는 것인데 그것을 유지하는 것 즉, 원자 혹은 물질은 ‘불멸의 본성’을 부여받았다고 명확히 표현하고 있다.

그는 세계, 자연을 원자와 공허의 구성으로 파악한다. “자연 전체는 그러므로, 그것이 자체적인 한에 있어서, 두 가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체들과 빈 공간이 있어서.”121) 이렇게 그는 물체와 빈 공간 즉, 원자와 공허가 세계, 자연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두 요소라고 파악한다. 그리고 주목되는 것은 시간과 물질과의 연관성, 통일성에 대한 접근인데 다음과 같다. “마찬가지로 시간도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바로 사물들로부터 그것의 감각이 유래한다. 세월 속에 무엇이 지나가버렸는지, 어떤 사물이 현재 남아 있는지, 또 어떤 것이 그 다음에 나올 것인지, 누구도 결코 시간을, 사물의 움직임과 고요한 정지에서 분리된 자체적인 것으로 지각하지 못함이 인정되어야 한다.”122) 이는 시간을 사물과의 연관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으로서 이러한 관점은 시간에 대한 유물론적인 접근인데 칸트가 시간을 인간 인식의 주관적 형식으로 파악한 것과 대비된다. 그는 우주와 공간의 무한함을 승인한다. 세계의 무한성은 지금도 현대의 철학과 과학의 쟁점이라 할 수 있는데 고대인이 세계의 무한성을 승인하는 근거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자, 그러면, 온 존재는 길의 어떤 방향으로도 한정되어 있지 않다. 만일 그랬다면 맨 가장자리를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 어떤 것도 가장자리를 가질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 너머에 한정짓는 것이(그 너머로는 도저히 우리의 감각의 본성이 그것을 따라갈 수 없는, 그런 점이 드러나 보이게끔) 있지 않는 한, 이제 우리는 존재의 총체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해야 하므로, 그것은 가장자리를 갖지 않으며, 그래서 끝과 한계가 없다.”123) 그는 해안가에서 창을 던지는 것을 비유로 들며 창이 무엇에 부딪쳐 튕겨지면 물질이 있는 것이고 계속 날아가면 공간이 있는 것이므로 그와 같이 우주는 한계를 갖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세계의 무한성에 대한 그의 주장은 이어지는데 원자와 빈 공간의 개념과 한계라는 개념의 통일이 흥미롭다. “나아가 자연은, 사물들의 총체가 스스로 자신에게 한계를 놓을 수 없도록 한다. 그것은, 물체는 빈 공간에 의해서, 그리고 빈 공간인 것은 다시금 물체에 의해서 한정되도록 강제한다. 이렇게 번갈음으로 해서 전체를 무한하게 만들면서, 혹은 최소한 이들 중 어느 한 쪽은, 혹시 다른 쪽이 한계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그 경우에라도 섞임 없는 본성으로써 한정 없이 펼쳐질 것이다.”124) 이는 물질 혹은 원자의 개념과 빈 공간, 공허라는 개념을 통일시켜 세계의 무한성을 구성하는 것인데 물체가 공허를 한정하고 공허가 물체를 한정하는 것의 연속이 무한한 세계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념은 직관의 수준이기는 하지만 가설로서는 일정한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루크레티우스는 에피쿠로스와 마찬가지로 원자의 자발적 일탈, 빗겨나가는 운동을 승인하는데 그 논거가 흥미롭다. “반대로 빈 허공은 그 어떤 부분에서도, 그 어떤 시점에도 사물을 떠받칠 수 없고, 그 본성이 추구하는 대로, 양보하기를 계속할 뿐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고요한 허공을 통하여, 같지 않은 무게를 지녔어도 똑같이 움직여 가야 한다. 그러므로 더 무거운 것들은 결코 위로부터 더 가벼운 것들에게로 떨어져 부딪힐 수 없고, 자체로서, 자연이 그것을 통해 일하는 저 운동을 다양하게 할 수 있는 타격을 만들지도 못한다. 그래서 거듭거듭 입자들이 약간 비껴나는 것이 필요하다.”125) 빈 공간의 성질은 계속 원자에 양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자의 비껴나가는 운동이 없으면 원자 간의 충돌과 결합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 점은 루크레티우스가 데모크리토스에 비한 에피쿠로스 원자론의 우위를 정확히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원자의 불멸성을 승인할 뿐만 아니라 운동의 불멸성 또한 승인한다. “시초의 몸체들은 이전 지나간 시대에도, 그들이 지금 처해 있는 것과 같은 운동 속에 있었으며, 이후에도 이것들은 항상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여질 것이다.”126) 이는 운동을 물질의 속성으로 파악하는 것에 기초하여 물질이 불멸이기 때문에 운동 또한 불멸이라고 파악하는 것이다. 데카르트 등 근대 철학과 과학에 의해 물질과 운동의 통일성이 정립되기 이전에 이 고대 원자론자는 물질과 운동의 통일성과 불멸성을 확고하게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유물론적 인식은 신에 대한 부정으로 나아간다. “그대가 이것을 잘 이해해서 붙들고 있다면, 자연은 보인다. 곧장 자유로운 것으로, 오만한 주인들 없이, 자체가 스스로 자기 뜻대로 신들 없이 모든 것을 행하는 것으로. 왜냐하면, 고요한 평화로써 평온한 세월과 잔잔한 삶을 보내는 신들의 신성한 가슴에 걸고 묻노니, 대체 누가 측량할 수 없는 것의 총체를 다스릴 수 있으며, 누가 손 안에 심연의 강력한 고삐를 통제력 있게 지닐 수 있으며, 누가 모든 하늘들을 균일하게 돌리고, 모든 땅들을 천상의 불들로써 열매 맺게 데우거나, 모든 장소에 모든 시간에 있을 수 있겠는가.”127) 자연은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 신들 없이 자기 뜻대로 즉, 자연 스스로 자기운동한다는 것을 소박하게 말하는데 이는 자연의 본성에 대한 인식에 기초하여 신이라는 것의 의미없음을 말하는 것인데 신학에 대한 비판의 본질을 잘 말해준다.

그는 인간 정신에 대해서도 육체로부터의 독립성을 부정한다. “창공에는 나무가, 깊은 바다엔 구름이 있을 수 없으며, 물고기들은 경작지에선 살 수 없고, 나무에는 혈액이, 돌에는 수액이 있을 수 없다. 어디서 각각의 것이 자라고 존재할 수 있는지는 정해져 있고, 배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정신의 본성은 육체 없이 혼자는 생겨날 수 없으며, 힘줄과 혈액으로부터 지금보다 멀리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다.”128) 이는 인간의 정신을 육체로부터 분리시키고 나아가 자립화시키는 관념론에 맞서 인간정신과 육체는 통일되어 있는 것임을 소박한 형태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루크레티우스의 원자론은 한편으로는 고대인의 자연에 대한 파악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는데 자연을 지배와 수탈의 대상으로 보는 현대인의 관점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루크레티우스의 자연관은 자연에 대한 치열한 과학적 탐구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 결과가 원자와 공허로 구성되는 자연이라는 관점이다. 그런 점에서 고대 원자론은 당시의 철학과 과학의 정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사과연>


1) 엥겔스, <원숭이의 인간화에 있어서 노동의 역할>, ≪자연변증법≫, 중원문화, p. 169-170.

2) 앞의 책, p. 171.

3)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편집, ≪세계철학사(1)≫, 중원문화, p. 50.

4) 앞의 책, p. 49.

5) 앞의 책, p. 59.

6) 앞의 책, p. 63.

7) 앞의 책, p. 74.

8) 앞의 책, p. 70-71.

9) 앞의 책, p. 75.

10) 앞의 책. p. 76.

11) 앞의 책, p. 80.

12) 앞의 책, p. 89.

13) 이병수, 우기동,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 돌베개, p. 17.

14)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철학의 탄생≫, 알마, p. 85.

15) 앞의 책, p. 89.

16) 앞의 책, p. 89.

17)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편, ≪세계철학사(1)≫, 중원문화, p. 129.

18) 앞의 책, p. 130.

19) ≪철학의 탄생≫, 알마, p. 101-102.

20) 앞의 책, p. 113.

21) 엥겔스, ≪자연변증법≫. 중원문화, p. 185.

22) ≪세계철학사(1)≫, 중원문화, p. 138.

23) 앞의 책, p. 132.

24) 앞의 책, p. 132.

25) ≪철학의 탄생≫, 알마, p. 264.

26) ≪세계철학사(1)≫, 중원문화, p. 133.

27) 앞의 책, p. 134.

28) 엥겔스, <반듀링론>,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박종철 출판사, p. 23.

29) ≪세계철학사(1)≫, 중원문화, p. 146.

30) 앞의 책, p. 147.

31) 앞의 책, p. 147.

32) 앞의 책, p. 148.

33) 앞의 책, p.149

34) 엥겔스, 자연변증법, 중원문화, p.174-175

35) 이병수·우기동,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 돌베개, p. 43-44.

36) 앞의 책, p. 44.

37) 레닌, ≪철학노트≫, 논장, p. 228.

38)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세계철학사(1)≫, 중원문화, p. 159.

39) 앞의 책, p. 162.

40) 앞의 책, p. 163.

41) 앞의 책, p. 165.

42) 앞의 책, p. 166-167.

43) 헤겔, ≪대논리학(1)≫, 벽호, p. 76.

44) 이병수, 우기동,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 돌베게, p. 49-50.

45) 앞의 책, p. 50.

46) 콘스탄틴, J.밤바카스, ≪철학의 탄생≫, 알마, p. 430-431.

47)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세계철학사(1)≫, 중원문화, p. 168.

48) 앞의 책, p. 170.

49) 앞의 책, p. 171.

50) 플라톤, ≪국가·政體≫, 서광사, p. 381.

51) 앞의 책, p. 406.

52) 앞의 책, p. 433-434.

53) 플라톤, ≪파이돈≫, 육문사, p. 254.

54) 앞의 책, p. 240.

55) 앞의 책, p. 231.

56) 앞의 책, p. 232.

57) 레닌, ≪철학노트≫, 논장, p. 55.

58) 플라톤, ≪국가·政體≫, 서광사, p. 365.

59) 앞의 책, p. 334.

60) 앞의 책, p. 288-289.

61) 맑스, ≪자본론1권(상)≫, 비봉출판사, 1993, p. 465.

62)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EjB, p. 83.

63)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89.

64)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90.

65)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337.

66)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548.

67)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71.

68)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351.

69)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42-43.

70)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114.

71)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285.

72)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496-497.

73)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54.

74)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185.

75)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406.

76)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398.

77)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475.

78)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500.

79)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509-510.

80)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475.

81) 아리스토텔레스, ≪범주들·명제에 관하여≫, EjB, p. 83.

82)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EjB, p. 195.

83)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161.

84)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177.

85)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189.

86)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402.

87)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425.

88)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525.

89)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도서출판 길, p. 22-23.

90)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26-27.

91)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27.

92)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52.

93)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72.

94)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162.

95)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169.

96)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172.

97)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216.

98)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218-219.

99)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370-371.

100)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숲, p. 20.

101)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29.

102)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134.

103)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139.

104)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148.

105)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203.

106)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189.

107)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책, p. 99.

108) 에피쿠로스, ≪쾌락≫, 문학과 지성사, p. 56-57.

109) 맑스,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 그린비, p. 77-81.

110) 에피쿠로스, ≪쾌락≫, 문학과 지성사, p. 29-30.

111) 에피쿠로스, 앞의 책, p. 18.

112) 에피쿠로스, 앞의 책, p. 53-54.

113) 에피쿠로스, 앞의 책, p. 54-46.

114) 에피쿠로스, 앞의 책, p. 36.

115) 에피쿠로스, 앞의 책, p. 40.

116) 에피쿠로스, 앞의 책, p. 16.

117)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 아카넷, p. 37.

118) 루크레티우스, 앞의 책, p. 38.

119) 루크레티우스, 앞의 책, p. 42.

120) 루크레티우스, 앞의 책, p. 43.

121) 루크레티우스, 앞의 책, p. 55-56.

122) 루크레티우스, 앞의 책, p. 59.

123) 루크레티우스, 앞의 책, p. 95.

124) 루크레티우스, 앞의 책, p. 99.

125) 루크레티우스, 앞의 책, p. 127.

126) 루크레티우스, 앞의 책, p. 131.

127) 루크레티우스, 앞의 책, p. 184.

128) 루크레티우스, 앞의 책, p.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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