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그리운 최상철 동지께

서신검열 민사소송 1심 재판 선고가 다가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지만 재판과정에서 교정당국의 부당한 서신검열을 확인했고 오랜 기간 이루어졌음이 입증되었으므로 의미 있는 재판결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행정소송에 이어 민사소송에까지 많은 도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최상철 동지 덕분에 많은 분들이 이번 소송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셨습니다. 6년전 혼자 외롭게 법정에서 싸워야 했던 저는 자신감을 되찾고 새로운 가능성과 전망을 찾는 시간이었습니다. 저에게 이번 재판은 반격의 전환점을 새운 뜻 깊은 기회였습니다.

천주교인권위와 상의해서 결정할 일이겠지만, 이번 재판의 항소심도 송상교변호사님과 계속 갔으면 합니다. 먼저 천주교인권위에서 항소심 변호사 선임 비용을 후원해 주실지 알아 보면 좋겠습니다. 분명히, 선고결과에 관계없이 법무부는 항소를 할 테고, 우리도 이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구체적인 일은 13일 선고결과를 보고 결정해야겠지만, 제가 직접 밖의 분들과 상의할 수 없는 입장이니 최상철 동지께서 1심 선고 이후 항소심 준비를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선고 이후 항소심 재판 준비를 의논하기 위해 2월에는 17일과 24일 전화예약을 합니다.

선고결과 우리가 승소하면 항소심 준비에 여유가 있지만, 만약 패소해서 우리가 항소를 해야 한다면, 긴장해서 재판 준비를 해야겠지요. 그런 부분에 차질이 없게끔 천주교인권위와 미리 의견을 나누셨으면 합니다.

오늘 인도에서 발행된 여러 권의 학술지를 받았습니다. 우리 연구소의 소중한 자산인데, 저에게 보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동안 저에게 보내주신 자료들은 잘 보관했다가 연구소에 반납할 것입니다. 또한 제가 소장하는 자료들도 공유할 것입니다. 오늘 자료들을 받는 순간 호기심과 연구의욕이 불타오릅니다. 벌써 관심 있는 주제가 눈에 들어와 읽고 있는 중입니다. 앞으로 몇날 며칠 이 자료들에 푹 빠져 지낼 것 같습니다.

인도 모디 정권이 들어서서 인도에서 큰 변화가 예상됩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인도학자들은 그래도 지조 있게 비판적인 연구와 글을 계속 쓰고 있네요. 이번 자료들을 통해 최근 인도의 고민과 내면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겠군요. 오랜 동안 감옥에 있다보니 인도연구자료들을 볼 수 없어 연구실력과 흐름 파악이 떨어질까 봐 걱정했는데, 우리 연구소의 도움으로 인도연구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가고 있습니다. 감옥생활로 인해 연구실적에 공백이 생기지 않게끔 더 노력할 것입니다.

≪정세와 노동≫ 1월호에 실린 “부르주아적 디플레이션 담론에 대하여”(채만수)와 “세계관과 변증법적 유물론(1)”(문영찬)을 보고 반가웠습니다. 채만수 소장님의 글은 경제공황을 은폐하고 있는 부르주아의 거짓을 이해하기 쉽게 밝혀주었습니다. 부르주아 주류담론의 한계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문영찬 동지의 글은 앞으로 기대가 됩니다.

반동의 시대에 시련에 굴하지 않고 당차게 이론의 무기를 벼리어 가며 싸우는 동지들의 열정과 헌신을 느낍니다.

나는 우리가 가는 길이 정당하고 정의의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병진 동지께

 

오랜 만에 답장드립니다. 여전히 제 이름으로 나가는 글이 공개되는 것에는 자신이 없습니다만, 법정에서 지속적으로 마주친 동지의 변치 않는 환한 미소에 조금이나마 용기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짧게라도 회신합니다. 네댓 명의 호송인에 둘러싸인 파란 수인의 복장의 동지를 볼 때마다, 포승과 두 겹으로 채워진 수갑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발뺌하고 거짓말하는 교도관 증인들에 대해 동지가 분노할 때는 저도 같은 기분이었으며 저들이 결국은 인정하고 또 거짓의 증거가 들어날 때는 통쾌한 반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2월 13일이면 1심 재판의 결과가 나옵니다. 감옥에서 자행되고 있는 서신검열의 부당함과 인권침해를 고발할 수 있는 판결을 기대합니다. 동지께서 글을 보시게 될 때면 이미 재판 결과가 나온 이후겠지만 승리를 기원합니다.

재판장에 나오신 부모님들 그리고 여동생들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힘드신 상황일 텐데 가족분들이 이렇게까지 지속적으로 함께해주시는 모습은 기적과도 같은 큰 변화입니다. 모두 동지께서 올곧게 한 길을 걸어오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힘겨웠던 과거의 기억이 오래도록 동지의 가슴에 상처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혼자 외롭게 법정에서 싸워야 했”다고 언급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제넘은 말씀이고 또 상당히 조심스러운 이야기입니다만 ‘혼자’라고 언급하면 자칫 또 다른 분께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동지께서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으로 처음 구속되셨을 때 여동생께서 변호사 선임하는 등등 정말 힘들게 조력을 하셨습니다. 여동생께서 그 때의 일을 말씀하셨을 때 당시에 느끼셨던 좌절감이 전해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집안에서 온갖 기대와 지원을 받았던 이병진 동지에 대한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는 것 같았습니다……. 동지와 상황은 많이 다르지만 저도 여동생이 있습니다…….

동지께서는 과거에도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동지와 함께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을 뿐입니다. 완강하고 굳건한 모습으로 싸워가신다면 더 많은 이들이 함께할 것입니다. 너무 외로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사람을 정치적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은 일종의 ‘운동권 직업병’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담당 송상교 변호사님은 이분의 정치적 성향을 논하기 이전에 대단히 소탈하시고 그러면서도 열정적인 분 같습니다. 판검사가 아니더라도 변호사만 되어도 문턱이 있는데 이렇게 격이 없이 사람을 대하는 변호사님도 흔치 않는 것 같습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쪽에 알아본 결과 재판 지원은 3심까지 지원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면 송변호사님이 3심까지 죽 담당하게 될 것이니 큰 걱정 안 하셔도 될 것입니다.

경황없이 바쁘시겠지만 지난번에 못쓰신 노동사회과학 원고를 4월초까지 보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동지의 학구열이 다시 불타오르고 있는 모습에 깊은 안도감과 흥분에 찬 기대를 느끼게 됩니다.

13일에 법정에서 뵙겠습니다.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함께 나아가겠습니다.

신경림의 시 “어둠 속에서”를 첨부합니다. 시라도 여름의 시를 보내는 것으로 감옥에서의 동지의 추위가 가실 수 있기를.

 

 

어둠 속에서

 

빗발 속에서 피비린내가 났다

바람 속에서도 곡소리가 들렸다

한여름인데도 거리는 새파랗게 얼어붙고

사람들은 문을 닫고 집 속에 숨어 떨었다

 

지나간 모든 죽음이 헛된 것이었을까

아이놈을 데리고 찾아간 산속

풀과 바위에는 아직도 그해의 핏자국이 보였다

한밤중에 원귀들은 일제히 깨어

통곡으로 어두운 골짜기를 뒤덮었으나

 

친구여 나는 무엇이 이렇게 두려운가

답답해서 아이놈을 깨워 오줌을 누이고

기껏 페르 라세즈 묘지의 마지막 총소리를

생각했다 허망한 그 최초의 정적을

 

보라 보라고 내 눈은 외쳐대고

들으라 들으라고 내 귀는 악을 썼지만

이 골짜기에 얽힌 사연을

안다는 것이 나는 부끄러웠다

 

험한 바위 설기에 친구를 묻고

흙 묻은 손을 비벼 털고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힘을 알았다 한

그 지나간 모든 죽음이 헛된 것이었을까

 

꽃잎에서도 이슬방울에서도

피의 통곡이 들리는 한여름밤

친구여 무엇이 나는 이렇게 두려운가

 

(1974년 창작과 비평)

신경림, ≪농무≫, 1985, 창작과 비평사, pp. 9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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