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이병진 동지 편지

 

 

 최상철 동지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날씨 만큼 세상살이도 점점 힘들어집니다. 감옥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루 식사 정량을 550g에서 390g으로 갑자기 줄였습니다. 예산이 부족해서랍니다. 내년부터는 수구보수 세력의 본색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낼 텐데, 얼마나 더 우리 사회가 퇴행하고 피비린내 나는 도살장이 될는지 제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제는 이북도 작정을 하고 벼르고 있습니다. 친미보수정권과 미국이 도발을 해오면 ‘조국통일전쟁’을 벌이겠다고 선포하고 있어요. 이남과 미군도 북을 통제하려는 군사작전계획을 스스럼없이 밝히고 있으므로 이러다가 정말 전면전이 벌어질까 봐 걱정입니다. 경제는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사이의 격차가 더 벌어져 불평등이 심각해졌고 안보는 전쟁을 걱정해야 할 만큼 불안해졌어요.

세상이 엉망진창으로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을 바꿀 동력은 미미하고 작아지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글 쓸 의욕도 사라지고 사색과 고민을 합니다. 고민을 해도 감옥 안에서 뾰족한 답을 얻을 수 없으므로 안타깝네요.

1940년대, 일제가 망하기 직전이었지만 그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은 무기력과 깊은 회의감에 빠져 일제에 투항하고 황국신민화에 앞장을 섰지요. 저는 그런 지식인들과 당시의 모습이 못마땅하고 그들 세대의 어리석음을 조롱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뭐가 다른가!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럽고 온갖 병들로 오염된 병든 땅이 되어버린 것 같군요.

이런 상황일수록, 신념을 굳게 갖고 전진해야겠지요. 진리의 방향으로 한 걸음씩 앞으로 가다보면 큰 대오를 이루어 모두 함께 나아가는 날이 올 것입니다. 눈앞의 이익과 이기심으로 가득찬 대중들을 보면 참 어리석고 한심하고 믿을 수 없게 보이지만 그런 대중을 교양하고 이끌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봅니다. 정치적으로 힘든 시기지만, 고난을 헤쳐 나가다 보면 길이 열리겠지요.

최상철 동지도 어느 정도 직감하고 계시겠지만, 남북관계가 회복불능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어요. 오늘 UN에서 북인권결의안이 상정되었는데 북은 이것을 ‘공격’으로 인식하여 강경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까지 적극 가세하는 형국이라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겠죠. 이런 불안정한 정세에 따른 국민들의 동요와 이탈을 막기 위해 박근혜 정권은 파쇼지배 체제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이런 국면을 전환할 방법이 없을까요? 백낙청 교수는 최근에 ‘교육과 시민의식 재고’ 밖에 방법이 없다는데 공허하게 들립니다. 정치조직이 뒷받침 되어야겠는데 국가보안법으로 틀어막고 있으니…. 모순이 심화되면 필연적으로 폭발할 테니 당분간 지켜보는 수밖에 달리 없네요.

11월 25일 재판 준비는 잘 되고 있습니다. 어제 송상교 변호사님이 오셔서 증인 신문을 의논하였습니다. 접견 시간 제한으로 변론 준비에 어려움이 많아요. 이것도 재판권을 방해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사사건건 그냥 넘어 가는 일이 없어요. 우리 사회는 온통 감시와 통제, 폭력 자체입니다. 자유롭지가 않습니다. 최대한 집중하여 좋은 재판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반가운 소식이 있습니다. 25일 재판에 아버지와 어머니도 법정에 오십니다. 법정에서 서로 인사 나눌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어제 부모님과 전화통화를 했는데 매우 적극적이세요. 석방모임을 비롯하여 여러 인권사회단체 활동가 선생님들과 가족 사이에 교류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번 기회에 가족들이 공개적으로 인사드리고 고마움을 전하게 되어 저 역시 기쁩니다.

혹시, 최동지가 그날 법원에 오시면 부모님이 최 동지를 못 알아 보셔도 먼저 인사하면 금방 알아보실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소개하였습니다. 권말선 기자와 변순영님도 법정에 오신다는 소식 받았어요. 하루 빨리 자유스럽게 만날 날 소망합니다.

지난 11월 11일에 찍는 사진 2장도 보냅니다. 한 장은 운동장 근처에서 찍은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점심을 먹을 때 찍은 것입니다. 석방모임 게시판에 올려주세요.

<사진설명>

① 운동장 근처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이 평소에 입고 지내는 차림입니다.

② 점심을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김치와 국, 밥, 반찬 2개에요. 늘 혼자 식사를 해서 쓸쓸하지만 씩씩하게 잘 지낸답니다.1)

11월 25일은 재판이 있어, 27일에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시죠? 논문과 번역글은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우리 건강하게 또 뵈요.

병진 올림

2014년 11월 19일

그리운 최상철 동지께

늘 똑같은 생활이 반복되는 교도소. 어제 오늘은 하얀 눈이 ‘펑펑’ 내립니다. 눈이 신기하게 느껴지네요. 이 좁은 교도소를 벗어나 눈 내리는 세상 밖을 자유롭게 거닐고 싶습니다.

오늘은 반가운 소식을 전합니다. <전북 평화와 인권연대>에서 저를 ‘인권 돋움상’ 수상자로 선정하였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비판하고 있는 노고에 대한 감사로 이 상을 받는답니다. 제가 한 일도 없는데, 이런 큰 상을 받게 되어 송구스럽고 부끄럽습니다.

저는 이 뜻 깊은 상을 최상철 동지와 우리 연구소 동지들과 함께 받고 싶습니다. 우리 연구소 동지들이야말로 국가보안법의 칼날이 서슬 퍼렇게 살아 있는 가운데 사상의 자유를 위해서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동지들의 열정과 용기 덕분에, 저 역시 감옥에서 신념을 갖고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소중한 상을 받게 됩니다.

시상식에는 제 대신 부모님께 참석을 부탁드렸고 최상철 동지께도 수상 소식을 알려드려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수상식 일정은 평화인권연대에서 석방모임의 최상철 동지께도 알려주겠답니다.

최 동지와 부모님과의 만남도 있었고 조금씩 공감대가 생기는 것 같아 기쁩니다. 이번 수상식 기회에 저의 고향집도 가보시고 책관리 문제도 구체적인 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19일 재판에도 출석할 것입니다. 전화는 23일 드리겠습니다.

그럼 또 연락드리지요.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병진 드림

2014년 12월 3일

[편집자주: 전주 교도소의 서신검열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12월 4일자 소인이 찍힌 이 편지 역시 겉봉을 칼로 뜯어내고 풀로 재봉합한 흔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전에는 10분 이상 시간을 충분히 주었던 전화 시간도 재판을 비롯한 항의의 움직임이 구체화되자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10월에는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전화가 끊기기도 하였고 핵심적인 전달사항만을 교환하면 거의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기 힘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전주교도소와 교정당국의 서신검열과 인권유린에 맞서 끝까지 싸우고 이겨내야 할 것 같습니다.

편지 본문 내용 중 ‘인권 돋움상’ 수상 내용은 이병진 동지의 편지 이전에 이미 <전북 평화와 인권연대> 채민 동지로부터 전화로 소식을 먼저 전해 들었습니다. 시상식이 12월 11일에 있고 옥중수상이 불가하기에 대신 받을 수 없겠는지 의사를 타진해 오셨는데 일정상 불가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이병진 동지 부모님께서 운동 단체들의 활동에 대해 회의적이시라는 말씀을 전해 들었습니다만, 11월 25일 재판장에서 뵙고 말씀을 나눈 부모님은 여느 부모님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특히 단지 방북을 해서 실정법을 어겼을 뿐인데 간첩으로 8년이나 복역하는 것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씀을 아버님께서 여러 번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추후 시간을 잡아 대전 부모님 댁에 들러 인사드릴 예정입니다. (최상철)]

그리운 최상철 동지께

날씨가 춥습니다. 공안 통치의 칼바람이 휘몰아쳐서 더욱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추운 겨울도 반드시 지나 따뜻한 봄날이 오듯이 꽁꽁 얼어붙은 민주주의에도 다시 봄이 오리라 생각해요. 그렇게 다음을 다잡고 오늘 하루도 치열하게 보냅니다.

최상철 동지의 근황은 어떠신지요? 별 일 없으신 거죠? 천주교의 박창신 원로 신부님의 시국미사 강론조차 못마땅하게 여겨 국가보안법 올가미를 씌우는 보수 지배세력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파쇼독재시대가 부활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공안몰이 통치에 광분하는 것을 보면, 저들 스스로 정권의 정통성에 자신이 없고 불안해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거라 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통령 선거 부정의 증거들이 밝혀질 테고 박근혜 정권의 더럽고 추악한 실체는 노골적으로 보일 테지요.

제가 보기에 박근혜 정권의 위기는 벌써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누구보다도 ‘신뢰받는 정치인’을 강조하던 약속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을 헌신짝 버리듯 버렸지 않습니까. 저는 박근혜 정권이 최소한 남북관계는 제자리로 세워 놓을 거라는 기대를 했는데, 최상철 동지도 보다시피 더욱 더 대결로 악화되고 있어요. 노동계급에 대한 탄압도 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어느 한 부분 가리지 않고 모든 부분에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외부 세계와 격리된 감옥에서조차 이런 갈등의 파열음을 느낄 정도라면 지금 밖의 사정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아요.

오죽하면, 어느 대학생이 “안녕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온 국민이 “안녕하지 않다!”며 이야기를 하고 그런 소식이 1면 머릿기사로 보도 되었겠습니까. 정말 심각하고 진지하게 우리의 현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망가지고 활력을 빼앗긴 것은 보수 지배 세력의 책임이 큽니다. 민주주의 역동성과 자기 정화 기능을 퇴행시켰고 지배에 순응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저 같은 사례만 보더라도 해외에서 북측인사를 만났다는 점을 꼬투리 잡아서 “간첩”으로 조작했고 그 사실을 보수언론을 통해 부풀리고 확대재생산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고 정치에 이용하는 세력이 보수 지배세력입니다. 급기야, 현역 국회의원의 내란음모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종북 이념에 스스로 갇혀 ‘옴짝달싹’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나는 문영찬 동지가 ≪정세와 노동≫11월호에서 지적했듯이 “민주주의 후퇴에 대해 반대하고 저항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주장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회주의가 만연한 자유주의 세력과 개량주의 갖고는 현재의 위기와 혼란을 헤쳐 가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노동자, 민중의 관점에서 싸우며, “과학적이고 혁명적인 전술을 세워가고 실천 속에서 과학을 벼려”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합니다.

새해에는 지금의 정세에서 지배계급의 본질을 깨달은 “노동자 민중이 대오를 강화”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런 역사 발전의 흐름이 정의에 맞는 것이고 또 그렇게 역사는 전진할 거라 확신합니다.

다음주 (12월 23)에 첫 항소심 재판이 있습니다. 변호인 선임부터 여러 가지 일들을 도와주시는 최상철 동지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그런 응원과 배려에 더욱 힘을 내어 항소심 재판도 승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재판 다음날인 12월 24일 전화 예약을 신청하였습니다. 재판 상황은 그때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최상철 동지께서도 건강 잘 돌보세요. 또 뵙겠습니다.

병진 올림

2013년 12월 17일


1) 편집자주: 보내주신 사진은 연구소 이규환 회원이 깨끗하게 스캔해주셨다. 이병진 동지 요청대로 <양심수 정치학자 이병진 석방추진 모임 카페>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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