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우리가 남이가”

안재호 | 회원

 

 

“우리가 남이가?!” ― 이는, 주지하는 바이지만, 애초 1992년 말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투표를 코앞에 두고, 현 청와대 비서실장인 당시 ‘전 법무장관’ 김기춘이 주도한 저 유명한 초원복국집 사건에서 그 신통력을 과시한 지역감정 자극용 정치주문(呪文)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주지하는 바이지만, 금년 봄엔 이 정치주문이 조금은 생뚱맞게도 일종의 협박용 주문으로 등장하여 다시 한 번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다름 아니라, 세월호 학살의 진상을 왜곡ㆍ은폐하기 위해 정부와 언론이 대대적으로 벌인 유병언 몰이소동에서, 일명 구원파인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들이 그 근거지 금수원 입구에, 이 시대의 최막강 권력인 바로 그 김기춘을 겨냥하여 내건 현수막이 그것인데, 용처착오(用處錯誤)인지라 역시 신통력은 없었다. 다만, 김기춘 혹은 이 정권과 유병언 혹은 구원파 사이에 모종의 진하디 진한 유착관계ㆍ이해관계가 있나 보구나 하는 진하디 진한 인상을 널리 대중에게 심어주었을 뿐!

그러나 “우리가 남이가?!” ― 이 정치주문은 역시 예사 주문이 아님을, 구태여 소리 내어 외우지 않더라도 그 신통력이 하늘을 찌르는 정치주문임을, 아니 그것은 이 시대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현실임을, 지금 진행 중인 세월호 학살 진상 왜곡ㆍ은폐극은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여ㆍ야 간의 ‘세월호 학살 진상 은폐 특별법’ 협상과 그 합의를 통해서!

그렇지 아니한가? 때로는 권력을 두고 꽤나 치열하게 싸우기도 하는 저들 여ㆍ야 두 정당이 사실은 ‘남이 아니라’(!) 이 시대 이 사회의 지배체제의 유지ㆍ온존ㆍ강화에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진 운명공동체, 한통속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 천인공노할 학살극 앞에서 저 진상 은폐법을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라고 공히 강변하고 나설 수 있겠는가? 그것도 유가족과 수백만 사람들의 반대, 비판, 빗발치는 비난을 무릅쓰고!

 

그렇다. 이 나라 정치의 여ㆍ야 두 지배정당, 대중을 기만하고 기만하기 위해 수도 없이 이름을 바꿔오다가 지금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이름을 가진 저 두 정당은 애초 뿌리부터 한통속이었고, 지금도 한통속이다. 일제(日帝) 부역 지주들과 미제 부역 자본가들, 그리고 그들에 의해 고용된 정치모리배들과 정치어릿광대들이었고, 그 후예ㆍ후계자들이다. 마치 감출 수라도 있는 듯이 저들이 반공법ㆍ국가보안법을 무기로 사상ㆍ언론ㆍ학문을 억압ㆍ통제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자신들의 그러한 이력과 정체, 그리고 저질러온 죄악을 감추기 위해서이다. 역사교과서의 서술에 그토록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물론 자신들의 바로 그 이력과 정체, 죄악을 숨기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저들은 한통속이긴 하지만 결코 우애 좋은 형제일 수는 없다. 노략품ㆍ전리품의 분배를 둘러싼 투쟁이 끊임없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는 사회, 그러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저들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이합집산, 종파투쟁이 벌어지는데, 한통속임을 잊고 그 종파투쟁이 지나치게 격해지면 어떤 사태가 발생하겠는가? 대(對) 노동자ㆍ농민 공동전선에 자칫 커다란 파열구가 생길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따라서 저들은, 한편에서는 자신들의 이력ㆍ정체ㆍ죄악을 은폐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외적으로는 한통속의 형제애를 과시하며 내적으로는 때론 은밀히 때론 드러내놓고 지배계급감정을 자극하는 정치주문을 끊임없이 되뇌어야 한다. “우리가 남이가”를 어떤 음조, 어떤 가락으로든 끊임없이 되뇌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온갖 음조ㆍ가락의 “우리가 남이가”를 듣게 되는데, 여기에서는 ‘진보’ ≪한겨레≫(2014. 9. 26.)가 “특별기고”로 분류하여 싣고 있는 필시 ‘진보’ 언론인 남재희의 “박권상씨와 여야 정치인 상설 모임” 타령을 대략 감상해보자.

그의 타령은 이렇게 시작한다.

 

해방 후 교육을 받은 첫 세대 언론인 가운데 뚜렷한 인물로 천관우, 송건호, 박권상 씨가 떠오른다. 그 가운데 박 씨는 미국과 영국에 오래 있었기에 대단히 국제화된 언론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1주기 추모문집을 준비하는 가운데, 이제까지 세상에 밝혀지지 않았던 ‘여야 정치인 상설 간담회’가 떠올라 소개할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우선 서곡에 등장하는 세 인물에 대한 소개가 필요할 터인데, 박권상 씨에 대해서야 타령 자체가 소개하고 있으니 생략하고, 송건호 씨는 적어도 파쑈 권력과는 타협하지 않은 민주언론인이다. 그런데 천관우는? 한때 “첫 세대 언론인 가운데 뚜렷한 인물”의 하나였는지는 몰라도 전두환 정권에 부역한 인물이며, 따라서 이 타령의 내용에 딱 어울리는 인물이다. 다만, 아쉽게도 서곡에 딱 한번 등장하고 말지만.

아무튼 필시 ‘진보’ 언론인 남재희의 ‘진보’ ≪한겨레≫ 지상(紙上) 타령은 이렇게 이어진다.

 

박권상 씨가 주재했던 간담회에는 그 말고는 모두가 현역 국회의원인 다음과 같은 인사가 참여하였다. 김원기(나중에 국회의장), 김용환(전 재무부 장관), 남재희(나중에 노동부 장관), 박관용(나중에 국회의장), 이종찬(민정당 원내총무를 오래 했고 나중에 국정원장), 조세형(김대중 당의 당수권한대행을 했고 나중에 주일대사), 조순승(미주리대학 교수 출신), 황병태(나중에 주중대사), 아홉 명의 고정 멤버에 김광일(나중에 청와대 비서실장), 김근태(나중에 보사부 장관) 의원과 원외인 진보정객 장기표 씨가 몇 번 초청되어 참석하였다.

멤버는 박권상 씨가 짠 것으로 정당별로는 남재희, 이종찬이 여당, 김원기, 박관용, 조세형, 조순승, 황병태가 야당, 김용환이 제이피(JP)의 제3당인데 3당 합당으로 박관용, 황병태, 김용환이 여당에 합류한다.

 

면면을 주목하라! 다시 강조하지만, 면면을 주목하라! 바로 이 나라, 이 사회의 여ㆍ야 지배정당들이 ‘남이 아닌’ 한통속임을 ‘상설 간담회’라는 이름으로 생생히 증언하고 있는 저 면면들을!

참고로, 저 타령 속의 “여당”은 전두환ㆍ노태우의 민주정의당(민정당)이고, “야당”은 김영삼, 김대중이 주도하던 정당들이다. 그리고 이 ‘상설 간담회’는 “1989년”부터 “김대중 정권 초기까지 7년쯤”, 그러니까 꽤 장기간 지속되는데, “3당 합당”(1990. 1. 22.) 이후가 되면, “여당”은 민정당과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한 민주자유당(민자당)이고, 야당은 김대중의 당이다.

“정당별로는 남재희, 이종찬이 여당” 할 때의 남재희는, 혹시 혼란스러워 할 독자가 있을지 몰라 하는 소리지만, ‘진보’ ≪한겨레≫가 필시 ‘진보적’ 언론인으로 포장하여 그의 글들을 “특별기고”로 연재하고 있는 바로 그 남재희다. 그런데 남재희 그는 “여당”, 즉 박정희의 유신 치하 민주공화당(공화당)이나 전두환ㆍ노태우의 민정당, ‘3당 합당’ 후의 민자당에서 국회의원만 역임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바로 그 “여당”의 정책위원회 의장을 지냈고, 그 정권의 노동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1980년 전두환ㆍ노태우 군부 쿠데타 권력의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 입법의원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런 극우적 이력의 인물이 ‘진보’ ≪한겨레≫에 의해서 마치 진보적 언론인인 것처럼 포장되어 그의 “특별기고”가 버젓이 연재되고 있다. ‘진보’ ≪한겨레≫ 역시 저들 지배집단과 ‘남이 아닌’ 한통속인지 아닌지의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돌리고 싶은데, 아무튼 이것이 이 나라, 이 사회의 ‘진보적’ 언론, ‘진보적’ 지식인들의 모습의 일면인 것은 분명하다.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저들 여ㆍ야의 정치거물들이 움직이는 데에는 당연히 거금이 든다. 그래서 그 거금을 어디서 조달했으며 어떻게 놀았는가를 들여다보면 이렇다.

 

박권상 씨는 권력에 핍박당해 해직기자로 오랫동안 유랑을 하며 고생을 하다가 1989년 동아그룹의 차남 최원영 씨와 손을 잡고 ≪시사저널≫을 창간하게 된다. 그런데 최 씨가 의욕적으로 재정지원을 하여 빌리 브란트, 자크 시라크, 스티븐 호킹 박사 등 국제적 명사들도 초청하고, 정치인들 모임도 뒷받침한 것이다.

처음 몇 년은 매달 고급호텔에서 모임을 가졌다. 최 씨가 직접 참석하기도 하였다. 3, 4년쯤 후 최 씨의 지원이 끊긴 다음은 멤버들 가운데 스폰서가 생겨 약간 비용절감을 하여 모였다. 속초와 광양 등 지방에 가서 숙박을 하며 세미나도 하였다. 모임은 김대중 정권 초기까지 7년쯤 계속된 것 같다. 국정원장이던 이종찬 씨가 스폰서하기도 하였으며 국회의장이 된 김원기 씨가 의장 공관에서 열기도 하였다.

 

재벌공화국답게 역시 재벌 ― 비록 지금은 몰락한 동아그룹 ― 이 “의욕적으로 재정지원을” 한다. 그리하여 “처음 몇 년은 매달 고급호텔에서 모임을” 갖는다. 뿐만이 아니다. 선진 부르주아 국가의 유명 퇴물 정치인들, “국제적 명사들”의 거마비가 얼마나 어마어마한가는 가끔 세계적 화제가 되기도 하는데, “빌리 브란트, 자크 시라크, 스티븐 호킹 박사 등 국제적 명사들도 초청”하기도 하고, 다른 “정치인들 모임도 뒷받침”한다. 재벌의 ‘공개적’ 지원이 끊겼다고 해서 그 호화로움과 재정 규모가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3, 4년쯤 후 최 씨의 지원이 끊긴 다음은 멤버들 가운데 스폰서가 생겨 약간 비용절감을 하여 모였다”고, 즉 “약간 비용절감을 하여 모였다”고 씌어 있지 않은가?

그런데 타령의 위 인용 속에는 특히 결코 소홀히 보고 넘길 수 없는 대목이 들어 있다. 바로 “국정원장이던 이종찬 씨…”라는 대목!

이종찬 씨! 그는 누구인가? 1980년 전두환ㆍ노태우 군사 쿠데타 정권에서는 국보위 입법의원이다가 민정당 창당에 참여하여 국회의원을 하면서 당 운영위원장, 원내총무, 사무총장 등의 핵심요직을 거쳤고, ‘3당 합당’ 후에는 민자당 당무위원을 거쳐 1992년 대선에서는 민자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까지 나섰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이 당선되자, 즉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자 이번에는 교체되는 정권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거쳐 김대중 정권 초대 안기부장,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꾼 후에는 초대 국정원장을 지낸다. 순진한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권력을 두고 죽을 둥 살 둥 싸우는 두 당, 그 모두에서 핵심요직 중에서도 핵심요직을 거친다! 얼마나 근사하게 “우리가 남이가? 한통속이지!”를 보여주고 있는가?

그러면, 이 “여야 정치인 상설 간담회”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남재희 그는 우선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야 정치인들의 모임이니 현안의 모든 문제가 자유로이 논의되었다. 그런데 정국에 난제가 있을 때에도 그 모임에서는 신통하게도 대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모두 수준이 있고 온건한 인물들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거기에서는 “현안의 모든 문제가 자유로이 논의되었다”고, 모임의 성격과 목적상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도 확인해준다. 그러고는 “그런데 정국에 난제가 있을 때에도 그 모임에서는 신통하게도 대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며, 그 이유는 “모두 수준이 있고 온건한 인물들이기에 그랬을 것”이란다.

그런데 “정국에 난제가 있을 때”? ― 도대체 어떤 때일까?

“정국에 난제가 있을 때”라고 구렁이 담 넘듯 표현된 그때는 분명 이런저런 형태의 계급투쟁이 심상치 않게 벌어지던 때들이다. 주지하다시피, 그 ‘간담회’가 존속되던 1989년 이후 약 7년간, 그러니까 노태우 정권에서부터 김대중 정권 초기까지는 그러한 계급투쟁이 여느 때 못지않게 심상치 않게, 그리고 자주 벌어지던 때이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때에(도) 그 모임에서는 신통하게도 대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역시 모임의 성격과 목적상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도 확인해주고 있다. 그러면서 그 “공감대가 형성”된 이유를 모임 참석자들 “모두 수준이 있고 온건한 인물들이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투쟁에 나선 노동자ㆍ민중은 물론 그러한 투쟁을 계기로 지배계급 내부에서 돌출되는 이견분자들을 도매금으로 ‘모두 수준이 없고 과격한 인물들’로 몰아세운다.

비약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혹 있을지 몰라 참고로 말하자면, 내가 거듭해서 “모임의 성격과 목적상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도 확인해주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문제의 ‘간담회’가 본래 당연히 “현안의 모든 문제”를 “자유로이 논의”하기 위한 것이고, “정국에 난제가 있을 때”에 지배계급 내부의 “공감대”를 “형성”, 아니 강화하기 위한 것이며, 그리하여 대(對) 노동자ㆍ민중 전선을 강화하여 지배계급의 이익을 유지ㆍ강화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야말로 공사가 다망하실 기라성 같은 거물들께서 굳이 ‘간담회’랍시고 정기적으로 모일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한가로이 한담이나 하자고 모이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그런데 노회한 남재희 씨는 그 ‘간담회’가 수행한 역할에 대하여 이렇게 겸손을 떤다. 아니, 적어도 형식상 역시 당연한 사실을 이렇게 눙쳐 말한다.

 

그렇다고 그 모임에서의 대체적인 의견 일치가 현실정치에 그대로 옮겨져 이행된 것은 아니다. 그런 구속력 있는 기구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아무 거리낌이 없이 담소하는 모임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각자가 알아서 각각의 정당 안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짐작한다.

 

우선, “어디까지나 아무 거리낌이 없이 담소하는 모임”? ― 여기에서도 우린 당연히 물어야 한다. 그 모임은 분명 형식상 서로 당을 달리하고, 따라서 형식상 서로 다투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이, 실제로는 ‘남이 아닌’ 한통속이 아니고서도, 과연 “아무 거리낌이 없이 담소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다음에, “각자가 알아서 각각의 정당 안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짐작한다”? ― 여기에서는 두 가지를 상기해야 한다. 첫째로는 그 ‘상설 간담회’ 참석자들의 면면이 당시 여ㆍ야의, 한국 정치의 핵심적 거물들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둘째로는 그 거물들 “각자가 알아서 각각의 정당 안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짐작한다”고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거물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 즉 자신의 정당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여 “그 모임에서의 대체적인 의견 일치”를 “현실정치에 그대로 옮겨” “이행”했다고 실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이 역시 그 모임의 성격과 목적상 당연하게도 어찌 남재희 씨만 그랬겠는가?

결국 여ㆍ야가 모두 ‘남이 아닌’ 한통속임을 각자가 “영향력을 발휘”하여 “현실정치에 그대로 옮겨” “이행”했음을 우리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남재희 씨는 이렇게 얘기한다. ― “그 간담회는 틀림없이 우리의 현실정치에”, 즉 이 사회 이 나라의 지배질서ㆍ지배체제를 유지ㆍ강화하고 지배계급의 이해를 유지ㆍ증대하는 데에 “알게 모르게 좋은 기여를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고!

그러면 지금은 어떨까? 역시 남재희 씨의 얘기를 들어보면,

 

요즘도 그런 모임이 있을 것이다. 내놓고 선전하지 않아서 그렇지 서로가 알음알음 모일 것으로 본다.

 

결국 비록 자신은 이제 늙어서 참여하고 있지 않지만, “내놓고 선전하지 않아서 그렇지” “요즘도 그런 모임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리하여 요즘의 ‘세월호 학살 진상규명 투쟁’ 정국처럼 “정국에 난제가 있을 때”에 ‘남이 아닌’ 한통속의 ‘공감대’를 형성ㆍ강화하면서 “알게 모르게” “현실정치”에 “좋은 기여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런 여야 간의 비공식 모임이 많았으면 싶”고, “그런 것들이 여야관계를 원만하게 성숙시키는 데”, 즉 ‘남이 아닌’ 한통속임을 확인하고 다지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고, 우리 정치의 격을 높이는 데도”, 즉 대(對) 노동자ㆍ민중 전선을 강화하는 데에도 “보탬이 될 줄 안다”는 자신의 소망을 보태서. 역시 그로서야 너무나도 당연할 사실과 소망의 읊조림이다.

 

그건 그렇고, 이제 여기에서는 우리 사회의 조금은 다른(?) 문제,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 이 나라의 근본적 성격과 관련된 문제,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좌파활동가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상당한 다수는 한사코 부인하고 있는 사실을 남재희 씨의 글을 통해서, 그가 인용하는 박권상 씨의 글을 통해서 짚고 넘어가자.

남재희 씨는 쓰고 있다.

 

이번에 박권상씨의 글들을 새삼 살펴보면서 그는 그동안의 ‘미국 편향’과 보수 성향 인상과는 달리 의외로 자주성을 강조하고 개혁적인 인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언론계의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여길 글들이 많다.(강조는 인용자)

…그는 대단한 미국통이어서 주변에서는 ‘친미파’로 무조건 치부되기도 하였다. 그러기에 특히 그의 미국에 관한 견해를 인용해 보겠다.

 

그러면서 박권상 씨의 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결국 우리는 싫든 좋든 숙명적으로 동반관계는 유지될 것이 분명한데, 그럴수록 불평등예속적 관계에서 벗어나 좀 자주적인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겠는데, 40년간 몸에 밴 신판 사대주의 성향을 탈피하는 자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결말이 자칫 급진적으로 치닫기 쉬운 젊은 세대에 바른 정신문화를 넘겨주는 일이 될 것이다.(강조는 인용자)

 

이 나라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자들이 ‘남이 아닌’ 한통속인 것은 비단 여ㆍ야당의 관계에서나 그들이 대표하고 있는 이 사회의 토착 지배계급 내부에서만이 아니다. 그것은 저들과 미국, 즉 미국의 지배계급과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박권상 씨는, 그리고 그를 사실상 전적으로 긍정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남재희 씨는 “싫든 좋든 숙명적으로 동반관계”라고 표현하고 있다. ‘싫든 좋든 우리가 남이가’ 하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싫든 좋든 숙명적”이라는 “동반관계”가 예사로운 관계가 아님을 저들은 무심결에 토로하고 있다. 이 사회 이 나라의 지배계급이 과거에는 ‘반국가단체에 동조’ 운운하며 반공법ㆍ국가보안법까지를 잔혹하게 동원하면서 기를 쓰고 숨기려고 했던 비밀 아닌 국사(國事)의 중대비밀을 무심결에 누설하고 있는 것이다. 다름 아니라, 한ㆍ미 관계는 불평등예속적 관계”, 자주적인 관계라는 비밀 아닌 비밀을! 이 사회의 지배계급은 “40년간 몸에 밴 신판 사대주의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다고!

“불평등ㆍ예속적 관계에서 벗어나 좀 자주적인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겠”다는, “40년간 몸에 밴 신판 사대주의 성향을 탈피하는 자각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결코 “급진적으로 치닫”지 않은 늙은이들의 “쉬운 일은 아”닌 자각이 오늘날 어떻게 현실화되고 있는가는, 예컨대, ‘군 작전권을 계속 장악해주십시오’ 하고 있는 이 나라 지배계급의 간절한 대미(對美) 애원(哀願)에서 여실히 보고 있는 대로이다.

 

이제 정리하자면, 저들이 “우리가 남이가?”, “우리는 한통속이다!”라는 정치주문, 정치주술을 발휘, ‘세월호 학살 진상 은폐법’의 제정을 강행하려는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특히 다음 세 가지 사실을 주목하고 명심해야 할 것이다.

첫째로, ‘세월호 학살 진상 은폐법’과 같은 저들의 ‘우리가 남이가’ 의식과 그 발동은, 소부르주아적 시민운동단체들이나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과 지식인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정치인 개개인의 품성이나 정치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착취ㆍ억압 계급으로서의 그들 정치인들 계급성의 필연적 발로라는 사실.

둘째로, ‘남이 아니라’ 한통속인 저들 정치적 지배집단은 언제나 자신들과 한통속이 아닌 정치세력, 자신들과는 남인 정치세력을 배제ㆍ탄압해왔고, 배제ㆍ탄압하고 있다는 사실. 비근한 예로 이석기 내란음모 조작이나 통합진보당 해산 신청과 같이!

셋째로, 한통속인 저들 부르주아 양당 지배체제를 타파하지 못하는 한 한국의 노동자ㆍ민중에게 해방의 전망은 있을 수 없는데,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그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다짐한 지 4반세기를 훌쩍 넘기도록 그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여지껏 그 유효한 전망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실천과 노선을 근본적으로 재검토ㆍ반성하면서 서둘러 유효한 이론적ㆍ실천적 방도를 내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그리고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 학살과 그 진상 은폐라는 이 치 떨리게 잔혹한 사태 속에서조차, 한통속인 저 부르주아 양당 지배체제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과제를 대중적 과제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혹은, 보다 정확히 말해,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대중적 과제로 만들기 시작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얼마나 더 잔혹하고 거대한 비극이어야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하고 말이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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