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편집자의 글] 김성환, 김승만 동지를 추모하며

 

김해인 | 편집출판위원장

 

 

<권두시>로 이육사의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를 실었고, 한아석 회원의 “해제: 독립운동가로만 알려졌던 맑스주의 혁명가 이육사의 혁명시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를 덧붙였습니다.

<정세>에는 박문석 연구위원의 “시오니즘과 미 제국주의의 민주주의”를 실었는데, 박 연구위원은 이 글에서 “팔레스타인 학살은 에너지 자원의 패권적 통제권을 확보하여 중동과 유럽에서의 에너지 시장을 재편하고 그 지역에서의 정치적ㆍ경제적ㆍ군사적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미제와 이스라엘의 제국주의 정책과 시오니즘의 결합에서 비롯된 것”임을 논증하고 있으며, 미 제국주의의 ‘민주주의’나 네타냐후의 ‘시오니즘’이나 “모두 파씨즘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며, 제국주의 시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해 일갈하고 있습니다.

<현장>에는 서울교통공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래서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은, 허명도 지회장의 “서울교통공사의 신종 노조탄압에 맞서 사활을 걸어야 할 때”와, 삼성서비스 해고자 정우형 열사 2주기 추모제에서의 허영구 대표의 추도사 “글로벌 삼성재벌에 맞선 투쟁 과정에서 산화한 열사 정우형 열사 2주기 추모제 추도사”를 실었습니다. 그리고 이 추도사의 의미를 강조하는 뜻에서, 같은 필자가 쓴 “열사묘역의 의미 마석 모란공원 열사묘역 정비사업을 하면서 드는 생각”을 덧붙여 보았습니다.

이어지는 <이론>란에는 신재길 교육위원장의 “제국주의론의 현대적 의미”를 실었는데, 신 위원장은 레닌의 ≪제국주의론≫의 역사적 의의를 개괄한 뒤, 레닌 시대와 다른 현재의 변화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변화된 현실에 맞게 제국주의론을 발전시킬 필요성에 대해, 시론적인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현대 제국주의론’에 대한 시론적 성격의 글인데, 그러한 만큼, 논쟁적인 지점들이 많은 듯합니다. 향후 여러 경로와 과정 등을 통해, 보다 완성된 형태의 ‘현대 제국주의론’을 함께 정립해 나갔으면 합니다.

<번역>에는 타나시스 스파니디스의 “제국주의 세계 체제의 부르주아지 금융자본, 금융자본주의 권력관계, 그리고 소위 매판 부르주아지”의 4회차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지난 러시아 대선 과정에서의 뿌찐 정권과 이에 대응하는 세력들의 행보를 읽을 수 있는 폴리트슈투름의 “2024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 좌파의 전술과 공산주의자의 과제”를 실었고, 반공주의ㆍ반쓰딸린주의로 점철된 쏘련사 연구에서 1차 자료 증거에 기반해 진실을 추구해 오고 있는 그로붜 풔 교수의 최근 연설 “폴 로브슨 주니어, 뜨로쯔끼주의자들과 반쓰딸린주의”를 실었습니다.

끝으로, ‘세기의 이혼 소송’, ‘역대 최대 재산 분할’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최태원-노소영의 이혼 소송을 보며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진상은 회원의 “13,808?! 아아~ 자본주의 대한미국”을 <회원마당>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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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9일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이, 6월 24일에는 노동전선 김승만 전 집행위원장ㆍ조직국장이 세상을 등졌습니다. 두 분 동지들과의 인연을 떠올리며, 짧게나마 추모의 글을 써 보려 합니다.

 

김성환 위원장의 이력이야 아실 만한 분들은 다들 아시는 것일 테지만, 우선 그는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 ≪파업 전야≫의 촬영지(무대)였던 부평 한독금속 옥상 점거 투쟁 승리와 노조 건설(1987년)의 주역이었습니다(이 영화를 촬영할 당시인 89년 겨울에는 사측의 일방적인 조업 중단에 맞서 농성 투쟁을 전개하고 있을 때였고, 수개월간 멈췄던 기계를 밤새워 보수하며 이 영화를 촬영했습니다).

이후 93년에 이천전기 입사하였고, 노사협의회 위원으로 활동 중, 96년 11월 삼성에 의해 징계해고되었습니다. 이듬해 3월 이천전기는 삼성계열사로 편입되었습니다. 이후 ‘삼성 무노조 경영 신화’에 맞선 김성환의 긴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2000년에는 다른 삼성 해고자들과 삼성그룹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삼성해복투)를 결성했고, 2003년에는 삼성일반노조를 건설했습니다.

2001년 민주노총 전해투 위원장으로 수배되어 2002년 7월 구속되었고(8월 보석.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형 선고), 2005년 2월에는 삼성의 노동자 위치 추적 감시, 노동 탄압, 격리ㆍ감금ㆍ강제사직ㆍ금품매수 등을 폭로한 것에 대한 재판에서,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오히려 법정 구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옥중에서도 삼성SDI, 삼성에스원, 신세계이마트 및 여러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에 연대하고, 삼성재벌을 규탄하며, 여러 차례 단식 투쟁을 벌였습니다. 2007년 2월, 국제앰네스티로부터 ‘양심수’로 선정되었고, 11월에는 전태일 노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형기를 6개월 앞둔 2007년 12월 특별사면으로 출소하였는데, 다들 아시는 것처럼, 출소 후에도 삼성재벌에 맞선 투쟁을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감옥에서도 여러 차례 연구소로 편지를 보내주셨고, 출소 후에는 연구소 회원으로 가입하여, 총회, 토론회 등 여러 모임에서 자신의 투쟁 상황을 공유하고, 노동 운동에 대한 견해를 힘주어 발언하시던 게 떠오릅니다. 개인적으로는 2010년~13년 당시에도 두통, 요통 등등으로 건강이 좋지 않긴 해서 제가 일하던 곳에 가끔 오셨는데, 더 세심하게 봐 드렸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삼성이 자행한 도청, 미행, 감시 등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으셨고, 옥중에서의 여러 차례 단식, 몸을 돌보지 않는 치열한 활동 등으로 2014년 9월 결국 뇌졸중으로 입원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그래도 재활 운동도 하시며 잘 회복하셨는데, 2022년 정우형 열사 투쟁 도중에 뇌경색으로 다시 쓰러지셨고, 간암까지 발병해 세상을 등지게 되었습니다. 2022년 5월 정우형 열사 장례식장에서 대책위 결성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 저에게는 마지막 모습었습니다.

그가 펴낸 책 제목은 ≪골리앗 삼성재벌에 맞선 다윗의 투쟁≫인데, 저에게는 삼성이 아닌 김성환 위원장이 거인의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추모위원회에서 공식적인 약력이 아직 정리되지 않아 정확하진 않지만, 제가 듣고 기억하는 것으로, 김승만 동지는 사노맹 재건위, ≪진보저널≫ 등의 활동으로 옥고를 치렀고,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노동넷 사무국장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2005년부터 근 10년 가까이 오산이주노동자문화센터ㆍ오산이주노동자센터에서 간사로 활동하며,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친구처럼 형제처럼 동고동락하며 투쟁하였고, 오산이주노동자라디오를 운영하기도 하였습니다.

저와 처음 만났던 건, 연구소가 아직 삼각지에 있었을 때니, 2011년 2월 이전일 테고, 2010년 전후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때는 모종의 일로 자주 보았는데, 동지가 여전히 이주노동자 운동에 헌신하고 있을 때였고, 아직 건강도 좋을 때였습니다. 이후 2013년 후반~2014년 초 노동전선에서 여러 동지들이 탈퇴하고 새로운 조직(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을 꾸리기 시작할 무렵, 노동전선의 상근자로 올라오게 되었고, 그러면서 더 자주 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첫 번째 대장암이 발병하게 됩니다. 2016~18년 초에는 저도 노동전선에서 반상근ㆍ상근을 함께하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했지만, 사실 적지 않은 갈등이 있기도 했습니다.

김승만 동지는,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결코 굽히는, 타협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들 운동을 버리고 떠나는 시절에도 변절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 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성격으로 인해 스트레스도 많이 받게 되었고, 특히 오산에서의 활동과는 다른 서울에서의 활동은 그를 많이 힘들게 했던 것 같습니다. 건강을 챙기기 위해, 주말에는 전국 곳곳의 산을 누볐지만, 2017년 이제는 췌장암이 발병하게 됩니다.

함께 상근하는 동안 쌓인 오해들도 많았지만, 이후에도 사무실에서든 집회 현장에서든 늘 웃는 모습으로 반겨 주고 챙겨 주는, 특히 밥은 꼭 챙겨 주려고 하는, 시쳇말로 “참 사람 좋은” 동지였습니다. 서로 간에 쌓인 오해들도 다 풀지 못하고, 이렇게 황망하게 떠나보내게 되어서, 그래서 저로서는 더욱더 슬픈 마음입니다.

이주노동자 운동을 하던 시절인 2010~12년, ≪정세와 노동≫에 여러 차례 기고를 했는데, 그때 동지가 지적하고 있던 이주노동자의 현실과 투쟁 방향 등은 1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듯합니다.

 

이주노동자는 일자리를 빼앗으러 온 사람도 아니고, 범죄자도 아니다. 경제고도화와 고령화사회, 고학력 저출산 사회가 된 한국에서 함께 살아갈 파트너이며, 이웃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 노동권, 여성권, 정주권, 교육권, 건강권 등에 대한 제도적 장치와 지원이 마련되고, 한국사회와 동반성장하는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다시금 조망되어야 한다. 지금 이주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강제단속, 이주노동자의 살인범죄는 한국사회 천민성이 낳은 기형적 현상이다.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이주노동자 적개심”, ≪정세와 노동≫ 제79호(2012년 5월).)

 

화성 아리셀 화재 사망 사고로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선 ‘위험의 이주화’가 다시금 떠오르고 있는 이때, 이주노동자의 노동 현실(“노예에 가까운 노동을 강요받는 필리핀 이주여성”, “목숨을 내건 이주노동자 야간노동”, “성산업으로 내몰리는 이주여성”, “노동재해 보상을 쉬쉬하는 한국 고용주와 노동재해 요양병원” 등등…)을 고발하며, “이주노동자 엄호 지지 투쟁을 통해 진정한 노동자 국제주의를 실현하자!!”(≪정세와 노동≫ 제71호(2011년 9월).)라고 외쳤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김성환 위원장님, 김승만 동지(승만이 형), 당신들이 보여 준 그 고집스런 뚝심으로, 결코 시대에 타협하지 않고, 당신들의 몫까지 싸우겠습니다. 해방 세상 그날까지 꺾이지 않고 싸우겠습니다. 부디 편히 잠드소서.

 

김해인 편집출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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