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권두시]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해제: 독립운동가로만 알려졌던 맑스주의 혁명가 이육사의 혁명시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이육사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꼭 한 개의 별을

십이성좌(十二星座) 그 숱한 별을 어찌나 노래하겠니

 

꼭 한 개의 별! 아침 날 때 보고 저녁 들 때도 보는 별

우리들과 아―주 친(親)하고 그중 빛나는 별을 노래하자

아름다운 미래(未來)를 꾸며 볼 동방(東方)의 큰 별을 가지자

 

한 개의 별을 가지는 건 한 개의 지구(地球)를 갖는 것

아롱진 설움밖에 잃을 것도 없는 낡은 이 땅에서

한 개의 새로운 지구(地球)를 차지할 오는 날의 기쁜 노래를

목 안에 핏대를 올려 가며 마음껏 불러 보자

 

처녀의 눈동자를 느끼며 돌아가는 군수야업(軍需夜業)*의 젊은 동무들

푸른 샘을 그리는 고달픈 사막(沙漠)의 행상대(行商隊)*도 마음을 축여라

화전(火田)에 돌을 줍는 백성(百姓)들도 옥야천리(沃野千里)*를 차지하자

 

다 같이 제멋에 알맞는 풍양(豊穰)*한 지구(地球)의 주재자(主宰者)로

임자 없는 한 개의 별을 가질 노래를 부르자

 

한 개의 별 한 개의 지구(地球) 단단히 다져진 그 땅 위에

모든 생산(生産)의 씨를 우리의 손으로 휘뿌려 보자

앵속(嬰粟)*처럼 찬란한 열매를 거두는 찬연(餐宴)*엔

예의(禮儀)에 꺼림 없는 반취(半醉)의 노래라도 불러 보자

 

염리*한 사람들을 다스리는 신(神)이란 항상 거룩하시니

새 별을 찾아가는 이민(移民)들의 그 틈엔 안 끼여 갈 테니

새로운 지구(地球)에는 죄(罪) 없는 노래를 진주(眞珠)처럼 흩이자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다만 한 개의 별일망정

한 개 또 한 개의 십이성좌(十二星座) 모든 별을 노래하자.

 

≪풍림(風林)≫, 1936년 12월.

 

 

* ≪이육사 전집≫, 김용직ㆍ손병희 편, 깊은샘, 2004, pp. 63-64를 대본으로 하였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내용을 지금 쓰는 우리말로 바꾸었다. (예: 그숫한→그 숱한, 었지나→어찌나, 노래하겠늬→노래하겠니, 아츰날때→아침 날 때, 빗나는→빛나는 등등.) 또한 원문은 국한문 혼용체로 되어 있는데, 한자로 되어 있는 단어는 모두 한글로 표기하고 한자는 괄호 안에 병기하였다.

 

* 군수야업(軍需夜業). 군수공장의 야간작업. 조선인들은 군수공장에 징용되어 야간에도 작업을 했다.

* 행상대(行商隊). 무리를 이루어 다니는 행상.

* 옥야천리(沃野千里). 옥토가 끝없이 넓은 들판.

* 풍양(豊穰). 곡식이 잘 익어 풍성한 모양.

* 앵속(罌粟). 양귀비를 뜻한다. 원문에는 ‘영속(嬰粟)’으로 되어 있는데, 모두 앵속(罌粟)의 오식으로 보고 있다.

* 찬연(餐宴). 잔치, 연회.

* 염리. 육사가 한문으로 쓰지 않았기에, 사바세계의 더러움을 싫어하며 떠나는 불교 용어 ‘염리(厭離)’로 추정한다.

 

 

 

해제: 독립운동가로만 알려졌던 맑스주의 혁명가 이육사의 혁명시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한아석 | 회원

 

 

이육사(1904~1944)는 서정시를 쓰는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맑스주의자였다. 육사는 1932년 10월, 아나키즘에서 맑스주의로 전화해 가던 의열단이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교, 6개월간 수학하고, 1933년 4월 졸업식에서 공연한 연극 ≪지하실≫의 대본을 썼는데, 이 연극은 다음과 같이 공공연하게 사회주의 혁명을 그린다.

 

경성의 모 공장 지하실의 어두운 방에서 노동자 일동이 일을 하고 있는데 라디오 방송으로 ‘모월 모일 우리 조선 혁명이 성공하다’라는 보도가 있고, 계속하여 용산의 모 공장을 점령하였다든가, 지금 평양의 모 공장을 점령하였다든가, 지금 부산의 모 공장을 점령하였다든가 하는 방송을 해 오고, 마침내 공산 제도가 실현되어 토지는 국유로 되어서 농민에게 공평하게 분배되고, 식당, 일터, 주거 등이 노동자 등에게 각각 지정되어 완전한 노동자, 농민이 지배하는 사회가 실현되었으므로 농민, 노동자는 크게 기뻐하여, ‘조선 혁명 성공 만세’를 고창하고 폐막하였다. (“김공신 신문조서(제2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31 ― 의열투쟁 4≫, 국사편찬위원회, 1997, pp. 149-150.)

 

1933년 4월 ≪대중≫지 창간임시호에 미리 투고한 “자연과학과 유물변증법”이란 평문에서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을 소개하였다(같은 책에 게재되지 못한 글로는 “레닌주의철학의 임무”가 있다). 노신이 세상을 떠난 지 4일 뒤인 1936년 10월 23일부터, 24, 25, 27, 29일까지, 5회에 걸쳐 ≪조선일보≫에 “노신 추도문”을 연재하여, 노신과의 만남을 회고하고, 노신의 리얼리즘 문학이 사회주의 혁명을 고취시켰다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1936년 12월에 ≪풍림≫에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를 발표한다.

 

사회주의 혁명가 이육사는, 이 시의 3연에서, “아롱진 설움밖에 잃을 것도 없는 낡은 이 땅”인 식민지 조국에서 “한 개의 새로운 지구를 차지”하기를 원한다. 이 새로운 지구는 2연에서 노래한 “아름다운 미래를 꾸며 볼 동방의 큰 별”이다. 새로운 지구를 건설할 이들은 4연의 “군수야업의 젊은 동무들”, “행상대”, “화전에 돌을 줍는 백성”, 노동대중으로, 이들이 5연의 “지구의 주재자로 / 임자 없는 한 개의 별을 가지”고, “옥야천리를 차지”한다. 이들은 6연의 “모든 생산의 씨를 우리의 손으로 휘뿌려” 본다. 이 혁명 과정에서 7연의 과거의 사상을 대변하는 “신”은 새로운 별로 가는 노동대중 “이민”에 낄 이유가 없다. 혁명은 8연의 “한 개의 별”에서 시작하지만 “한 개 또 한 개의 십이성좌 모든 별”로 가는 것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육사가 맑스주의자라는 것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육사가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육사의 시는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를 통해 보아야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신좌파’적 해석들이 돌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하게 육사는 사회주의 혁명가였다. 1934년 7월 안동경찰서의 육사에 관한 기록에도 “배일사상, 민족자결, 항상 조선의 독립을 몽상하고 암암리에 주의의 선전을 할 염려가 있었음. 또 그 무렵은 민족공산주의로 전환하고 있는 것으로 본인의 성질로 보아서 개전의 정을 인정하기 어려움”으로 나와 있다.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30 ― 의열투쟁 3≫, 국사편찬위원회, 1997, p. 178.) 육사는 사회주의 조직 활동을 이어 갔고, 1943년 4월 국내로의 무기 반입 등을 위해 중국행에 올랐다가, 7월 모친과 맏형 소상(小祥)에 참여하기 위해 귀국했는데, 그해 늦가을에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되었다(베이징주재 일본총영사관 경찰에 구금된 것으로 추정됨). 그리고 이듬해인 44년 1월 16일 새벽,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2024년에 이육사의 1936년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를 읽는 것은 학창 시절 독립운동가로만 알던 이육사의 시 “청포도”를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의 혁명시를 소개해 보았다.[1][편집자 주] 같은 의미로, ≪정세와 노동≫ 제149호(2019년 3월)에는, 이육사의 시 “절정”(≪문장(文章)≫, 1940년 1월)이 “권두시”로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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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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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집자 주] 같은 의미로, ≪정세와 노동≫ 제149호(2019년 3월)에는, 이육사의 시 “절정”(≪문장(文章)≫, 1940년 1월)이 “권두시”로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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