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현장] 열사묘역의 의미 ― 마석 모란공원 열사묘역 정비사업을 하면서 드는 생각

 

허영구 | 노동당 고문

 

* 이 글은, 노동당 경기도당이 발행하는 경기도 정치문화웹진 ≪이-음≫에 게재된 것입니다.

 

 

 

마석 모란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공동묘지이다.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을 주도한 친일파인 박영효 손녀가 조선왕조로부터 하사받은 임야에 처음으로 묘지를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가 아니라 월산리에 속한다. 그러나 기차역이 위치한 마석과 가까운 탓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마석 모란공원 열사묘역은 민주열사묘역, 민족민주열사묘역, 민족민주열사ㆍ희생자묘역, 모란공원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국가가 공인한 묘역이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공식적인 명칭은 없다. 그러나 현재 불리는 명칭과 관련하여 모란공원 열사묘역의 역사나 열사들이 살아 온 삶의 영역에서 볼 때 ‘민족민주희생자’만으로는 ‘노동’열사를 표현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열사묘역은 모란공원 전체 2만여 기 묘지 중 극히 일부인 200여 분의 열사들이 모셔진 구역이다. 일반인 묘지와 함께 위치하고 있다. 수유리에 있는 국립 4ㆍ19 민주묘지나 광주 망월동 5ㆍ18 국립묘지처럼 별도 공간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최근에는 1964년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1974년 인민혁명당재건위 사건,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으로 희생되셨던 분들을 모란공원으로 이장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마석 모란공원 열사묘역은 1970년 전태일 열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노동열사를 중심으로 농민, 빈민, 장애인, 학생, 통일, 재야, 언론, 문화예술, 시민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불꽃처럼 살다 간 열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물론 1969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권재혁 열사가 묻혀 있었지만 알려진 것은 2000년 초였다.

 

1971년 한영섬유 위장폐업과 노조탈퇴 강요 과정에서 회사측 폭력으로 김진수 노동열사가 사망했을 당시 이소선 여사께서 아들인 전태일 열사 옆에 안장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정권의 방해로 주차장 쪽으로 밀려났다. 이후 1979년 박정희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진 YH투쟁으로 목숨을 잃은 김경숙 열사, 1986년 신흥정밀 임투 과정에서 공권력이 투입될 때 “근로기준법 준수, 부당노동행위 철회, 노동3권 보장”을 외치며 분신했고, “전태일 선배 못다 한 1천만 노동자 권리 찾겠다,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긴 박영진 열사가 대표적이다.

 

시기별로는 ① 고도성장, 개발독재, 재벌, 군사독재정권(1961~1987, 박정희, 전두환): <노동> 권재혁, 전태일, 김진수, <재야 학생 시민사회> 김창수, 한희철, 허원근, 우종원, 김성수, 박종철, 최백근, 최종길 열사

 

② 노동자 대투쟁과 자본의 반격, 개방화 세계화 초기(1987~1997, 노태우, 김영삼): <노동> 문송면, 성완희, 송철순, 김윤기, 김종수, 이종대, 김종하, 강민호, 김봉환, 석광수, 김처칠, 박태순, 최웅, 김시자, 유구영, 김말룡, <학생> 안치웅, 박래전, 김용갑, 최응현, 남현진, 고재욱, 류정하, 천세용, 장현구, 진철원, 권희정, 한상근, 이형관, <사회운동(재야, 통일, 농민, 빈민, 장애)> 고정희, 김병곤, 조영래, 김영환, 성순희, 김영자, 문익환, 이범영, 이덕인, 민병일 열사

 

③ IMF 이후 자유주의 개혁적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1998~2007, 김대중, 노무현): <노동> 최명아, 신길수, 조현식, 정성범, 배동복, 김종배, 김명한, 최진욱, 이옥순, 김순조, 안동근, 유순조, 김기욱, 한경석, 강은기, 천덕명, 송석창, 박동진, 김진균, 강지연, 박상윤, 김태환, 이정미, 전응재, 조영관, 김미영, 허세욱, 정해진, 장진수, <사회운동(재야, 통일, 농민, 빈민, 장애)> 계훈제, 김남준, 정태수, 강희철, 제종철, 강지연, 조용술, 김남식, 엄성준, 전용철, 권중희 열사

 

④ 자본독재와 신자유주의 가속화(2008~2017, 이명박, 박근혜): <노동> 차봉천, 박윤정, 정형기, 김헌정, 하재승, 양갑세, 이소선, 허광만, 이춘자, 박영재, 윤주형, 최종범, 이해삼, 서선원, 이창훈, 이만수, 배재형, 전설혜, 안현호, 진춘환, 서명식, 김한상, 이승원, <사회운동(재야, 통일, 농민, 빈민, 장애)> 정유미, 곽태영, 도강호, 이상림, 양회성, 한 대성, 이성수, 윤용헌, 강희남, 우동민, 이소선, 박용길, 박기래, 유한림, 박영제, 김애정, 홍근수, 박은지, 박문숙, 성유보, 주경희, 김승교, 오재영, 서경순, 박석률, 박종필 열사

 

⑤ 자본주의 공황적 불황과 세계 경제 위기 속 ‘노동존중’을 말했던 정권(2017. 5.~2022. 5., 문재인): <노동> 김용균, <철거민> 고광석, <재야> 박정기, 백기완, <통일> 한충석, <예술> 김윤수, 이애주 열사가 모셔져 있다.

 

최근에는 연초만 되면 노동조합이나 진보정당 등 여러 단체들이 시무식 겸 열사묘소 참배를 하고 있다. 나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신 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전문노련) 위원장 시절인 1993년 초부터 시무식을 마치고 모란공원 열사묘소를 참배했다. 그 이후부터 묘소 참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1994년 11월 민주노총 준비위 발족을 선언한 전국노동자대회 날 아침에도 전노협과 업종회의 지도부는 전태일 묘소를 참배했다.

 

열사묘소는 제사를 올리거나 추모하고 기억하는 공간만은 아니다. 열사가 원했던 세상을 위해 살아남은 자들이 결의를 다지는 곳이다. 열사정신과 달리 운동을 배신자들이 면죄부를 받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10년 넘게 마석 모란공원 열사묘역 정비사업단에서 봉사 활동을 해 왔다. 열사묘역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열사의 삶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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