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제20차 총회 인사말] 노동자계급운동의 정치적ㆍ이론적 발전을 위해 한층 더 분발하자

 

정관에 따르면 지난달에 열렸어야 할 총회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연구소 19년 역사 중에 처음으로, 이제야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소장인 제가 지난달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서울에 있을 수 없던 날들이 많았던 것이 총회가 늦게 열리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 전면적 위기가 격화됨에 따라서, 제국주의가 주도하고 있는 세계정세가 사실상 자칫 인류의 절멸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대전쟁의 위기로 내닫고 있고, 제국주의 지배하의 이 반도 역시 그 위기의 한복판에 있지만, 이들 문제는 이 간단한 인사말에서 다루기에는 너무나 큰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기회에 얘기하기로 합시다. 그리고 최근에 치른 총선과 관련한 한 가지 문제만 간단히 얘기해 봅시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외쳐온 지 얼마입니까?

짧게 잡아도 30년이 훨씬 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번 총선을 치르면서 새삼 확인된 우리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참으로 참담하지 않습니까?

 

우리 연구소의 ‘창립선언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 “우리는 노동자계급운동 내에 득세하고 있는 ‘진보정치’라는 이름의 사민주의ㆍ개량주의적 정치 조류와도, 그리고 무원칙한 ‘좌파 통합주의’와도 비타협적인 사상ㆍ이론적 투쟁을 벌여나갈 것이다. 이들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와 힘찬 단결을 소망하는 노동자 대중의 소박하지만 절실한 소망에 편승하여 세를 확대하고 있지만, 그 사상적 본질은 기껏해야 편의주의 혹은 실용주의일 뿐이며, 그러한 편의주의ㆍ실용주의가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기약할 수 없음은 바늘허리 매어 못 쓰는 것만큼이나 명백하다.”

 

2005년의 ‘선언’입니다. 그런데 19년이 지난 2024년 현재에도, 아니 현재에 더욱더 저 타기해야 할 “‘진보정치’라는 이름의 사민주의ㆍ개량주의적 정치 조류”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투쟁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독점자본가계급 좌파 정치부대의 그 이데올로기가 소부르주아지를 매개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대신한 것 아닙니까?

 

왜 그럴까요?

간단히 답하자면,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정치부대, 혁명적 정치참모부를 건설하지 못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이 문제, 즉 우리 노동자계급운동이 혁명적 정치부대, 혁명적 정치참모부를 획득하지 못한 문제는 오늘날 특히 고용 문제 등을 둘러싸고 여기저기에서 사실상 고립ㆍ분산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처절하기 그지없는 투쟁들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혁명적 정치부대, 혁명적 정치참모부가 존재한다면, 그들 투쟁이 그렇게 고립ㆍ분산적으로 벌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연구소 ‘창립선언문’은, “우리는 노동자계급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노동사회과학연구소’를 창립한다.”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도 새삼 확인된 우리 노동자계급운동의 참담한 정치적ㆍ이념적 낙후를 극복하기 위해서, “노동자계급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더욱 분발하여야 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작년 9월 월례토론회 이후에 연구소에서 벌어진 ‘청년회원들’의 집단 탈퇴에 관해서 한마디 하자면, 역시 ‘창립선언문’의 마지막 구절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 “우리는 … 소임을 다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이론의 과학성에 엄격할 것이며, 구체적인 정세와 객관적인 조건에 기초한 노동자계급의 유물변증법적이고 사적유물론적인 역사ㆍ사회과학을 탐구하고 보급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책임 있는 비판과 토론을 언제나 환영하며, …”

 

“이론의 과학성에 엄격”해야 하며, “책임 있는 비판과 토론을 언제나 환영”해야 하는 것은 우리 연구소가 아니라도 연구ㆍ학습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지극히 당연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온갖 현학적 용어들과 궤변들로 “예를 들어,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가 바람에 의해 다른 구조물에 부딪히는 현상을 보았을 때, 그 현상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 부딪힌 현상이 발생하였다’라고 해석하지 않”는데, “하지만 자연적 존재로서의 자연, 그리고 체계로서 사회적 존재가 자기목적적 운동을 이룰 수 있다는 사고는 유물론적 세계관에 있어서 매우 당연하다.”(한동백, “합목적성 개념의 논리적 내용에 대하여”, ≪정세와 노동≫ 제192호(2023년 6월), pp. 63-64.) 따위의 주장을 ‘철학’이라며 내세운 데에 대해서 비판받자 반성과 자기비판 대신에 악담을 남기며 연구소를 탈퇴했고, 한 무리의 ‘청년회원들’이 뒤따라서 탈퇴했습니다. 바람에 날린 돌멩이가 다른 구조물에 부딪히는 것도 바로 그 돌멩이의 ‘자기목적적 운동’이라는 저 위대한 철학자님의 논거를 볼까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왜냐하면 유물론의 핵심은 물질의 영원성을 승인함에 있으며,[1]총회 후 뒷풀이 때에 말씀드린 것처럼, “유물론의 핵심은 물질의 영원성을 승인함에 있으며” 운운은 역시 저 위대한 철학자님다운 말씀입니다. … Continue reading 물질의 영원성은 오로지 물질의 절대적 자기운동성을 승인함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질의 절대적 자기운동은 다른 말로, 물질의 절대적인 자기목적적 운동이다.”(같은 글, p. 64.)

 

물질의 절대적 자기운동은 다른 말로, 물질의 절대적인 자기목적적 운동이다.”! ― 어떻습니까? 대단한 철학자, 아니 마술철학자 아닙니까? 다른 것은 다 그만두더라도, “절대적 자기운동”을 “절대적인 자기목적적 운동”으로 둔갑시키고 있는데도, 일단의 청년들이 그것을 철학이라며, 그리고 연구소의 비판은 철학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듯이, 뒤따라 연구소를 탈퇴했으니 말입니다.

 

저는 저들의 행태를 패거리주의라는 말 이외의 다른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사실 연구소적 조직체제에 걸맞지 않게 ‘청년위원회’로의 결집을 허용한 운영위원회의 책임도 있다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말이 길어졌습니다만, 활발한 비판과 자기비판, 그것은 진실을 밝히고 폭로함으로써 “노동자계급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우리 연구소의 창립 정신, 창립 목적을 실현하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 연구소의 문화의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창립선언문’의 마지막 구절을 다시 상기하는 것으로 인사말을 마치겠습니다. ―― “우리는 … 소임을 다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이론의 과학성에 엄격할 것이며, 구체적인 정세와 객관적인 조건에 기초한 노동자계급의 유물변증법적이고 사적유물론적인 역사ㆍ사회과학을 탐구하고 보급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책임 있는 비판과 토론을 언제나 환영하며,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해 노력하는 여러 개인ㆍ조직들과 개방적인 연대행동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향한 실천적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2024년 4월 20일

소장 채만수

노사과연

 

References

References
1 총회 후 뒷풀이 때에 말씀드린 것처럼, “유물론의 핵심은 물질의 영원성을 승인함에 있으며” 운운은 역시 저 위대한 철학자님다운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영원성’은 물론 ‘무한성’과 더불어 물질의 절대적 속성의 하나이지만, 관념론과 대비되는 “유물론의 핵심”은 그 ‘시원성(始原性)’에 있기 때문입니다.

채만수 소장

2개의 댓글

  • 총회가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탈퇴한 지 반년도 넘는 사람 가지고 인삿말에 이런 식으로 쓰는 것 좀 하지 맙시다. 제대로된 반박도 아닐 뿐더러 읽는 사람까지 부끄러우니. 나이가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이 정도 판단도 안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