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정세] 세월호 10주기: 토론과 학습, 투쟁으로 진실을 밝히자

 

심미숙 | 연구위원장

 

 

“생지옥을 지나 지옥”이다. 아니, 사실은 여전히 생지옥이다. 304명의 생목숨을 바다에 묻은 사회, 그로부터 10년간 진상 규명을 외치고 있는 사회, 생지옥에도 봄은 오고 꽃도 핀다. 2014년 4월의 봄으로부터 10번째의 봄, 올봄에는 단원고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만든 자신들의 고통과 투쟁의 기록, 영화 ≪바람의 세월≫이 나왔다. 영화에서 부모님들은 지난 10년의 투쟁을 돌아보고 정리하며 새로운 투쟁을 시작하겠다고 한다. 아이들은 떠나갔지만, 왜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는 알아야겠다는 바람은 지금도 여전하다. 부모님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많은 ‘국민’들도 그렇다.

참사와 학살의 진실도, 그것을 밝히려는 투쟁도 가라앉아 있지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날의 참사와 학살, 그리고 그로 인한 슬픔과 분노는 그대로 진행형이다. 그래서 여전히 지옥, 생지옥이지만 우리는 세월호 학살의 진상 규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구조하지 않고 구조를 방해하는 것을 뻔히 보았는데, 그렇게 뻔히 보이는 그 수많은 거짓과 은폐, 의혹의 명백한 진상 규명이 이렇게 힘든 이유가 무엇일까?

 

 

참사와 학살의 진원지가 어디이기에?!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과 “전원 구조” 언론 오보의 진원지는 어디였을까? 아이들과 승객들을, 부모들과 ‘국민’들을 속이던 그 악마짓의 컨트럴타워는 어디였을까? 누구였을까?! 쓰러져 가는 배에서 선원만 구출하고 구출한 선원을 자신의 집에서 잠재운 해경의 컨트럴타워는 어디였을까?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지만, 결과에서 거꾸로 되짚어가면 반드시 그 원인을, 진원지를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구체성ㆍ특수성은 무엇보다도 구조를,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했을 뿐만 아니라 저지한 해경의 행동들, 국정원ㆍ해경 등의 거짓말들, 정부의 조작 은폐, 선장을 포함한 선원들의 한결같은, 그야말로 비정상적인 행동들이다. …

 

선장과 선원들의 행동을 정부와 극우언론은 일방적으로 ‘파렴치’라고 몰아 매도하고 있고, 또 파렴치하다는 게 맞기도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한결같이 파렴치하게 행동한 것이 과연 우연일까? 아니면, 극우언론들이 말하는 것처럼 ‘안전교육의 부재’ 탓일까? “선장과 선원들”이라고 하지만, 파렴치하게 행동하며 구조된 자들은 세월호의 선원들 전체가 아니라 그 운항에 관계된 선원들만이다. 승객 담당 선원들, 그들의 다수는 승객 구조라는 선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려다가 사망ㆍ실종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저들 “선장과 선원들”이 거역할 수 없는 누군가의 강압적 명령에 의해 그렇게 한결같이 ‘파렴치하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유추케 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1] 채만수, “세월호 학살에 대한 두 태도 ― 그 차이의 기원과 기능”, ≪정세와 노동≫ 제103호(2014년 7ㆍ8월). <http://lodong.org/wp/archives/2551> (강조는 인용자.)

 

위의 글에서처럼, 세월호 참사와 학살의 진원지에 “거역할 수 없는 강압적 명령”을 내린 자들이 있다고 “유추”해 보자. (위의 글 전문을 꼼꼼히 읽어 보면 정말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그들은 거대한 권력을 가졌을 것이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백 명의 산 사람을 바다에 묻어 버릴 수 있는,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일 것이라고 “유추”하게 된다.

 

 

미군과 미국이 있는 것은 아닌가?

 

세월호 선체조사위와 사회적 참사 특조위는 세월호 침몰의 원인으로 내인설과 외력설[2]내인설은 세월호의 침몰이 무리한 증ㆍ개축으로 인한 복원력 감소, 화물 과적, 부실 고박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는 주장이고, 외력설은 잠수함 등 외부 … Continue reading 두 가지를 모두 열어 두었다. 외력에 의한 침몰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한미연합 군사훈련으로 인한 잠수함 충돌설이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많이 제기되었다. 참사 초기에 잠수함 충돌을 주장한 네티즌들이 유언비어 유포죄로 고발당하고 재판을 받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 발표된 아래의 글에서도, 세월호 항적도와 생존자의 증언, 진도 관제소의 레이더 영상자료 등을 바탕으로, 4월 15일 밤에 세월호가 잠수함과 충돌했음을 추론하고 있다. 또한, 4월 16일 아침 8시 50분경에도 세월호가 잠수함과 2차 충돌했다는 “확률상으로 보면 극히 가능성이 희박한” 추론을 하고 있다.

 

… 4월 15일 11시경에, … 무슨 일이 있었을까? 세월호 생존자의 증언을 들어보자. … 이 증언자는 15일 오후 10시 30분에서 11시 사이에 전북 군산 인근 바다를 지나던 중 어떤 사고가 났다고 한다. … 당시는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되었던 한미 독수리훈련 기간이었다. 해당 지역은 당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사격훈련이 있었기 때문에, 세월호가 지나던 밤 11시경에는 항해 금지구역에서 해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연일 훈련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군사 장비들이 밀집되어 있었을 것이고 이동도 잦았을 것이다. 그래서 세월호가 항로를 이탈하여 들어갔다가, 군사 장비와 관련한 사고가 난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생존자는 “꽝 잠깐 갔다가 잠깐 원위치로 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배의 바닥에 무엇이 충돌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잠수함과 소형 어뢰 등이 있을 수 있다. 소형 어뢰에 의해서 작은 구멍이 생겼을 것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는데, 우리는 이것이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한다. …

 

… 우리는 세월호가 두 번 잠수함과 충돌했을 것이라는, 확률상으로 보면 극히 가능성이 희박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덧붙이자면 첫 번째 사고가 없었다면 두 번째 사고도 없었을 것이다. 당시는 한미 독수리훈련 기간으로 땅 바다 하늘이 무기로 뒤덮여, 온통 지뢰밭이었다. 전쟁 연습이 계속되는 한 사고는 필연이고, 이것은 현재이고 미래이기도 하다.[3]권정기, “세월호는 왜 침몰했는가 (2)”, ≪정세와 노동≫ 제104호(2014년 9월).

 

그리고, 세월호 학살의 진원지를 다음과 같이 추론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추론한다. 사고는 미(일)한 공동 군사훈련(한미 독수리훈련)에 참여한 잠수함과 세월호가 충돌하여 발생했다. 사고를 은폐하라는 미국의 강력한 요구(명령)가 있었다. 사고를 은폐하기 위해서 정부는 구조대를 투입하지 않았고, 구조하려는 사람들을 쫓아 버렸으며, 결국 304명을 몰살시켰다.[4]권정기, “[편집자의 글] 슬픔과 분노, 그리고 투쟁을 과학의 기반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운영위원회 외, ≪세월호 참사 … Continue reading (강조는 인용자.)

 

“세월호가 두 번 잠수함과 충돌했을 것이라는, 확률상으로 보면 극히 가능성이 희박한 결론”과 그 잠수함과의 충돌 “사고를 은폐하라는 미국의 강력한 요구(명령)”가 있었다는 것을 추론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구조를,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했을 뿐만 아니라 저지한 해경의 행동들, 국정원ㆍ해경 등의 거짓말들, 정부의 조작 은폐, 선장을 포함한 선원들의 한결같은, 그야말로 비정상적인 행동들”을 납득하게 해 주고 설명해 주고 있다. “결코 용서받지 못할 학살 범죄의 진상”에 관한 가장 논리적인 추론이 되어 주고 있다.

 

 

천안함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천안함 침몰 민군합동조사단 전(前) 조사위원 신상철 씨는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 ‘북한 어뢰 피격’이라는 민군합동조사단의 공식 결론에 반론을 제기하고, ‘좌초 후 잠수함 충돌’을 주장했다. 그로 인해 그는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12년 만인 2022년 6월 9일에 대법원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그가 쓴 아래의 글을 차근차근 읽어 보면, 왜 세월호에서 천안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지 알 수 있다.

 

지난번 글에서 천안함에 ‘폭발이 존재하지 않는 10가지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화염도 없고, 그을음도 없고, 충격파에 의한 고막의 손상과 화상 환자도 없어 이것은 폭발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국방부는 천안함 조사결과 보고서에 그러한 사실들을 이미 나열해 놓고 있습니다. 평생 폭발물을 다루는 직업을 갖고 살아가므로 누구보다도 천안함에 그런 폭발의 현상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국방부는 백서에 버젓이 사실 그대로 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러면 국방부가 폭발이 존재하지 않음을 인정한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국방부는 그러한 현상이 버블제트 어뢰에 의한 비접촉폭발이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리고 그 모든 증거의 부존재를 합리화시켰습니다. …

 

실전에서 사용된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오직 실험으로만 존재하는 버블제트 어뢰가 폭발하여 비접촉폭발이 발생하더라도 절단면 내부에는 엄청난 화염이 발생하고 그을음이 존재하며 시커멓게 녹아내리게 된다는 사실은, 호주 토렌스함 버블제트 어뢰폭발 실험 결과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되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버블제트 어뢰가 모든 화염과 그을음을 집어삼키는 마법의 블랙홀로 둔갑하게 된 배경에는 비접촉폭발이라는 논리가 존재합니다. 천안함 사고원인의 바이블이 된 비접촉폭발을 최초로 언급하여 우리 군 당국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사람은 토마스 에클스 미국 단장이었습니다.

 

1. 토마스 에클스의 등장

2010415 저녁 21시 20분 YTN은 뉴스를 통해 토마스 에클스의 존재를 최초로 국민들에게 알립니다.

청와대 관계자가 밝힌바 ‘천안함 침몰 원인 분석’을 위해 미국 정부가 파견한 토마스 에클스 미 해군 준장은 해군 함정 사고 분석 분야에서 당대 최고의 권위자로 소개됩니다.[5]신상철(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폭발의 흔적이 없기 때문에 ‘비접촉 폭발’이라는 국방부”, ≪민플러스≫, 2018. 12. 28. … Continue reading (강조는 인용자.)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은 2010년 4월 25일에 천안함의 침몰 원인을 ‘버블제트 어뢰’에 의한 ‘비접촉폭발’로 발표한다. 그러나, 위의 글에서 신상철 씨가 제시하는 근거에 따르면, 민군합동조사관은 “‘버블제트 어뢰’가 폭발하여 ‘비접촉폭발’이 발생하더라도 절단면 내부에는 엄청난 화염이 발생하고 그을음이 존재하며 시커멓게 녹아내리게 된다”는 분명한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고, ‘비접촉폭발’은 마치 화염이나 그을음, 충격파 등이 없는 폭발인 것처럼 ‘국민’들을 속인 것이 된다. 결국, 폭발의 흔적이 전혀 없는 천안함이 북의 ‘버블제트 어뢰’에 의한 ‘비접촉폭발’로 침몰했다는 결론도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천안함에는 폭발도, ‘비접촉폭발’도 없었다는 것이 과학적 진실임을 신상철 씨는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비접촉폭발’ 속임수의 시작, 진원지는 ‘미국 정부가 파견한 토마스 에클스 미 해군 준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신상철 씨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비접촉폭발’의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을 발표한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위원들은 46명 장병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침몰의 진상 규명을 방해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 된다. 모르고 한 것이든, 알고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이든.

 

 

학습과 토론, 투쟁으로 진실을 밝히자

 

신상철 씨는 이렇게도 말한다. “2010년의 천안함 사건을 우리가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제대로 판단하고 봐 줬더라면, 그것을 밝히려는 사람들을 음모론자로 만들지 말고 제대로 봐 줬더라면, 4년 후의 세월호라는 가슴 아픈 사건에서도 보다 더 잘 대응했을 것이다.” 그리고 “불편한 진실을 덮어 두고 외면”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잠수함 충돌”, “거역할 수 없는 강압적 명령”, “사고를 은폐하라는 미국의 강력한 요구(명령)” 등의 논리적인 추론에 의한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고 들추며, 사회적 담론을 만들고 투쟁하면,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할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의 수많은 의혹과 거짓의 진원지에 잠수함 충돌과 그것을 은폐하라고 명령을 내린 미국과 그 명령을 거부하지 않고 충실히 따른 한국의 정부가 정말로 있는지에 대하여 토론하고 학습하며 투쟁하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한 답을 찾아서, 세월호의 진실을 찾아서,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전진하자.

노사과연

 

References

References
1 채만수, “세월호 학살에 대한 두 태도 ― 그 차이의 기원과 기능”, ≪정세와 노동≫ 제103호(2014년 7ㆍ8월). <http://lodong.org/wp/archives/2551>
2 내인설은 세월호의 침몰이 무리한 증ㆍ개축으로 인한 복원력 감소, 화물 과적, 부실 고박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는 주장이고, 외력설은 잠수함 등 외부 충격 때문이었다는 주장이다.
3 권정기, “세월호는 왜 침몰했는가 (2)”, ≪정세와 노동≫ 제104호(2014년 9월).
4 권정기, “[편집자의 글] 슬픔과 분노, 그리고 투쟁을 과학의 기반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운영위원회 외, ≪세월호 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노사과연, 2014. <http://lodong.org/wp/archives/2789>
5 신상철(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폭발의 흔적이 없기 때문에 ‘비접촉 폭발’이라는 국방부”, ≪민플러스≫, 2018. 12. 28. <http://www.min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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