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회원마당] 노동계급의 탄생과 그 역사적 사명

 

이열 | 회원

 

 

기계와 더불어 탄생한 노동자, 노동계급

 

 

노동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고, 사회의 발전 단계에 따라 여러 형태의 직접 생산자들(노예, 농노, 수공업 직인, 자영농[1]자영농의 경우에는, 특정한 사회 발전 단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노예제, 봉건제, 자본제 등 여러 사회 발전 단계에 존재합니다. 등)이 존재해 왔습니다. 그런 가운데, 현대적 의미의 노동자, 즉 생산수단이 박탈되어 오직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함으로써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그러한 노동자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증기 기관, 다양한 방적ㆍ방직기들과 일련의 기계 장치들의 발명에 의해 초래된 산업 혁명에 의해서입니다.

 

잉글랜드에서의 노동계급의 역사는 지난 세기의 후반, 증기 기관과 면화의 가공을 위한 기계의 발명과 더불어 시작한다. 이러한 발명들은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산업 혁명에 자극을 주었던바, 이 산업 혁명으로 말하면 부르주아 사회 전체를 변혁시켰던, 그리고 지금에야 비로소 그 세계사적 의의가 인식되기 시작하는 혁명이다.[2]F. 엥엘스, ≪잉글랜드 노동계급의 처지≫(≪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이하 ≪저작 선집≫) 제1권), 김보영 역, 박종철 출판사, 1992, p. 133.

 

프롤레타리아트는, 이전 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일어났고 그 후 세계의 모든 문명국들에서 되풀이되었던 산업 혁명에 의해서 발생하였다. 이 산업 혁명은 증기 기관, 다양한 방적 기계들, 직조기들 그리고 일련의 여타 기계 장치들의 발명에 의해서 초래되었다.[3]F. 엥엘스, “공산주의의 원칙들”, ≪저작 선집≫ 제1권, 최인호 역, pp. 321-322.

 

일련의 다양한 기계들의 발명으로 초래된 산업 혁명으로 인해, 경제적인 의미에서의 노동계급은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산업 혁명은 노동자들을 완전히 단순한 기계로 만들고 그들의 독립적 활동의 최후의 찌꺼기까지 그들의 손에서 빼앗아 감으로써 … 노동자들을 사고하도록, 그리고 인간의 지위를 요구하도록 자극을 주었”[4]F. 엥엘스, ≪잉글랜드 노동계급의 처지≫, p. 136.습니다. 이것에 대해 맑스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조건들은 먼저 그 나라의 대중을 노동자들로 바꾸어 놓았다. 자본의 지배는 이 대중에게 하나의 공동의 지위, 공동의 이해를 만들어 주었다. 이리하여 이 대중은 자본에 대해서는 이미 하나의 계급이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아직 그렇지 않다.[5]K. 맑스, ≪철학의 빈곤≫(≪저작 선집≫ 제1권), 최병연 역, p. 295.

 

그런데, 경제적 조건에서 이 대중은 하나의 계급이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말은, 진정한 노동계급이 되기 위해서는 더 필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 투쟁의 시작 ― 노동계급의 진정한 탄생

 

엥엘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영국 노동자들이 이러한 처지에서 행복을 느낄 수 없으리라는 것; 그들의 어떠한 처지에서도 한 사람 혹은 그 사람의 계급 전체는 인간적으로 사고하고 느끼고 살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에 … 동의할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은 이러한 동물적인 처지에서 벗어나고자, 보다 나은 인간적인 지위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바, 바로 노동자들의 착취를 그 본질로 하는 부르주아지의 이해 그 자체에 대항하여 투쟁하지 않고서는 이를 성취할 수 없다; 그런데 부르주아지는 그들의 재산과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국가 권력을 통해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능력들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이해를 옹호한다. 노동자가 현재의 상태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자마자 부르주아는 노동자의 명백한 적이 된다.[6]F. 엥엘스, ≪잉글랜드 노동계급의 처지≫, p. 154. (강조는 인용자.)

 

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우선, 노동자는 자본가가 자신을 하나의 물건으로 대하는 것에서 자본가에게 분노하고 적대하게 됩니다.

 

노동자는 자본가가 그를 하나의 물건처럼, 마치 자신의 소유물처럼 다룬다는 것을 매 순간 깨닫는데, 바로 이 때문에도 노동자는 부르주아지의 적으로 나서게 되는 것이다.[7]같은 곳.

 

그리고, 노동자는 자본가를 적으로 인식하면서, 처음에는 임금의 유지를 위해 단결할 필요성을 느끼고, 그 산물인 노동조합을 통해 자본과의 투쟁을 시작합니다.

 

[노동자들의: 인용자] 단결은 현대 산업의 발전 및 확대와 더불어 전진하고 성장하는 것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 항구적인 단결, 즉 노동자들과 기업가들의 투쟁들에서 노동자들의 성채 역할을 하는 노동조합들이 결성되었다.

… 임금의 유지라는, 고용주에 대항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동의 이해가 그들의 저항, 곧 단결이라는 하나의 동일한 사상으로 결집시킨다.[8]K. 맑스, 앞의 책, p. 294.

 

그런데,

 

저항의 최초의 목적이 단지 임금의 유지였을 뿐이라 해도 자본가 쪽이 억압이라는 하나의 사상으로 결집함에 따라 처음에는 고립되어 있던 단결이 집단을 형성하게 되고, 끊임없이 결합하는 자본에 맞서 노동자들에게는 연합의 유지가 임금의 유지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된다.[9]같은 책, pp. 294-295.

 

나아가 노동자들은 이러한 “계급으로서의 조직화를 성취하는 파업들, 단결 및 여타의 형식들”을 통한 투쟁 속에서, “자본에 대해서는 이미 하나의 계급이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아직 그렇지 않았던” 즉자적인 상태를 넘어, “자신을 대자적 계급으로 구성”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옹호하는 이해는 [전체 노동]계급의 이해가 되”고, 자본과의 투쟁은 “계급 대 계급의 투쟁”, 즉 “정치 투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10]같은 책, p. 295.

이렇게 진정한 노동계급의 탄생은, 앞서 인용한 엥엘스의 말처럼, “그들의 재산과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국가 권력을 통해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능력들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이해를 옹호”하고 있는 자본가계급과 “착취를 그 본질로 하는 부르주아지의 이해 그 자체에 대항하여 투쟁하지 않고서는” “현재의 상태로부터 벗어나” “인간적인 지위”를 성취할 수 없는 노동계급 간의 “계급 대 계급의 투쟁”, 즉 “정치 투쟁”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런 계급 투쟁에 대해, 쓰딸린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계급투쟁으로서 들 수 있는 것은 예컨대 동맹파업인데 그것이 부분적 파업인가, 총파업인가 하는 것은 여기서는 아무래도 좋다. 보이콧과 태업도 물론 계급투쟁이다. 대중 집회, 시위, 대의제 기관(그것이 의회이건 지방자치기관이건 할 것 없이)에 참가하는 것 등등도 역시 계급투쟁이다. 이 모든 것은 동일한 계급투쟁의 다양한 형태들이다. … 그러나 노동계급에게 있어서는 이 모든 투쟁형태가 준비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을 하나하나 떼어 놓는다면 어느 한 형태도 자본주의를 타도할 수 있는 노동계급의 결정적 수단으로는 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이다. 총파업만으로는 자본주의를 타도할 수 없다. 총파업은 자본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약간의 조건을 준비할 수 있을 따름이다. 노동계급이 의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써 자본주의를 전복할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의회 투쟁으로써는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한 약간의 조건을 준비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면 자본주의 제도를 전복할 수 있는 노동계급의 결정적 수단이란 무엇인가?

그러한 수단은 바로 사회주의 혁명이다.

동맹파업, 보이콧, 의회 투쟁, 대중 집회, 시위 등 ― 이 모든 투쟁 형태는 노동계급을 훈련하며 조직하는 좋은 수단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단 중 어느 하나도 현재의 불평등을 근절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를 철저히 파괴하자면 이 모든 수단을 하나의 주되는 결정적인 수단에 집중시켜야 하며 노동계급이 궐기하여 부르주아지에 대한 결정적인 공격을 가하여야 한다. 바로 이러한 주되는 결정적인 수단이 사회주의 혁명이다.

사회주의 혁명을 불의의 타격이나 단번의 일격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부르주아지를 패배케 하고 그의 진지를 점령하는 노동자 대중의 장구한 투쟁이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승리는 동시에 패배한 부르주아지에 대한 지배로 되며 또 계급들의 충돌 시에는 한 계급의 패배가 곧 다른 계급의 지배를 의미하는 것만큼 사회주의 혁명의 첫 단계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노동계급의 정치적 지배로 될 것이다.

노동계급의 사회주의적 독재, 노동계급의 권력쟁취 ― 바로 여기로부터 사회주의 혁명은 시작되어야 한다.

… 파업, 보이콧, 시위, 의회 투쟁 등등은 그것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노동계급을 조직하며 그의 조직체를 확대ㆍ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한에서만 의의를 가진다.[11]J. V. 쓰딸린,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 (2)”, 신재길 역, ≪정세와 노동≫ 제129호(2017년 1월), pp. 107-109. (강조는 원문대로.)

 

경제 투쟁을 넘어서 정치 투쟁을 통해 형성된 노동계급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12]경제 투쟁, 정치 투쟁, 사상 투쟁은 구분되지만 동시에 불가분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의식적으로도 연결시켜야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 Continue reading 다시 말해, 노동계급의 정치는 무엇입니까? 바로, 전위를 건설하고, 그 지도 아래 노동계급 자신을 중심으로 한 자본에 대한 강고하고 비타협적인 투쟁을 통해,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활동과 투쟁은 이러한 목표하에 진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노동계급은 자기의 강령을 자각적으로 실현하며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명백하다.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지와 타협하는 것으로써는 사회주의를 이룩할 수 없다. 노동계급은 언제나 변함없이 투쟁의 길로 나아가야 하며 또 그 투쟁은 반드시 계급투쟁이어야 하며 전체 부르주아지를 반대하는 전체 노동계급의 투쟁이어야 한다. 부르주아지와 그의 자본주의인가 그렇지 않으면 노동계급과 그의 사회주의인가, 둘 중의 하나이다. 노동계급의 활동과 그의 계급투쟁은 반드시 여기에 기초하여야 한다.[13]J. V. 쓰딸린, 앞의 글, 앞의 책, p. 107.

 

그리고 엥엘스는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모순의 해결: 프롤레타리아트는 공적 권력을 장악하며, 이 권력의 힘으로 부르주아지로부터 미끄러져 떨어지는 사회적 생산 수단을 공적 소유로 전화한다. 이러한 행위를 통하여 프롤레타리아트는 생산 수단을 자본이라는 이제까지의 특성에서 해방시키며, 그 생산 수단에 사회적 성격이 관철될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준다. 미리 규정된 계획에 의한 사회적 생산이 이제 가능하게 된다. 생산의 발전은 서로 다른 사회 계급이 더 이상 실존하는 것을 시대착오로 만든다. 사회적 생산의 무정부 상태가 사라지는 것과 같은 정도로 국가의 정치적 권위도 잠든다. 마침내 자기 자신의 사회적 존재의 주인이 된 인간은 그와 함께 동시에 자연의 주인으로,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된다 ― 자유롭게 된다.

세계를 해방하는 이러한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 현대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소명이다. 이러한 과업의 역사적 조건과 아울러 그 과업의 본성 자체를 깊이 캐는 것, 그리하여 이 과업을 행동으로 옮길 소명을 지닌 오늘날의 피억압계급에게 그들 자신의 행동의 조건과 본성을 의식하게 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이론적 표현인 과학적 사회주의의 임무이다.[14]F. 엥엘스, ≪유토피아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전≫(≪저작 선집≫ 제5권), 최인호 역, p. 474. (강조는 인용자.)

 

이것이 바로, 노동계급의 역사적 사명이며, 과학적 사회주의를 계승하고 있는 우리의 임무입니다.

 

 

2024년 한국 사회의 현실

 

2024년 한국 사회는, 구조조정 저지 투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투쟁, 노조법 2ㆍ3조 개정 투쟁, 중대재해법 제정과 확대 투쟁,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 개악 저지 투쟁 등, 단순한 경제 투쟁을 넘어 정치 투쟁으로까지 발전된 계급 투쟁을 진행하면서도, ‘우리가 조금 양보해서 덜 착취받고, 약간 더 민주주의를 누리면 되지 않을까?’라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점점 늘어나다 못해 이제 주류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이 시대에 혁명가가 있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또한 의회 투쟁에서 과거 민주노동당은 10명의 의원이 탄생하자 의석수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폭로’라는 의회 전술을 활용하며 의회 민주주의의 한계를 폭로하기보다는 ‘의회를 통한 변혁’으로 점차 개량화되었고, 결국 현재 녹색정의당의 일부와 진보당의 민주당과의 연합처럼 비례의석 몇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우측으로 우측으로 이동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의 퇴진보다는, 자신들만의 권력 나누기에 빠져 있습니다.

 

 

선진노동자의 역할과 임무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선진노동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최우선적으로는 맑스와 엥엘스, 레닌을 노동계급의 혁명적 지도자로 여기고 학습해야 합니다. 맑스와 엥엘스는 사회주의를 공상으로부터 과학으로 발전시키고, 사회주의ㆍ공산주의 운동의 시원을 열어 놓았으며, 레닌은 맑스주의를 제국주의 시대에 맞게 계승ㆍ발전시키고 노동계급과 함께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집단적 학습과 투쟁으로 만들어진 선진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강화하고, 대중조직 곳곳에 들어가 경제 투쟁만이 아닌 실질적 정치 투쟁도 지도하고 진행하면서 노동계급 내 깊숙이 뿌리박은 수정주의자, 기회주의자 등 반혁명 분자들을 노동계급 속에서 천천히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본가계급의 독재노동계급의 독재로 만들 수 있는 사회주의 혁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나가며

 

현 시기, 선진노동자들의 분발이 더욱 긴급하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들과 그 과정에서의 볼쉐비끼의 경험을 코민테른의 여러 당들에 전하고 있는, 레닌의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에서 몇 구절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혁명 준비기(1903~1905년). … 3대 기본 계급의, 곧 3대 정치적 경향―자유주의 부르주아적 경향, (“사회민주주의적” 및 “사회혁명적” 경향이라는 딱지하에 감추어진) 쁘띠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경향, 프롤레타리아적 혁명적 경향―의 대표들은 강령과 전술 문제에 대해 가장 격심한 투쟁을 벌임으로써 임박한 공공연한 계급 투쟁을 예측하고 준비한다. … 이들 3대 경향 사이에는 물론 중간의, 과도기의 또는 어정쩡한 형태들이 얼마든지 있다. … 계급들은 임박한 전투에 필수적인 이념적 정치적 무기를 만들고 있다.

[1차: 인용자] 혁명기(1905~107년). 모든 계급들은 모습을 드러낸다. 모든 강령적, 전술적 견해들은 대중들의 행동에 의해 검증을 받는다. … 1905년의 “총연습”이 없었더라면 1917년 10월 혁명의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반동기(1907~1910년). 짜리즘은 승리하였다. 혁명적 당을 비롯한 모든 야당들은 박살이 난다. 정치를 대신하는 의기소침, 사기저하, 분열, 불화, 변절 및 외설. 철학적 관념론으로의 강력한 유혹. 반혁명적 분위기의 외피로서의 신비주의. … 어려운 때야말로 사람들은 자신의 벗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15]V. I.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김남섭 역, 돌베개, 1995, pp. 21-22.

 

우리 당에 가장 엄격하고 정말로 강철 같은 규율이 없었더라면, 또는 노동계급 전체 대중으로부터, 곧 후진계층을 지도하거나 그들을 자신들과 나란히 가도록 할 수 있었던 사려 깊고 정직하고 헌신적이며 유력한 노동계급 내의 모든 분자들로부터 전면적이고 무조건적인 지원이 없었더라면 볼쉐비끼가 2년 반은커녕 단 2개월 반도 권력을 지탱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필수적이며, 부르주아지에 대한 승리는 끈기, 규율, 불요불굴의 정신 및 한결같은 의지를 요구하는 완강하고 필사적인 사활을 건 기나긴 투쟁이 없다면 불가능하다.[16]같은 책, p. 17.

노사과연

 

References

References
1 자영농의 경우에는, 특정한 사회 발전 단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노예제, 봉건제, 자본제 등 여러 사회 발전 단계에 존재합니다.
2 F. 엥엘스, ≪잉글랜드 노동계급의 처지≫(≪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이하 ≪저작 선집≫) 제1권), 김보영 역, 박종철 출판사, 1992, p. 133.
3 F. 엥엘스, “공산주의의 원칙들”, ≪저작 선집≫ 제1권, 최인호 역, pp. 321-322.
4 F. 엥엘스, ≪잉글랜드 노동계급의 처지≫, p. 136.
5 K. 맑스, ≪철학의 빈곤≫(≪저작 선집≫ 제1권), 최병연 역, p. 295.
6 F. 엥엘스, ≪잉글랜드 노동계급의 처지≫, p. 154.
7 같은 곳.
8 K. 맑스, 앞의 책, p. 294.
9 같은 책, pp. 294-295.
10 같은 책, p. 295.
11 J. V. 쓰딸린, “무정부주의냐, 사회주의냐? (2)”, 신재길 역, ≪정세와 노동≫ 제129호(2017년 1월), pp. 107-109.
12 경제 투쟁, 정치 투쟁, 사상 투쟁은 구분되지만 동시에 불가분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의식적으로도 연결시켜야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임금ㆍ고용ㆍ노동조건 등과 관련된 단사의 경제 투쟁 속에서도, (경제ㆍ정치ㆍ사상의 문제가 불가분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국가 권력을 향한 정치 투쟁, 사회주의를 향한 사상 투쟁을 끊임없이 의식적으로 함께 전개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글은, 경제적인 의미에서의 계급과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계급을 이야기하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계급이란, 경제적인 의미를 넘어선 정치적 의미의 계급이라 주장하는 것이고, 동시에 경제 투쟁의 한계에 갇혀 정치 투쟁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일 뿐, 경제 투쟁의 의미를 폄하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밝혀 둡니다.

13 J. V. 쓰딸린, 앞의 글, 앞의 책, p. 107.
14 F. 엥엘스, ≪유토피아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전≫(≪저작 선집≫ 제5권), 최인호 역, p. 474.
15 V. I.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김남섭 역, 돌베개, 1995, pp. 21-22.
16 같은 책, p.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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