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이론]반윤석열 전선의 성격에 대하여

 

문영찬 │ 연구위원장

 

 

 

1. 정세와 전술의 문제

 

일본의 핵오염수 문제 등으로 윤석열 정권에 대한 민중들의 반발이 커지면서 반윤석열 전선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민중들의 이반은 최근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 힘이 커다란 표차로 패배한 것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민심의 이반이 선거를 떠나, 의회적 방식을 넘어서는 대중투쟁으로 확산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것은 반윤석열 투쟁에 있어서 대중투쟁의 방식이 아닌 의회적 방식인 ‘탄핵’을 주장하는 흐름이 상당하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그리하여 반윤석열 투쟁은 대중적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내년 총선을 향하여 수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선거에서 윤석열 정권을 패배시키는 것으로 족하다는 인식이 여전히 상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흐름은 지난 박근혜 시기의 촛불시위와 박근혜 탄핵의 한계와 오류를 되풀이 하는 것이다. 광범한 민중이 참여하고 분기했지만, 그 투쟁의 성과는 모두 자유주의 세력인 민주당으로 귀속되었고, 이후 촛불의 열망을 받아 출범한 문재인 정권이 촛불의 열망을 배신하고 결국에는 정권을 반동세력에게 헌납한 경과를 되풀이 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반윤석열 투쟁을 대중투쟁으로 조직하고 확대시킬 구심점의 문제가 중요하며, 그리고 그러한 대중투쟁을 이끌어 갈 전략과 전술의 부재, 혹은 결여를 극복하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당면 과제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계급이 경제적 의미의 즉자적 계급을 넘어서서 정치적 의미의 대자적 계급으로, 독자성을 견지하는 정치적 계급으로 서기 위해서는 정세와 전술의 문제에서 과학적이고 변혁적인 방침과 노선의 문제가 긴급하다.

정세와 전술의 문제에서 핵심은 의회 중심, 선거 중심의 개량주의적 전술을 극복하고 대중투쟁을 일차적으로 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윤석열 정권의 계급적, 정치적 성격을 중심으로 하는 과학적인 정세 분석과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중심으로 하는 전술의 문제를 해명하는 것이 필요하며, 나아가 전술의 범위와 깊이를 정치적 전선의 문제로까지 심화시키면서, 그것을 변혁의 전망의 문제, 변혁 전략의 문제로까지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술, 즉, 노동자계급의 당면 정세에서의 정치적 행위, 실천 방침을 추구하는 것은 윤석열 정권의 반동적 공세를 극복하고 개량주의적 의회 전술을 넘어서기 위한 주요 고리가 된다. 또한 그러한 전술은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적 착취와 억압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를 향한 장정을 위한 침로, 변혁의 전망, 변혁 전략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토대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2. 제국주의 질서의 균열의 심화

 

우크라이나 전쟁은 쏘련 붕괴 이후 성립한 제국주의 질서의 종식을 의미한다. 미국이 세계화를 외치면서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세계 자본주의 질서에 편입되어 성장하고, 세계가 마치 단일한 체제, 자율주의의 네그리의 표현 방식으로는 ‘제국’ 질서와 같이 보였던 체제, 제국주의 질서가 균열되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쏘련 붕괴 이후 성립한 제국주의 질서의 내적인 모순의 폭발이다. 쏘련 붕괴 이후 전 세계를 휩쓸었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무한한 착취, 약소민족에 대한 제국주의 세력의 압제의 심화의 시기였다. 그리고 사회주의 진영이 사라지면서 전면화한 제국주의 질서는 제국주의 시대에 고유한 불균등한 성장의 경향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불균등한 성장의 결과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고, NATO의 확장에 대해 러시아가 반발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소강상태를 보이는 가운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이 발발하였다. 팔레스타인 민족을 억압하고 축출하면서 국가를 성립시키고 유지시켜 왔던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저항은 소(小)제국주의인 이스라엘에 대한 약소민족의 저항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중동지역에 이스라엘이라는 제국주의 국가를 성립시키고 유지시켜서 중동의 이슬람 세력을 억제하려는 미국, 유럽 등의 제국주의 세력의 전략이 약소민족인 팔레스타인의 저항에 부딪히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의 본질이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제국주의 질서의 균열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서 재차 발생하고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2차 대전의 과정에서 나찌에 의해 억압받고 학살당한 유태인들이 중심이 되어 세워진 나라이다. 그런데 2차 대전 종전 이후 영국 제국주의는 자신들의 식민지이던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던 팔레스타인인들을 축출하고 거기에 유태인 국가를 건설하는 방침을 밀어붙였다. 이는 2차 대전에서 극적으로 드러난 제국주의의 모순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전가하는 것이었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입장에서는 수천 년간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터전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정치적, 군사적 억압, 학살과 핍박을 당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거주하는 가자 지구는 세계 최대의 감옥으로 불리고 있는데, 제국주의 시대의 민족 모순이 어떤 것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증거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격렬한 형태로, 전쟁의 형태로 제국주의 질서의 균열을 보여주고 있다면, 저강도의 형태로, 정치적, 경제적 형태로 제국주의 질서의 균열을 보여주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다. 최근 미국의 중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압박은 WTO 체제에서 이루어졌던 세계적 차원의 경제적 분업 질서가 균열되고 변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공정이 필요한 반도체 산업은 세계적 차원의 생태계 속에서만 생산이 가능한데, 미국은 이러한 반도체 산업의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절단시키는 방식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그리하여 서방 중심의 반도체 생태계와 중국 중심의 반도체 생태계가 분리되는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는 세계 자본주의 발전에 역행하는 것이며, 제국주의 간의 대립이 생산력 발전의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국주의 질서에서 필연적인 불균등한 성장의 결과, 중국은 정치적, 경제적 측면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미국은 자신이 내세웠던 세계화를 스스로 깨뜨리면서 반(反)중국 블록의 형성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것이 제국주의 질서 자체의 균열을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제국주의 질서의 균열은 동아시아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고, 또 한-미-일 동맹이 강화되면서 동아시아에서는 전쟁의 기운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이북의 경우 핵전력을 강화하면서, 중국, 러시아와 연합을 강화하는 길로 가고 있어서, 한(조선)반도의 정세는 정치적,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윤석열 정권은 이북과 체결한 9.19 군사합의의 파기를 시도하고 있는데, 이는 전쟁의 위험을 직접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이러한 행보는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에는 역행하는 것인데, 미-일에 대한 예속을 조건으로 하는 한국 자본가계급이, 특히 예속적인 독점자본들이 한-미-일 동맹의 강화를 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反)중국 노선, 한-미-일 동맹의 강화는 국제적 차원의 생산관계가 생산력 발전에 역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전망을 흐리는 것이다.

 

 

3. 윤석열 정권의 성격과 반(反)윤석열 전선의 이중성

 

윤석열 정권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검찰의 반란을 통해 성립한 정권이다.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르는 검찰은 전두환, 노태우 등의 군사 파시즘의 종식 이후 막강한 권력을 누려왔다. 그리하여 부르주아 국가기관 간의 관계에서 검찰의 권력이 강화되었고, 이번에는 스스로 ‘국정 운영권’을 인수하였다.

정권 성립 이후 윤석열 정권은 민주당 세력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정치의 중심에 놓고 의회적 정치는 2차적인 위치로 밀려났다. 검찰 개혁의 파고를 넘기면서 수사권을 보존한 검찰은 이후 ‘수사를 통한 정치’의 행태를 보여 왔다. 물론 행정기관들의 행위, 행정 처분은 삼권 분립 차원에서는 정치 밖의 일이지만, 국가 자체의 행위라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정치에는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헌법 질서에서 정치와 행정은 엄밀히 구분되는 것이며, 특히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부르주아 헌법 질서의 주요한 축이기도 하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에서는 이러한 기본 질서가 무너지면서 검찰이 ‘수사를 통한 정치’를 통해 정치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검찰의 ‘수사를 통한 정치’는 윤석열 정권에게 검찰 공화국, 검찰 정부라는 명칭을 안겨주고 있다. 검찰 공화국 하에서 윤석열 정권은 노동에 대한 탄압, 시민사회에 대한 공격, 민주주의의 후퇴, 의회 내 반대파에 대한 탄압,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한 제3자 변제라는 굴욕적인 외교, 일본 핵오염수 방류에 대한 묵인, 한(조선)반도 정세의 악화와 전쟁위기의 증대 등등 전반적인 반동적 정책을 펼쳐왔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권은 검찰을 중심으로 하는 반동 관료들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반동 정권, 보수 강경 정권이라 규정할 수 있다. 이들 반동 관료들의 세계관은, 박근혜 당시 민중들은 개, 돼지라고 하여 파면되었다가 다시 복직된 한 교육부 고위 관료의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이들 반동적인 고위 관료들은 엥엘스가 말했듯이 사회로부터 나왔으나 사회로부터 멀어지면서, 사회 위에 군림하는 국가의 구성원들인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성립 직후 운동진영 내에서는 윤석열 정권의 성격이 쟁점이 된 바 있다. 파시즘 정권인가, 아닌가? 그리고 당면 투쟁의 중점이 반파쇼 민주주의 투쟁인가, 아니면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 주요 모순이며 주된 투쟁 과제인가 등이 쟁점이 되었다. 이러한 점은 정세 분석과 전술의 문제에 있어서 핵심적인 의미를 띠는 것인데, 이 점을 다시 정리하면서 이를 전선의 문제로까지 확장시켜 보자.

윤석열 정권은 강경 보수 노선을 띠면서 전반적인 반동적인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정책의 초점은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의 강화, 노동운동 세력에 대한 탄압의 강화에 맞추어져 있으며, 그 방식은 (시)민법적인 손해배상 청구, 행정법적인 업무개시 명령, 그리고 파쇼적인 국가보안법을 동원한 간첩사건 등 전 방위적이고 전면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들의 행태를 가리켜 윤석열 자신은 ‘정부가 기업이고 기업이 정부이다’라고 표현한 바가 있다. 이러한 윤석열 정권의 행태는 반동 관료의 관점에서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전투적으로 수호하는 것이다. 즉, 윤석열 정권은 노동에 맞선 자본의 전선에 전투적으로 복무하고 있고 그를 위해 민주주의의 후퇴마저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반동 관료들은 학습의 효과가 있어서 민주주의를 전면 부정하지 않는다. 광주민중 항쟁에 대한 긍정, 제주 4.3 항쟁에 대한 인정 등의 사례가 그러하며, 심지어 노동운동 세력, 민중운동 세력을 탄압하면서도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기도 하다. 윤석열이 주장하고 강조하는 자유의 구호는 자본의 자유일 따름이다. 자본가계급의 억압의 자유, 착취의 자유이다. 그리고 윤석열에게서 평등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지난 여름 재해 현장을 찾은 윤석열은 수해의 원인을 짚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약자들에 대한 시혜의 입장에서 ‘예산이 다 마련되었다’라는 공학적인 접근을 했는데, 이는 전형적으로 관료의 입장에서 민중에 접근한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노동자와 민중들의 투쟁의 성과로서 진전된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키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치적 현상이 아니라 그 현상 속에서 관철되는 계급적 내용이다. 윤석열 정권이 시도하는 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후퇴를 통한 자본의 독재의 강화이며,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노동자계급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면을 차단하는 것이다. 여기서 계급적 이익의 문제와 민주주의의 문제의 차이를 정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 정권은 민주주의의 부분적인 진전을 통해 자본의 독재의 강화를 추구하였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것을 통해 노동운동을 무력화시키려 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계급 화해의 몽상 속에서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고 진보정당들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장식품으로 전락시키려 한 것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반대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것을 통해 노동운동을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통한 자본의 독재의 강화! 이것이 윤석열 정권의 정책의 본질을 이루는 측면이다. 그런데 그때의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이다. 즉, 자본주의 질서 내의 민주주의이며,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투쟁이 일정한 선을 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질서일 따름이다. 여기서 민주주의라는 쟁점만으로는 윤석열 정권(그리고 마찬가지로 민주당 정권도)에 맞서 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도출된다. 즉, 윤석열 정권에 맞서기 위해서는 윤석열 정권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반민주 정권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며, 윤석열 정권의 계급적 본질인 자본의 독재를 정면 공격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많은 말과 레토릭, 수많은 정치 행위들이 모두 자본가계급의 계급적 이익의 전투적 수호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 자체를 폭로하고 자본에 맞서는 노동의 전선을 견고히 구축하는 것만이 윤석열 정권에 맞서는 투쟁이 살아나는 길이다. 반민주라는 구호만으로는 윤석열 정권의 약간의 정책의 변경, 민주당 세력과 윤석열 정권의 몇 번의 야합의 행위의 영향을 극복할 수 없다. 자본에 맞서는 노동의 계급적 전선의 구축만이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분노를 조직하여 윤석열 정권에 맞서는 투쟁을 가능하게 할 것이며, 민주당 세력의 윤석열 정권과의 야합(국익을 명분으로 하는)을 제어하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계급적 이익을 방어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 또한 확대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있다. 사상의 자유를 전면 부정하는 파쇼적인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것은 분단 질서를 근거로 하고 있다. 이북(조선)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는 점을 기준으로 사상과 정치를 재단하고, 틀에 가두고, 심지어 감옥에도 보내는 것이 정당화되고 있다. 1980년대 운동의 성장의 성과로 인해 국가보안법의 적용범위가 일정하게 축소되었지만, 지배계급은 정세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파쇼적인 국가보안법을 휘두를 수 있다. 그리고 최근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 7조(이적 행위, 이적 단체 조항)에 대한 합헌 판결을 내린 데서 보듯이 부르주아 사법부는 분단질서를 근거로, 자본가계급의 계급적 이익의 전투적 수호를 위해 사상의 자유에 대한 제약을 승인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은 오로지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에 대한 선전, 선동을 확대하고 수많은 노동대중을 사회주의적 의식으로 각성시키고, 나아가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적인 변혁적 정당을 건설하는 것을 통해 국가보안법을 무력화시키고 나아가 폐지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한국 사회는, 한국 자본주의는 미 제국주의에 예속된 사회구성체이다. 미제에 대한 예속은 경제적 예속을 기초로 정치, 군사, 사회, 이데올로기 등 전 방면에 걸친 것이며, 이러한 예속적 질서는 최근 일본을 포함하는 한-미-일 동맹의 강화를 통해 더욱더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예속 독점자본을 주체로 하는 이러한 신식민지적 예속의 질서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에게 착취와 억압, 전쟁의 위협의 심화를 가져오는 것이며,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미제의 축출, 한-미-일 동맹의 해체, 분단의 극복과 민족의 통일에 대해 정치적, 계급적 이익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전선의 문제와 연관지어 고찰해 보면, 한국 사회는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로서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 심화된 사회이다. 한국 사회의 노동자, 민중이 고통을 겪는 현상, 모순의 태반은 자본주의적 억압과 착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노동자, 민중의 고통을 극복하는 것은 오직 자본주의 자체에 맞서는 것 이외에 길이 없으며, 이는 자본에 맞서는 노동의 전선을 발전시켜서 반(反)자본주의 전선을 형성해야 할 과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 했듯이 노동자와 민중이 고통을 겪는 원인의 또 하나는 한국 사회의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고, 심지어 민주주의의 본질적 측면인 사상의 자유를 제약하는 파쇼적인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있고, 또 한국 사회가 미 제국주의에 예속되어 전쟁의 위기, 분단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후퇴를 제어하고 민주주의를 전진시키고 파쇼적인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 전선, 미 제국주의의 신식민지적 지배를 탈각하기 위한 반제국주의 전선을 구축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중요한 정치적 과제 중의 하나이다. 즉, 노동자계급은 반자본주의 전선 이외에 민족민주 전선을 형성하고 발전시켜야 할 과제가 있다.

한국 사회가 자본주의를 넘어서서 새로운 해방 세상, 사회주의 사회에 도달하는 길에 이렇게 2개의 중층적인 전선이 있게 되는 것은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근거한 것이다. 전 세계적인 보편적인 자본주의 발전이 한국 사회에도 적용된 결과 필연적으로 형성되는 자본과 노동의 모순, 그것의 반영, 발전 형태로서 반자본주의의 전선이 있게 되면서도, 미제에 대한 예속을 조건으로 하는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이 가져오는 민주주의의 제약, 제국주의의 신식민지적 지배를 극복하는 민족민주 전선 또한 존재하게 된 것이다.

 

 

4. 자본과 노동의 전선과 민족민주 전선의 상호 관계

 

반자본주의 전선 혹은 자본과 노동의 전선과 민족민주 전선이라는 중층적인 전선에서 일차적인 것은 반자본주의 전선이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는 이미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 기본 모순일 뿐만 아니라 주요 모순이 될 정도로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 사회이며, 주체적 측면에서 보면 노동자계급이 양적 측면에서 압도적 다수를 구성하여 자본에 맞서는 주체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객관적 측면 그리고 주체적 측면 모두를 보더라도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일차적 모순은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며, 나아가 현 정세에서 그것이 주요 모순, 가장 격심한 모순이 되고 있으며, 이는 전선의 문제에서 자본과 노동의 전선, 자본에 맞서는 노동자계급의 반자본주의 전선의 문제로 된다.

그리고 민주주의 문제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자본과 노동의 모순에 종속된 문제로서 존재한다. 객관적 측면에서 보면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정도는 과거 전두환, 노태우처럼 민주주의를 전면 부정하고 파쇼적 통치를 하는 것이 자본주의 발전에 불리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는 자본가계급 스스로 자신들의 자본 축적을 위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계급 또한 민주주의 문제를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위해 유리한가, 아닌가의 문제로 사고하게 되었다. 과거 군사 파시즘 시기에 민주주의 자체가 절대 선으로 여겨지며,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라고 외치던 시기는 이미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민주주의 자체에 대해서도 계급적 각인이 찍힐 수밖에 없으며,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해서 그것의 협소한 계급적 성격을 인식할 수밖에 없는 상태, 즉,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자본가계급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는 것을 인식하기에 이른 것이다.

신식민지적 예속의 문제도 단순한 민족문제의 성격을 넘어서고 있다. 자본가계급은 능동적으로 미 제국주의에 예속되는 것을 통해 자신들의 자본축적과 계급적 이익을 실현하려 한다. 이는 민족주의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노동자계급 또한, 미 제국주의에 대한 한국 사회의 예속이 자본에 맞서는 노동의 전선에서 자본가계급을 강화시키기 때문에 미제에 대한 예속을 반대하게 되고, 나아가 제국주의 질서 자체를 반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민족민주 전선은 계급적 전선, 자본과 노동의 전선, 반자본주의 전선에 대해 2차적 성격을 지니며, 노동자계급은 민족민주 전선을 강화하면서도 그것의 정치적 성과가 민주당 등 자유주의 세력, 부르주아 세력에게 귀속되는 것을 저지하면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반윤석열 전선은 자본과 노동의 전선, 민족민주 전선의 두 개의 전선으로 구성된 이중적 성격을 지니며, 그 두 개의 전선에서 일차적인 것은 자본과 노동의 전선(그것의 발전 형태로서 반자본주의 전선)이다. 그런데 어느 전선이 일차적인가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두 개의 전선이 상호 작용한다는 점이다.

자본에 맞선 노동의 전선이 반자본주의 전선으로 발전하고 못하고 자본가계급의 탄압과 회유를 이겨내지 못하고 유야무야 된다면, 민족민주 전선은 앙꼬 없는 찐빵이 된다. 자본에 맞선 노동자의 투쟁은 민족민주 전선이 살아나고 발전하는 동력으로 작용하며, 나아가 정확한 방향성을 찾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가늠자가 된다. ‘민주주의는 노동자에게 무엇인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노동자 민주주의는 가능한가?’와 같은 문제제기는 민주주의 투쟁이 날이 서게 할 것이다. 또한 민족적 이익을 운운하는 자본가계급과 자본주의 국가가, 윤석열 정권과 같이 민족적 이익을 내팽개치고 굴욕적인 외교를 하는 현상에 대해, 자본가계급은 민족을 이용만 할 뿐이며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자본축적과 계급적 이익일 뿐이라는 점을 선전, 선동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자본가계급이 민족적 이익을 팽개치고 능동적으로 제국주의 질서에 가담하여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이익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점을 폭로해야 한다. 그리하여 민족문제에 있어서도 민족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계급적 관점, 사회주의적 관점이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같이 자본과 노동의 전선은 민족민주 전선의 실질적 내용을 규정하고 그 전선을 추동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민족민주 전선 또한 자본과 노동의 전선, 반자본주의 전선을 강화하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진전되어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거나 약화된다면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당 건설은 한결 용이해질 것이며, 반자본주의 전선의 형성과 강화가 용이해질 것이다. 또한 반제국주의 투쟁이 강화되어 한국 사회에서 미 제국주의 영향력이 약화되거나 무력화된다면 한국의 자본가계급은 막강한 동맹 세력을 상실하게 되어 고립되게 된다. 이 또한 한국의 자본가계급에 맞서는 자본과 노동의 전선을 강화시킬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의해 규정되는 한국 사회의 객관적 현실, 그리고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주체적 발전 정도는 자본과 노동의 전선과 민족민주 전선이라는 두 개의 전선을 형성시키고 있으며, 두 개의 전선 중에서 자본과 노동의 전선이 일차적 중요성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두 개의 전선은 상호 작용하면서 한국 사회의 정치적 투쟁과 정치적 발전을 규정하고 있다.

 

 

5. 전선체의 전망과 변혁 전략의 문제

 

자본과 노동의 전선, 그것의 발전 형태로서 반자본주의 전선, 그리고 민족민주 전선은 정치적 전선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선인 이유는 공통의 적에 맞서 다양한 세력이 연합한다는 점이다. 자본과 노동의 전선, 반자본주의 전선에는 노동자계급 내의 다양한 세력이 연합하며, 나아가 노동자계급 이외에도 자본주의에 의해 고통 받고 몰락하고 있는 다양한 세력이 연합한다.

민족민주 전선은 반자본주의 전선보다도 더욱 다양한 색깔의 세력들이 연합한다.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주된 구성요소가 되겠지만, 자본가계급 내에서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전투적으로 지지하는 세력들이 참가할 수 있고, 또 민족주의 세력 또한 참가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세력들의 연합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변증법적 사고가 필요하다. 정세는 국가를 포함하는 계급세력들 간의 상호 관계의 총체이다. 상호 관계이기에 정세는 상호 작용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정치적 전선은 다양한 세력들의 연합이다. 그것은 추상적으로 동일한 점을 모토로 연합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정치적 전선은 추상적 동일성이 아니라 각각의 계급세력, 정치세력들의 계급적, 정치적 이익, 그 고유한 성격을 전제로, 그것을 승인하면서 이루어지는 연합이다. 즉, 차이를 전제로 하는 연합이고 심지어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통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적 성격으로 인해 정치적 전선은 역동성을 갖게 되고 정치적 위력을 갖게 된다.

20세기의 역사에서 통일전선은 처음에 레닌이 사회민주당들에게 노동자 통일전선을 제기했을 당시에는 매우 미미한 영향 밖에 끼치지 못했다. 사회민주당들은 볼쉐비키적 당과 사회민주당의 연합은 있을 수 없다며 냉소를 보냈다. 그런데 이후 1930년대 나찌와 일본 군국주의 등 파시즘이 등장하여 정세가 변화했을 때, 볼쉐비키 당이 제안한 반파쇼 인민전선은 처음에는 영국과 프랑스 등의 냉소와 보이코트를 당했지만, 서서히 영향력을 확대해 가다가 실제로 2차 대전이 발발했을 당시 미국과 영국을 포함하는 연합전선으로 현실화되었다. 그것도 단순한 정치적 협정이 아니라 군사동맹 차원으로까지 발전하여 2차 대전에서 쏘련의 승리, 연합국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차이를 전제로 한 연합, 다양성을 전제로 한 통일이라는 변증법적 개념에 따른 실천이 20세기의 역사를 바꾸었고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성립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런데 영국과 미국이 쏘련과 연합전선을 꾸리게 된 것은 전제가 있는 것이었다. 즉, 쏘련이 독일군의 전격전, 전면적 공세를 스스로의 힘에 의해 저지하고 수도 모스크바 방어전에서 승리한 것이 영국과 미국이 쏘련과의 연합에 나서게 했다. 이는 주체적 조건이다. 그리고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반파시즘 블록에 가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정세의 객관적 변화이다. 이와 같이 군사적 동맹으로까지 발전된 반파쇼 인민전선이라는 통일전선은 그것의 구심점이 될 강고한 주체를 필요로 한다. 2차 대전에서 그것이 쏘련이었다면, 한국의 두 개의 전선에서 그것은 한국의 노동자계급일 것이며, 노동자계급의 전위적인 사회주의 당일 것이다. 즉, 반자본주의 전선과 민족민주 전선이라는 두 개의 전선의 형성과 발전은 당으로 조직되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힘을 전제로 하며, 또 정세의 객관적 변화가 주체적 조건과 맞아떨어질 때, 두 개의 전선은 힘차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흔히 변혁의 전망이라고 불리는 변혁 전략의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를 넘어서서 새로운 사회를 열어젖히는 변혁의 문제는 전술, 전선 차원을 넘어서는 전략의 문제를 필요로 한다. 전략의 안내가 없는 전술과 전선은 많은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고 역량의 손실 또한 많게 될 것이며 승리의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역량의 손실을 줄이고 승리의 가능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전술과 전선의 문제를 실천적으로 가져가면서도 전선과 전술의 문제를 이끌 전략의 문제가 중요하게 된다.

한국 사회 운동에서 80년대에 많은 전략 논쟁이 있었지만 30년 넘게 변화, 발전한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에 조응하는 변혁 전략의 문제는 지금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의회적 전술을 넘어서는 변혁적 전술을 구사하고 전선의 문제를 과제로 설정한다는 것은 전략의 문제를 당면 과제로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략은 정세가 아니라 해당 사회의 계급적 지형, 계급 대립구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인데, 계급 대립구도는 해당 사회의 발전 정도, 자본주의의 발전 정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단지 이론적 탐구에 머물지 않고 실제적인 정치적 전략이 되려면, 그것은 주체의 정치적 실천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전제로 정세분석과 전술을 구사하는 주체가 형성되고 그러한 정치적 실천 속에서 서서히 한국 사회를 변혁하고 자본주의 너머 세계로 노동자계급을 이끌 변혁 전략이 형성되어 갈 것이다. 여기서 변혁 전략의 문제는 이론과 실천의 통일, 그리고 전술적 실천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즉, 전략은 전술을 규정하지만, 역으로 전술적 실천은 전략의 형성의 전제가 되는 것이다.

변혁 전략은 전술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실천을 전제로 하면서 변혁해야 할 대상, 즉, 한국 사회 혹은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 나아가 세계 제국주의 체제, 그리고 세계질서를 구성하는 한에서 수정주의의 문제를 포함해야 한다. 또한 변혁 전략은 주체, 즉, 노동자계급과 민중에 대한 분석을 전제로 하는데, 노동자계급 또한 단일한 구성 요소로서가 아니라 노동자계급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구성 요소들을 분석해야 한다. 노동자계급 내의 구성 요소들 간의 차이, 심지어 다양성을 전제로 하면서도, 그들의 통일성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답을 내올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을 주체의 면에서 본다면 전술은 정치적 주체의 성립의 문제이며, 전략은 정치적 주체의 승리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6. 결론

 

현 정세는 세계적 차원에서 제국주의 질서가 균열되면서 그에 대한 제국주의 세력과 반동세력의 대응으로 반동이 심화되는 상황이다. 한국에서는 윤석열 정권의 전 방위적인 반동적 공세가 심화되고 있다. 최근 강서 구청장 보궐 선거에서 국민의 힘이 패배했지만, 그것 자체가 정세를 바꾸지는 못한다. 정세를 변화시키는 핵심적인 요소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정치적 실천이다.

윤석열 정권은 검찰을 중심으로 하는 반동 관료들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반동 정권, 보수 강경 정권이다. 윤석열 정권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통해 자본의 독재를 강화하는 정권이다. 그리하여 노동탄압 등의 국내 정책만이 아니라 대외 정책에서도 한-미-일 동맹의 강화, 한(조선)반도 전쟁위기의 강화 등 반동적인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민주주의를 후퇴시켜 자본의 독재를 강화하고 있지만, 과거 문재인 정권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부분적 진전으로 자본의 독재를 강화시키려 했다.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를 통한 노동운동의 무력화 시도가 그것이다. 윤석열 정권과 문재인 정권 공히 자본의 독재를 강화시키려 하는 부르주아 정권, 자본가계급의 정권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전술적 차이에 지나지 않는데, 민주주의를 포장하여 노동자계급을 무력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를 후퇴시켜 노동운동 탄압을 통해 노동자계급을 무력화시킬 것인가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윤석열 정권에 맞서는 전선의 핵심은 자본과 노동의 전선이다. 고도로 발전하여 심화되는 자본과 노동의 모순은 거기에 의식성이 부여된다면 반자본주의 전선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전선이다. 또한 이미 한국 사회의 압도적 다수가 노동자라는 현실은 자본과 노동의 전선이 한국 사회의 일차적 규정력으로 작용하는 전선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 제국주의에 대한 예속을 조건으로 하는 한국자본주의는 분단 질서, 파쇼적인 국가보안법의 존재, 민주주의의 후퇴 등으로 인해 민족민주 전선 또한 2차적 전선으로서 작동하고 있다. 자본과 노동의 전선과 민족민주 전선 중에서 일차적인 것은,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 지금 주요 모순이라는 점에서 자본과 노동의 전선(그것의 발전 형태로서 반자본주의 전선)인데, 그 두 개의 전선은 상호작용하면서 한국의 정치 질서, 정치적 발전, 정치적 투쟁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은 변혁적 전술을 구사함에 의해 즉자적 계급을 넘어선 대자적 계급으로 자신을 정립하면서 광범위한 연합 전선을 민중세력 등과 같이 꾸리는 것을 통해 반윤석열 투쟁을 발전시키고, 이를 기초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변혁 전략을 확보하고 사회주의적 당을 건설하면서 계급이 없는 사회, 새로운 해방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노사과연

문영찬 연구위원장

4개의 댓글

  • 어제 공식적으로 사무국장에게 탈퇴의견을 밝혔습니다.

    역시 현장에 있지 않고 이론만 파신 분의 글 잘 봤습니다.

    코로나 국면은 각자도생, 이태원 참사는 나 몰라라 노동자들은 연일 구속되고, 목숨을 스스로 끊고, 학생들이 선도투쟁을 위해 항의방문 하다 전원 연행되고, 노동자들은 시행령으로 연일 탄압당하고, 민중들은 전세사기와 지속적으로 치솟는 공공요금, 물가에 연일 자살하고 그런데도 차분하게 윤석열이 민주주의를 어긴게 아니다. 지금은 노동자의 당을 건설할 때이다. 너무 차분합니다.

    이론은 실천을 담보하고 실천이 이론을 검증합니다.
    같은 땅에 살고 있는데, 먼나라 이웃나라에 사시네요

    • 추가로 박문석 연구위원의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연구소로 다양한 이론을 낼 수 있다. 라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원래 연구소는 이론의 통일성을 기초로 선진대중의 실천을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 제국주의 시대에 노동자 국제주의의 중요성

      파시즘 국가의 목표가 무엇인지 보자.

      “공황의 부담을 모조리 근로자의 어깨로 전가(착취강화), 전쟁을 통해 세계를 재분할(군수물자 생산 증대를 통한 “유효수효”창출, 상품과 자본 수출시장 확대, 원료확보), 혁명운동을 분쇄(자국의 노동자와 농민조직, 그리고 쏘련 등 사회주의국가), 이것이 파씨즘 국가의 목표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궁극적 목표는 자국의 금융자본의 이윤을 높여,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것이다.

    • 지속적인 사무국장의 만류로 인해 연구소 회원으로 남기로 하얐습니다

      그러나 문영찬 위원장의 글은 다시는 읽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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