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노동사회과학≫ 제3호 <맑스 레닌주의와 사회주의의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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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사회주의: 반성, 비판 그리고 전망

≪노동사회과학≫은 반년간지이다. 작년 7월에 2호를 발간했으니 올해 2월에는 3호가 발간되어야 했으나 늦어졌다. 이렇게 3호의 발간이 늦어진 것은 전적으로 주체의 게으름 탓이다. 이에 대해 독자 여러분의 질책이 마땅하다. 그러나 독자 여러분의 질책에 대해서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발간투쟁을 성공시키고 나아가 내용에 있어서 질적 개선으로써 답변할 것이다.

세계대공황이 발발한지 3년이 지나고 있다. 최근에 부르주아지의 일부는 이미 공황이 극복되었고 이제는 회복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그 근거로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종식되었다는 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두바이 사태, 최근의 유럽의 재정위기, 그리스의 재정위기와 총파업 등 공황의 현상들은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오직 중국만이 자본주의의 불균등 발전의 탓으로 고도성장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세계경제는 아직 혼돈 속에서 헤매이고 있고 일부 논자들에 의해서는 더블딥(이중침체)이 예상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은 현재의 경제위기, 경제공황이 단순한 금융상의 문제가 아니라 그 원인을 과잉생산에 두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쏘련 붕괴 이후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소비능력을 약화시킨 결과 생산과 소비의 모순이 극단화된 것이 이번 공황의 진정한 원인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금 투쟁의 원칙을 가다듬고 전열을 정비해야 한다. 그리스의 경우 강건한 공산당이 있고 대중들의 투쟁이 가열차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의 경우는 예외적인 상황이다. 한국을 보면 투쟁의 전열이 많이 무너져 있고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이 많이 퇴조해 있다. 쏘련 붕괴 후의 퇴조의 흐름이 아직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이론에서는 청산주의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주의는 틀렸고 희망이 없다!’, ‘맑스-레닌주의는 낡았다’는 말이 지난 10년 이상의 과정에서 많이 나왔다. 그리하여 사회에 대한 계급적 분석과 접근, 과학적인 사상의 옹호가 많이 쇠퇴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지리멸렬한 개량주의적 접근과 또 하나는 공상적인 접근이다. 계급 간의 화해를 통해 이 부르주아 사회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개량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손과 발 심지어 머리를 마비시키고 있다. 이러한 편향의 반대편에서는 기본소득, 자율주의 등 무정부주의적이고 공상적인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의 진정한 원인은 운동에서 과학이 실종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청산주의에 반대하고 맑스-레닌주의, 과학의 기치를 다시금 들어야 한다. 이를 기초로 제반의 잘못된 사상에 대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 또한 20세기 사회주의에서 우리가 견지하고 보듬어야 할 원칙들은 무엇이고 반대로 극복해야할 오류들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렇게 사회주의의 전망을 하나하나 제시하고 어려움들을 헤쳐 나가는 작업은 운동의 일보전진을 위해 필수적이다. 또한 이렇게 사회주의 전망을 세워나가는 것과 함께 사회의 변혁을 위한 경로에 대한 탐색이 중요하다. 이는 사회주의론의 정립을 넘어 전략과 전술의 수립의 문제를 말한다. 노동자계급의 힘을 하나로 묶고 동맹들을 결집시켜서 이 착취 체제, 자본주의 체제를 강습할 방책을 내와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스의 상황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스 공산당은 쏘련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지지한 전력이 있으나 엄격히 자기비판을 하고 청산주의를 반대하면서 고된 투쟁의 경과를 겪어 왔다. 그 결과 오늘날 강건하게 세계적인 대중투쟁을 이끄는 전위조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원칙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우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치열한 이론적 탐색, 과학을 수호하기 위한 노력을 전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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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는 7편의 논문과 2편의 번역 글이 실려 있다. 대부분 사회주의의 전망과 관련되어 20세기 사회주의를 논한 글, 청산주의를 반대하는 글, 트로츠키주의자들의 20세기 사회주의와 사회주의론을 왜곡하는 것에 대한 비판 글, 그리고 맑스-레닌주의 문예이론, 보건이론 등에 관한 글이다.

먼저, 채만수의 “≪자본론≫의 논리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를 파악하는 방법론으로서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대한 논쟁 글이다. 즉, 19세기의 자유경쟁이 20세기에 들어와 독점으로 전화하고 나아가 국가가 경제에 전면적으로 개입하여 독점의 이익을 떠받치는 것을 규정하기 위해 도입된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최근에 맑스연하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따라서 현대 자본주의에 대해 과학적 인식을 방해하는 것을 반박하기 위해 쓴 글이다. 이를 위해 맑스의 ≪자본론≫으로부터, 그리고 엥겔스와 레닌의 글로부터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근거가 되는 규정들을 살펴보면서 상세하게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입장을 반박하고 있다. 특히 레닌(주의)의 계승자임을 주장하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레닌의 ‘자유경쟁으로부터 독점으로의 전화’라는 테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고 맑스의 ≪자본론≫에서는 자본에 의한 자본의 수탈로서 자본의 집중 그리고 그러한 집중의 지렛대로서 경쟁과 신용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고 그러한 ≪자본론≫의 논리의 귀결로서 독점의 발생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독점과 트러스트에 대한 엥겔스의 많은 진술들도 근거로서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이 논문은 지금의 사상전선을 교란하는 트로츠키주의에 맞서 현대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옹호하고 맑스-레닌주의를 수호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손미아의 “≪자본론≫과 노동자계급의 건강― 맑스시대와 현대자본주의시대에서 노동자계급 건강악화의 기원”은 노동자계급의 건강이라는 관점에서 ≪자본론≫에 접근하고 있다. ≪자본론≫의 건강에 관한 주요 관점과 테제들을, 노동자계급이 노동과 생활에서 겪고 있는 구체적인 불건강의 문제와 잘 연결시키고 있다. 이 글은 ≪자본론≫의 원칙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생하게 자본주의 현실에서 관철되고 있다는 것을, 노동자들이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질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타파하는 길을 가야만 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자본론≫에 있는 불변자본을 절약하기 위해서 인간 재료를 낭비한다는 테제가 한국 사회의 현실에 적용되어 생생하게 복구되고 있고 또 폭로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자본론≫에 대한 독해의 글이자, 건강을 매개로 한 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폭로의 글이고 사회주의 운동의 원칙과 현실을 통일시키는 일종의 운동론이라 할 수 있다. 조선업종, 건설업, 그리고 간병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자본론≫의 원칙과 개념들의 적용은 하나의 훌륭한 사례보고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엥겔스의 ≪영국노동자계급의 상태≫와 같이 노동자의 상태를 훌륭하게 정리하고 폭로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백철현의 “쏘련사회주의의 붕괴― 계획과 시장 문제를 중심으로”는 쏘련 사회주의 붕괴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는 글이다. 그의 기본관점은 ‘스탈린주의’를 절대악으로 설정하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스탈린의 공헌을 인정하면서도 한계와 오류를 같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기초하여 그는 쏘련의 붕괴가 스탈린 사후 후르시쵸프 수정주의의 등장에 기원한다고 주장한다. 이 수정주의에 의해 쏘련의 사회주의 경제가 침체에 빠지고 결국은 붕괴로까지 치달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을 계획과 시장이라는 것의 문제를 통해 고찰하는데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통일적 운용을 위해 지령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으며 이른바 민주적 참여를 중앙의 계획과 대립시키는 관점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가치법칙이 존재하나 지배적인 법칙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시장사회주의를 시도했던 유고의 경우 자본주의와 같은 착취와 피착취의 문제, 민족문제 등 제반의 모순이 심각했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백철현의 글은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해 청산주의를 반대하면서도 그 내적 메커니즘과 모순을 해명하고 이에 기초하여 쏘련 붕괴의 원인을 규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김해인의 “‘소위 일국사회주의론’에 대한 왜곡― 스딸린의 “레닌주의의 기초”와 “레닌주의의 제문제”를 중심으로”에서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스탈린이 자신의 논문인 “레닌주의의 기초”를 제1판과 다르게 제2판에서 ‘수정’하면서 1판의 국제주의를 버리고 2판부터 ‘일국사회주의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반박하고 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이 ‘수정’을 ‘증거’로 스탈린의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대한 배신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필자는 상세한 전거를 들어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고 있고 나아가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비판해 마지않는 ‘일국사회주의’가 실제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즉,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은 세계혁명에 대한 배신과는 전혀 거리가 멀고 반대로 세계혁명과 일국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변증법적으로 통일시키는 노선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필자는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의 현실적 의의를 복원함과 함께 그것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즉, 일국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가능성의 문제와 일국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보증하고 제국주의의 간섭으로부터 혁명을 보장하는 문제를 구분해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혼동할 경우 사회주의 건설의 내적인 동적 구조를 기계적으로 파악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스탈린이 이를 구분한 대로 일국 사회주의의 의미를 위와 같이 구체화시킬 때 제국주의체제에서 혁명의 성공과 사회주의의 건설의 문제에서 편향을 범하지 않고 정확한 노선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최상철의 “쿠바혁명 50년: 혁명의 매개체로서의 문화․예술”은 쿠바혁명과 쿠바의 문화예술에 대한 잔잔한 애정을 담고 있는 글이다. 이 글에서는 혁명 후 시작한 문맹퇴치가 불과 1년 만에 전반적인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으로 혁명의 성과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문화예술에 대한 쿠바혁명정부의 태도가 현실주의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대결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자와 제국주의자이지 추상미술이 아니다’라는 카스토로의 언급을 소개하면서 쿠바의 예술에 대한 정책이 유연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 을 ‘삐딱하게 보기’ 그리고 쿠바의 음악인 ‘누에바 뜨로바(신음유가요)’ 등을 소개하면서 쿠바의 문화․예술의 현실과 그 힘을 전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필자는 쿠바가 미국의 봉쇄 정책에 맞서 문화를 통해서 라틴아메리카의 단결을 강화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났음을 말한다. 그러나 쏘련 붕괴 후 동맹자와 지원을 잃은 ‘특별한 시기’를 경과하면서 쿠바가 관광산업을 강화하고 그리하여 쿠바화폐보다 달러화의 영향력이 커졌던 현실 또한 짚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은 혁명과 문화․예술의 관계에 대한 하나의 사례보고이고 나아가 문화․예술에 대한 노동자적, 사회주의적 접근의 하나의 사례라 할 수 있다.

문영찬의 “코뮨주의 선언인가, 청산주의 선언인가― 이진경 등의 ‘코뮨주의 선언’ 비판”은 이진경, 고병권 등이 제기한 코뮨주의 선언에 대한 비판의 글이다. 한때 전위조직 운동을 했던 이진경 씨가 맑스-레닌주의 운동을 철저히 청산하고 관념론적인 도피로 향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대중에 대한 이해, 사회주의의 정치, 철학, 개인과 사회의 관계 등에서 철저하게 기존의 맑스-레닌주의 운동의 골간을 해체하고 있으며 철학적으로 관념론으로, 끝내는 신학적 도피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사회주의 운동은 대중에 대한 신뢰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그러나 고병권 씨는 대중은 파악불가능한 주체이며 파악가능하게 되면 그것은 대중의 죽음이라 선언한다. 그리고 기존 운동의 민족, 계급, 민중이라는 개념은, 대중이 흐름이 아니라 고정된 것으로서 대중의 죽음이라 한다. 이는 기존의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철저한 부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극단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은, 그들이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해 반성이 아니라 청산주의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반성과 자기비판의 길이 아니라 청산주의의 길을 걷는 것은 매우 편리한 것이다. 그러나 청산주의는 운동을 해체할 수는 있지만 운동의 전진에 기여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청산주의에 대한 단호한 비판만이 운동의 새로운 전진을 위한 전제일 것이다.

박석삼의 “기본소득을 둘러싼 쟁점과 비판”은 최근에 사회당 등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기본소득론에 대한 비판의 글이다. 기본소득이 언뜻 보편적인 사회복지를 말하는 것 같지만 실은 자본과 노동의 적대라는 생산에서의 적대관계에 대한 투쟁 없이 공상적인 숫자놀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드러내고 있다. 또한 기본소득을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인 사회주의 단계를 생략하고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 즉, 필요에 따른 분배로 곧바로 이행하는 이행전략이라는 주장에 대해 그 허구성을 비판하고 있다. 필요에 따른 분배라는 기준은 개인의 개성의 발전이 사회전체의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임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계급적 적대로 충만한 자본주의를 계급투쟁에 의해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본소득을 사회이행전략으로 제기하는 것은 현실의 계급투쟁을 호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이 나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치열한 과학적 탐구정신이 실종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박석삼의 비판은 이러한 허구적이고 개량주의적인 흐름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번역 글이 2편이다. 그리스 공산당의 “1995년 테제”와 모택동의 “인민내부의 모순을 정확히 처리하는 문제에 대하여”(1956년)가 번역되어 실렸다. 그리스 공산당의 “1995년 테제”는 쏘련과 사회주의권의 붕괴라는 당시의 상황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다. 다시금 사회주의가 무너져 내리던 당시에 대한 기억이 뇌리를 스칠 수밖에 없는 글이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 공산당이 현실을 회피하는 청산주의가 아니라, 힘든 과정이었지만 꼭 필요했던 반성과 자기비판의 길을 걸어갔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자기비판의 과정이 있었기에 현재의 그리스 공산당이 세계적 영향력을 획득하면서 강건한 대중투쟁을 이끄는 중심이 될 수 있었다. 그리스 공산당의 “1995년 테제”는 무엇보다도 20세기 사회주의가 무너진 후 4년밖에 되지 않는 시점에서, 청산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의 역사적 공헌을 긍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계와 오류가 있었지만 20세기 사회주의 나라들이 자국에서 이루었던 성과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주었던 영향들과 성과들이 긍정된다. 그러면서도 사회주의가 무너졌던 원인에 대한 치열한 탐구와 반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아가 맑스-레닌주의 이론은 사회주의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타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진실성이 확증된다는 선언을 한다. 즉, 사회주의 나라들이 맑스-레닌주의로부터의 이탈로 인해 무너졌다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그리고 쏘련 등의 붕괴의 원인에 대해 스탈린에 대한 탄핵 이후 수정주의가 득세하여 사회주의 사회를 갉아먹고 당과 국가의 역할이 무너졌다는 것을 들고 있다. 이러한 그리스 공산당의 테제는 고통스럽지만 진실과 마주하려는 사람에게는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그리스 공산당의 “1995년 테제”가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면, 반대로 모택동의 “인민내부의 모순을 정확히 처리하는 문제에 대하여”(1956년)라는 글은 사회주의가 혁명을 승리로 이끌고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향하여 나아가는 와중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글이다. 그에 따라 이 글은 매우 진취적이고 담대하고 그러면서도 솔직한 기백을 담고 있다. 1956년에 헝가리에서 발생한 폭동을 접하여 충격을 받은 모택동은 모순은 적아(敵我)의 모순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 내부의 인민 간의 모순도 중요함을 깨닫고 그것의 해결을 통하여 사회주의 건설을 이루어야 한다는 즉, 사회주의 건설의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하여 인민내부의 모순으로서 노동자 계급과 농민 간의 모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모순, 도시와 농촌의 모순, 그리고 인민과 국가 관리와의 모순 등 제반의 모순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모택동의 인민내부 모순에 대한 글은 우리에게 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원동력이 되는 모순은 바로 인민내부의 모순이라는 것,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 주요 모순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민내부의 모순의 성격과 해결방도에 천착함으로써 우리는 이후 도래할 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방법과 전망에 대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며 뿐만 아니라 현재의 운동 내부에 존재하는 모순들, 즉 대중과 지도의 모순, 노조관료와 조합원 간의 모순, 내부 사상투쟁에 필요한 원칙 등 많은 것을 시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의 글

2010년 5월 1일

≪노동사회과학≫ 편집책임자 문영찬

 

목차

 

편집자의 글

채만수 ≪자본론≫의 논리와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손미아 ≪자본론≫과 노동자계급의 건강  ― 맑스시대와 현대자본주의시대에서 노동자계급 건강악화의 기원

백철현 쏘련 사회주의의 붕괴  ― 계획과 시장의 문제를 중심으로

김해인 소위 ‘일국사회주의론’에 대한 왜곡  ― 스딸린의 “레닌주의의 기초”와 “레닌주의의 제문제”를 중심으로

최상철 쿠바 혁명 50년: 혁명의 매개체로서의 문화․예술

문영찬 코뮨주의 선언인가 청산주의 선언인가? ― 이진경 등의 ‘코뮨주의 선언’ 비판

박석삼 기본소득을 둘러싼 쟁점과 비판

그리스공산당 중앙위원회 그리스 공산당 테제(1995년) ― 유럽에서 사회주의 체제의 전복을 결정지은 요인들에 대한 생각들

마오쩌둥(毛澤東)  인민내부의 모순을 정확히 처리하는 문제에 관하여(1957년 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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