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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노동자 동지들이 끊임없이 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노동자계급의 전반적 상태는 나아지고 있지 않다. 실업ㆍ빈곤ㆍ해고ㆍ비정규직ㆍ정리해고ㆍ장시간 노동 등등은 여전히 노동자의 삶을 옥죄며 위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참으로 비통하게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산업현장ㆍ건설현장에서 죽어가고 있고, 목숨을 바쳐 죽음으로 투쟁하고 있다.
나아질 전망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나아지기는커녕, 재생산과정의 전면적 자동화ㆍ무인화, 소위 인공지능(AI)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비약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과학기술혁명의 성과의 자본주의적 이용으로 노동자들의 이러한 비참한 상태는, 더욱 악화될 것임을 자본주의적 생산의 목적과 그 운동법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능히 알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분명 우리 사회 노동운동의 총노선과 기풍을 근본적ㆍ반성적으로 재점검하고, 혁신할 것을 요구하는 것 아닌가?
미제의 군정 하에서, 그리고 그것을 계승한 이승만ㆍ박정희ㆍ전두환 정권 하에서 엄청난 학살과 폭력으로 압살되었던 노동자계급의 자주적 운동이 가까스로 재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보자. 우선 투쟁의 방식부터.
주지하는 것처럼, 오늘 우리가 엄숙히 기념하는 53년 전 전태일 열사의 투쟁, 그 자결 투쟁은 자주적 노동운동을 재생시키는 충격적인 계기였다. 그런데 전태일 열사는 왜 자결이라는 비극적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누가 보더라도, 노동운동이 철저히 압살된 절망적 상태라서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 이는,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시던,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향한 이소선 어머님의 누차에 걸친 당부에서도 명백하다.
그런데 53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 애초에 자주적 노동운동 조직인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을 깨부수기 위한 깡패조직으로 출발하여 노동자들의 자주성을 으깨는 어용노조였던, 그러나 저간의 상황을 반영하여 많이 변하긴 했지만 아직도 그 체질을 완전히는 극복하지 못한 한국노총을 도외시하더라도 ― 그 조합원이 120만 명에 이르는 민주노총이 엄연히 존재하는 오늘날에도 저 비극적 자결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단식이나 소위 ‘오체투지’ 같은 자학적 투쟁이나, “존경하는 재판장X” 운운하는 굴신적 투쟁(?)은 말할 필요도 없고! ― 과연 이래도 좋은 것인지?
이러한 무기력하고 비극적이기까지 한 ‘투쟁’ 방식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그리고 사실은 세계적으로도, 노동자계급 운동이 그 혁명성, 그 해방의 전망을 상실한 채, 기껏 경제주의와 조합주의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요즘의 투쟁 방식, 그 양태를 1970년대나 특히 1980년대 중ㆍ후반의 그것들과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 당시는 객관적 제반 조건도, 주체적 역량도 지금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했고, 취약했지만, 혁명적 전망, 해방의 전망을 견지하며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그 투쟁의 방식과 기풍도 결코 무기력하거나 비극적이지 않았다. 바로 그렇게 혁명적 전망과 해방의 전망 위에서의 투쟁, 그러한 전망에 기초한 투쟁이었기 때문에 그들 투쟁은 공세적ㆍ성공적이었고,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더 나아가 민주노총이라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1990년대 중ㆍ후반 이후 시나브로 상실해왔고, 이제는 사실상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노동자계급 운동의 혁명성, 해방의 전망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리고 어떤 구실로도, 부르주아ㆍ소부르주아 정당들에 어떤 기대도 걸어서는 안 된다. 어떤 유력 정당도 저 천하의 ‘민주적’ 법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뿐 아니라, 예컨대, 노동자들의 투쟁을 결정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든 것이, 마치 민주화 투쟁의 상징마냥 떠벌려지는 김대중, 그 정권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박정희ㆍ전두환 등도 해낼 수 없었던 ‘화염병 금지’를 통해서! ― 국가의 폭력, 폭력 장치들은 ‘그대로’인(?) 채!
최근 정세와 관련해서 보자면, 국가가 회계를 보고하라는 둥, 조합원 수를 보고하라는 둥, 노동조합의 최소한의 자율성도 부인하는 요구를 강제하고 드는 것도, 그러한 부당한 요구에 양대 노총이 굴신하고 드는 것도, 서로가 오늘날 노동운동의 ‘위력’을 익히 알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이 사회의 당장의 과제인, 저 전쟁의 위기까지 고조시키고 있는 극우 정권 퇴진 투쟁을 당연히 최대한 힘차게 벌여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윤석열 퇴진’ 같은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정치 투쟁의 의제 속에 갇혀서는 안 된다! 계급의 폐지ㆍ해방 투쟁으로서의 노동자계급 운동의 독자성을 견결히 지키고 강화해서, 그 역사적 책무를 완수해야 하는 것이다.
경제주의ㆍ조합주의의 타성을 떨쳐내는 것이 시급하다. 노동자계급 운동이 나아갈 길은 결코, 있지도 않은 배부른 노예의 길이 아니라, 해방의 길이기 때문이다. 자학적ㆍ굴신적 투쟁 방식들을 떨쳐내고, 공격적 투쟁의 기풍을 확립해야 한다. 투쟁은 상대의 자비ㆍ관용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굴복시키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민주노총의 혁신’,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문제여서, 특히 선진적 노동자들의 정치적ㆍ이념적ㆍ조직적 역량의 강화가 절실하고 시급하다.
경제주의ㆍ조합주의의 타성을 떨쳐내고, 혁명적 기풍을 세우고 실천하자!
2023년 11월 11일
노동사회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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