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현장: 소성리 소식] 미치도록 눈부신 소성리 투쟁

 

은영지 | 회원

 

* 이 글은, 지난 6월 22일(목)에 있었던, 2021년 5월 이후 362번째 ‘불법사드기지 완성과 미군 육상통행로 확보를 위한 군경 작전 저지 투쟁’ 현장을 담은 것입니다.

 

 

민중의 안전과 생존권을 위협하며 무기 장사꾼 미제의 안보팔이에 놀아나고 있는 윤석열 정권이 사드기지 환경영향평가 완료를 선언하며 대국민 사기를 치고 있어 소성리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되고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언론은, 사드기지 전자파가 0.189%밖에 안 나오는 안전한 수치로 밝혀졌으니 사드 괴담이 종식되었다고 억지 주장을 하며 정부의 입노릇을 하기에 바빴다. 법과 언론을 장악한 윤석열 정권이 사드기지에 대한 공신력 있는 조사 한번 제대로 하지 않고 거짓 수치를 발표하는 통에 힘없는 민중은 냉가슴을 앓고 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소성리 평화행동은 더없이 비장했다. 도로 집회가 불법이니 나가라는 경찰의 구박과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드와 미군 빼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마지막까지 길 위에 앉아 계시던 백광순 어머니는 서러워서 울음을 토해 냈다.

“여기서 죽겠다! 내 오늘은 안 나갈 거야!

이게 뭐하는 짓이냐!”

 

 

6시 30분에 집결한 아침 평화행동은 박석민 김천대책위 자문위원의 힘찬 발언으로 시작되었다.

 

“윤석열 정권은 기만적으로 진행한 사드기지 일반환경영향평가 완료를 선언했는데 성주대책위 박수규 대변인은 ‘이 새끼들은 똥을 쌀 때 바지도 안 내리고 똥부터 싸고 바지 내린다’라는 유명한 어록을 남겼죠. 그럴 정도로 기만적 환경영향평가가 마무리됐고 우리 예상대로 전자파는 주변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고 기준치의 0.19%밖에 안 된다, 이렇게 발표를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오늘 오후 2시 국민의힘 경북 당사 앞에서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지금 불법으로 배치된 사드를 한미가 하반기에 연합 훈련한다는 발표도 나오고 있고 어쨌든 저들은 사드기지 정상화를 선언하면서 훨씬 더 공고하게 운용하려고 하겠지만 우리가 여러 번 얘기한 대로 이 사드 싸움은 우리가 끝났다고 해야 끝나는 거죠. 우리가 사드 뽑고 이 싸움을 끝내야 끝나는 겁니다. (박수.)

지난주 소개된 1세대 여성 농민 운동가들의 기록인 ≪미치도록 눈부시던≫ 그 책 다들 읽으셨죠? 저는 그 책 읽으면서 막 눈물이 나더라고요. 소성리 임순분 부녀회장님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소성리에 농민 운동의 또 한 증인인 이석주 이장님도 계시니 제가 농민 운동을 얘기하는 게 맞나 생각이 들지만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정부와 싸워서 이겼던 싸움이 있어요. 1976년부터 78년까지 싸웠던 ‘함평 고구마 투쟁’이죠. 정부가 아무리 힘이 강하고 국가 권력을 동원해 민중을 탄압해도 이기는 싸움도 있는데 이기는 큰 원동력이 과연 뭐였을까 같이 공유하려고 합니다.

함평 고구마 투쟁은 1976년부터 햇수로 3년 동안 함평 농민들이 농협이 거짓말로 농민들을 속이고 국가 권력이 억누르려고 했던 것을 싸워서 이겼어요.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승리했던 싸움이기도 합니다. 농민들은 피해보상금으로 309만 원을 요구해서 결국 다 받았는데 160개 농가에 대한 보상금이죠. 그런데 어떤 농가는 23원 받았어요. 고작 23원 받으려고 3년을 싸웠나 생각할 수 있지만 그 23원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승리이고 농민들이 해방과 주인되는 세상으로 나가는 그런 힘’이었던 거죠. 그게 바로 고구마죠.

제가 10m 되는 텃밭에 고구마 두 줄을 심어 놨는데 3월, 4월에 모종을 심기 시작해서 6월에 본밭에 심어요. 그리고 10월에 캐요. 고구마는 일 년 중 3분의 1을 농민이 돌봐야 하는 작물이에요. 근데 함평 싸움에서 ‘저것들[탐욕스런 농협과 정부]이 고구마를 고구마로 안 보니까 고구마가 화난 겨’ 이런 얘기가 생겼단 말이야. 정부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돌이켜 보면 대구 경북에서 신처럼 떠받들었던 박정희 때문에 이 싸움이 시작돼요.

박정희가 61년에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난 다음 해에 농협 임직원 임명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만들어요. 농협은 어떻게 만들어진 거냐 하면 해방 후 농민들이 새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단독으로 만든 조직이에요. 그래서 상호 부조, 경제적인 지원 이런 것들을 위해 자주적, 민주적으로 운영했던 조직인데 이 임원을 정부가 임명하는 걸로 박정희가 바꾼 거예요. 그래서 정부의 산하 권력 기구가 되면서 얘네들이 괴물이 되기 시작해요.

농협이 정부의 지침대로 일을 하면서 76년 함평에서 고구마를 전량 수매하겠다고 발표했어요. 당시에 고구마 한 가마니 값이 1317원이었대요. 평소 팔던 것보다 훨씬 더 높아. 이러니까 모든 농가가 고구마 농사를 지은 거야.

게다가 농협에서 고구마를 담을 수 있는 포대도 나눠 주니 철석같이 믿고 고구마를 생산해서 작년 대비 25%가 늘어난 거예요. 그런데 농협 이 새끼들이 쌩깠어. 수매를 안 하는 거야. 40% 정도 수매하고 나머지를 방치했는데 그러니 일 년의 3분의 1을 자식처럼 돌본 고구마를 농협에서 실어 가라고 다 내놓고 해서 썩어 가기 시작한 거야.

나중에 고구마가 서리 맞고 다 버려야 되니까 농협이 중간 상인들한테 넘기라고 얘기하고 이에 농민들은 화가 나서 그해 11월 함평 농민 17명이 대책회의를 해서 ‘고구마피해보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요. 피해보상을 받기 위해 7천3백 농가를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정부가 압력을 넣어 조사가 잘 안돼요. 당시엔 유신 말기잖아요. 박정희가 권력을 유지하려고 아주 생난리를 치고 했던 시기였는데 농민들이 위축되죠. 정부한테 찍히면 안 되고 이런 것 때문에 조사가 잘 안되고 160개 농가만 조사를 해서 나온 피해보상금 309만 원을 전체 농가로 확대해서 유추해 보니 24억 원이야. 농민들이 계산한 것만 해도 지금 돈으로 하면 2천억 정도 되는 거죠.

76년 4월 광주에 있는 대동성당에서 1차 농민 기도회를 하고 이 요구 가지고 싸우는데 정부가 가만히 있겠어요. 탄압하지. 탄압을 이겨 내면서 끝까지 일 년 내내 이 싸움을 한 거예요. 근데 농민은 해가 뜨면 밭에 나가 작물을 키우고 돌보는 게 천직이잖아요. 그렇게 일 년 농사지으며 이 싸움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 아니에요. 그러다가 그 다음 해 2차 농민 대회를 광주 북동성당에서 하고 금남로로 행진하려고 하는데 막혀요. 그래서 단식 투쟁에 돌입해 결국 박정희 군부독재가 손을 들어서 단식 4일 만에 교섭이 돼요. 그때 천주교 광주 대교구 윤공희 신부가 주선한 자리에서 교섭장이 아주 웃겨요. 전남 농협 본부장, 함평 농민회, 중앙정보부 전남 본부장, 윤공희 대주교 이렇게 모였는데 농민 대표로 서경원 전 의원이 나가요. 머리띠를 딱 매고 나가니 김광호라는 당시 중앙정보부 전남 본부장이 머리띠라도 풀라고 하고 서경원 의원은 이 싸움 끝날 때까지 머리띠 못 푼다, 버텼어요. 그렇게 교섭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농협 애들이 ‘함평 농민들 3년 동안 보상금 다 받았다. 근데 지금 보상금 내놓으라고 싸우는 거다.’ 이렇게 거짓말하고 정부에 보고한 게 들통이 난 거예요. 농협 얘네들이 도덕적으로 밀린 거지. 그래서 첫날 협상이 결렬되지만 그다음 날 교섭에서 농협이 백기를 들고 309만 원 다 줄게, 다만 생산장려금으로 하겠다, 이렇게 말했지만 농민들은 거부하고 반드시 고구마 피해보상금이 돼야 한다, 요구해서 결국은 농민 요구대로 통과돼요. 농민들은 그때 6개 항을 가지고 싸웠는데 일단 고구마 피해보상, 함평 농민조합장 사퇴, 전남 조합장 공개 설명, 농협 임직원에 대한 정부 임명 조항 철회 요구를 가지고 싸웠죠.

얘기를 옆으로 빼면, 농협이 지금 괴물이 돼 있는 거예요. 면 단위 농협 조합장 되려면 20억 쓰면 떨어지고 2~30억 이상 써야 된다며요. 그래서 전국 선거 중 가장 타락한 선거가 농협 조합장 뽑는 선거라고 얘기하잖아요. 이렇게 괴물, 거대 공룡이 된 농협이 진 거예요. 정부의 산하 기구인 농협에 대해서 권력의 시녀, 정부 지침대로 해서 고리대금업 이렇게 비난이 터진 거죠.

그런데 4월 28일 농성 중 농민 대회를 협의하려고 농민 2명이 나갔다가 경찰에 연행되는 사건이 터져요. 보상금 문제에 관련된 합의는 끝났지만 농민 내보낼 때까지 이 싸움 안 끝낸다, 그러면서 단식을 계속해요. 싸움도 이렇게 의미 있게 해야 되는 거야. 5월 2일 농민 2명이 석방되면서 이 싸움이 마무리돼요. 그래서 함평 농민 투쟁, 고구마 투쟁은 단순히 함평 지역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전국 이슈가 돼요. 농민들이 전국을 다니며 알리고 설명회를 하면서 당시에 박정희에 맞서 싸우는 민주 세력들이 같이 싸워서 광주 지역 연대 운동에 한 기틀이 되기도 해요.

함평 고구마 투쟁을 보면서 만약 그때 농민들이 정부에 굴복하거나 싸움을 접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힘들고 외롭고 어렵기 때문에 이 싸움을 포기했으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함평 고구마 투쟁이라고 하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안 써졌을 거 아니에요? 이 싸움이 끝난 후 감사원이 전남 지역 4개의 농협 조사를 했는데 이 농협 새끼들이 뭘 했냐 하면 고구마 전량 수매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농민들한테 안 사고 중간 상인들한테 사면서 전량을 산 것처럼 허위 보고를 한 거예요. 그래서 659명이 징계를 받았어요.

당시 감사원이 조사한 피해 금액이 80억 원이었어요. 지금 기준으로 보면 8천억 원 정도 되는 액수예요. 당시 동아일보가 ‘단군 이래 최대의 부정사건’이라고 썼어요. 농민들이 그런 피해를 입으면서도 싸움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 싸움이 농민 운동사, 민중 운동사에 연관돼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는 훨씬 더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어요. 단순히 정부와 싸우고 고구마에 대한 피해보상 이런 차원을 뛰어넘는 미제 새끼들하고 싸워야 하잖아요. 우리 백 목사님이 늘 말씀하시는 대로 저 악랄한 미제 새끼들하고 싸우는 거 그리고 그 하수인인 국가 권력과 싸우는 거야. 여기서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싸워야 소성리와 김천의 싸움, 사드 반대 투쟁이 이 땅의 평화를 지켰어, 이렇게 나중에 얘기할 수 있잖아요. 맞죠? (예~)

그걸 포기하지 않는 오늘, 1946년 오늘 아주 뒤늦게 광복군이 돌아온 날이에요. 조선 독립을 위해 싸웠던 광복군들이죠. 79년에 카터 미국 대통령이 남북 간의 대화를 빨리 진행하기를 희망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던 날이기도 해요. 우리가 이 싸움으로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 냅시다. 윤석열이 꼬라지 보면 남북 대화하겠어요? 이 역사는 우리가 바꿔 낼 거예요. 다시 출발하게 되면 우리는 출발 지점이 있잖아요. 판문점 선언, 평양 선언, 거기서부터 다시 출발하게 되는 거죠.

오늘 어쭙잖게 농민 운동의 산증인들이 계시는 이 자리에서 제가 농민 운동을 얘기한 건 사드가 아무리 걔네들이 안보를 위해서 거짓부렁을 한다고 해도 거짓인 걸 우리가 알고 있고, 이 땅의 평화를 위해서 싸우는 우리들의 싸움이 정의롭고 반드시 이긴다는 걸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확인하면 좋겠다 싶어서 말씀드렸어요. 많이 힘들고 지치기도 하지만 이 싸움을 이기는 또 하나의 힘은 우리 내부가 어떤 일이 있어도 단결하고 더 큰 연대를 모아 내고 등불이 되기도 하고 결국은 승리로 나아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함평 고구마 투쟁 역사를 들으면서 답답하고 절망적일 것만 같았던 우리 현실에 한 줄기 빛을 발견한다. 원불교 강현욱 교무가 마이크를 잡고 윤석열 정부가 완료했다고 떠벌리는 환경영향평가의 기만성을 알려 주었다.

 

“어제 신문 기사를 보니까 국민의 독[국힘당]이 괴담 벗었다 이렇게 나오더라고요. 그 내용을 진짜로 딱 0.5cm만 벗겨 놓고 보면 뭐가 괴담인지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전자파 결과가 인체 위해 기준이 미미한 0.2% 나왔다라고 했는데 2017년부터 2022년까지 했던 전자파 측정 자료가 어땠는지 우리 전부 다 기억하고 있죠? 레이더 켰을 때 한 번, 껐을 때 한 번 측정했다고 합니다. 전자레인지 코드 꽂았을 때 한 번, 코드 뺐을 때 한 번, 레이더 전자파를 방사했는지 안 했는지, 탐지할 때 방사했다는 건지, 추적할 때 방사했다는 건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국방부와 환경부 관계자한테 물어봤을 때 그런 건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냥 켰을 때 한 번, 껐을 때 한 번 전자파 측정을 한 게 전부예요.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일반환경영향평가를 선언한 뒤 세 차례 전자파 측정을 어떻게 했을지는 뻔하죠. 말 그대로 이건 조작된 결과입니다. 조작된 결과가 인체에 무해하다고 이야기하는 거 괴담이고 사기 아닙니까? 속을 만한 건덕지라도 있어야 사기라 하지, 후쿠시마 오염수가 인체에 무해하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걸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물론 사드 레이더에서 나온 전자파가 무해하다는 기준에서는 특히 국민의 독 정당에 아주 쩔을 때로 쩔은 중독자들 말고는 이 사안에 대해서 ‘그렇구나 그냥 어물쩍 넘어가려는 거구나’라고 모두들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그 사안에 대해서 우리의 입장을 강력하게 밝히고 향후 투쟁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결의를 다져 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의 투쟁이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 계속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기자회견에 많이 참석해 주시길 바랍니다.”

 

 

백창욱 목사도 개신교 평화예배를 주관하면서 ≪미치도록 눈부시던≫을 화두로 삼았다. 오늘의 사드 투쟁과 연결한 목사님의 독후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미제가 해방 후 이 나라에서 어떻게 해 왔는지, 그 속에서 우리 민중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권력의 학대를 당했는지, 그 속에 처해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이런 걸 우리가 자각하기 때문에 이 투쟁의 길에 나선 거 아니겠습니까? 결코 물러설 수 없는 현실인 걸 우리가 자각을 한 거죠. 어느 여성 농민 운동가의 글입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말해야 되는데 들어 보십시오.

‘내가 나서지 않으면 그 마음 누가 알아주나. 내가 모르면 몰랐지 알았으면 행동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어디든 교육만 있으면 댕겼지.’ [여성 농민 운동가의 글 중에서.]

모르면 몰랐지 알았으면 행동으로 해야 한다. 그렇죠? (네.) 우리가 몰랐을 때, 사드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다 그냥 평범하게 살았어요. 그러나 사드가 들어오는 과정부터 진행되는 모든 일의 결말, 거기에서 이 권력이 미제와 어떻게 장단을 맞춰서 민중을 학대하는지 몰랐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알았으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싸워야 합니다.) 예~ 못된 권력과 미제의 교활함에 우리가 저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사람’이라는 걸 증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자주민이라는 걸 나타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때 그것을 우리는 노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노예여야 하겠습니까? 자유인이어야 하겠습니까? 서결아~ 자유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이놈아 너는 아니다.

‘그런데 운동을 하면서 내 권리 내가 찾는 거니까 늘 당당해야 한다. 바른 걸 외칠 때는 어디를 가나 주저하지 말고 쫄지 말고 직진해라. 이 생각이 절로 나더라니께.’ [여성 농민 운동가의 글 중에서.]

바른 걸 외칠 때는 어디를 가나 주저하지 말고 쫄지 말고 직진해라. 여러분 이거 우리한테 하는 말 아닙니까? 우리가 정말 얼마나 정당한 투쟁을 하고 있습니까? 옳은 소리는 입 밖으로 내야 하고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아멘~ 할렐루야~ 투쟁!!) 머릿속에만 두고 관념적으로만 생각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맞아요.) 우리가 서로 관심법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걸 우리가 우리의 의사, 우리의 의지, 우리의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외쳐야 합니다. 사드를 철거시키라고 외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렇게 외쳐도 이놈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잖아요. 그럴 때 어떻게 합니까? 몸으로 저항해야 하는 겁니다. 신체적으로 보여 줘야 합니다. (맞습니다.)

이 책 속에 우리 임순분 씨가 나오잖아요.

여러분 우리 임순분 씨 말 잘 들읍시다!! 왜 제 마음이 안타까웠냐 하면 다른 분들은 다 최소한 30년 전의 이야기들을 소회로 하고 있어요. 우리 임순분 씨만 아직 현재 진행형인 투쟁 현장에 계시잖아요. 저는 그게 참 안타까웠어요. 이젠 그냥 옛날 얘기하며 편하게 계셔야 하는 분이 사드 때문에 소성리 현장에서 힘겨운 투쟁을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심금을 울리는 백 목사의 설교가 진행 중임에도 경찰들이 주민과 지킴이들을 끌어내느라 소란스러웠다.

“왜 미국 놈 때문에 우리가 나가야 되는데… 내 땅에 내가 앉아 있는데 그렇게 문제예요? 목사님 설교 끝날 때까지 기다려요.” “미국 놈 비호하는 부역경찰 물러나라.”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지킴이들의 외침과 함성이 끊이질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길 밖으로 내동댕이쳐지고 끌려 나오며 목사님의 마무리 설교를 새겨들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관문이 미제 타파입니다. 우리가 미제를 타파하면, 자주 국가, 독립 국가로서 손색이 없어요. 미제 타파는 사드 철거 투쟁으로 기어이 돌파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오늘도 힘차게 담대하게 전진합시다.”

“우리가 주인이다! 우리의 마을길을 미군의 보급로로 내줄 수 없다! 사드 빼라! 미군 나가라! 경찰도 나가라!”

 

‘미치도록 눈부신’ 외침이 끝도 없이 나왔을 때 ‘미치도록 눈부신’ 햇살이 화답하듯 소성리를 감싸 안았고 그래서 더욱 서러운 우리 어머니들은 눈물을 흘렸다.

7~8년이라는 징글징글한 세월이 흘렀으며 앞으로도 사드 뺄 때까지 멈추지 않을 ‘미치도록 눈부신 소성리 투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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