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숙 | 자료회원
* 이 글은, 지난 5월 25일(목)에 있었던, 제344차 소성리 아침 평화행동 현장을 담은 것입니다.
“윤 “엄정 대응” 한마디에…경찰, 6년 만에 ‘집회 해산ㆍ검거 훈련”(5월 24일 자 ≪한겨레≫)이라는 기사가 1면에 크게 실렸다.
“이번 기회에 모든 기동대원의 정신 재무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으나, 기동부대 역량 강화 측면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추진할 것”, “현장활력소(내부망)ㆍ블라인드 등을 통한 직원들의 불만 및 비난은 감수할 것” 등 강경한 발언도 실렸다. 그래서 신고제인 집회가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는 모양새라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진작에 집회가 허가제인 양 여겨졌다. 아직 정식 배치도 되지 않았음에도 집회 제한 통고를 하루 전날 저녁에 내린다. 그리고 몇 번 방송을 하다가 해산 작전을 편다. 조금 젊은(?) 소성리 형님들은 가마에 태워지고 다른 지역에서 온 주민들은 얄짤없이 먼저 해산당한다. 벌써 햇수로 3년째, 날로 따지면 344번째 그 일이 되풀이된다.
오늘도 그렇게 사람들은 새벽 조금은 쌀쌀한 기를 느끼면서 자리에 앉아 원불교 기도회를 시작했다. 강현욱 교무가 이끌었다. 영주와 법어 낭독, 기도, 그리고 설교.
“어제 11시 세월호 10주기를 준비하는 위원회 발족식이 있었습니다[벌써 9년의 세월이 흘렀구나!]. 얼마 전 박대출 의원이 물대포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대포를 맞아 보셨나요? 4ㆍ16 1주기 되는 해, 유가족과 시민을 향해 물대포를 쏘았습니다. 304명 목숨을 구하지 못한, 안한 정권이 대화는커녕 가만히라도 있지 슬픔과 분노에 잠긴 유가족에게 보낸 물대포입니다. 그해 11월인가에 백남기 농민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당에서 또다시 물대포 운운합니다. 아, 이들은 군사 정권처럼 기회만 있으면 서슴없이 총칼을 들이밀었을 것이다. 저 광주처럼 이태원 참사 유족에게도, 이곳 소성리에도 쏘지 않았을까? 이 정부에서 얼마나 다시 물대포를 사용하고 싶은지 잘 보여 줍니다.
어제 양회동 열사 추모집회에서 왜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왜 사람이 159명 죽어야 하는지? 그 슬픔이 채 가시기 전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몸을 불살라야 하는지? 촛불을 들고 적폐 정권을 몰아냈는데 왜 목숨을 바쳐야 하는지? 분명 역사는 변하는 것 같은데 왜 이리 더디게 변화하는지?
대종사님 법문은 들을수록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동포하면 드는 생각이 무엇인가요? 동포는 바로 일하는 사람, 인간이 발붙이고 생명을 유지하는 은혜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소출을 주고받으며 나라와 개인의 생명을 유지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이 동포 은혜입니다.
대종사님이 바라본 진리는 자리이타(自利利他)입니다. 나도 이익이 되고, 너도 이익이 되어야 합니다. 나만 이익이 되어서도 안 되고, 나는 손해나 희생만 하고 다른 사람만 위해서도 안 됩니다. 그렇게 되기 힘듭니다. 자기 일을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면 자연스럽게 사회가 굴러갑니다. 그게 바로 동포 은혜입니다.
윤석열이나 대기업 회장이나 간부들처럼 그 은혜를 받아 살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갖고자 다른 사람을 빼앗아서 죽여서라도 살아가면 자리이타가 깨어지는 겁니다.
자기 자리에서 자리이타하는 것, 거기서 벗어나는 것이 이치와 진리에 대한 배은자, 반역자입니다. 그래서 중생이 고행에 빠지면 구세성자(救世聖者)가 나타나 도덕, 정치, 무력으로라도 중생을 제도합니다. 현실적입니다.
촛불을 든 사람들이, 배은자들의 장난을 막는 모든 이들이 바로 구세성자입니다. 영웅시대는 오래전에 끝났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이 모두 영웅이 되어야 합니다. 구세성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세성자가 되어서 바꾸어야 합니다. 시간의 차가 있을지언정 민중들은 배은자들을 징벌하고 그 장난을 멈추게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단 하나, 그 시간을 줄이는 것입니다. 7년 동안 그 힘의 중심에 다가온 것이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입니다.
이 자리를 더욱 굳건히 세우면서 배은자의 못된 거짓을 함께 막아 냅시다!”
설교가 끝나고 백창욱 목사가 기독교 기도회를 진행하려는데, 경찰이 배치되었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좀 이르게 시작하는 것이다.
어머니들이랑 여러 사람들이 “왜 이렇게 빨리 하느냐”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백창욱 목사도 화가 나서 끌려 나가지 않으려 버티면서 왜 다른 날보다 일찍 해산시키는지 따졌다. 그랬더니 경찰이 “시간은 우리가 판단해서 정한다”며 로봇처럼 딱딱하게 대답했다.
그러는 사이 기다리고 있던 공사차량이 마을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돌아가라!” 사람들이 외치자 어느 인부가 “일당 달라!”고 대꾸한 것 같았다. 말싸움이 벌어졌다. 소희 님이 그걸 찍기 위해 차 앞으로 가는데, “끌어내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소희 님은 땅에 넘어져 “내 몸에 손대지 마라!”고 외쳤으나 끌려 나왔다.
공사차들이 줄줄이 들어갔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많았다. 옆에서 슈퍼 형님이 오늘따라 유별나게 빨리 거칠게 한 것은, 화요일 초전면에서 미군 유류차를 만나 어머니들이 막으려 했던 것 때문에 보복 차원인 것 같다고 했다. 대통령의 지시가 영향을 준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아무튼 오늘 또 그렇게 소성리는 짓밟히고 침략당했지만, 내일 또 사람들은 그 길에 나설 것이다. 왜? 사드가 철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군이 이 땅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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