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이론] 새로운 비합리주의 (상)

 

존 벨라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

| ≪먼쓸리 리뷰(Monthly Review)≫ 편집장

번역: 신재길(교육위원장)

 

* John Bellamy Foster, “The New Irrationalism”, Monthly Review, Vol. 74, No. 9(February 2023). <https://monthlyreview.org/2023/02/01/the-new-irrationalism/#en73backlink>

 

[차례]

1. 서론 

2. 역사 속의 비이성           ㆍㆍㆍ <이번 호에 게재된 부분>

3. 비합리주의의 귀환

 

 

1. 서론

 

제1차 세계 대전, 대공황,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대표되는 1914-1945년의 대위기가 시작된 지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전쟁과 파씨즘의 갑작스러운 부활을 목격하고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특징은 대체로 보아 심화되는 경기 침체, 금융화, 급증하는 불평등이다. 이 모든 것은 핵 참화와 기후 위기라는 두 가지 형태의 지구적 절멸 가능성과 함께한다. 이러한 위험한 상황에서 인간 이성의 개념 자체가 지속적으로 의문시되고 있다. 그러므로 제국주의 또는 독점자본주의와 이성의 파괴와의 관계, 그리고 이것이 현대 계급 투쟁과 반제국주의 투쟁에 미치는 파급 효과에 대한 문제를 다시 한번 다룰 필요가 있다.

 

1923년 ≪역사와 계급의식≫으로 서구 맑스주의 철학 전통에 영감을 준 게오르크 루카치(Georg Lukács)는 1953년 철학적 비합리주의와 자본주의, 제국주의, 파씨즘과의 밀접한 관계에 관한 저서 ≪이성의 파괴≫를 출간했다.[1]Georg Lukács, Die Zerstörung der Vernunft, Berlin: Aufbau-Verlang, 1953. 영역: The Destruction of Reason, London: Merlin Press, 1980. 루카치의 연구는 새로운 미국 제국에 순응하려는 서구 좌파 이론가들 사이에서 폭풍을 일으켰다. 1963년, 쏘련 맑스주의에 격렬히 반대하면서 서구 맑스주의의 일반적 전통 안에서 활동하는 자칭 사회주의자였던 게오르게 리히트하임(George Lichtheim)은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이 은밀하게 자금을 지원한 ≪인카운터 매거진(Encounter Magazine)≫에 기고한 글에서 ≪이성의 파괴≫와 루카치의 다른 저작들을 맹렬히 공격했다. 리히트하임은 루카치가 “지적 재앙”을 초래했다고 비난했다. 이성에서 비이성으로의 유럽 철학과 문학의 역사적 전환, 그리고 이것이 미국의 세계 헤게모니하에서 파씨즘 및 새로운 제국주의의 부상과 갖는 관계를 분석한 것에 대해 비난한 것이다.[2]George Lichtheim, “An Intellectual Disaster,” Encounter (May 1963), pp. 74–79. Lichtheim은 Georg Lukács의 The Meaning of Contemporary Realism, London: Merlin Press, 1963을 … Continue reading

 

물론 루카치가 서구 맑스주의를 지지하는 인물들로부터 그토록 강력한 비난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주요 이론가 중 한 명인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Adorno)는 1958년에 루카치를 공격했다. 이때 루카치는 1956년 헝가리 혁명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여전히 가택 연금 중에 있었다. 아도르노는 점령군인 미군이 창간하고 CIA가 자금을 지원한 저널 ≪데어 모나트(Der Monat)≫에 기고한 글에서 루카치가 “환원적”이고 “비변증법적”이며 “문화 인민위원”처럼 글을 쓰고 “처음부터 자신의 무력감을 자각하여 혼란스러워했다”고 비난했다.[3]Rodney LivingstonㆍPerry AndersonㆍFrancis Mulhern, “Presentation IV”, Theodor AdornoㆍWalter BenjaminㆍBertolt BrechtㆍGeorg Lukács, Aesthetics and Politics, London: Verso, 1977, pp. … Continue reading

 

그러나 1963년 리히트하임이 ≪인카운터≫에서 루카치를 공격한 것으로 인해 루카치의 ≪이성의 파괴≫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는데 리히트하임이 무조건적인 비난을 가했기 때문이다. ≪이성의 파괴≫에서 루카치는 1848년 혁명의 패배와 함께 유럽 대륙, 특히 독일에서 처음 등장하여 세기말 무렵에 지배적인 세력이 된 철학적 비합리주의와 부상하는 자본주의의 제국주의 단계와의 관계를 밝혀냈다. 루카치에게, 비합리주의는 나치즘과의 궁극적인 결합을 비롯하여 우연한 발전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 그 자체의 산물이었다. 리히트하임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죠르쥬 소렐(Georges Sorel),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칼 슈미트(Carl Schmitt) 같은 사상가들과 관련된 철학적 비합리주의와 아돌프 히틀러의 부상을 불법적으로 연결시키는 “지적 범죄”를 저질렀다고 루카치를 비난하며 대응했다.[4]Lichtheim, “An Intellectual Disaster”, pp. 78–79; Lichtheim은 Árápad Kadarkay, “Introduction: Philosophy and Politics”, Georg Lukács, The Lukács Reader(ed. Árápad Kadarkay), Oxford: … Continue reading

 

루카치는 “우리에게 제기된 주제는 히틀러를 향하는 독일 철학의 길”이라는 말로 도발적으로 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비판은 사실 훨씬 더 광범위했고, 비합리주의는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의 제국주의 단계와 더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1960년대 초 서구의 루카치 비판가들을 가장 분노케 한 것은 파씨즘의 역사적 패배와 함께 이성의 파괴 문제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미국 제국주의가 새로운 냉전 시대를 지배하며 더 은밀하게 반동적 경향을 지속적으로 키우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리히트하임은 루카치가 “프란츠 카프카의 악몽”을 미국으로 대표되는 “현대 자본주의 세계의 악마적 성격”의 증거로 취급했다고 비난했다.[5]Lichtheim, “An Intellectual Disaster”, p. 76. 리히트하임이 남긴 인상에도 불구하고, 루카치는 그의 책에서 “카프카의 악몽”을 암시하지 않았다. 인용문을 … Continue reading 그러나 루카치의 주장은 반박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루카치의 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

 

독일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처음부터 민주적인 헌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배계급은, 특히 제국주의 시대에, 민주주의 형태를 매우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민주적인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적어도 히틀러가 폭압적 방법으로 세운 독재만큼이나 확고한 독점자본주의 독재를 달성했다. 소위 원활하게 작동하는 민주주의는 대통령 특권, 헌법 문제에 대한 대법원의 권한, 언론, 라디오 등에 대한 재정적 독점, 독점자본주의의 양대 정당 외에 진정한 민주 정당이 출현하는 것을 성공적으로 막은 선거 비용, 마지막으로 테러 장치(the lynching system)[6][역자 주] 린칭(lynching)은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공개적으로 살해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남부에서 백인들이 흑인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통제하기 … Continue reading의 사용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 민주주의는 공식적으로 민주주의와 단절할 필요 없이 히틀러가 추구했던 모든 것을 실질적으로 실현할 수 있었다. 이에는 독점자본주의의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고 견고한 경제적 기반이 있었다.[7]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 770.

 

이러한 상황에서 루카치는 비합리주의와 “인간에 대한 냉소적 경멸이 쌓여 가는 것”은 “미국 제국주의의 구조와 잠재적 영향력의 필연적인 이데올로기적 결과”라고 주장했다.[8]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p. 792–93. 제국주의와 비합리주의의 관계가 19세기 후반 유럽으로부터 파씨즘을 거쳐 미국이 지배하는 새로운 나토 제국까지 한 세기에 걸쳐 지속되고 있다는 이 충격적인 주장은 당시 서구 맑스주의 철학 전통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에 의해 격렬하게 거부당했다. 무엇보다도 바로 이 점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새로운 자유주의와 협력하는 좌파 사상가들은 루카치의 (1923년 ≪역사와 계급의식≫ 이후의) 후기 작품을 대부분 거의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성의 파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체계적인 비판을 하지 않았다. 이는 ≪이성의 파괴≫가 제기한 중요한 문제에 직면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대신, 서구 좌파는 “진실의 고의적 왜곡”, “700페이지 분량의 비방”, “쓰딸린주의 소책자”라고 매도하며 묵살했다.[9]Árápad Kadarkay, Georg Lukács: Life, Thought and Politics, Oxford: Blackwell, 1991, pp. 421–23; Lichtheim, “An Intellectual Disaster”, p. 76. 최근 한 평론가가 지적했듯이, 서구의 주요 맑스주의자들은 ≪이성의 파괴≫를 몇 마디로 요약되는 사형 선고로 반응했던 것이다.[10]nzo Traverso, “[Introduction] Dialectic of Irrationalism”, Georg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London: Verso, 2021, p. 10. 최근 재출간된 버소(Verso)판 ≪이성의 파괴≫에 … Continue reading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맑스주의 철학자가 ≪이성의 파괴≫를 대표로 하여 서구 비합리주의의 주요 전통을 비판한 작업의 규모를 부인할 수는 없었다. 루카치는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의 다양한 비합리주의 사상 체계를 단순히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취급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생겨난 역사적, 물질적 발전과 결부시켜 설명했다. 여기서 그의 주장은 궁극적으로 V. I. 레닌의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에 의존했다.[11]I. Lenin, Imperialism, the Highest Stage of Capitalism, New York: International Publishers, 1939. 레닌의 주장은 루카치의 저서에서 직접적으로 분석되지는 않았지만 … Continue reading 따라서 비합리주의는 레닌에서처럼 주로 독점자본주의 시대의 역사적-물질적 조건, 강대국들 사이의 전 세계 분할, 헤게모니와 영향권을 둘러싼 지정학적 투쟁과 관련되어 있다. 이는 여러 자본주의 국가 간의 경제-식민지 경쟁으로 나타났으며, 새로운 제국주의 단계의 자본주의가 등장한 전체 역사적 맥락에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이 물질적 현실의 토대는 여러모로 지속되고 있지만, 미국의 세계 제국주의하에서 매우 변형되어 후기 제국주의의 새로운 국면이 발생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때로 거슬러 올라가 곧 냉전으로 바뀌고, 짧은 공백기를 거쳐 오늘날의 신냉전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의미에서 후기 제국주의는 연대순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의 종결, 핵 시대의 출현, 그리고 지구 생태 위기의 도래를 나타내는 지질학적 역사에서 인류세의 시작과 일치한다. 세계 독점자본(보다 최근에는 독점금융자본)의 통합과 미국/캐나다, 유럽, 일본의 삼합체의 집단적 제국주의에 의해 뒷받침되는 단극 세계에서 미국의 세계 패권을 위한 투쟁은 모두 후기 제국주의의 이 단계에 해당한다.[12]후기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John Bellamy Foster, “Late Imperialism”, Monthly Review, Vol. 71, No. 3(July–August 2019), pp. 1–19; Zhun Xu, “The Ideology of Late Imperialism”, … Continue reading

 

후기 제국주의에서 서구 좌파 자체의 역사는 주로 1968년 반란의 패배로 특징지어졌으며, 이후 1989년 쏘비에트형 사회의 붕괴가 뒤따랐다. 쏘비에트형 사회의 붕괴는 서구 사회민주주의 몰락의 주된 결과 중 하나였다. 이러한 사건들은 서구 좌파 전체를 약화시켰고, 궁극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프로젝트의 광범위한 요소들에 일반적인 종속을 의미했다. 결국 서구 좌파는 반제국주의 투쟁 전선에서 이탈하여 혁명과 무관함을 보증하려고 하였다.[13]Xu, “The Ideology of Late Imperialism”; Paweł Wargan, “NATO and the Long War on the Third World”, Monthly Review, Vol. 74, No. 8(January 2023), pp. 16–32를 참조.

 

여기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부터 전 기간 동안 미국 제국의 주요 전쟁터는 글로벌 싸우스(the Global South)였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로 미국이 주도한 전쟁과 군사 개입은 신식민지/탈식민지 시대 내내 맑스주의에서 영감을 받은 혁명과 민족 해방 투쟁에 대한 대응으로 거의 끊이지 않았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제3 세계 일부 지역에서 경제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세계화된 독점금융자본하에서 글로벌 노동 차익 거래와 부채 노역을 통해 체제 주변부 경제에 대한 착취/약탈의 강도가 높아졌고, 그 결과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 간의 세계 체제 양극화도 심해졌다. 현재 제국주의 투쟁 또는 미국이 시작한 신냉전은 미국 주도의 단극 세계 안보를 목표로 하며 글로벌 싸우스 통제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또한 오늘날 미국의 단극 체제에 맞서 경쟁적인 다극 질서를 하겠다고 위협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유라시아 강대국들의 치명적인 약화를 요구한다.

 

후기 제국주의의 위험하고 파괴적인 분위기 속에서 비합리주의는 사상계의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해체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구조주의라는 비교적 온건한 형태를 취했다. 장 프랑수와 리오따르(Jean-François Lyotard)와 자끄 데리다(Jacques Derrida)와 같은 사상가들은 하이데거(Heidegger)를 중심으로 한 철학적 반인간주의를 수용하면서 모든 거창한 역사적 서사를 배제했다. 반면, 오늘날의 새로운 내재성의 철학(포스트휴머니즘, 생기주의적 신유물론,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객체 지향 존재론)은 세간에 좌파로 여겨지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 펠릭스 과따리(Félix Guattari), 브루노 라뚜르(Bruno Latour), 제인 베넷(Jane Bennet), 티모시 모턴(Timothy Morton)과 같은 인물들이 대표하는데 이것들은 더욱 심화된 비합리주의이다. 이러한 사상가들은 니체, 베르그송, 하이데거의 반동적 반근대주의로 거슬러 올라가는 비합리주의적, 반근대주의적 지적 계보에 직접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라깡-헤겔주의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Slavoj Žižek)는 궁극적으로 좌파 하이데거주의에서 비롯된 반인간주의 전통에 편승하여 자신의 저작에서 비합리주의의 축제를 일으켰다. 이 모든 다양한 경향들은 회의주의, 허무주의, 그리고 비관적이고 세상의 종말론적인 전망과 결부되어 있다.

 

≪독점자본≫(1966년)의 마지막 장에 실린 “비합리적인 씨스템”에서 폴 바란(Paul A. Baran)과 폴 스위지(Paul M. Sweezy)는 경제 씨스템의 비합리성부터 사회생활의 근본적인 파괴성에 이르기까지 독점자본주의의 모든 측면에 만연해 있는 이성의 파괴를 탐구했다. 따라서 그들은 “실제 생산 과정의 급속한 합리화와 전체 씨스템의 여전한 기본 속성 [및 비합리성: J. B. 포스터] 사이의 갈등이 점점 더 첨예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14]Paul A. BaranㆍPaul M. Sweezy, Monopoly Capital,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66, pp. 338, 341. 바란은 스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맑스주의적 통찰”의 “‘핵심 중의 핵심’”은 계급 혁명의 원동력은 항상 “기존의 불합리성에 대한 … 이성의 비판과 계급의 물질적 이익 및 필요와의 일치”라고 썼다.[15]“Paul A. Baran to Paul M. Sweezy, February 3, 1957”, Paul A. BaranㆍPaul M. Sweezy, The Age of Monopoly Capital,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2017, p. 154. 따라서 부르주아 문화의 비합리주의는 잠재적으로 혁명적인 계급을 이성적 비판의 영역에서 분리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이성의 비판을 표도르 도쓰또예프쓰끼(Fyodor Dostoevsky)의 지하인간(≪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처럼, 본능, 신화, 그리고 이성의 끊임없는 구토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물질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나 제국주의, 야만주의, 파씨즘과 연결되어 있었다.[16]Fyodor Dostoevsky, Notes from Underground, New York: Vintage, 1993, p. 13; Paul A. Baran, The Longer View,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69, p. 104. “이성의 구토”라는 문구는 … Continue reading

 

바란의 생각에 물질적 현실 및 계급과의 연결에서 분리되어 이성을 추구하는 분석은 순수 “관념적인” 형식으로 나아간다. 순수 관념적인 의미가 아니라 토대의 실제 물질적 힘과 연결된 이성의 옹호는 사회주의 투쟁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이는 독점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비합리적인 시대에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비합리주의와 제국주의의 변증법, 즉 생산력의 발전이 더 이상 전 인류를 위협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파괴성을 위장하는 데 기여하지 않는 시대를 폭로하는 것이 좌파의 주요 목표가 되어야 한다.

 

 

2. 역사 속의 비이성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비합리주의는 잘 알려진 유럽 철학의 흐름이었다. 비합리주의는 삶에 대한 의지/권력에 대한 의지, 본능, 직관, 신화, 생기론적 삶의 원리, 그리고 깊은 사회적 비관주의에 대한 강조에서 영감을 얻었다. 유물론, 이성, 과학, 진보에 대한 초기 계몽주의적 강조에는 반대했다. 비합리주의는 적의에 찬 반인간주의적, 반민주적, 반과학적, 반사회주의적, 반변증법적일 뿐만 아니라 종종 인종 차별주의와 여성 혐오주의가 매우 심한 반동적 운동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1848-1932년에 비합리주의를 이끈 주요 인물로는 쇼펜하우어(Schopenhauer), 에두아르트 폰 하르트만(Eduard von Hartmann), 니체(Nietzsche), 소렐(Sorel), 슈펭글러(Spengler), 베르그송(Bergson), 하이데거(Heidegger), 슈미트(Schmitt) 등이 있다.[17]비합리주의에 대해서는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Herbert Aptheker, “Imperialism and Irrationalism”, Telos, No. 4(Fall 1969), pp. 168–75; Étienne Balibar, “Irrationalism … Continue reading

 

그러한 철학적 비합리주의는 지배 사회 내에서 발생하는 역사적 작용의 보다 큰 지적 일반화였다. 따라서 반동적 운동과의 직접적인 인과 관계는 보통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적 경향과 유럽에서 결국 파씨즘, 특히 나치즘의 출현 사이의 광범위한 연관성은 부인할 수 없다. 소렐(Sorel)은 베니또 무쏠리니(Benito Mussolini)를 찬양했다.[18]James H. Meisel, “A Premature Fascist? Sorel and Mussolini”, The Western Political Quarterly, Vol. 3, No. 1(March 1950), p. 26; H. Stuart Hughes, Consciousness and Society, New York: Vintage, … Continue reading 하이데거와 슈미트는 나치 이데올로그이자 관료였다. 당시의 불합리한 정신을 포착한 사람은 다름 아닌 히틀러였다. 그는 선언했다: “우리는 이성 시대의 끝에 서 있다. … 세상에 대한 마법적 의미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마법적 의미란 지식이 아니라 의지에 입각한 설명이다. 도덕적, 과학적 의미에서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19]Herman Raushning이 인용한 히틀러, Gespräche mit Hitler, New York: Europa Verlag, 1940, p. 210. (Gerald Holton이 번역한, “Can Science Be at the Centre of Modern Culture?,” Public … Continue reading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비합리주의 문제에 접근한 루카치는 ≪이성의 파괴≫에서 그 역사적 뿌리를 1848년 부르주아 혁명의 패배에서 찾았다. 이어서 19세기 마지막 분기부터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단계가 등장했다. 이는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다. 루카치는 주장했다. “이성 그 자체는 결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거나 사회적 발전과 무관할 수 없다. 항상 사회 상황과 변화하는 추세의 구체적인 합리성(또는 비합리성)을 반영한다. 그리고 이를 개념적으로 요약하여 촉진하거나 억제한다.”[20]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 5. 그것은 변화하는 역사적 조건에 대한 면밀한 조사에 기초한 내재적 비판이다. 내재적 비판은 사상의 발전을 분석하는 맑스의 변증법적 방법의 본질을 구성한다.

 

루카치는 쇼펜하우어를 “순수한 부르주아 버전의 비합리주의” 창시자로 보았다.[21]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 192. 1819년에 출판된 그의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헤겔 철학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주관주의적 의지 관념론으로 헤겔의 객관주의적 이성 관념론에 맞서려고 했다. 그렇게 하면서 그는 1820년대에 베를린에서 헤겔과 반대되는 강의 일정을 잡기까지 했으나 수강생의 관심을 끌지 못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의 방향으로 바뀐 것은 1848년 독일 혁명의 패배와 함께였다. 당시 독일 부르주아들은 헤겔과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에 대한 신의를 쇼펜하우어로 옮겼고, 쇼펜하우어는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널리 명성을 얻었다.[22]Copleston, Schopenhauer to Nietzsche, p. 27;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p. 193–98.

 

루카치에 따르면, 쇼펜하우어의 천재성은 나중에 니체에 의해 완성된 “간접 변호론”의 방법을 개척한 것이었다. 부르주아 질서에 대한 초기 변호론자들은 다양한 모순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 질서를 직접적으로 옹호하려고 노력했다. 쇼펜하우어의 새로운 간접 변호론 방법에서는 자본주의의 나쁜 면을 (그리고 그 모순들까지도) 드러낸다. 자본주의 모순은 결코 자본주의 체제가 아니라 인간의 이기주의, 본능, 의지에 기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 생존을 자기 파멸의 죄악에 휩싸인 과정으로 인식하는 지극히 염세적 관점이다.[23]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p. 204–8. 쇼펜하우어가 모든 존재에 부여한 의지, 즉 삶의 의지 개념은 결국 우주적 이기주의를 형성한다. 루카치가 보기에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모든 것을 순수한 의지로 환원하여 결국 “자연 전체를 의인화한다.” 쇼펜하우어에게 의지는 인간의 인식을 초월한 이마누엘 칸트의 물자체(noumena)를 아우른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자연계에 나타나는 불가해한 힘은 내 안에 있는 의지와 동일하며, 단지 정도만 다를 뿐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24]Arthur Schopenhauer, The World as Will and Idea, Vol. 3, London: Trübner, 1883, p. 164;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 225. 쇼펜하우어가 모든 존재에 의지를 부여한 것은 … Continue reading

 

쇼펜하우어의 의지에 대한 개념은 아마도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의 ‘떨어지는 돌’이라는 유명한 말에 대한 그의 대응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스피노자는 돌에 의식이 있다면, 돌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추진력은 자기 의지의 산물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자유의지를 반박하기 위한 주장이었다.[25][역자 주] 스피노자에게 자유란 자기 본성의 필연성에 따라 일정하게 규정된 방식으로 행동하고 사고하는 것이다. 결국 자유의지란 없다는 말이다. … Continue reading 쇼펜하우어는 스피노자의 의미를 뒤집어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돌은 잘되려고 한다. 돌의 방향은 나에게 동기와 동일하다. 돌의 경우에 가정된 상태에서 응집력, 중력, 지속성으로 나타나는 것은 내가 의지로서 내 안에서 인식하는 것과 신비스러운 본질에서 같다.”[26]“From Baruch Spinoza’s ‘Letter to G. H. Schuller’(1674)”, Explanitia(blog), October 3, 2018. <explanatia.wordpress.com>; Schopenhauer, The World as Will and Idea, Vol. 3, p. 164; … Continue reading 쇼펜하우어가 볼 때 “조잡한 유물론”은 삶에 대한 의지와 동일한 “생명력”의 내재성을 간단히 부정하고,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한다.[27]Schopenhauer, The World as Will and Idea, Vol. 3, pp. 159, 165–66, 531–32;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 225.

 

19세기 후반은 철학에서 신칸트주의의 성장과 부분적으로 연관된 시기였다. 프리드리히 랑에(Friedrich Lange)의 ≪유물론의 역사와 현재의 중요성에 대한 비판≫(1866년)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모든 유물론적 경향, 특히 칼 맑스의 역사적 유물론을 전복하려고 노력했다.[28]Friedrich Lange, The History of Materialism, New York: Humanities Press, 1950. 그러나 새로운 제국주의 시대에 알맞고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일반적인 철학적 경향으로서의 비합리주의였다. 쇼펜하우어의 주요 추종자(그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니체를 제외하면)이자 19세기 후반 철학적 비합리주의의 지배적인 인물은 하르트만(Hartmann)이었고, 그의 방대한 저서인 ≪무의식의 철학≫(1869년)이 영향을 미쳤다. 쇼펜하우어보다 더 절충주의적인 사상가였던 하르트만은 헤겔의 낙관주의와 쇼펜하우어의 비관주의를 결합했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당시 독자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하르트만의 작품에 담긴 깊은 비관주의와 비합리주의였으며, 특히 우주적 자살에 대한 그의 개념이 특징적이었다.

 

하르트만이 보기에 우리는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고였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보다 우월했다. 따라서 그는 어느 시점에서 의지 또는 “무의식적 정신”은 “성장의 정점”에서 인간 종족 속에 깊이 얽매이게 되어 우주적 자살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전체 세계 과정을 “완전히 끝내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마지막 날”이 도래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 시점에서, “의지에 대한 인간의 부정”은 “잔재 없이 세계의 현실 의지를 전멸시킬 것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우주 전체를 존재하게 하는 의지를 철회함으로써 우주 전체를 단숨에 사라지게 한다.” 인류의 종말은 외부에서 오는 전통적인 “종말”의 형태를 취하지 않고 의지의 자살에서 비롯되어 우주 전체로 확장될 것이다.[29]Eduard von Hartmann, Philosophy of the Unconscious, Vol. 3, London: Kegan Paul, Trench, Trübner, 1893, pp. 131–36; Copleston, Schopenhauer to Nietzsche, pp. 57–59; Thomas Moynihan, X-Risk: How … Continue reading

 

니체는 1900년에 죽었다. 이날은 중요했다. 루카치가 보기에 니체는 “제국주의 시대의 비합리주의의 창시자”였으며, 당시는 제국주의가 이제 막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맑스주의 이론에서 자본주의의 제국주의 또는 독점 단계는 19세기 후반에 시작되었다. 하지만 니체의 삶과 작품에 있어서는 “앞으로 일어날 일의 새순과 새싹”만이 보였을 뿐이다. 니체의 천재성은 본능적으로 다가올 미래를 감지하고 새로운 제국 시대를 위한 비합리주의의 방법을 분석의 “신화화 형식”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었다. 신화화 형식은 경구의 빈번한 사용으로 점점 모호해져 갔다. 이것은 니체의 문학적 문체의 매혹적인 성격을 설명하는 동시에 간접 변호론을 완성하는 수단이었다.[30]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p. 309, 319–21. 니체 철학의 전체 정치-사회적 추진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모든 표현이 안개 속에 있었고, 또 신화적 성격으로 인해 끝없는 논란을 야기하고 모방자를 불러일으키며 오늘날까지 철학적 비합리주의가 추구하는 지배적인 형태를 확립했다.

 

루카치는 니체 철학의 주요 성격을 요약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개념이 더 허구적이고 그 기원이 더 순수하게 주관적일수록 신화적 가치 척도에서는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진실”에 가까워진다. 존재라는 개념이 우리의 의식에 독립된 현실적 관계의 사소한 흔적이라도 담고 있는 한, 존재는 (관념과 같은) 생성(되기)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그러나 존재가 이러한 속박에서 벗어나 순수한 허구로서, 힘에 대한 의지의 산물로서 여겨질 때는, 니체에게 있어 존재생성보다 더 높은 범주에 속할 수 있다. 생성은 신화의 직관적인 사이비 객관성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경우 생성존재에 대한 이러한 정의의 특별한 기능은 그의 간접 변호론에 필수적인 사이비-역사성을 지지하는 동시에 그것을 무시함으로써 역사적 생성이 자본주의를 능가하는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확인하는 데 있다.[31]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p. 388–89.

 

그러나 니체 철학의 모든 탁월함, 심지어 매력에도 불구하고 니체 철학의 체계적인 반동성과 비합리주의적 성격은 부정할 수 없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말미에서 삶의 의지가 모든 것이며,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선언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에 관한 글에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세상은 권력에 대한 의지이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당신 자신이 권력에의 의지이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아니다!”[32]Friedrich Nietzsche, The Will to Power, New York: Vintage, 1967, p. 550.

 

≪선악을 넘어서≫(1886년)에서 니체는 맑스주의에 반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삶 자체는 본질적으로 이질적이고 약한 것을 전유하고, 상처를 입히고, 제압하는 것이다. 억압, 완고함, 자기 양식의 강요, 병합, 그리고 가장 온화하게는 적어도 착취이다. … 만약 죽어 가는 사체가 아니라 살아 있다면 … 그것은 육화된 권력 의지여야 할 것이다. 성장하고, 퍼지고, 장악하고, 지배적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도덕성이나 부도덕성 때문이 아니라 살아 있기 때문이며, 삶은 곧 권력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등한 의식을 가진 유럽인들은 교육을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이제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위장하면서까지 “착취 양상”이 제거된 미래 사회의 조건에 대해 열광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그들이 모든 유기체의 기능을 배제한 삶의 방식을 발명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처럼 들린다. “착취”는 부패하거나 불완전하고 원시적인 사회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다. 바로 기본적인 유기체의 기능이다. 그것은 권력 의지의 결과이다. 결국 삶의 의지이다.[33]Friedrich Nietzsche, Beyond Good and Evil, New York: Vintage, 1966, p. 203.

 

여기서 니체는 고전 정치 이론과 존 로크, 헤겔, 맑스 등 다양한 사상가들의 연구에서 재산을 획득하는 과정(맑스에게는 궁극적으로 생산과 관련된)을 의미했던 전유를 실제 착취와 혼동하고 있다. 게다가 니체가 사용한 착취는 약탈(즉, 대가성이나 호혜성이 없는 전유)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삶의 기초가 되는 전유는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은 착취/약탈과 동일시되어 평등주의적이거나 인간적인 미래에 대한 개념을 차단한다. 게다가 니체는 자기 견해의 근거를 궁극적으로 생물학적 결정론에 두고 있으며, 그것이 “권력 의지”의 “본질”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이런 식의 인간 본성에 관한 니체의 본질주의는 홉스의 인간론과 같으며, 단지 홉스가 17세기의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퇴행적이지 않은 진보적인 사상가였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34]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 361. 홉스에 대해서는 István Mészáros, Beyond Leviathan,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2022, pp. 42–44를 참조.

 

니체의 저서에는 사회주의와 심지어 민주주의에 대한 끝없는 공격이 담겨 있다. 니체는 “사회주의”는 “가장 약하고 멍청한 자들의 폭정의 논리적 귀결”이라고 썼다.[35]Nietzsche, The Will to Power, pp. 25, 77; Nietzsche, Beyond Good and Evil, p. 118. 그는 다윈주의를 비틀어서 단순하고 진부한 형태로 차용한 사회다윈주의 노선을 따라 유럽 사회가 적자생존이 아니라 부적격자의 생존을 특징으로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열등한 대중 또는 “개돼지 떼”가 다수의 힘을 사용하여 보다 “고귀한” 집단으로부터 사회를 탈취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력으로 보호해야 할 것은 고귀한 영혼들이었다.[36]Nietzsche, The Will to Power, pp. 33, 78, 364–65, 397–98; Nietzsche, Beyond Good and Evil, pp. 110–11, 115; Friedrich Nietzsche, Twilight of the Idols, Indianapolis: Hackett Publishing Co., … Continue reading 그는 “우리는 노예 제도가 없기 때문에 멸망할 것”이라고 썼다. 부르주아 사회를 혐오했지만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더욱 혐오한 니체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인간의 존엄성, 노동의 존엄성과 같은 환상은 자신의 본성을 감추고 있는 노예 정신의 초라한 산물이다.”[37]Nietzsche, Lukács의 The Destruction of Reason, p. 327에서 재인용.

 

니체는 현대 사회를 인종의 자연적 위계질서가 침해되어 “인종이 무차별적으로 혼합된 시대”로 여겼다.[38]Nietzsche, Beyond Good and Evil, p. 111. 이것은 “지배 인종”의 부활을 요구했다. 이 지배 인종을 니체는 “모든 고귀한 인종의 중심”에서 발견되는 “금발의 게르만 야수”와 연결된 “아리안”이라는 용어로 묘사했다. 반대로 “모든 유럽인과 비유럽인 노예의 후손, 특히 아리안인 이전 모든 인종의 후손은 인류의 퇴락을 나타낸다.”[39]Friedrich Nietzsche, On the Genealogy of Moralit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7, pp. 23–24, 33. 들뢰즈는 기이하게도 초인에 대한 니체의 개념을 헤겔 변증법에 … Continue reading

 

빠리 꼬뮌의 패배를 기뻐하면서 니체는 빠리 꼬뮌이 무리의 이익을 대변했기 때문에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사회 구조”라고 하였다. 그는 “정복하는 주인 인종”에게 다가올 비극적인 운명에 대해 걱정했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시대의 “아리아인의 운명”이다. 정복하는 “아리안 인류”의 특징은 원래 금발에 “완전히 순수하고 원초적”이다. 유럽과 다른 지역의 앞선 “검은 피부, 검은 머리의 원주민”과는 대조적이다.[40]Nietzsche, On the Genealogy of Morality, pp. 14–15; Nietzsche, Twilight of the Idols, p. 41. 니체는 ≪권력에의 의지≫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존할 권리가 없으며, 선택된 인종에게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나는 여전히 부적격자에게 그러한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부적격자들이 있다. 이들은 생존할 권리가 없다.”[41]여기서 번역은 Michael Scarpitti, “The Perils of Translation, or Doing Justice to the Text”, p. 38. <academia.edu>의 번역을 따른다. The Will to Power 의 Kaufman 번역은 … Continue reading

 

니체의 “영원회귀”라는 개념에 따르면 “고귀한” 영혼과 주인 인종은 역사의 주기적 반복 속에서 다시 한번 의지의 승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영원회귀는 종합적으로 진보의 결여를 의미하므로 누적된 결과는 “영원히 무(‘무의미’)!”였다. 니체는 권력에 대한 의지의 의인화인 초인을 통해 허무주의를 대체하기 원했지만, 모든 것이 항상 영원히 되돌아오는 것은 허무주의였다. 진정한 전진이 배제되었기 때문이다.[42]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 392; Deleuze, Nietzsche and Philosophy, p. 198.

 

생기론(Vitalism) 또는 생철학(Lebensphilosophie)은 루카치의 개념에 따르면 독일 제국주의 시대 전체의 지배적인 철학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생기론은 프랑스의 베르그송 작품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났다. 베르그송의 철학은 지성과 직관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지성은 자연과학의 기계적인 세계와 관련되고, 직관은 형이상학, 따라서 철학의 영역과 관련된다. 그는 직관적인 영역을 내면으로 들여다보면 과학과 이성을 보완하는 동시에 이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시간이나 진화의 특성과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는 루카치의 말대로 “정상적인 과학 지식의 과학적 성격”에 도전하여 “합리성과 비합리주의적 직관의 첨예한 대립”을 만들어 냈다.[43]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p. 25, 403.

 

베르그송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은 주관적 지속으로서의 시간과 élan vital 또는 생명의 약동이었다.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그는 기계론적 유물론과 관념론/목적론 외부에 존재하는 철학에서 일종의 제3의 길을 제안했다. 베르그송은 말했다. “시간은 고안된 것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지속”을 대면하는 순간 그것이 창조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자신의 삶이 시간의 비밀, 즉 지속력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지속은 “물질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물질의 과정을 되풀이하는 생명의 속성”이기 때문이다.[44]Henri Bergson, Creative Evolution, New York: Henry Holt, 1911, pp. 340–42. 생명의 약동(élan vital)은 삶의 창조적 충동으로 물질의 길을 밝혀 주어 진화를 설명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본질적으로 신비로운 토대 위에서 베르그송은 찰스 다윈의 자연 선택으로서의 진화론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개념에 이의를 제기했다. 생존의 주관적이고 직관적이며 창조적인 기반을 포착하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에서이다.

 

베르그송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해인 1859년에 태어났지만,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연과학은 이 분야에서 부적절하며, 모든 진화의 근간이 되는 우주적 약동(élan vital)이라는 생명력 있고 창조적인 충동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르그송은 현재 지적 설계의 옹호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주장—예를 들어, 눈의 진화는 자연 선택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이용하여, “창조적 진화”가 물질과 조직으로부터 독립된 생명력에 기인한다고 주장하였다.[45]Frederick Copleston, A History of Philosophy, Vol. 9, Maine de Biran to Sartre; Part I: The Revolution to Henri Bergson, New York: Doubleday, 1974, pp. 216–23. 눈에 대한 베르그송의 … Continue reading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에 대한 베르그송의 공격과 이성에 대한 일반적 공격은 E. 레이 랭케스터(E. Ray Lankester)로 하여금 베르그송이 “직관을 진정한 안내자로, 지성을 잘못된 안내자”로 제시한 것에 반발하게 만들었다. 랭케스터는 맑스의 절친한 친구인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와 다윈의 제자이자 당대 최고의 영국 생물학자였다. 엄격한 유물론자였던 랭케스터는 베르그송의 공헌을 평가하면서 이렇게 썼다. “인간 정신의 일탈과 괴물을 연구하는 학생에게 베르그송의 작품은 언제나 가치 있는 문서가 될 것”이며, 이는 “수집가가 특이한 딱정벌레 종에 관심을 갖는 것”과 비슷하다.[46]Ray Lankester, “서문(Preface)”, Hugh S. R. Elliot, Modern Science and the Illusions of Professor Bergson, New York: Longmans, Green and Co., 1912, pp. vii–xvii. (사회주의 생물학자들은 이후 유물론적 변증법을 통해 기계론자와 생기론자 사이의 논쟁을 뛰어넘어 과학에 큰 기여를 했다.)[47]B. Sadoski, “The ‘Physical’ and ‘Biological’ in the Process of Organic Evolution”, Nikolai Bukharin et. al., Science at the Crossroads, London: Frank Cass and Co., 1971, pp. 69–80; … Continue reading

 

베르그송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분개했는데, 이 이론은 시간(또는 시공간)을 물리학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점차 일반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1922년 4월에 있었던 유명한 대결에서 베르그송은 아인슈타인에 반대하여 지성이 단언하는 물리적 시간 개념은 부적절하며, 시간은 주관적이고 직관적으로 지속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정신적 시간과 물리적 시간 둘을 융합한: J. B. 포스터] 철학자들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철학자들에게 물리학자들의 시간과 다른 심리적 시간만 남아 있다”고 답했다. 아인슈타인에게 베르그송의 약동이나 지속은 물리 과학의 관점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48]Bergson, Creative Evolution, p. 342; Jimena Canales, The Physicist and the Philosopher,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5, pp. 46–47; “Einstein vs. Bergson: The Struggle for Time,” … Continue reading

 

루카치가 보기에, “순수 철학”과 같은 것은 없다. 일반적으로 잘 이해되지 못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순수 철학은 분명히 하이데거와 관계되는 것이다.[49]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p. 5, 496. 하이데거의 1927년 걸작 ≪존재와 시간≫에서는 형이상학적 존재의 “기초 존재론”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개별 존재자에 대한 고찰은 경시된다. 하이데거는 존재는 현존재(Dasein) 또는 인간 실존에 초점을 맞춘 실존 분석에 기초하여 접근할 수 있다고 제안했으며, 그가 나중에 설명했듯이 현존재(Dasein)는 존재 안에 거하면서 “존재의 목자”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하이데거에게 존재는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세계와 “함께-되기”의 맥락에서 현존재(Dasein)를 면밀히 조사함으로써 부분적으로는 현상학적이고 실존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50]Martin Heidegger, Basic Writings, New York: HarperCollins, 1993, pp. 53–57, 234; Michael Wheeler, “Martin Heidegger”,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October 12, 2011, … Continue reading 플라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전의 모든 철학은 존재라는 기초 존재론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하이데거는 피상적이고 편협한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간주했다.[51]하이데거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 특히 헤라클레이토스를 예외로 했다. 하이데거 철학의 한 가지 결론은 의식적(초월적) 자아의 중심성을 제거하고 철학을 주체-객체 관계의 문제에서 본래성과 비본래성의 문제로 전환하는 것이었다.[52]Richard Wolin, Labyrinths, Amherst, Massachusetts: University of Massachusetts Press, 1995, p. 184; Lukács, The Meaning of Contemporary Realism, pp. 20–21, 26–27.

 

존재 그 자체의 추구가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분석의 주된 요지임을 감안할 때, 정치나 윤리와 큰 관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이데거 철학의 반동적, 비이성적, 생기론적 요소는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스며 나와 그의 비합리주의 논리의 본질을 보여 준다. 이는 그의 공식적인 나치 시절뿐만 아니라 전쟁 후 그의 후기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비합리주의는 처음부터 그의 철학적 입장 전체에 내재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나치당에 입당한 직후이자 ≪존재와 시간≫이 출간된 지 불과 몇 년 후인 1933-1934년 겨울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발표한 ≪존재와 진리≫ 강연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적이란 국민과 그 구성원 개개인의 현존재[실존: J. B. 포스터]에 본질적인 위협을 가하는 모든 사람이다. 적이 반드시 외부에 있을 필요는 없으며, 외부의 적이 항상 가장 위험한 적인 것도 아니다. 그리고 마치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적을 찾고, 적을 드러내 폭로하고, 심지어 먼저 적을 만드는 것이 기본 요구 사항이다. 이는 적에 맞서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현존재가 우위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 [도전은: J. B. 포스터] 적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적에 대한 환상을 품지 않으며, 공격에 대비하고, 지속적인 준비 태세를 배양하고 강화하며, 완전한 절멸을 목표로 멀리 내다보며 공격을 준비하는 것이다.[53]Martin Heidegger, Being and Truth,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10, p. 73(강조는 추가한 것); Beiner, Dangerous Minds, pp. 4–5, 137.

 

하이데거가 나치당 간부이자 이데올로그로서, 그리고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히틀러의 가장 저명한 학문적 지지자로서 한 역할은 이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나치 정권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동료와 학생을 대학에서 숙청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독일 학계 내 줄 세우기, 즉 글라이히샬퉁(Gleichschaltung)을 도입하는 데 일조했다. 또한 악명 높은 총통(Führer) 원칙의 주요 입안자인 법률 이론가 슈미트와 긴밀히 협력하여 나치 이데올로기를 홍보하고 상징적인 분서를 주재했다.[54]Emmanuel Faye, Heidegger: The Introduction of Nazism into Philosophy in Light of the Unpublished Seminars of 1933–1935,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9, pp. 39–58; Richard Wolin, ed., The … Continue reading 1935년 ≪형이상학 입문≫은 나치즘에 대한 찬사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신적 에너지”를 활성화하여 “역사적 (Volk)[민족(people): J. B. 포스터] … 그리고 서구 역사”의 승리를 위한 주장을 펼쳤다. 1936년 하이델베르크에서 칼 뢰비트(Karl Löwith)와의 대화에서 하이데거는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당파성이 그의 철학의 본질에 있다”는 제안에 “주저 없이” 동의했다.[55]Heidegger, Wolin, Labyrinths, pp. 126, 138에서 재인용. Wolin, The Heidegger Controversy, p. 30도 참조.

 

하이데거는 종종 무쏠리니와 히틀러를 칭찬했고, 니체를 두 파씨스트 지도자의 선구자로 내세웠다. 프리드리히 셸링에 관한 하이데거의 책에 원래 강의의 장문이 1971년 판에서 생략되었지만 나중에 하이데거의 요청에 따라 다시 삽입되었다. 그것은 이렇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유럽의 두 사람, 즉 무쏠리니와 히틀러는 각자 정치적-국가적 방식으로 허무주의에 대항하는 운동[Gegenbewegungen: J. B. 포스터]을 시작했는데, 각각 고유한 방식 속에서 니체에 의해 본질적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이는 니체의 본래적 형이상학적 영역이 아직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하이데거는 자신의 강의에서 니체가 “민주주의”가 “타락한 형태의 허무주의”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 따라서 보다 본래적 폴크(Volk) 운동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하이데거는 1934년 논리학 강의에서 “흑인은 인간이지만 역사가 없다. … 자연은 역사가 없다. … 비행기의 프로펠러가 돌아갈 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반대로 같은 비행기가 히틀러를 무솔리니에게 데려다주면 역사가 일어난다.”[56]Briner, Dangerous Minds, pp. 105–8; Wolin, Labyrinths, pp. 134–35. 그는 서구 문명의 “허위 문화”는 “흙과 피의 힘을 가장 깊이 보존한 것”에 기반한 폴크(Volk)의 “정신적 세계”에 의해서만 대체될 것이라고 설명했다.[57]Heidegger, Wolin, Labyrinths, p. 131에서 재인용.

 

악명 높은 ≪블랙 노트북(Black Notebooks)≫(하이데거가 그의 ≪전집≫ 마지막에 수록해 달라고 요청했던 철학 일기)에서 하이데거는, 자신의 깊은 반유대주의 흔적을 반복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는 근대성과 서구 합리주의의 결함을 “세계 유대주의” 탓으로 보았다. 세계 유대주의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Mein Kampf)≫에서 유대인의 세계 지배 음모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하이데거는 ≪블랙 노트북≫에서 “세계 유대주의는 [합리주의적 사고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J. B. 포스터]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군사 행동에 관여할 필요가 없는 반면 우리[제2차 세계 대전의 나치 독일: J. B. 포스터]는 우리 민족 중 최고의 피를 희생해야만 했다”고 썼다.[58]Philip Oltermann, “Heidegger’s ‘Black Notebooks’ Reveal Antisemitism at the Core of His Philosophy”, Guardian, March 12, 2014. 하이데거 학자인 톰 록모어(Tom Rockmore)가 지적했듯이 ≪블랙 노트북≫이 출판된 후 “하이데거의 철학과 국가사회주의로의 전환 및 반유대주의가 별개의 것이거나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59]Tom Rockmore, “Heidegger After Trawny”, Heideggers Black Notebooks(ed. Andrew J. MitchellㆍPeter Trawn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7, p. 152.

 

하이데거는 자신의 모든 철학적 노력을 뒷받침하는 극단적인 반동적 견해에서 결코 멀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거리를 두려고 의도하지도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1947년에 출간된 유명한 ≪휴머니즘에 관한 편지≫에서 그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프리드리히 쉴러(Friedrich Schiller) 등 독일 계몽주의 사상가들을 폄하하며 휴머니즘에 대한 체계적인 공격을 펼쳤다. 그러나 오늘날의 포스트휴머니즘과 달리 하이데거는 주로 “동물적 원리”를 가진 물질적 또는 육체적 존재라는 인간 개념을 부정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하이데거에게 진리는 현존재(Dasein)의 실존 분석에 있으며, 진정한 인간이란 존재에 다가가는 실존으로 생각했다. 하이데거는 평소의 베일에 싸인 언어로 휴머니즘보다 “더 원초적인”(현존재(Dasein)에 더 가까운) 역사성에 기반하여 다가올 “운명”을 예고했다. 하이데거는 휴머니즘을 합리주의와 동일시하고 항상 반대했다. 휴머니즘이 인간성(humanitas)을 충분히 고취하지 않고 단순히 개별적이고 물질적인 존재의 경험론적 존재론을 조장할 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경험론적 존재론은 의식적 자아가 탈중심화된 존재의 기초 존재론과는 반대였다.[60]Heidegger, Basic Writings, pp. 225, 234, 241–47;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p. 833–36. 하이데거는 언어를 현존재(Dasein)의 중심에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언어로 인해 고대 그리스 문화와 독일 문화 사이에 (일반적으로 아리아 계통으로 여겨지는)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것이 서구의 본래적 역사성의 발전에 있어 독일을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암시했다.[61]Wheeler, “Martin Heidegger”.

 

하이데거는 ≪휴머니즘에 관한 편지≫에서 맑스의 소외 비판의 힘을 인정했다. 그 후 소박유물론을 비판하면서 맑스의 소외 이론을 기술 문제로 축소시키는 데까지 나아갔다. 루카치가 말했듯이, 하이데거가 여기서 “맑스주의를 주요 적대자”로 보았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62]Heidegger, Basic Writings, pp. 243–44;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p. 836–37.

(다음 호에 계속)

노사과연

 

References

References
1 Georg Lukács, Die Zerstörung der Vernunft, Berlin: Aufbau-Verlang, 1953. 영역: The Destruction of Reason, London: Merlin Press, 1980.
2 George Lichtheim, “An Intellectual Disaster,” Encounter (May 1963), pp. 74–79. Lichtheim은 Georg Lukács의 The Meaning of Contemporary Realism, London: Merlin Press, 1963을 표피적으로만 검토하고 있다.
3 Rodney LivingstonㆍPerry AndersonㆍFrancis Mulhern, “Presentation IV”, Theodor AdornoㆍWalter BenjaminㆍBertolt BrechtㆍGeorg Lukács, Aesthetics and Politics, London: Verso, 1977, pp. 142–50; Theodor Adorno, “Reconciliation Under Duress”, AdornoㆍBenjaminㆍBrechtㆍLukács, Aesthetics and Politics, pp. 152–54; István Mészáros, The Power of Ideology,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1989, pp. 118–19. 아도르노는 “이성의 파괴는 … 루카치 자신의 이성의 파괴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책에서 “니체와 프로이트는 단순히 파씨스트로 분류된다”고 잘못 주장했다. 루카치는 니체를 그 자체로 파씨즘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비합리주의 관점에서 접근할 뿐이었다. 반면에 프로이트는 책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으며 부정적이지도 않았다. (Adorno, “Reconciliation Under Duress,” p. 152.)
4 Lichtheim, “An Intellectual Disaster”, pp. 78–79; Lichtheim은 Árápad Kadarkay, “Introduction: Philosophy and Politics”, Georg Lukács, The Lukács Reader(ed. Árápad Kadarkay), Oxford: Blackwell, 1995, p. 215에서 인용했다. 카다르케이는 여기와 루카치의 전기에서 리히트하임이 ≪이성의 파괴≫를 “지적 범죄”로 언급했다고 인용하고 있지만, 두 차례 모두 카다르케이가 인용하고 다른 사람들이 카다르케이를 통해 인용한 ≪인카운터(Encounter)≫의 해당 페이지에는 이 문장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리히트하임은 ≪인카운터(Encounter)≫의 또 다른 호에서 이 단계에서 루카치의 작업을 “지적 재앙”과 “지적 참사”로 분명히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지적 범죄”라는 진술은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다.
5 Lichtheim, “An Intellectual Disaster”, p. 76. 리히트하임이 남긴 인상에도 불구하고, 루카치는 그의 책에서 “카프카의 악몽”을 암시하지 않았다. 인용문을 감싸고 있는 공포스러운 인용은 루카치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리히트하임 자신의 것이다.
6 [역자 주] 린칭(lynching)은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공개적으로 살해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남부에서 백인들이 흑인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통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7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 770.
8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p. 792–93.
9 Árápad Kadarkay, Georg Lukács: Life, Thought and Politics, Oxford: Blackwell, 1991, pp. 421–23; Lichtheim, “An Intellectual Disaster”, p. 76.
10 nzo Traverso, “[Introduction] Dialectic of Irrationalism”, Georg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London: Verso, 2021, p. 10. 최근 재출간된 버소(Verso)판 ≪이성의 파괴≫에 대한 트래버소의 서문은 이 책에 대한 초기 서구 맑스주의자들의 공격과 거리를 두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계승하고 있으며, 그의 서문은 대체로 초기 냉전 시대의 특징인 반론에 가깝다.
11 I. Lenin, Imperialism, the Highest Stage of Capitalism, New York: International Publishers, 1939. 레닌의 주장은 루카치의 저서에서 직접적으로 분석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주장의 물질적 배경으로 여겨진다. 이는 레닌의 용어인 제국주의가 일정한 기준점이었기 때문이다.
12 후기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John Bellamy Foster, “Late Imperialism”, Monthly Review, Vol. 71, No. 3(July–August 2019), pp. 1–19; Zhun Xu, “The Ideology of Late Imperialism”, Monthly Review, Vol. 72, No. 10(March 2021), pp. 1–20. 삼합체의 집단적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Samir Amin, “Contemporary Imperialism”, Monthly Review, Vol. 67, No. 3(July–August 2015), pp. 23–36을 참조.
13 Xu, “The Ideology of Late Imperialism”; Paweł Wargan, “NATO and the Long War on the Third World”, Monthly Review, Vol. 74, No. 8(January 2023), pp. 16–32를 참조.
14 Paul A. BaranㆍPaul M. Sweezy, Monopoly Capital,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66, pp. 338, 341.
15 “Paul A. Baran to Paul M. Sweezy, February 3, 1957”, Paul A. BaranㆍPaul M. Sweezy, The Age of Monopoly Capital,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2017, p. 154.
16 Fyodor Dostoevsky, Notes from Underground, New York: Vintage, 1993, p. 13; Paul A. Baran, The Longer View,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69, p. 104. “이성의 구토”라는 문구는 바란이 도쓰또예프쓰끼 소설의 주인공이 “자연의 법칙”과 “2 곱하기 2는 4”를 거부하는 지하인간을 “이성의 구토”라고 해석한 데서 따온 말이다.
17 비합리주의에 대해서는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Herbert Aptheker, “Imperialism and Irrationalism”, Telos, No. 4(Fall 1969), pp. 168–75; Étienne Balibar, “Irrationalism and Marxism”, New Left Review, No. I/107(January–February 1978), pp. 3–18; Frederick Copleston, A History of Philosophy, Vol. 7, Part II, Modern Philosophy: Schopenhauer to Nietzsche, Garden City, New York: Doubleday, 1963; “Irrationalism”, [Encyclopedia] Britannica, no date. <britannica.com> 참조.
18 James H. Meisel, “A Premature Fascist? Sorel and Mussolini”, The Western Political Quarterly, Vol. 3, No. 1(March 1950), p. 26; H. Stuart Hughes, Consciousness and Society, New York: Vintage, 1958, p. 162.
19 Herman Raushning이 인용한 히틀러, Gespräche mit Hitler, New York: Europa Verlag, 1940, p. 210. (Gerald Holton이 번역한, “Can Science Be at the Centre of Modern Culture?,” 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 Vol. 2, No. 4(October 1993), p. 302. 약간 다른 번역은 Herman Raushning, Voice of Destruction, New York: G. P. Putnam’s Sons, 1940, pp. 222–23을 참조.)
20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 5.
21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 192.
22 Copleston, Schopenhauer to Nietzsche, p. 27;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p. 193–98.
23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p. 204–8.
24 Arthur Schopenhauer, The World as Will and Idea, Vol. 3, London: Trübner, 1883, p. 164;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 225. 쇼펜하우어가 모든 존재에 의지를 부여한 것은 오늘날보다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덜 환상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위대한 지질학자 죠르쥬 뀌비에(Georges Curvier)는 1812년 ≪화석 뼈 연구≫에 대한 유명한 “예비 담론”에서 비판적으로 언급했듯이, 광물학자 외젠 빠뜨롱(Eugène Patron)을 비롯한 19세기 초 과학자들은 “가장 원초적인 분자 … 본능, 의지”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Georges Curvier, Fossil Bones, and Geological Catastrophes(ed. Martin J. S. Rudwick),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7, p. 201.)
25 [역자 주] 스피노자에게 자유란 자기 본성의 필연성에 따라 일정하게 규정된 방식으로 행동하고 사고하는 것이다. 결국 자유의지란 없다는 말이다. 낙하하는 돌은 중력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지 돌의 자유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자들을 비꼬아 비판한 말이다.
26 “From Baruch Spinoza’s ‘Letter to G. H. Schuller’(1674)”, Explanitia(blog), October 3, 2018. <explanatia.wordpress.com>; Schopenhauer, The World as Will and Idea, Vol. 3, p. 164;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p. 225–27.
27 Schopenhauer, The World as Will and Idea, Vol. 3, pp. 159, 165–66, 531–32;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 225.
28 Friedrich Lange, The History of Materialism, New York: Humanities Press, 1950.
29 Eduard von Hartmann, Philosophy of the Unconscious, Vol. 3, London: Kegan Paul, Trench, Trübner, 1893, pp. 131–36; Copleston, Schopenhauer to Nietzsche, pp. 57–59; Thomas Moynihan, X-Risk: How Humanity Discovered Its Own Extinction, Falmouth, UK: Urbanomic Media, 2020, pp. 273–78;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 409; Frederick C. Beiser, After Hegel: German Philosophy, 18401900,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 2016, pp. 158–216.
30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p. 309, 319–21.
31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p. 388–89.
32 Friedrich Nietzsche, The Will to Power, New York: Vintage, 1967, p. 550.
33 Friedrich Nietzsche, Beyond Good and Evil, New York: Vintage, 1966, p. 203.
34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 361. 홉스에 대해서는 István Mészáros, Beyond Leviathan,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2022, pp. 42–44를 참조.
35 Nietzsche, The Will to Power, pp. 25, 77; Nietzsche, Beyond Good and Evil, p. 118.
36 Nietzsche, The Will to Power, pp. 33, 78, 364–65, 397–98; Nietzsche, Beyond Good and Evil, pp. 110–11, 115; Friedrich Nietzsche, Twilight of the Idols, Indianapolis: Hackett Publishing Co., 1997, p. 41.
37 Nietzsche, Lukács의 The Destruction of Reason, p. 327에서 재인용.
38 Nietzsche, Beyond Good and Evil, p. 111.
39 Friedrich Nietzsche, On the Genealogy of Moralit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7, pp. 23–24, 33. 들뢰즈는 기이하게도 초인에 대한 니체의 개념을 헤겔 변증법에 대한 니체의 마지막 승리로 본다. Gilles Deleuze, Nietzsche and Philosoph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3, pp. 147–94.
40 Nietzsche, On the Genealogy of Morality, pp. 14–15; Nietzsche, Twilight of the Idols, p. 41.
41 여기서 번역은 Michael Scarpitti, “The Perils of Translation, or Doing Justice to the Text”, p. 38. <academia.edu>의 번역을 따른다. The Will to Power 의 Kaufman 번역은 마지막 두 문장이 생략되었다. Nietzsche, The Will to Power, p. 467. 또한 Ronald Beiner, Dangerous Minds: Nietzsche, Heidegger, and the Return of the Far Right,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2018, pp. 4, 137을 참조.
42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 392; Deleuze, Nietzsche and Philosophy, p. 198.
43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p. 25, 403.
44 Henri Bergson, Creative Evolution, New York: Henry Holt, 1911, pp. 340–42.
45 Frederick Copleston, A History of Philosophy, Vol. 9, Maine de Biran to Sartre; Part I: The Revolution to Henri Bergson, New York: Doubleday, 1974, pp. 216–23. 눈에 대한 베르그송의 주장과 현재 지적 설계 이론가들의 주장의 관계에 대해서는 John Bellamy FosterㆍBrett ClarkㆍRichard York, Critique of Intelligent Design,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pp. 14–15, 158–61을 참조.
46 Ray Lankester, “서문(Preface)”, Hugh S. R. Elliot, Modern Science and the Illusions of Professor Bergson, New York: Longmans, Green and Co., 1912, pp. vii–xvii.
47 B. Sadoski, “The ‘Physical’ and ‘Biological’ in the Process of Organic Evolution”, Nikolai Bukharin et. al., Science at the Crossroads, London: Frank Cass and Co., 1971, pp. 69–80; Joseph Needham, Time: The Refreshing River, London: Georg Allen and Unwin, 1943, pp. 241–46을 참조.
48 Bergson, Creative Evolution, p. 342; Jimena Canales, The Physicist and the Philosopher,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5, pp. 46–47; “Einstein vs. Bergson: The Struggle for Time,” Faena Aleph. <faena.com>
49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p. 5, 496.
50 Martin Heidegger, Basic Writings, New York: HarperCollins, 1993, pp. 53–57, 234; Michael Wheeler, “Martin Heidegger”,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October 12, 2011, <plato.stanford.edu>
51 하이데거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 특히 헤라클레이토스를 예외로 했다.
52 Richard Wolin, Labyrinths, Amherst, Massachusetts: University of Massachusetts Press, 1995, p. 184; Lukács, The Meaning of Contemporary Realism, pp. 20–21, 26–27.
53 Martin Heidegger, Being and Truth,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10, p. 73(강조는 추가한 것); Beiner, Dangerous Minds, pp. 4–5, 137.
54 Emmanuel Faye, Heidegger: The Introduction of Nazism into Philosophy in Light of the Unpublished Seminars of 19331935,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9, pp. 39–58; Richard Wolin, ed., The Heidegger Controversy, Cambridge, Massachusetts: MIT Press, 1993; Richard Wolin, Labyrinths, pp. 103–22.
55 Heidegger, Wolin, Labyrinths, pp. 126, 138에서 재인용. Wolin, The Heidegger Controversy, p. 30도 참조.
56 Briner, Dangerous Minds, pp. 105–8; Wolin, Labyrinths, pp. 134–35.
57 Heidegger, Wolin, Labyrinths, p. 131에서 재인용.
58 Philip Oltermann, “Heidegger’s ‘Black Notebooks’ Reveal Antisemitism at the Core of His Philosophy”, Guardian, March 12, 2014.
59 Tom Rockmore, “Heidegger After Trawny”, Heideggers Black Notebooks(ed. Andrew J. MitchellㆍPeter Trawn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7, p. 152.
60 Heidegger, Basic Writings, pp. 225, 234, 241–47;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p. 833–36.
61 Wheeler, “Martin Heidegger”.
62 Heidegger, Basic Writings, pp. 243–44; Lukács, The Destruction of Reason, pp. 836–37.

신재길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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