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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수, ≪노동자 교양경제학: 정치경제학 원론에서 신자유주의 비판까지≫(제6판), 노사과연, 2013.
지난 회까지 우리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형성 및 한국 자본주의와 관련된 논쟁을 살펴보았다. 이제부터 우리는 자본주의가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구조와 원리를 통해 작동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때 전개의 순서는 추상적인 보편부터 시작하여 이를 점차 구체적인 것으로 확대하고, 다시 그 분석을 통해 보편을 구체적으로 종합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자 한다. 이는 필자뿐만 아니라 이 책의 저자, 심지어 맑스 또한 같은 방식으로 서술하는 것인데, 그 근거는 변증법적인 논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변증법까지 설명하기에는, 이 글의 난이도가 너무나 어려워지고, 필자의 변증법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기에 지금은 변증법이 적용되어 있다는 것만 알면 족하다.
1. 상품의 정의와 형성 과정
이러한 배경 속에서 맑스는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개념을 추상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바로 상품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노동의 생산물은 상품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품은 무엇인가? 맑스에 따르면 상품은 ‘우선 첫째로 외적 대상이고, 그 속성들에 의해서 어떤 종류의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물품’이다. 그런데 우리 앞에 있는 모든 물품들이 전부 상품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서점에 있는 책은 분명히 상품이지만 독자분들이 집에서 읽는 책은 상품이 아니며, 그 책을 요약하고 있는 이 글도 상품이 아니다. 도대체 이 기준은 무엇인가? 바로 그 물품이 판매되기 위해서 생산되었는가를 기준으로 나누어진다. 서점의 책은 판매되기 위해 생산되므로 상품이다. 독자분들이 읽는 책과 이 글은 판매되기 위함이 목적이 아니고, 따라서 상품이 아니다. 같은 맥락으로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을 위해 생산한 물품은 상품이 아니다. 조금 다른 경우를 들어 보자. 그러면 타인을 위해 생산된 것은 모두 상품인가? 이 역시 아니다. 예를 들어, 중세의 농노나 소작농들이 공물을 바치기 위해 생산한 곡물은 상품이 아니다. 또한, 친구나 애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만든 물품들도 타인을 위한 것이지만 상품이 아니다. 이때도 역시 상품은 ‘판매하기 위해서’ 생산된 것이라는 규정이 적용되고 있다.
이처럼 상품은 판매되기 위해서 존재하는 물품이다. 그리고, 필자의 이전 글을 보았다면 모든 것은 역사적이라는 사실을 알 터이고, 따라서 우리가 여기서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상품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발생하였는가?’
원시공산제에서 어떤 집단의 내부 구성원들은 그 집단 내에서 생산수단과 생산물을 공유했다. 그런데 각기 다른 집단들을 단위로 삼는다면, 그것들은 공동체 외부에 대해서는 독점적이고 배타적으로 소유되어 있었다. 따라서 집단 내에서 잉여생산물이 나타나고 구성원들의 욕망도 다양화될 때, 그러한 욕망들을 충족하기 위해 타 집단과의 잉여생산물 ‘교환’이 시작된 것이다.
어떤 물품, 더 정확히는 노동으로 생산된 물품이, 상품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렇게 생산수단이 독점적이고 배타적으로, 즉 사적으로 소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이 사적으로 소유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각 개인의 노동생산물은 교환을 통해서만 사회적으로 유통할 수 있고, 따라서 그 생산물은 상품으로 되는 것이다. 생산수단이 사적으로 소유된다면 각 개인의 노동도 역시 독립적이고 배타적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이에 의해 노동은 상품교환을 통해 비로소 사회적 노동으로 되는 것이다.
2. 상품의 요소: 사용가치와 가치
그렇다면 상품은 그 역사적 형성 과정 속에서 어떤 특징을 내재하고 있는가? 먼저 앞서 살펴본 ‘우선 첫째로 외적 대상이고, 그 속성들에 의해서 어떤 종류의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물품’이라는 정의를 자세히 살펴보자. 어떤 물품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해 준다. 이는 물품의 유용성이다. 상품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유용성을 그 상품의 사용가치라고 한다. 그런데, 이 사용가치는 결국 그 상품의 속성에 의해 제약된다. 프라이팬은 그 속성 때문에 컴퓨터 게임을 작동시킬 수 없고, 요리를 만드는 데 사용될 것이다. 이처럼 상품체(體), 즉 해당 물품의 소재적 내용 자체가 바로 사용가치인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사용가치의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각 상품은 여러 속성과 유용함을 가지며 이는 가변적이다. 금은 이전에는 장식품이자 화폐로 주로 사용되었지만, 최근에는 각종 첨단기기의 재료로 쓰이기도 하며,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둔기로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 사회의 사용가치의 많고 적음이 곧 그 사회의 빈부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상품에는 또 다른 요소가 있는데 이것은 가치이다. 우리는 살면서 무궁무진한 상품들을 서로 교환한다. 컴퓨터 1대 = 금 N온스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 등치를 전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양쪽 항이 같다고 인식하고, 이 등식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먼저 어떤 것이, 이와 같은 교환비로 나타나기 위한 조건을 생각해 보자. 170cm 대 53kg 중에 무엇이 더 무거운가? 필자가 갑자기 생뚱맞은 질문을 한다고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교환비가 나타나기 위한 조건이다. 즉 무언가가 등식으로 등치되려면, 즉 양적으로 비교되어서 같다고 하기 위해서는, 우선 무언가 공통적인 것으로, 공통의 단위로 환원되어야 한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상품의 경우, 질적으로 다른 물품들이 일정한 비율로 교환되고 있다. 질적으로 다른 물품들 사이에 이처럼 어떤 양적 관계가 있다는 것은, 그 물품들 속에 그렇게 환원된 무언가 공통물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바로 이것, 질적으로 다른 상품들 사이에 내재된 공통물이 가치인 것이다.
3. 노동의 이중성과 가치의 실체
이렇듯 상품은 사용가치와 가치라는 두 가지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제부터는 이 두 가지 속성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사용가치는 상품이 가진 유용성임을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각 상품은 여러 가지 다른 질을 가지고 있으며, 사용가치의 질 또한 다르다. 그리고 사용가치의 질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곧 투입되는 노동 역시도 서로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지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사용가치를 만들기 위해 지출되는 노동을 유용노동 혹은 구체적 노동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때의 노동은 합목적적인 형태와 방식으로 지출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유용노동이 곧 본래적 의미의 ‘생산적 노동’이다. 애초에 인간의 욕망과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드는 것이 사용가치를 가진 물품이고, 사용가치가 본래 부의 소재적 내용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유용노동은 인간이 존재하기 위한 조건이고, 인간이 자연과의 물질적 대사를 맺는 필연성이다. 그 어떤 사회 형태에서든 사용가치를 형성하는 노동 없이는 인간의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사용가치를 만드는 노동은, 그 사용가치를 생산하기에 합당한 구체적 형태와 방식으로 지출되지만, 이 노동은 모두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 공통점이란, 노동이 어떤 형태와 지출 방식을 띠더라도, 그것은 모두 인간의 노동력이 발휘된다는 부분에서는 같다는 점이다. 이렇게 그 구체적 형태와 더불어 그 유용적 성격이 사상된 무차별한 인간노동, 그것이 바로 추상적 인간노동이다. 이 측면에서 상품을 바라보면, 모든 상품은 추상적 인간노동의 산물이다. 그리고 모든 상품에 공통적인 이 사회적 실체, 즉 추상적 인간노동의 결정(結晶)이 바로 가치인 것이다. 다시 말해, 가치의 실체는 추상적 인간노동인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용가치가 가치를 가진다는 것은 그 안에 추상적 인간노동이 대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가치의 측면에서 모든 상품은 추상적 인간노동이라는 같은 질로 이루어져 있기에, 전적으로 양적 측면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4. 가치의 크기
그렇다면 가치의 크기는 어떤 방식으로 측정될까? 위에서 보았듯 가치를 측정할 때는 오로지 추상적 인간노동에 의해서만 판단된다. 그리고 이 노동의 양은 노동의 지속시간에 의해 측정될 것이고, 이 노동시간은 한 시간이나 하루 등의 일정한 시간 부분을 도량기준(척도)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 노동시간은 동일한 상품을 만들 때도 실제로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만드는 사람의 숙련도나 협업 혹은 근무환경에 따라 같은 상품이더라도 투하되는 노동시간이 차이 날 수 있고, 순간순간 컨디션의 변화에 따라서도 투하되는 노동시간은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개별 노동자의 숙련도나 컨디션에 따라 가치도 변하는 것인가? 아니다. 이 노동시간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노동시간이다. 즉 사회에서 정상적인 조건을 바탕으로 한 그 평균적인 노동의 숙련 및 강도로써 같은 사용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노동시간이다. 따라서 이를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이라고 부른다. 이 말은 곧, 콜라1과 콜라2에 들어간 노동시간이 다를 수 있어도 가치는 상품의 생산에 ‘사회 평균’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측정되는 것이다. 어쨌든, 가치가 이런 방식으로 측정됨으로써 우리는 일정 교환비에 따라 교환할 수 있다. 이때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은 당연히 기술의 발전이나 숙련도가 늘어남에 따라 짧아지며, 이는 곧 가치가 내려간다는 것을 뜻한다.
반면 기술의 발전과 숙련도가 증가함에 따라 우리는 같은 시간 내에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런데 상품은 위에서 보았듯이 유용노동이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측면도 담고 있다. 유용노동이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능력을 노동생산성이라 하는데, 노동생산성의 증가가 곧 더 많은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생산성이 발전함에 비례해서 동일한 시간 내에 생산되는 사용가치는 증가하지만, 동일한 시간 내에 생산되는 가치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각 상품이 가지고 있는 가치의 크기는 줄어드는 것이다. 이 점을 항상 유의해야 한다. 한편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에는 당연히 숙련노동과 복잡노동 등의 요소도 들어간다. 예컨대, 그 높은 사회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청소부의 노동은 단순노동에 속하며, 따라서 의사 등의 복잡노동과 같은 시간을 일하더라도 후자가 더 큰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5. 여러 질문들
1) 자본주의에서 생산적 노동이란
앞서 유용노동, 즉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본래적 의미의 생산적 노동이라고 부른 바 있다. 그런데 ‘본래’라는 낱말이 나타내듯이, 현재에는 다른 의미를 가진 생산적 노동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자본주의적 의미의 생산적 노동이다.
자본주의적 의미의 생산적 노동은 사용가치를 창조하든 말든 상관없다. 오로지 자본에게 이윤을 창출하는 노동만이 생산적 노동이다. 한 예시로, 모 기업에서 자동차를 만들고 그 자동차가 인간의 활동 범위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 자체만으로는 비생산적 노동이다. 자동차라는 상품을 판매함으로써 자본에게 이윤이 생기고 나서야 생산적 노동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상업노동을 보도록 하자. 상품이 상점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그 상품은 생산과정에서 사용가치와 가치를 가진다. 여기서 점원의 노동은 그 상품이 가진 가치를 화폐로 실현하는 노동이며, 이를 통해 상점주에게 (상업)이윤을 가져다준다. 즉, 상업노동은 그 자체로서는 어떤 사용가치와 가치도 창출하지 않지만, 자본에 이윤을 가져다주므로 자본주의적 의미의 생산적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운송업과 보관업의 노동은 상품이 가진 사용가치를 보존하고 가치를 높이기도 한다. 보관업의 경우에는 식품이 썩지 않게 보존해 주는 예시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운송업의 경우는 다음과 같은 예시를 살펴보자. 등산 중에 산 정상에서 주전부리를 파는 상인을 만났다. 이 상인에게서 사는 음료수는 분명 도심에 비해 훨씬 높은 가격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상인이 음료수를 산 정상까지 운송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음료수는 등산객에게 사용가치일 수 없을 것이고, 그것을 운반하는 데 지출된 노동에 의해 가치가 자체가 증대되어 있기 때문이다.
2) 노동생산력과 노동강도
먼저 노동생산력과 노동생산성은 동의어이므로 편한 대로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것을 밝힌다. 노동강도는 흔히 노동생산력과 혼동되어 쓰이고는 하며, 사실 의도적으로 혼용하여 쓰기도 한다. 일단 둘 모두 그것이 높아지면 동일한 시간의 노동이더라도 더 많은 사용가치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 둘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일군의 무리는 오직 이 공통점만 파악한 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생산력의 증가는, 예컨대 이런 것이다. 어떤 공장에서 10시간에 빵 10개를 만든다고 하자. 여기서 사용가치는 빵 10개라는 상품체일 것이고, 가치는 빵 1개에 1시간이 들어 있을 것이다. 이때 동일한 노동력 투입으로 2배의 산출을 내는 새로운 설비를 도입하여 10시간에 빵 20개를 만들게 되었다고 하자. 여기서 사용가치는 정확히 2배인 빵 20개로 증가했다. 반면, 빵 1개에 들어가 있는 가치는 30분으로 정확히 절반이 감소했을 것이다. 이처럼 노동생산력이 증가할 경우 사용가치는 늘어나는 반면에 상품 1개의 가치는 오히려 줄어든다.
그렇다면 노동강도 강화의 예를 살펴보자. 똑같이 공장에서 10시간에 빵 10개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기존에 노동자 1명이 1대의 기계만 조작하다가 이제는 2대의 기계를 조작하도록, 노동강도를 늘렸다고 해 보자.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빵의 개수는 20개로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빵 1개의 가치는 아까와 달리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외형상으로는 동일한 시간 노동했지만, 실제로는 같은 시간에 지출된 노동의 양이 2배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즉, 빵의 개수가 20개로 늘어남과 동시에 가치의 크기도 실제로는 20시간으로 늘어난 것이고, 따라서 사용가치는 늘어났지만, 상품 1개의 가치는 변함이 없다.
이처럼 언론이나 기업가들이 노동생산력-노동강도를 동의어로 간주하는 것은 틀린 말일뿐더러, 이를 이용해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함이다. 이 점에서 노동생산력과 노동강도를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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