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편집자의 글] 윤석열 정권의 반동성과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

 

윤석열 정권의 반동성과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

 

제국주의 단계에서 필연적인 불균등한 성장으로 인한 중국의 부상에 대해 미국은 한-미-일 동맹의 강화로 맞서려 하고 있고, 이에 대해 윤석열 정권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지지하면서 굴욕 외교를 펼치고 있다. 그리하여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한 제3자 변제를 강행하여 역사를 후퇴시키는 자신의 반동성을 세상에 드러냈으며, 이에 따라 반(反)윤석열 전선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

윤석열은 집권하자마자 기업이 정부이고 정부가 기업이라고 하여 노골적인 친자본적인 성격을 보여주었으며,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에 대한 공격을 통해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 한국 사회의 주요 모순임을 보여주었다. 또한 파쇼적인 국가보안법의 칼날을 휘두르며 공안탄압을 자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군부를 동원하여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빈번하게 실시하여 한(조선)반도의 전쟁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또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을 전면에 내세워 수사를 통한 정치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어서, 지난 1년간 윤석열의 집권 기간은 역사의 후퇴와 전 방위적인 반동적 공세! 로 특징지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은 정치적, 경제적인 계급적 이익을 방어하면서 맞서고 있으나 아직 변혁적이고 과학적인 전술을 통한 반격에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은 지난 박근혜 당시의 촛불시위의 한계와 오류를 넘어서서 자신의 헤게모니를 정립하는 어려운 과제를 맞닥뜨리고 있다. 지난 촛불시위는 한국 사회의 높은 민주주의 역량을 보여주었고 노동자들이 민주주의 의식을 갖고 민주노조로 결집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으나, 동시에 계급적으로 조직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무능한 현실을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지난 촛불시위의 성과는 자유주의 세력에게 집중되었으며, 이후 자유주의 세력의 배신성과 이중성으로 인해 정권은 반동세력에게 헌납되었다.

이러한 정치 현실을 극복하는 것은, 어려운 길이지만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정립하는 길을 가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단결에 기초한 힘의 강제와 사회주의적인 과학적 전망에 입각한 설득을 통한 동의의 통일로서, 강제와 동의의 통일로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의 정립은 노동자계급이 경제적 의미의 즉자적 계급에서, 정치적 의미의 대자적 계급으로, 대안적 세력으로 성장, 전화하는 핵심 고리가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이번 ≪노동사회과학≫ 19호는 다양한 글을 싣고 있다. 전술문제, 당 건설의 전망, 탄압에 대한 저항, 환경운동 등 부문운동과 노동자계급운동의 관계,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 문예 비평 등을 싣고 있다.

먼저, 문영찬의 ‘윤석열 정권에 맞서는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는 제국주의 하에서 불가피한 불균등한 성장으로 인해 제국주의 질서가 균열되고 있다는 인식을 피력하고 있다. 그리하여 한국의 변혁운동이, 나아가 세계적 차원의 변혁운동이 이데올로기의 재정립 단계를 지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정치적 당파로 성장, 전화하는 과정에 들어섰다고 파악하고 있다. 그리하여 변혁적이고 과학적인 전술의 정립이 정치적 당파로의 성장, 전화의 핵심 조건이며, 전술의 정립은 곧 주체의 정립과정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전술의 핵심원칙으로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의 정립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람시가 말했듯이 강제와 동의의 통일로서 헤게모니 투쟁을 통해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헤게모니 세력으로 성장해야 함을 논하고 있다. 이를 위해 차이에 근거한 분리라는 1980년대 운동의 한계와 오류를 극복하면서 차이를 전제로 한 연합을 전술과 당 건설에 녹여내야 하며, 나아가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통일이라는 변증법적 개념을 당 건설의 방법론으로 채택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박문석의 ‘민주노총의 정치방침과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는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이 지난 시기의 한계와 오류에 대한 반성적 평가를 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진보정당들의 개량주의적 성격을 비판하며, 이들이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단결과 정치적 성장에 기여하지 못했고, 노동자 대중을 단지 표를 주는 대상으로 파악했음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 민주노총이 조급히 진보연합당을 건설하려 하는 것은 대중의 현실에 조응하지 못하고 또 운동의 발전의 전망에 입각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기존 진보정당의 소부르주아적 성격을 넘어서서, 계급적 정당의 건설의 전망을 세울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주의 정당이 건설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선진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이 사회주의를 자신의 기치로 하면서 사업을 전개해야 하며, 이를 통해 서서히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이끌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과거 민주노동당 식의 진보연합 정당 건설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전망으로 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김태균의 ‘윤석열 정권의 노동정책에 대한 비판적 고찰과 대응 방안’은 지금의 정세에서 핵심적 쟁점이 되고 있는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의 경제적 본질을 드러내는 글이다. 노동시간제, 임금, 사회적 합의주의의 문제가 윤석열 정권의 반동적 공세의 실제적 내용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드러내고 있다. 주 69시간 노동제가 노동자 대중의 반발을 사게 되자 윤석열 정권은 슬며시 후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자본가 정권으로서 윤석열 정권이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강화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임을 주장하고 있다. 또 임금에서 호봉제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임금 체계를 직무, 성과급제로 전환시키는 것은 임금 교섭에서 노조를 무력화하는 것이며, 그를 통해 임금을 실제적으로 낮추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고 있다. 또 사회적 합의주의는 역대 자본가 정권이 전가의 보도로 사용한 것으로서, 극우 인사인 김문수를 경사노위 위원장으로 등용하여 전개하고 있는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는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저지하고 계급협조 노선의 강화를 노리는 것이며, 그것이 실제로 합의로까지 이어지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투쟁의 전열을 교란하고 와해시키려는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조명제의 ‘국가보안법 철폐 없이 노동해방은 없다’는 국가보안법의 파쇼적 성격과 그것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폐지 요구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글이다. 지금 헌법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 위헌 심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이 헌법 위에 군림하는 파쇼적 성격의 법이라는 것을 폭로하고 있다. 먼저 일제의 치안유지법에서 분단국가의 성립 이후 국가보안법의 성립까지의 역사적 경과를 고찰하고, 이어서 국가보안법의 계급적, 정치적 성격을 고찰하고 있는데, 반민주, 반통일, 반노동 악법으로서 국가보안법의 성격을 폭로하고 있다. 또한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에서 드러나는 입장들의 한계와 오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이 노동운동과 무관하다는 입장의 편협성을 비판하면서, 국가보안법의 반노동자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국가보안법의 반통일성과 반민주성이 실제로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의식의 발전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지배계급이 노리는 핵심임을 설득력 있게 드러내고 있다. 윤석열 정권의 국가보안법을 통한 공안탄압은 노동운동의 무력화를 노리는 주요한 축이며, 이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강화를 노리는 독점자본의 계급적 요구를 윤석열 정권이 수행하고 있는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자계급은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을 전개하고 민주주의 획득 투쟁을 하면서,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의 길로 나서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전우재의 ‘위안화를 통한 원유결제와 제국주의 정치’는 현재 세계정세의 핵심으로 꼽히는 중국의 부상이 제국주의 질서에 미치는 영향의 한 측면을 분석하고 있는 글이다. 위안화를 통한 원유의 결제를 시도하고 확대시키는 것이 달러의 패권을 약화시키는가? 달러 패권의 약화가 미국 중심의 질서를 해체하고 다극화를 이끄는가? 다극화가 노동자계급에게 도움이 되는가? 등이 이 글이 화두로 던지는 주제들이다. 이에 대해 미국 달러의 패권은 중동이 원유의 거래에서 달러 사용의 합의를 한 것에 주요 기반을 둔다는 점을 드러내면서, 위안화를 통해 원유 거래의 결제를 늘리는 것이 달러의 패권을 약화시키지만, 문제는 달러 패권의 약화가 새로운 진보적 전망을 가져오는가는 또 다른 문제라는 점을 가설과 추론, 논리 전개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의 부상은 그 자체로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중국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속화한다는 점을 논증하고 있다. 다극화 또한 자본주의의 착취 질서의 폐지와는 거리가 있으며, 문제는 이러한 국제 질서의 변동 속에서 사회주의적 전망을 세워나가는 것임을 설득력 있게 논증하고 있다.

박한솔의 ‘한국 환경운동의 역사와 쟁점(1982-2023)’은 한국 사회운동의 하나인 환경운동의 역사와 그 이론적, 정치적 쟁점에 대한 전면적 고찰의 글이다. 1980년대의 공해 추방운동으로 시작된 환경운동이 쏘련의 해체를 기점으로 변혁성을 잃고 제도화된 소부르주아 운동으로 변질되었고, 환경문제의 근본원인인 자본주의적 생산의 문제를 회피하게 되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에는 기후정의 운동 등 새로운 환경운동 세력이 형성되고 있고 자본주의적 생산이 환경 문제의 원인임을 인식하고는 있으나, 자본주의 국가를 통한 환경문제의 개선에 머물고 있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대안적 인식이 결여되어 있어서, 노동자계급의 계급운동과의 연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환경운동의 나아갈 바로, 환경운동이 노동자계급과 연합하여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목표로 할 때 환경운동의 변혁적 성격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은 이러한 환경운동을 비롯한 부문운동에 대해 그 특성을 고려하면서도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 환경문제에서 발현되는 점에 착목하여 계급해방 운동과 부문운동의 연합을 달성하여 새로운 변혁운동의 전망을 열어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한동백의 ‘계급운동과 부문운동 간의 통일에 대하여 (2)’는 지난 호에 이어 이어지는 연속적인 글이다. 이번 글의 특징은 부문운동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상세히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운동을 자본주의의 발생기로부터 시작하여 현대의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까지 고찰하고 있다. 환경운동에 대해서는 기존 환경운동의 탈계급적 접근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로 인한 오염의 증대, 그리고 자본가 간의 경쟁으로 인한 과잉생산이 배출하는 거대한 폐기물들이 환경문제의 근본 원인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환경운동 등 부문운동에 대해 노동자계급의 계급운동과의 차이에만 주목해서는 안 되며, 환경운동의 내적인 계기, 부문운동이 계급운동과 차이를 강조하고 연합을 거부하는 계기를 역사적으로 고찰하여 그것을 지양함을 통해 부문운동과 계급운동의 연합을 이루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외에 장애인 운동에 대한 분석은 인상적인데, 자본주의의 거대한 생산력이 장애인에게는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산력 해방의 관점에서 고찰하여 생산관계의 변화,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통해서만 장애인 또한 생산력의 발전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제일호의 ‘≪동물 농장≫―뜨로쯔키주의자의 역사 왜곡과 반동성’은 문예비평의 글이다. 20세기 중반에 나온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은 의식적으로 당시 사회주의를 건설하던 쏘련 사회를 전체주의 사회로 묘사하고 사회주의 사회 또한 하나의 계급적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라고 악선동하는 소설인데, 이러한 작품이 실은 뜨로쯔키주의적 관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필자는 폭로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역사 자체를 왜곡하는 작품이 서방 사회에서 유행했던 것은 그것이 실은 쏘련을 고립시키고, 서방세계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쏘련의, 사회주의의 영향력을 차단하려 했던 제국주의자들의 계급적 이익에 맞아 떨어졌기 때문임을 폭로하고 있다. 또한 동물들이 인간들에 대해 반란을 일으켜 동물의 자치적인 사회를 건설했지만, 곧 동물 내부에서 계급적 질서가 수립된다는 설정은, 사회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건설의 대의를 왜곡하고 그것을 내부에서 와해시키려는 자본주의의 계급적 논리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하여 사회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건설은 이러한 반동적 공세를 이겨내면서 전진하는 것임을 제기하고 있다.

제일호는 이외에 레닌의 저작인 ‘당 조직과 당 문학’을 번역하고 그에 대해 해제를 달고 있다. 레닌의 <당 조직과 당 문학>은 1980년대 문예 운동에 있어 많은 영향을 미쳤던 글인데, 문예 운동이 쇠퇴하면서 문예 이론 또한 쇠퇴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에 대해 맑스주의적 문예 이론의 재생과 부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제일호는 <당 조직과 당 문학>을 다시 번역하고 해제를 달아 맑스주의 문예운동의 부흥의 첫걸음을 내딛고 있다. 레닌의 이 글은 1905년 혁명 당시의 글로서 볼쉐비키 운동이 혁명적 정세에서 대중적으로 급속히 확산되던 상황에서 당 문헌들을 정리하고 그것들을 당적 질서에 통합하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작가들의 개인주의를 비판하며, 운동에 기여하려는 작가들은 당적 질서에 포괄되어야 함을 레닌은 제기했었던 것이다. 레닌은 ‘모든 사회민주주의적 문학은 당 문학이 되어야 한다’는 테제를 제기했는데, 이는 작가들의 문학적 노력과 그 작품들이 프롤레타리아적 당파성과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으로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이외에 번역 글이 두 편 실렸는데, 사회주의 경제학의 대상의 문제와 레닌이 변증법에 대해 제기한 변증법·인식론·논리학의 동일성의 테제에 대한 글이다. 먼저 ‘경제학의 대상에 대하여’는 1990년대 러시아의 그룹이었던 인떼르의 집단적 저작으로 보이는 글이다. 이 글은 흐루쇼프주의의 경제에서의 수정주의가 실은 쓰딸린의 말기인 1940년대 말과 1950년대 초의 수정주의적 경제학의 흐름의 수용이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 수정주의적 경제학은 실은 부하린주의를 수용한 것이었는데, 사회주의 사회가 날로 발전하는 상황에서, 특히 2차 대전의 승리 이후라는 상황에서 사회주의 국가가 경제법칙을 넘어서고 나아가 경제법칙을 창조한다는 잘못된 주관주의적, 주의주의적 관점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사회주의 건설의 조건에서 생산관계의 문제는 더 이상 경제학의 독자적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과의 결부 속에서만, 생산력의 단순한 형식으로서만 고찰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보였다. 이를 통해 흐루쇼프의 전 인민 국가 하에서 경제 관료들의 조정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잘못된 정책이 탄생되었던 것이며, 끝내는 사회주의 사회 자체의 해체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경제학의 관점에서 예리한 비판의 칼날을 들이 댄 인떼르의 이 글은 쏘련 붕괴의 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서, 21세기의 사회주의 운동이 20세기보다 더 높고 더 깊은 수준으로 전개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을 창출하는 것이기도 하다.

코프닌의 ‘인식론‧논리학으로서의 변증법에 관한 맑스-레닌주의적 견해’는 레닌의 테제인 변증법·인식론·논리학의 동일성이라는 테제에 대한 심도 깊은 고찰을 보여주는 글이다. 역사적으로는 칸트가 형이상학적 존재론으로부터 논리학과 인식론을 구별해 내고, 헤겔이 인식론과 논리학의 통일을 관념론적 지반 위에서 이룩해내었지만, 그것은 그 통일의 근거를 왜곡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맑스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이 성립함에 따라 사고의 법칙과 존재의 법칙의 동일성이 확립되고, 맑스주의적 인식론인 반영론에 변증법이 도입됨에 따라 변증법·인식론·논리학의 동일성이라는 테제는 객관적 근거를 갖는 과학적 테제로 입증되었다는 점이 상세하게 서술되고 있다. 이를 통해 변증법적 논리학이 과연 무엇인지, 어떤 의미인지가 잘 드러나고 있는데, 변혁운동은, 맑스주의적 실천은 변증법적 논리를 전면화하는 가운데에서만 그 과학성이 담보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맑스주의적 실천은 철학적 사고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이 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하여 변혁운동의 재정립, 맑스주의적 실천의 재정립에 필수불가결한 하나의 중요한 디딤돌을 우리는 획득할 수 있게 된다.

 

 

 

2023년 5월 1일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장 문영찬

문영찬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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