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이론] 윤석열 정권에 맞서는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

문영찬 │ 연구위원장

 

 

 머리말

 

윤석열 정권의 반동적 공세가 심화되고 있다. 노동운동 탄압과 시민사회에 대한 공격에 이어 이제는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한 제3자 변제라는 굴욕 외교로 인해 윤석열 정권은 역사를 후퇴시키는 자신의 반동적 성격을 뚜렷이 하고 있고 그로 인해 민심의 이반을 부르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의 이러한 행보는 세계적 차원에서 반동의 심화의 한 측면인데, 세계질서는 제국주의에 고유한 불균등한 성장으로 인해 제국주의 질서가 균열되고 제국주의 간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블록화의 경향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제국주의 질서의 균열은 쏘련 붕괴 뒤의 세계적 차원에서의 반동기가 종식될 가능성을 가리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것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세계적 차원에서 변혁운동 세력의 재편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고 있는데, 이는 세계적 차원에서 맑스-레닌주의 운동이 이데올로기 세력에서 정치적 세력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쏘련 붕괴 뒤의 운동의 후퇴로 인해 정치는 진보정당, 경제투쟁은 노동조합이라는 틀이 작동하고 있어서 변혁운동 세력은 열악한 조건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변혁적 전술을 정립하는 것은 곧 주체의 정립과정이기도 하다. 선거를 중심으로 하는 개량주의적 전술을 극복하고 윤석열 정권의 반동적 공세에 맞서는 변혁적 전술의 정립과 운용은 곧 변혁세력의 정립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윤석열 정권에 맞서는 변혁적 전술은 지난 촛불시위 당시의 한계와 오류를 극복하고,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정립하는 것을 초점으로 해야 하며, 이를 위해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은 어떻게 가능한가, 한국 사회의 현실에 조응하는 헤게모니적 투쟁의 조건들은 무엇인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1. 불균등한 성장으로 인한 제국주의 질서의 균열

 

1) 정치는 경제의 집약이다.

 

레닌은 ‘정치는 경제의 집약이다’라는 정식을 세운 바 있다. 이러한 정식화는 경제적 토대가 일차적이며, 정치는 그러한 토대 위에 서는 상부구조라는 맑스의 사적 유물론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물질적 생산이 사회적 삶의 일차적 요소로서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규정하는 근본적 요소이며, 그러한 물질적 생산에서 형성되는 생산관계가 규정하는 계급의 문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의 근본적 요소라는 점이 레닌의 뛰어난 정식화에 의해 잘 표현되고 있다.

이렇게 맑스주의 정치, 맑스주의적 실천은 사적 유물론이라는 철학과의 통일을 조건으로 하는데, 철학과 정치의 통일은, 이론과 실천의 통일은 맑스주의적 실천의 과학성을 담보하는 근본적인 조건이 된다.

따라서 복잡한 세계정세에 대해 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접근할 때만, 우리는 복잡한 미로를 헤매지 않고 세계정세의 핵심고리가 무엇인지, 세계정세에서 다양한 현상들, 다양한 쟁점들이 어떻게 상호연관되어 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정치는 경제의 집약이라는 레닌의 정식을 따를 때, 우리는 세계 정치 혹은 제국주의 정치는 세계 경제 혹은 세계 자본주의의 집약이라는 관점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세계 정치, 세계정세를 파악하는 관건적 요소는 세계 경제, 세계 자본주의에서 핵심고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그것이 세계정세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를 분석하는 것이다.

 

 

2) 세계정세를 파악하는 핵심고리는 ‘불균등한 성장’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세계적 차원에서 맑스-레닌주의 세력들 간에 진행되고 있는 논쟁에서 러시아가 제국주의인가가 쟁점이 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논쟁에서 드러나는 것은 레닌이 정립한 제국주의 개념 자체에 대해 회의하는 세력이 운동세력 중에서도 상당하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생산의 집적으로 인해 일정한 단계에서 자유경쟁 자본주의로부터 독점자본주의로 나아간다는 것, 이러한 독점의 형성이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이라는 점이 레닌의 ≪제국주의론≫에 의해 정립되었는데, 이러한 기본적인 지점 자체가 지금은 희미해져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운동의 후퇴를 보여주는 현상인데, 이렇게 ≪제국주의론≫에 의해 정립된 제국주의 개념의 과학성을 부정하면, 세계정세를 과학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그러면 레닌의 ≪제국주의론≫의 제국주의 개념을 따르면서 현재의 세계정세를 규정하는 요소인 불균등한 성장이라는 개념에 접근해 보자. 레닌은 19세기의 자유경쟁 자본주의와 다른 독점자본주의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엽까지 형성되는 것을 분석하면서 제국주의의 본질을 규명했다. 그리고 레닌은 독점자본주의 단계인 제국주의 하에서는 불균등한 성장으로 인해 사회주의 혁명이 몇몇의, 심지어 단 하나의 나라에서조차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은 바 있다.(<유럽합중국 슬로건에 대하여> 등)

맑스와 엥겔스는 당시 유럽의 자본주의가 자유경쟁 자본주의라는 상황에서 혁명은 유럽 전체의 동시적인 혁명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바가 있었는데, 레닌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엽의 제국주의의 등장을 분석하면서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를 교정하여 제국주의 단계의 혁명론을 세웠던 것이다.

레닌은 ≪제국주의론≫에서 자본주의 각 나라 간의, 그리고 각 나라 안에서 여러 부문 간의 불균등한 성장을 분석했다. 불균등한 성장에 대한 레닌의 이러한 고찰은 자본주의에 고유한 생산의 무정부성을 기초로 한 것이다. 레닌의 분석을 인용해 보자. “오히려 그 반대로, 몇몇 산업부문에서 생성된 독점은 자본주의적 생산 전체에 고유한 무정부성을 강화하고 심화시킨다. 자본주의의 일반적 특징인 농업발전과 공업발전 사이의 불균형 또한 점점 확대된다.”1)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불균형한 성장이 자본주의에 고유한 생산의 무정부성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인식을 레닌이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로 인해, 자본가 간의 경쟁이 불가피하며, 따라서 생산의 무정부성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생산의 집적으로 인한 독점의 발생과 강화는 그러한 무정부성을 극도로 심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레닌에 의해 통찰되고 있다. 이는 생산의 집적으로 인한 양적인 변화가 자유경쟁 자본주의로부터 독점의 발생이라는 질적인 변화를 초래한다는 인식과 같이, 생산의 무정부성의 양적인 증대가 독점자본주의 단계에서 불균등한 성장이라는 질적인 전환을 한다는 분석이다. 그리하여 독점자본주의 단계, 제국주의 단계에서는 특정 국가, 특정 부문의 비약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불균등한 성장이 발생한다는 과학적 인식이 성립하게 된다. 레닌은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10월 사회주의 혁명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실제로 10월 혁명의 승리를 이끌어 갔다.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은 독점자본주의이며, 그것은 여러 부문과 국가 간의 불균등한 성장을 가져온다는 ≪제국주의론≫의 통찰은 지금의 세계정세를 파악하는 과학적인 관점으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지금의 세계자본주의는 여전히 독점자본주의이며, 이에 기초한 세계 정치, 제국주의 정치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쏘련 붕괴 뒤 세계질서는 미국 중심의 단일한 세계질서인 양 하는 모습을 보였고, 심지어 무정부주의의 일종인 자율주의의 네그리는 이러한 현상을 개념화하여 ‘제국’ 질서라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일종의 초(超) 제국주의를 의미하는 제국 질서는 추상적 가능성으로는 존재하지만 현실적 질서는 민족국가 간의 질서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본의 축적이 지상 과제인 자본가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정치적 상부구조는 민족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제국주의론≫의 인식을 따르면서 불균등한 성장이 제국주의 질서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WTO로 대변되는 세계 자본주의의 연합질서는, 이제는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블록화의 현상으로까지 나아가는 제국주의 질서의 균열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중국의 비약적인 정치적, 경제적 성장이 놓여 있다. 중국은 생산력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하고 있고 정치적으로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화해를 중재하는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덧 세계질서의 상당 부분에서 중국은 미국을 대체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비약적인 성장에 대해 미국은 첨단 기술에 대한 블록화와 대만과 한(조선)반도에서의 무력시위로 대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와 중국의 동맹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동맹이 없었다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략할 수 없었을 것이다. NATO의 동유럽으로의 확장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의 성격을 지니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질서가 불균등한 성장으로 인해 제국주의 질서 자체가 균열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정치적, 군사적 현상의 토대에는 불균등한 성장이라는 경제적 본질이 놓여 있는 것이다.

 

 

2. 세계적 차원에서 반동기의 종식 가능성

 

1)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세계 맑스-레닌주의 운동에서의 입장 차이

 

맑스-레닌주의 세력이 주를 이루는 공산당-노동자당 국제회의의 최근의 양상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성격을 둘러싸고 세계적 차원에서 맑스-레닌주의 세력이 분화하고 있어서, 세계 변혁운동세력이 재편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이 반제국주의 투쟁인가 아니면 러시아의 침략인가, 러시아는 제국주의인가 아닌가 등이 쟁점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연방 공산당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이 정당하다고 강변하면서, 러시아의 침략을 비판하는 세력의 중심이 되고 있는 그리스 공산당을 거칠게 비난하고 있다. 또 이론적으로는 러시아가 제국주의인가가 쟁점이 되고 있는데, 이는 제국주의가 과연 무엇인지, 레닌이 정립한 제국주의 개념이 지금도 여전히 적합한지의 문제이다.

이러한 양상은 쏘련 붕괴 뒤의 기나긴 기간 동안 맑스-레닌주의적 세력, 공산당과 노동자당들이 이데올로기의 재정립 단계를 거치면서, 이제는 세계적 차원에서 현실 정치의 쟁점에 관여하는 하나의 정치적 세력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변혁운동 세력 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대립과 분화는 이데올로기 문제를 배후로 깔고 있지만, 직접적으로는 세계 정치의 첨예한 쟁점에 대한 입장 정립이 강제되고 있다는 점에서 변혁운동 세력이 새로운 질서로 진입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세계적 차원에서 반동기의 종식 가능성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세계적 차원에서 변혁운동 세력이 재편되고 있는 것은 그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이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쟁점이기 때문이다. 즉, 세계적 차원에서 불균등한 성장으로 인한 제국주의 질서의 균열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명확해지고 있는 것이다. 쏘련 붕괴 뒤 러시아가 재자본주의화되고, 중국이 사실상 자본주의화를 의미하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건너뛰면서 세계 자본주의와 통합의 길을 걸으면서 성장하고, 미국이 세계화를 구호로 헤게모니를 행사하던 시기가 종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의 시기가 일단락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곧바로 혁명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황은 현상적으로는 더 악화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전쟁터가 되면서 반동적 전쟁기구인 NATO가 재강화되고 있고, 동아시아의 경우 반동적인 한-미-일 동맹이 강화되고 무력시위가 빈발하면서 전쟁기운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정세 변화는 쏘련 붕괴 뒤의 반동기가 끝나간다는 것을 가리키는 동시에 미국 중심의 제국주의 세력의 헤게모니적 지배가 폭력적 지배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헤게모니적 지배가 폭력적 지배로 변화한다는 것은 제국주의 세력의 역량의 한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변혁운동의 성장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 변화에 대해 중국 등은 일극적 질서의 다극적 질서로의 변화를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다극적 질서라는 개념은 중국이 등소평 등장 이래 오랫동안 주장해온 것이다. 또한 다극적 질서 자체는 현대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질서를 극복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단지 제국주의 세력 간의 힘의 균형, 세력권의 재분할을 이루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다극적 질서가 된다고 해서 세계 평화가 확보되는 것은 아니며, 또 자본주의적 착취와 억압 질서가 변화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세계정세의 이러한 변화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입장은 제국주의 질서의 사회주의 질서로의 대체를 주장하며, 제국주의 질서의 균열을 변혁운동의 발전을 위한 공간으로 삼는 것이다. 쏘련 붕괴 뒤 공산당-노동자당 국제회의로 대표되는 맑스-레닌주의 세력은 오랫동안 이데올로기의 재정립 단계를 거쳐 왔다. 사회주의는 가능한가, 사회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쏘련 붕괴의 원인은 무엇인가 등이 그러한 이데올로기 재정립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표현되는 한 시기의 종식은 변혁운동 세력이 이데올로기의 재정립 단계를 지나 정치적 당파로서, 노동자계급과 굳건히 결합하면서 변혁적 전술을 구사하는 세력으로 발전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시대, 지금의 시기가 보여주는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전화시키는 것은 주체의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어느 때보다 과학적인 정세분석과 과학적이고 변혁적인 전술의 정립이 요청되고 있다. 왜냐하면 전술의 정립은 곧 정치적 주체의 정립의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며, 반대로 정치적 주체의 정립은 과학적이고 변혁적인 전술의 정립을 필요조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3. 세계정세의 초점이 되고 있는 동아시아와 한(조선)반도 정세

 

1) 중국의 정치적 경제적 측면에서의 비약

 

중국은 생산력 측면에서 비약을 하고 있다. 최근 한국과 중국의 경제 교역에 있어서 한국의 무역적자가 심화하고 있는데, 이는 코로나 역병이라는 조건을 감안하더라도 중국이 과거와 같이 한국의 중간재를 수입하고 조립하여 수출하는 구조를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중국은 세계 최대의 자동차 수출국이며, 웬만한 제조 기술에 있어서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다만 반도체 등 최첨단 제품에서 중국은 원천기술을 미국, 일본, 유럽 등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최근 미국의 기술 봉쇄를 겪으며 원천 기술의 자립화를 도모하는 상황이다.

정치적 측면에서 중국은 아프리카, 중남미 등과의 교역을 늘려가면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최근에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화해를 중재하면서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대체하고 있다. 또 유럽과의 관계에서 최근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과 시진핑의 회담을 통해 미국의 중국 봉쇄 정책을 돌파하면서 유럽에도 중국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이렇듯 중국은 정치적 측면, 경제적 측면에서 비약을 하고 있는데, 어느덧 중국은 냉전 당시 미국과 쏘련이 초강대국으로 불렸던 것과 같이 초강대국으로 불리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첨단 기술에 대한 봉쇄,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동맹의 강화, 그리고 대만과 한(조선)반도에서 무력시위의 강화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러한 입장은 자신의 실추되어 가는 헤게모니를 힘의 과시를 통해 상쇄하고자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려 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하여 중국에 대해 대립과 연합의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모순적 상황이다.

 

 

2) 대만 문제와 한(조선)반도 문제의 연동 가능성

 

과거 1950년 한국(조선)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미국은 거의 동시에 함대를 대만 해협에 파견하여 중국 대륙으로부터 대만 섬을 분리시켰다. 이는 한(조선)반도에서의 전쟁과 대만의 문제는 긴밀히 연동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러한 관계, 동아시아 정세를 이루는 요소들의 밀접한 연관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며, 오히려 중국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해 그 연관성의 정도는 더 긴밀해진 상황이다. 따라서 대만 문제가 격화하여 대만 해협에서 전쟁의 기운이 높아지면 한(조선)반도에서의 전쟁의 기운도 따라서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 동아시아의 정치적 현실이다. 역으로 한(조선)반도에서 전쟁 기운이 높아지면 따라서 대만 해협에서의 정치적, 군사적 긴장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의 이유는 동아시아의 정치적 질서가 기본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대립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한(조선)반도에서의 영향력 상실이 태평양의 상실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조선)반도에 밀접한 이해가 있으며, 대만 역시 그 상실이 태평양의 상실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대만 문제는 영토의 통일, 민족의 통일의 문제로서 주권의 문제이며, 한(조선)반도에서도 중국은 긴밀한 정치적, 군사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어서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한(조선)반도에서의 정치적, 군사적 긴장은 대만 해협에서의 정치적, 군사적 긴장과 연동되어 있으며, 최악의 경우 동아시아 전쟁의 발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3) 한-미-일 동맹의 강화와 전쟁위기

 

윤석열 정권의 등장 이후 한-미 동맹이 강화되고 있는데, 최근의 미국의 기밀문서 유출에 대한 문제에서 드러나듯이 한-미 동맹의 강화는 곧 미국에 대한 한국의 종속의 강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 대한 한국의 종속의 강화는 한국 민족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해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사드 문제, 이북과의 대화의 문제, 중국과 한국의 관계의 문제, 한국과 일본의 관계의 문제 등등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최근의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한 제3자 변제라는 한국 정부의 해법은 부르주아적 3권 분립마저도 무시하는 것으로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한국의 노동자, 민중에게는 반동적 영향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그 국가의 성립 자체가 미국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2차 대전 당시의 잠정적인 군사적 분할을 정치적 분단으로 만든 것은 미국 주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고, 이로써 한국 민족은 민족적 발전을 저지당하고 분단의 고통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국은 미 제국주의의 신식민지가 되어 예속적인 자본주의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신식민지라는 개념은 2차 대전 전의 식민지와 달리 형식적으로는 독립 국가를 형성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2차 대전 후 수십 년의 변화, 그리고 특히 쏘련 붕괴 뒤의 제국주의 질서의 변화를 반영하여 제국주의 세력과 신식민지 국가의 관계를 좀 더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스 공산당의 경우 제국주의 체계(제국주의 피라미드)라는 개념을 발전시키고 있는데,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제국주의 체계 속에서 그리스가 중등적 위치를 차지하면서 그리스 부르주아지가 능동적으로 제국주의 질서에 가담하여 그리스 인민의 이익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는 과거 신식민지 개념이 보다 구체화되어 제국주의 질서의 변화, 제국주의와 종속국가의 관계의 다양한 측면의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으로서 타당하며, 이후 이론적 발전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이렇게 반동적인 한-미 동맹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봉쇄 정책으로 인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중국의 발전을 저지하여 자신의 헤게모니의 실추를 만회하려는 미국은 한-미 동맹을 더욱 더 반동적인 한-미-일 동맹으로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 한-미 동맹의 강화가 미국에 대한 한국의 종속의 강화이었듯이, 한-미-일 동맹의 강화는 일본에 대한 한국의 종속의 강화, 일본의 제국주의적 이익의 강화를 의미한다. 또한 한-미-일 동맹의 강화는 중국과 이북에 대한 대결정책을 강화하는 것으로서 한(조선)반도와 동아시아에서 전쟁의 기운을 높이는 반동적인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반동적인 한-미-일 동맹에 대한 반대, 한-미-일 동맹의 해체를 주장하며 전쟁 반대와 평화의 쟁취,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을 추구해야 한다.

 

 

4. 국내 정세에서의 쟁점들과 그것들의 상호연관

 

1) 한국 경제 위기와 그것의 전략적 의미

 

미국의 급격한 이자율 상승으로 한국 또한 이자율을 올려서 한국 경제는 긴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자율을 올려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것은, 이자율 상승이 상품가격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단지 산업자본가와 은행자본가 간에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 중에서 갈라먹는 비율만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이며, 단지 이자율을 올려 은행으로 시중의 통화량을 일정하게 흡수하여 상품에 대한 수요를 줄이는 간접적인 수요 공급 정책의 변화를 의미할 뿐이다.

긴축 국면으로 접어든 한국 경제는 경기순환의 측면에서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어 금융위기 발생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세계 경제 위기로 인해 세계 무역이 침체하면서 수출이 줄어들면서 무역적자가 지속되고 있고, 나아가 자본수지를 포함하는 경상수지에서도 적자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 경제가 회복되면 일정하게 극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으로 경기 순환의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 최근 중국과 한국의 무역에서 한국이 무역흑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적자를 보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 이는 중국에서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해 기존의 무역구조, 즉 한국이 중국에 중간재를 팔고 중국이 그것을 조립하여 수출하는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중국은 원자재, 중간재를 스스로 생산하여 수출하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고 그에 따라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줄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과의 무역에서 흑자가 아니라 적자를 보고 있는 점이 한국 경제 전체가 무역적자를 보고 있는 주요 원인 중의 하나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 역병이라는 조건, 세계 경제 침체라는 조건을 고려하더라도 한국 경제가 전략적 차원에서 위기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생산력 발전이 상대적으로 한계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은 반도체 등 특정 몇몇 부문에서 중국에 대해 우위를 확보하고 있으나, 최근 반도체 불황에서 보이듯이, 그 특정 부문이 불황일 경우 위기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소위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기존의 한국의 전략적 구도가 미국의 중국 봉쇄 정책, 블록화 정책으로 인해 균열되고 있고, 또 중국의 생산력 발전이 한국 경제의 상대적 우위를 압박하는 상황으로 변화하고 있어서, 한국 경제는 단지 경기순환적인 전술적 차원의 위기를 넘어, 전략적 차원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윤석열 정권은 미국의 블록화 정책에 가담하여 한국 경제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어서 한국 경제의 전략적 선택지가 좁아지고 있고, 그 발전 전망이 흐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제국주의 단계의 불균등한 성장이 기존에는 중국과의 무역 확대와 무역흑자로 인해 한국 경제에 유리한 측면으로 작용하였으나, 이제는 그 불균등한 성장으로 인한 중국의 생산력 발전과 그에 대한 미국의 봉쇄 정책이 한국 경제의 전략적 전망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전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맑스는 하나의 사회구성체는 생산력 발전이 다할 때 그 수명을 마치고 새로운 사회구성체로 이행한다고 갈파한 적이 있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서문>) 그런 점에서 한국의 생산력 발전이 국제적 관계를 포함하는 기존의 생산관계에 의해 장애를 겪고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것은, 향후 한국 자본주의의 미래를 둘러싸고 자본가계급 내부에서 그리고 자본가계급에 도전하는 노동자계급의 측에서 전략적 전망의 문제가 주요 쟁점이 될 것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2) 윤석열 정권의 전반적인 반동적 공세

 

윤석열은 정부가 기업이고 기업이 정부라고 하면서 자신의 친기업적 성격을 드러냈다. 그리고 주 69시간 노동제를 추진하다가 반발에 부딪히자 한 걸음 물러선 상태이다. 또 윤석열 정권은 물가폭등에 대해 손을 놓고 있고 나아가 공공요금 인상을 추진하고 있어서 민중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윤설열은 집권하자마자 이북과의 대결정책을 추진하면서 군부를 동원하여 미국과의 연합훈련을 빈번하게 실시하여 대북 무력시위를 이어나가고 있고, 또 검찰을 동원하여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 그리고 자신의 의회 내 반대파에 대한 탄압에 나서고 있고, 또 파쇼적인 국가보안법을 동원하여 공안탄압에 나서고 있어서 한국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윤석열 집권 이후 크게 후퇴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이 노동운동에 대한 선제적 공격에 나선 것은 향후 자신의 정권의 안위를 위협할 세력으로 노동운동을 꼽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 한국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강화를 통해 위기를 탈출하려는 자본가계급의 요구가 윤석열 정권을 통해 관철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노동운동에 대한 윤석열 정권의 선제 공격은 지금의 정치 구도가 자본과 노동의 모순을 주요 모순으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의 파업에 대한 470억의 손해배상 청구는 윤석열 정권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형식을 활용하여, 사적 소유 원리를 핵심으로 하는 (시)민법을 활용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주요한 한 축인 노동권을 제한하고 억압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운동은 정치적, 경제적인 계급적 이익을 방어하는 차원에서 맞서고 있으나 변혁적 전술에 입각한 뚜렷한 정치적 반격을 가하고 있지는 못하다. 이는 기존의 노동자계급운동이 쏘련 붕괴 뒤의 반동기 동안 침체되고 대오가 흐트러져 있었고 또 의회 중심의 개량주의적 전술이 지배적이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윤석열 정권이 공세를 취하고 노동자계급이 밀리던 상황에서 윤석열 정권은 한-미-일 동맹의 강화를 위해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한 제3자 변제를 강행했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지지하는 이러한 정책은 윤석열 정권이 역사를 후퇴시키는 반동적 정권이라는 점을  민중들에게 각인시켰고 이로 인해 민심이 이반하고 있고 반윤석열 전선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불균등한 성장으로 인한 중국의 비약적 발전에 대해 봉쇄정책으로 맞서려는 미국의 한-미-일 동맹의 강화라는 반동적 요구에 대해 윤석열 정권이 적극적으로 영합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미 제국주의에 대한 예속을 조건으로 하는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경제적 본질이, 윤석열 정권의 역사를 후퇴시키는 반동성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의 한국의 정세는 아직까지 윤석열 정권의 공세가 우위를 점하는 가운데 서서히 반윤석열 전선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의 수사를 통한 정치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는 점, 노동시간제의 악화,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 시민사회에 대한 공격, 대외 정책에서의 반동성 등이 현재의 주요한 정치적 쟁점들이다. 이러한 쟁점들 중에서 전체 정세를 규정하는 주요한 쟁점은 노동운동 탄압을 핵심으로 하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공세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 현 정세에서 주요 모순으로 작동하면서 여타의 정치적 쟁점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모순은,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은 자본주의에 고유한 자본과 노동의 모순 이외에 민주와 반민주의 문제, 민족 모순을 2차적인 모순으로 한다. 그런데 일본과의 굴욕외교는 그 자체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전략에 대한 윤석열 정권의 전략적 선택의 성격을 가지며, 이는 자본주의의 문제,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 민족적 문제, 민주주의의 문제와 상호연관되면서 전체 정세를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 주요 모순이라는 점에서 자본에 맞서는 노동자 전선을 발전시키면서, 민족적 과제, 민주주의적 과제에도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면서 이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개입력을 높여서 윤석열 정권에 맞서는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5. 전술의 정립은 곧 주체의 정립 과정이다

 

1) 전술은 정세에의 조응을 본질로 한다

 

쏘련 붕괴 뒤 한국의 사회운동에서 개량주의가 지배적으로 되면서 변혁적 전술의 개념과 실천은 사라지고 전술 대신에 의회주의, 개량주의에 입각한 정책의 개념이 그것을 대체했다. 그에 따라 노동자계급의 정치는 자본주의에 맞서는 변혁적 정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자본가계급의 지배를 전제로 하여 약간의 개량을 따내는 것으로 좁혀지고 쇠락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정치투쟁은 진보정당의 의회적 투쟁이, 경제투쟁은 노동조합이 수행한다는 틀이 형성되었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다시 살아나려면,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단결이 이루어지려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현실 투쟁에서 과학적인 정세 분석에 입각하여 정치적 쟁점들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총체적인 정치적 입장의 정립을 의미하는 전술 개념이 다시 도입되고 실천으로 전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전술의 정립과 실천은 곧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역량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맑스주의에서 전술 개념은 책략이나 기술적인 방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맑스주의에서 전술 개념은 과학적 개념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공산당 선언≫이래의 맑스주의 운동의 역사, 20세기 사회주의의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윤설열 정권에 맞서기 위해, 그리고 운동진영의 주체의 열악한 상태를 일신하기 위해 다시금 과학적인 전술 개념이 도입되고 발전되어야 한다.

맑스주의에서 전술은 정세에 조응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노동자계급의 직접적이고 총체적인 실천 방침을 가리키는 전술은 정세에서 형성되는 정치적 쟁점들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입장에 다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쟁점들 중에서 핵심 고리를 찾아내고 그러한 쟁점들의 상호연관을 파악하는 것, 국가를 포함하는 계급세력들의 상호연관의 총체에 대한 정치적 입장의 정립이 곧 전술의 수립과정이다. 그런데 정세는 계급세력들의 상호연관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전술 또한 변화하는 정세에 조응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가능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은 변증법적 인식과 논리를 정세 분석과 전술 수립에 도입해야 한다. 왜냐하면 변증법은 변화와 운동에 대한 과학이기 때문이다. 정세의 본질인 계급세력들의 상호연관에 대한 인식 자체가 변증법적 인식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리고 전술은 철학과 정치의 통일,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노동자계급의 과학적이고 변혁적인 전술은 이미 변증법의 영역이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정세에 조응하는 전술이 끊임없이 정립될 때 노동자계급은, 맑스-레닌주의 세력은 이데올로기 당파를 넘어 정치적 당파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2) 정치는 진보정당, 경제투쟁은 노동조합이라는 틀의 한계와 오류

 

지금 한국의 사회운동은 진보정당과 노동조합이라는 양 날개의 틀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하여 정치는 진보정당들의 의회적 정치가, 노동조합은 경제적 실리를 위한 투쟁에 주력하는 양상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틀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적 틀이 한국적으로 변형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에서 2차 대전 이후 세계 사회주의 진영의 형성과 발전이라는 상황을 조건으로, 유럽 노동자들의 혁명적 흐름을 제어하기 위해 사회민주당들의 개량주의가 정치에서 지배적으로 되었고, 노동조합은, 특히 산별노조로 대표되는 노동조합은 사회민주당들과 연합하면서 개량주의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민주당의 개량주의 정치, 노동조합의 경제적 실리 획득이라는 틀은 2차 대전 후 유럽 경제가 호황을 맞으면서 가능했던 것이고, 특히 세계 사회주의 진영의 존재로 인해 강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럽 경제가 쇠락하면서, 그리고 쏘련의 붕괴 이후 유럽의 자본가계급은 개량주의적 양보정책 혹은 복지국가론을 후퇴시키면서 야멸찬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돌아섰고 노동자계급에 대한 양보를 철회하였다.

이러한 때늦은 개량주의적 틀이 한국에서는 진보정당-노동조합이라는 틀로 재생되었다. 이러한 틀의 형성은 한국의 1980년대 변혁운동의 성장에 놀란 자본가계급이 일정하게 양보하는 것이 불가피했고, 또 쏘련의 붕괴로 인해 일정한 개량주의적 틀로 노동자계급을 제어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개량주의의 본고장인 유럽에서조차 개량주의는 철회되고 오히려 극우세력이 득세하고 있다. 또 한국 자본주의 또한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단계가 지나고 저성장 혹은 정체 단계가 시작되고 있어서 개량의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진보정당은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단결과 해방의 전망의 문제에 대해 해로운 영향을 미쳐왔다. 진보정당들은 노동자들을 선거에서 표를 주는 대상으로만 파악했고, 개량주의에서 필연적인 자본가계급과의 협조노선으로 인해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고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단결을 해체시켜 왔다. 왜냐하면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단결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성장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을 필수적인 조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노동조합 운동은 개량주의의 틀 내에서 실리주의, 조합주의, 경제주의에 병들어 왔다. 노동조합 차원에서 노동 대중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계급이라는 개념, 계급적 단결이라는 기치가 필수적인데,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을 상실하고 자본가계급의 지배질서가 용인하는 한도 내에서 노동 대중을 조합주의적 실천으로 이끌어 온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따라서 조합주의, 실리주의에 병든 노동운동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계급이라는 개념, 계급적 단결이라는 기치,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이 전면화 되어야 하며,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전술의 정립은, 노동 대중을 조합주의적 실천을 넘어서는 전망으로 이끌게 될 것이다.

 

 

3) 변혁적 전술의 정립은 변혁적 세력의 정립의 핵심 조건이다

 

한국의 노동자계급의 선진 부위는 쏘련 붕괴 뒤 이데올로기의 재정립 단계를 거쳐왔다. 1980년대의 많은 변혁운동 세력이 청산주의, 개량주의로 돌아서던 시기에 반동기를 버티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해결하고 정립하는 것이 주요했다. 이는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많은 공산당과 노동자당들이 거쳐 왔던 경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국의 변혁운동 세력은, 나아가 세계적 차원에서 변혁운동 세력은 이데올로기의 재정립 단계를 지나, 이데올로기 당파에서 정치적 당파로의 성장·전화의 시기에 진입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선전과 전술의 차이이다.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지배적일 때는 활동의 주요한 양태는 선전의 방식이다. 맑스-레닌주의의 저작을 학습하고 그 기본 개념들을 선전하는 것,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 쏘련 붕괴 원인에 대한 해명 등이 주요했다. 이러한 선전 활동은 반동기를 버티게 하는 힘으로 작용했고, 이 덕택에 한국의 변혁운동은 명맥을 유지하면서 반동기를 이겨내 왔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당파를 넘어 변혁운동 세력이 정치적 당파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선전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세계적 차원의 반동기가 종식될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아직은 그것이 가능성으로 머물고 있고 여전히 반동기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선전 활동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반동기를 실제적으로 종식시키고, 변혁의 시대를 열어젖히고, 정세의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서는 선전을 넘어서는 전술의 정립과 실천이 필요하다. 과학적이고 변혁적인 전술을 통해 각각의 정치적 쟁점들에 깊숙이 개입하여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역량을 제고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러한 과정은 곧 변혁적 주체의 정립과정이기도 하다.

맑스주의적 철학에서 객관과 주체의 관계는 이러한 것이다. 즉, 주체를 정립하여 객관을 변혁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전술을 통해, 객관을 변혁시키는 실천을 통해 주체가 변혁되고 주체가 정립된다는 관점이 곧 객관과 주체에 대한 유물론적이고 변증법적인 관점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열악한 주체의 상태를 일신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적인 선전만으로는 부족하며, 선전을 지속적으로 강화시켜 가되 동시에 과학적이고 변혁적인 전술의 정립에 주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맑스는 혁명이 필요한 이유로 혁명을 통해서만 현실이 변혁될 뿐만 아니라 혁명을 통해서만 주체가 변혁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과학적이고 변혁적인 전술이 필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서만 현실의 변화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전술을 통해서만 주체의 변혁, 주체의 정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변혁적 전술의 정립은 변혁적 세력의 정립을 위한 핵심적인 조건이다.

 

 

4) ‘차이를 전제로 한 연합’을 전술과 당 건설에 녹여내야 한다

 

개량주의적 세력을 제외한 변혁운동 진영의 면면을 보면 조그만 소그룹을 이루며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NL-PD라는 1980년대의 분파 구도가 여전히 존재하여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단결을 가로막는 주요한 요인의 하나가 되고 있기도 하다. 1980년대 운동은 핵분열의 시대였다. 군사 파시즘에 맞서 비합법 운동을 전개하면서 올바른 노선에 대한 치열한 탐색을 하였지만, 비합법 정파 간에 그리고 정파 내부에서 일정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의 발생에 대해 서로 올바름을 주장하고 혁명적 노선임을 주장하며 차이를 근거로 분리 혹은 분열을 감행한 것이 1980년대 운동의 모습이었다. 물론 1980년대 운동은 이전의 민주화 운동의 질과 다른, 변혁적 전망과 노선에 입각한 변혁운동의 질로 전개되어 왔다는 공헌이 있지만, 지금의 입장에서는 그 후과, 부정적 유산의 영향이 크다.

1980년대 운동에서의 수많은 분파의 형성, 그리고 당 건설의 실패는 근본적으로 반성되어야 할 지점이다. 이 점은 여러 면에서 평가되어야 하겠지만 이론적인 차원에서 보면, 말로는 변증법을 얘기했지만 실천에서는 일정한 차이를 근거로 분리와 분열을 거듭해 온 것이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분열은 차이에 따른 분열로서의 성격을 가지며, 그것은 논리적으로는 형식논리적인 실천이었다. 반대로 변증법적 논리에서는 차이에 따른 분리, 분열이 아니라 차이를 전제로 한 연합, 통일을 주장한다. 심지어 변증법에서는 대립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통일된다라는 인식을 세우고 있기조차 하다. 변증법의 핵심인 모순 개념 자체가 대립물의 통일을 의미하며 이러한 모순을 통해서 사물과 자연과 인간 사회가 운동하고 변화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1930년대 반파쇼 인민전선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통일전선의 개념은 차이를 전제로 한 연합의 노선이고 사상이다. 레닌은 이미 1920년대에 노동자 통일전선을 주창하면서 볼쉐비키적 공산당과 사회민주당 간에 통일전선을 결성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통일전선은 차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전제로 하고 그리고 바로 그러한 차이 혹은 대립에도 불구하고 통일하여 자본가계급과 파시즘 세력에 맞서는 노동자계급과 인민세력의 통일을 이루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통일전선의 노선은 20세기의 역사에서 위력을 발휘했는데, 그것이 위력을 발휘한 이유는 차이를 전제로 한 연합이라는 변증법적인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즉, 통일전선은 변증법적 논리를 현실 정치에 전면적으로 도입한 것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사회운동에서, 노동운동에서, 뿔뿔이 흩어져 있고 침체되어 있는 주체의 상태를 일신하기 위해서는 차이를 전제로 하는 연합이 전술 방침에 그리고 이후에는 당 건설의 방침에 녹아들어야 한다. 통일전선 차원에서는 차이를 전제로 하는 연합이었다면, 당 건설에서는 통일전선의 사상을 심화시키고 전면화하여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통일’을 방침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노동자계급의 다양한 부위의 특성들, 심지어 개인의 다양성까지, 개인의 발전까지 조직노선으로 담보하고, 차이를 넘어선 계급적 단결과 계급의 정치적 통일을 위해 변증법적인 개념인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통일’이 당 건설의 하나의 유력한 방법론으로 채택될 필요가 있다.

 

 

6.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의 조건들

 

1) 반윤석열 전선에서 자유주의 세력의 이중성

 

윤석열 정권은 자신이 반동적인 부르주아 정권임을 세상에 드러내었다. 그리하여 윤석열 정권에 맞서는 전선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 그런데 검찰의 수사를 통한 정치는 자유주의 세력 또한 탄압받는 세력이라는 인식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자유주의 세력은 자본주의의 발전에 자신의 전망과 이익을 거는 세력이다. 특히 자유주의 세력은 과거 반동적 세력이었던 파시즘 세력과 타협하고 야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영삼이 파시즘 정당과 합당하고 김대중이 파시즘 세력인 김종필과 연합하여 집권한 것이 그러한 사례이다. 또한 노무현은 왼쪽 깜박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운전하여 노동자계급이 신자유주의의 억압과 착취에 신음하게 했다. 문재인은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등의 모습은 있었지만 촛불의 열망을 배신하고 반동적인 세력과 타협하고 실천적으로는 반동세력에게 정권을 헌납하였다.

이러한 자유주의 세력의 행로는 그들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자신의 정치적 기치로 내세우면서도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적 발전을 가로막는 핵심적 장애물인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대해 손을 놓고, 심지어 10만 명의 국가보안법 폐지 청원을 묵살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자유주의 세력은 한편으로는 정권의 장악과 유지를 위해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자신들의 자본주의적인 계급적 이익을 위해 언제든지 반동세력과 야합하는 세력이기도 하다. 자유주의 세력에게 근본적인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이기 때문이다.

지금 민주당 대표인 이재명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재판을 받고 있고 굴욕 외교를 규탄하고 있지만, 이재명은 소위 국익, 즉 자본가계급의 계급적 이익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반동세력과 야합할 수 있으며, 이재명이 굴욕외교를 규탄하는 것은 그것이 한국의 자본가계급의 이익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재명은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한국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민주주의의 기치를 내리고 반동세력과 야합할 수 있는 세력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계급은 윤석열 정권에 맞서는 투쟁에서 계급적, 정치적 독자성을 견지해야 하며 자신의 헤게모니를 정립하고 강화하는, 어렵지만 올바른 길을 가야 한다.

 

 

2) 헤게모니적 투쟁의 필요성과 그 조건

 

한국 자본주의는 이미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이다. 그리하여 그람시가 말했듯이 시민사회가 폭넓게 형성되어 있고 시민단체들은 자본가계급의 진지와 요새가 되고 있다. 1980년대는 낯설었던 시민사회라는 개념은 이미 보편화되었고 변혁운동은 시민운동의 영향력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변혁운동은 1980년대와 달리 헤게모니를 확보하고 헤게모니 투쟁의 전형을 세워나가는 데 주력해야 한다.

지난 박근혜 시기의 촛불시위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역량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노동자계급의 역량의 한계를 드러낸 계기이기도 했다. 스스로를 계급으로 조직하지 못하고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던 노동자들의 모습은 민주주의 의식은 갖되, 민주노조에 대한 열망은 있으되, 스스로를 계급적으로 조직하지 못하고 계급의식으로 무장하지 못하는 노동운동의 현 주소를 잘 드러낸 것이었다. 그리하여 촛불시위의 성과는 모두 자유주의 세력에게 헌납되었고 자유주의 세력의 배신성과 이중성으로 인해 정치권력은 다시금 반동세력에게 헌납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촛불 시위 당시의 한계와 오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을 견결히 유지하면서 윤석열 정권에 맞서는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의 각인을 찍어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필수적인데, 헤게모니는 강제와 동의의 통일이다. 즉, 계급적 단결의 힘에 의한 강제와 과학적 전망에 입각하여 여타 세력들에 대해 설득을 통하여 동의를 확보하는 것의 통일이다. 강제와 동의의 통일이기에 헤게모니적 투쟁과 실천은 사회적, 정치적 위력을 갖게 된다.

그람시는 파시즘에 패배하여 투옥된 상태에서 이탈리아 혁명의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헤게모니 개념을 벼려냈다. 그리하여 자본가계급이 강제만이 아니라 동의의 기제를 활용한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강제와 동의의 통일로서 헤게모니 개념을 서유럽의 현실을 극복하는 유력한 수단으로 정립하였다. 한국 사회가 고도화된 자본주의에 이른 지금, 노동자계급은 헤게모니의 개념을 다시 정립하고 실천으로 전환시켜 가야 한다.

헤게모니가 하나의 개념을 넘어서서 현실 정치의 요소가 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과 여타 세력을 강제하기 위하여 계급적 단결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계급적 단결을 통한 정치적 힘이 없다면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는 동의의 요소이다.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에 맞서는 투쟁에서 여타 세력의 동의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과학적 전망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의 미래는 노동자계급의 것이라는 점,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함께 할 때만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이 담보된다는 점을 설득의 방식을 통해 동의를 끌어내야 한다.

이러한 헤게모니적 투쟁은 노동자계급 내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단결을 이루는 방식은 형식논리적인 차이에 따른 분파적 투쟁이 아니라 차이를 전제로 한 연합, 심지어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통일이라는 점을 설득의 방식을 통해 동의를 끌어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투쟁, 헤게모니적 투쟁의 전제는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이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은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전망을 가질 때만 가능하다. 사회주의의 전망을 무기로, 과학적인 사회주의를 기치로 하여 자신의 독자성을 견지하면서, 계급적 단결을 통한 힘의 강제와 과학적 전망을 통한 동의의 결합을 통해 헤게모니를 정립하고 강화시켜가는 것! 이러한 과정을 통해 노동자계급은 서서히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 세력으로 자신을 정립하면서 다시금 변혁의 시대를 열고 사회주의의 실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노사과연


1) 레닌, ≪제국주의론≫, 백산서당, 1986, p. 56.

문영찬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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